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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풍경
남 영 도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여기 북삼환선의 서패하에서 자동차의 물결에 휩싸일 것 없이 곧추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곧바로 주택단지가 나진다. 거기에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작은 다리가 나지고 좀 더 가면 가로수 우거진 길이 펼쳐진다. 그 길을 따라 사시사철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생활, 꼬박 18년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으니 이제 내 생활에서 자전거를 빼놓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나는 이 생활에 습관 되어 있다. 자전거는 나의 소중한 “애마”이다.
“뭐?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다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고 하면 대체로 이런 반문이 되돌아오기가 일쑤이다. 요즈음과 같은 스피드시대에 자전거가 웬 말이냐는 뜻일 것이다. 몇 년 전, 연변에 갔을 때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나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던 지인들의 표정을 봐도 나는 어딘가 고물적인 데가 있는 것 같다.
10여 년 전만 해도 출퇴근시간이면 자전거의 홍수로 천안문광장앞을 메우던 그 풍경은 중국의 대표적인 풍속도였고 그래서 중국은 “자전거왕국”으로 이름나기도 했지만 경제의 고속성장과 더불어 일반인들의 교통도구가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18년간 자전거라는 교통도구를 고집하면서 살아오는 동안 내 주변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친구들이 세집생활을 접고 번듯한 집으로 이사를 갔고 어느새 교통도구도 자가용으로 바꾸었다. 물론 나도 7년 전에 남부럽잖은 집으로 이사를 하였지만 어쩐지 그 애마만은 버릴 생각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더러 궁궐 같은 집에서 살면서 구닥다리 자전거는 이제 그만 버리고 체통에 맞게 자가용으로 바꾸라고들 난리지만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고집한다.
맨 처음 타고 다니던 자전거는 빨강색으로 남편이 사준 것이다. 그런데 13년을 타고나니 녹이 쓸어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바지에 싯누런 녹이 묻군 하였다. 기력도 쇠잔한듯 삐걱삐걱 소리가 나면서 잘 돌아가지 않아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고물이 되었다.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었는데…
그 자전거에 아들애를 태우고 학교를 가다가 아들애 발이 자전거 바퀴에 끼이여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가던 일, 자전거에 사과상자를 싣고 가다가 넘어져 상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일은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고 퇴근길에 고장 난 자전거를 밀고 길가 수리부에 찾아갔을 때 앞에서 기다리던 청년들이 집에 가서 밥을 해야 할게 아니냐며 나에게 순서를 양보하던 일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큰마음 먹고 새로 산 은빛자전거가 좋아서 싱글벙글거리며 타고 다니는데 웬걸,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북경사람이 아니다”는 말에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달만에 그만 도둑을 맞힌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친정아버지 간병을 갔다가 병원입구에 세워놓은 것이 어느새 변을 당한 것이었다. 누구네는 자전거를 9대나 잃어버렸다고 하니 내 경우는 크게 떠들 일도 못되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로 눈에 잘 띄지 않?남색으로 자전거 한대를 또 장만했고 아들녀석이 대학시험을 치는 날 녀석과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곧바로 시험현장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역시 자전거를 고집하는 만큼이나 한 직장에서만 일해오기를 23년, 평생 한 직장에서 그렇게 오래 일하는 것이 싫증나지 않느냐고 물어오면서 “이젠 베테랑이 다 되였겠네” 라고 놀라운 눈길을 보내오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내 사랑하는 자전거를 타고 그 때 묻은 직장에 다닌다.
요즈음은 환경보전시대라고 하여 자전거를 이용하면 개인적으로는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신체 건강에도 좋은가 하면 사회적으로 따지면 고유가시대에 에너지 절약에 일조할 수 있고 친환경교통수단으로 교통체증해소에도 한 몫 할 수 있다는 등으로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신문은 전한다.
사실 내가 여태껏 자전거를 애용해온 것은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교통도구이용에서의 나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이고 내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순리를 따랐을 뿐인데 이렇게 거창하게 열거하니 참말로 황공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속도면에서 자전거는 물론 자동차의 비교상대가 못된다. 그러나 속도가 빠르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과속이 부른 폐단들을 어디 적게 보아왔던가. 속도에만 눈이 어두워 부실공사로 지은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며 빚어낸 대형 참사들, 그런 비극으로부터 성찰과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면서 조금은 느리더라도 장인정신으로 내실을 차곡차곡 다져간다면 우리의 사회가 더 건전하고 더 아름답게 둥글어갈 것이 아닐까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느림의 미학으로 해석하자면 자동차가 “더 빨리, 더 편하게”를 외치며 달리면서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자전거는 보다 꼼꼼히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천천히 가는 자의 행복은 느껴본 자만이 안다.
요즈음 선진국의 많은 도시들에서 자전거는 21세기 녹색교통수단으로서 그 가치를 재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파리에서는 올해 5월부터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거리의 매 300미터 지점에 자전거대여소를 마련해놓고 “자전거로 교통오염에서 해방되자”는 슬로건아래 자전거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니 한때 자동차에 밀려 소외되었던 자전거가 ‘르네상스’시대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나고야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교통비는 두 배로 올려주는 대신 자동차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교통비는 절반 삭감하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 수가 어느새 360명에서 1200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아닌가.
몇 년 전 유럽 여행 중 네덜란드에서 낯익은 풍경을 보았으니 바로 자전거 탄 사람들의 물결이었다. 알고 보니 네덜란드도 유럽의 “자전거왕국”으로 불리운다는 것이다. 우리와 다르다면 그들의 자전거는 앞에 전조등이 부착되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덴마크에서도 세 사람 중 한사람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장관이든 시장이든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다고 한다.
요즈음 북경시도 대기오염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당에 녹색올림픽이라는 슬로건아래 “자동차를 하루 적게 운전하면 푸른 하늘이 하루 더 많아진다”고 하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요즈음 북경의 하늘이 여느 때보다도 맑은 것은 자동차홀짝제의 실시와도 관련이 되겠지만 또다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많은 시민들의 실천도 일조한 것이 아닐까싶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고요한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네…
이렇게 철따라 그 철에 맞는 노래를 부르며 가로수 우거진 길로 페달을 밟으며 출퇴근하는 이 생활,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면 더러 불편한 점도 따르지만 그런 것들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나에게 맞는 적당한 속도로 내가 사는 주변의 풍경에 눈길을 주면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이 생활, 나는 이 생활을 사랑한다.
20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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