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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산순례】(7) 지장보살님 육신보전 찾아서(2)
2007년 07월 26일 05시 54분  조회:3331  추천:106  작성자: 리함

구화산순례(7)

 

     지장보살님 육신보전 찾아서(2)

 

 

    구화산에 오른 첫날 육신보전을 배알하였지만 시간에 쫓기는 걸음이다보니 무엇을 옳바르게 헤아리지 못했다. 더구나 육신보전에로 오르는 돌계단 수자유래는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한데서 걸음에 무심하게 지나치고말았다. 이것이 맘에 걸려 세번째날 오전, 나는 코스로 육신보전을 다시 찾아나섰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북쪽산문을 지나고 미륵전을 지나니 지장선사 나타난다. 지장선사 남으로는 육신보전에로 오르는 본격적인 돌계단길인데 첫구간은 좌우량측 랑하로 나뉘여져 두갈래로 오을수 있다. 두갈래가 합치는 곳에 정심전(定心殿) 있고 다음부터는 육신보전에로 오르는 외통 돌계단길이다.

 

    돌계단길은 두개 계단으로 나뉘여있다. 첫계단 돌계단을 헤여보니 26개이다. 이는 김교각이 당나라에 나이를 가리킨다지만 지금도 깨치지 못하는것은 신라서 배로 나이 24살인데 26개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두번째 계단 돌계단은 비교적 가파롭지만 99개로 헤아려졌다. 이는 김교각님이 시적할 나이를 가리킨다고 가이드가 첫날 알려준바 있다. 하다면 84계단이요, 81계단이요 하는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나는 일순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행여나 하여 육신보전 오르는 남쪽구간에 가보니 나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남쪽 등반길 돌계단이 81개를 이루고있었다.

 

    나는 끝내 육신보전 남북등반길의 돌계단수와 수수께끼를 터득하고말았다. 지금 유래를 밝히여본다.

 

 시초, 1000여년전의 옛날 김교각님의 제자들은 스님을 모신 석탑을 보호하고저 탑밖에 장엄한 대전을 일떠세웠다. 오늘 말하는 육신탑이다. 김교각은 신라사람이여서 생전에 자기의 사랑하는 조국을 되뇌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제자들은 육신탑을 세울 좌북 남향의 상례를 타파하고 대전의 문을 좌남북향으로 열게끔 심혈을 기울였다. , 스님의 숙원을 존중하여 99 81 3급의 뜻을 따서 육신보전에로 오르는 돌계단을 84개급으로 만들었다. 헌데 지금의 육신탑의 전문은 북이 아닌 남으로 열리여있고 돌계단도 84개급이 아닌 81개로 되여있었다. 이를 두고 나는 많은 자료들을 뒤적이여서야 그에 깃든 유래를 어느 정도 깨칠수가 있었다.

 

 청나라 건륭재위기간에 건륭황제는 사복차림으로 수차나 강남땅에 다녀갔고 구화산에도 오른것으로 력사는 말한다. 육신보전을 배알할 건륭황제는 신변의 주지 방장을 보고 육신보전에로 오르는 돌계단이 모두 얼마급으로 되였는가고 물었다. 방장은 84개급이라고 답하였다. 답이 건륭황제한테는 “84” “4”발음이 죽을 ()자로 들리였다.

 

“4 죽는다는 뜻이지, 타당치 못해, 타탕지 못해.”

 

 건륭황제의 말씀이다. 육신보전앞에 이른 건륭황제는 이마살을 찡그렸다.

 

천하의 사찰들은 모두 북으로 앉아 남으로 열리였는데 대전만은 어이하여 좌남북향인고?”

 

 이에 방장은 김지장이 신라출생이고 신라가 구화산의 북녘에 있기에 이렇게 일떠세웠다고 말씀올리니 건륭황제는 김교각은 비록 신라왕실 출신이기는 하나 중화에 왔고 대청천민이니 어떻게 다를수 있는고?”라고 코방귀를 뀌였다.

 

건륭황제가 떠나간후 주지 방장은 지방의 관부와 상의하고 육신보전의 산문을 북향으로부터 남향으로 앉게 하고 돌계단도 84개를 81개로 고치여놓았다.

 

, 이런 영문이였구나!”

나는 심산이 잡히여 그제야 남북쪽 돌계단 등반길을 떠나 육신보전에로 다시 돌아왔다. 육신보전의 유래소개가 또한 나의 마음을 무시로 끄당기였다.

 

 육신보전월신보전이라 불리우는 지장보살님 묘소는 오늘의 구화산 신광령 령마루에 자리잡고있지만 력사속의 신광령마루는 워낙 남대라고 불리였다. 김교각님이 늘그막에 시종들을 데리고 남대에서 경을 읽고 참선하였다하여 제자들은 스님이 세상뜬 그의 시신을 남대에 모시였다. 3년후 안장하려고 항아리를 열어보니 앞에서 밝힌 신비한 광경이였다. 제자들이 보건대는 정녕 불경에서 밝힌 지장보살님의 변신이였다.

 

 한데서 그들은 불교의 례법대로 스님을 가부좌 그대로 수습하여 항아리에 넣은다음 남대에 탑을 세우고 그안에 안치하여두었다. 후에는 탑밖에 전각을 세우고 월신보전이라고 불렀으니 탑의 건축구조가 특이할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각안에 , 탑안에 항아리, 항아리속에 김교각님 육신을 안장한 국내외에서 보기드문 안치방법이였다.

 

 남대신광령에 육신탑이 세워져 천여년래 육신보전은 수차의 수리과정을 거치게 된다. 명나라 만력년간에 조정에서 금을 주어 절을 새로 수축하고 황제로부터 호국육신보탑(護國肉身寶塔)”이라는 절이름을 하사받았다면 청나라 강희황제와 건륭황제는 구화산에 각기 구화성경”(九华圣境), “분타보교”(芬陀普教) 편액을 내리였다. 청나라 강희 23년에 안휘 순무 유성룡에 의해 육신보전은 거듭 수리되나 함풍 7 화성사와 함께 재난속에 타버리자 청나라 동치년간과 민국초기에 다시 다시 수리하게 된다. 2005 음력 7 29일에는 강택민 주석이 월신보전을 시찰하고 호국월신보전이라는 편액을 써주시였다.

 

 아는것만큼 보인다고 육신보전에 대한 리해가 깊어갈수록 알고만 싶고 떠나기가 아쉬웠다. 육신보전가를 조용히 거니노라니 북켠 왼쪽에 소소리 높이 일어선 그루의 고목이 나의 주의력을 끌었다. 한그루는 황담수, 수령이 533년이고 다른 한그루는 청전류(青钱柳), 수령이 382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중 청전류는 금전수로서 민간에서는 흔들면 돈이 떨어진다는 돈나무로 이어졌다.

 

 청전류 바로 북쪽아래가 육신보전에로 오르는 돌계단길이다. 돌계단은 웃부분에 이르러 우가 육신보전 종루인데 종루아래를 남북으로 룡주교(龙珠桥), 천종교(天锺桥) 부른다. 돌계단 아래서 올려다볼 천교가 하늘을 가로지른것 같다하여 천종교, 천종교를 지나 돌아보면 룡주교, 아래로 가파르게 펼쳐진 두계단의 돌계단길, 귀로에 돌계단길을 다시 거치며 나는 송말원초의 진암의 김지장탑 떠올렸다.

 

 여든네개 돌층계 층층히 뻗치고

 탑우의 풍경소리 반공에 울리네

 오백년도 나마되는 지장무덤 있어

 뭇사람들 저마다 꿈길을 더듬누나

 

 시속에 흘러간 천고의 돌계단길 쭈욱 펼쳐지며 안기여드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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