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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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것은 버릴줄 아는 교원이 되자
2012년 12월 11일 14시 27분  조회:2270  추천:4  작성자: 리창현
     조선어가 지구촌에서 점차 인기를 가지게 된지도 어언 몇년이 잘 된다. 이처럼 몸값이 바야흐로 오르는 우리 조선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일부 한족들은 조선어를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한낱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저기에서 우리 조선어가 인기를 가지고 자랑스레 울리는 장면들을 목격하느라면 자연 긍지감에 흐렸던 기분도 삽시간에 사라지고 행복이 조용히 마음의 골짜기를 메운다. 동시에 조선민족의 밝은 미래가  서서히 막을 내리며 안겨온다. 이와 동시에 근심도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우리 조선어의 위망이 점차 높아감에 따라 위기감도 없는것은 아니다. 많은 위기감들이 슬그머니 도전을 걸어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성스레 가르치고 깨우친다면 두려울것이 없다. 지금 조선어문은 개편을 거쳐 낡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대지만 아직도 구석구석들에서는 옛날의 그림자들이 나름대로 허둥대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버려야 할것들을 마음대로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요즘 우리 조선어문 교원들은 실로 량손에 쥔 떡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감히 자신의 생각대로 엄두도 못내고 그냥 그대로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는 상황이다. 이젠 버릴것들을 마음대로 버리며 나름대로의 인격을 살려 조선어문 교수를 진행해야한다. 문제는 교원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할지 몽롱한것이다. 교수대강대로 교수를 한다해도 어쩐지 늘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정서를 피할길없어한다. 이것이 바로 버려야할것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그냥 낡은것에 미련을 두고 자신을 정지시켜 괴롭히는것이다. 낡은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단은 먼저 낡은것을 미련없이 확 버려야한다. 무작정 낡은것이라면 아까움이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먼곳에 버려야한다. 그러느라면 자연 새것이 생기는 법이 아닐가?!
문제는 적잖은 교원들이 시험에만 응하다보니 죽은것에만 늘 치우치게된다. 그러느라니 너무도 많은 산것을 죽이기가 일쑤이다. 토하나 받침하나에 이르기까지 미주알 고주알 캐다보니 힘든것은 교원뿐이다. 글쎄 기초지식에 중시를 돌리는것은 부정할수없는 중요한 과업이지만 일정한 기초지식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는 반드시 생활과 교수를 밀접히 결부하면서 살아가는데 힘이 될수있는 지식점에 초점을 맞추고 교수를 조직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생존에는 수많은 방법과 수단이 필요한것처럼 교수도 항상 서면지식에만 치우치지말고 생활의 각양각이한 정서속에서 지식을 줏는것도 해볼만한 수업이다.
실상 사람이 살아가는데서 서면지식이 절대적인 영향을 일으키는것이 아니다. 관건은 그 사람의 잠재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잠재력은 너무도 놀라운 힘이 되는것이다. 언제가 갑작스레 자신의 삶에 큰 기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삶의 질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조선어문 교수에서 아래와같은 몇개 <<욕심>>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버려서 없는것이 절대 거지가 아니다. 소유하고 있는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거지인것이다.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만큼 구차한 사람은 너무도 드물다는 생각이다. 늘 <<이삭주이>>에 몸과 신경을 쏟다보니 그냥 그 그늘밑에서 세상을 보내기가 일쑤이다.  그냥 소로만 밭가리를 해야만 시름을 놓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할때가 되였다. 부동한 시대에는 부동한 방법과 수단으로 자신을 개변할줄 알아야 한다. 소가 없으면 그 무엇으로도 밭을 갈아야하는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부단히 탐구하면서 기다리지만 말고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조선어문 교원은 생각할줄아는 사람이 먼저 되여야 한다. 그 무엇인가를 위하여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여야한다. 어느 한 골짜기로만 무작정 자신을 몰아넣지말고 보다 넓은 대지로 자신을 몰아봄도 너무도 바람직하다.
첫째; 교수를 기계처럼 몰아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우선 애들을 내가 다루는 일종의 기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무작정 자신이 지휘관이 되여가지고 기계를 다루려는 헐망한 욕심을 버리고 모든 기계의 설명서랑을 잘 읽어보면서 나름대로의 우세를 발휘하도록 공간을 주어야 한다. 공간을 잃은 기계는 페물에 불과하다. 그런 페물을 운전하는 기사는 구경무엇에 불과할가?
애들의 모든 생각과 사유를 존중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나타낼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 한다. 무작정 자신의 생각과 사유를 주장하면서 힘들게 하지말고 가끔은 부질없는 욕심들을 버려보는것도 해볼만한 장사이다.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삶의 공간이 자연 졻아지게 되는법이다. 그러니 애들에게 나름대로의 사유의 공간과 활동의 공간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배움의 진미를 느끼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열심히 배우려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둘째; 애들을 먹여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일부 교원들은 늘 문제의 정답에 욕심이 형편없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대로 답안을 작성해주어야만 시름을 놓고 교단을 떠난다. 실상은 애들을 믿어봄도 교원의 매력이 아닐수 없다. 일부 문제는 애들이 자체로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건만 무조건 자신의 존재를 따르게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교수를 진행하느라니 애들도 힘들고 자신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글쎄 먹여주려는 마음가짐만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도 때와 시가 따로 정해지는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장소도 모르고 무작정 먹이려는 생각은 어딘가 실리에 어긋나는 어리석은 노릇이 되기도 쉽다. 하물며 그 많은 애들에게 골고루 먹여주려는 욕심에 얼마나 큰 기력이 필요할가?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은 밭을가는 농부의 형상에 너무도 가깝다. 한번 갈고는 어디가 잘 갈리지 않았는가 꼭 다시한번 돌아보고야 시름을 놓는 그런 형상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필자도 조선어문 교원이지만 부정할수없는 현실임을 자인하는 바이다.
이젠 애들을 믿어보면서 꼭 쥐였던 스케줄을 가끔은 느슨하게 풀어볼때가 된것같다는 생각이다. 과감하게 애들을 인정하면서 가끔은 그늘밑에 앉아서 지켜보는것도 조선어문 교원의 고급적인 향수가 아닐가?
셋째; 자아만족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교수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진행하는 노릇이 아니다. 관건은 애들이 만족하는 그런 수업이여야만이 가장 완미한 수업이라고 인정할수가 있다. 가끔은 교원의 만족끝에 애들에게는 수많은 아쉬움이 잠자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어문 자체가 다방면의 해결을 요구하듯이 애들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인식과 견해를 피력할수 있도록 해야지 절대로 자신의 만족에 올가미를 걸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얄팍한 대답일지라도 부정은 절대로 내세우지 말고 항상 애들로 하여금 자아만족의 순간을 만들게 해야 한다. 그러는 속에서 배움의 향수를 감각하면서 조선어문 신선함도 느끼게 되는것이다. 너무도 의미심장한 말들은 될수록이면 적게 하고 애들이 쉽게 받아 들일수있는 언어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심각한 말 한마디로 애들의 사유에 서리발을 쳐놓을 우려도 생길수있으니 부동한 단계에서 부동한 언어수단이 필요한것이다. 그저 자아감각에만 만족되지말고 가끔은 애들의 만족에 마음을 쏟는것도 교원으로서의 긍지가 아닐가?
넷째; 너무 자신을 자랑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글쎄 애들에게 교원의 신성한 존재를 가르치는것은 나쁜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랑에 너무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인기가 폭락할 우려도 있는것이다. 그러느라면 저도몰래 애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무게가 가벼워지게 되는것이다. 항상 애들앞에서 겸손해야지 입을 열면 자신의 자랑부터 늘여놓는 교원이 되여서는 안된다. 가끔 자랑도 할수 있겠지만 순간과 기회에 맞게 간단하면서도 애들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수있는 그런 순간을 만들어야한다. 실상 애들은 말은 없지만 너무도 잘 알고 있는것이다. 알고 있는것에 대한 긍정은 오히려 부정이 될 가능성도 없는것은 아니다. 애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고 느끼게 해야지 절대로 자신을 거쳐서 알게 하고 느끼게 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야한다. 한번 알면 마음에 그대로 남고 자꾸 알게되면 스스로 가치를 잃게 되는것이다.
 이젠 작은 강에서 개발헤염을 치는 시대가 지난것같다. 보다 넓은 강에서 남들이 모르는 자세를 부단히 탐구하면서 어려움도 두려움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헤염방식을 탐구하는것이 현대 교원들의 신성한 의무가 아닐가?!
 
 조선어가 지구촌에서 점차 인기를 가지게 된지도 어언 몇년이 잘 된다. 이처럼 몸값이 바야흐로 오르는 우리 조선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일부 한족들은 조선어를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한낱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저기에서 우리 조선어가 인기를 가지고 자랑스레 울리는 장면들을 목격하느라면 자연 긍지감에 흐렸던 기분도 삽시간에 사라지고 행복이 조용히 마음의 골짜기를 메운다. 동시에 조선민족의 밝은 미래가  서서히 막을 내리며 안겨온다. 이와 동시에 근심도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우리 조선어의 위망이 점차 높아감에 따라 위기감도 없는것은 아니다. 많은 위기감들이 슬그머니 도전을 걸어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성스레 가르치고 깨우친다면 두려울것이 없다. 지금 조선어문은 개편을 거쳐 낡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대지만 아직도 구석구석들에서는 옛날의 그림자들이 나름대로 허둥대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버려야 할것들을 마음대로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요즘 우리 조선어문 교원들은 실로 량손에 쥔 떡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감히 자신의 생각대로 엄두도 못내고 그냥 그대로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는 상황이다. 이젠 버릴것들을 마음대로 버리며 나름대로의 인격을 살려 조선어문 교수를 진행해야한다. 문제는 교원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할지 몽롱한것이다. 교수대강대로 교수를 한다해도 어쩐지 늘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정서를 피할길없어한다. 이것이 바로 버려야할것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그냥 낡은것에 미련을 두고 자신을 정지시켜 괴롭히는것이다. 낡은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단은 먼저 낡은것을 미련없이 확 버려야한다. 무작정 낡은것이라면 아까움이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먼곳에 버려야한다. 그러느라면 자연 새것이 생기는 법이 아닐가?!
문제는 적잖은 교원들이 시험에만 응하다보니 죽은것에만 늘 치우치게된다. 그러느라니 너무도 많은 산것을 죽이기가 일쑤이다. 토하나 받침하나에 이르기까지 미주알 고주알 캐다보니 힘든것은 교원뿐이다. 글쎄 기초지식에 중시를 돌리는것은 부정할수없는 중요한 과업이지만 일정한 기초지식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는 반드시 생활과 교수를 밀접히 결부하면서 살아가는데 힘이 될수있는 지식점에 초점을 맞추고 교수를 조직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생존에는 수많은 방법과 수단이 필요한것처럼 교수도 항상 서면지식에만 치우치지말고 생활의 각양각이한 정서속에서 지식을 줏는것도 해볼만한 수업이다.
실상 사람이 살아가는데서 서면지식이 절대적인 영향을 일으키는것이 아니다. 관건은 그 사람의 잠재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잠재력은 너무도 놀라운 힘이 되는것이다. 언제가 갑작스레 자신의 삶에 큰 기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삶의 질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조선어문 교수에서 아래와같은 몇개 <<욕심>>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버려서 없는것이 절대 거지가 아니다. 소유하고 있는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거지인것이다.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만큼 구차한 사람은 너무도 드물다는 생각이다. 늘 <<이삭주이>>에 몸과 신경을 쏟다보니 그냥 그 그늘밑에서 세상을 보내기가 일쑤이다.  그냥 소로만 밭가리를 해야만 시름을 놓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할때가 되였다. 부동한 시대에는 부동한 방법과 수단으로 자신을 개변할줄 알아야 한다. 소가 없으면 그 무엇으로도 밭을 갈아야하는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부단히 탐구하면서 기다리지만 말고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조선어문 교원은 생각할줄아는 사람이 먼저 되여야 한다. 그 무엇인가를 위하여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여야한다. 어느 한 골짜기로만 무작정 자신을 몰아넣지말고 보다 넓은 대지로 자신을 몰아봄도 너무도 바람직하다.
첫째; 교수를 기계처럼 몰아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우선 애들을 내가 다루는 일종의 기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무작정 자신이 지휘관이 되여가지고 기계를 다루려는 헐망한 욕심을 버리고 모든 기계의 설명서랑을 잘 읽어보면서 나름대로의 우세를 발휘하도록 공간을 주어야 한다. 공간을 잃은 기계는 페물에 불과하다. 그런 페물을 운전하는 기사는 구경무엇에 불과할가?
애들의 모든 생각과 사유를 존중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나타낼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 한다. 무작정 자신의 생각과 사유를 주장하면서 힘들게 하지말고 가끔은 부질없는 욕심들을 버려보는것도 해볼만한 장사이다.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삶의 공간이 자연 졻아지게 되는법이다. 그러니 애들에게 나름대로의 사유의 공간과 활동의 공간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배움의 진미를 느끼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열심히 배우려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둘째; 애들을 먹여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일부 교원들은 늘 문제의 정답에 욕심이 형편없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대로 답안을 작성해주어야만 시름을 놓고 교단을 떠난다. 실상은 애들을 믿어봄도 교원의 매력이 아닐수 없다. 일부 문제는 애들이 자체로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건만 무조건 자신의 존재를 따르게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교수를 진행하느라니 애들도 힘들고 자신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글쎄 먹여주려는 마음가짐만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도 때와 시가 따로 정해지는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장소도 모르고 무작정 먹이려는 생각은 어딘가 실리에 어긋나는 어리석은 노릇이 되기도 쉽다. 하물며 그 많은 애들에게 골고루 먹여주려는 욕심에 얼마나 큰 기력이 필요할가?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은 밭을가는 농부의 형상에 너무도 가깝다. 한번 갈고는 어디가 잘 갈리지 않았는가 꼭 다시한번 돌아보고야 시름을 놓는 그런 형상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필자도 조선어문 교원이지만 부정할수없는 현실임을 자인하는 바이다.
이젠 애들을 믿어보면서 꼭 쥐였던 스케줄을 가끔은 느슨하게 풀어볼때가 된것같다는 생각이다. 과감하게 애들을 인정하면서 가끔은 그늘밑에 앉아서 지켜보는것도 조선어문 교원의 고급적인 향수가 아닐가?
셋째; 자아만족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교수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진행하는 노릇이 아니다. 관건은 애들이 만족하는 그런 수업이여야만이 가장 완미한 수업이라고 인정할수가 있다. 가끔은 교원의 만족끝에 애들에게는 수많은 아쉬움이 잠자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어문 자체가 다방면의 해결을 요구하듯이 애들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인식과 견해를 피력할수 있도록 해야지 절대로 자신의 만족에 올가미를 걸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얄팍한 대답일지라도 부정은 절대로 내세우지 말고 항상 애들로 하여금 자아만족의 순간을 만들게 해야 한다. 그러는 속에서 배움의 향수를 감각하면서 조선어문 신선함도 느끼게 되는것이다. 너무도 의미심장한 말들은 될수록이면 적게 하고 애들이 쉽게 받아 들일수있는 언어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심각한 말 한마디로 애들의 사유에 서리발을 쳐놓을 우려도 생길수있으니 부동한 단계에서 부동한 언어수단이 필요한것이다. 그저 자아감각에만 만족되지말고 가끔은 애들의 만족에 마음을 쏟는것도 교원으로서의 긍지가 아닐가?
넷째; 너무 자신을 자랑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글쎄 애들에게 교원의 신성한 존재를 가르치는것은 나쁜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랑에 너무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인기가 폭락할 우려도 있는것이다. 그러느라면 저도몰래 애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무게가 가벼워지게 되는것이다. 항상 애들앞에서 겸손해야지 입을 열면 자신의 자랑부터 늘여놓는 교원이 되여서는 안된다. 가끔 자랑도 할수 있겠지만 순간과 기회에 맞게 간단하면서도 애들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수있는 그런 순간을 만들어야한다. 실상 애들은 말은 없지만 너무도 잘 알고 있는것이다. 알고 있는것에 대한 긍정은 오히려 부정이 될 가능성도 없는것은 아니다. 애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고 느끼게 해야지 절대로 자신을 거쳐서 알게 하고 느끼게 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야한다. 한번 알면 마음에 그대로 남고 자꾸 알게되면 스스로 가치를 잃게 되는것이다.
 이젠 작은 강에서 개발헤염을 치는 시대가 지난것같다. 보다 넓은 강에서 남들이 모르는 자세를 부단히 탐구하면서 어려움도 두려움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헤염방식을 탐구하는것이 현대 교원들의 신성한 의무가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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