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일 나는 연길시 동쪽의 하룡촌에 갔댔었다. 토요일인데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기념일이 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 때문에 시내와 하룡촌을 통하는 14선로 중형뻐스는 그날 따라 붐비였다. 비록 점심때여서 사람이 적다지만 역시 열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뻐스에 몰려가고 있었다. 나는 느적느적 사람들의 꽁무뉘를 따라 뻐스 문어구에 다가갔다. 중국의 어디에서도 볼수 있는 자리싸움이 벌어질 판이다. 드디여 마지막 사람이 내리자 사람들은 일시에 문을 향하여 몰린다. 이럴때에는 힘이 있는 사람이 우세인 법이다. 앞에 있는 한 50여세 되여보이는 중년사나이가 두 팔로 차문을 떡 집고 버티고 막아서자 다른 사람들은그의 겨드랑밑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손자인듯한 어린애한테 어쩔수 없이 차례를 양보할수 밖에 없었다. 가까스레 기다려 다 올라가자 나도 드디여 차에 올랐다. 올라가보니 자리가 두개가 남아 있었다. 자리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격태격 밀고 닥치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내가 앉으려고 하니 “유우옌(사람이 있다)”이라고 한다. 나는 엉겹결에 다음 자리에 앉으려 하니 뒤에서 언제 올라왔는지 벌써 두사람이 와서 번개같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버렸다.
체질적으로 남과 시닥질을 하기 싫어하는 나는 늘 안해로 부터 행동이 굼뜨고 욕심이 없다고 핀잔을 듣는다. 이 자리에 안해가 있으면 또 푸념을 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도모르게 쓴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찾아 서 있었다. 차는 드디여 떠났다. 하룡촌은 지금 연길시의 관광명소로 부상하여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다니지만 시내서 하룡촌으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 울퉁불퉁 말이 아니다. 길은 이미 낡아서 볼품없이 파괴되였던 것이다. 나의 몸은 차체와 함께 이리저리 치우치면서 몸가누기마저 어려웠다. 이때에야 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저으기 부러워 났다. 자리 찾기에 밀고닥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할만 했다.
자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언어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구석구석에서 모두 자리에 관한 말을 찾을수 있다. 자리는 어떠한 대상이 한정한 합당한 곳에 있어야 함을 가리킬때 쓰는 말이다. 설 때에는 제자리, 설자리, 선자리, 앉을 때에는 앉을 자리, 앞자리, 뒤자리, 옆자리, 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자리정돈, 누울때에는 누울 자리, 잠자리, 이부자리, 돗자리, 삿자리, 보금자리, 집에는 집자리, 사람이 죽어서는 묘자리, 마음에는 마음자리, 하늘에는 별자리…… 자리에 관한 말은 정말 적지 않다. 속담에 철없는 사람은 “앉을 자리 설 자리 모른다”는 말도 있고, 또 “자리보고 발을 펴라”는 말도 있다. 한곳에서 오래 생활하면 자리가 잡히고 생활하다 불편하면 자리를 뜨고 한다. 나는 옛날 국장자리를 넘보다가 지금은 단념하고 말았다. 나의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에도 자리가 있는데 어느 일본학자는 “언어와 피는 자리와 주인과의 관계”라고 말을 한적이 있다.
이외에 자리와 같은 말로 쓰이는 언어도 적지 않다. 예하면 좌석(상등석, 평민석, 호화석), 석(나라의 주석, 공회주석), 위치 등도 모두 자리를 뜻하는 언어들이다.
동방 철학사상의 원형으로 되는 주역에서도 자리에 대하여 특별히 중시하였다. 대성괘에서 2효와 5효에 처해있는 효를 得中이라 하며 제일 중요한 자리로 본다. 또 효가 제자리를 차지하는가 못 하는가 하는것이 괘의 성질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음의 자리에 음효가 들어가고 양의 자리에 양효가 들어가면 제자리에 있다(得位, 當位)고 한다. 제자리에 못 들어가면 不得位 혹은 失位이다. 그러고 보면 주역은 기실 자리에 관한 학문인 것이다.
자리는 정말 중요하다. 한어에 약한 내가 금방 대학에 갔을때도 제일 처음 배운 말이 “짠디팡(자리 차지하기)” 이다. 사회에 나오니 일자리 찾기 짠디팡에 두달을 기다려서야 겨우 취직이 되였다.
그러면 사람은 왜 자리를 찾는것인가? 자리를 찾는것은 안정을 찾으려는 것이다. 자기자리를 찾지 못하면 안정되지 못하고 안정되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마음이 불안하면 일을 하되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책을 보되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아니하며 궁리를 하되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정신이 불안하고 소화불량이 오고 스트레스로 신경쇠약이 오며,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침착성을 잃어 대인관계에 실패하고 정신장애로 신체건강이 파괴되고 사업에도 아차! 하는 사이에 실패를 맛볼수 있다.
현실생활에서 우리는 각 분야에서 모두 자리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정치분야에서 보면 정치에도 자리 다툼이 있다. 어느 사회도 훈구세력(조선조에서 공훈을 세우고 정권을 이미 장악한 세력)과 신진세력간의 세력다툼이 있다. 어떤 파든지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보수주의자가 된다. 훈구세력은 자기의 낡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힘을 다 쓰고 신진세력은 훈구세력의 낡은 세력을 타파하기 위하여 온갖 힘을 다 쓴다.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바로 그렇다. 여당은 자기의 이익과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분투하고 야당은 여당이 되기 위하여 여당이 하고자 하는 일을 사사건건 저애한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산력이 발전하여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새로운 생산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처음에는 생산력의 발전에 적극적인 추진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생산력이 기존의 생산관계와 부합되지 않는다. 특히 낡은 세력들이 형성한 이익분배계통이 고정되면 온갖 부패가 부화된다. 이때부터 새로운 생산관계와 기존의 생산관계 사이의 암투가 시작된다.
사람의 몸에도 자리 바뀜이 있다. 이것이 바로 신진대사이다. 낡은 세포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고 나서는 자연히 자기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어 생명체의 기능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낡은 세포가 제때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암 같은 질병도 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자리가 있다. 사람이 젊어서는 몰라도 나이 좀 들면 자나깨나 고향생각이다. 그래서 제자리에 돌아오려 한다. 사람이 운명하는것도 제자리에 돌아가는 것이지만 살아 생전에 그리운 고향에 가는 것도 공동한 염원이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타향에서 사는 사람들의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정년퇴직하면 고향에 돌아가려 한다. 하다못해 죽어서 뼈라도 고향에 묻히려 한다. 어떤 사람은 연길은 돌아오는 자리라고도 한다. 외국가서 돈 벌고는 외국의 그 좋은 생활환경도 마다하고 그리운 산, 그리운 강, 그리운 사람을 찾아서 연길로 돌아온다. 대도시에 가서 사업에 지쳐 있다가도 고향으로 돌아온다. 장춘토배기 동창생이 있는데 장춘태생이고 조선말도 잘 못하는 처지지만 일본에 가서 돈 벌고는 요즘은 항목을 찾아달라고 성화다. 우리 민족이 많은 연길에 와서 투자하고 사업하며 살고 싶다고 말이다. 이 또한 자리 찾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점을 감안해볼때 우리 연길은 경제만 경제라지 말고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평온한 마음의 자리를 깔아주는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도 마음자리를 못 찾으면 안 된다. 방황하고 고독하여 술마이고 성깔부리고 놀음질에 빠지고 지어는 싸움질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자기 마음자리를 찾지 못해 살인까지도 서슴치 않는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연애에서나 혼인에서 실패했다고 자살하는 예도 있다. 그러고 보면 연애나 혼인도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 자리를 찾아 온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사회에 나가 큰일들을 할수 있는것이다. 家和萬事成이 바로 이 말이다. 또 治天下者는 먼저 修身齊家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로보면 가정의 자리위치의 중요성을 알수 있다.
언어에도 자리가 있다. 위에서 어느 일본학자가 말한 “언어와 피는 자리와 주인과의 관계”라는 이 말이 바로 그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 민족의 언어의 자리는 피라는 말인데 단군의 피를 물려받은 조선족이면 조선말을 해야 편하다는 말이다. 때문에 자기 자리에 알맞는 자기 말을 할줄 아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자기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내는건 제자리에 앉히는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때와 장소에 따라 자리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언제나 제자리에 앉아야지 남의 자리에 앉으면 안된다. 우리 사회의 분쟁은 모두 제자리에 안 앉고 남의 자리를 넘보는데서 생기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급은 상급의 자리를 넘보고 상급은 물러갈 때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떡 차지하고 앉아서는 자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해 경계하고 타격한다.
물론 자리 다툼이 나쁘다고만 볼수 없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이러한 자리싸움이 부단히 일어나야 한다. 이런 싸움이 없고 오히려 고요하다면 생기가 없어지고 멸망이 가까와 진것이다. 옛로마가 바로 그 예이다. 옛로마는 그때 당시에 너무 강해 누구도 옛로마의 자리를 위협할수 없었다. 결과 사회는 부패해질대로 부패해지고 사람은 나태해 질대로 나태해져 결국에는 명망되였다.
이토록 자리는 우리의 일생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리가 좋으면 모든일이 다 뜻대로 되는것도 아니다. 젊은 사람을 자리에 앉혀 놓으면 갑갑해서 못 앉아 있는다. 활기에 가득 찬 이때에는 자리 보다도 뭔가 보고 싶고 탐구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고 어떤때는 싸우고도 싶다. 미국의 은행에 가 보면 직원들이 자리에 앉아 못 있게 한다고 한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나태해지고 사업효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리는 어찌보면 또 마약과도 같다. 너무 편하고 황홀하여 좀 취해 있느라면 바깥은 벌써 도끼자루가 썩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는 손오공이 곤두박질하는것 보다도 더 빠르다. 학교를 필업하고 분배받은지 어제 같은데 지금 보면 사회나 사람들의 의식에나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다. 옛날의 가난뱅이가 부자가 됐는가 하면, 옛날의 깡패가 철학가가 되여 정치를 논한다. 아름다운 옛 동창은 벌써 주름이 가득 늘고, 얼마전의 높은 산은 오간데 없고 호수가 생기고 골프장이 생겼다. 진보하려는 사람에게는 안일한 자리가 적이다. 앉을 사이도 없이 쉴새없이 뛰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보금자리를 찾아 쉼을 쉬는 여유를 향수해야 실패없는 인생을 살수 있다.
총적으로 자리를 찾는것은 우주의 법도이다. 이 자리를 찾는것을 잘 장악하고 이용해야 하며 때에 따라 바란스를 잘 맞우어 자리를 바꿀줄도 내줄줄도 알아야 한다. 자리에 너무 미련을 두는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자리를 찾는 마음과 자리를 뿌리칠수 있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지혜이며 성공의 금열쇠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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