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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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부끄러움... 댓글:  조회:1442  추천:4  2012-01-30
  연길의 공공뻐스는 기존의 소형에서 새로운 중형(?) 뻐스로 바뀌었다. 1월 현재까지 모든 선로가 그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뻐스에 타보면 알겠지만, 자리수는 여전히 적다.   며칠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할머니 한분이 어렵게 뻐스에 올르셨다. 량손에는 짐이 들려있었고 추운 날씨에 옷도 많이 껴입은 관계로 거동이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이럴때에 빈자리가 하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또 이럴때에 어떤 마음씨 고운 분이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권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날따라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모든 이의 눈길을 집중시킨것은 곱상하게 생긴 젊은 녀성이였다. 그 녀성은 사람들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자 약간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눈길을 창밖에 돌렸다. 그리고 내내 미동도 안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예절이 없는 젊은이라는 비판이 막 쏟아져 나올것같은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나 역시나 그 녀성이 좀 아니꼬왔다. 뻐스안은 조용했다.   그리고 몇개 정거장을 지났을가, 그 녀성이 일어섰다.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것도 좀 심하게...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차에서 내리는 그 녀성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차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채 아무 말도 없었다.   다들 무엇을 생각했을가? 자리를 내어주지 못한 그 녀성을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일어나서 자리를 내주지 못한것을 스스로 부끄러워 했을가, 아니면 상황도 모른채 남을 탓한 자신의 경홀함을 원망했을가?    뻐스를 타면 그 작은 공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이 집약적으로 연출될때가 많다. 자그마한 욕심과 욕망이 절제되지 못하고 그대로 적라라하게 드러나는 삶의 현장에서 나는 오늘도 내 모습을 돌아본다.  
8    <내정간섭>에 대하여 댓글:  조회:1828  추천:8  2011-06-26
   <내정간섭>이라는 어떤분의 아이디를 보고 10살도 못됐을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다들 단층집에서 살았고 저녁만 되면 마땅히 할일도 없어 이웃집에 마실을 많이들 다녔다. 그날도 나는 마실 나간 엄마를 찾으러 옆집에 갔는데, 대문을 여는 순간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어수선한 말소리에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감히 문을 떼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발밤발밤 창문에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저씨랑 아줌마가 잔뜩 화가 나서 싸움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 아저씨가 아주머니한테 손을 대기 시작한것이다.     못볼것을 본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아버지, 큰일났습니다. 옆집에서 아저씨가 아줌마를 막 때려요...>하고 소리질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으셨다. 어린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얼른 달려가서 싸움을 말리든가 해야 할것 같은데 <또 싸우누만... 언제까지 저걸 말려야 하나?>라고 중얼거리시며 눈살만 찌프리시는것이였다. <어린애들은 그런걸 참견하면 못써...> 아버지는 보던 텔레비죤에서 눈도 떼지 않으신채 <못들은걸로 하자> 하는 그런 눈치셨다.     그 후에도 그 부부는 자주 그렇게 싸웠는데 참다못해 이웃들이 가서 말리면, 아저씨는 아예 대문을 꽁꽁 닫아걸고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부부사이>는 내정이기 때문에 남의 가정문제에 나서지 말라며 이웃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멍들어다니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이웃들이 혀를 끌끌 찼지만, 괜히 이웃사이만 서먹해질가봐 말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던 <가정폭행>, <아동폭행>이 이제는 많은 나라들에서 녀성이나 아동에 대한 인권보호차원에서 누구라도 심하다 생각되면 간섭할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됐다. 시민의식이 제고된것이라 풀이할수도 있겠다. 텔레비죤에서도 로인학대, 가정폭행, 아동폭행 등 문제로 이웃들이 신고해서 피해받는 힘없는 사람들이 법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익을 지켜가고 있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남의 가정가정문제가 온전히 그 가정의 <내부문제>이기만 한지, 아니면 누구나 관심해야 하는 사회의 <공공의 문제>인가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론란이 될것임에 틀림없다. (그런것은 어떤 명확한 선을 긋기보다는 큰 틀안에서 사안 대 사안으로 리해하고 처리하면 될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내정간섭>이라는 개념이 <더불어 사는 세상>, <지구촌>, <세계화> 등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개념, 그리고 이미 많이 변화한 세상으로 인해 새로운 내용들을 계속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가정의 일이라 해도, 그 가정의 누군가가 다른 한 구성원의 생활과 안전을 위협할 될 정도로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다면 그 가해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제어를 받아야 할것임에 틀림없다. 한 인간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가간의 일도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는다. 세계가 갈수록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로 긴밀하게 결합돼 가고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 일파만파 퍼져가며 다른 나라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경우가 경제분야를 포함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많은 국가들은 서로 리해관계에 따라 기구를 만들고 협력을 도모하며 상생의 길을 탐색하는것이다.     <내정간섭>을 덜 받기 위해서는 역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 기존의 사고, 습관, 행동양식을 바꿔나간다는건 외적인 요인에 의해 내 자신이 조금 불편해질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는 개개인이 조금 더 불편해지는 결과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 온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편도 처음에는 말 그대로 불편이지만, 조금만 몸에 익으면 자연스러운것으로 변할수 있다.     <나에 대해 아무 소리도 하지 마라>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고, <나>자신이 뭘하는지는 살피지 못한채 남에 대해서만 말하는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직까지 <내정간섭>이 정서적으로 썩 내키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다. 상호간의 감독과 견제의 눈초리밑에서 주체적인 행동들이 조금 더 상식을 지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될것이다. 
7    왜 나부터인가? 댓글:  조회:1825  추천:15  2011-06-24
  우리는 어떤 문제를 볼때 그 문제의 근본 모순이 내적 요인인가 외적 요인인가를 따지게 됩니다. 대개 우리는 객관환경을 탓하는것에 익숙해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돌아보기보다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되면 문제 해결의 근본에 다다를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야기가 좀 어렵게 시작됐습니다. 제가 이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것이 며칠 안됐기 때문에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는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저의 글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것 같아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어떤 분이 <과학적인 비판관>이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하셨는데, 좋은 주장입니다. <과학적인 비판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짐작을 해본다면 사람과 사람간에 비방이나 인격에 대한 모독이 없는 건전한 비판이 설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것 같네요. 또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 역시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두가지 론제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왜 나부터인가?-에 대한 저의 생각을 부연설명해보고 싶습니다.   하나, <과학적인 비판관>이 정착된 사회의 선결 조건은, 나 자신이 바로 서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가 빠져있는 세상 담론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부터 잘하려는 진지한 자세와 나도 노력하고 있으니 우리 더불어 함께 노력합시다~라는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는 비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내가 잘 안되는 일은 절대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것이 <선진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런 말을 자주 듣지요. 일년 가도 책 한권 읽지 않는 부모나 교원이 자녀와 학생들에게 공부 잘하라, 책 많이 읽으라고 해서 그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효과를 볼수 있을가? 이신작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둘, 서로 다른 생각을 자유 혹은 개방적이라는 리유로 모두 다 말할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와 개방이라는건 나의 사고, 행동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그것 이전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할때에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비판의식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을가 하는 점도 한번쯤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지요.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득되지 못할 말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겁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점은 여러분도 공감하실겁니다. 내가 하는 말이 좋은 효과를 보게 하기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나의 말이 타인의 자존심이나 기분을 상하게 할수 있다면 삼가해야 하는것이 또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가요?   셋, 말이란 -아-가 다르고, -어-가 다릅니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좋게 표현해주면 비판도 칭찬처럼 들릴수 있습니다. 나를 진심으로 위해서 하는 말이구나, 나를 존중하면서 하는 말이구나 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칭찬을 한다고 해도 말투가 곱지 않으면 비판처럼 꼬여서 들릴수도 있습니다. 사람 기분이라는게 그런거 아니던가요?   <과학적인 비판관>이 정착된 사회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비판을 조금 더 순화해서 표현하는 노력이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좀 더 <기분좋게>, <점잖게>, <우아하게> 대화를 해봅시다.   총적으로, 서로 생각하고 있는바가 많이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가장 바라고 싶은 점은, 글의 주제(핵심)에 대한 이견이 있을시에는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개개인의 의견을 개진할수 있지만, 글속의 핵심이 아닌 지엽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핵심론제로 삼아 크게 비약하거나 문제삼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런건 정말 말 그대로 지엽적인것으로 보고, <적절하지 않은것 같다>는 식으로만 살짝 짚어줘도 글을 쓴 사람은 다 알아들을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글쓴이의 기본 뜻과 취지는 동의하면서도 지엽적인것으로 자꾸 말이 오가는건 정말 정력소모라고 보아집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얻어가야 하는 정보와 지식이 홍수처럼 밀려오는데 불필요한 공론으로 웹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가요?   다 함께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좋은 대화를 통해 좋은 생각들을 길러올릴수 있기 바랍니다.
6    너나 잘 하세요~ 댓글:  조회:2564  추천:17  2011-06-22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가 어려워짐을 느낀다. 전에는 쉽게 터져나왔던 <이건 왜 이래?>, <넌 왜 그것밖에 못해?> 등 객관환경과 타인에 대한 비난이 이제는 쉽지 않아졌다는 이야기다. 어릴적에 많이 들어왔던, <살다보니 그렇게 되더라>는 어른들의 변명도 요즘 곧 잘 공감하고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나 역시 잘못할때가 있고 그래서 타인의 잘못에 대해 좀 더 관용을 베푸는것이 마땅하다. 그런 리유로 현명한 사람들은, 남을 향한 한 손가락을 보기에 앞서 나머지 네 손가락은 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충고한다. 몇년전 한국에서 히트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유명한 한마디가 유행어로 된다. <너나 잘 하세요~> 나에게 향한 그 누군가의 비난에 사람은 다들 한번씩 마음속으로 <너나 잘해!>라는 말을 웨치고 있다. 주인공 이영애는 좀 더 <신사적>으로, 그리고 좀 더 <시니컬>하게 그런 비난을 맞받아쳤을 뿐이다. 최근 삼성과 애플이 표절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에 중국의 한 IT전문 포털사이트는 <삼성의 표절병은 이미 중독수준>이라는 보도를 냈다. 이에 외국의  네티즌들은 <그건 중국이 할 말은 아닌것 같은데…>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고 비난할때에도 자격이 요청된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면 그것은 안하느니만 못할 뿐만 아니라 괜한 웃음거리가 된다. 내 입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무슨 상관이랴! 라는 식의 생각은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바보스러운 발상이라 할수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웃음거리를 유발하는 그런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 나나 잘하자. 나부터 잘하자. 최소한 이런 마음이라도 있어야 남을 향한 나의 질타가 겸손함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서 조금 더 순하게 상대방에게 전달될수 있지 않을가!
5    내 친구 레나를 그리며 댓글:  조회:1530  추천:21  2011-06-17
전 옐레나는 99년 내가 한국에 있을때 어학원에서 같이 한국어 공부를 한 고려인 친구이 다. 다시 말해 까자흐스딴에서 온 우리와 같은 민족의 여자애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 고 피부색이나 얼굴 륜곽, 키가 작은 것이 나랑 너무나 비슷했다. 우리는 피를 나눈 같은 민 족임에 틀림없었다. 아마 한반도에서 태여났더면 그도 영옥이나 순희같은 이름을 가졌을지 도 모른다. 우리는 그를 레나라고 불렀다. 레나는 그의 애명이였다. 레나를 통해 나는 처음 조선족 이외의 다른 해외동포들의 삶을 알게 됐다. 그를 처음 봤 을 때, 그가 까자흐스딴에서 온 고려인이라는 소개를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왠지 그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고 말도 더 걸어보고 싶었다. 그가 민족에 대해서 어 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까자흐스딴에서의 우리 동포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를 대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고 고백했다. 한마디로 덥지도 차 지도 않은 냉정한 애였다. 나는 그게 서운했다. 그러나 레나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감정은 나로서도 어쩔수 없는것이였다. 그것은 련민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고 동병상련이라고나 할 가... 그러나 동질감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우리의 다른 점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됐다. 나 랑 꼭같이 생긴 레나의 입에서 알아들을수도 없는 로씨아어가 줄줄 나올 때 내가 느낀 당혹 감이란 이루다 말할수 없이 큰것이였다. 아마 내가 중국친구들이랑 한어로 대화할 때 레나 도 당혹스러웠겠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많이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 현실이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였음을 고백한다. 레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은 지금의 조선땅 함경북도였는데, 일찍 연해주에 이주하셨 다가 1935년 스딸린의 민족이주정책 때문에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를 당하셨고 지금의 까자 흐스딴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내가 고향 친구들과 함경도 사투리를 하면 레나는 반색을 하 면서 "언니, 그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말씨예요!"라면서 많이 들어봐서 정겹다고 말했다. 얼굴모양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정서도 다른 러씨아 여러 민족속에서 평생을 서럽게 보내 신 레나의 할머니는 레나가 한국에 유학올 때 고국과의 연계의 끊을 놓지 않으시려고 족보 를 주면서 꼭 한번 확인해보라고 부탁하셨단다. 레나는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아하는 눈치 였는데 이곳저곳 아는 사람을 찾아서 확인을 하는 과정에 가족과 민족 그리고 우리는 왜 이 주를 했는가는 사실을 새삼 놀랍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레나의 정체성고민이 시작된 것이 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레나의 조상들은 북쪽에서 이주를 하셨기 때문에 분단 이후 족보는 남북이 공유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확인할수 없다는 답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가슴아파하면 서 할머니께 어떻게 말씀드릴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레나의 가족은 본래 까자흐스딴에서 생활이 괜찮은 편이였는데 구쏘련이 해체되면서 까자 흐스딴으로 국적을 바꾸게 됐다. 러씨아어를 제1 외국어로 배운 레나나 레나의 오빠에게 취직이 어렵게 됐고 부모님들이 평생 아글타글 모은 재산도 화페가치의 차이로 모두 날아나 게 됐다. 순식간에 삶의 희망을 상실한 부모님들은 그제서야 고국과의 연대를 생각하면서 레나에게 한국어를 잘 배울 것을 바랐다. 로씨아의 해체와 더불어 많은 한국사람들이 고려 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레나에게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온 것이다. 선교단체들과 만나면서 신앙을 가지게 됐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레나를 보면서 나는, 해외에 사는 700만 동포들이 비록 고국을 떠난 시기는 다르고 정착 해서 사는 국가의 상황은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의 뿌리는 한반 도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다. 나와 레나는 어학원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태권도, 사물놀이, 도자기, 서예 등 과목을 훌륭 히 소화를 해내서 칭찬도 많이 들었다. 나는 레나와 무언가 같이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 척이나 뿌듯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정서에 익숙한 원인으로 다른 민족보다는 더 빨리 한국문화를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역에서 레나를 바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늘 강하고 냉정했던 레나가 배웅나간 한국인 룸메이트와 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진한 민족애 앞에서 마음을 연 것이다. 레나의 꿈은 러-한 번역일군이 되는 것이다. 레나의 꿈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아무리 어렵고 서럽더라도 지치지 말고 밝은 웃음을 간직하자고 약속하고 싶다. 우리 해외 동포들의 삶이 서럽지만은 않을것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레나와 다시 만나는 날, 그때에 우리 모두의 삶이 보다 안정적이였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2004. 4월
4    다시 돌아보는 일본 쓰나미 댓글:  조회:1511  추천:34  2011-06-09
   과거의 일본, 그러면 내 머리속에는 대개 안좋은 기억들로 도배돼있다.  현재의 일본, 그러면 내 머리속에는 눈부신 발전과 그 세계에 대한 미묘한 동경이 오버랩돼있다.      나는 일본어도 배운적이 없고, 일본에 가본적은 더더욱 없다. 일본 국적을 가진 친구 한명 없고, 책을 통해서 배운 짧은 일본에 대한 지식외에 일본에 대해 아는게 전무하다. 그런 내가 이렇듯 긴 시간 동안 일본국민과 일본을 깊이 생각해본적은 전에 없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고요한 오후 일본 해변가 도시를 강타한 진도 9.0의 대지진이 몰고온 쓰나미는 1만 1천명을 넘는 피해자(사망자, 실종자)를 냈다. 일본 열도에 닥친 쓰나미는 전세계를 경악시켰고, 그런 재해속에서 보여준 일본국민들의 질서의식은 다시 한번 세계를 경악시켰다.    한 언론은 일본의 절제된 시민의식은 -인류정신의 진화-라고까지 표현했다. 또 어떤 사람은 -만약 세계 종말이 온다고 할때, 우리 모두의 모습이 지금의 일본인들 모습과 같았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수천년 재난이 끊이지 않았던 땅에서 살면서 생득적으로 터득한 그리고 후천적으로 훈련받은 그들의 재해 대처 정신은 가히 놀랄만한 수준이였다.  대개 그 정도의 피해앞에서 인간은 이성을 잃기 마련이고 참혹한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눈뜨고 차마 보기 어렵게 되는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혈육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도 절규가 없는 그들의 침착한 모습은 조금은 인간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도 했지만 고도로 된 절제와 이성적인 반응은 전사회에 닥친 비극을 최소화하고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됐음에 틀림없다.   쓰나미 이후, 일본산 기저귀를 경쟁적으로 사들인 홍콩, 한국, 대만의 애기어머니들과 중국을 발칵 뒤집은 <소금파동>을 돌아보면 사뭇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역사는 흐르고 우리 또한 느리기는 하지만, 현재에 멈춰있지 않음에 감사한다. 과거에 지은 죄값을 받는다, 잘코사니야! 라는 식의 생각없이 웨치는 사람에 대해 질타하는 사회분위기가 한결같았고, 재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과거를 들먹이는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도 지배적이였다. 어제는 얼굴 붉히는 사이였을지라도 남에게 닥친 어려움을 몰라라 하지 않고 앞다투어 지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반인륜적이고 나 또한 언제 어떻게 재난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역지사지의 감정이 우리를 조금 성숙하게 만든것 같다.    우리 지구는 아직도 어떤 곳은 내전에 시름시름 앓고 있고, 어떤 곳은 기아에 허덕이고, 또 어떤 곳은 열악한 정치환경에 로출돼 있다. 하지만 세계는 또 서로 보듬으며 진정 하나가 되어가려고 화합의 몸짓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서서히 우리 기억속에서 옅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피해지역의 일본국민들은 고난의 련속일것이다. 아무쪼록 일본 국민 모두가 이번 재앙에서 보여준 침착함을 잃지 말고 복구사업에 전력할수 있기를 두손 모아 기원한다. 아울러 세계 모든 인민들이 지혜를 모아 자연재해를 줄여갈수 있는 기술들이 나날이 업그레이드 될수 있었으면 좋겠다.
3    내가 본 <황해> 댓글:  조회:2049  추천:47  2011-06-08
     내가 본 <황해>                                                        로계선 요즘 조선족사회에서는 영화 <황해>(한국, 라홍진 감독)가 련일 화제다. 영화가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영화에 대한 우리 조선족들의 관심이  증폭된게 아닌가 싶다.  조선족사회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는 일부 묘사들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만큼 잔인한 장면때문에 조선족을 비하하기 위한 영화라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치열한 생존환경에 로출돼있는 조선족 가장 <김구남>의 모습을 통해 서로 많이 닮아있는 세상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아보려는 감독의 시도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사실 영화는 그저 영화로 보면 그만이다. 예술에는 국경, 민족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라홍진 감독이 조선족을 폄하할 의도가 없고 오히려 조선족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찍었다고 했으니 나는 그런 항변을 믿으며, 그래서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에 느껴졌던 아쉬운 부분은 그저 옥의 티라고 쳐두려 한다. 오히려 어디에서든 중심에 설수 없는 우리 조선족들의 삶을 빌어 사람사는 세상의 모습을 두루 관조할수 있게 해준 영화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어찌됐든 투박하지만 구수한 연변사투리와 내 주변의 낯익은 모습을 스키린에 옮겨 완벽하게 표현해낸 주연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에 우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것에 린색해서는 안될것이다.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본다면, <황해>는 모체육대학교 교수인 김승현을 둘러싼 이중 청부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인 사랑과 질투, 야망이 자리하고 있다. 죽임을 당하는 김승현도, 죽이려는 김태원이나 김구남도 자신이 믿는 <사랑>을 위해 처절한 싸움판에 뛰여든것이다. <사랑>, 그것을 위해 친구의 애인도 탐할수 있고, 애인의 남편도 죽일수 있는 인간 세상의 이면을 영화는 시작부분의 나레이션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내 나이 11살때 동네에 개병이 돌았다… 우리 집 개도 개병이 걸렸는데 처음에는 제 에미를 물어 죽이더니만, 후에는 제 아가리로 물어죽일수 있는건 몽땅 물어죽였다. …개는 천천히 드러누워 죽었다… 갑자기 그것이 생각난것은 그후에 한번도 다시 돌지 않던 개병이 다시 돌기 때문이다. 개병이 돌고 있다.> 연변사람 김구남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이 나레이션은 김구남의 주변 생활을 개병이 도는 그런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사랑하는 부인을 한국에 돈벌러 보낼수 밖에 없었고 소식이 끊긴 부인때문에 청부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서슴치 않았던 김구남은 현재 한국체류중인 20만 동포들과 그들 가족의 설음, 그리고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삶의 고달픔을 호소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김구남은 돈과 사랑때문에 그 누군가의 목숨을 노렸지만 쫓고 쫓기는 속에서도 부인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부인의 골회함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한국으로 떠나던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에서 부인 김화자는 영원히 살아있으며 그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    돈이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조선족 브로커 면정학은 김구남과 김태원을 리용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지만, 자기의 동료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면정학의 정신세계에서 윤리나 도덕은 설자리를 잃었다. 그런 면정학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욕할수만 없는것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인간의 이면에 감춰진 본능적인 욕망을 가감없이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면정학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런것에서 비롯된다. 무릇 어떠한 예술작품이든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건 우리 인간들 스스로의 모습이다. 조선족의 모습, 한국인의 모습이 아닌 우리 모든 인간의 모습이다. 사랑과 질투에 뒤엉키고 부대끼며 도덕성을 상실하기도 하고 또 회복하기도 하는 그것이 인간세상의 참 모습인것이다. 하여 <황해>속의 일부 설정에 대해 그것을 굳이 조선족의 모습이라 기분 나빠할 리유는 없을것 같다. 어떤 작품이 눈에 거슬리거나 정서에 뒤틀리면 그건 바로 부족한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두자. <황해>를 통해 조선족을 좀 더 이해할수 있는 관객들에게는 조선족사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된듯하여 아쉬운 측면도 분명 있지만, 영화를 통해 개개인의 정체성을 넘어서서 <개병>이 돌지 않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같이 꿈꿀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2    '상처받은 야수'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댓글:  조회:1776  추천:45  2011-06-07
  '상처받은 야수'에서 '희망의 메시지                 로계선   최근 한동안 나의 생활은 일주일 단위로 흘러갔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한국 MBC의 '위대한 탄생'에 참가한 연변총각-백청강씨의 노래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큰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는 연변의 자그마한 총각이 어마어마한 무대에서 한국을 포함한 미국, 캐나다 등 여러나라에서 온 쟁쟁한 가수지망생들과 벌이는 한판승은 구경하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큰판에서 지레 긴장해서 실력발휘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지, 기타며 피아노 연주를 척척 해내는 일부 선수들을 보면서 청강이의 실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불안한 마음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감을 회복하며 뛰어난 춤솜씨까지 보여주며 무대를 주름잡는 청강이의 모습은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결과를 기다릴 수 있게 했다.   지난 몇개월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랑스러운 조선족 가수 지망생 백청강 씨가 드디어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작할 때에는 꿈꾸지도 못했던 순간이었다. TOP12까지만 진출해도 좋겠다던 욕심이 어느 순간 TOP2로 바뀌더니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감격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상금은 한화로 3억, 그외에 기아자동차에서 협찬한 중대형 세단 자동차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런것을 다 떠나 이미 '부활'의 김태원멘토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고, 가장 만나고 싶었던 가수 김경호 씨와 함께 노래를 불렀으며, 최고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무대에 섰다. 한국의 많은 음악인들도 만나기 어려운 분들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수많은 꿈속의 우상들과 지근거리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몇개월은 백청강의 인생에 소중한 런닝포인트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제법 성숙한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머금고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백청강을 보면서 지난 1월 7일, 36시간 기차를 타고 칭다오에서 열린 중국지역 오디션현장에서 보여줬던 백청강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긴머리로 눈을 가리고 한국에서 온 유명한 가수들을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왜소하고 숫기없는 백청강을 가수 김태원 맨토는 '상처받은 야수'라고 표현했다. 그런 야수가 오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일단 승자가 되어 "한국에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향해 보람있는 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애절한 목소리, 호소력있는 가창력, 무대를 휘여잡는 화려한 퍼포먼스… '상처받은 야수'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가는 과정은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이 치유되어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연변의 밤무대에서 가수로 활동했던 시절, 눈물과 땀방울로 쌓아왔던 실력도 남김없이 보여줬고, 멘토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서서히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가수지망생으로 변해갔다. 그런 백청강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다.   왜 우리는 백청강에게 그토록 열광해 있었던가? 돈벌러 한국으로 떠난 부모님을 그리며 외롭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을 청강이와, 어린 아들을 뒤로 하고 이국 타향에서의 고된 삶을 눈물과 함께 마음속에 묻어야만 했던 청강이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가족의 이산을 감내해야 했던 바로 우리 이 세대 조선족들 스스로의 삶의 모습이였기 때문이리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기적을 일구어내며 성공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백청강에게서 우리 모두는 자신들의 희망을 찾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주일간의 피로를 잊어가며 금요일저녁을 기다렸다는 재한 조선족동포들은 청강의 노래를 들으며 일터에서의 고달픔과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었다. 꿈을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에게는 자기만의 꿈을 찾을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백청강의 우승은 한국과 중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국경의 문턱이 낮아지게 했고, 조선족사회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을 완화했으며, 오랫동안 구심점이 없었던 조선족들에게 '조선족'이라는 삶의 공동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꿈을 꾸는 자에게 길이 있다. 그리고 준비된 자에게만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법이다. 청강이의 성공이 어느 한순간의 우연과 행운 때문일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연변의 밤무대에서, 또 크고 작은 공연무대를 뛰면서도 "한국에서 가수가 되겠다"는 오직 그 꿈 하나를 간직해온 그에게 오늘의 성공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뼈를 깎는 연마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느새 멋진 가수가 되어 우리 곁에 찾아올 백청강의 멋진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상상해본다.
1    프로필 댓글:  조회:1901  추천:52  2011-06-07
프로필1998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1999년 한국 원광대학교 어학원 연수2000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뉴스부 편집2001 ~ 2002년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기자2003년 ~ 2009년 자영업 2009년 ~ 현재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연구생 (조선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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