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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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고부간의 일상 그리고 소소한 행복-남영도
2019년 07월 18일 10시 12분  조회:48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남영도 

고부간의 일상 그리고 소소한 행복
 
“야, 맛있는 냄새! 오늘 저녁엔 뭘 하오?”
 
어머님이 주방으로 들어오며 미소 띤 얼굴로 묻는다.
 
도마질하기에 바쁜 나는 대답대신 국가마를 눈짓한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요즘 우리 집 어느 저녁나절의 풍경이다.
 
작년에 팔순에 난 시어머님이 무릎수술을 받으면서부터 주방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였다. 정년퇴직까지 하고 나니 더구나 내 령역으로 자리 굳혔다. 이제 어머님은 재활치료에 힘쓰면서 주방에는 가끔씩 들어오신다. 서서히 고부간의 역할이 바뀌여가고 있는 것이다.
 
주방에서 어머님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팔순을 넘기시면서 어머님은 점차 맵고 시고 짠 음식을 못 드신다. 내가 한 랭채가 시면 맛이 별로라고 대놓고 말씀은 하지 않지만 얼굴을 찡그리며 드시는 표정에서 식초를 많이 넣었음을 눈치 채고 후회를 하게 된다. 소금을 덜 넣고 식초를 살짝 두고 고추가루는 아예 넣지 않고 담백하게 만들면 맛있다면서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짤가 봐, 매울가 봐, 실가 봐 보들보들 떨며 양념을 치고 음식을 만들면서 문득 지난 27년간의 그 많은 나날 이 주방에서 집식구들의 입맛에 맞게, 이 며느리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려 남모르게 애쓰셨을 어머님께 고마운 마음이 일며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돌아보니 28년이라는 세월이 살같이 흘러갔다.
 
젊은 시절 퇴근하고 돌아와 어머님이 차려준 밥상에 마주앉아 식사할 때면 음식이 짜다고, 맛이 이상하다고 은근히 타발도 많이 했었지…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어머님이 김치를 ‘짠지’라고 해서 짠지를 내오기도 하고 후추를 ‘고추’라고 해서 후추를 쳐야 될 대목에 고추가루를 치기도 하는 등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 가끔 생기군 하면서 사투리 때문에 헷갈린다고 꼬치꼬치 따지기도 했었지. 직업이 출판사 편집이노라고 쩍하면 어머님의 평안도 사투리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았으니 얼마나 신경이 쓰였으랴!
 
엘리베터 타고 올라오는데 어머님이 집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다 들리더라고 목청 높은 어머님한테 은근슬쩍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었지! 아침 일찍 식전운동을 나가시는 어머님이 화장품을 바르고 나가시기에 그 화장품 냄새에 잠을 더 잘 수 없다고 투정을 부리니 어머님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그 후부턴 세수를 하지 않고 바로 운동하러 나가셨더랬지…
 
지난해 어머님의 무릎수술을 계기로 어머님을 향한 내 마음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한달간 청가를 맡고 서울의 모 병원에 가서 간병을 하면서, 음식을 해나르면서 로인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한차례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였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주방을 지켜오셨는데 이제는 내가 받아안은 사랑을 되돌려줄 때가 온 것이라고, 시아버님에 친정부모님까지 다 세상을 뜨시고 어르신이라고는 시어머님 한분만 남아계신 상황에 아직 건재해계신다는 것만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때로는 단순한 눈으로 바라보면 더 잘 보인다는 것을 그때야 깨친 것이다.
 
고부사이가 어쩜 그렇게도 좋으냐고 칭찬들을 해오면 내 노력인양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는데 이제 단순한 눈으로 바라보니 어떻게든 이 며느리에게 맞추려고 여러 모로 절제를 하신 어머님의 노력 덕분인 줄 이제야 알겠구나…
 
무릎수술을 하고 나면 씨엉씨엉 려행도 다니면서 여생을 즐기시려던 소원 그대로 올해는 제주도에 다녀오게 되였다.
 
해변가에 가서 “야호!” 하고 소리도 쳐보고 수목원에 가서는 아름다운 꽃 속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기념사진도 많이 남겼다.
 
그날은 어머님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가까운 민속박물관에 가게 되였다.
 
민속박물관이라면 대체로 가장 민속적인 생활상들을 그대로 진렬하기 일쑤라 별 감흥 없이 돌아보는데 예상외로 어머님이 연신 탄성을 지른다. 워낙 ‘호기심천국’인 어머님이시니 그러려니 하는데 박물관은 처음이라고 하시니 은연중 가책이 느껴진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물질하는 장면도 나오고 녀인들의 물 긷는 도구인 물허벅도 등장한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았던 터라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려는데 “이건 뭐니?” 하며 어머님의 호기심이 또 발동한다. 우리의 물동이와 비슷한 건데 지게처럼 지게 만들었다고 말씀드리자 “우리도 물지게를 지고 다녔지… 수도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라고 하신다. 그러자 나도 물동이를 이고 물 긷던 옛날 생각이 나서 몇마디 주고받았다.
 
1970년대 초, 공사(향)중학교에 출근하는 부모님이 거의 매일 회의를 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나는 아홉살 때부터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긷지 않으면 안되였다. 물독이 크지 않아서 큰 동이로 두번만 길어오면 차는데 아홉살내기가 큰 동이를 일 수 없으니 엄마가 작은 동이를 사주어서 매일 그 동이를 이고 네번씩 물펌프가 있는 집을 드나들었었다. 그럼에도 키는 쑥쑥 빨리도 자라 몇년 후에는 큰 동이로 바꾸었고 물펌프가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꼬박 10년 동안 하루같이 물동이를 이고 다녔으니 물동이라고 하면 나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또 있을가?
 
놀음에 탐해 저녁 늦게까지 또래들과 고무줄 놀이를 놀다가 깜빡 잊고 물을 긷지 않은 날엔 엄마한테 한바탕 욕을 먹고 울면서 물 길러 가기도 하였다. 후에 친정엄마와 어릴 적 일을 얘기하다가 물 긷던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다 잊으셨는지 “내가 그랬니? 훗엄마구나!”라고 하셔서 한바탕 웃음으로 날려보낼 수 있었다.
 
내 추억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있는데 이제 친정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시고 시어머님과 더불어 그때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니…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는 없으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사이, 그래서 우리 고부사이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저녁밥을 먹다가 텔레비죤화면에 벼가을 하는 장면이 비치면 어머님은 영낙없이 벼가을 얘기를 꺼내신다. 그러다가 곧 탈곡 얘기로 이어지고… 중학시절에 벼가을 하러 많이 다녔던 터라 나는 바로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판을 둥글게 만들어간다. 식사가 끝난 지도 이슥하건만 우리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박물관의 다음 진렬장은 부엌에서 고부간인 듯한 두 녀인이 밥을 짓는 정경인데 실감나게 빨간 불이 타오르도록 전기를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거기서 어머님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시는 말씀이 신기하다.
 
동네에서 모여서 되놀이를 할 때면 시루떡을 하게 되는데 암만 기다려도 김이 올라오지 않으면 가마목에서 떡을 하던 녀인이 불을 때는 녀인보고 “어이, 너 그거 왔지?”라고 묻는단다. 그러면 불 때던 녀인이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불 때는 사람을 바꾸면 바로 김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신기한 얘기다. 달거리가 오는 녀자가 불을 때면 김이 올라오지 않는다? 어떻게 과학적으로 풀이가 가능한지 모를 이야기이다. ‘어머님의 백과사전’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불쑥불쑥 튀여나와 가끔씩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서책에서는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역시 사람은 늙어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구나 하고 중얼거려본다.
 
유리박물관에 이르자 어머님은 또 천진한 유치원생으로 변한다. 장고를 둥기당당 쳐보시다가 호박꽃을 가리키며 한장 찍어달라고 응석을 부리신다. 시무룩이 웃으며 남편이 연신 샤타를 눌러댄다.
 
반평생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20여년간 부녀주임으로 일하면서 많을 일들을 겪었음직한데 그런 경력은 어느 세포 속에 숨어들었는지 늘 저런 단순하고 천진한 소녀 같은 표정이시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남들은 배배 탈아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어머님은 단순화시키고 간단하게 생각하신다. 뒤에서 남의 험담을 하는 법 모르고 모든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신다.
 
그런가 하면 의지력이 강해서 뭔가를 한다면 꼭 끝을 보고 마는 성격이다. 로년합창단에서 노래를 배우면서 일주일동안 가사를 외워오라고 포치하는데 돌아온 그날 저녁으로 노래를 오십번 반복해들으며 열심히 가사를 외우신다. “북경에 계시는 모주석 나는 본 적 없어도…”라고 조선어와 한어로 번갈아가며 주방에까지 나와 흥얼거리시니 합창단 모임에 가면 가사를 제일 잘 외워왔다고 칭찬받지 않을 수 있으랴. 위챗을 하는 법을 가르쳐드렸더니 모르는 건 알 때까지 끝까지 물어서 이제는 능숙하게 다루며 음성메시지도 잘 보내시니 그 의지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격이 급하셔 수도꼭지를“촥--”하고 쎄게 틀어 옆사람한테 물방울이 튕기기도 하지만 그 급한 성격을 고치지 못한다. 나한테 물방울이 튕겼다고 일부러 표정을 일그러뜨리면 혀를 홀랑 내밀면서 “뚜이부치아!(对不起啊)…”라고 사과를 하시는데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가끔 그 천진함의 원천이 어디일가고 거슬러 올라가본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집에서 오빠와 형님 손에서 자라다 보니 눈치밥을 먹으며 공부도 많이 못하셨다고, 끝도끝도 없는 가마니 짜기에 신물이 났었다고,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결혼을 하고 아들 셋을 낳아키우며 들끓는 농촌사회주의건설에 반평생을 바치셨다고 하신다. 그 락천적 성격의 뿌리를 찾을 수 없으니 천성적인 것이라고 해두고 싶다.  
 
이제 팔순을 넘기면서 당년에 모내기능수로 그토록 날렵하던 어머님도 점차 반응이 굼떠지고 망각증도 심해진다.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시고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백내장수술을 권고한다.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더니 팔순이 넘도록 여태 백내장 수술을 안한 것 자체가 건강한 표현이라고 위로한다. 그런데 어머님은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리는가”고 아주 천진한 표정이다. 80여년이나 그 기계를 쭉 써왔는데 이제 로화가 될 때도 되지 않았겠냐고 우스개를 하니 덩달아 허허 웃으시기는 한데 이튿날 일어나서 그동안 부지런히 눈운동을 했는데 왜 이런 병에 걸리는가고 “에잇, 이젠 그 운동 안할란다!”라고 하시니 천진한 소녀가 따로 없다.
 
손자와 손자며느리 앞에서도 애교를 부리니 손자며느리는 어머님의 표정만 봐도 귀엽다고 박수를 치며 탄복이다. 지금은 미니멀시대라고 하는데 동심으로 돌아가 이렇게 단순하게 사는 것도 좋지 아니 한가…
 
한 집에서 한 가마밥을 오래 먹어서인가, 우리 고부간이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주방에서 같이 동자질하면서 “더기, 더기 그거 가져와!”라고 모호하게 말씀하셔도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맞추고 척척 대령할 수 있는 우리 고부사이, 28년간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면서 이제 고부사이가 점차 모녀사이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늘 클래식음악을 가까이하고 책과 씨름하면서 우아한 척을 하는 나지만 어머님 앞에만 서면 그 모든 ‘척’방선이 와그르르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덩달아 단순모드로 변해간다.
 
산다는 건 워낙 단순한 것이 아니던가, 복잡한 것을 간단한 것으로 만들고 간단한 것을 없는 것으로 만들며 리해득실을 적게 따지며 살다 보면 세상이 단순하게 보이는 것이 아닐가…
 
오늘도 고부간의 평범한 일상에서 자잘한 리치를 발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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