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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에 음악이 흐를 때…
내 인생의 청춘기에 수필이라는 문체를 만나 너무나 아름다운 그 문체에 반해 매일과 같이 수필을 꿈꾸며 살아오기를 10여년, 하지만 솔직히 여태껏 한번도 문학인으로 자처해본적이 없다. 한것은 물론 직업작가가 아닌데서 오는 자격지심같은것때문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문학은 내게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요, 다달을수 없는 어떤 경지같은것이여서 문학하면 지금도 문학소녀처럼 가슴설레며 아련한 동경과 신비감같은것을 한가득 간직한채 문학권밖에 저만치 서서 괜스레 바장이며 문학을 선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나, 나는 어쩔수 없는 아마추어작가이렷다.
그런가 하면 음악에 대한 나의 동경 또한 문학에 못지않아 나더러 문학과 음악중 어느것을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시 대답이 궁해질 정도로 이 량자에 대한 내 사랑의 비중을 가늠하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음악을 틀어놓고 내나름의 명상에 잠기고 내나름의 랑만에 젖을수 있다는것, 베토벤, 모짜르트와 대화하고 파바로티, 조수미와 더불어 노래의 날개에 실려 자기를 잊을수 있다는것, 굳이 직업음악가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가, 나만의 공간에서 나는 이미 나의 음악가로 되여버린것을...
음악에 빠지든 문학에 빠지든 아마추어의 경지는 참으로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프로에게는 프로다운 장인정신이 있고 자기의 분야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경주하여 눈부신 성공을 이룩하는것으로 하여 늘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아마추어에게는 또 그나름으로서의 락이 있지 않을가. 프로의 그런 의식과 정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마추어는 강박관념에 매일 필요없이 언제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바를 여유있게 즐길수 있고 자기가 이루지 못한 그 대상에 대한 신비와 설레임을 간직한채 영원히 추구할수 있어 좋다.
사회생활 10여년, 나는 비록 내가 좋아하는 문학이나 음악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였지만 문학과 음악은 매일과 같이 나를 동반하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밥을 지으면서, 빨래를 하면서, 다리미질하면서 나는 언제든지 노래를 부를수 있고 글을 구상할수 있다. 문학과 음악의 요람에 안겨 살아온 지난 시절, 삼성오신(三省吾身)을 위한 일기쓰기를 고집하면서 자기를 벗기는 작업을 멈춘적이 없고 조용히 음악이 흐르는 방에서 신문을 펼쳐놓고 잘된 글을 오려내고 베끼는 작업을 멈춘적이 없다. 나만의 방에서 음악과 문학에 넋놓을수 있다는것, 그것으로 나는 이미 족하다.
음악이 무언지도 모르고 단지 좋아한다는 리유 하나로 덤벼쳤던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같은 노래일지라도 10년전과 10년후에 부를 때의 느낌, 감회가 다르다는것을 알면서 비로소 한이 서려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는 말의 참뜻을 서서히 깨치게 되었다.
얼마전에 있은 노래경연에 나갔다가 나는 이외로 많은것을 경험하고 수확하게 되었다.
번마다 그러하지만 경연에서 수상하기 위해서는 얼굴화장, 머리단장, 옷단장에서부터 모든것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게 포장을 해야 하고 며칠전부터 긴장한 마음으로 경연에 대비해야 하고 강한 적수가 무대에 등장하면 공연히 떨리고…거기에서는 예술을 대하는 순수함이라든가, 고상함이라던가 하는것을 전혀 찾아 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옷차림이며 표정관리와 같은 거추장스러운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는 그런 예술은 차라리 안하는것이 낫겠다는 절실함까지 들었다. 청각에 호소하는 음악예술이 음악성이나 가창력에 힘을 넣을대신 비음악적인 요소들에 더 큰 신경을 써야만 하는 요지음의 풍조,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수 있다면 그것은 정녕 우리 시대의 비애일것이며 또 그렇게 될 때 이 세상에 진정한 예술은 남아있을것인가?
며칠전 북경음악홀의 눈부신 무대에 지팽이짚고 나선 무명의 장애녀성을 보면서 크게 감동을 받은적이 있다. 발성훈련이란 전혀 거치지 않은듯한 거의 자연에 가까운 그녀의 목소리는 말그대로 예술의 극치를 이루었다. 자연의 순수를 위한 연출가의 고심을 말해주듯 화면에는 《녀성독창》이라는 일반적 통념의 명칭대신 《인성(人声)》이라는 이색적인 자막이 나와있어서 보는 이를 저으기 놀라게까지 했다. 100여명의 관현악대를 배경으로 하고 서서 소리를 내는 그녀는 비록 수수한 옷차림이였지만 조금도 초라해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멋지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말그대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였다. 누가 말했던가, 순수한 마음으로 림할 때에야 진정한 예술은 탄생된다고…. 옛 선인들이 산천경개를 찾아 노래 부르고 시 읊고 거문고를 타던 그런 경지를 조금은 알것같다. 거기서 자기의 예술과 음악을 알아주는 지기 한사람만 찾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경지도 알것같다….
다른 분야도 그러하겠지만 음악이나 문학으로 성공하였을 경우 흔히 명예라는 덫에 걸리기 쉬운 법이다. 요지음 가수들을 보면 오직 뜨기 위하여 대리인을 찾아 화려하게 포장하고 인위적으로 홍보하는데 열을 올린다. 문단이라고 다를바 있을가. 몇편의 글로 유명해지면 원고청탁이 비발치고 그런 청탁에 일일히 응하다보면 명예의 덫에 걸려 진실에 어긋나는 말도 서슴치 않게되고 또 자기가 탄 명예와 허영의 돛배에서 내리지 않기 위하여는 그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순수한 마음으로 문학에 림하던 시초의 모습이 그리워나는 요즈음, 《복숭아와 오얏은 말이 없어도 그 아래로는 자연히 길이 생기기 마련이다(桃李不言, 下自成径)》라는 옛 성현의 말이 때지난 말로 착각될 정도인 요지음의 그런 세태를 보노라면 아마추어로 문학과 음악에 림하는 나의 지금의 이 상태가 참으로 좋다는 생각이 든다. 쓰고싶을 때 쓰고 부르고 싶을 때 부르는 아마추어, 여유를 가지고 마음껏 즐길수 있는 유유자적의 경지, 그런 상태가 한없이 좋다.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고 싶을 때는 조용히 펜을 달리고 밖으로 밖으로 터치고 싶을 때는 정열적으로 노래 부르는 나, 나는 이렇게 문학과 음악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아마추어 작가, 성악가이다.
쓰면 쓸수록 점점 어렵게 다가오는 수필, 때로 잡힐듯 말듯 하면서 잘 뚫리지 않을 때면 가끔 노래 부를 때의 나를 련상한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성악가의 가창력이나 기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인들이 처리하기 어려워하는 고음부를 쉽게 재치있게 처리할 때면 저도 모르게 통쾌감같은것이 온 몸에 번지면서 성취감에 전률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수필도 노래부르는것처럼 쉽게(?) 씌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성악이라는것이 원체 선천적인것을 많이 필요로 하는것이라고 할 때 이 량자를 결코 같이 론할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모든 분야에 후천적인 노력이 많이 작용하는줄을 알지만 나의 경우에는 수필쪽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그럴수록 더욱 매력있게 다가오는 문체, 진솔한 고백만으로는 작품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심히 자각하는 까닭에 일생을 두고 추구하고픈 심정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수필은 서른여섯살 중년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라고 한 피천득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어 늦게 시작한 이 길에 크게 위안이 된다.
《나의 사전에 은퇴란 없다.》 이제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나는 결코 고독하지 않으리. 한것은 너무나 소중한, 내 생명과도 같은 문학과 음악이 나를 동반하기에… 늙어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할지라도, 기력이 쇠잔하여 펜을 들 맥조차 없게 될지라도 살아있는한 문학과 음악에로 향한 내 추구는 변함이 없을줄로 안다.
이 세상에 왔다가 문학과 음악에 몸을 기댈수 있다는것에 행복해해하며 오늘도 나는 나만의 방에서 음악을 틀고 책을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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