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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가 “가요무대”관람석에서 “우리 한국사람은 가요무대가 없으면 다 죽어요”라고 고백했다. 그만큼 문화가 한 민족의 생활에 뿌리깊이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아리랑”, “꿈에 본 내고향”, “물방아 도는 래력”, “섬마을 선생님”과 같은 노래는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이미 깊숙히 스며있다.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도 마찬가지이다. ”붉은 신호등(红灯记”, ”위호산을 지혜롭게 탈취하다(智取威虎山)” 등 8개의 본보기극(八个样板戏)만 몇십번 보고 또 보았던 젊은 세대들이 개혁개방을 맞이한 1980년대 대학시절 등려군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도 있구나!”하고 감탄했었다. 그때만해도 어느 한 령도는 등려군이 부른 “당신은 언제 다시 오나요(何日君再来)” 노래가 항일전쟁시기 중국인민들의 투쟁 의지를 마비시킨 노래라면서 시비를 걸어왔다. 지금은 누구나 마음대로 부를수 있는 노래이지만.
매주 한국TV방송에서 나오는 “가요무대”도 1970년대엔 모두가 가만히, 그것도 아주 친한 친구끼리만 남몰래 들었던 노래였다. 그중 “홍콩아가씨”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이 남아돈다. 개혁개방으로 하여 재생된 “모스크바 교외의 저녘밤”, “카츄샤”같은 “쏘련수정주의”노래가 당연히 부모세대들로부터 중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였다.
일상 민간생활에서 우러나온 민족노래는 문화중에서도 가장 생명력을 지닌 문화였다. 지금 명곡으로 널리 알려진 많은 한국(조선)노래는 일제강점시기 작사, 작곡된 노래들이다. 일제가 총뿌리로 한민족을 억압할수 있어도 그 민족의 정신과 마음을 모두 짓밟고 빼앗아갈수는 없었다.
문화는 인민대중이 생활속에서 창조하고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정신적으로 간직해야 영원한 생명력을 과시할수 있다. 금전과 권력, 정치에 오염된 노래나 문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문화대혁명동란은 중국인민들에게 깊은 재난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4인방”은 “문화대혁명은 그래도 좋아요” 란 노래를 지어 대중들에게 부르라고 강요했지만 1976년 “4인방”이 타도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인차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인민대중들에겐 어느 노래만 부르라 강요하고 저희들끼리만은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남녀사랑을 주제로 한 서양영화를 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중앙인민정부는 이러한 영화들을 모두 공개해 시민들이 다 볼수 있게 되였다 인민들과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고락을 같이 하는 당과 정부는 민심을 얻게 되였다. 전번주 북경농업전람관에서 “전국비물질문화전시회”가 열렸고 리장춘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도 참석했다. 연변에서도 우리 민족의 악기인 가야금을 선보였다.
문화는 개방됨에 따라 생명력이 더욱 강해진다. 우리는 중국 내륙과 대만동포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등려군의 노래를 즐겁게 부를수 있고 가요무대에 나오는 우리 민족의 노래도 즐겁게 부르면서 형제민족에게도 소개해주고 배워주며 인류의 경제, 문화, 사회의 국제간 교류와 합작에 적극 헌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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