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현장 르포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싸우는 사이 접경 지역에서도 또 다른 바이러스와 치열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치사율 95%, 돼지 흑사병이라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입니다.
바이러스의 숙주인 멧돼지는 이미 서해안에서부터 동쪽 끝 강원 고성까지 바이러스를 퍼뜨렸습니다.
휴전선 아래 476㎞에 이르는 울타리 전선을 구축하고 멧돼지의 남진을 필사적으로 막는 사람들. 그곳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10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사무소. 붉은색 조끼를 입은 8명이 분무기로 장화와 지팡이에 소독제를 뿌립니다. 이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죽은 멧돼지 폐사체를 찾기 위해 모인 인근 주민들입니다
지난해 10월 3일 경기 연천에서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멧돼지는 발견된 것만 500마리가 넘습니다.
ASF 바이러스는 멧돼지 폐사체 속에서도 6개월이나 살아남아 새로운 숙주를 찾습니다. 폐사체를 빨리 찾아내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인근 야산에서 멧돼지 수색이 시작됐습니다. 수색팀원들은 가파른 산을 오르며 멧돼지의 흔적을 찾습니다. 얼마 뒤 성인 두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구덩이가 보였습니다. 멧돼지가 칡뿌리를 캐 먹기 위해 파놓은 것입니다. 근처에선 멧돼지가 새끼를 낳기 위해 만들어놓은 집도 보였습니다.
김 씨는 이 험한 산지 속에서 멧돼지 폐사체를 찾기 위해서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멧돼지 폐사체가 있는 곳에는 까마귀들이 몰려들기 때문이죠.
잠시 뒤, 근처에서 멧돼지를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급히 찾아간 곳은 산 중턱의 과수원. 그곳에서 사살된 멧돼지 두 마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방역복을 입은 처리반은 멧돼지 폐사체에 소독약을 뿌립니다.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죽은 멧돼지의 발목을 잘라 보관합니다
구덩이에는 비닐을 깔고 사체를 놓습니다. 사체 위에 생석회를 뿌리고 입고 있던 방역복 역시 같이 묻습니다. 묻은 곳을 표시하기 위해 안전띠도 주변에 설치합니다.
현장에 동행한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은 “멧돼지가 그동안 천덕꾸러기, 유해조수로 생각됐지만 사실 생태계 내에서 멧돼지가 수행하는 생태적 기능이 존재한다”며“(바이러스가) 방치되고 백두대간으로 퍼져나가면 국내 생태계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이 너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사람에겐 감염되지 않고, 동물 중 돼지과(Suidae)에 속하는 멧돼지와 사육 돼지에만 감염됩니다. 감염된 돼지는 고열과 호흡곤란, 구토, 피부 출혈 등의 증상을 보이고 거의 100%가 죽습니다.
1920년대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된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2000년대 유럽 대륙을 거쳐 중국을 초토화했습니다. 중국에선 지난해 수억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고 돼지고기 가격이 두 배로 뛰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접경지역 양돈농가에서 기르던 44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습니다. 멧돼지 역시 접경지역에서만 폐사체 발견과 포획 등으로 7912마리가 죽었습니다.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감염 경로도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6개월이 넘는 역학조사 끝에 러시아·중국에서 유행 중이던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비무장지대 인근 접경지역으로 최초 유입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사실상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우선, 국내서 발견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유행 중인 바이러스 유전자형과 동일한 ‘유전형 Ⅱ’로 확인됐습니다. 유전형Ⅱ는 2007년 러시아 남부 흑해 연안 조지아에서 발생해 러시아·중국을 비롯해 몽골, 베트남, 체코, 벨기에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두 번째 증거는 최초 발생지역인 철원·연천·파주 지역에서 모두 남방한계선 1㎞ 안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3일 첫 확진인 나온 강원 고성에도 남방한계선에 불과 200m 떨어진 지점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습니다.
심지어 비무장지대를 출입하는 차량과 비무장지대 내 물웅덩이에서도 바이러스 유전자가 발견됐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떻게 북한에서 국내로 들어온 걸까요?
환경부는 3가지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 ①하천을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 폐사체 일부가 떠내려왔거나 ②너구리나 쥐 같은 소형동물이 바이러스의 매개가 됐거나 ③사람 또는 차량이 바이러스를 옮겼을 수도 있습니다.
정원화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장은 “멧돼지 사체가 썩으면 분해되는데 그런 잔존물들이 소하천이나 물을 타고 일시적으로 국내로 유입됐다가 다른 멧돼지한테 전파됐을 수 있다”며 “너구리, 오소리, 족제비, 쥐 등 멧돼지 사체를 먹거나 접근할 수 있는 소형 동물이 (휴전선을) 왔다 갔다 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바이러스를 보유한 멧돼지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멧돼지는 헤엄을 쳐 섬을 건너기도 하고, 멀리 타 지역까지 산을 넘어가기도 합니다. 산악이 대부분인 접경 지역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김영준 실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피 한 방울만 떨어져도 몇 주간 생존할 정도로 감염력이 강하다”며 “최대한 남쪽에 있는 멧돼지가 감염되지 않도록 바이러스의 동진과 남진을 막는 게 생태계는 물론 양돈계와 산업계를 지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화천=천권필 기자
울타리 넘어 발견된 멧돼지. 환경부
바이러스의 숙주인 멧돼지는 이미 서해안에서부터 동쪽 끝 강원 고성까지 바이러스를 퍼뜨렸습니다.
휴전선 아래 476㎞에 이르는 울타리 전선을 구축하고 멧돼지의 남진을 필사적으로 막는 사람들. 그곳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산속에서 멧돼지 폐사체를 찾는 이유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 환경부
지난해 10월 3일 경기 연천에서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멧돼지는 발견된 것만 500마리가 넘습니다.
ASF 바이러스는 멧돼지 폐사체 속에서도 6개월이나 살아남아 새로운 숙주를 찾습니다. 폐사체를 빨리 찾아내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멧돼지 폐사체 수색 중에 멧돼지가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집이 발견됐다. 강대석
“멧돼지들은 자기 구역이 있는데 한 마리가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되면 그 구역에 있는 멧돼지들은 전부 죽어요. 한 번은 세 마리가 코에 피를 흘리고 나란히 죽어 있는 것도 봤어요.” -김상호(63) 수색조장
김 씨는 이 험한 산지 속에서 멧돼지 폐사체를 찾기 위해서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멧돼지 폐사체가 있는 곳에는 까마귀들이 몰려들기 때문이죠.
죽은 멧돼지 어떻게 처리할까
멧돼지 폐사체 처리 과정. 강대석
방역복을 입은 처리반은 멧돼지 폐사체에 소독약을 뿌립니다.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죽은 멧돼지의 발목을 잘라 보관합니다
구덩이에는 비닐을 깔고 사체를 놓습니다. 사체 위에 생석회를 뿌리고 입고 있던 방역복 역시 같이 묻습니다. 묻은 곳을 표시하기 위해 안전띠도 주변에 설치합니다.
현장에 동행한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은 “멧돼지가 그동안 천덕꾸러기, 유해조수로 생각됐지만 사실 생태계 내에서 멧돼지가 수행하는 생태적 기능이 존재한다”며“(바이러스가) 방치되고 백두대간으로 퍼져나가면 국내 생태계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이 너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풀리는 감염 경로 미스터리
국내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유입 추정경로. 환경부 제공
1920년대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된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2000년대 유럽 대륙을 거쳐 중국을 초토화했습니다. 중국에선 지난해 수억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고 돼지고기 가격이 두 배로 뛰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접경지역 양돈농가에서 기르던 44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습니다. 멧돼지 역시 접경지역에서만 폐사체 발견과 포획 등으로 7912마리가 죽었습니다.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감염 경로도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6개월이 넘는 역학조사 끝에 러시아·중국에서 유행 중이던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비무장지대 인근 접경지역으로 최초 유입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사실상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우선, 국내서 발견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유행 중인 바이러스 유전자형과 동일한 ‘유전형 Ⅱ’로 확인됐습니다. 유전형Ⅱ는 2007년 러시아 남부 흑해 연안 조지아에서 발생해 러시아·중국을 비롯해 몽골, 베트남, 체코, 벨기에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천·매개동물 통해 유입 가능성
유입 후 시간경과에 따른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 양상. 유입초기 남방한계선 및 민통선 주변에서 발생한 뒤 민통선 밖으로 확산했다. 환경부 제공
심지어 비무장지대를 출입하는 차량과 비무장지대 내 물웅덩이에서도 바이러스 유전자가 발견됐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떻게 북한에서 국내로 들어온 걸까요?
환경부는 3가지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 ①하천을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 폐사체 일부가 떠내려왔거나 ②너구리나 쥐 같은 소형동물이 바이러스의 매개가 됐거나 ③사람 또는 차량이 바이러스를 옮겼을 수도 있습니다.
정원화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장은 “멧돼지 사체가 썩으면 분해되는데 그런 잔존물들이 소하천이나 물을 타고 일시적으로 국내로 유입됐다가 다른 멧돼지한테 전파됐을 수 있다”며 “너구리, 오소리, 족제비, 쥐 등 멧돼지 사체를 먹거나 접근할 수 있는 소형 동물이 (휴전선을) 왔다 갔다 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바이러스를 보유한 멧돼지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멧돼지는 헤엄을 쳐 섬을 건너기도 하고, 멀리 타 지역까지 산을 넘어가기도 합니다. 산악이 대부분인 접경 지역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김영준 실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피 한 방울만 떨어져도 몇 주간 생존할 정도로 감염력이 강하다”며 “최대한 남쪽에 있는 멧돼지가 감염되지 않도록 바이러스의 동진과 남진을 막는 게 생태계는 물론 양돈계와 산업계를 지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화천=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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