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말에 “식시무자위준걸야識時務者爲俊杰也”라는 말이 있다. 류비가 제갈량을 찾으러 갈때 나오는 말이다. “식시무자”는 세상의 변화를 정확히 포착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또 “철부지”라는 말이 있다. “철부지”란 철을 모른다는 말이다. 철에 맞추어 옷을 갈아 입고 철에 맞추어 파종도 하고 기음도 매고 물도 줘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수 있다. 또 사람이 철에 맞추어 옷을 가라 못 입으면 꼭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만다.
나는 농민의 자식이다. 농촌에서 자라고 농촌에서 몇달간 농사일까지 해온 나는 제딴엔 농사일을 아노라고 친구들과 떠벌였는데 어느 해인가 터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 채소 농사를 지으면서 자기의 바탕을 진짜로 알게 되였다. 어느때 밭에 거름을 내고 어느때 밭을 번지고 밭갈이를 하고 파종하고 또 어느때 기음을 매고 비료를 주는지 하나도 아는것이 없으니 이런 철부지 라고서야! 부모님께서 내가 공부하기에 열심하니 공부나 하라고 밭의 일에 손을 못 대게 하신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하는수 없이 매사마다 물으며 농사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이것이 철을 모르는 대가이다. 다행으로 철을 아는 분이 계셔서 알려 주셨으니 말이지!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아무런 법칙없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변한다. 혹은 춘화추동, 혹은 생노병사, 혹은 생장염장, 혹은 원형이정 등등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모두 마디가 있는데 이런 마디를 철이라고 한다. 24절기가 바로 그것이다.
바람따라 돛을 달 듯 철을 아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만사는 다 철이 있고 또 그 철을 놓치면 농사나 일을 망치기 싶상이다. 우리의 육체와 또 우리네 정신 및 건강마저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존재한다. 지어는 인간세상 마저도 철이 있고 때문에 그 철을 아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제갈량이 바로 그러한 철을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류비가 세번이나 제갈량을 찾아가는 미담이 전해지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는 철을 시국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시국을 아는자를 준걸이라고 하는 것이다.
철은 능히 알수 있는것이다. 정신만 차리고 잘 관찰하면 얼마든지 알수 있는것이다. 마치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면 가을이 왔음을 알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설사 깊숙한 기온의 변화가 잘 알리지 않은 암방에 있더라도 낙엽의 소리를 들으면 가을이 왔음을 알수 있는것이다. 경제사회, 문화생활, 사회발전 등에도 모두 계절이 있다.
그러면 지금은 무슨 계절인가?
고도로 발달된 물질문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들뜨게 한다. 돈을 위하여, 명예를 위하여, 지위를 위하여 정신없이 뛰게 한다. 이러한 대가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그중의 많은 사람들은 즉 돈을 바라던 사람은 돈을 벌고, 명예를 추구하던 사람들은 명예를 얻었다. 지위를 바라던 사람들은 당연히 지위를 얻었다. 남을 속이고 속고, 인정, 사정 안보면서 자기의 속을 채우기 위해 정신없이 뛰던 사람들이 얻을것을 다 얻고 나니 인젠 자기의 본래의 모습이 그리워 진다. 나는 왜 사는가? 내 주위의 사람들은 왜 나를 괴상한 눈으로 보는가? 사람들은 왜 나를 피하는가? 사람들은 왜 나를 무서워 하는가? 이때에야 사람들은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무엇인가 잘못되였음을 느끼게 된다. 또 자기가 이때까지 살아온 삶을 검토하게 된다.
“인생하자미요, 왈의왈식연후에 왈색이라”, 즉 인생의 재미는 기본으로 되는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세상의 색다른 빛을 추구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칠칠야밤에는 대낮을 그리고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는 서늘한 밤을 갈망한다. 이는 모든 인간의 속성이다. 운동하면 쉬고 싶고 쉬다 나면 또 활동하기 싶다. 배운것이 있으면 써먹으려 하고 모르는게 있으면 또 배우려 한다. 놀음에 지친 사람은 조용히 살고 싶어하고 조용히 보내던 사람은 나가서 기분 좋게 놀고 싶어 한다. 서구는 물질문명이 발달하였지만 동방의 정신문명을 지향해왔고, 동방은 서구의 물질문명을 지향해 왔다. 경제의 발전과 생활의 여유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공허를 인식하게 되고 새로운 사상을 갈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법칙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이 물질문명에 대한 추구와 이룩한 성과는 사람의 마음에 자기자신을 찾으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필경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떠나 너무 먼곳까지 왔던 것이다.
바로 이때 韓流가 불어온다. “韓流”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인 침투로서 한국인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韓流는 寒流처럼 자기의 사욕을 채우기에 달아올랐던 우리의 머리를 시원히 식혀 준다. 사람들은 이제야 느낀다. 오, 이 세상에는 욕심을 채우는거 내놓고도 정이라는 것이 있구나! 사람들은 이제야 정을 갈망하고 찾기 시작한다. 정으로 철철 넘치는 인정미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찾기 쉽지 않다. 오직 韓流에서 찾을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여 韓流는 초원의 들불처럼 전 세계를 누비며 불타오른다.
한류가 중국에 불어치니 중국에는 한류를 거부하는 세력이 자라난다. 그러나 빈통을 물속에 넣으면 자연히 물이 새여 들어가기 마련이다.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시대와 사회라는 물결속에 들어있다. 그러한 마음의 갈망의 외침소리는 이러한 무리들이 결코 막아낼수 없는 것이다. 한류가 이 일을 못해내면 인도류든지 공자나 노자류든지 꼭 이 일을 하게 돼 있는것이 세상사다. 이 흐름을 막으려는 것은 귀막고 방울 도적질하는 격으로 허사이다. 텅빈머리를 지금의 사회와 시대라는 물결속에 넣으면 자연히 자기를 찾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물이 거세찬 물줄기로 새여 들어오기 마련이다.
진정으로 성숙된 인간은 철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무슨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무슨 철이다.” 라고 딱 짚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기업가도 철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기업가들이 한류에 힘입에 경제상에서 이룩한 성과를 보면 이를 알수 있다. 물론 연변의 김치도 이 덕에 호황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이런 寒流의 문화가 시급한 때이다. 마음의 고유의 주파수를 울려 공명을 일으키게 하는 문화가 급시적이다. 특히 세계에서 제일 빠른 템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더욱 시급하지 않는가고 생각한다.
경제가 상대적으로 침체된 연변의 기업도 이러한 형세에 눈을 뜨고 목적있게 힘을 주입한다면 연변의 재기에 큰 발판이 되지 않겠는가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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