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견 시인의《기러기 가족》을 받아 읽고 동시집 속에서 바글대는 싱싱한 동심에 혀를 차며 나도 그 속에 빠져들어 아이들과 함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불혹의 나이에 뒤늦게 동시단에 들어서서 시를 쓰기 시작한 작가가 어쩌면 이렇게 동심들이 팔짝거리는 좋은 동시들을 써낼 수 있었던 걸까?
그것은 시인 자신이 동심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시인이《자서》에서 말했듯 비탄 속에서 모대기며 살던 시인은 순결하고 순박한 동심 속에서 자기 인생의 정도를 찾고 그런 동심에 빠져들다 보니 동시를 찾게 되었고, 그런 동시를 찾다 보니 동심 속에 더 빠져들고 인생의 정도도 더 확고히 하였다고 한다.
동시는 어린이의 눈과 어린이의 마음과 어린이의 언어로 써낸 시인 만큼 동심을 떠나서는 동시를 운운할 수 없다. 동시 창작에는 많은 기교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동심이다.
김견 시인의 동시들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은 어린이다운 이런 천진하고 순결한 마음과 기발하고 싱싱한 상상으로 시를 빚어낸 데 있다.
쟨 또 뭘
잘못했기에
그 큰 머리
푹 떨군 채
해종일 벌만
서고 있담?
-《해바라기》전문
아이들은 잘못투성이들이다. 잘못투성이 속에서 성장하는 게 아이들이다. 그런 잘못투성이 아이들이기에 아이들의 눈에는 얼마 전까지 해님 같은 꽃을 피워 들고 우쭐거리던 해바라기가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것은 자기들처럼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그러는 것으로 비쳐들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순박하고 기발한 상상력인가? 거기에는 잘못을 저지른 해바라기에 대한 따스한 연민의 정까지 스며있어 우리 가슴을 밝게 해준다.
누가 누가
잡아다 놓았지?
천만 마리
저 칠색나비떼를
천만 오리 파란
색실에 매어
풀어달라 아우성
저 나비들…
-《코스모스 2 전문》
오늘날 어린이들의 현실을 눈뿌리 빼는 한폭의 유화처럼 그려낸 동시이다. 지금 현실이 그렇지 아니한가. 아롱다롱한 나비떼처럼 아름다운 꿈으로 아롱진 어린이들의 칠색동년이 교육이라는 곱게 포장된 색실에 꽁꽁 동여매어져있고, 거기서 벗어나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어린이들…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황을 동심의 눈으로 폭로한 가작이 아닐 수 없다.
이 동시집에는 이런 유형의 동시들이 많이 보인다. 《암 걸린 아빠 엄마》도 그런 동시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문명의 비약적인 발전과는 반비례로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인성은 급속도로 메말라가고 있다. 인간의 최고사랑이라 하던 자식사랑까지 핸드폰에 좀먹고 있는 현실이 아니던가.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눈물겹다.
진달래 꽃가지가
분홍빛 팝콘을
톡톡
터칩니다.
마실 나온
바람아줌마
솔솔
봄풀무 돌리는데
지나가던 봄아이
엄마 심부름도
잊은 채
오도카니 서서
꼴깍~
군침을 삼킵니다.
여태 진달래를 노래한 시를 수십 편 읽어보았지만, 진달래가 피어나는 모습을 팝콘 터지는 것으로 형상화한 시는 처음이다. 정말 어린이다운 상상력이라 하겠다. 톡톡 튀어나고 있는 팝콘, 그것도 분홍빛으로 곱게 물든 팝콘이니 얼마나 먹고 싶겠는가. 봄아이가 엄마 심부름도 잊은 채 꼴깍 군침을 삼킬 만도 할 것이다. 이 동시를 살린 “분홍빛 팝콘”이라든가 “봄풀무”와 같은 비유는 싱싱하고 재미난 동심적 상상이어서 어린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밖에 이 동시집에는 독자들의 주목을 끄는 동시가 몇 수 있다.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다룬 동시가 그것이다. 분단 문제는 반도 남북에 갈라져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세계각지에 산재해있는 우리 민족 구성원들 모두의 관심사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 살고 있는 조선족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은 반도는 우리 조상님들이 살던 고향땅이고 우리들의 몸속에 같은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고국지도》를 보자. 이 동시에서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낮잠 드신 엄마의 모습에서까지 분단의 아픔을 떠올리는 시인의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고국을 엄마로 의인화하고 분단을 졸라맨 허리띠에 비유한 이 동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동시《비구름》은 분단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시인은 매번 눈물바다, 울음바다로 되어버리고 마는 이산가족 상봉의 모습을 구름과 구름이 마주치며 번개가 치고 우레 울고 비가 쏟아지는 자연현상에 비유하면서 그 밑바닥에 우리 민족 전체 구성원들의 한결같은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동시 《버섯》이다.
간밤에 우르릉
천둥비행기
하늘을 메우더니
낙하산 부대
투하했나?
솔밭에, 버들방천에
계곡마다에
철모 쓴 장병들
쫘악 깔렸네.
-《버섯》전문
시인은 비 온 뒤 솔밭에, 버들방천에, 계곡마다에 돋아난 버섯들을 철모 쓴 장병들로 의인화하고 있다. 정말 어린이다운 깜찍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내 가슴을 섬뜩하게 자극했던 것은 이 동시에 펼쳐진 정경이 일촉즉발의 반도 현황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민족은 물론, 세계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 터질지 모르는 반도의 전쟁위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한수의 짧은 동시에 화약내 팍팍 풍기는 반도의 현 정세를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언제면 반도 남북에 평화가 깃들고 민족의 가슴속에 핏덩이로 엉겨붙은 통일의 염원이 이룩될 것인지...
이 밖에도 이 동시집에는《개나리》, 《단풍》,《눈》,《흑판》,《감기》등과 같은 좋은 동시들이 많지만, 여기에서 일일이 거론하지 못한다.
아무튼 김견 시인은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동시단에 들어섰지만, 정말 좋은 동시들로 우리 시단에 광채를 더해주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나는 김견 시인이 앞으로도 계속 동심에 묻혀 살면서 어린이다운 눈과 어린이다운 마음과 어린이들의 언어로 동시를 쓰면서 예술적 기량을 한층 더 높인다면 지금보다 더욱 훌륭한 동시들을 창작해내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날을 기대하면서 이만 줄인다. 201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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