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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여행 (35) 순수한 자연에 력사가 살아있는 정자봉
2006년 05월 22일 00시 00분  조회:3363  추천:105  작성자: 리함

내 고향 여행 (35)
순수한 자연에 력사가 살아있는 정자봉

리 함

1

도문시 량수진 정암촌 북쪽산에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력사가 살아있는 정자봉과 정암산성이 있다지만 이러구러 내내 발길을 돌리지 못하다가 신록이 짙어가는 5월 20일에야 마침내 답사의 길에 오를수 있었다. 허나 안내자를 찾지 않은데서 연우산악회 일행 13명은 첫걸음부터 버성긴 산길을 걸어야 했다.

량수진에서 두대의 봉고차를 잡아타니 성이 야씨라고 하는 한족운전사는 봉고차를 정암촌 마을뒤에 멈춰세우고 서쪽으로 통한 길을 가리키면서 이길 따라 가면 된다고 하였다. 했으나 마주오던 오토바이운전사는 이 길은 저 산밑 록장으로 통하는 길이고 정자봉으로 가려면 산 두어개를 넘어야 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길은 이미 잘못 들어섰으나 일행은 내친 걸음이고 북쪽 정자봉이 환히 보이는 지점이라 서쪽산 정상에 오르면 정암산성이 보일거라고 단정하고 개의치 않았다. 때는 오전 9시반이였다.

서쪽길을 따라 한참 나아가니 록장정문이 보이였다. 사슴들이 새끼를 낳을 때라 개를 풀어놓았다는데서 록장정문 남쪽을 에도니 서쪽으로 통한 골안길이 나타났다. 산은 모두가 푸른 단장을 하고있어 일행은 감탄해마지않았다. 한주일전인 지난 토요일 연길시 의란진 망향산 산행때만 하여도 산들은 온통 벌거숭이고 잡초와 산나물이 거의 돋아나지 않았는데 불과 며칠사이에 신록이 짙은 숲속에는 고사리며 닥씨싹이며 우정금이며 함박꽃나무며 키돋움하고있질 않는가.

《오, 대자연이로다, 며칠새에 봄에서 여름에로 훌렁 뛰여넘었구만!》
《그말이 <명언>입니다. 이번 산행기에 꼭 써넣으십시오.》
필자의 감탄에 옥저님은 굉장한 호응을 보이였다. 일행 전체가 푸르른 대자연속에 빠져버리였다.

2

서쪽 골안길은 이윽토록 서쪽 올리막을 보이다가 동북쪽으로 꺽어들었다. 서로서로 고사리며 닥씨싹이며 세채며 꺽느라고 야단이다. 그중에서도 망울 지은 함박꽃나무가 유난히도 일행의 시선을 모았다.

동북쪽 골안길은 얼마 못가 동강나고 가파른 산비탈이 앞을 가로 막았다. 일행은 잠간 다리쉼을 하면서 집단 기념사진을 남긴 뒤 산비탈을 톺기 시작했다. 산비탈 정상에 오르니 골짝너머 동쪽 가까이에 웅장한 바위산이 줄달음쳐왔다.

《야——!》

일행은 저마다 탄성을 련발했다. 해발 463메터를 헤아리는 정자봉의 정면 웅위로운 모습인데 바위산중턱이나 정상에 소나무숲이 이루어져 그야말로 장관이였다. 연길시 북부의 뾰족산이나 팔도, 로투구 경내의 남도끼봉, 북도끼봉은 비길바도 못되였다. 옥저님에 의해 저마다의 디지털기념사진이 행해지고 일행은 다시 산릉선을 따라 북진길에 올랐다.

산릉선 정상에 올라서야 일행은 가까이 동북부에 아츠랗게 높은 산봉우리가 있다는것을 보아냈다. 산봉우리 바위무리에 아름드리 로송 한그루가 있다는것이 알리였다. 급기야 산봉우리를 정복하니 산봉우리는 온통 너럭바위들로 덮혀있었다. 네모반듯한 너럭바위가 있는가 하면 한면두면이 자를 대고 깍은듯 반듯한 너럭바위들이 있어 옛 사람들의 소산이 아닐가 하는 추측도 없지 않았다.

산봉우리 남쪽가 바위우에 봉우리아래서 본 로송 한그루가 서고있었다. 세월의 풍상을 겪을대로 겪은 수백년생 아름드리 로송이긴 하나 이미 생을 마감한 로송이여서 천만유감이였다. 산봉우리 아래를 굽어보니 널다랗게 패워든 저지대가 나타나고 그 둘레는 뭇산들에 쌓여 천고의 수림속을 방불케 하였다. 답사코저 하는 정암산성도 여기 산발 따라 뻗은것만 같았다.


3

일행은 산봉우리 북쪽 릉선을 따라 나아갔다. 헌데 아무리 주의해살펴도 돌성벽흔적이 알리지 않았다. 릉선부에 우묵하게 들어간 두어개의 구뎅이가 보일뿐이였다. 필경은 정암산성이 지난 릉선자리겠으나 산릉선 전체를 에돌자면 몇시간이 걸릴지 딱히 알수가 없었다. 력사와 무관한 일부 산악인들이 이를 감내할것 같지 않아 종내는 골짝 저지대로 내리는 오솔길을 택하고말았다. 그 시각 안내자인 필자는 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스스로 얼마나 실망감에 취했는지 모른다. 뒤에 알려진 바이지만 이 선색은 정암산성을 외면한 버성긴 선택이였으나 어찌할수 없었다.

골짜기 오솔길을 따라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싱그러운 냄새 물씬 풍기는 나무숲 우거진 울창한 골짝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대자연속이고 원시(原始)와 력사가 살아있는 숲이여서 옛 산성의 성벽안으로서는 안성맞춤이였다.

하나 그대로 골짜기를 내릴수는 없었다. 어찌하든 정자봉은 그쪽이 아니여서 남쪽숲속을 가로 질러 나아가야 했다. 필자가 앞장서 선두를 그으니 일행은 하나둘 줄레줄레 따라섰다.

이번 선택은 옳았다. 보기에도 웅장한 정자봉은 골짜기 넓은 바닥의 남쪽가에 소소리높이 솟아있었다. 정자봉으로 이어진 서쪽 산릉선에 다가서니 무너져내린 20메터쯤의 돌성벽이 유표히 안겨들었다. 한 구간의 돌성벽이나마 찾았다는것은 천만다행이였다. 연변내 일부 문물지나 해당 글들은 여기 산성을 발해시기의 군사요새지로 추측하지만 연변 고고학계의 원로인 박룡연선생의 해당 론문에서는 고구려시기의 산성으로 점찍는다. 최근 몇달간의 필자의 고구려 옛 장성—화룡, 룡정, 연길, 도문 구간의 전체 답사로 보아도 정암산성을 고구려시기 산성으로 보는것이 옳았다.

돌성벽은 동쪽 가까이 정자봉으로 이어졌다. 선참 정자봉에 이른 봇나무님은 정자봉 북쪽정상에 오른다고 서두른다. 허나 북쪽 바위벼랑은 험준한 바위구간이여서 오른다는것이 아이들 장난이 아니였다.

송이님과 보통님이 점심참을 마련하는 사이 일행중 일부는 북쪽바위벼랑가에 다가섰다. 북쪽지대는 깍아지른듯한 칼벼랑인데 선바위 벼랑사이로 산아래 골짝과 골짝어구가 비껴들었다. 골짝어구 저쪽은 왕청으로 통하는 국방도로이고 남북으로 누운 골안 따라 골안물이 흘러내린다면 그 너머는 산밑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산장이다.

그제서야 필자는 연변일보 김철호기자와 통화한, 버들숲 우거진 사이로 청계하가 흐르고 그 가까이에 산장이 있다는 전화내용이 새삼스레 상기되였다. 그래, 우린 여기 골짝어구를 따라 등산했어야 했다. 록장구간의 첫 걸음이 버성겨졌고 정자봉 서남쪽에서 산성터를 찾지 못한것은 골짝어구로 들어서지 못한탓이였다.

어설품이 일신을 감쌌다. 록장구간을 에돌아 정자봉 서남쪽 산행길을 찾았고 서남쪽지대 정상에서 너럭바위무리와 말라버진 로송, 서남쪽구간 산성옛터를 답사하고 정자봉 서쪽가 가까이서 정자봉 정면을 헤아린것은 불행중 다행이라 하겠다.

4

일행이 정자봉 북쪽바위벼랑가에서 기념사진을 남길 때 필자는 북쪽바위벼랑을 에돌아 정자봉 서북쪽 중간지대를 살펴보았다. 가히 오를만한 구간 같았다. 필자가 무작정 중간지대를 톺아오르니 봇나무님이 따라나섰다. 둘이서 정자봉 북쪽정상에 오르자 신벗님, 자하연님, 바우님, 상공님, 옥저님이 뒤따라 올랐다. 평평하나마 좁은 공간인데다가 바위정상이라 바람이 쓰러눕일듯이 불어쳐서 시름놓고 서있을수도 없었다. 그래도 신벗님, 자하연님, 옥저님은 좁은 공간바위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기념사진을 남겨서야 직성이 풀리였다.

그때다. 세찬 바람이 휙 불어치며 필자의 붉은 등산모를 날리였다. 다행히 바위정상 서쪽가의 나무정수리에 걸리였는데 예쁜 나비 한마리가 모자우에 사뿐 내려앉았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옥저님은 디지털사진기 샤타를 눌렀다.

바위정상을 내리고 정상아래의 로송, 남쪽 산아래 새마을 정암촌을 사진에 담고 점심참까지 나누었으나 아무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정자봉 동쪽가에 그곳으로 이어진 옛 산성터가 있을것 같아 정자봉 서쪽 바위중턱을 따라 한참 나아갔으나 남쪽구간은 낭떠러지여서 더 이상 나아갈수 없었다. 돌아와서 아쉬움을 발로했더니 봇나무님이 정자봉아래로 한바퀴 돌아보자고 했다.

둘만의 정자봉 일주가 머리를 들었다. 정자봉 남쪽구간에 이르러 정자봉 최정상에 오를것만 같아 10여메터를 톱았으나 그 우는 비교적 가파른 구간이라 서뿔리 서두르지 말아야 했다. 그래도 봇나무님은 북도끼봉 동쪽가를 따라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는지라 올라보겠다고 자진하여나섰다. 바위틈을 따라 몇메터 오르다가 필자가 거듭 만류했어야 최정상돌파를 포기했다. 하긴 반시간 좋이 걸쳐 정자봉 전체를 에돈데서 정자봉의 풍경을 속속들이 헤아렸고 정자봉 북동쪽가를 따라 골짝어구로 내리는 산릉선길을 찾아낸것은 성과가 아닐수 없었다.

5

점심 12시반에 전체 일행은 정자봉을 떠나 하산길에 나섰다. 봇나무님과 같이 산속 오솔길을 찾아낸데서 가파른 하산길은 손쉽게 내릴수가 있었다. 골짝어구에 이르니 옛 산성내 저지대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시내물이 돌틈을 따라 졸졸 흘러내리고 골짝어구 바깥쪽에 골짝어구로 이어진 옛 산성터가 길 량쪽수풀가에 대칭으로 누워있었다. 고구려 옛 산성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꺽어들어 산릉선을 따라야 했었다.

골짝어구 바깥은 김철호기자의 묘사와 같이 맑디맑은 청계하가 그 예쁜 이름을 뽐내며 남북으로 흐르고있었다. 산골물이라 너무도 차거워 물속에 오래 서있을수 없었으나 연우산악회 사나이님들, 봇나무님은 주저없이 물속에 발을 잠갔다.

우리 일행이 발길을 멈춘 곳은 세갈래 물이 모이는 합수목의 평지대였다. 그중 서쪽 시내를 따라 수십메터 올라가니 시내물은 한 아름드리 바위밑으로부터 콸콸 쏟아져나오고있었다. 나무숲 우거지고 바위돌들이 널린 시내물 구간이라 깨끗이 정리한다면 리상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를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가, 일행은 오늘 옛 산성터를 전면 답사하지 못했어도 참 좋은 산행지를 잡았다고 흡족해마지않았다.

어언 오후 2시가 가까와왔다. 도로표식을 보니 정자봉 동쪽기슭이 10킬로메터 지점이였다. 량수진에서 정자봉까지 20리라는 말이 된다. 다리목 청계하에서 옥저님, 목장님, 산신님, 송이님이 홀랑 알몸으로 목욕을 하고 새 마을로 탈바꿈한 정암촌을 답사하는 사이 기분좋은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연우산악회 일행 저저마다의 희열로 보아 도문시 량수진 정암촌 북쪽 정자봉과 그 일대 산행은 뜻대로 기쁨속에서 풀려간 산행이였다.

(2006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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