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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일상적 시각으로부터 탈피해야...
2017년 05월 20일 00시 31분  조회:2029  추천:0  작성자: 죽림

12. 서정적 자아와 대상과의 거리

시 작품 속에서 '서정적 자아와 대상과의 거리'가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의 폭은 참으로 다양하다. 서정적 자아와 대상과의 벌어진 틈을 '정서적 자극의 폭'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독자들의 반응을어떻게 다양하게 보여주는가는 다음의 예를 통하여 알아 보자.

[가] 예쁜 새
[나] 비에 젖은 새

'[가] 예쁜 새'에서 대상은 '새'이다. 이 '새'가 예쁘다고 말하는 이는 물론 서정적 자아이다. '[나] 비에 젖은 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상은 '새'이며, 이 '새'가 비에 젖었다고 말하는 이는 서정적 자아이다. '새'라는 대상이 밝혀지고 서정적 자아가 밝혀졌으면, 이제는 '새'와 '서정적 자아'의 거리가 [가]와 [나]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거리라 함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가시적(可視的)인 거리가 아니라, 감정이 얼마나 개입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전자를 '거리가 가깝다', 후자를 '거리가 멀다'로 부르게 되는 추상적인 거리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가]와 [나]에 나타난, 대상과 서정적 자아의 거리는 확연히 구별된다. 즉 [가]는 '새'를 서정적 자아가 직접 '예쁘다'고 말하는 경우이고, [나]는 '새'가 '비에 젖어 있는 상태'를 서정적 자아가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인 경우이다. 다시 말해서 [가]는 서정적 자아의 '새'에 대한 '예쁜' 감정이 잘 드러나 있고, [나]는 서정적 자아가 자기의 감정을 절제한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에 젖어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니까 서정적 자아와 대상과의 거리가 [가]는 밀착되어 있고, [나]는 느슨한 셈이 된다.
그러면 이같은 점이 시를 다듬거나 독자가 읽게 되는 경우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물론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기 위해 대상과 서정적 자아와 독자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 하였다.

작가 ------- 작 품 ------- 독자

서정적 자아 --새


위의 도식에서 수평적 측면은 서정적 자아와 대상과의 거리를 나타내는데, 이것이 작품으로 이루어질 때 독자는 바로 이 작품을 읽게 된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정서적 자극의 폭'은 여기에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서정적 자아'와 '새'의 거리가 가까운 [가]의 경우 이를 감상하게 되는 독자의 위치와, 반대의 경우인 [나]에서 나타나는 독자의 위치는 다르다. 즉[가]는 서정적 자아와 대상과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운 이유 때문에 이미 작가가 '새'를 '예쁘다'고 규정지은 것밖에는 더 이상의 정서를 환기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나]를 보자. '서정적 자아'가 '새'를 '비에 젖었다'고 표현했는데, 이 시를 감상하는 독자는 서정적 자아와 대상의 거리가 [가]보다 많이 벌어져 있는 틈으로 여유있게 위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비에 젖은' '새'라는 객관적 표현을 받아들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에 젖었기' 때문에 '초라하다', '불쌍하다' 혹은 '애처롭다' 등 동정심 내지는 '고독', '슬픔'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게 된다.다시 말해서 독자에게 정서에 대한 환기를 충분히 시킴으로써 자유로운 감정 적용의 기회를 제공해 주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미루어 본다면 시에도 '나만의 시'가 있는가 하면 '독자와 함께 하는 시'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가]와 같은 '나만의 시'가 좋다든가 [나]와 같은 '독자와 함께 하는 시'가 좋다는 식의 규정을 위함이 아니다. 상황에 알맞는 시적 표현이어야만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



13. 일상적 시각으로부터의 탈피

문학의 생명이 신선함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과거를 답습한다거나 모방의 차원에 그친 문학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벌써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는 말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늘 신선한 눈을 갖기 위한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주변의 사물에서부터 심오한 철학에까지 다방변에 걸쳐 예사로운 눈으로 그것들을 대하지 않는다. 뛰어난 관찰력, 상상력, 추리력 등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문학이 신선한 창조이게 하는 생명력이다.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러하지만 시는 정교한 언어 예술인 까닭에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언어 생활이 인간적인 삶의 기본이라는 측면을 덧붙인다면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문학의 생명은 관찰력, 상상력, 추리력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은 관찰력이다. '사소한 사물이나 현상도 그냥 내버려 두지 말라. 거기에 기기묘묘한 착상이 있고 원리가 있고 언어가 있다.'는 이 말은 시인의 기본 정신이다.

즉 말을 확대 해석해 보면, 요는 관찰하라는 말이 되는 것이며, 이 관찰하라는 말은 일상적인 시각에 머무르지 말고 거기에서 벗어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일찍이 러시아의 형식주의 작가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란 개념은 일상적인 시각의 파괴란 의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육교 위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주먹을 불끈 쥐고
노래를 부르며
누군가 그들을 군중이라 불렀다

(중략)

아주 쬐그만 안개꽃들이
다발로 떠내려 가는 것이
먼 강에 보이는구나
때때로 시너를 끼얹고
사랑하라 사랑하라
뛰어내리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그 뿐
주위는 다시 적막에 젖고
아들아 작은 가지 끝에서
너는 언제나 홀로 시드는구나
환한 대낮에
한 묶음으로 묶여서

(고영조, '안개꽃'중에서.('시와 문학' 가을호))

위의 시는 '안개꽃'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시각에서 '안개꽃'은 순결, 순수 혹은 순결한 사랑, 순수한 사랑 등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방식대로의 시라면 이와 같은 내용이게 마련이다.

마침 그런 일이 있었다. 시 공부에 열을 올리던 친구들 앞에 안개꽃이 가득한 꽃병을 올려 놓고, 안개꽃을 소재로하여 시를 지어
보라고 했더니 50명 중 45명의 친구들이 순결하고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의 이미지를 풍기는 시 작품을 제출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친구들이 일상적 사고 방식에만 머물러 있었지 새로운 시각에는 별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고영조의 '안개꽃'은 새로운 눈을 갖게 해 준다. '안개꽃'을 노래하면서도 단순히 그 서경적인 묘사나 혹은 아름다움의 한탄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내면에 숨겨진 존재론적 의미 탐색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는 기본적으로 사물 탐구를 통해 인간 존재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그것을 사회적인 의미로 확산시킨다.

다시 말해 '안개꽃'에 반영된 죽음의 의미는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시가 애초부터 사회 의식에 바탕을 두고 씌어졌다는 것은 도입부에서 암시되고 있다. '육교 위로 /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 주먹을 불끈 쥐고 / 노래를 부르며 / 누군가 그들을 군중이라 불렀다'라는 첫 5행이 그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 도입부를 읽으면서 이미 시의 제목으로 제시된 '안개꽃'과 '데모하는 군중'이라는 두 사물의 의미론적
등가성(等價性)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가령 에즈라 파운드의 저 유명한 '지하철 역에서' 군중을 비에 젖은 봉숭아 꽃잎으로
비유했던 사실과 유사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안개꽃은 장미나 백합처럼 개체로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무리지어 피는 꽃이라는 점에서 군중적 이미지에 훨씬 가깝다. 동시에 안개
역시 우리가 살아온 미망에 빠졌던 시대의 사회 생활을 환기시켜 주는 데 적절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시인은 거리에 짓밟힌 한 묶음의 시든 안개꽃다발을 통해서 지난 시대 독재와 항거하다가 죽어간 우리의 젊은 넋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시는 우리 사회의 아픔을 사물 탐구의 형식으로 서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월미도는
뿌연 바다로 막혀 있다.

월미도는
노을진 바다로 막혀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바다'하면 '확 트이는 느낌 / 가슴을 열어 놓은 느낌 / 시원함 / 나아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할 땐
바다를 찾고, 바다로부터 신선한 마음을 담아오는 습관도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바다는 트여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 구절을 옮겨놓고 보면, 시는 답답한 내 마음을 털어 놓는 그릇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런 일상성보다 신선한 맛을 느껴보고 싶을 때, '월미도는 / 뿌연 바다로 막혀 있다.

월미도는
노을진 바다로 막혀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바다'하면 '확 트이는 느낌 / 가슴을 열어 놓은 느낌 / 시원함 / 나아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할 땐 바다를 찾고, 바다로부터 신선한 마음을 담아오는 습관도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바다는 트여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 구절을 옮겨놓고 보면, 시는 답답한 내 마음을 털어 놓는 그릇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런 일상성보다 신선한 맛을 느껴보고 싶을 때, '월미도는 / 뿌연 바다로 막혀 있다'로 바꾸어 보자.

그러면 서정적 자아는 월미도 땅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입장이 아니라 바다 쪽에서 월미도 땅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어 버린다.
바다에 있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자신을 한 척의 배의 입장으로 설정해도 색다른 느낌은 충분하리라고 본다. 적어도 뭍에 대한 그리움
정도의 내용을 형상화할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문제는 사물을 바라보되 틀에 박힌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출처:신배섭의 국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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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 
―김기택(1957∼ )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살을 찢으며 갈라진다
갈라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 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나무 위에 자라는 또 다른 나무처럼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이전부터이미갈라져있었다는듯갈라진다
태곳적부터 갈라져 있는 길을
거역할 수 없도록 제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길을
헤아릴수도없이가보아서눈감고도알수있는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듯이 갈라진다
제 몸통에서 빠져나가는 수많은 구멍들이
다 제 길이라는 듯 갈라진다
갈라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조금 전에 갈라지고 나서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다시다시 갈라진다
갈기갈기 찢어지듯 갈라진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쉬지 않고 갈라진다
점점 가늘어지는데도 갈라진다
점점 뒤틀리는데도 갈라진다
갈라진 힘들이 모인 한 그루 커다란 식물성 불이
둥글게 타오른다 제 몸 안에 난 수많은 불길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렬하게 갈라지고 있다



이 나무는 백양나무나 메타세쿼이아처럼 몸통이 곧고 훤칠한 나무는 아닌 듯하다. 느릅나무일까. 사람의 눈이 쉬이 닿는 높이부터 가지가 갈라져 나오고, 그 가지에서 또 가지가 갈라져 나오고, 거기서 ‘맹렬하게 갈라지고’ 있는 잔가지로 우듬지를 이루는 나무. 나뭇가지들이 세세히 보이니 아직 나뭇잎 무성한 계절은 아니리라. 화자는 유난히 가지 많은 한 그루 커다란 나무에서 맹렬한 생식력을 보고, 징그러움과 동시에 경탄을 느낀다. 나뭇가지가 ‘몸통에서 올라오는 살을 찢으며’ 갈라진단다. 과연 무통분만인 듯한 식물의 생식도 동물 새끼가 어미 몸을 찢으며 태어나는 것처럼 폭력적일 수 있겠다. 화자는 ‘갈라진다 갈라진다’고 강박적으로 반복한다. 점점 빠르게, 점점 세게!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지는’ 나무의 몸속에서, 고조되는 생명력에 휩쓸려 화자는 거의 환각에 빠진 듯하다. 그러나 ‘점점 뒤틀리는데도’ 갈라지는 나무나 화자나 쓰러지지 않는다. 뿌리가 굳건하기에. ‘제 몸 안에 난 수많은 불길을/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은 김기택 시를 읽을 때면 감지되는 그의 치열한 시 정신이기도 하다. 잔가지 빽빽한 그 나무, 이제 깊은 녹음(綠陰) 드리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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