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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항산 청장하에도 탐석의 자취 남기며
8월의 태항산항일근거지 답사차 하북성 찬황현 경내 홰하에 탐석의 자취 남겨 보았더니 섭현경내를 흐르는 태항산의 청장하에도 탐석의 자취 남겨보는 취미생활 이를데 없다.
하북성 섭현의 남장촌, 하일촌, 적안촌, 중원촌, 석문촌은 그젯날 태항산 항일근거지에서 활동했던 우리 팔로군내 조선의용군부대가 머무르던 유서깊은 마을들이다. 이런 마을들은 모두가 청장하를 사이두고 20킬로메터쯤 되는 거리에 널리여 있는데 여러 마을 변두리를 스쳐흐르는 청장하에는 청장하에 깃든 우리 조선의용군부대의 항일이야기들이 전해지는가 하면 태항산의 돌들이 잘 수마된 상태로 쫙 깔리여 탐석지로서는 제격이다.
8월 20일, 청장하 량안의 여러 마을 답사를 마치니 섭현 경내의 태항산 항일근거지 답사는 끝나갔다. 하루길을 달린 해가 서산에 걸터 앉기까지는 두세시간이 남아있고 섭현 현성과의 거리도 3킬로메터에 불과하다. 내가 청장하에서 탐석하고 싶다며 택시에서 내리니 택시운전사는 막지는 못하고 맥이 진하면 핸드폰으로 알리라고 신신당부한다. 그 소행이 고맙기만 하다.
청장하에도 찬황 홰하와 같이 엄청 크기의 모래장이 이루어져 오랜 세월속 파묻혀 있던 수마가 잘된 강변돌들이 그대로 드러나 그리도 유혹적이다. 한 조약돌의 형성이 수십수백만년 장구한 세월이라고 할때 둥글둥글, 반들반들 수마가 잘 되기까지 그 시간이 얼마랴, 이런 수마돌들이 십여메터 두께를 이루며 청장하 바닥을 덮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하긴 청장하는 찬황 홰하와는 달리 태항산의 희부연 모양의 돌들로 덮이여 여러류의 수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와중에도 각가지 문양석은 천태만상이여서 나의 마음을 다 잡기에는 족하다고 할가, 나는 어느결에 문양이 곱게 박히고 석질도 좋고 지니기에도 어울리는 수석 한점을 주어들고 기뻐 어쩔줄 몰랐다. 우리 조선의용군의 발자취 남겨진 청장하에서 탐석했다는 자체가 의미가 유달랐다.
청장하는 올해 극심한 가물에 흐르는 물 사라지고 강바닥이 드러났다. 한시간쯤 청장하를 훑다가 강바닥이 둔덕진 곳에서 다리쉼을 하노라니 팔로군 총부가 자리잡았던 적안촌이 시야에 안겨든다. 적안촌 강건너 중원촌은 조선의용군부대가 머물던 곳이라면 십리쯤 되는 강아래 오지산 기슭에는 남장촌, 하일촌이 보이여 태항산항일근거지 주체가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그에 따라 그젯날 조선의용군 전사들이 강에서 빨래하며 물고기를 잡던 모습들이 떠오르고 장마철 강을 건너지 못하여 대안의 적안촌 팔로군총부에 전할 통신을 잘 훈련시킨 세빠드로 전하는 무정장군의 모습이 우렷이 솟아오른다.
벌써 두어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답사중 적안촌의 장군령에도 오르고 해발 900여메터를 이루는 명승지ㅡ여와궁에도 오른데서 오늘따라 두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생각뿐이지 적안촌~남장촌구간 십여리 탐석길을 이어갈것 같지 못하다. 3~4리를 내리다가 종내는 주어든 문양석까지도 아쉬운대로 버려야했으니 맥이 빠질대로 빠진 내가 한스럽다. 별수가 없지, 막무가내에서 핸드폰으로 택시운전사를 부르니 택시는 지체없이 나한테로 달려왔다.
정말이지 고마운 운전사이다. 이틀간 태항산근거지 답사길에서 인연을 맺은 보람으로 나는 현성의 룡산거리 주숙처까지 무사히 이를수 있었다. 피로가 일신을 강타해도 겨레의 숨결어린 하북 섭현의 태항산항일근거지 청장하에도 탐석의 자취 남겼다는 자체가 마음을 달콤하게 한다.
2009년 8월 20일, 하북 섭현 호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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