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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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시대 간판아리아【2】
2014년 11월 05일 16시 59분  조회:6881  추천:21  작성자: 박문희

홍보시대 간판아리아

 

◎박문희 

 


(전호의 계속)

(3)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저급적인 오류도 없고 억지번역으로 생기는 딱딱함과 어색함도 없어 친절하고도 자연스럽게 안겨오는 그런 생동하고도 창의적인 간판이 우리 도시의 모든 거리를 밝게 메웠으면! 이것이 시민들의 소망일것이다.

 

연변의 간판은 국내 다수지역과 달리 번역작업이 필수다.“번역”이라 하면 직역(直译), 음역(音译), 의역(意译) 등 수단이 동원되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먼저 “직역”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古术点穴院”같은것은 “고술점혈원”으로 직역이 제격이며 그 근거도 찾아볼수 있다. “牛肉面”은 “우육면”으로 중국조선어사정위에서 만든 한조대역법에도 이미 규범화돼 올라있다.“都市驿站”,“松林阁”은 간판에 “도시쉼터”,“솔밭집”으로 씌여져 보기에 아주 정답게 안겨오지만 실은“도시역참”,“송림각”으로 직역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卫浴",“佳音发艺”,"日杂店",“供求世界”,"肥牛城"의 경우 그것을“위욕”, “가음발예”등으로 직역하는것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卫浴”은 상황에 따라 “욕실설비/욕실용품/욕조”로, “肥牛城”은 “신선로/소고기신선로/샤브샤브”로, “劳保日杂”은 “로동보호용품일용잡화”로, “佳音发艺”는 “쟈인뷰티헤어/가음머리방” 등으로 조선말규범에도 맞고 발음도 편하게 풀어쓸 여유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许黑鸭”이란 료리는 2005년도 연길에서 탄생한 브랜드인데 “허흑압”이란 조선말 직역명칭을 입에 올리기가 너무 힘들었던 탓인지 그 맛에 대한 관심조차 별로 일으키지 못한듯하다. 만약“허씨네 깜장오리 특별메뉴”라든가 “연길브랜드—-까만오리”이런 식으로 했다면 어땠을가? 하다못해 음역을 취해 "쉬헤이야 특별료리전문"이라고 했어도 말번지기가 “허흑압”보다는 덜 어려웠을것이다.

 

“早敎中心-조교쎈터”. 여기서 "조교"는 분명 틀리는 “직역”이다. 대학에서 교수의 지시에 따라 학술연구와 사무를 돕는 직위로“조교”가 있고 중국에서 영주권을 갖고 있는 조선교민도“조교”이다. 이런 상황에서 “早期敎育”의 준말인 “早敎”를 “조교”로 직역할수 없다.“早敎中心”은 “조기교육쎈터”로 돼야 한다.

 

실상 우리가 보다 자주 접하는 문제는 “사이비직역현상”이다. "검패(箭牌) 주방가구", "문봉(文风)서점", "리침(利晨)리발점", "돈화로명(鹿鸣)산장", "소군(晓军)부품" “소동 (晓东)특색구이”,“연화(艳花)보신탕”,“운룡(运隆)식당”,“가화(家合)식품”,“만국첨(万果甜)슈퍼”,“전구(站久)꼬치집”,“명사테마객전(客栈)”,...뭐 이런게 수두룩한데 피끗보면 문제가 별로 있어보이지 않지만 기실 모두가 오역이다. 모르긴 해도 箭(전)은 剑(검)과 한어발음이 같으니 당연히“검”일 것으로 착각했을수 있겠고, 같은 리유로 风(풍)은 峰(봉)과, 晨(신)은 钱其琛(전기침)의 琛자와, 鹿(록)은 路(로)와, 晓(효)는 小(소)와, 艳(염)은 宴(연)과, 隆(륭)은 龙(룡)과, 合(합)은 和(화)와, 果(과)는 国(국)과, 站(참)은 战(전), 栈(잔) 역시 战과 한어발음이 같으니 우에서 보는 간판어처럼 쓰는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했을수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그게 아닌것이다. 조선어는 필경 한어와는 별개의 언어체계인만큼 한어발음이 같다고 해서 한자어발음도 반드시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는것이다. 더도 말고 “站,占,战” 세글자를 보자. 이 세 글자의 발음은 한어로는 똑같지만 조선어 한자음은 “참, 점, 전”으로 모두 다르다.

 

이제 상기문제를 산생시키는 뿌리요인을 따져보자. 이는 분명 조선어교육 부재의 필연적악과라고 생각한다.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아니, 조금도 심하지 않다. 우리 조선말어휘는 약 70%가 한자어로 되여있다. 한자를 바탕으로 조선말 한자음독법을 리용해 만들어낸 우리말낱말이 한자어다. 또한 한자를 주어진 위치에서 글자의 뜻과 일치하게 해석해 읽는 법이 훈독법이다. 한자어의 음독법으로“한래서왕(寒来暑往)”하면 훈독법으로 찰 한(寒), 올 래(来), 더울 서(暑), 갈 왕(往)이 되는데, 만약 2천자 가량 되는 상용한자어의 음독법을 모르면서도 문제가 안 생긴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것이다.

 

한자어의 음과 훈을 익히면 평생 그 득을 보게 되지만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조선어학습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문제는 우리의 학교교육에서 교수대강에 의한 한자어교육이 빠져있다는것이다. 바꾸어말하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자음독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니 적지 않은 학부형들은 비싼 값을 치러가며 자식들에게 과외로 한자어공부(례컨대 천자문학습)를 시키기도 하지만 그게 필경은 제한적일수밖에 없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간판어를 정확하게 쓰라고 하면 못배운 사람들만 힘들뿐이다.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결국 못배운 사람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그러니 간판용어에 이런 문제가 많이 생기만 자연히 자학 등으로 한자어를 배워 언어학자로 된 이들과 번역관련실무를 맡은 공무원이나 전문가들만 욕을 도맡아먹게 돼있는것이다.

 

(4) 

 

연길의 약방, 아니 중국 전역의 약방간판은 덮어놓고 모두 “대약방”이다. 크면 물론 대약방, 작아도 대약방이다. 약방처럼 평등한 업종이 약방말고 또 있을가 의심될 정도다. 기실 연길의 약방치고 진짜 큰 약방이 있기나 한가? 대부분 작은것 같고 중등정도의 약방도 별로 있는것 같지를 아니하다. 그래도 간판에는 큰“大”자가 약방의 감초처럼 붙어다니는데 그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글자랑비다. 모든 약방에 다 큰“대”자가 붙는다 할때 사실 그“대”자는 있으나마나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전국 각지 모든 약방의 “대”자를 가차없이 없애라고 호소하고 싶다. 물론 호소하나마나 한 일이겠지만.

 

한데, 모든 약방들을 분별없이 다 대약방이라고 이름 달아주는것도 그렇지만 성곽 성(城)자를 쓰지 않으면 마치나 간판이 안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성(城)자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한족들은 워낙 집주변에 성을 잘 쌓으니까 리해되는 점이 있지만 그옛날 쪽박차고 살길 찾아 두만강을 건너온 우리 조선족은 집주변에 싸리나 옥수수대로 울타리나 두르는데 습관되여 성(城)하고는 분명 거리가 있는데도 누구한테 뒤질세라 간판에 성을 쌓으니 참 기분이 어수선하다. 鞋城-신성, 串城-뀀성, 红酒城-와인성, 台球城-당구성, 电子城-전자성, 批发城-도매성, 饺子城-물만두성...말짱 이런 식이다. 그래 “성”자를 모조리 뽑아던지고 “모카와인, 신주물만두, 양고기꼬치, 신사당구, 아리랑전자, 신발도매” 이런 알맹이만 남겨두면 정말 간판이 안된다는 말인가?

 

한어간판어가 조선말로 이상하게 “번역”되는 상황을 흔히 볼수 있다. “日月红”이 “해달홍”으로,“一口香”이“한입향”으로,“异火香”이“이불향”으로,“碳烤家”가 “구이가”로, "鲜鱼馆"이 "선물고기집"으로,"梦乡园" 이 "꿈향원"으로 번역된 례가 그렇다. 여기서 日月红이나 一口香 등은 가게의 명칭으로 명사화된것인데 간판은 그것을 마음대로 의역(“日月红”의 “해달”,“一口香”의 “한입”)혹은 직역(“日月红”의 “홍”,“一口香”의 “향”) 을 해서 “해달홍”, “한입향”으로 합성했다. “이불향”, “구이가”, "선물고기집"이나 "꿈향원"도 마찬가지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는 번역이 아니다. 우리말을 어지럽혀 웃음거리를 빚어내는것이다.

 

의역어와 직역어의 합성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간판어“骨汤米粉”을 골탕쌀국수로 번역하면 큰일난다. “그집으로 골탕먹으러 가자!” 하면 말이 되겠는가? 국수집의 립장에서도 손님에게 “골탕을 먹인다”면 죄되는 일밖에 없을것이다. 때문에 점포이름을 “뼈탕쌀국수집”으로 하는게 비교적 안전하다. 그런데 실제 "뼈탕집에 가서 골탕먹었다"는 말은 없지만 "골탕집에 가서 뼈탕 먹었다"는 식의 말은 있다고 한다.

 

“달리쿨문신(跑酷刺青)”이란 간판어에서“刺青”과 “문신”은 정확히 대응되는 언어지만 “달리쿨”은 역시 웃음거리다. “달리쿨”이란 대체 어디서 온 이름일가?“달리다(跑)”와 “쿨하다(酷)”에서 왔을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사 “달리다”의 어근 “달리”와 형용사“쿨하다(酷)”의 어근 “쿨”자만 따다가 한데 붙이는 식의 이런 고유명사 합성법은 있을수 없다. 실제로 "跑酷刺青"의 업소주인은 업체이름을 체육종목의 일종인 "跑酷(영어표기 Parkour)"에서 따왔을수 있다. 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 업소의 조선말명칭은 “파쿠르문신”이여야 맞다.

 

간판어를 취급할 때 정말 주의해야 할점이 있다. 원 간판어의 뜻이 뭔지를 똑똑히 알고 번역을 해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名花串城/명꽃뀀성”이란 간판을 보면 명꽃이란 말이 이상하다. 명화면 명화지 명꽃이라니? 인터넷검색을 해보면 한국의 진도지방 말로 면화를 명꽃이라 한다는 것이 바로 나타난다. 그러니“名花”는 의례 “명화”로 바뀌여야 한다. 그리고 방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串城”도 “뀀성”으로 할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양고기/소고기)꼬치”,“꼬치전문점”아니면“꼬치구이” 혹은 “꼬치맛집”과 같은 정갈한 우리말로 새겨올려야 하는것이다.

 

“索菲亚衣柜/쏘베야옷궤”에도 문제가 있다. 옷 의(衣)에 궤 궤(柜)이니 당연히 “옷궤”겠거니 하고 “쏘베야옷궤”라고 했는데 “衣柜”란 실상“옷장, 장롱”, 말하자면 한어의 立柜,衣橱를 두고하는 말이고 “옷궤”란 “옷을 넣어 두는 나무상자”, 즉 한어의 “箱笼”, 우리말의 휴대용 옷궤나 트렁크를 일컬음이다. 그러니 홍보물의 원뜻과는 거리가 먼것이다. “索菲亚(Sophia) ”도 “쏘베야”가 아니라“소피아”로 해야 옳다.

 

서시장에 “土家酱香饼”이란 음식가게가 있는데 조선말간판어는 “토집장향병”이다. 한데  가게명칭중의 “土家”란 사실“흙집”이나 “토집”이 아니라 우리나라 56개 민족의 하나인 “투쟈족”을 일컫는다. 따라서 “酱香饼”이란 투쟈족의“전통맛떡”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런데 “土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지도 않은채 성급하게 “번역”을 해 올리다보니 이런 웃도울도 못할 문제가 빚어진것이다. 투쟈족관련자가 이런 사실을 아는 나들에는 모종의 불쾌한 일도 생길만 하다. 이런 의미불명의 간판어가 지금도 장마당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하고있으니 투쟈족형제들과 매일 그 간판을 보는 손님들에게는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다음 호에 이음)

《문화시대》2014년 제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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