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가다 보았다
어머니가 가볍다
아이고―
어머니는 이 한마디를 하고
내 등에 업히셨다
경의선도 복구 공사가 한창인데
성당 가는 길에 넘어져
척추를 다치신 어머니
받아내는 동안 이렇게 작아진
어머니의 몸 업고 보니
가볍다 뜻밖에도 딱딱하다
이제 보니 승하가 장골이네
내 아픈 니를 업고 그때……
어무이, 그 얘기 좀 고만 하소
똥오줌 누고 싶을 때 못 눠
물기 기름기 다 빠진 70년 세월 업으니
내 등이 금방 따뜻해진다.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김천 우시장 탁배기 맛
이전 맛 같지 않구마
소 팔러 우시장에 나온 아부지를 따라와
승하야 니도 한 잔 묵거라
뜨물 같은 탁배기 한두 잔 얻어 마시던
그 술맛은 어데로 가삐맀는지
씹다 더 달싹해졌는데 더 씹다
어무이 치료비 마련할라꼬
큰맘 묵고 끌고 나온 한우 암소
하이고 나 원 참
200만 원도 안 준대여
또 소값 파동이래여?
소고기, 비육우 무데기로 수입한 탓이래여?
이번엔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이라네
내도 84년 폭락 때 죽은 뒷집 박씨 아저씨처럼
솔랑은 이 우시장에 두고 가까
우시장에 소 내삐리고 와
농약 묵고 탁 죽어삐리까
소야, 니는 죽어 괴기 될 자격이 없고
내는 살아 소 키울 자격이 없다 칸다
소야, 내 손으로 널 잡아먹긴 싫었는데
내가 널 백지 델꼬 왔다
에라이 속이 씨려 속 달랠라꼬
마시는 술맛이 왜 이 모양이고
움메에 우는 소 눈을 쳐다보며
우시장 한 켠에 앉아서 마시는 탁배기
어느 갓장이에게 들은 말
뭐 부끄럽지 않소
10년을 배와 재우 손에 익힌 것이
밤일꺼지 해가민서 한 달에
재우 두세 개 맨들어내는 것이
뭐 부끄럽지 않소이다
말총으로 날줄을, 쇠꼬리털로 씨줄을
절이고 절인 걸 또 절이고 절여
날줄 오백 열두 줄을 맨들기꺼지
기양 맨드는 기 내 일이라
눈 어둡어지는 것도 몰랐지만서도
배우로 온 사람 장사하겠다고 가고
공장에 다니는 기 낫겠다고 떠나고
이젠 늙은 마누라가 내 조수여
그래 자석새끼들한테 안 가르쳐준 것이
부끄럽다면 하냥 부끄럽소
개명한 시상에서 갓을 누가 쓴다냐
예를 누가 지킨다냐
조선色을 누가 돌본다냐
날 보로 왔으니 시인 양반
노래나 한 곡조 불러줌세
울 아배한테 배운 갓일 노래
한 코 떠라
두 코 떠라
세 코 떠라
속히 떠라
양태 뜨는 소동들아
한 코 떠서 어머님 젖값 갚고
두 코 떠서 아버님 술값 갚고
귀향
이승하
그리 멀지도 않건만
고향으로 가는 일이 참으로 힘들구나
허나, 세상의 모든 길은
저마다의 고향으로 나 있는 법
그대 태어난 곳 자라난 곳
꿈을 키웠던 그곳
사춘기 시절엔 줄곧 떠나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대 고향을 버리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지
연어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데
한가위로다
타향의 하늘에서도 이국의 하늘에서도
두둥실 떠 있는 원반형의 달
어머니 등에 업혀 쳐다보았던 달
사랑을 잃고 술에 취해서 쳐다보았던 달
오늘밤 저 달은 한껏 발그레해지리라
인생행로 걸어도 달려도
어느 길 할 것 없이 험하기만 했다
망망대해 달려도 멈추어도
어느 뱃길 할 것 없이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나 있는 길에서는
지친 새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그대 탯줄이 거기 묻혀 있기에
그대만을 기다리는 노모가 있기에
싸늘히 식은 가슴 지닌 이들이
고향에 돌아온 날은 왁자지껄하리라
따뜻한 고봉밥 넘치는 술잔
사투리가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친척 아이 이름을 묻는다
잃어버린 내 별명을 여기서 찾는다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이여
이번 한가위만 같아라.
돌아오지 않는 새들을 기다리며
이승하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많은 물떼새들
왕눈물떼새, 검은가슴물떼새, 꼬리물떼새, 댕기물떼새......
수염 돋은 개개비란 새도 있었네
물떼새 알을 쥐고 돌아오던 어린 날의 낙동강
내 오늘 한마리 물고기처럼 回遊해 왔네
아무것도 없네 그날의 기억을 소생시켜주는 것이라고는
나루터 사라진 강변에는 커다란 굴뚝이 도열, 천천히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네, 천천히
대지를 버린 내 영혼이 천천히 황폐해 가듯
시간에게 묻는다
이승하
시간이여
무수한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네가 필요한 것이냐
무수한 생명체를 소멸시키는 데
네가 필요한 것이냐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되느냐
영원히 나누어져 순간들이 되느냐
가뭇없이 흘러만 가느냐
언제 출발하여 어디까지?
시간이여
고통에도 무슨 뜻이 있느냐
사후 세계에 아무런 고통이 없다면
천국이 아니냐 혹 열반이 아니냐
천국과 열반이 아닐지라도
오라 고통이여
인간들의 오랜 벗,
지층을 뚫고 별을 헤아리며
화석을 부수고 미라를 만들며.
어머니 발톱을 깎으며
유강희
햇빛도 뱃속까지 환한 봄날
마루에 앉아 어머니 발톱을 깎는다
아기처럼 좋아서
나에게 온전히 발을 맡기고 있는
이 낯선 짐승을 대체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싸전다리 남부시장에서
천 원 주고 산 아이들 로봇 신발
구멍 난 그걸 아직도 싣고 다니는
알처럼 쪼그라든 어머니의 작은 발,
그러나
짜개지고, 터지고, 뭉툭해지고, 굽은
발톱들이 너무도 가볍게
툭, 툭, 튀어 멀리 날아갈 때마다
나는 화가 난다
저 왱왱거리는 발톱으로
한평생 새끼들 입에 물어 날랐을
그 뜨건 밥알들 생각하면
그걸 철없이 받아 삼킨 날들 생각하면
―현장비평가가 뽑은『올해의 좋은시』(현대문학,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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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던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 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시집『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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