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함
http://www.zoglo.net/blog/liguangren 블로그홈 | 로그인
<< 1월 2025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천리두만강을 따라 (1)ㅡ두만강발원지와 옥녀늪
2005년 06월 01일 00시 00분  조회:4064  추천:88  작성자: 리함
천리두만강을 따라 (1)

두만강발원지와 옥녀늪

리 함

백두산 동쪽기슭에서 흘러내리는 천리두만강은 오늘도 예이제없이 중조 두 나라의 기슭을 치며 유유히 흐르고있다. 이 강 연안의 연변땅엔 지금 80만을 훨씬 넘기는 조선족이 살고있다. 두만강이란 그들에게 있어서 그제날은 설음의 강, 수난의 강이였으나 오늘은 력사의 강, 어머니강으로 되여 우리 모두들 깊은 감회에 잠기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강들이 원천이 있듯이 천리 두만강도 례외가 아니다.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발원지는 하늘아래 첫동네라 불리웠던 화룡시 숭선진에서 서북쪽으로 74킬로메터 떨어진 백두산동쪽의 적봉부근에 있다. 적봉은 원명이 홍토산(红土山)이다. 산에 붉은 흙이 많다하여 생긴 이름인데 만족들은 그들 시조이름을 본따 부쿠리산이라고 부른다. 해발 1321.2메터인 이 산은 장백산 산문(山门)과의 거리가 17킬로메터가량밖에 안된다. 그만큼 적봉은 백두산과 그 일대에 널린 수많은 화산중의 하나로서 산형태가 초모자모양을 이루었다. 화산우에 발육된 화산토양이다보니 토층이 얇아서 나무가 자라기는 해도 평지보다 못하다.
적봉의 동쪽에 중조변계를 나타내는 21호국계비가 있다. 21호국계비는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며 똑같은 국계비 세개가 서로 마주보며 서있는데 이것은 1962년에 중국과 조선 두 나라가 협상하여 설정한 국경선이다.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해 세워진 여러 국계비는 21호국계비에 이르러 끝이 난다. 이곳부터는 두만강이 흐르기에 두만강은 천연국경선으로 되고있다. 다시 돌아와서 21호국계비를 보면 한쪽은 중국이라 쓰고 다른 한쪽은 조선이라고 썼다지만 주위를 살펴보아도 고지개판이 아니면 관목숲뿐인 무인지경이다.
21호국계비 가까이에 두만강발원지가 있다. 남쪽발원지는 조선의 무두봉에서 흘러내리는 홍토수이고 북쪽발원지는 장백산동쪽에 있는 무수림하이다. 이곳 발원지라야 고지개판사이로 흐르는 실개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실개천이 조선쪽에서 흐르는 홍토수와 합치면서 점차 사품치는 큰강으로 되여 동쪽과 동북쪽으로 흐르며 화룡시와 룡정시를 거치다가 도문시 량수진부근에서 동남쪽으로 흐름길을 바꾼다. 그러다가 훈춘시 경신진 방천부근에 이르러 로씨야와 조선 두 나라 사이를 누비며 일본해(조선서는 동해로 부름.)로 들어간다.
두만강발원지는 이렇듯 여러가지 함의를 가지고 인기를 모으는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발원지주위와 길 량옆은 하늘을 치솟는 원시림이여서 원시림관광도 해볼만하다.
두만강발원지에서 장백산산문으로 통한 큰길을 따라 한참 가노라면 오른쪽 원시림가에 물안개 피여오르는 거울같이 맑은 늪이 있다. 이 늪의 평균깊이는 1메터정도이고 둘레는 1킬로메터 남짓한 원지(园池)인데 호수면은 해발이 1 270메터인 원형으로서 늪의 폭은 약 180메터에 이른다. 만족들은 이 늪을 천녀욕궁지(天女浴躬池) 혹은 부러후리(만족어)라고 부르면서 백두산동쪽의 첫늪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청나라시조 아이신죠로 부쿠리 옹순이 여기에서 고고성을 터치였다. 옹순은 아릿다운 선녀 푸로룬이 이 늪에서 미역을 감다가 주과를 먹고 낳은 소생이라고 한다. 그는 태여난후 인차 말할줄 알고 체격이 특이했는데 커서는 왕이 되고 만주부락을 일떠세웠다고 전한다. 하여 청조의 력대황제들은 이 늪을 줄곧 성지로 받들어왔단다.
우리 조선족들은 이 늪을 옥녀늪이라고 친절히 부른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전설이 여러가지로 전해지는데 그중의 한 줄거리는 대개 이러하다.
항쟁의 봉화가 타오르던 그 시기에 옥녀라고 하는 조선족소녀가 포수인 아버지와 함께 늪가에 초가삼간 짓고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해 장백산밀림속에 기여든 일제토벌대와의 싸움에서 우리 항일부대에 부상병이 여럿이 나타나게 되고 옥녀부녀가 그들을 살뜰히 간호하게 되였다. 그후 일제토벌대가 달려든데서 아버지는 부상병들을 빼돌리고 옥녀가 붙잡히게 되였는데 그는 한사코 모르쇠를 대며 적들을 늪 저쪽의 절벽가로 끌고갔다가 적지휘관을 떠밀면서 절벽에 몸을 날리였다.
그후 늪의 물은 옥녀의 고결하고 순박한 마음을 비껴담아서인지 하나의 큰 거울과도 같이 보다 맑고 푸르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선량하고 용감한 이 조선족소녀를 기념하기 위하여 장백산밀림속이 이 늪을 옥녀늪이라고 불렀다. 허나 유감스러운것은 오늘의 늪가에 《천녀욕궁지》라는 비석은 있어도 옥녀늪이라는 유래비가 없는것이다. 한어문으로는 《원지》라고 해도 조선어로는 《옥녀늪》이라고 해야겠는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울퉁불퉁한 길이 구불구불 뻗어있던 이곳에 오늘은 산뜻한 변경도로가 화룡시 숭선진에서부터 장백산산문까지 곧추 뻗었다.
지난해까지 새로 닦은 큰길은 이제 곧 포장도로로 바뀐다고 하는데 숭선에서 장백산산문까지의 거리는 불과 91킬로메터, 두만강발원지와 옥녀늪은 장백산 환행로(环行路) 관광코스에 놓이였다. 숭선에서 두만강을 건너 조선의 명승지 삼지연을 거쳐 백두산에 오르는 오늘 두만강발원지까지도 두어시간이면 다녀오겠으니 이 아니 좋을손가!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91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391 상해 1차당대회 현지 찾아서 2011-07-01 6 9369
390 【장정발자취】(9) 홍군시절 거치어 온 엽평의 녹나무 2011-06-28 4 9201
389 【장정발자취】(8) 쏘베트 1차 대회와 겨레 한 젊은이 2011-06-25 11 7831
388 【장정발자취】(7) 서금 첫 답사지--엽평 옛터 2011-06-21 16 8291
387 【장정발자취】(6) 쾌속버스는 서금으로 달린다 2011-06-17 22 6703
386 【장정발자취】(5) 등왕각에 올라 전적지 굽어 보며 2011-06-17 21 7764
385 【장정발자취】(4) 남창봉기 곳곳에 발자취 남기다 2011-06-16 18 7123
384 【장정발자취】(3) 북벌영웅 김준섭렬사 모셔진 곳 2011-06-13 17 7902
383 【장정발자취】(2) 8.1 남창봉기 기념관 2011-06-11 25 8355
382 【장정발자취】(1) 영웅 도시--남창에서 2011-06-11 26 8503
381 김염의 미망인 진이녀사 모시고 2011-06-05 28 6086
380 옛 영화스타는 완령옥 아닌 원령옥 2011-06-01 49 4903
379 노오란 금사매 비속에서 피어난다 2011-05-23 56 5427
378 오늘은 기분이 짱입니다 2011-04-24 43 6310
377 3월 삼짇날 이야기 2011-04-16 46 4996
376 남장성--강남장성 어디에 있을까 2011-04-06 29 4586
375 19년 만에 가장 크다는 보름달을 두고 2011-03-20 35 4650
374 인생소감--이해도 뛰고 또 뛰여 보았다 2011-02-10 21 4817
373 추모(3) 친구가 가다니 믿을수가 없구려 2011-01-25 30 6900
372 추모(2) 모아산--문학친구들과 더불어 2011-01-24 39 5118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