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쩌나,나는 와뜰 놀랐다.항주에서 기다릴 송도님이 걱정이다.급기야 복새판을 피우며 항주행 급행뻐스까지 오르니 8시 40분,항주 뻐스동역 도착은 오전 10시 미만이다.
이제나 저제나 대기중이던 송도님이 뜨거이 맞아준다.벌써 얼마만이던가,헤여진지 고작 두어달 푼히 밖에 안되는데 2년 세월은 쭈욱 흐른것 같다.우린 뜨거이 포옹하고 서호행 k55 환행뻐스에 올랐다.연우님들과의 그리운 이야기,산행이야기 그칠줄 모른다.
백거이를 만나보다
당나라 백거이를 만나 보았다면 웬일이냐듯 의아해 할 이들도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실이다.환행뻐스에서 내리니 서호 동쪽가 호빈로인데 <항주서호>라고 새긴 커다란 돌비석이 우릴 반겨준다.이어 희넓은 서호가 눈뿌리 모자라게 펼쳐진다.
알고보면 항주 서호는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주,소주가 있다>듯이 해내외에 뜨르르한 국가급 풍경명승구로서 호수따라 10여개 공원명승구로 이루어지고 풍경명승이 60여곳으로 헤아려진다.전체 면적이 60여평방킬로메터라고 할때 호수 수역면적만도 6.7평방킬로메터에 이른다.
서호 북쪽가 음악분수,지원군조각상을 지나 발목을 잡힌곳은 흘러간 세월속 일대위인 백거이를 만나본 시각이다.서호가에는 백성들이 백거이와 석별하는 동조각상 두어조가 일어섰는데 그 진지한 모습이 그리도 감동적이다.
불멸의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는 시백 리백에 못지않은 걸출한 인물로서 기원 822년 만 50살에 항주지사로 3년간 뛰였다.그 과정에 백성들 신망 한몸에 안으며 업적을 쌓은 모양인데 육지와 호수안의 고산을 이어주는 백제를 수축하여 그 공적이 오늘에도 여전하다.
기원 824년 5월에 조정의 조서를 받고 락양으로 소환되는데 그를 떠나 보내는 백성들과 수레 등이 길에 넘쳐나는 장관이 펼쳐졌단다.서호가의 동조각상은 바로 그 석별사의 재현 모습인데 우린 이윽토록 발걸음을 움직일줄 몰랐다.항주 서호가에서 1000여년 전의 백거이 대시인을 만나보는 기분 또한 감미롭기만 하다.
보석산과 보숙탑
송도님은 오늘의 산행지를 보석산으로 잡아 보잔다.호적지가 항주이고 항주 3년경력자인 송도님은 서호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은터에 나는 무조건 그의 뜻을 따랐다.
백제를 통해 호수가 고산과 이어지는 단교,즉 단교잔설을 지나니 오늘의 첫 산행지-보석산이다.보석산 남쪽기슭의 대나무숲이 인상적이라면 산중턱 절벽에 내리 새긴 보석산 한자 세글자가 또한 인상적이다.
울울창창한 숲속 올리막 층계를 지나 보석산 정상에 오르니 가슴이 활 틔여온다.서호의 북고봉쪽에서부터 뻗어내린 산맥이 서호와 항주시가 사이를 누비며 동진했는데 그 사이에 외로운 섬마냥 두둥실 떠오른것이 보석산이다.남송시기에는 거석산으로 불리웠다는 보석산은 어딜보나 거대한 옹근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보석산 동쪽 변두리에는 소소리 높이 솟은 보숙탑이 손저어 부른다.역시 송나라 시기로 거스르는 보숙탑은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으며 원,명,청 시기에 수건을 거치는데 그 높이는 무려 45.3메터에 이른다.이런 보숙탑이 보석산에 풍치를 더해주는데 걸음걸음 보석산 옹근 바위산들 우에서 옹근 서호를 내려다 보는 기분이 좋기만 하다.
송도님의 얘기에 의하면 옹근 서호를 가장 가까이에서,가장 인상깊게 볼수 있는곳은 바로 여기 보석산이라고 한다.과연 틀림이 없다.호수면만 해도 6.7평방킬로메터를 이룬다는 옹근 서호가 바로 발아래에 펼쳐진다.그런데도 관광가이드들은 저들의 사리에 잡혀 지나치며 보석산을 외면한다니 그 소행들이 허구프기만 하다.서호를 한눈에 굽어보는 기기묘묘한 각가지 형태의 바위산들이 그런 빗나간 소행들을 단죄하는상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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