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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 커튼을 내리우고
――“안”을 지키는 자의 고백
창에 커튼을 내리우고 혼자를 만든다.
소음과 공해의 도심속에서도 혼자를 만들 수 있다는데에 기이해하며 혼자만의 공간을 만끽한다. 독서와 음악에 흠뻑 취할수 있고 이 세상속을 살아가는 자기를 반추하고 저 세상속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투시할수 있는 자유의 공간― 혼자있는 방에 몸을 기댄다.
창에 커튼을 내리우고 책을 펼쳐든다.
책은 무서운 마력으로 나를 흡인한다. 지성인의 그 은밀한 내실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조용한 노래는 내 령혼심처를 적시기에 넉넉하고 그 맑고 순수한 감로수는 내 몸에 낀 때를 씻어주기에 넉넉하다. 독서의 은은한 향기에 취하여 나를 잊는다.
책은 “안”을 지키는 나에겐 유일한 대화자이다. “안”을 가꾸기엔 안성맞춤한 친구이다. 인생의 회의와 고뇌와 고통을 부담없이 맡기고 아픈 마음을 달랠수 있는 지기이다. 이제 내 젊음은 책속에서 흘러갈것이요 내 인생도 책속에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책이 있는 풍경, 그것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풍경속에서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주름이 가서 늙고 추한 얼굴일지라도 책을 손에 쥔 그 모습은 역시 아름다울거라는 생각이 든다.
창에 커튼을 내리우고 음악을 듣는다.
고요한 방안에 음악은 라이라크향기처럼 퍼지고 나는 그 음악의 요람에 기대여 내나름의 명상에 잠긴다. 재즈보다 클래식을 더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펼쳐주는 무한한 사유공간 때문이다. 그 드넒은 공간에서 자유자재로 날아옌다.
베토벤과 모짜르트와 브람스…가 만들어낸 위대한 음악에 심취하여 자기의 존재를 잊는다. 인간을 순수에로 부르는 음악, 그 음악속에서 한보한보 승화한다. 침체된 내 신경을 흥분케하고 절망에서 헤매는 나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고 랑만과 동경과 희망의 나래를 달아준 음악에 감사한다.
창에 커튼을 내리우고 사색에 잠긴다.
지금쯤 나는 어디에까지 와있으며 내 삶의 좌표계에는 어떤 허점이 없는가를 살펴본다.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매서운 눈매로 자기를 훑는다. 구석구석 샅샅이 뒤지고 한벌한벌 자기를 벗긴다. 차츰 자기가 보이고 희미하던 형체가 똑똑히 보이면서 드디여 원초적인 자기를 찾는다.
이를 구태여 고독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굳이 고독이라 한다면 이 고독의 늪에 깊이깊이 빠져들고싶다. 그러한 고독이 성숙을 낳고 관용을 낳고 창조를 낳음을 자각하는 까닭에 달갑게 고독한 선각자를 꿈꾼다.
자그마한 안방에서 눈부신 바깥세계를 내다본다.
화려하게 포장하는 바깥세계, 상품도 사람도 사회도 실속있는 내용물보다 화려한 포장에만 열을 올리는 세계, 가(仮)가 진(真)이면 진(真)도 가(仮)라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 겉포장에 열을 올리는 정력의 반의 반만이라도 내면가꾸기에 기울인다면 우리의 세상은 좀 더 살맛나지 않을가고 생각해본다.
다시 콩크리트숲속의 인간들을 바라본다.
거대한 우주천체속의 자그마한 지구, 그 자그마한 지구속의 미소한 인간, 끝없는 탐욕속에서 오히려 우주만큼 팽배해가는 인간, 도대체 우리는 무엇하러 이 세상에 왔으며 산다는것의 의미는 무엇일가? 세상에 원래 자기것이란 없다는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저 잠시 나와 인연되여 내 수중에 들어와있을뿐, 그 인연이 진하면 나중에는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줄을 안다면 가진다는것에 그토록 집착할수 있을가? 불가사의할뿐이다.
눈부신 바깥세계의 유혹에 포위된 현대인,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욕망을 잠재우며 마음을 비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돈오(顿悟)하며 혼자만의 방에 몸을 기댄다.
고요한 수면우의 련꽃도 좋지만 바람과 불의 시련속에서도 평온함을 잃지 아니하는 련꽃을 꿈꾸며….
《천지》1995년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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