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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論] 시는 가까이 있다 백석(白石, 1912 - 1996)
생활에서 유리된 시,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감정에서까지도 유리된 시들이 어떻게 남을 감동시키며, 어떻게 인간의 생활에 기쁨을 줄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하는 말을 자기의 말처럼 자기의 시라고 하여 적는다는 것은 시를 느낄 수 있는 깨끗하고 자랑 높은 마음으로써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들의 시에는 왜 사색이 없습니까? 작자가 자기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는 어떤 뿌리 깊은 문제에 대한 사고가 감동의 높이에까지 이를 때, 이것을 시로 표현하여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감동 속에서 그 문제를 사색하게 하는 시를 우리는 하나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린 가슴에는 어린 대로 깊은 감동을 짝하는 사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붙들 때, 우리에게는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깊은 충동을 받는 것입니다. 참으로 문학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우주 자연과 인간사회의 모든 아름답고 깊고 먼 것들을 두고 감동 속에 사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림도 좋은 그림은, 그 그림 앞에서 차마 떠나지 못하게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 것이요, 시도 또한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그 무엇인가를 오래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짧은 시라도 사람의 마음을 오래 붙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이의 시라도 늙은이의 마음을 또한 붙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에 있어서는 언제 어디서나 논의되고 검토되고 비평 되여야 할 것은 언어입니다. 이것은 작품형상의 첫 길이며, 작품정신의 안목입니다. 우리 독자들의 시 작품들에서는 개념적인 언어가 많이 쓰여 지고 있는 것이 결함입니다. 더욱이 남의 말을 자기의 말로 여기는 것은 긍지를 가진 문학학도가 할 일이 아닙니다.
시에서 자기의 세계를 찾을 때, 말도 또한 제 것이 생겨나는 것인가 합니다. 시에서 특히 어린이들의 세계와 관계되는 시에서는 그 말이 단순하여야 하며, 소박해야 하며, 순진해야 하며, 맑아서 밑이 환히 꿰뚫려 보이고, 다치면 쨍 소리가 나는 그런 말이여야 할 것입니다...(중략)...
시를 쓴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에게 거짓이 없어야 되는 것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좋은 시를 낳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듯이,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낀 듯이 속여 본다하여도 결국은 아무도 속이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속이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쓸까? 어떤 시를 지을까? 하고 생각하지 말고, 우선 자기 자신이 무엇을 볼 때, 무엇을 들을 때, 무엇을 꿈꿀 때, 무엇을 느낄 때 즐거우며, 흥분하게 되며, 감동을 받게 되며, 행복한 것을 깨닫게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감동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여 보면, 이것이 시로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시들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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