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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여백부분이 훌륭한 웅변적 표현력을 과시, 암시효과
2017년 10월 09일 19시 01분  조회:1973  추천:0  작성자: 죽림
 

유명 화가의 미술 작품들 (2) : 세잔 Cezanne Paul (1839~1906)

 

자연(自然)의 재현(再現)을 넘어서

 

 

 

로코코풍의 풍경

 

꽃이나 꽃병을 그린 세잔의 정물화는 무수히 많으나, 로코코풍의 것을 그린 그림은 이것이 단 1점이다. 실은 이 작품은 제 2제정 시대의 판화를 그대로 유화로 옮긴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재료들을 보면서 그린 그림이 아니다. 판화를 사용한다든지, 꽃을 조화(造化)로 바꾸어 그린다든지 하는 것은 세잔이 곧잘 하던 짓이었다. 색채를 자기 스스로 상상하여 만든 것이었으리라. 꽃병의 백색과 장식 부분의 투명한 청색계의 대조는 매우 투명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백색 꽃병에는 녹색의 반사색(反射色)을 쓰고 있다. 채광 (採光)은 왼쪽 윗부분으로 잡고 있고, 꽃병은 오른쪽으로 조그맣게 그늘을 늘어뜨리고 있다. 꽃이나 잎, 꽃병은 붓자국이 매우 섬세하며, 그것에 비하여 배경이나 책상은 붓자국이 조금밖에 나타나 있지 않다.

 

 

 

자화상

 

세잔은 렘브란트나 고호와 같이 많은 자화상을 그렸으나, 그것이 자기 성찰의 뜻이라기보다는 이마, 코 등 명확한 형태를 지닌 것과 머리, 수염과 같이 부정형의 것들과 공동으로 이루어진 얼굴이라는 모티브를 조형적으로 추구하는 수단이었다고 본다. 세잔의 다른 자화상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부드러운 표정의 작품이다. 언제나 세잔의 자화상에서 보여주는 준엄하고 위엄있는 표정은 이 작품 제작 수년 후에야 나타나는 것이다. 습작품이고 터치가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더욱 이 자화상에 친근감을 더하게 한다. 아직 40세 전인데도 이마가 벗겨졌고, 등은 구부러졌으며, 어딘지 모르게 인심 좋은 할아버지로만 보인다. 세잔의 그 많은 위엄있는 자화상들 속에 유일하게 있는 희귀한 1점의 자화상이다.

 

 

 

 

흑인 시피온의 초상

 

시피온은 아카데미 스위스의 모델이다. 푸른 바지를 입고, 상반신은 나체로 나무 의자에 앉아 흰 천을 씌운 무엇인가에 몸을 기대고 있다. 배경은 어둡고, 얼룩이 없는 청색으로 보다 밝게 큰 터치로 된 바지색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청색은 흰 천 속에도 번져져 있다. 이 청색의 변화가 인체의 짙은 갈색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인체는 비교적 강인하면서도 힘차게 묘사되고 있으며 귀, 코, 오른팔에 약간 보이는 하이 라이트가 바지 부분의 큰 터치와 잘 호응되고 있다. 불과 세가지 색의 색채가 교묘하게 사용되어 간결하고 웅대한 효과를 보여 주며, 구도에 있어서도 의자의 형태인 수직, 수평의 선이 안정감을 놓이는데 효과가 크다.

 

 

 

 

부채를 든 세잔 부인

 

세잔은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서 알려져 있으며, 더욱이 자기 아내의 초상을 많이 남긴 화가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비교적 제작 연대가 오래된 것 중의 하나로서 1880년 전후하여 파리나, 그 근처에 살 때의 작품으로 보여진다. 연대의 추정은 이 시기의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배경의 벽지 무늬에서 할 수 있다. 붉은 보라색 안락 의자에 부인을 앉혀서 손에는 부채를 쥐게 하여 옆에서 본 사면 구도(斜面構圖)를 썼다. 직선적 요소는 비교적 적으며, 양감을 암시하는 갖가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락 의자의 커다란 완만한 곡선이 의자에 앉은 인물을 더욱 더 안정되게 하고 있다. 색채는 음영(陰影)에 의하여 깊이를 보여 주고 있으며, 의자의 그늘이 벽면을 어둡게 하고있는 것이 부인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모데르느 올랭피아

 

오베르에 머무는 동안 제작된 것으로 의사인 갓세가 마네의 <올랭피아>를 칭찬하자 세잔은 단숨에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화가의 보다 멋진 컨디션에서 낳아진 작품이다. 색채와 터치도 분명히 인상파적이며, 검정은 개와 세잔 자신의 모자에만 사용했는데, 마네 또는 르노와르가 즐겨 검정의 악센트로서 적절하게 효과를 내고 있다. 왼쪽에는 핑크색의 커튼, 오른쪽에는 무더기로 된 꽃의 꽃병을 배치하여, 중앙의 밤색 머리의 여인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흑인인 하녀와 그 위의 샹들리에 배경의 엷은 녹색이 전경의 짙은 녹색에 대응하여 로코코풍의 소형 원탁의 붉은 색이 카아핏의 짙은 녹색 속에 무르익는다. 재기가 넘치는 경쾌한 작품이다

 

 

 

 

 

프로방스의 풍경

 

인상파 시대 때의 세잔의 아름다운 수채화 중의하나 이다. 왼쪽에 키가 큰 나무를 두고 오른쪽에도 단단한 듯한 나무들이 있어, 그 아래에 보이는 집을 감싸고 있다. 전경에는 냇물이 흐르고, 그러나 시선은 중앙의 흰 부분으로 인도되어 서서히 안쪽으로 빨려드는 것을 느낀다. 지면이나 집, 언덕, 어느 부분의 그늘에도 청색을, 나뭇잎들 사이의 빛은 노란색으로 묘사하고 있다. 연필로써 큼직하게 물체의 위치 정도를 정하고는 자유롭게 수채의 터치를 주고 있다. 물감이 묻지 않은 흰 부분이 눈에 띄나, 작품이 미완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절도있는 채색으로 하여금 여백 부분의 말없는 효과가 표현력을 증대시켜 주고 있다.

 

 

 

 

세잔의 초상

 

1875~1877년에 제작된 자화상에 비하면 구성적 요인이 매우 짙어진 감이 있다. 그것은 수직이나, 수평의 선 들이 교차하는 창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규칙적인 삐딱한 터치로 모자와 얼굴과 수염들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비하면 검푸른 양복색이며, 오른쪽 벽면은 비교적 자유로운 터치로서 생략적으로 처리되어져 있고, 더욱이 어깨에서 팔에 이르는 부분은 미완성의 느낌마저도 든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자화상은 다른 5점이 또 있으나, 그 제작 순서를 가리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 자화상은 좀더 이른 1879~1880년경의 제작으로도 보여진다. 세잔의 40세경의 작품으로서 표정이 굳어져 완고함과 야성적인 감을 준다.

 

 

 

 

목맨 집, 오베르 LA MAISON DU PENDU, A AUVERS

1872~3년 캔버스 유채
55.5 X 66.5Cm
파리 인상파 미술관 소장

 

오른쪽과 왼쪽에 놓여진 집의 크다란 덩어리가 힘있는 대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로 먼 경치가 보인다. 중첩된 지붕 너머로 들판이 보이고 다시 작은 집들을 지나면 눈은 원경에 있는 언덕에 이른다는 전개 방법은 매우 실증적이며 공간의 설정 방법이 면밀함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초가 지붕의 사면에 자란 풀의 녹색, 길과 나무들, 왼쪽 집들의 벽은 갖가지 톤의 갈색으로 창문이나 문짝에는 푸른색이 반영되고 있다. 마티에르는 전체적으로 두텁게 되어 있고, 부분적으로는 팔레트 나이프가 사용되고 있다. 왼쪽밑에 붉은색으로 사인이 되어 있다. 관찰의 면밀함과 정확성, 중후한 맛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1874년 제 1회 인상파전에 출품되었다.

 

 

 

숏케의 초상

 

물체의 형태를 여러 가지 평면으로 분할하여 모자이크와 같은 선명한 색채 효과를 노린 점이 이 초상화의 특색이다. 화면의 배경인 여러 점의 그림이나, 장식품 등으로 보아 이 작품은 숏케의 집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제작 연대는 1880년 전후로 보이나, 그 이상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바닥과 벽이 만나는 수평선, 오른쪽 윗부분에 상하로 걸린 그림의 왼쪽 선이 의자의 선과 만나는 수직선, 이러한 두 개의 직선이 화면 구성상의 축을 이룬다.

 

그 외 여러 개의 직선들이 이것들과 평행하여 작은 악센트를 이루고 있다. 광선은 왼쪽에서 비쳐져 숏케의 얼굴이나, 상반신을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양분시키고 있다. 바닥이나 벽지의 붉은 무늬 등의 색채가 빛에 의하여 선명하게 두드러지면서 빛과 실내 공기를 생 성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들라크로아의 메데

 

들라크로아가 몇 점의 유화로 제작한 <노란 메데>에 의한 자유 모사이다. 낭만주의 거장의 작품과의 상이 점은 첫째 동굴 밖의 푸른 공간이 왼쪽 상하를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 다음에 밖에서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메데의 왼쪽 어깨의 뒤쪽을 비추는 빛의 노란색이 이 작품에서는 거의 생략되어져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 수채화의 화면이 아래위로 길다는 이유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메데의 새파랗게 타는 분노와 복수심이 하얀 피부와 양다리를 싸고 있는 옷과 단검의 푸른색들로 잘 묘사되고 있다. 동굴 안벽을 묘사한 터치도 어둡게 엉켜있고, 여인의 분노에 타는 살기 돋친 감정과 잘 일치되고 있다. 지금 이장면이 사랑하던 두 아이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하는 장면인 것이다.

 

 

 

정물

 

세잔의 정물화에는 두 종류의 벽지 무늬가 있는데 이 그림의 무늬와 나뭇잎 무늬가 있다. 이러한 벽지는 그 당시의 유행으로서 프랑스의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그림에서는 붓의 터치가 아직도 덜 규칙적이며, 화면이 전체적으로 두텁게 물감을 올려놓고 있다. 전면에 나이프가 삐딱하게 놓여져 있는 것은 세잔이 젊은 시절에 마네나, 샤르댕의 정물화에서 배운 것이며 다른 정물화에도 가끔 보여진다. 중앙에 있는 유리컵을 통하여 뒤쪽 냅킨이나 벽지의 색채가 보이는 것도 17세기의 네덜란드 정물화에 잘 쓰여진 수법이다. 왼쪽의 푸른 빛 우유 그릇과 빨간 둥근 사과 등이 충실한 양감을 보여 준다.

 

 

 

 

꼬부랑길

 

1880년 전후에 세잔은 '길'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몇 점 제작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잘 완성된 작품이다. 대체로 퐁드와즈 근처의 풍경으로 보여지며, 전경 중앙에서 중경으로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길이 원운동(圓運動)을 형성하여, 그 내부나 왼쪽의 가느다란 나무들이 화면에 틀을 이루고 있다. 배경의 경사진 지붕이나 작은 집들이 기하학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고, 그 집들의 뒤에는 작은 언덕이 좌우로 있어 화면 구성상으로는 완벽 한 구도라 하겠다. 붓의 터치도 규칙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수년 후 제작된 풍경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의 완벽성 같은 것은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고, 오히려 장식적이며 평면적인 인상이 짙다. 그러나, 고갱은 이 시기의 세잔의 풍경화나 정물화에서 보여 주는 평면적인 성격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에스타크의 바다

 

 

 

 

 

화가의 아들 폴의 초상

 

폴은 세잔의 독자(獨子)로서 1872년 초 파리에서 태어 났다. 세잔과 그의 부인인 오르탕스 피케는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으나, 폴의 출생을 구청에 신고 하고 그들의 자식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일은 그 당시 프랑스의 시골에서는 가끔 있는 일로서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세잔 자신도 양친의 정식 결혼 전의 자식인 것이다. 세잔과 오르탕스 또한 1886년 4월에 비로소 엑스에서 결혼하였다. 이 폴의 초상화도 그 전후의 작품이다. 평소의 복장으로서, 상의는 엷은 청록색으로 인하여 흰 샤쓰에도 푸른색의 반영이 보인다. 모자는 찌든 짙은 청색으로서 이 시기의 세잔의 자화상 2점에서도 이러한 색의 모자를 쓰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 그림틀 같은 모양이 장식적인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에스타크의 바위

 

1883년 5월에 세잔은 그의 벗 졸라에게 보낸 편지에 '에스타크의 역 위쪽에 뜰이 있는 조그마한 집을 빌었다. 언덕 기슭의 내 집 뒤쪽에서 암산과 솔밭이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세잔의 중기의 풍경화 중에서도 가장 박력있는 이 작품은 그 생동감으로 하여금 세잔의 중기 작품 같지가 않다. 전경은 얕고 중경은 바위들로 솟아 있어 멀리 바다와 마르세이유 만 쪽의 섬이 보인다. 바다와 하늘 이외에는 모든 것이 규칙적인 삐딱한 터치로서 그려져 있다. 녹색과 갈색 그리고, 청색에서 회색의 변화로 하여금 바위의 양감을 강하게 보여 준다. 수평선은 약간 위쪽으로 치켜 올려 처리되었으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강한 운동감을 낳고 있다. 이것을 왼쪽의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받치고 있는 것이다. 다이나믹하며, 압도적인 박력있는 작품이다.

 

 

 

튜립 꽃병

 

 

 

 

목욕하는 세 여인들

 

여인들이 목욕하는 주제는 세잔이 즐겨 택한 것이다. '주제에서 모티브로, 상상되는 것에서 보여지는 것으로'라는 근대 회화의 움직임에서는 어긋나는 것이기는 하나 색채상으로는 역시 인상파 그것이며, 이 작품에 있어서도 청록의 짙은 색채가 매우 규칙적으로 삐딱하게 놓여져 있다. 전경인 지면이나, 풀, 수면은 터치가 옆으로 놓여져 있으며, 멀리 약간 보이는 푸른 하늘은 터치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좌우로 선 나무들이 피라밋 형으로 화면의 틀로서 작용한다. 그 중 두 여인은 물 밖에서 앉아 있기도 하고 선 채로 타올을 쥐고 있기도 한다. 중앙의 한 여인은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서있다. 세 사람의 머리는 각양각색으로서 인체와 풍경의 조화가 매우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마티스가 애장(愛藏)하던 작품이다.

 

 

 

 

부엌의 탁자(부분)

 

세잔의 정물화 중에서도 복잡한 구성과 형태의 데포르 마숑 그리고, 시점의 이동이란 점 등으로 보아서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탁자를 화면에 병치해 놓고 그 위에 과일이나, 갖가지 항아리들 그리고 과일 광주리, 냅킨 등을 풍성하게 배치하였다. 과일 광주리를 보는 시점과 왼쪽에 있는 항아리를 보는 시점의 차이는 이미 세잔 연구가들이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조형적 노력이 큐비즘의 이론 구성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배경의 구성도 매우 복잡하여 왼 쪽에 짙은 갈색의 작은 테이블과 의자 등 벽구석까지 이르고 있다. 뒷벽 부분은 녹색·청색·보라색·갈색 등 짙고 깊은 색들이 엉켜져 있고, 전경의 테이블과 평행하여 전경의 갖가지 빛깔들을 흡수하고 있다.

 

 

 

 

벨르뷔의 조망

 

완벽한 구도의 작품으로서 맑은 분위기로 안정되어 있다. 유채물감을 비교적 얇게 써서 붓자국을 많이 남기지 않은 작품이다. 갈색과 녹색 등 갖가지 복잡한 톤으로서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전경은 수평의 한 선으로 잘려져 있고 색채나 터치 변화를 조금씩 주고 있으며, 낮은 나무들의 무더기를 점점이 배치하고 있다. 중경에 몇 개의 집들이 기하학적인 양감을 보여 주고 있으며, 지붕의 경사가 점차적으로 시선을 지평선으로 인도하고 있다. 여기서 아무 장애도 받지 않은 수평선이 대지의 넓이를 암시해 준다. 지평선의 짙은 녹색에서 전경의 황록색에 이르기까지 세잔은 녹색의 복잡한 하모니를 무한히 아름답게 처리하고 있으며, 그 가장 엷은 색 들을 하늘로까지 가져가서 화면의 분위기를 한층 무르익게 하고 있다.

 

 

 

 

 

연못 위의 다리

 

녹색의 교향시 같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하늘이 희멀건 청색 나무 다리가 지닌 회색조의 갈색,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비쳐진 무엇인가 그늘의 붉은 맛이 감도는 갈색 등을 없애 버린다면 화면 전부가 녹색의 바리 에이션으로 엷은 황록에서 짙은 녹색으로, 그리고 진 보라에 이르기까지 그 무한한 변천이 매우 상쾌할 뿐이다. 터치는 우거진 나뭇잎의 경우는 옆으로 뉘어져 있고, 물 위의 반영의 부분은 주로 아래위로 쓰여져 있다. 세잔이 인상주의 작가라는 것이 이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모네와 결코 다른 점이라면 그가 물체의 형태를 무시하지 않는 점, 그리고 색채의 효과를 뜨겁게 보지 않고 어디까지나 선명하고 명쾌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이 두 가지 점일 것이다.

 

 

 

부인과 카페테르

 

만년에 있어서 세잔은 인물화에 지극히 관심을 보였다. 그것도 화면의 크기가 큰 것으로만 제작되었다. 이 작품도 그 걸작들 중에 한 작품이다. 짐작컨대 엑스에서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이 강직하게만 보이는 가정부가 세잔 집안에서 일하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배경에는 투박한 나무 문이 있고, 그 왼쪽에는 장미 무늬로 된 벽지가 보인다. 이 부인은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나, 무릎이나 그 옆의 탁자 표면까지도 모두 다른 부분보다 높은 시점에서 보여 주고 있다. 더욱이 왼쪽 벽지로서 수직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마치 가정부는 서 있는 것같이 보인다. 머리를 가른 선, 코 끝, 복장의 중앙선을 지나 무릎을 양분하는 선도 이 또한 엄정한 수직선을 이루고 있으며, 커피 포트 왼쪽 선 또한 수직으로 서 있다.

 

 

 

 

 

생트 빅트와르 산

 

1867~1870년경에 제작된 이 작품에서는 화면 한 구석에 조그맣게 생트 빅트와르 산을 그렸는데, 1880년대에는 정면으로 이 산을 그려 놓았다. 에스타크의 바다나, 마르세이유 만의 고요한 물결에서 건장한 대지나, 산으로 차츰 세잔의 관심이 옮겨짐을 볼 수 있다. 산은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구릉을 뻗치고 있고 바로 그 아래에 육교가 걸쳐 있다. 전면에서 그 안 쪽으로 길이 나고 집들이 간간이 있어 중경의 넓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전경에 우거진 나무들이 있고 단 한 채의 집이 사각(斜角)으로 놓여 있다. 중앙의 소나무는 화면을 좌우로 나누어 놓고 뻗쳐 있는 나뭇가지로 하여금 장식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오렌지색과 녹색의 대조 관계는 매우 강렬하며, 산 허리나 하늘에는 엷은 보라색이 있어 빛처럼 밝은 분위기를 한결 더하고 있다.

 

 

 

 

마른 강의 다리

 

1888~1889년경의 세잔은 파리에 머물면서 세느 강이 나, 마른 강 그리고, 샹티이에서 정력적인 제작을 하였다. 남 프랑스의 명쾌하고 강렬한 풍경을 즐긴 다음에 ,다시 북프랑스의 부드럽고 조용한 광경을 만나 세잔은 더욱 자신을 갖고 인상주의적인 감각을 명쾌하게 정리하면서 이 하늘과 녹색과 물 속으로 자기를 쏟아 넣었다. 강변과 다리가 옆으로 축을 이루고, 치솟은 미루나무와 수면에 떨어진 미류나무의 그늘이 상하의 악센트를 좌우로 펼친다. 전경의 수목인 녹색이 왼쪽 면을 크게 자리하고, 이것을 마주 보는 오른쪽 중경에서는 붉은 지붕의 집이 비스듬히 보여 공간을 꼭 알맞게 설정시키고 있다. 수면에 떨어진 하늘이나 녹색의 처리는 매우 훌륭하며, 세잔 만년의 그 많은 작품 중에서 뛰어난 걸작이다.

 

 

 

 

목욕하는 남자들

 

최근에 인상파 미술관으로 옮겨온 이 작품은 수많은 < 목욕하는 남자들> 중에서도 총 결산이며, 최고의 걸작이다. 세잔 개인적으로는 졸라와 같이 소년 시절 아르크 강에서 놀던 기억으로 연결된 것이며, 역사적으로는 몇 개의 인체들을 구성하여 화면을 만든다는 서양 회화의 전통적인 발상법에 참가하고 있다고 하겠다. 르노와르의 목욕 군상도와 더불어 세잔의 그 많은 목욕도 들은 근대 서구의 화가들이 과거의 전통을 어떻게 자기화하여 생기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냐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수직으로 치솟은 강 건너편의 나무들, 그리고 멀리 가깝게 느끼면서도 분명한 형태의 인체와 부정형의 수목들과 결정적으로 화면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하늘의 흰 구름. 갖가지 대립하는 요소가 이렇게도 혼연 일체가 되어 높은 통일감을 주는 예는 다르게 찾아 볼 수 없다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목욕하는 여인들

 

세잔의 수채화에는 유화를 습작과 유화에서 독립되어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후자에 속한다. 수채화는 세잔에 있어서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며, 만년에 이를수록 수채화는 유화와 대등한 질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데생에 있어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세잔의 화법은 쿠르베나 밀레, 모네, 피사로보다도 그 폭이 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몇 사람의 여인들이 풀밭 위에 자유롭게 배치돼 있고, 중앙의 한 여인은 물에서 올라오고 있다. 왼쪽에는 화면을 이어 붙인 자국이 있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인체와 수목이 더 그려져 있어 몇 번이고 고쳐 그어진 윤곽선의 움직임이 보다 아름다운 리듬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이것이 더욱 적절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모자를 쓴 자화상

 

화가는 자기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그렸으며, 얼굴만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울에 비쳐진 자신을 보다 잘 그리기 위해서는 얼굴을 그렇게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눈 끝의 표정이라든지 둥근 등의 모양 등에서 화가의 심정을 읽게 된다. 세상에 대한 불신이라든지,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불만 의식 같은 것이 보여진다. 모자, 얼굴 등 데생이 좋고 특히 얼굴의 양감은 갈색의 갖가지 톤으로 잘 처리되어져 있다. 수염에는 흰색이 있고, 등과 배경에는 칠 하지 않은 부분이 보여진다. 수년 전에 제작된 세잔 부인 초상과 비교하면 배경의 처리에 있어서도 이미 여기에서도 갖가지 색채가 쓰여지고 있으나, 그것들이 선으로서보다는 커다란 색의 덩어리로서 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미완성 작품이기는 하지만 녹색·회색이 감도는 보라의 가라앉은 분위기는 매우 훌륭하다.

 

 

 

 

사과와 오렌지

 

카몽드 콜렉션에서 인상파 미술관으로 오게 된 이 작품은 바로크적인 구도를 지닌 만년의 정물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쿠션이 있는 긴 의자에 천을 늘어뜨렸고, 몇 장의 냅킨을 깔아서 그 위에 도자기와 과일을 배치한 구도로서 물체가 당장 굴러 떨어질 것만 같으나, 불안정감은 없으며 오히려 화면이 생동감을 보여 주고 있다. 물감은 매우 엷게 발라져 있고, 왼쪽 냅킨은 캔버스 천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 터치는 매우 자유로우며, 도자기의 경우는 거의 터치를 발견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사과나 오렌지의 경우 붉은 색에서 노란색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가 매우 아름다우며, 형태나 양감이 매우 잘 묘사되어 있다. 원숙한 경지의 아름다움이라면 이러한 작품을 말할 것이다.

 

 

 

 

바위

 

전체가 보라색으로 덮인 이 풍경은 필경 폰텐브로 숲 속에 있는 바위들을 그린 것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에 커다란 바위들이 겹겹이 있는 광경은 보는 사람의 가슴 속에 일종의 극적인 충격마저도 일으키게 한다. 만년의 세잔에게는 지질학자인 그의 벗 마리옹의 영향으로 대지의 생성에 흥미를 가졌고, 또 황폐한 모습에도 흥미를 가졌다.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바위들이 중첩하는 사이에서 수목들이 자라나온 이 풍경은 조형적으로도 훌륭하다. 보라색 바위에는 갈색·노란색의 터치도 있으며 나뭇잎들도 거의 같은 빛깔들로 되어 있다. 주조를 이루고 있는 보라색과 황량한 풍경은 잘 어울려있고, 왼쪽 구석에는 멀리 공간이 열려 있다.

 

 

 

밀집 모자의 소년

 

1896년 세잔은 아누지 호반을 여행하여 다르와르에 머문 적이 있다. 그 지방의 소년을 모델로 하여 몇 점의 유화와 수채화를 제작했으며, 이것도 그 중의 1점이다. 낡은 밀짚 모자의 형태와, 그 아래 소년의 참외형 얼굴의 곡선의 콘트라스트는 매우 재미있다. 왼쪽 몇 가닥의 직선, 그리고 소년이 입고 있는 덧옷, 그 앞 가슴에서 내려오는 수직선의 반복. 군데군데 미처 칠하지 않은 흰 화면들이 보이나 별로 탓할 것이 없다. 화면 전체는 물감들이 엷게 발라져 있고, 제작 과정이 비교적 순순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소년의 덧옷 소매 안쪽의 선들이 어려웠던 것이 눈에 띄며, 몇 번이고 고쳐서 선을 그었던 까닭에 색채도 이 부분이 약간 짙어져 있다.

 

 

 

 

프로벤스의 산

 

 

 

 

앙부르와즈 볼라르의 초상

 

의자에 앉아 약간 아래를 보는 볼라르의 모습을 어두운 갈색과 보라색의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강한 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커다란 오렌지색의 터치로 데생한 오른팔이 더욱 힘차다. 이 팔과 흰색 내의가 하이 라이트를 이루고 있고, 흰색 속에는 가지가지 엷은 색들로 되어 있다. 왼쪽 창문은 열려져 있고 오른쪽은 밝은 갈색으로 막연히 묘사하고 있다. 손목이나 팔의 윤곽이 잘되지 않았던지 선의 양쪽에서 물감이 쌓여 올라와 있다. 다른 부분은 물감이 엷고, 기름기 있는 터치가 시원하다. 얼굴 역시 큰 터치로서 작은 면들을 집적(集積)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비교적 큐비즘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제작에 대해서는 볼라르 자신의 저서 '풀 세잔' 중에서 매우 회의적으로 말하고 있다.

 

 

 

 

숲 속의 바위

 

 

 

붉은 바위

 

밝고 소리하나 없는 어느 남 프랑스의 풍경이다. 비베뮤 돌 채취장 근처로 짐작된다. 하늘은 푸르고 대지나 바위는 강한 오렌지색이며, 수목의 녹색 속에는 노랑·보라·붉은 색·흰색 등 갖가지 톤이 엉켜 있다. 태양의 강한 빛남으로 하여금 오히려 일종의 슬픔과 고독감이 감도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무 숲을 묘사하는 터치는 보다 규칙적이고 잦으며, 명암의 묘사는 전경이나 원경을 큰 변화 없이 반복시키고 있다. 그러나, 바위나 하늘의 부분 묘사는 오히려 큼직하고 자유롭게 이루어져 있다. <대수욕>이나, <생트 빅트와르 산> 같은 세잔의 화가로서의 지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작품들에 비하여, 이 작품에 있어서는 오히려 세잔의 눈에 띄지 않는 내면의 성격이나 의지가 보여진다.

 

 

 

 

생트 빅트와르 산

 

세잔의 수채화에 있어서는 만년에 이를수록 색채가 칠해지지 않는 부분이 많아 진다. 그러나, 작품이 전형적으로 보여 주듯이 그 여백의 부분이 훌륭한 표현력을 작용하고 있어, 어떤 의미로는 색채가 칠하여져 있는 것보다 더 웅변을 하고 있다. 산 전체를 앞으로 당겨서 잡았고, 연필의 옆 터치로서 산의 피부나 요철(凹凸)의 전 변화를 생략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어두운 부분에는 청색·보라, 밝은 부분에는 노란색을 칠했다. 색 수는 대략 이 세 가지 색에 국한되어 있으나, 그것들의 배색, 리듬, 여백과의 대화들로써 산이 형태와 양감들이 숨쉬고 있는 것을 느낀다. 잘 관찰해 보면 가볍게 연필 데생을 하고 그 위에 엷게 수채를 올려놓고 있다. 산 전체가 수정으로 되어 있는 것같이 투명하며 신선하고 더욱이 경쾌한 점은 지극히 희귀한 일이다.

 

 

 

 

 

쥬르당의 작은 집

 

1906년 10월, 세잔은 이미 이 작품에 손을 대고 있었다. 푸른색과 오렌지색의 명쾌한 대립으로 대충 그렸으며, 길이나 나무에는 붉은 색, 녹색의 보다 약한 대립도 주어졌다. 작은 집의 문과 허술한 부분에는 하늘 색과 같은 색으로 놓여져, 총합적 큐비즘에 있어서의 색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있으나, 세잔은 다시 그 위에 다른 빛깔들을 칠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면은 힘차고 명쾌함을 보여 주고, 제작도 반은 넘어서서 남은 작업은 세분의 처리나, 약간의 끝맺음 정도로 보여진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은 유화로서 최후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10월 15일, 제작 도중 화가는 비를 맞고 인사 불성이 되었다. 수일 후 세잔은 약간의 회복을 보아 수채로 바리에의 초상을 시도하였으나 끝내 계속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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