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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력사의식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20년 03월 01일 13시 25분  조회:4463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홍범도

 

 ]

이칭별칭 기타 홍범도()
유형 인물
시대 근대
출생 - 사망 1868년(고종 5) ~ 1943년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평안북도 양덕
성별
관련사건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대표관직(경력)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정의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홍범도(). 평안북도 양덕 출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전국적인 의병봉기에 자극을 받고 있던 중, 이 해 9월 일제가 민중의 무장투쟁을 약화시키기 위해 「총포급화약류단속법()」을 공포, 포수들의 총을 회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크게 분노하여, 11월 차도선()·태양욱()과 산포대()를 조직하여 의병을 일으킨 뒤, 북청의 후치령()을 중심으로 갑산()·삼수()·혜산()·풍산()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 수비대를 격파하였다.

1910년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간도로 건너가 차도선·조맹선() 등과 포수단()을 조직하였다. 이후 교포들에게 광복사상을 고취하며 국내와 연락, 애국지사 소집과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3~6월 사이 대한독립군을 창설했다.

같은 해 8월, 2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 혜산진·갑산 등지의 일본군을 습격,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에 자신감을 갖고 정예부대를 인솔, 다시 압록강을 건너 강계() 만포진(滿)을 습격한 뒤 자성에서 3일 동안 일본군과 교전하여 70여 명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1919년 3·1운동 후 동만주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간도대한국민회()를 결성하자, 1920년 5월 합작하였다. 간도대한국민회와 대한독립군의 합작 군사조직으로 제1군사령부가 결성되었고 홍범도는 정일 제1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20년 5월 27일 북로사령부로 개명되었고, 이후 최진동()이 지휘하는 도독부()와 통합하였다. 최진동이 독군부 부장, 안무가 부관, 홍범도가 북로제1군사령에 임명되었다. 확대 개편된 500여 명의 대부대로 국내 진입작전을 감행하였다.

1920년 6월 최진동과 협력하여 종성() 삼둔자() 부근에서 국경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120명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올렸으며, 두만강 대안의 봉오동()에서 일본군 대부대를 전멸시키는 큰 성과를 올리니, 이것이 유명한 봉오동전투이다. 또한 같은 해 10월 청산리전투에서도 제1연대장으로 참가, 제2연대장 김좌진(), 제3연대장 최진동 등과 함께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거듭한 일본군이 계속해서 추격해 오자 독립군조직을 총망라,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부총재에 선임되었다. 그 뒤 간도지방의 김좌진·최진동부대와 함께 노령()으로 이동, 흑룡강 자유시()를 새로운 근거지로 삼고 러시아군과 교섭하여 협조를 얻었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당의 배반으로 무장해제 된 뒤 많은 단원이 사살되거나 포로가 되는 등 이른바 자유시참변을 겪게 된다.

이 사변 이후 1922년 고려공산당과 한족공산당이 통합하여 조직한 고려중앙정청()의 고등군인징모위원에 임명되었다. 1937년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의하여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되어 이곳에서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가 1943년 76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매천야록(梅泉野錄)』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東文社書店, 1946)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 『독립운동사』1·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3)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7)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관련이미지 18

홍범도

홍범도

원본보기

출처: Wikimedia

[네이버 지식백과]홍범도 [洪範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서거 77년 만에 고국 땅 묻히는 홍범도 장군

 
세계일보님의 프로필 사진

세계일보

 

 

2020.03.01. 

 
 
 
 
카자흐스탄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묘지. 1943년 서거 후 7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제101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안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가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인 가운데 문 대통령은 국가보훈처에서 신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두 전투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취지의 특별 지시를 내릴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홍범도 장군이 주도한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이 합작한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에 각각 벌어졌으며 나란히 올해 100주년을 맞는다.

문 대통령은 이날 3·1절 기념사에서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3·1 독립운동이 만들어낸 희망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싶다”며 “오늘 저는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가속화하던 1907년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포수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 일제에 맞서 싸웠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부하들을 이끌고 중국 만주의 간도로 건너가 독립군을 조직하고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냈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4개월 뒤에는 김좌진 장군을 도와 청산리 전투도 대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군을 이끌던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소련 정권의 고려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고 사후 그곳에 묻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홍범도 장군 유해를)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이라며 “협조해주신 카자흐스탄 정부와 크즐오르다 주 정부 관계자들, 장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묘역을 보살펴오신 고려인 동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해 특히 카자흐스탄 측에 고마움을 전했다.

홍범도 장군과 늘 함께 거론되는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묘소는 충남 보령에 있으며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73호로 지정돼 있다. 김좌진 장군의 고향은 충남 홍성이다.

김좌진 장군의 경우 청산리 전투 후에도 중국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30년 1월 *****에 의해 암살당했다. 김좌진 장군이 워낙 투철한 반*주의자이다보니 **진영의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좌진 장군의 유해는 장례 절차 후 동지들에 의해 비밀리에 고국으로 운구, 임시로 안장됐다가 1957년 지금의 묘지로 이장됐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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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 발표한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정부의 숙원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독립유공자인 계봉우, 황운정 지사의 유해를 봉환하면서 홍 장군의 유해 봉환도 추진했다.

 

 

하지만 홍 장군의 유해는 지난해 돌아오지 못했다. 분단의 현실과 장군의 묘역이 여전히 동포 사회의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정부는 당시 “홍 장군의 유해도 봉환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군의 유해 봉환은 1992년 우리나라가 카자흐스탄과 국교를 맺은 뒤부터 추진됐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지만, 북한은 카자흐스탄 정부에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란 점을 들어 연고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카자흐스탄 정부나 동포 사회는 남북 사이에서 장군 유해 봉환에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장군이 여전히 카자흐스탄 동포 사회에서 정신적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있었다. 고려인들은 크질오르다에 장군의 묘역을 조성하고 장군을 민족 지도자로 기린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1994년 ‘홍범도 장군 거리’를 선포할 정도로 장군을 존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해 봉환에 가장 동의가 필요한 장군 후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 점도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홍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나 의병 투쟁에 몸을 던졌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에 올라 간도와 연해주에서 일제와 싸웠다. 3·1 독립운동 이듬해에는 독립운동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다. 하지만 장군은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정책 탓에 연해주에서 크질오르다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장군은 이후 움막집에서 살며 고려극장 경비 생활로 생계를 이을 만큼 힘든 말년을 보내다가 75살로 숨졌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겨레신문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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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 홍범도 장군
유해 모셔온다"

2020.03.01 

 

[제101주년 3·1절 기념식]
文대통령,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 때 洪장군 유해 봉환 소식 전해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 국가 존재가치 일깨우고 선열 애국심 되새기는 계기 되길"
 
홍범도 장군/반병률 교수 제공
홍범도 장군/반병률 교수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일 3·1절을 맞아 청산리 전투와 함께 항일(抗日) 무장독립운동사의 대표적 전승(戰勝)으로 꼽히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안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이뤄질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홍 장군을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101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3·1독립운동이 만들어낸 희망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싶다"면서 "오늘 저는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이라며 "협조해주신 카자흐스탄 정부와 크즐오르다 주 정부 관계자들, 장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묘역을 보살펴오신 고려인 동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이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가치를 일깨우고 선열의 애국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이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갈 힘을 키우는 일"이라며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홍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경과에 대해서는 "1920년 1월 13일,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대한독립군 홍범도 의용대장의 권고문을 실어 무장투쟁의 정당성과 국토회복을 위한 각오를 다졌다"며 "1월 30일에는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서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될 76명의 졸업식이 열렸다"고 했다. 이어 "그해 6월, 우리 독립군은 일본군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로 전면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며 "바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였다. 임시정부는 이를 독립전쟁 1차 대승리라 불렀다"고 했다. "1920년 3월,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독립군 북로군정서와 체코군 간에 무기 매수계약이 이뤄졌다"며 "9000명의 인간사슬로 연결해 운반해온 이 무기들이 10월 ‘청산리 전투’ 승리의 동반자가 되었다"고 했다.

홍 장군은 1907년 의병이 일어나자 포수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며 일제에 맞서 싸웠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부하들을 이끌고 간도로 건너가 독립군을 조직하고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관을 지냈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연해주에서 독립군을 이끌던 홍 장군은 1937년 러시아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고 사후 이곳에 묻혔다.
 
 






홍범도 필적

홍범도 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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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의 영웅'
최진동 장군 사진 찾았다

 2019.12.30 

 

최진동 장군 동생, 운산 추정 사진도 공개

일제강점기 홍범도 장군과 함께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최진동(1882∼1945) 장군의 사진이 처음 공개됐다. 최진동 장군은 독립군 부대 대한군무도독부와 대한북로독군부 사령관을 지냈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30일, 레닌에게 선물 받은 권총을 찬 최진동 장군이 홍범도 장군과 함께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반 교수는 "홍범도 장군과 함께 있는 인물을 고려인 출신의 볼셰비키 적군(赤軍) 장교로 추정했는데 유족의 증언으로 최진동 장군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홍 장군과 함께 레닌에게 권총과 군복을 선물 받았다면 그에 버금가는 독립군 대장으로 예우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 교수는 지난해 7월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의 사진·영상물보관소에서 1922년 1월 21일 모스크바 크렘린 소극장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 개회식 영상을 입수해 그해 8월 공개했다. 

당시 반 교수는 최진동 장군을 비롯해 김규식·여운형·조봉암·홍범도·김단야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참가 접수증과 사진 여러장을 확보했지만 홍범도 장군과 함께 사진에 찍힌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하다가 유족의 증언으로 최진동 장군임을 확인했다.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왼쪽)과 최진동 장군이 레닌에게서 선물 받은 권총을 차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반병률 교수 제공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왼쪽)과 최진동 장군이 레닌에게서 선물 받은 권총을 차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반병률 교수 제공
최진동 장군의 동생 최운산(1885∼1945) 장군의 손녀인 최성주(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 씨는 "이 사진을 미국 하와이에 사는 당고모(최진동 장군의 딸 최경주 씨)에게 보내 '아버지가 홍범도 장군과 함께 찍은 이 사진이 어릴 때 집에 걸려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최경주(87) 씨는 최진동 장군 자녀 가운데 홀로 생존해 있으며 현재 최진동·최운산 형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홍범도 일기'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은 소련 최고지도자 레닌을 접견하고 권총 1자루와 금화 100루블, 레닌이 친필 서명한 '조선군 대장' 증명서 등을 선물 받았다.

한편 최운산 장군 유족은 반 교수가 입수한 극동민족대회 개회식 영상 속에서 최운산 장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샤프카(러시아식 털모자)를 쓴 외투 차림의 세 인물 중 가운데가 최 장군이라는 것이다. 왼쪽은 여운형이고 오른쪽은 알 수 없다.

최성주 씨는 "제대로 된 할아버지 사진이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영상 속에서 발견하고 반가웠다"면서 "하와이의 당고모께서도 '작은아버지가 맞는다'고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 교수는 "참가 접수증에서 최운산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해 사진 속 인물이 최운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중국의 경우 옵서버로 참가해 참관기를 남긴 사람도 있어 최운산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독립운동 지도자들. 왼쪽은 여운형이고 가운데가 최운산 장군으로 추정된다./반병률 교수 제공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독립운동 지도자들. 왼쪽은 여운형이고 가운데가 최운산 장군으로 추정된다./반병률 교수 제공
최진동·운산 형제는 19세기 말 고종이 파견한 북간도 옌볜(延邊) 관리책임자(도태) 최우삼의 아들이다. 이들은 동생 최치흥과 함께 만주에서 무장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다.

최진동 장군은 홍범도 장군과 함께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주역이다. 봉오동 전투는 '임진왜란 이후 한·일 정규군이 맞붙은 최초의 전투이자 최초의 승리'로 기록돼 있다. 봉오동을 본영으로 하는 독립군 이름은 북로독군부였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간도국민회군과 최진동-최운산의 군무도독부군이 연합한 부대였다. 1군사령관은 홍범도, 독군부 부장(연합사령관)은 최진동이었다.

축산, 미곡, 무역에 주류, 제면, 성냥, 비누 공장까지 운영해 간도 제1의 거부가 된 최운산은 독립군에 자금을 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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