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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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정간섭>에 대하여 댓글:  조회:1828  추천:8  2011-06-26
   <내정간섭>이라는 어떤분의 아이디를 보고 10살도 못됐을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다들 단층집에서 살았고 저녁만 되면 마땅히 할일도 없어 이웃집에 마실을 많이들 다녔다. 그날도 나는 마실 나간 엄마를 찾으러 옆집에 갔는데, 대문을 여는 순간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어수선한 말소리에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감히 문을 떼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발밤발밤 창문에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저씨랑 아줌마가 잔뜩 화가 나서 싸움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 아저씨가 아주머니한테 손을 대기 시작한것이다.     못볼것을 본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아버지, 큰일났습니다. 옆집에서 아저씨가 아줌마를 막 때려요...>하고 소리질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으셨다. 어린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얼른 달려가서 싸움을 말리든가 해야 할것 같은데 <또 싸우누만... 언제까지 저걸 말려야 하나?>라고 중얼거리시며 눈살만 찌프리시는것이였다. <어린애들은 그런걸 참견하면 못써...> 아버지는 보던 텔레비죤에서 눈도 떼지 않으신채 <못들은걸로 하자> 하는 그런 눈치셨다.     그 후에도 그 부부는 자주 그렇게 싸웠는데 참다못해 이웃들이 가서 말리면, 아저씨는 아예 대문을 꽁꽁 닫아걸고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부부사이>는 내정이기 때문에 남의 가정문제에 나서지 말라며 이웃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멍들어다니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이웃들이 혀를 끌끌 찼지만, 괜히 이웃사이만 서먹해질가봐 말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던 <가정폭행>, <아동폭행>이 이제는 많은 나라들에서 녀성이나 아동에 대한 인권보호차원에서 누구라도 심하다 생각되면 간섭할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됐다. 시민의식이 제고된것이라 풀이할수도 있겠다. 텔레비죤에서도 로인학대, 가정폭행, 아동폭행 등 문제로 이웃들이 신고해서 피해받는 힘없는 사람들이 법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익을 지켜가고 있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남의 가정가정문제가 온전히 그 가정의 <내부문제>이기만 한지, 아니면 누구나 관심해야 하는 사회의 <공공의 문제>인가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론란이 될것임에 틀림없다. (그런것은 어떤 명확한 선을 긋기보다는 큰 틀안에서 사안 대 사안으로 리해하고 처리하면 될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내정간섭>이라는 개념이 <더불어 사는 세상>, <지구촌>, <세계화> 등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개념, 그리고 이미 많이 변화한 세상으로 인해 새로운 내용들을 계속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가정의 일이라 해도, 그 가정의 누군가가 다른 한 구성원의 생활과 안전을 위협할 될 정도로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다면 그 가해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제어를 받아야 할것임에 틀림없다. 한 인간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가간의 일도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는다. 세계가 갈수록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로 긴밀하게 결합돼 가고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 일파만파 퍼져가며 다른 나라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경우가 경제분야를 포함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많은 국가들은 서로 리해관계에 따라 기구를 만들고 협력을 도모하며 상생의 길을 탐색하는것이다.     <내정간섭>을 덜 받기 위해서는 역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 기존의 사고, 습관, 행동양식을 바꿔나간다는건 외적인 요인에 의해 내 자신이 조금 불편해질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는 개개인이 조금 더 불편해지는 결과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 온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편도 처음에는 말 그대로 불편이지만, 조금만 몸에 익으면 자연스러운것으로 변할수 있다.     <나에 대해 아무 소리도 하지 마라>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고, <나>자신이 뭘하는지는 살피지 못한채 남에 대해서만 말하는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직까지 <내정간섭>이 정서적으로 썩 내키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다. 상호간의 감독과 견제의 눈초리밑에서 주체적인 행동들이 조금 더 상식을 지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될것이다. 
2    내가 본 <황해> 댓글:  조회:2048  추천:47  2011-06-08
     내가 본 <황해>                                                        로계선 요즘 조선족사회에서는 영화 <황해>(한국, 라홍진 감독)가 련일 화제다. 영화가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영화에 대한 우리 조선족들의 관심이  증폭된게 아닌가 싶다.  조선족사회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는 일부 묘사들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만큼 잔인한 장면때문에 조선족을 비하하기 위한 영화라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치열한 생존환경에 로출돼있는 조선족 가장 <김구남>의 모습을 통해 서로 많이 닮아있는 세상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아보려는 감독의 시도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사실 영화는 그저 영화로 보면 그만이다. 예술에는 국경, 민족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라홍진 감독이 조선족을 폄하할 의도가 없고 오히려 조선족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찍었다고 했으니 나는 그런 항변을 믿으며, 그래서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에 느껴졌던 아쉬운 부분은 그저 옥의 티라고 쳐두려 한다. 오히려 어디에서든 중심에 설수 없는 우리 조선족들의 삶을 빌어 사람사는 세상의 모습을 두루 관조할수 있게 해준 영화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어찌됐든 투박하지만 구수한 연변사투리와 내 주변의 낯익은 모습을 스키린에 옮겨 완벽하게 표현해낸 주연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에 우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것에 린색해서는 안될것이다.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본다면, <황해>는 모체육대학교 교수인 김승현을 둘러싼 이중 청부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인 사랑과 질투, 야망이 자리하고 있다. 죽임을 당하는 김승현도, 죽이려는 김태원이나 김구남도 자신이 믿는 <사랑>을 위해 처절한 싸움판에 뛰여든것이다. <사랑>, 그것을 위해 친구의 애인도 탐할수 있고, 애인의 남편도 죽일수 있는 인간 세상의 이면을 영화는 시작부분의 나레이션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내 나이 11살때 동네에 개병이 돌았다… 우리 집 개도 개병이 걸렸는데 처음에는 제 에미를 물어 죽이더니만, 후에는 제 아가리로 물어죽일수 있는건 몽땅 물어죽였다. …개는 천천히 드러누워 죽었다… 갑자기 그것이 생각난것은 그후에 한번도 다시 돌지 않던 개병이 다시 돌기 때문이다. 개병이 돌고 있다.> 연변사람 김구남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이 나레이션은 김구남의 주변 생활을 개병이 도는 그런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사랑하는 부인을 한국에 돈벌러 보낼수 밖에 없었고 소식이 끊긴 부인때문에 청부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서슴치 않았던 김구남은 현재 한국체류중인 20만 동포들과 그들 가족의 설음, 그리고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삶의 고달픔을 호소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김구남은 돈과 사랑때문에 그 누군가의 목숨을 노렸지만 쫓고 쫓기는 속에서도 부인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부인의 골회함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한국으로 떠나던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에서 부인 김화자는 영원히 살아있으며 그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    돈이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조선족 브로커 면정학은 김구남과 김태원을 리용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지만, 자기의 동료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면정학의 정신세계에서 윤리나 도덕은 설자리를 잃었다. 그런 면정학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욕할수만 없는것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인간의 이면에 감춰진 본능적인 욕망을 가감없이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면정학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런것에서 비롯된다. 무릇 어떠한 예술작품이든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건 우리 인간들 스스로의 모습이다. 조선족의 모습, 한국인의 모습이 아닌 우리 모든 인간의 모습이다. 사랑과 질투에 뒤엉키고 부대끼며 도덕성을 상실하기도 하고 또 회복하기도 하는 그것이 인간세상의 참 모습인것이다. 하여 <황해>속의 일부 설정에 대해 그것을 굳이 조선족의 모습이라 기분 나빠할 리유는 없을것 같다. 어떤 작품이 눈에 거슬리거나 정서에 뒤틀리면 그건 바로 부족한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두자. <황해>를 통해 조선족을 좀 더 이해할수 있는 관객들에게는 조선족사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된듯하여 아쉬운 측면도 분명 있지만, 영화를 통해 개개인의 정체성을 넘어서서 <개병>이 돌지 않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같이 꿈꿀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1    '상처받은 야수'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댓글:  조회:1776  추천:45  2011-06-07
  '상처받은 야수'에서 '희망의 메시지                 로계선   최근 한동안 나의 생활은 일주일 단위로 흘러갔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한국 MBC의 '위대한 탄생'에 참가한 연변총각-백청강씨의 노래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큰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는 연변의 자그마한 총각이 어마어마한 무대에서 한국을 포함한 미국, 캐나다 등 여러나라에서 온 쟁쟁한 가수지망생들과 벌이는 한판승은 구경하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큰판에서 지레 긴장해서 실력발휘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지, 기타며 피아노 연주를 척척 해내는 일부 선수들을 보면서 청강이의 실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불안한 마음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감을 회복하며 뛰어난 춤솜씨까지 보여주며 무대를 주름잡는 청강이의 모습은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결과를 기다릴 수 있게 했다.   지난 몇개월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랑스러운 조선족 가수 지망생 백청강 씨가 드디어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작할 때에는 꿈꾸지도 못했던 순간이었다. TOP12까지만 진출해도 좋겠다던 욕심이 어느 순간 TOP2로 바뀌더니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감격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상금은 한화로 3억, 그외에 기아자동차에서 협찬한 중대형 세단 자동차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런것을 다 떠나 이미 '부활'의 김태원멘토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고, 가장 만나고 싶었던 가수 김경호 씨와 함께 노래를 불렀으며, 최고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무대에 섰다. 한국의 많은 음악인들도 만나기 어려운 분들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수많은 꿈속의 우상들과 지근거리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몇개월은 백청강의 인생에 소중한 런닝포인트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제법 성숙한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머금고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백청강을 보면서 지난 1월 7일, 36시간 기차를 타고 칭다오에서 열린 중국지역 오디션현장에서 보여줬던 백청강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긴머리로 눈을 가리고 한국에서 온 유명한 가수들을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왜소하고 숫기없는 백청강을 가수 김태원 맨토는 '상처받은 야수'라고 표현했다. 그런 야수가 오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일단 승자가 되어 "한국에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향해 보람있는 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애절한 목소리, 호소력있는 가창력, 무대를 휘여잡는 화려한 퍼포먼스… '상처받은 야수'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가는 과정은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이 치유되어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연변의 밤무대에서 가수로 활동했던 시절, 눈물과 땀방울로 쌓아왔던 실력도 남김없이 보여줬고, 멘토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서서히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가수지망생으로 변해갔다. 그런 백청강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다.   왜 우리는 백청강에게 그토록 열광해 있었던가? 돈벌러 한국으로 떠난 부모님을 그리며 외롭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을 청강이와, 어린 아들을 뒤로 하고 이국 타향에서의 고된 삶을 눈물과 함께 마음속에 묻어야만 했던 청강이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가족의 이산을 감내해야 했던 바로 우리 이 세대 조선족들 스스로의 삶의 모습이였기 때문이리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기적을 일구어내며 성공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백청강에게서 우리 모두는 자신들의 희망을 찾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주일간의 피로를 잊어가며 금요일저녁을 기다렸다는 재한 조선족동포들은 청강의 노래를 들으며 일터에서의 고달픔과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었다. 꿈을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에게는 자기만의 꿈을 찾을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백청강의 우승은 한국과 중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국경의 문턱이 낮아지게 했고, 조선족사회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을 완화했으며, 오랫동안 구심점이 없었던 조선족들에게 '조선족'이라는 삶의 공동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꿈을 꾸는 자에게 길이 있다. 그리고 준비된 자에게만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법이다. 청강이의 성공이 어느 한순간의 우연과 행운 때문일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연변의 밤무대에서, 또 크고 작은 공연무대를 뛰면서도 "한국에서 가수가 되겠다"는 오직 그 꿈 하나를 간직해온 그에게 오늘의 성공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뼈를 깎는 연마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느새 멋진 가수가 되어 우리 곁에 찾아올 백청강의 멋진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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