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에는 오지독 몇개가 놓여있다. 아이 여럿을 낳은 농촌아낙의 궁둥이처럼 펑퍼짐한 오지독은 밉살스럽게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있어 딸애는 그것을 볼 때마다 처리해버리라고 푸념질이다. 하지만 촌티가 자르르한 그 오지독에도 그만의 에피소드가 들어있을줄을 딸애가 어찌 알랴?
지금은 고물처럼 보이고 어딘가 외면을 당하는 신세이긴 해도 한때 오지독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련관을 갖고있었다. 사실 20여년전까지만 해도 오지독은 우리들에게 필수품이 아니였던가. 당시 생활이 궁핍한 집일수록 오지독은 명물처럼 꼭 집안 한쪽을 차지하고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물도 오지독에 길어서 채워두었고 쌀도 오지독에 넣어 보관했으며 김장도 오지독에 절구어 겨울을 나군 했다
좀 잘사는 집들에서는 사과배와 사과같은 과일도 오지독에 종이로 싸서 김장움에 보관시켰다. 더없이 기구한 60~70년대에는 어쩌면 오지독은 필수품이면서도 사치품이기도 했다. 당시 오지독이 주렁주렁 놓여있는 집을 들어가보면 그 집 주부의 알뜰함과 윤택나는 삶을 어느 정도 감지할수가 있었다. 아무튼 한때 오지독은 연변사람 더우기는 우리 민족과는 떨어질수 없는 연분을 유지하고있었다.
우리 집도 례외가 아니였다. 내가 태여난 60년대는 전국적으로 자연재해와 인재가 든 년대여서 생활형편이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쌀도 식용유도 솜도…모든것은 표로 공급하던 년대여서 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엄마는 기아를 좀 더 덜려고 오지독 마련에 드바쁘셨다. 오지독이 많아야 김장도 많이 담글수가 있었던것이다. 식솔 여덟명인만큼 김장도 많이 담그어야 했다. 가을이 돌아오면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배추 5~6천근, 무우 5~6백근, 파도 백근이상 사들였다. 솔직히 당시 우리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거의 김치로 살다싶이했다. 그러다보니 오지독은 우리 집의 필수품이기에 앞서 보배였다. 그만큼 오지독에 대한 엄마의 정도 말그대로 돈독했다.
당시 엄마는 매번 밥을 짓고는 가마목옆에 놓여진 쌀독을 먼지 한점 있으랴 깨끗이 닦으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 마실을 오는 사람들은 알른거리는 오지독을 보면서 엄마의 알뜰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엄마에게 있어서 오지독은 그냥 오지독을 벗어나 어딘가 가정기물이였고 자식같은 존재였던것 같다. 그렇게 오지독을 애지중지 했지만 엄마는 자식들에게는 조금도 린색하지 않았다. 엄마는 딸 넷이 출가를 갈 때마다 자신이 그동안 로고를 마다하지 않고 사들이고 거두어왔던 오지독들을 한두개씩 내농았다. 어쩌면 그것은 오지독을 잘 거두고 사용하면 그만큼 시집살이를 잘하고 생활도 윤택해진다는 엄마만의 생활법칙이라고나 할가. 그래서 엄마는 80년대중기에 들어서서 세간을 나는 나에게도 오지독 두개를 특별히 선물하였었다.
《이보게 며느리, 이 독을 가져가게. 이 독에 김장을 담그어 날마다 시원한 김치를 먹는다면 자네들의 생활도 어렵잖게 피여날거고 그리고 그 정도 더 깊어질걸세.…》
엄마는 조금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짓고있는 안해를 자애롭게 타이르셨다. 안해는 엄마의 성의를 거역할수가 없어서 오지독을 받았다.
그후로 나는 안해의 손끝에서도 종종 엄마의 맛을 느낄수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엄마도 하늘나라로 갔지만 안해는 그 독을 버리지 않았다. 엄마의 손맛을 배운 안해는 해마다 엄마처럼 겨울철이면 그 젊은 나이에도 불과하고 배추김치와 무우김치를 담그어왔는데 그 열정은 난방집에 옮겨온 후에도 계속되였다. 아무튼 안해의 덕분으로 하여 나는 6년전까지만 해도 늘 시원한 김치를 맛볼수가 있었고 엄마의 손맛을 느낄수가 있었다.
지금 안해는 멀리 한국에서 가족을 위해 전전긍긍하고있다. 오지독도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 베란다 한쪽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가고있다. 하지만 딸애의 말처럼 나는 선뜻 오지독을 처리할수가 없다.
오지독을 보면 저 멀리 어디선가 엄마의 살뜰한 다독임이 들려오고 안해의 미소가 떠오르며 나아가서는 인심좋았던 당년의 모든 사람들이 추억속에 걸어와서 마음이 차분하게 젖어든다.
그만큼 오지독은 순전한 항아리만 아닌것 같다. 물론 오지독은 이제는 한물이 간 상품이다. 허나 돌고 도는게 류행이라고 고물이래서 무조건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다고는 볼수야 없지 않겠는가? 고목에도 꽃이 핀다고 언젠가는 그 고물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 청춘을 회복할는지 그 누가 알랴?
세상일이란 바로 이런것이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버림을 받은듯한 기분속에서 한숨을 뽑아도 래일은 찬란한 태양아래 활짝 핀 웃음꽃을 피울수도 있는것이다. 희망과 행운이란 시시각각 당신옆에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어쩐지 오늘따라 오지독에 절군 시원한 배추김치를 놓고 누군가와 소주 한잔을 조용히 나누며 자아성찰을 해보고싶다. 정녕 나는 오지독처럼 우리 민족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을 했을가 하고, 한번쯤 스스로에게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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