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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사리(舍利)'는 시신을 뜻하는 '사리라(?ar?ra)'라는 산스크리트어입니다. 원래 석가모니를 화장하고 난 뒤에 남은 유골과 잔류물을 의미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덕망 높은 고승들을 화장(다비)한 뒤에 유해에서 발견되는 결정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사리의 모양은 타원형, 원형, 다이아몬드형 등 다양하고, 색깔도 하얀색,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 등 여러 가지며,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개수를 셀 때는 과(顆)라는 단위를 씁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조계종 전 종정 성철 스님은 110여 과,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은 86과, 조계종 전 총무원장 정대 스님은 200여과, 태고종 종정 덕암 스님 242과 등 유명 스님들의 법구(몸)에서 많은 사리가 나왔습니다.
사리의 숫자에 따라 스님들의 수행의 깊이를 측정하는 듯한 세상의 시선에 불교계는 반발합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일부 고승들은 입적 후 자신의 사리를 수습하지 말도록 상좌들에게 명합니다. 2010년 3월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은 "다비 후 나의 사리는 찾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상좌(제자)들은 이를 꿋꿋하게 지켰습니다. 은허 스님은 "법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지 사리에 구현된 것은 아니다"면서 자신의 입적 후에 사리 수습을 못하게 했습니다.
사실 가장 의문인 점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찰이 가끔 눈에 보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해서 부처 대신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전국에 몇 개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런 절들이 상당히 많아 의문을 가진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전세계로 퍼졌는데 한국에만 유독 많은 것일까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몇 개인지를 떠나 사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밝혀진 바도 거의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가설이 있고, 그를 통해 추측할뿐 입니다.
사리는 불가에서 신앙과 금기의 대상입니다. 불가의 전통적인 장례방식인 다비식(화장)은 공개되지만 사리를 모으는 습속 과정 등은 일부만이 공개됩니다. 시신을 태우는 과정 등을 면밀히 관찰할 수가 없어 제대로 연구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리는 조개가 만드는 천연진주처럼 생성된다는 설이 있습니다. 조개의 몸 안에 모래알, 알, 기생충 같은 것이 들어가면 진주층과 같은 물질인 진주질(眞珠質)로 이것을 둘러싸면서 생기는 것이 천연 진주입니다. 그러나 조개의 진주가 한 알 생기는 것과 달리 사람의 몸에 생기는 사리는 많게는 수백에 달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사리는 몸의 신진대사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담석이나 결석이라는 의학계의 주장이 나름 설득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것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유기물질입니다. 이들 유기물질은 다비식 같은 고온의 불길에서 모두 연소되고, 뼈와 칼슘 성분으로 구성된 남겨진 무기물질들이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가진 사리라는 주장입니다.
정좌한 채 몇 년씩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영양 상태도 좋지 않고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결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결석이 있었다면 생전에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정상인데 사리가 나온 스님들은 입적 전까지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습니다.
특히 성철 스님의 경우 목 부위에서 수많은 사리가 나왔는데 이들이 모두 결석이라면 거동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어 이 주장 또한 증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적 검증을 위해서는 생전 몸속에 있던 담석에 표시를 한 뒤 다비식 후 습속 과정에서 표시된 담석을 확인해야 하는데 불가에서 이런 실험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995년 최초로 사리의 성분 분석이 이뤄졌습니다. 입적을 앞둔 한 스님이 사리가 나오면 유용한 일에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이 스님이 남긴 2과의 사리가 인하대 임형빈 박사에게 제공됐고, 이를 통해 연구를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편에서 사리의 성분과 신비에 대해 살펴봅니다.
///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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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 2]- 사리 비밀
다비식 후 자신의 법구에서 "사리를 찾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법정스님의 다비식 장면.[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사리(舍利)의 정체는 과학이 발달한 요즘도 여전히 의문입니다. 1995년 인하대 임형빈 박사팀이 최초로 사리에 대한 성분을 분석했음에도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몸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담석이나 결석이라는 의학계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낸 것만으로도 성과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리는 여전히 신비로 남았습니다.
임 박사팀이 당시 지름 0.5㎝ 정도 크기의 사리 1과를 분석한 결과, 사리의 성분은 전체적으로 뼈와 비슷하지만 방사능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과 리튬(Li)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티타늄,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칼슘, 칼륨 등 12종의 성분이 검출됐고, 경도는 1만5000 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만2000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 훨씬 단단했습니다.
당시 임 박사는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인데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면서 "특히 방사성원소인 프로트악티늄 등이 검출됐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방사선원소를 상온에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분 분석을 통해서는 증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연구팀 관계자는 "몸속에 있는 칼슘, 규소 등 금속이온이 산화하면 사리 같은 성분이 생길 수 있다"면서 "이렇게 본다면 일반인에게도 사리가 생길 수 있는데 특히 채소에 금속이온이 많은 만큼 채식을 하는 스님들에게서 사리가 나올 확률이 더 높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사리는 일반 화장을 통해서는 만들어지지 않고, 다비식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는 설도 있습니다. 일반 화장의 경우 짧은 시간에 섭씨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완전 연소시키기 때문에 사리가 녹아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비식 때의 온도와 각종 장치, 결과물 등을 일반 화장을 통한 결과물과 비교해봐야 하지만 과학자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나무로 태우는 다비식은 일반 화장과 달리 서서히 태우고 서서히 식히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이 사리 생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추측입니다.
고승들의 법구에서 발견되는 사리가 일반인들에게서 발견되기도 합니다.[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고승처럼 수행이나 구도자가 아닌 일반인의 몸에서도 사리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1994년 교통사고로 숨진 한 할머니의 시신을 화장하면서 사리가 발견됐고, 1995년 교통사고를 당한 육군 중위를 화장한 유골에서도 사리가 나왔습니다. 또, 2001년 서로 다른 불자의 몸에서 각각 사리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사리가 나온 고인이 대부분 불자였음을 들어 불교계는 수행이 사리를 만들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어떤 환경에서든 고온 용해를 하면 결정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2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화장을 하면 팥알 크기의 영옥(사리)이 수백 개나 나온다"고 반박하기도 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찰이나 종파마다 다비식의 방식이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도 항상 사리가 발견됐고, 더 놀라운 점은 화장을 한 시신에서만 사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상태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스스로 빛을 내는 방광(放光)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리 수가 늘어나는 분과 현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사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리는 과학으로 아직 밝히지 못한 불가사의한 현상입니다. 과학의 힘으로 사리의 신비가 밝혀지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덤으로 더...
요약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
유신(遺身)·신골(身骨)이라고도 한다. 사시(死屍) 또는 유골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응음의 玄應音義≫ 제6에는 “사리는 바로 설리라(設利羅)라고 하며 번역하여 신골이라 한다.”고 하였다.
사리는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형태에 따라 전신사리(全身舍利)와 쇄신사리(碎身舍利)를 말하고 있다. 즉 신체 자체로 볼 때는 전신사리이고 다비(茶毘)한 뒤의 신골은 쇄신사리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쇄신사리는 세골(細骨) 내지 흰 분말의 경우가 있으나, 북방불교 계통에서는 사리신앙이 더욱 신비화되어 둥근 구슬의 형태로 된 영골(靈骨)·영주(靈珠)로 인식되었다.
즉 황금색의 분말에서부터 진주와 같은 구슬에 이르기까지 다비 후의 유신(遺身)이 사리로 신봉되었다. 보통 불사리(佛舍利)를 으뜸으로 말하고 있으나 그 외 수행자의 유신인 고승의 사리 역시 신봉되어 탑을 만들기도 하였다.
대체로 이 같은 신골사리 외에 부처님의 교설인 불경이 법사리(法舍利)로서 신봉되어 신골사리와 함께 불탑(佛塔) 속에 봉안된다. 부처님의 신골을 진신사리(眞身舍利), 불경을 법사리,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僧舍利)라 하여 구분하고, 승사리를 봉안하는 곳은 부도(浮屠)라고 하여 뒤에 와서는 불탑과 다른 형태로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의 열반 뒤 그 제자들은 인도의 장례법에 의하여 유신을 다비하였더니 8곡 4두(八斛四斗)나 되는 많은 사리가 출현하여 이를 8국에 분배하여 봉안하였고, 그 뒤 아소카왕(阿育王) 때에는 팔만사천의 불사리탑을 건립하는 등 사리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또 ≪대당서역기≫에는 현장(玄奘)법사가 돌아올 때 여래의 육사리(肉舍利) 150립(粒)을 가져왔다고 하였으며, 의정(義淨)도 사리 300립을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서역으로부터 불골(佛骨)이 전해져서 사리신앙이 널리 행하여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549년(진흥왕 10)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불사리를 보내왔으므로 왕이 백관과 함께 흥륜사(興輪寺)에서 맞이하였다는 것이 사리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 뒤 안홍(安弘)이 진(陳)나라에 들어가서 법을 구하고 호승비마라 등과 함께 귀국할 때 ≪능가경 楞伽經≫·≪승만경 勝鬘經≫과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636년(선덕왕 5)에 당에 들어간 자장(慈藏)은 오대산 태화지(太和池) 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불정골(佛頂骨)과 치아(齒牙)사리 등을 받아서 645년(선덕왕 14)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왕에게 건의하여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오대산 중대에 적멸궁을 건립하고 그 지하에 정골을 봉안하였다. 그 밖에 월정사,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지리산 화엄사, 영월 사자사에 사리탑을 건립하였다.
751년(경덕왕 10)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에 사리를 봉안하였고, 그 뒤 신라 후기 및 고려시대에도 사리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조선 초기에도 사리에 관한 신앙은 왕실을 중심으로 매우 성행하였다. 태조가 대신에게 “사리가 어찌하여 생기느냐?” 하고 묻자, 하륜(河崙)이 “정기가 쌓인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을 수련하면 다 사리가 있습니다. 바다의 조개도 보주(寶珠)가 있고 뱀도 명월주(明月珠)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서 그런 구슬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자 왕이 웃었다고 하였다.
태조는 1393년(태조 2) 정릉 흥천사(興天寺)에 사리각(舍利閣)을 건설하고 7일 동안 기도하였는데, 그 때 사리 4매(枚)가 분신(分身:여러 개로 나뉨)하여 불당을 유동(楡洞)에 건립하고 사리를 봉안하였다. 그리고 1398년에는 명 태조가 황엄(黃儼)을 사신으로 보내어 사리를 구하므로 왕은 각도 감사에 명하여 사리를 구해 들이게 하였다.
충청도에서 45매, 경상도에서 164매, 전라도에서 155매, 강원도에서 90매를 모았으며, 또 태조가 가지고 있었던 사리 303매를 함께 주자 황엄이 고개 숙여 감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각 사찰에서 구한 것과 함께, 모두 800매를 도금한 금은합 속에 넣어 보냈다고 한다. 1415년(태종 15) 왕이 불(佛)의 진위를 실험하기 위해 승려 100명을 흥천사 사리각에 모아 기도하면서 사리의 분신을 기원하게 하였다. 1419년(세종 1) 태종이 흥천사 탑 안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석가 생존시 이[齒] 사이에서 나온 치사리 4매와 두골·패엽경(貝葉經) 및 가사 중에서 패엽경과 가사는 내불당(內佛堂)에 안치하고 두골과 치사리만 탑에 두었다고 하였다.
1446년 4월에는 광천사(廣天寺)에 있던 사리 10매를 내원당으로 가지고 와서 봉안하였다. 1450년(문종 1)에는 사리를 깊이 신앙한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사리탑을 조성하기 위해 시주를 얻으려 하다가 관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일도 있었다.
특히 세조 때에는 사리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이 많이 전하고 있다. 개성의 연복사(演福寺) 승려가 사리라고 진상한 함을 열어보니 좁쌀이었다고 한다. 1464년(세조 10)에 삼각산 장의사에서 사리가 분신하므로 백관이 서한을 올려 경하하였는데, 이 날 오색구름이 나타났다고 한다.
같은 해 5월에는 효령대군이 회암사(檜巖寺)에서 원각법회(圓覺法會)를 베푸는데 여래가 현상(現相)하고 탑이 방광하면서 채색구름이 공중에 가득하였으며, 사리가 수백 매로 분신하였다. 그리고 그 사리를 함원전(含元殿)에서 공양하는데 또 수십 매가 분신되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원각사(圓覺寺)를 세우고 이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 세조는 양평에 용문사를 중창하고 사리탑을 세웠으며, 양주에는 수종사(水鐘寺)를 창건하고 사리탑을 세웠다. 그리고 양양 낙산사에서 37일 기도하는데 공중에서 사리 4매가 떨어지므로 낙산 해안 홍련암(紅蓮庵)에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세조가 세운 사리탑은 수십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 뒤에도 사리신앙은 매우 성행하였으며, 불상에 대한 신앙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대한 신앙이 매우 강하였다. 근년에는 경상남도 사천다솔사(多率寺) 후불탱화에서 사리 수십 매가 나오고, 경기도 양주군보광사(普光寺) 후불탱화에서도 수십 매의 사리가 나왔으며, 구미도리사(桃李寺) 부도탑에서도 세존사리 1매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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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유골, 특히 부처나 성자의 유골을 의미하며 그 의미가 전용되어 현재는 스님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난 후 유골에서 추려낸 구슬 모양의 작은 결정체를 가리킨다. 전기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입멸하자 그 유골을 8등분하여 각지에 탑을 세워 그 속에 안치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불탑의 시초이다. 흔히 사리의 양과 수행의 정도가 비례한다고 믿는 것은, 사리가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매우 얻기 어렵고 으뜸인 복전이라고 설한 〈금광명경〉에서 유래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549년(진흥왕 10) 양나라 사신이 불사리를 가져와 왕이 백관에게 흥륜사 앞길에서 봉영하게 했다는 기록이 최초이다. 이후 황룡사·월정사·정암사·통도사·화엄사 등에 사리탑을 세웠는데 사리 신앙은 계속 이어져 여러 사찰에서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이것이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유골, 특히 부처나 성자의 유골을 의미하고, 다시 그 의미가 전용되어 현재는 스님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난 후 유골에서 추려낸 구슬 모양의 작은 결정체를 가리킨다. 사리를 숭배하는 신앙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는데, 인도 불교의 초기부터 성행했던 불탑 숭배도 사리 숭배와 같다. 전기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입멸하자 그 유골을 8등분하여 각지에 탑을 세워 그 속에 안치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불탑의 시초이다.
나중에 아소카 왕은 8개의 탑 중 7개의 탑으로부터 유골을 모두 모아 다시 세분하여 8만 4,000개의 탑을 인도 각지에 건립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에 연유하여 사리를 숭배하고 공양하는 신앙이 사리탑을 건립하는 등의 형태로 아시아의 불교국에서 널리 성행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사리(佛舍利)를 상징하는 다른 것으로 대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따라 사리를 구분하여 석가모니의 유골을 생신사리(生身舍利) 또는 신골사리(身骨舍利)라 하고, 그의 가르침을 사리에 비유하여 법신사리(法身舍利)라 한다. 종종 경전을 탑에 안치하는 예가 후자의 경우이다. 또 시신 자체를 가리키는 전신사리(全身舍利)와 유골 또는 거기에서 나온 낱알의 결정체를 가리키는 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하기도 한다. 흔히 사리의 양과 수행의 정도가 비례한다고 믿는 것은, 사리가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매우 얻기 어렵고 으뜸인 복전이라고 설한 〈금광명경 金光明經〉에서 유래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549년(진흥왕 10) 양나라 사신이 불사리를 가져와 왕이 백관에게 흥륜사 앞길에서 봉영하게 했다는 기록이 최초이다. 이후 황룡사·월정사·정암사·통도사·화엄사 등에 사리탑을 세웠다. 751년(경덕왕 10)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에 사리를 봉안했다.
사리 신앙은 계속 이어져 여러 사찰에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사리 수습은 승려의 장의(葬儀) 습관과 관계가 깊어 다비를 마친 다음 사리를 찾는다. 이같은 풍습은 조선의 서산대사 이래 커다란 특색으로 등장했다. 보통 사찰에 가면 한적한 숲속에 반드시 부도가 있고, 석종형의 부도 속에는 사리를 모신 것들이 빽빽히 서 있다. 석종형의 부도 표면에는 승려의 사적을 기록했다. 즉 모사(某師)가 모년 모월 모일(某年某月某日)에 입적하여 다비한 뒤, 사리 몇 개를 얻어 삼가 이 부도에 넣고 건립했다는 기록이다. 이렇듯 사리는 신앙의 대상으로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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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대 고승 가운데 사리가 나온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1993년 조계종 성철 종정 다비식에서 200여과(顆)에 달하는 사리가 나왔다고 발표됐다. 이 숫자는 석가모니 이래 가장 많은 사리라고 알려진다.
반면에 공덕이 많은 스님 중에는 입적 후 자신의 사리를 수습하지 말도록 명하기도 한다. 2010년 3월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은 ‘자신의 몸에서 사리를 찾지 말라’고 하여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고, 은허 스님은 ‘법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지 사리에 구현된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입적 후에 사리 수습을 못하게 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 발표하는 사리에 대한 내역을 보면,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라고 알려진 것만 해도 그 양이 너무 많다는 말도 있고, 사리를 비밀리에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입적한 큰 스님의 다비 후에 찾을 수 있다는 사리는 과연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것일까?
사리는 ‘신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리라(Sarira)’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소리나는 대로 사리라(舍利羅)라고 했다가 줄여서 ‘사리’라고 부르게 됐다. ‘몸’을 의미하는 사리라는 복수형으로 되면 신골, 유골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에 사리는 인체를 화장하고 난 뒤에 남겨진 뼈 전체 또는 가루가 된 뼛조각까지 폭넓게 포괄하기도 한다. 사리는 다비 전의 전신사리(全身舍利)와 다비 후의 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되는데, 다비 후 나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은 쇄신사리를 뜻한다. 사리는 크기도 다양하지만 색깔도 황금색, 검은색, 붉은색, 흰색 등이 뒤섞여 영롱한 빛깔을 띤다.
그런데 사리는 단순히 죽은 자의 몸을 가리키거나 또는 그 뼈를 부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처를 향한 믿음이 충만한 불자들의 몸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그 의미를 엄격하게 축소시켜 사리의 의미를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사리에 대한 의구심은 사리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실 이 질문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사리가 일반적으로 불교라는 종교에 접목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사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자들이 사리에 대한 궁금증을 그대로 둘리 만무하다.
제일 먼저 조개가 만드는 천연진주와 같은 역할이라는 설이 있다. 조개의 몸 안에 모래알, 알, 기생충 같은 것이 들어가면, 진주층과 같은 물질인 진주질(眞珠質)로 이것을 둘러싼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 천연 진주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생기는 사리와 진주가 유사하다는 해석은 한 사람의 몸에서 수많은 사리가 생기는 것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면 의학계에서는 사리를 몸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담석이나 결석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것은 대부분 유기물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이들 유기물질은 다비식 같은 고온의 불길에서 모두 연소된다. 불길 속에서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무기물로 이루어진 뼈와 약간의 칼슘 성분으로 구성된 오색영롱한 사리뿐이라는 설명이다.
의학계에서는 정좌한 채 몇 년씩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영양상태도 좋지 않고 신진대사가 원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리가 결석이라면 스님이 살아 있을 때 매우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함에도, 사리가 나온 스님이 입적하기 전까지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다. 성철 스님의 경우 목 부위에서 수많은 사리가 나왔는데 이들이 모두 결석이라면 거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액 축적설도 있다. 정액 축적설은 성생활을 하지 않고 참선으로 평생을 수행한 스님을 화장할 때 사리가 나온다고 알려진 통설이다. 하지만 여승이나 평범한 불자로부터 다량의 사리가 나온 사례도 있어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여하튼 사리가 수습되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 사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추출한 유기물이나 무기물을 고열로 처리해보면 무언가 단서가 잡힐 것이라며 실험해봐야 사리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반면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사리를 굳이 과학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사리에 대한 분석이 사리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손상을 줄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드디어 사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도됐고 인하대의 임형빈 박사가 ‘백금요법연구회’로부터 사리 1과를 분석해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회는 1993년 말 입적한 경기도 평택 모 사찰의 한 고승으로부터 수습된 사리 2과를 제공받아 이를 임형빈 박사에게 제공했다. 그 고승은 사후 사리가 나오면 이를 유용한 일에 써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임 박사는 제공받은 2과의 사리 중 1과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해 티타늄,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칼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불소, 산화규소 등 12종이 검출됐다. 사리의 성분은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사리의 굳기, 즉 경도는 1만 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만 2,000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특히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이고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
단 1과의 사리를 분석한 것이지만 임 박사는 사리가 결석이라는 주장을 단호히 배제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뼈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발견됐고, 사리의 강도가 강철보다도 단단했다는 점이다.
용융점이 1,200도를 넘는 프로트악티늄과 티타늄은 고온에서 녹는 물질이라 발견될 수 있다. 하지만 용융점이 186도인 리튬은 저온에서도 녹아버리므로, 다른 원소와 결합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방사성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등이 검출됐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원소를 상온에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적어도 불교계에서 사리라고 발표되는 것에는 그 어떤 신비가 들어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미래의 어느 날이 되면 인간의 지혜로 이런 미스터리도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종호 과학칼럼니스트
===================덤으로 더 더 더 더...
▲ 석가탑에서 나온 석가모니 진신사리 ...
♡ 다비와 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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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더 더 더 더 더...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사리(舍利)란 무엇?
현대의 과학적인 분석으로는
사리란 인체가 화장되면서 인간의 단백질, 인등이 타며 탄소가 되어서 둥근형태의 돌을 말하는 것.
불가에서는 덕이높은 스님(고승)이 더 많이나온다고 하지만 사실 스님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화장시 종종발견되며 단순한 탄소성분의 돌입니다.
최근에는 뼈나 사리를 엄청난 압력을 가해서 조그마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준다고도 함.
아래는 사리와 관련된 이야기 13가지
1. 불교의 사리는 Sarira(사리라)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왔고, 몸이라는 뜻임
2. 사리는 진신사리와 승사리로 나뉘어 짐. 진신사리는 석가모니 화장후 남은 뼈,치아등이고,
승사리는 중을 불교식으로 화장한 후 발견되는 결정체임.
3. 진신사리는 졸라 많음. 석가모니가 죽고 화장을 했는데, 8개 부족이 뼈와 이빨을 분빠이 함.
이게 메인 8대 사리탑임.
추가로, 화장후 남은 재를 모라족이라는 찌질한 부족이 가져가 재탑을 세웠고,
드로나족은 유골을 담았던 병을 가져다 병탑도 세움.
4. 아소카왕 이라는 사람이 인도를 최초로 통일했는데 불빠임.
8개 사리탑을 발굴한 다음 사리를 84,000개로 나눠서 전국에 열라 많은 탑을 세움.
이중에 19개가 중국으로 감.
5. 84,000개중 일부가 다시 추가로 새끼를 침. 신라 자장이라는 스님이
중국 태화지라는 절에서 뼈하고 이빨사리를 100개정도 얻어서 645년에 귀국을 함
이빨사리로는 황룡사 9층탑을 세웠고, 뼈사리는 양산 통도사를 만들어 보관하고,
일부를 다시 몇군데 절에 나눠 멀티를 뜀.
6. 이들을 5대 보궁이라고 하고, 메인 뼈사리가 있는 양산 통도사는 사리 보관탑을
금강계단이라고 칭하고, 원조사리가 있으니 불상은 필요없다며 대웅전에 불상을
안만드는 사리부심을 보여줌.
7.절에 가면 부도라고 하는 탑들이 있음. 스님들이 죽으면 나온다는 승사리를 넣어두는 탑임.
8.사리에 대해서 몇가지 설들이 있으나 현재의 유력설은 본차이나설임.
스님들이 금욕생활을 해서 졍액이 사리가 된다는 설은 깨짐. 한국 최고 사리왕은 조기순할머니임.
1994년에 경남고성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화장을 했는데, 무려 413개의 사리가 나옴.
불교신자도 아니고 무교임. 여성에게서도 사리가 나옴으로 정액 사리설은 폐기됨.
그리고, 알다시피 정액은 쌓이면 몽정으로 다 나옴.
9.두번째 설이 몸에서 만들어지는 결석이라는 설임. 이것도 깨짐. 결석은 칼슘,망간,인으로 되어 있는데
고온에서 타버림. 그리고, 단단함이 사리보다 많이 약함.
10. 현재 한가지 남은 설이 본차이나 설임.
11. 영국에서 소뼈 30%에 흙을 섞어서 도자기를 구우니 엄청 단단한 도자기가 나옴.
뼈가 들어갔다고 해서 본차이나라고 부르며 명품도자기급이 됨.
다비를 하는곳 바닥이 흙이고, 나무를 태운 재와 고온에 녹은 뼈의 성분이 서로 반응해서
결정을 이루는게 사리 라는설이 유력해 짐.
12.일반 화장은 1100~1200정도인데, 참나무 장작을 이빠이 놓고 태우면
중심부는 1600도이상 올라간다고 함. 주로 불교식 화장에서 사리가 나오는 이유 같음.
가부좌나 정좌를 오래 해서 혈액순환이 잘 안된 몸과 불교식 초고온 화장방식의 결합이 아닌가 싶음.
참고로 성철스님은 15년간 앉아서 잠을 잤다고 함.
13. 사실 사리를 고승의 아웃풋으로 삼는것은 문제가 있음.
일부 고승들은 죽은 뒤 사리가 안나올까봐 스트레스가 많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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