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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2017년 07월 24일 04시 17분  조회:2342  추천:0  작성자: 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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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끌여들여, 현실의 거친 벽을 넘어선다. 언어는 오히려 솟아나는 새싹 같은 푸른 마력으로 드러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매듭이 된다.

진실은 더 선명해진다.

이처럼 시적 상상력의 본질을 이루는, 논리 이전의 언어인 은유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열린 사유이다.

언어적 논리를 넘어서서 현실을 더욱 풍요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변환시켰다가 다시 창조된 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마이클 레드포드의 {일 포스티노} 또한 시적 상상력이 넘치는 한 편의 영상시로 평가된다.

시적인 리듬, 시적인 영상, 시적인 대사 등 시적 표현 양상을 모두 담고 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건 은유지만 더 우리를 찡하게 하는 것은 은유를 통해 이루어진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과 소통이다.

시에 문외한이었던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나면서 삶의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하는 시적 은유의 세계를 발견한다. 은유가 세계의 또다른 모습, 또다른 환幻의 수많은 단면을 투사하는 무한한 언어의 세계임을 깨달은 것이다.

마치 파도의 포말 하나하나에 비치는 세계처럼 말이다. 
마리오의 이러한 시적 체험의 과정은 곧 시가 무엇인지,

시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극적인 질문을 보여준다. '……기타 등등'이 이 세상 다른 것의 은유라면 이 세계는 온통 은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마리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섬, 작은 파도와 큰 파도, 절벽 위의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신부님이 울리는 교회의 종,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소리 등등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은유의 세계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은유의 눈으로 세상의 진실을 읽으려 했던 마리오는 진정 아름다운 시인의 삶을 살아낸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임시직 우체부였던 마리오는 한편의 시도 쓰지 않았지만 진정한 시인이다.

그는 은유 속에 있는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않았던가. 마리오가 죽고난 다음에야 네루다는 소식이 끊긴 자신에게 보내고자 마리오가 녹음했던 섬의 소리들을 듣는다.

마리오를 생각하며 쓴 한 편의 시는 시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 강가였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네루다는 마리오를 시인으로 인정했다. 아니, 그는 마리오로부터 새로운 은유의 세계를 읽어내었으리라. 
이처럼 은유는 언어적 이미지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 긴밀한 마음의 움직임을 만든다. 결국 시적 사유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욕망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개혁의지가 될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은유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서 빛으로 건져낸 서정의 이미지. 그래서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조그만 샛강이 하나 흘러왔다고 하면 될까
바람들이 슬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내 속눈썹을 스친다고 하면 될까
봉숭아 씨를 얻어다 화분에 묻고
싹이 돋아 문득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여
돋은 떡잎 위에 어른대는
해와 달에도 겸하여
조심히 물을 뿌리는 일이여
―장석남, [봉숭아를 심고] 부분

봉숭아 씨앗을 심고, 그 싹 위에 조심조심 물을 뿌리는 마음, 그건 생명을 향한, 아름다움을 향한 시인의 의지이다.

언어로 그려진 이 그림을 통해서 푸르고 따뜻한 진실의 한 풍경에 닿는다. 어떤 마음의 울림이 이미지를 통해 만드는 파문.

여기서 우리는 그 존재조건만으로 주어진 현실을 건너, 샛강이라는 은유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현실을 경험한다. 하나의 언어가 지닌 사전적 의미는 은유를 통해 그 의미가 확장되어 시인 자신만의 구체적 진리를 형성해낸다.

그것이 서정의 위력을 만든다.

이렇듯 어떤 대상들의 뒷모습을 새롭고도 섬세하게 읽어가는 은유의 불빛이 시의 세계고, 사진의 세계이며 영화의 세계이다. 
쿠델카의 손목이 보여주고 있는 시간의 은유는 무엇일까. {안개 속 풍경}, 바다에서 건져올린 거대한 동상의 부러진 손목과 비교해 볼만하다.

그 뒤로 펼쳐진 도심의 풍경은 시간 속을 걷는 우리의 기억일 것이다. 기억은 과거와 그 과거를 향하는 현재의식의 결합으로 창조된다.

사진 이미지가 주는 은유는 흔적, 시간, 죽음 같은 것들로 현재 속 과거이다. 사진은 포착한 순간의 우연성과 필연성을 통해 꿈과 픽션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사진의 미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인 힘이 된다.

거기서 작가는 새로운 진실을 캐어내고, 대상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스모크}라는 영화에서 담배가게 주인은 가게 앞 같은 한 장소를 매일 같은 시간에 십 년 이상을 계속 찍는다.

매일 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는 그 시간이 얼마나 유일한 순간인지를 알았던 것.

그 시간의 고유성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것이 무엇일까. 찍는 사람과 찍힌 대상이 만나는 찰나적이며 유일한 순간, 그것은 과거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풍경 속을 걸어왔고, 걸어가는 중이기에 사진은 지난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이 지시하는 현실을 묻는다. 사진엔 이미 사라진 시간과 존재,

즉 끊임없는 죽음의 이미지가 담겨 있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것은 존재를 재발견하게 의식의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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