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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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조상의 개척사적 이동
2007년 12월 25일 07시 21분  조회:8703  추천:105  작성자: 박문희

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는가(3)

 

인류조상의 개척사적 이동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걸어온 족적을 더듬어 올라가면서 시야를 보다 광활한 지역에로 확대해야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다. 그런데 유전인자검사에 의한 과학자들의 현생인류기원연구의 결과는 문제의 풀이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주고있다.

 

인류기원연구프로젝트 총지휘인 스펜서·웰즈(미국) 저서인류전사(人類前史)(東方出版社2006年版) 바로 장려한 개척사적 려정을 묘사한 인류의 유전인자보고서이다. 간단히 사람의 남자한테만 유전되는 Y 유전자의 타입을 연구하여 인류가 어떻게 전세계로 퍼졌는지를 밝혀낸 성과서인것이다.

 

책에서 스펜서·웰즈는 현생인류의 기원문제에 대해 아주 선명한 견해를 제기했다. 그는 우리 민족이 4만년 중앙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이동해와 형성된것으로 최첨단 DNA 분석결과를 통해 밝히고있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현생인류가 중앙아시아 일대에 옮겨와 살다가 3~4만년 전에 갈라진 원주민 가운데 서북쪽으로 이동한 일파가 유라시아인종이 됐고 동으로 몽골을 지나간 일파는 중국 북부, 한국 등에 퍼졌으며 일파는 남쪽으로 해서 중국 남부과 동남아로 퍼졌다는것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 각지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의 공동한 조상을 갖고있는데 바로 6만년전 아프리카주에 살던 남자라는것이다. 5만년 장시간에 걸쳐 가물과 기황이 계속되면서 그들중 한무리가 고향을 떠나 모험적이동을 시작, 수만년에 걸쳐 사람이 살만한 지구우의 거의 모든 곳을 차지한다. 현재 지구상 모든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문화, 체형, 생김새, 피부색이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만 그러나 과학연구결과가 표명하다싶이 85 유전인자변이는 전반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것이며 그외 8만이 인종획분의 의거로 될수 있다는것이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인종의 차별은 8 그칠 뿐이라는것이다. 인류는 공동한 생물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종에는 우렬의 구분이 없다는것이다. 종족주의자들의 종족기시는 리유가 없다는 단적인 증거를 제시한 셈이다. 유전자연구의 결과로 말미암아 인류의 기원연구에 부정적 영향을 장기간 끼쳐왔던 혈형론 인종결정론 대부분의 오유를 극복하게 되였다.

 

스펜서·웰즈는 여러 나라 과학자들과 합동연구를 진행한 결과 오늘의 세계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왔으며 중국에 살았던 藍田人, 元謀人, 北京人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현생인류가 도착하기전에 멸종됐음을 밝혀냈다.

 

유전학자들에 의하면 인류의 이동은 한번에 실시된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실시돼왔다. 스펜서·웰즈의 저서와 중국의 중국의 유전학자 金力교수의 연구팀, 한국 단국대학의 김욱교수 연구팀, 일본 돗토리대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팀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라 중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에 관계되는 인류의 이동로선을 다음과 같이 귀납분석해보았다.

 

아담 남성 유전자로부터 M168 코드를 포함한 남성 유전자를 가진 그룹이 4 5000년전에 아프리카에서 형성되였다. 이들은 인도 서부까지 이동했는데 그중의 계통인 M89그룹으로부터 4만년 전에 M9그룹이 생겨났고 M9그룹은 3 5000 중앙아시아의 한갈래 통로를 따라 이동, 천산과 알타이산맥 일대에 이르러 거기서 M175그룹을 낳는다.

 

M175 다시 동아시아의 방향으로 퍼지는데 한갈래는 동으로 이동하여 동북땅에서 자리를 잡고 그중 일부는 한반도에까지 들어간다. 다른 한갈래는 남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M122그룹을 생성하는데 그룹은 장강 근처에서 벼농사를 하던 중국인집단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M122그룹은 한국인집단에서도 비교적 높은 빈도( 30%) 보이는데 계통이 해안선을 따라 한반도내로 이주했다고 볼수 있다.

 

M122에서 한족의 염색체계통은 주로 O3, O3e O3e1 세가지 류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중국 남부에서 동북부 방향으로 전파되였다. O3 남아시아 군체와 묘족들에게서도 나타나지만 O3e1만은 한족이 단독으로 갖고있다. 류형이 원시한인( 화하족)으로 황토고원(섬감녕지역)에서 발생하여 일부는 적인(翟人)부족을 형성하고 일부는 중원방향으로 이동한다.

 

연구결과로 보아 유전적으로 한국인은 북방한족과 가장 가깝고 다음으로 일본, 몽골, 남방 한족 순으로 가깝다는것이 한국 김욱교수의 견해다. 카톨릭대학의 한훈교수가 한국인과 여러 민족을 대상으로 항원을 검사한 결과 한국인들은 일본인, 비르마인, 인도 동북부의 소수민족, 운남성 주민, 화북 한족, 동북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실험결과가 확인되였다.

 

M175 하위그룹 M122 계통의 분포는 동아시아 여러 민족이 한줄기에서 뻗어나와 친연관계가 기실 매우 가깝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이상의 자료를 보면 한국 교양국사연구회의 1994 개정신판 <이야기 한국사> 다음과 같은 서술의 성립이 가능한것이다.

 

원래 동이족의 거주지는 중국 서북부 섬서성 기산(岐山) 서쪽지방이라고 전하고있다. 그러나 말을 타고 주변의 여러 나라를 습격하는 북방계 유목민족의 압력을 받아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섬서성 한성현으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북경지방인 하북성 고안현을 거쳐 한갈래는 산동반도쪽으로 내려가 회하(淮河)이남까지 널리 퍼져 살기 시작했다. 이른 바의 구이나 우이(嵎夷), 래이(萊夷), 회이(淮夷) 서이(徐夷) 바로 그들이다. (17~18)

 

몇년전에 나온 한국 최양현희의 <초중고 학습자료>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있다.

 

동이족은 중국 북서지역에서부터, 갈래는 만주 남동부와 한반도로, 다른 갈래는 하북, 산동 방면으로 이동하였으며 산동 방면의 동이는 은대(殷代)로부터 漢族 끊임없는 접촉과 투쟁을 벌였고 周代에는 회하 류역까지 진출하여 대련합세력을 이룬것 같다. 그러나 지역 동이족은 秦始皇 통일정책에 따라 한족에게 점차 동화, 정복되거나 쫓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동이족은 (), 예맥족으로 일컬어졌고 차례 민족이동을 계속하면서 중국 동북지방, 한반도 등지에 우수한 청동기문화를 이룩하였다.”

 

그외 한국 경희대 최진교수는 맥족의 무덤군이 중국내몽골 남동부지역에서 발견됐다는 1997 3 26 신화통신을 인용하면서 맥족은 고조선시대의 어느때인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기원전 10세기 내지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서역으로부터 이동해온 후기 이민이였을것으로 보고있다. (<다시 쓰는 한일고대사> 26)

 

여기서 우리는 한국의 력사학계에서 수년전부터 이미 동이족이 본토에서 발생한것이 아니라 서쪽에서부터 동으로 이동하여온 부족임에 주의를 돌렸음을 알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추리가 가능할것이다.

 

우리의 선인들은 아프리카주에서 출발하여 중아아시아에서 머무른 일부는 북으로 올라가 유러시아민족을 형성하고 일부는 두갈래로 나뉘는데 한갈래는 동으로 흘러 천산일대와 몽골지역을 경유, 동북지역에 이르며 한갈래는 중국서북부로부터 남하하여 남방민족(남방계) 구성한다. 남하하는 행정에 갈래는 따로 떨어져나와 섬서성을 거쳐 황하 하류에 이르는데 그들이 바로 우이, 래이, 회이 서이이다. 동북지구에 이른 한갈래는 예족과 맥족을 형성하며 한갈래는 한반도로 들어가고 다른 갈래는 해안선을 따라 황하하류방향으로 이동한다. 서북에서 남하하여 남방계를 구성한 민족(벼농사를 맨처음 시작한 민족으로 남방계 한족도 포함함) 일부는 농경문화의 발전으로 인구폭발이 생기자 해안선을 따라 동부 연해지역으로 이동, 일부는 벼농사기술을 가지고 한반도로 들어가고 일부는 九夷族 형성하는데 그들이 서에서 嵎夷 부족과 동북에서 내려온 부족들과 함께 후에 동이족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우리 민족의 선인들인것만은 아니다. 한족의 선인이기도 하다. 한줄기로부터 뻗어나왔고 그들이 화하족의 중요한원으로 되였기 때문이다.

 

현재 현생인류 아프리카주기원설이 서방이나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있는 반면 우리나라 고고학계의 일부 권위인사들이 아직 부동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인류의 이동로선 도감프로젝트가 지금 한창 실시중이므로 이미 최후 결론이 난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이미 확실하게 증명된 실험결과만으로도 현생인류 아프리카주기원설을 뒤엎을만한 증거를 제시하기는 아마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만약 우리 최초의 조상이 짜장 아프리카주에서 온것이 맞다면 그들의 새로운 삶을 위한 모험의 행군이 결국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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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박문희
날자:2008-03-18 02:24:03
제문주신데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하남 허창인 두개골 중대발견사항과 근년래 에스빠냐 고생물학자 로쎄브.지베트박사가 제기한 중요한 새 학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지요? 줄곧 이 면에 주의를 돌려왔기에 다소 알고 있었습니다. 허창인두개골의 발견은 5~10만년 전의 공백을 메운 돌파적인 발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주기원설을 뒤엎을만한 관건적 증거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권위인사들이 말한걸로 알고있습니다. 에스빠냐의 일부 발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고고학발견에 의하여 지금까지의 지배적 “기원설”이 뒤짚힐 가능성이 없는건 절대 아닙니다. 그때에 가면 현재 일부 관점의 수정은 불가피하겠죠. 그러나 뒤짚히기 전부터 서뿔리 현존의 지배적 관점을 “어처구니 없는 망설”로 몰아붙이지는 말아야 할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동한 관점의 존재를 모두 허용해야 함이 중요한건 바로 이때문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1   작성자 : 망향
날자:2008-03-17 22:02:14
인류의 아프리가기원설이던 다지역진화설이던지를 물론하고 사학자들의 일종 가설에 불가한것입니다.요즘에 서반아와 중국에서 아프리카기원설을 뒤집어 엎을만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있다는것을 아시는지요? 고고학은 문학적인 상상만으로는 해결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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