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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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송이 장미의 비밀
2008년 06월 20일 20시 45분  조회:758  추천:56  작성자: 남영도
 

아흔아홉송이 장미의 비밀


남 영 도



그날 어떤 예감이 들었던것일가? 오전내내 꽃이야기였다.

수필가 S의 수필집을 편집하다가 꽃을 가지고 심리테스트를 하는 대목에 이르러 저도 모르게 볼펜을 멈추었다. 피끗 그 테스트문제를 사무실 동료들에게 내놓으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다가 지쳤는데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아담한 집 한채가 있어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집안은 조용한데 깨끗한 책상우에 꽃병이 있다고 한다. 그 꽃병에 꽃이 몇송이 들어있을지 느낌으로 말해보라.


동료들이 한송이라거니, 두송이라거니, 아예 한송이도 없다거니, 한, 두송이가 아니라 많이 들어있다거니 하면서 너도나도 자기의 느낌을 말했다. 그러면서 정답이 뭐냐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진짜 심리전문의이기나 한것처럼 짐짓 헛기침을 해가며 한참 뜸을 들이다가 그 꽃병안의 꽃송이 수자가 애인수자와 맞먹는다는 결과를 털어놓았다.

《하하하하…》

대번에 폭소가 터져나왔다.

꽃이 한송이 들어있다고 한 사람들은 물론 파스였지만 두송이 들어있다고 한 사람, 많이 들어있다고 한 사람들은 대뜸 화제의 대상, 공격의 대상이 되였다. 한바탕 웃고 떠들고나자 모두들 퇴근하면 자기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한번 테스트해봐야겠다고 은근히 벼르는 눈치였다. 

그날 나는 꽃병에 꽃이 많이 들어있다고 했었다. 여자치고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라 꽃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일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늘 꽂혀있던 여러송이의 인조화를 보아온때문이여서일가,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많이 들어있다는 대답이 흘러나왔던것이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남들의 공격대상이 되여 놀림을 당하면서도 한마디 변명하고프지 않은 그것이였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오전나절을 보냈는데 오후에 뜻하지 않은 일이 터졌다.

그야말로, 정말 그야말로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하게 긴 생머리를 한 웬 아릿다운 아가씨가 엄청 많은 량의 붉은 생화를 한아름 가득 안고 우리 사무실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리고 환장하게도 곧장 나를 향해 걸어오다니?!

웬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 아가씨가 《생일 축하드립니다!》하고 생긋 웃으며 그 생화묶음을 나에게 안겨주는것이였다.

묵직한 생화묶음을 받아안으면서 그제야 그날이 내 생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그날 새벽같이 한국으로 떠나다보니 생일같은걸 쇨 생각을 전혀 안했던것이다.

어망결에 꽃을 받아안은 나는 일순간 할말을 잊었다. 꽃은 화사하게 핀 붉은 장미였는데 여러송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수량의 꽃이였다. 후에 세여본 일이지만 그날 받은 장미는 정확히 아흔아홉송이였다.

누가 보낸건가고 묻는 말에 그 아가씨는 ××회사 전체직원들이 보내는거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카드에 《××회사 전체직원 드림》이라고 적혀있는걸 보니 남편 회사 직원들의 소행이였다.

누가 시켰을가? 처음에는 남편이 시킨게 아닐가고 생각했었는데 회사일로 바삐 한국에 간 남편이 언제 그런걸 생각할 경황이 없었을 것 같았고 또 평소 회사일과 집일을 한데 버무리는것을 질색하는 남편의 위인됨을 봐서 마누라 생일이라고 회사직원들보고 여차여차 하라고 시킬 사람이 아니였다. 그리고 결혼하여 여태 꽃을 선물한 적이라고는 한번도 없을만큼 로맨틱분위기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남편인줄을 나 또한 잘 알고있는 터이다.

동료들이 다가와 다투어 꽃묶음을 안아보며 연신 감탄이다.

《야―, 이건 완전 드라마다, 드라마!》

《아까 꽃송이가 많이 들어있다고 하더니 이런 일이 생기려구 그랬구나!》

모두들 한바탕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하면서 법석을 떨었다. 


꽃을 안고 거리에 나서는데 숱한 사람들의 눈길이 장미꽃다발에 쏟아진다.

《그 장미 아흔아홉송이 맞죠?》하고 물어오는 청년도 있었다.

저녁,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이 모처럼 마련하신 생일파티에서 그 아흔 아홉송이 장미는 또다시 화제가 되여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집에 돌아와 그 장미꽃을 손질하여 꽃병에 하나하나 꽂노라니 감구지회가 일렁인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생일을 숱한 사람들이 기억해주고있다는것이 이외스러웠고 황송스러웠다.

그런데 왜 100송이가 아니고 하필이면 99송이인가?

꽃에 대해 아는것이란 별로 없어 그 류행의 의미를 찾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99송이는 바로 100송이의 의미로 통한다는것이다. 99송이는 생물적의미의 꽃, 거기에 꽃을 받는 상대방을 1송이로 쳐서 100송이, 즉 완벽을 의미한다는것이다.

 그러고보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라는 위인은 꽃에 비유될 정도로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으니 물론 그 ‘나머지 한송이’의 뜻으로 나에게 꽃을 선물한것은 아니였을것이다. 두말할것없이 거기에는 성의를 나타내는 의미가 다분하리라.

그렇다면 나는 누군데 이런 분복을 받아안게 되였는가?  내가 남편회사를 위해 한 일이 뭔가? 아무리 따져보아도 내가 한 일은 없다. 있다면 어느 해 구정엔가 고향에 설쇠러 못간 남편 회사 직원들을 집에 불러다 밥 한끼 해준것이 고작일뿐이다. 그렇다면 사장님 부인이라는 이유로? 

그 이유가 정말 성립된다면 나는 이제 나 한사람에게만 속하는 몸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말그대로 이제는 인생을 사는데 한걸음 한걸음 심사숙고하며 내디뎌야겠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숙연한 기분까지 들었다.

밤이 이슥하건만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이 회사일에 미쳐 가족에게, 마누라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바가지도 많이 긁었었다. 가끔가다 티격태격하면서 듣그러운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자신은 직장일이 바쁘다는것을 핑게로 정작 이렇다할 내조도 못하면서말이다. 회사가 어려울 때 아내가 알면 걱정을 할가봐 전혀 내색을 내지 않고 혼자서 묵묵히 이겨내며 한걸음 한걸음 회사를 이끌어간 남편의 고심은 감감 모른채, 그 숱한 어려움을 딛고 마련한 이 가족의 오늘의 평화와 안녕은 의식못한채 왜 나는 그냥 참고 기다려야 하는가고 은근히 불평을 부리기도 했었다.

감동은 감동을 낳는가보다. 그날의 감동을 남편에게 전할 양으로 컴퓨터에 마주앉아 메일을 쓰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던지 남편으로부터 생일 잘 쇴는가는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낮에 있었던 꽃이야기를 했고 혹시 누구한테 시켰는가고 넌지시 묻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전혀 모르는 일이란다. 웬만해서는 잘 흥분하지 않는 나의 들뜬 목청에 남편도 퍼그나 감염된 눈치였다.

그럼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썩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날 서울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남편이 아내 생일인데 출장을 나오다보니 못쇠줬다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을 귀담아들은 함께 간 회사직원이 남편 몰래 중국에 전화를 해서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였던것이다.

회사를 위해 다년간 애쓴 남편의 노고가 드디어 전체 임직원들의 성의에 받들려 그 99송이 장미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는 순간이였다. 그러고보니 그 많은 수자의 꽃은 남편의 노력의 결실을 의미하는 것 같았고 그런 남편한테 내조를 잘해달라는 의미도 곁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남편의 노고를 99송이로, 아내의 내조를 그 ‘나머지 한송이’로 보는 ‘100송이 해석법’을 만들어보았다. 그럴듯한 해석이 되는 것 같았다.

남편의 힘든 노력으로 얻어진 결실에 감사할줄 모르는 간사한 내 마음의 작간을 간파라도 하듯이, 한번 로맨틱분위기에 푹 빠져보라고 이렇게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꽃사태를 안겨주는것이리라, 그래서 자칫 교만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뻔한 나를 깨우쳐주는것이리라.

한편 그것은 로맨틱분위기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다고 은근히 불만이였던 남편의 웅숭깊은 마음을 다시 한번 가슴으로 느낄수 있는 계기로 되여 남편의 숨은 노고가 가져다준 환장할 정도의 로맨틱분위기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새로운 눈을 달아주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그 새로운 눈으로 99송이 장미를 바라보니 ‘나머지 한송이’는 또한 ‘늘 모자라는 나’라는 의미로도 다가왔다. 늘 모자라는 나는 언제나 노력을 경주하여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완벽한 100송이로 거듭나야겠다는 편달을 해본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도 성장을 한다더니 마흔을 넘은 어느날 이렇게 꽃을 받고도 감동해하며 할말이 구구해하는 나라는 여자가 참 어이없고 한편 신기하고 대견하다.

스스로를 꽃같은 하찮은것(?)에는 별로 감동을 하지 않는 여자로 알고있었는데 이제보니 나도 꽃에 약한 어쩔수 없는 여자였다.

‘아흔아홉송이 장미와 그 나머지 한송이’에 담긴 새로운 의미에 걸맞는 아름다운 여자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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