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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옐레나는 99년 내가 한국에 있을때 어학원에서 같이 한국어 공부를 한 고려인 친구이
다. 다시 말해 까자흐스딴에서 온 우리와 같은 민족의 여자애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
고 피부색이나 얼굴 륜곽, 키가 작은 것이 나랑 너무나 비슷했다. 우리는 피를 나눈 같은 민
족임에 틀림없었다. 아마 한반도에서 태여났더면 그도 영옥이나 순희같은 이름을 가졌을지
도 모른다. 우리는 그를 레나라고 불렀다. 레나는 그의 애명이였다.
레나를 통해 나는 처음 조선족 이외의 다른 해외동포들의 삶을 알게 됐다. 그를 처음 봤
을 때, 그가 까자흐스딴에서 온 고려인이라는 소개를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왠지 그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고 말도 더 걸어보고 싶었다. 그가 민족에 대해서 어
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까자흐스딴에서의 우리 동포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를
대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고 고백했다. 한마디로 덥지도 차
지도 않은 냉정한 애였다. 나는 그게 서운했다. 그러나 레나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감정은
나로서도 어쩔수 없는것이였다. 그것은 련민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고 동병상련이라고나 할
가... 그러나 동질감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우리의 다른 점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됐다. 나
랑 꼭같이 생긴 레나의 입에서 알아들을수도 없는 로씨아어가 줄줄 나올 때 내가 느낀 당혹
감이란 이루다 말할수 없이 큰것이였다. 아마 내가 중국친구들이랑 한어로 대화할 때 레나
도 당혹스러웠겠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많이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 현실이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였음을 고백한다.
레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은 지금의 조선땅 함경북도였는데, 일찍 연해주에 이주하셨
다가 1935년 스딸린의 민족이주정책 때문에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를 당하셨고 지금의 까자
흐스딴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내가 고향 친구들과 함경도 사투리를 하면 레나는 반색을 하
면서 "언니, 그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말씨예요!"라면서 많이 들어봐서 정겹다고 말했다.
얼굴모양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정서도 다른 러씨아 여러 민족속에서 평생을 서럽게 보내
신 레나의 할머니는 레나가 한국에 유학올 때 고국과의 연계의 끊을 놓지 않으시려고 족보
를 주면서 꼭 한번 확인해보라고 부탁하셨단다. 레나는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아하는 눈치
였는데 이곳저곳 아는 사람을 찾아서 확인을 하는 과정에 가족과 민족 그리고 우리는 왜 이
주를 했는가는 사실을 새삼 놀랍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레나의 정체성고민이 시작된 것이
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레나의 조상들은 북쪽에서 이주를 하셨기 때문에 분단 이후 족보는
남북이 공유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확인할수 없다는 답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가슴아파하면
서 할머니께 어떻게 말씀드릴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레나의 가족은 본래 까자흐스딴에서 생활이 괜찮은 편이였는데 구쏘련이 해체되면서 까자
흐스딴으로 국적을 바꾸게 됐다. 러씨아어를 제1 외국어로 배운 레나나 레나의 오빠에게
취직이 어렵게 됐고 부모님들이 평생 아글타글 모은 재산도 화페가치의 차이로 모두 날아나
게 됐다. 순식간에 삶의 희망을 상실한 부모님들은 그제서야 고국과의 연대를 생각하면서
레나에게 한국어를 잘 배울 것을 바랐다. 로씨아의 해체와 더불어 많은 한국사람들이 고려
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레나에게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온 것이다. 선교단체들과
만나면서 신앙을 가지게 됐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레나를 보면서 나는, 해외에 사는 700만 동포들이 비록 고국을 떠난 시기는 다르고 정착
해서 사는 국가의 상황은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의 뿌리는 한반
도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다.
나와 레나는 어학원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태권도, 사물놀이, 도자기, 서예 등 과목을 훌륭
히 소화를 해내서 칭찬도 많이 들었다. 나는 레나와 무언가 같이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
척이나 뿌듯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정서에 익숙한 원인으로 다른 민족보다는 더
빨리 한국문화를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역에서 레나를 바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늘 강하고 냉정했던 레나가 배웅나간
한국인 룸메이트와 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진한 민족애 앞에서 마음을 연 것이다.
레나의 꿈은 러-한 번역일군이 되는 것이다. 레나의 꿈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아무리 어렵고 서럽더라도 지치지 말고 밝은 웃음을 간직하자고 약속하고 싶다. 우리 해외 동포들의 삶이 서럽지만은 않을것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레나와 다시 만나는 날, 그때에 우리 모두의 삶이 보다 안정적이였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2004.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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