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돼지들에게'개정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시인은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시집 『돼지들에게』(이미출판사) 개정증보판 출간기념 기자 간담회를 갖고 오랫동안 논란이 된 ‘돼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2005년 그 전쯤에 만난 어떤 문화예술계 사람. 그가 돼지의 모델”이라며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 있고 한 자리를 차지한 인사”, “승용차와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온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이어 “2004년쯤 이 인사를 만났는데 성희롱까지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이었다며 당시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최 시인은 “그를 만난 뒤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불러내고서 뭔가 기대하는 듯한 나한테 진주를 기대하듯”이라며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마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이런 시를 쓰도록 동기를 제공한 사람이고, 첫 문장을 쓰게 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으나 언론 보도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1987년 ...때 후보 캠프에서도 성추행 있었다”
최 시인은 1987년 ...선거 기간 한 진보 측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면서도 성추행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선거철 24시간 합숙하며 겪은 일들이라고 했다. 그는 “한 방에 스무명씩 겹쳐서 자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었다”면서 “나에게 뿐만 아니라 그 단체 안에서 심각한 성폭력이 있었다”고 했다. 또 선거 캠프에는 학생 출신 외에 노동자 출신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이 성추행 현장을 목격하며 회의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당시 ‘선배 언니’에게 상담도 요청했지만 “네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참아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최 시인은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어느 교수’와 술자리를 가진 뒤 함께 탄 택시 안에서도 성추행을 당했다고도 털어놨다.
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는 이른바 ‘진보의 위선’을 고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착한 여자의 역습’, ‘자격’ 등 신작 시 3편을 추가했다.
이 가운데 ‘ㅊ’은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고은 시인과의 소송 사건과 연관이 있어 원래 시에서 제목 등을 바꿨다고 했다.
최 시인은 지난 2017년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의 불씨를 던졌다. 이 사건으로 고 시인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으나 지난해 11월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고 시인이 상고를 포기하며 3년여간의 법정 다툼은 마무리됐다. 그는 신작 시 ‘ㅊ’에 대해 “(소송이) 다 끝났지만, 상대측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최근 이상문학상 거부 사태에 대해 “뿌듯하다. 미투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단이 정말 깨기 힘든 곳인데, 여성 작가들이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이었다”며 “‘세상이 조금은 변화하는구나, 약간은 발언하기 편하도록 균열을 냈구나, 내 인생이 허망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민정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