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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연구 빈구석 (3)-이른바 안중근의 문안골 사격연습문제
2010년 03월 31일 12시 03분  조회:3912  추천:51  작성자: 리함


【안중근연구 빈구석】
(3)

 

 

이른바 안중근의 문안골 사격연습문제

                                       

                                            

 

일전(2005)에 “안중근의거 한민회의 조직적기사”를 쓰면서 해당자료를 훓다가 명동촌 출신인 한국 경희대 문리대학장 윤영춘선생의 글 “황무지에 세운 기폭”에서 “안중근이 이또오를 저격하기 위해 명동 문안골에 와서 사격연습을 한 일이 있었다. 문안골의 바위를 가상적으로 하여 연습을 했다.”는 대목을 읽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오늘의 룡정시 지신땅 명동일대에는 근본 문안골이란 마을이 없거니와 이 일대서 안중근이 사격연습을 한적이 없기 때문이였다. 여하튼 이는 필자의 신경을 모았다. 안중근관련 해당자료들에도 이런 취급이 가끔 보이여 주의를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아래 이런 자료들을 먼저 언급해 보기로 하자.

연변 해당학자 2명의 서명으로 된 “간도반일민족 교육의 선구자—김약연”론문 ﹝“북간도 민족운동의 선구자 규암 김약연선생 서거 55주년 기념학술대회 문집”﹞에는 “그후 안중근의사 역시 명동에 머물면서 반일무장투쟁을 계획하고 문안골에서 권총사격연습까지 하고 떠났다.”고 밝혀져 있었다.
 
룡정문화총서 “일송정” 제5기에 올려진 론문“룡정의 명동—중국조선족근대문화의 발상지”에서도“1909년 봄, 그는 훈춘으로 하여 명동에 왔다. 안중근은 명동에 와 있으면서도 자기의 무장투쟁론을 력설하면서 문암동에 가서 권총사격연습을 하였는데 그가 천주교도이면서도 천주교마을인 삼원봉에서 류숙하지 않고 기독교촌인 명동촌에서 류숙한것은 그만큼 그가 명동촌을 신임하였기 때문이며 또 어려서부터 수렵, 사격과 기마에 큰 흥취를 가졌기때문이다.”라고 서술하였다.
  중국조선민족발자취 1—“개척”에 실린 “이등박문을 쏴죽인 안중근”이라는 한편의 글에서는 문암동서술과 달리하여 아예 “룡정에 온 안중근은 명동에 자리잡고 팔도하자 만진기에서 땀을 흘리며 무예를 익혔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이런 서술들은 모두 한국 해당자료의 재현이지 이곳 학자들의 창조물이 아니다. 하다면 안중근의 사격연습 진실한 력사는 어떠한가, 이면에서 연변대학 교수 최홍빈선생이 비교적 실사구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홍빈교수님은 연변대학 원 민족연구소 소장이였다. 교수님은 안중근의거 80돐 되던 해인 1989 12 15일 부 “연변일보”에 실은 글 “항일독립투쟁의사—안중근”이라는 장편 글에서 “안중근은 일곱살때부너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열두살 때부터는 백발백중의 소년포수로 린근에 이름을 날리였다.”고 모를 박았다. 선생은 이 글에서 또 “안중근은 1907년 깊어가는 가을에 사랑하는 가족과 학생들의 눈길을 뒤로 하고 민족의 래일을 위한 투쟁의 전선—간도로 길을 재촉하였다북간도에 도착한 안중근은 룡정에 머물러있으면서 3개월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의병부대양성기지를 물색하”다가 “로씨야 령토인 연추를 지나 울라지보스또크에 도착하였다.”면서 이른바 안중근의 문안골 사격연습문제를 회피하였다. 존재하지도 않은 문제이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일본 추밀원 원장이고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은 제정 러시아의 재정대신 꼬꼬브체브와 현안문제를 토의하려고 1909 10 16일에 일본을 떠나 대련, 려순, 봉천(심양)을 거쳐 26일에 할빈에 도착하기로 하였다. 안중근 등이 이 소식을 해당신문을 통하여 알게 된것은 이해 10 20일이다.
  한민회 회장인 김치보와 그의 동지들인 안중근, 우덕순, 조군선, 김성화, 탁공규, 황병길 등은 인차 울라지보스또크 신한촌 덕창약국에 모여 이등박문을 죽여버릴 거사를 의논하였다. 이어 김치보를 총지휘로 하는 이등박문암살지휘부가 세워지고 여러 개 소조로 나뉘여 할빈, 장춘, 심양 쪽으로 가서 대기하기로 결의하였다. 결과 이해 10 26, 이등박문은 할빈에 대기중이던 안중근의 권총에 맞아 황천객이 되였다. 이 짧은 기간내에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이기 위하여 로씨야땅에서 북간도 명동에 와서 사격연습을 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1909년 봄, 명동행도 문제투성이다. 항일독립단체—한민회의 주요성원인 안중근은 회장 김치보 등 11명과 함께 1909년 새해 첫날 연해주 연추부근의 카리(김치보가족사에는 신한촌으로 되여있음)란 마을에서 단지혈맹을 결성하고 의병을 다시 일으키려고 작심하였다. 그뒤 명동에 다녀갈 기회는 없지 않으나 1909년 봄에 천주교도인 안중근이 기독교촌인 명동촌에 머물렀다는 서술은 사실과 퍼그나 어긋난다. 왜냐하면 이해 봄까지 명동과 그 일대에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동에 교회가 선것은 1909 5~6월경이다. 이해 5월경에 신민회간부이고 리동휘의 동지인 정재면이 명동학교에 선생으로 부임하면서 기독교력사가 시작된다.

다시 안중근의 권총사격연습에로 돌아오면 명동일대에는 문안골이란 마을이 없다. 문안골이 아닌 문암동은 오늘의 룡정시 개산툰진 회경 6(개산툰시내 서쪽 부근 마을)를 가리키는데 명동촌과는 곧게 쳐도 20~30리 거리가 잘된다. 여기서 지적하고 넘을것은 원 룡정시 덕신향 석문촌 석문구간이 문암동이 아니라는것이다. 그리고 열두살 때 백발백중의 소년포수로 소문이 났다는 안중근이, 사냥의 모습을 자주 보인 안중근이 여기저기서 권총사격연습을 했다는 자료가 보이는데 그 자체가 의문점이 없지 않다. 최근에 필자는 항일독립지사이고 연해주 한민회 회장이고 그후의 로인단 단장이였던 김치보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또 이러한 자료와 맞띄웠다.

1905년에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후 종성군수를 지냈던 김치보는 군수고 뭐고 내동맹이 치고 결연히 러시아 연해주로 가서 신한촌에 항일독립단체 한민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상기와 같이 안중근은 한민회의 주요성원이고 김치보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로서 김치보의 집에 2년간이나 머무르면서 김치보가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조선인학교를 꾸리며 단체의 후근일에 몸을 잠글 때 안중근은 그를 도와 대업을 받들며 매일 륙절포(권총) 사격연습을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 진가는 단언하기 어려우나 한국독립사 해당자료가 그렇게 말하고 김치보가족사에 그렇게 씌여져있었다.
  지난 90년대초 김치보항일투쟁사 자료수집과 조사결과도 그러했다. 안중근이 하도 이악스레 접어드니 술병을 공중에 던지고 쏘아도 백발백중이였단다. 안중근이 사격에 숙달하여 작은 산새들도 쏘아 맞혔다는 것은 이런 연유였다. 그러니 안중근은 잠도 포근한 모양이였는데 잠잘 때면 굳잠에 빠져 베개를 빼내도 세상모르고 잠만 잘 잤다고 한다. 그런 안중근한테 이등박문은 끝내 당하고야 말았던것이다.

우와 같이 본 글에서 이른바 “안중근의 문안골사격연습문제”를 가지고 두루 검토하여보았다. 긍정적인것은 안중근의 문안골사격연습문제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안중근이 항일무장투쟁의 대업을 위해 명동촌에 이르러 한때 동만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리여진 김약연과 대사를 도모했다는것은 력사사실인것 같다. 단 명동촌에 간 시간문제가 오차를 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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