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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환경오염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20년 03월 09일 22시 25분  조회:3743  추천:0  작성자: 죽림
ㆍ환경인문학과 인류세

21세기는 지질 시대 구분에서 신생대 4기 홀로세에 속한다.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 등 과학자들은 다음 지구상 생물멸종 위기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을 것이란 점에서 ‘인류세(Anthropocene)’로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 플라스틱 등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로 인한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바이러스 확산과 생물상의 급변 등이 이 시기 특징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사진은 환경디자이너 윤호섭의 설치작품 ‘동물 얼굴’. 동물과 식물로 사람 얼굴을 구성해 인간 자신이 곧 동물이자 식물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인간의 오만함과 우월의식을 지적하고 있다. ⓒ윤호섭

<총·균·쇠>의 저자로 잘 알려진 재러드 다이아몬드(1937~)는 문명이 붕괴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를 “이해관계의 충돌”로 본다. 정책을 결정하는 엘리트들의 단기 이익과 사회 전체의 장기 이익이 충돌할 때 단기 이익이 선택되어 그 집단 전체가 붕괴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집단만의 문제가 아닌 지구 전체 운명과도 직결된다.

■ 닭뼈와 플라스틱 행성

지구상에 생물이 출현한 이래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그 멸종으로 지구는 생물 종 75% 이상을 잃었다. 일각에서 현재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겪고 있다고 한다. 다른 대멸종에선 화산 폭발이나 운석 충돌이 그 용의선상에 올라 있지만, 이번에는 인류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 이후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오존층 파괴 등이 나타났는데, 그 직접적 원인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00년 2월, 대기화학자이자 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파울 크뤼천(1933~)은 지금의 지질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 부를 것을 제안했다.

지질 시대는 지질학적 특징을 따라 대(era), 기(period), 세(epoch)로 구분되는데, 예를 들면 21세기는 신생대 4기 홀로세에 속해 있다. 하지만 크뤼천은 이 시대를 인류세로 호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동조하는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어 구성된 인류세 워킹그룹(AWG·Anthropocene Working Group)은 2021년까지 인류세 지정에 대한 공식 제안서를 지질 시대를 정의하는 국제층서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단, 이들은 크뤼천과는 달리 원폭 투하가 있었던 20세기 중반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본다.

그렇다면 인류세의 흔적으로 남을 지질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주로 거론되는 것으로 최고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합성 유기화합물, 플라스틱, 살충제, 방사능 물질 등이 있다.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성 낙진, 희토류 원소, 콘크리트, 알루미늄이나 납 등 금속도 그 흔적으로 꼽힌다.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들은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이상기후, 바이러스 확산 등의 원인이 된다.

2019년 유럽환경청 보고에 따르면, 유럽 전체 바다의 75%가량이 오염되었는데, 그중 플라스틱 쓰레기의 피해도 심각하다. 코에 긴 빨대가 박힌 거북이, 플라스틱과 비닐을 먹고 죽은 고래.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된 플랑크톤 등 사람이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때문에 바다동물들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해양생태계가 파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상의 급격한 변화도 인류세의 큰 특징이다. 특히 양계장에서 기르는 닭의 경우, 지구에 사는 모든 조류를 합친 것보다 더 많기 때문에 인류세를 상징하는 유력한 지표 화석이 닭뼈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 “이 시대를 인류세로 호칭해야”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들이 지질학적 특징

닭뼈가 상징 지표 화석 될 가능성 주장도

2013년 3개 대륙 인문센터 모인 환경인문학연구소 설립

인류세에 있어 인문학의 역할 논의


■ 환경인문학이란 무엇인가

21세기 세계 환경 변화의 주요 원인은 인간과 관련되어 있다. 환경 문제는 거기에 내재된 인간의 가치 문제와 연결된다. 인간이 선호하는 행동과 관행이 환경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인간의 선호는 그 사람이 가진 동기와 신념,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산업사회가 일으킨 심각한 환경 파괴로부터 지구 생태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가치관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가치관 형성에는 철학, 역사, 언어와 문학, 종교, 심리 등이 작용하는데, 근대 이후 숫자와 통계로 객관성이 확보되다 보니 이런 분야에 주의를 덜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환경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환경인문학연구소(Humanities for Environment·HfE)’가 설립되었다. 전 세계 180개 이상의 인문기관에 소속된 CHCI(Consortium of Humanities Centers andInstitutes)에서 지구환경 변화에 대한 인문학 연구에 초점을 맞춰 설립한 것이다. 이 연구소는 환경과 관련된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분과를 조직하여 ‘인류세에 있어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북미(애리조나주립대, 웨이크포레스트대, 클라크대), 유럽(트리니티칼리지 더블린), 호주(스디니의대) 등 3개 대륙의 인문센터들을 모았다. 각 센터에는 지역사회, 기업, 비정부기구(NGO), 정부 및 학술 협력자가 포함되었다. 연구소는 이 특별한 주제의 인문학을 ‘환경인문학(EnvironmentalHumanities)’ 또는 ‘생태인문학(Ecological Humanities)’이라 지칭하고, 전 세계 환경 도전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인식과 이해, 보다 효과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인문학의 범위를 넘어 친환경과 물질에 관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환경인문학’은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고자 여러 분야의 방법을 융합한다. 과학과 인문학 사이는 물론 자연과 문화 사이의 전통적 격차를 좁히며 정의, 노동, 정치에 관한 인간 문제에 얼마나 많은 환경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전염병 퇴치에 유용했던 살충제 DDT

해양생물학자 카슨이 위험성 파헤치며 ‘사용중단’

다시 말라리아 등 전염병 기승


■ 생태학에서 생태인문학으로

‘환경인문학’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용되는 ‘생태인문학’은 그동안 발전했던 생태학의 문제를 인문학과 연결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때 생태계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에 따라 많은 논란이 생긴다. 생태학을 뜻하는 영어 ‘ecology’에서 ‘에코’는 그리스어의 ‘집, 세간, 살림’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에서 이중모음 ‘오이’가 ‘에’로 축약된 것이다. 뒤의 ‘로지’는 ‘언어, 이성, 원리’를 뜻하는 ‘로고스’에서 왔다. 그렇다면 생태학은 ‘집, 세간, 살림에 관한 이야기 내지 원리’를 뜻한다. 이때 ‘에코’란 집이나 가족에서 시작하여 일정한 지역사회의 생물과 무생물의 환경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지구 전체 환경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기를 매개로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전염병들이 있다. 말라리아, 지카바이러스 질병, 뎅기열 등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인도는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질병들은 1980년대 이전까지는 살충제 DDT 때문에 퇴치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매해 5000건에 불과하던 말라리아 발생이 1999년 별안간 5만건으로 늘어났다. 인도의 경우 10만명으로 줄었던 말라리아 환자 수가 약 300만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이런 피해는 개발도상국가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1970년대 이후 DDT 사용이 금지된 이유는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1907~1964)의 사상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파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침묵의 봄>에서 DDT와 같은 합성살충제가 자연계와 인간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구체적으로 파헤쳤다. 농산물 수확을 높이기 위해 뿌린 DDT는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강과 호수로 스며들어 플랑크톤에서 큰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생태계 순환 과정에서 축적된다. 매우 안정된 화학구조라 쉽게 분해되지 않고, 한 번 체내에 흡수되면 지방조직에 저장돼 쉽게 배출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금지된 지 40년이 흘렀지만 신생아들에게서 검출되었으며, 2017년에는 계란과 닭에도 다량의 DDT가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케 했다.

현재 DDT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판매 및 사용이 엄격히 금지됐다. 그러자 말라리아나 뎅기열, 기타 곤충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DDT 도입 이후 사라졌던 머릿니가 2018년 초등학생에게서 나타났으며, 올해 2월에는 프랑스 파리에 때 아닌 빈대가 창궐했고, 북아프리카에서 중동, 인도를 거쳐 중국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생태계를 보전하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DDT를 전 세계에서 금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사용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생태계 보전·환경오염 막기 위해 DDT 금지 옳은가’ 고민 생겨나

빈곤국서 되레 재앙되기도 하는 환경운동

선진국·제3세계 동일한 환경운동 전개는 과연 옳을까


■ 환경(생태)인문학의 역할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사실상 DDT의 사용을 발표했다. 물론 실내 벽면이나 지붕, 축사 등으로 제한적이었지만, 인명을 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런 결정에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를 했다. 환경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DDT가 다시 허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발생할 때마다 환경단체의 원칙을 예외 없이 고수해야 할지 주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생태학을 주장한 미국의 사상가 머레이 북친(1921~2006)은 일방적인 생태운동에 대해 그 위험성을 일깨우고 있다.

어떤 생태운동은 기괴한 혼합물로서, 어떨 때는 생태파시즘의 색깔을 띠기도 한다. (…) 히틀러가 ‘인구 통제’라는 명목 아래 수백만의 사람들을 아우슈비츠 같은 살상의 막사로 보내도록 한 ‘피와 흙’(민족과 자연)이라는 이론을 고안한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조악한 생태야성주의로부터였다.(머레이 북친, <사회생태학 대 심층생태학: 생태학 운동을 위한 도전>)

머레이 북친의 주장에 따라 판단하건대, 혈통과 자연 보전을 명분으로 제3세계의 인명 피해에 눈감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 즉 ‘생태파시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환경인문학’은 환경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인명 피해가 오염된 환경 자체보다 가난 때문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DDT 금지와 같은 환경운동은 잘사는 나라에선 인체에 피해가 적은 살충제가 사용되어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살 수 없는 빈곤국에선 오히려 더 큰 재앙을 일으켰다. 선진국의 많은 환경운동가들은 DDT 금지운동을 성사시켜 새들의 죽음으로 침묵했던 봄을 깨우고 생태계를 복원하며 지구를 살렸다고까지 확신했지만, 빈곤 지역에 사는 수십만, 수백만의 인명을 죽음으로 내몰게 만든 셈이었다. 만일 환경운동이 거대 제약 기업들로 하여금 저렴하면서도 덜 해로운 살충제를 개발하도록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재까지 그런 살충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가난한 국가들을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제약회사에 수익이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경제 성장을 위해 온실가스를 뿜어내고 있을 때 빈곤국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에 사막화가 진행되어 해마다 식량 2000만t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 7년간 생산된 쌀이 매년 없어지는 꼴이다. 물 부족을 겪으며 전기를 사용할 수 없고, 화장실이 없는 환경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오염된 지하수를 먹고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다. 20초에 한 명, 하루에 4000명이 목숨을 잃는데, 희생자는 대부분 아이들이다. 잘사는 계층이 경제 성장을 이루는 대신 그 역습을 받는 계층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진국과 제3세계에 동일한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환경인문학’은 사회와 자연이라는 환경에 인문학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환경 문제의 경우 하나의 원칙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환경과 능력, 그리고 다른 대안을 사용하는 정치적, 제도적, 문화적, 인지적 요인을 연구하고 반영한다. 또한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인류의 경험과 호기심, 상상력을 반영하여 아직까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통찰력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서두에 밝힌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을 때 ‘환경인문학’은 그 생활권 영역 안에서 사회-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장기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환경에 대한 인문적 관심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사회-생태적 지속 가능성’에 있는 것이다.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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