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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황해>
로계선
요즘 조선족사회에서는 영화 <황해>(한국, 라홍진 감독)가 련일 화제다. 영화가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영화에 대한 우리 조선족들의 관심이 증폭된게 아닌가 싶다.
조선족사회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는 일부 묘사들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만큼 잔인한 장면때문에 조선족을 비하하기 위한 영화라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치열한 생존환경에 로출돼있는 조선족 가장 <김구남>의 모습을 통해 서로 많이 닮아있는 세상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아보려는 감독의 시도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사실 영화는 그저 영화로 보면 그만이다. 예술에는 국경, 민족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라홍진 감독이 조선족을 폄하할 의도가 없고 오히려 조선족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찍었다고 했으니 나는 그런 항변을 믿으며, 그래서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에 느껴졌던 아쉬운 부분은 그저 옥의 티라고 쳐두려 한다. 오히려 어디에서든 중심에 설수 없는 우리 조선족들의 삶을 빌어 사람사는 세상의 모습을 두루 관조할수 있게 해준 영화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어찌됐든 투박하지만 구수한 연변사투리와 내 주변의 낯익은 모습을 스키린에 옮겨 완벽하게 표현해낸 주연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에 우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것에 린색해서는 안될것이다.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본다면, <황해>는 모체육대학교 교수인 김승현을 둘러싼 이중 청부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인 사랑과 질투, 야망이 자리하고 있다. 죽임을 당하는 김승현도, 죽이려는 김태원이나 김구남도 자신이 믿는 <사랑>을 위해 처절한 싸움판에 뛰여든것이다. <사랑>, 그것을 위해 친구의 애인도 탐할수 있고, 애인의 남편도 죽일수 있는 인간 세상의 이면을 영화는 시작부분의 나레이션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내 나이 11살때 동네에 개병이 돌았다… 우리 집 개도 개병이 걸렸는데 처음에는 제 에미를 물어 죽이더니만, 후에는 제 아가리로 물어죽일수 있는건 몽땅 물어죽였다. …개는 천천히 드러누워 죽었다… 갑자기 그것이 생각난것은 그후에 한번도 다시 돌지 않던 개병이 다시 돌기 때문이다. 개병이 돌고 있다.>
연변사람 김구남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이 나레이션은 김구남의 주변 생활을 개병이 도는 그런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사랑하는 부인을 한국에 돈벌러 보낼수 밖에 없었고 소식이 끊긴 부인때문에 청부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서슴치 않았던 김구남은 현재 한국체류중인 20만 동포들과 그들 가족의 설음, 그리고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삶의 고달픔을 호소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김구남은 돈과 사랑때문에 그 누군가의 목숨을 노렸지만 쫓고 쫓기는 속에서도 부인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부인의 골회함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한국으로 떠나던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에서 부인 김화자는 영원히 살아있으며 그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
돈이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조선족 브로커 면정학은 김구남과 김태원을 리용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지만, 자기의 동료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면정학의 정신세계에서 윤리나 도덕은 설자리를 잃었다. 그런 면정학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욕할수만 없는것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인간의 이면에 감춰진 본능적인 욕망을 가감없이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면정학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런것에서 비롯된다.
무릇 어떠한 예술작품이든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건 우리 인간들 스스로의 모습이다. 조선족의 모습, 한국인의 모습이 아닌 우리 모든 인간의 모습이다. 사랑과 질투에 뒤엉키고 부대끼며 도덕성을 상실하기도 하고 또 회복하기도 하는 그것이 인간세상의 참 모습인것이다. 하여 <황해>속의 일부 설정에 대해 그것을 굳이 조선족의 모습이라 기분 나빠할 리유는 없을것 같다. 어떤 작품이 눈에 거슬리거나 정서에 뒤틀리면 그건 바로 부족한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두자.
<황해>를 통해 조선족을 좀 더 이해할수 있는 관객들에게는 조선족사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된듯하여 아쉬운 측면도 분명 있지만, 영화를 통해 개개인의 정체성을 넘어서서 <개병>이 돌지 않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같이 꿈꿀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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