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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모나리자"의 화장법?...
2019년 11월 27일 09시 56분  조회:3397  추천:0  작성자: 죽림
ㆍ르네상스 마스크팩

르네상스 시대 여인들은 오늘날 마스크팩이라 할 만한 미백용 팩을 만들어 사용했다. 동물성 기름이 주로 사용된 그 팩은 당시 화장품 속 납 성분의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중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의 모델인 리자 게라르디니는 수녀원에서 얻은 달팽이점액 추출물을 함유한 마스크팩을 붙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점성가이자 예언자인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가 ‘화장법’에 관한 글을 썼다. “치아를 검게 하지 않고 얼굴을 희게 하는 화장품” 이야기였다. 그를 프랑스 궁정으로 초빙한 사람은 셔벗, 과실주, 파라솔, 포크, 하이힐, 마카롱 등을 프랑스에 전달한 여인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프랑스 왕비가 되었으며 남편이 죽고 세 명의 아들이 차례로 왕이 되는 동안 섭정을 했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1519~1589)다. 그녀는 앙리 2세(1519~1559)와 결혼해 프랑스에 자신의 미용사를 대동하고 와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식 화장법을 전파했다. 남편을 이어 첫째아들마저 죽자 겁먹은 그녀는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노스트라다무스를 궁정 의사로 초빙했다. 바로 그 예언가가 하필 화장품, 그것도 치아를 검게 하지 않는 화장품에 대해 말했다.

■ 르네상스 여인의 치아는 왜 까맸을까

중세의 속박이 느슨해지고 여성들의 화장이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다. 그런데 그 르네상스 여인들은 치아까지 검게 화장했다는 오해가 있었다. 사실은 화장한 것이 아니라 치아가 검게 변색된 것이다. 얼굴에 칠했던 분에 납과 같은 중독 성분이 많아 치아에 흡수돼 쌓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여인들, 하얀 피부 갈망

수은·납 성분 섞인 분으로 화장

독성물질 쌓이며 치아 까맣게 변해


르네상스 시대에 이상적인 미녀는 얼굴이나 살갗, 손가락이 하얗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검은 벨벳으로 된 가느다란 리본을 이마에 늘어뜨리면서까지 얼굴이 대조적으로 희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화장품은 은과 수은, 납 가루와 백반을 섞고, 유향을 씹었을 때 고인 침으로 그것을 묽게 만들어 빗물 속에서 끓인 뒤, 발생하는 연기를 식혀 만들어졌다.

납은 몸속에 축적돼 치아와 뼈를 검게 만들고 백반은 치아가 힘없이 빠지게도 했다. 이런 독성물질을 함유한 화장품이 프랑스와 영국에까지 전해지면서 이후 많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서 의사였던 노스트라다무스가 치아를 검게 하지 않는 화장품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중세에 꺼렸던 화장품이 유럽에서 다시 사용됐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납 가루의 중독성이 밝혀지자 베네치아 여인들은 그 독성을 중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지금이야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해결되지만 당시는 그럴 수 없는 시기였기에, 해독 정보가 필요했던 르네상스인들은 다시 고전을 살폈다.

특히 르네상스인들이 관심을 가진 책은 고대 로마의 플리니우스(24~79)가 저술한 <박물지>였다. 이 책은 플리니우스가 464명의 작가가 쓴 2000여권의 책을 읽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약 2만개 항목을 37권으로 정리한 백과사전이었다. 르네상스인들은 그 책에서 ‘얼굴 화장품(Medicamina faciei)’이라는 항목을 발견했다. 약을 의미하는 영어 ‘medicine’의 고대 라틴어는 약품만을 의미하지 않고 화장품까지 포함했다.

■ 로마시대 화장법에서 마스크팩을 찾아내다

로마시대 화장법서 해독정보 찾아

플리니우스 책에 소개된 피부 덮개

가면 쓴 것처럼 보여 ‘마스크’라 불러

오비디우스의 동물성 기름에도 관심

송아지 생살 저며 얇은 팩 만들어


플리니우스는 1세기의 이상한 메이크업을 소개한다. 벌꿀, 콩과 보리 가루, 달걀, 포도주의 앙금, 녹용 가루, 수선화 뿌리를 반죽해 얼굴에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피부의 미백을 유지하는 일종의 덮개였다.

르네상스 여인들은 이것을 보고 전해져 내려오는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네로 황제(54~68년 재위)의 아내 포파이아 사비나(30~65)가 사용했다는 ‘포파이아 마스크’다. 지방, 벌꿀, 곡물 가루를 반죽한 두꺼운 팩으로, 얼굴에 올리면 가면을 쓴 것처럼 보여서 당시 사람들은 ‘마스크’라 불렀다고 한다.

포파이아는 네로가 로마를 비우면 며칠 동안 밤낮 없이 반죽을 얼굴에 올리고 있었고, 네로가 돌아올 때까지 그것을 떼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녀의 살결이 진주나 비단처럼 고운 색채를 띠고 있었기에 이 마스크가 로마에 크게 유행하게 돼 남편들은 밤마다 부인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됐다. 그 정도로 유명했던 마스크가 베네치아 여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르네상스 여인들은 ‘포파이아 마스크’를 활용해 납 성분을 해독하는 새로운 마스크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떤 성분의 팩을 만들어야 할까? 르네상스인들은 또 고전에서 ‘재발견’하는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도 플리니우스보다 이전 사람인 오비디우스(BC 43~AD 17)의 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변신 이야기>의 작가 오비디우스는 <사랑의 기술(Ars amatoria)>과 <여인의 얼굴 화장품(Medicamina faciei femineae)>에 메이크업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기록했다.

당신은 분을 발라 희게 할 줄 알지요. 창백한 혈색도 화장술로 붉게 하죠. 숱이 적은 눈썹은 기술적으로 그려 넣고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양쪽 볼에는 연지를 찍지요.(오비디우스, <사랑의 기술>에서)

요즘과 같은 ‘치크 블러셔’가 없었기 때문에 고대 로마 여인들은 연지를 열심히 찍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지(aluta)’는 ‘컴프리(Comfrey)’라는 약초로 상처 부위에 바르면 효험은 있지만 피부에 자극을 가해 그 주위를 붉게 만들었다. 이렇게 자극받아 벌겋게 된 민감한 피부에 로마 여인들이 ‘양모기름(oesypum)’을 사용했다고 오비디우스는 전한다. 양모기름은 피부에 자극적이지도 않고 흡수가 잘돼 피부연화제나 자극완화제로 쓰였다. 오비디우스는 미인들이 이 기름으로 만든 액체를 하루에 몇 번씩이나 몸에 발랐다고 전한다. 결국 르네상스 여인들은 오비디우스에게서 힌트를 얻어 마스크의 성분으로 동물성 기름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 시각에서 보니 플리니우스의 저서에도 동물성 약품(화장품)을 말한 곳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송아지 기름을 리넨천에 싸서 얼굴에 얹으면 미백과 주름 개선, 상처 완화, 햇볕에 자극받은 민감한 피부와 건조해진 입술 개선에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르네상스 여인들은 완전히 다른 개념의 해독용 마스크팩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더 이상 올리지 않고 얇은 동물성 팩으로 얼굴에 붙이는 것이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베네치아 여인들은 송아지 생살을 얇게 저민 것으로 가장 효과적인 팩을 만들었다. 천연성분의 곡물이나 흙을 반죽해 올리는 팩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요즘처럼 간편히 붙이는 마스크팩의 역사는 이렇듯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됐다. 하지만 르네상스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 모나리자의 달팽이점액 추출물

르네상스에 있었던 증류법의 발전을 통해 마스크팩에는 이제 갖가지 성분이 들어가게 된다. 꽃잎뿐만 아니라 동물성 원액도 포함된다. 추출물에 함유된 단백질, 즉 콜라겐, 엘라스틴, 케라틴 및 점액 다당류를 마스크팩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전 시대에는 반죽을 통해 시트지를 얼굴에 깔고 그 위에 덮어야 했지만 꽃잎 에센스를 팩에 흡수시키면서 향을 낼 수도 있었다.

증류법 발전으로 갖가지 성분 추출

모나리자 모델로 알려진 리자 부인은

달팽이점액 추출물 얼굴에 바르기도


점차 완성을 향해 가던 르네상스의 마스크팩 중 가장 특이한 것은 달팽이점액 추출물이 함유된 것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리자 게라르디니(1479~1542)는 달팽이를 껍질이 녹을 때까지 고아서 거기에 레몬즙과 포도즙을 가미해 만든 에센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피렌체의 부유한 직물 상인의 아내였던 리자, 즉 ‘모나 리자(리자 부인)’의 은은한 미소는 ‘달팽이점액-마스크팩’의 효과로 만들어진 흐뭇한 미소일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리자 부인이 달팽이점액을 얻은 곳은 성 우르술라 수녀원이었다. 리자는 이 수녀원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달팽이의 신비한 추출물을 얻고 관대한 기부를 했다고 전한다. 여성들이 화장을 시작하자 보수적이던 수녀원에서도 화장품을 만드는 시대가 르네상스였던 것이다. 이 밖에도 르네상스 초기 인문주의자로 알려진 레온 알베르티(1404~1472)의 <아밀라>, 여걸이었던 카테리나 스포르차(1463~1509)의 <실험> 등 메이크업과 관련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재생’ ‘부활’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고전의 재발견’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르네상스 사람들은 플라톤이나 키케로가 저술한 책만을 재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 일상이 현실에서 새롭게 부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샅샅이 뒤지고 또 그런 책들을 저술한 것이다.

16세기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클루에가 그린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초상화(1580년경).

■ 회복을 향한 열망

전쟁·전염병 쓸고간 르네상스 시대

재생·부활의 열망 담긴 마스크팩은

‘회복을 향한 몸부림’이었던 것


미용, 화장법, 성형 등을 뜻하는 영어 ‘cosmetic’은 ‘질서’ ‘조화’ ‘세상’을 뜻하는 그리스어 ‘코스모스’의 형용사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혼란을 뜻하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만드는 것이 코스메틱의 원래 의미다. 십자군전쟁과 흑사병으로 이탈리아 인구의 3분의 1을 잃은 직후 르네상스인들 마음에는 파괴되고 상처 입은 세상을 회복하려는 열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질서’와 ‘조화’를 불어넣어 ‘세상’을 회복하려는 르네상스인들 이야기는 화장품이라는 그리스어의 뜻과 그 맥을 같이한다. 르네상스 여인들에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추구가 있었다. 그러다가 얻게 된 납중독, 비록 치아는 검게 변색됐지만 또 회복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건강이 필요했고 치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모든 것을 동원해 들춰보고 수소문하며 오랜 시도 끝에 만들어낸 마스크팩, 그것은 회복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구체적 실천의 하나로서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이며 회복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의 마스크팩에는 ‘재생’과 ‘부활’의 열망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보다 책도 많고 정보도 많고 수명도 길어진 오늘날, 르네상스와 크게 차이 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는 당장 나 자신부터 회복을 향한 열망이 없다. 변색되고 찢기고 터졌는데도 회복과 재생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상처와 결핍에 민감한 적이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애써 포기하고 순응하며 산다. 그러다 보니 상처가 곪고 있는데도 둔감하거나 무감각한 사람들이 된다. 돌같이 딱딱한 마음이 되었다. 감동도 없고 눈물도 없고 미소마저 사라졌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주의자들의 ‘문예부흥’이나 ‘고전의 재발견’ 이전에 회복의 열망이 먼저 돋아나고 있었다.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전쟁과 전염병의 지울 수 없는 생채기에 새살이 돋듯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감기에라도 걸렸다가 회복될라치면 그동안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던 입맛부터 되살아난다. 관심 없었던 하늘이 갑자기 푸르고 드높은 것으로 보인다면 기력이 회복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세상의 색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마냥 아름다워진다. 상처 때문에 겁부터 먹고 닫아뒀던 감각의 문이 비로소 열리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는 재생을 향한 감각이 불 일 듯 열리는 시기였다. 오늘 밤에는 마스크팩 하나 가만히 붙이고 그 ‘재생’의 꿈을 꾸고 싶다. 회복을 향한 르네상스인들의 열망을 진정 닮고 싶다.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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