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간섭>이라는 어떤분의 아이디를 보고 10살도 못됐을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다들 단층집에서 살았고 저녁만 되면 마땅히 할일도 없어 이웃집에 마실을 많이들 다녔다. 그날도 나는 마실 나간 엄마를 찾으러 옆집에 갔는데, 대문을 여는 순간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어수선한 말소리에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감히 문을 떼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발밤발밤 창문에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저씨랑 아줌마가 잔뜩 화가 나서 싸움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 아저씨가 아주머니한테 손을 대기 시작한것이다.
못볼것을 본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아버지, 큰일났습니다. 옆집에서 아저씨가 아줌마를 막 때려요...>하고 소리질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으셨다. 어린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얼른 달려가서 싸움을 말리든가 해야 할것 같은데 <또 싸우누만... 언제까지 저걸 말려야 하나?>라고 중얼거리시며 눈살만 찌프리시는것이였다. <어린애들은 그런걸 참견하면 못써...> 아버지는 보던 텔레비죤에서 눈도 떼지 않으신채 <못들은걸로 하자> 하는 그런 눈치셨다.
그 후에도 그 부부는 자주 그렇게 싸웠는데 참다못해 이웃들이 가서 말리면, 아저씨는 아예 대문을 꽁꽁 닫아걸고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부부사이>는 내정이기 때문에 남의 가정문제에 나서지 말라며 이웃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멍들어다니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이웃들이 혀를 끌끌 찼지만, 괜히 이웃사이만 서먹해질가봐 말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던 <가정폭행>, <아동폭행>이 이제는 많은 나라들에서 녀성이나 아동에 대한 인권보호차원에서 누구라도 심하다 생각되면 간섭할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됐다. 시민의식이 제고된것이라 풀이할수도 있겠다. 텔레비죤에서도 로인학대, 가정폭행, 아동폭행 등 문제로 이웃들이 신고해서 피해받는 힘없는 사람들이 법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익을 지켜가고 있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남의 가정가정문제가 온전히 그 가정의 <내부문제>이기만 한지, 아니면 누구나 관심해야 하는 사회의 <공공의 문제>인가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론란이 될것임에 틀림없다. (그런것은 어떤 명확한 선을 긋기보다는 큰 틀안에서 사안 대 사안으로 리해하고 처리하면 될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내정간섭>이라는 개념이 <더불어 사는 세상>, <지구촌>, <세계화> 등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개념, 그리고 이미 많이 변화한 세상으로 인해 새로운 내용들을 계속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가정의 일이라 해도, 그 가정의 누군가가 다른 한 구성원의 생활과 안전을 위협할 될 정도로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다면 그 가해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제어를 받아야 할것임에 틀림없다. 한 인간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가간의 일도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는다. 세계가 갈수록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로 긴밀하게 결합돼 가고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 일파만파 퍼져가며 다른 나라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경우가 경제분야를 포함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많은 국가들은 서로 리해관계에 따라 기구를 만들고 협력을 도모하며 상생의 길을 탐색하는것이다.
<내정간섭>을 덜 받기 위해서는 역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 기존의 사고, 습관, 행동양식을 바꿔나간다는건 외적인 요인에 의해 내 자신이 조금 불편해질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는 개개인이 조금 더 불편해지는 결과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 온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편도 처음에는 말 그대로 불편이지만, 조금만 몸에 익으면 자연스러운것으로 변할수 있다.
<나에 대해 아무 소리도 하지 마라>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고, <나>자신이 뭘하는지는 살피지 못한채 남에 대해서만 말하는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직까지 <내정간섭>이 정서적으로 썩 내키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다. 상호간의 감독과 견제의 눈초리밑에서 주체적인 행동들이 조금 더 상식을 지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