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http://www.zoglo.net/blog/wujihuo 블로그홈 | 로그인
<< 10월 2024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 -> 이야기/뉴스 -> 살아가는 이야기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

어머님 생각...자애의 손 사랑의 눈 자비의 마음
2014년 02월 28일 13시 08분  조회:6722  추천:6  작성자: 오기활
어머니 생각
오기활

올해의 첫눈은 11월 17일에 내린 30년 만에 처음 내린 대설이란다.8일 아침, 이날도 필자는 장애자 최원네를 돕느라고 도문원샘목욕탕의 눈치기를 하는데 핸드폰소리가 울렸다.

<<오래비요?>>                              
<<아, 누님이구만>>
<<어디에 있길래 집에 전화를 해도 받지 못하오?>>
<<지금 목욕탕에서 한창 눈을 치고 있소>>
<<글쎄, 어머님이 올해도 우리에게 눈이불을 보냈구만!>>
<<무슨 말이요?>>

누님의 말이 어제(음력 10월 15일)는 엄마의 제사날인데 엄마가가 세상을 뜬 후 65년간 해마다 제사날에 눈이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님이 한국에 갔을 때 한국사람들이 중국에 언제 눈이 내리는가는 물음에 <<해마다 음력 10월 15일이면 꼭 눈이 내린다>>고 장담을 했단다.
(나이와 동반하는 설음일가? )

나는 언제부턴가 <<엄마>>생각에 종종 눈물을 흘리군 한다.이 날도 마찬가지였다누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 방금까지 부담으로만 느껴지던 눈마당이 볼수록 어머니생각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어머니가 해마다 어김없이 눈이불을 하사하다니?)

이런 생각으로 더는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서 눈치기를 접고 누님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엄마제사날에 해마다 눈이 온다는 말은 오늘 처음 들었소. 어머니가 무슨 의미로 눈을 하사할가요?>>
<<글쎄…>>
 누님의 얼굴도 그림자가 비꼈다.
<<누님은 어머니에 대한 어떤 기억이 남아 있소?>>
<<글쎄, 기억이 있다면 어릴 때(5살) 길가에서 빈 마대를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리고 엄마한테 욕을 먹을 가봐 겁이나 울었던 생각이 나고…>>
<<엄마 장세(사망)때 자란(어른)들이 죽은 엄마의 입을 벌리고 구술을 넣어 주면서 자식들을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부탁던 일이 생각나고…>>
<<그밖에 시집을 간 후 해마다 엄마제사에 증편을 해 이고 큰집으로 다니던 일이 눈앞에 선하고…>>

6살에 어머니를 잃은 셋째누님(71)이 하는 얘기가 기껏해서 이뿐이다.
 (어머님이 해마다 자식들에게 눈꽃을 하사 하는 것을 보아 꼭 무슨 뜻이 있겠는데…)이런 생각에서 필자는 이번을 기회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글을 쓰겠다고 작심했다.

큰 누님(계옥,79)이 치매에 걸렸으니 찾을 수 없고 왕청에 있는 둘째누님(순옥,76)한테 전화를 걸어 어머니에 대한 남는 기억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둘째누님 역시 어머니의 제사날엔 해마다 눈이 내린다며 하는 얘기다.

<<엄마는 결혼하여 10년을 큰집과 함께 살고 세간나서 5년 만에 3녀 1남을 남겨놓고 상세 났소>>(모두 3녀 3남을 낳았는데 우로 2남이 요절)

<<엄마가 상세 난 해에 큰언니는 13살, 나는 열살, 금자는 여섯살, 오래비(기활)는 두살…>>

누님에 따르면 엄마가 계실 때 금자는 너무 울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돼지굴에 들어갔고(그 때 아이가 울면 돼지굴에 넣는다고 위협하며 달랬다) 오래비(기활)는 자주 앓다 보니 생진 후에도 혼자서 앉지 못하여 이불이나 포대기를 둘러놓아야 앉았다는것이다. 그런데 별일이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부터 울음보였다는 금자의 <<울음>>병과 오래비의 병이 기적같이 떨어 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머가 저세상으로 가면서 자식들의 병을 함께 챙겨갔는지 말이다.

 엄마는 마음이 너그럽기로 한량이 없단다.

 혹시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언쟁을 하면 일에 지친 몸이라 싸울맥이 없으니 <<내가 입안에 있는 밥을 다 먹은 후에 싸우깁쏘>>하며 언쟁을 피했단다.

그때 우리 집은 아버지가 병으로 일을 못하고 엄마가 혼자서 일하다 보니 생활이 궁핍하기로 말이 아니였었다. 둘째 누님의 기억에 여름에 엄마가 신을 신고 다니는 것을 못 봤다고 한다. 한번은 약을 다리려고 동네에서 풍로(風爐)를 빌려 왔는데 땔 것이 없어서 어머니가 마른 소똥을 주어서 풍로에 때더란다.

그 때 우리 집은 로동력이 없다 보니 늘 친척들이 동원해서 일손을 도왔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뜨던 해(1949년)에도 동네서 제일 마지막으로 탈곡을 끝내고 그날에 어머니가 촉한(땀이 난후 불시에 찬바람을 맞으면 걸리는 병)에 걸려 일주일만에 32살 나이에 하늘나라에 갔단다.

어머니는 림종전에 혀가 움직이지 않아서 겨우 겨우 이런 말을 하였단다.
  • 물남(곡수)에서 시아버님이 이 둘째며느리를 오라고 부른다.(그때 할아버지는 이미 타계했음)
  • 큰형님(필자의 백모)이 저 도깝들을 거둘라니 얼마나 고생 하겠습둥…
  • 기활이를 한번 더 보고 가겠다!(그 날 마을에서 오민준의 참군환송을 하느라 누님들이 필자를 데리고 갔다고 함)
   둘째누님은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지금까지 한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더라며 목이 메여 말을 있지 못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철없는 누님들은 늘 아버지와 <<차라리 아버지가 상세(사망)나고 엄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둥? 엄마와 바꿔서 상세날 것이지…>>라고 투정을 하면 아버지도 <<내 마음도 그렇다. 서로 바꿔 죽었으면 나도 고생을 안하고 너희들도 덜 고생할것이니 말이다>>라며 긴 한숨을 쉬더란다.

그런데 아버지의 운명도 기구하여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8년 만에 이외의 사고로 40살 나이에 세상을 하직할 줄이야!나는 지금까지 엄마를 본 기억이 없으니 <<엄마>>를 불러본 기억은 더욱 없다.

아버지가 한동안 계모를 맞았을 때 나는 늘 계모를 <<훗엄마>>라고 불러서 아버지가 그저 <<엄마>>라고 부르라고 시키던 일이 기억된다.

나의 입에서 <<엄마>> 말이 떨어지지 않기로 장모님을 <<로인님>>이라고 불러 장인, 장모의 오해까지 받았다.그런데 어머니는 이 아들과 정녕 그 무슨 인연이 있는듯 하였다.

1973년 내가 연변농학원에서 입당할 때다.내가 입당지원서를 쓸 때 그만 어머니 이름을 몰라서(그때 집안의 친척들도 몰랐음) 한창동안 망서리다가 (간대로 조직에서 몇 십년전에 사망한 사람의 이름을 조사하겠는가?)는 생각으로 어머니 이름을 <<전정숙(全貞淑)>>이라고 작명했다.

 그후 1976년이라고 기억되는데 내가 사업차로 훈춘에 갔다가 훈춘에 계신다는 어머니의 언니를 끝내 찾아서 처음 큰이모 한테서 어머니 얘기를 나누었다.

큰이모가 하는 말이 하루는 동네놀이를 갔다가 집으로 오는데 퇴비장부근에서 애기가 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두 다리를 바둥거리며 우는 아기가 바로 너의 에미여서 안고 들어 왔단다.

알고 보니 그때 집이 하도 구차하여서 남들이 아기를 주어가라고 포대기에 잘 싸서 따뜻한 재무지우에 내놓은 것을 큰딸이 보고서 안아 왔다는 것이다.

   큰이모는 <<네 어미는 그래도 천명이였다>>고 하였다.그때 나는 무슨 생각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물었더니 전정숙이라고 해서 나는 귀를 의심하였다.

내가 엄마 이름을 작명했다는 과정을 들은 큰이모도 세상에서 이렇게도 희한한 일이 있는가 하며 아마도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너에게 알려준 것 같단다.

나는 노래부르기를 비교적 즐긴다. 그것도 술상에서 한 세대 한 세대를 이어 가면서 당년에 류행되던 노래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50년대에 누님들한테서 배웠던 이 노래만은 지금도 끝까지 못 부른다. 아무리 끝까지 부르려고 해도 눈물이 앞서기에 부를수가 없었다.
노래가사다
       1
쓸쓸한 가을바람 불어 오면은
사랑하는 우리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죽어 나비 되고 내가 죽으면
꽃이 되니 찾아 와서 안아 주세요.
            2
동생아 울지 말고 어서 자거라
네가 울면 내 눈에서 피가 흐른다
오늘 저녁 우리 함께 꿈나라에서
사랑하는 엄마 품에 안겨 보자야

원래 2절 가사의 마지막 두 줄은 엄마품에 안겨보려는 생각에서 내가 고쳤다.어머니는 철부지 자식들만 남겨놓고 가을바람의 가랑잎마냥 홀로서 저세상으로 떠나간 분이다. 그래서 필자는 불효하기로 어머니에 대한 면목이나 추억이 전부다.

부모없는 자식이라는 세상살이의 비난과 어설픈 동정에 유년시절부터 익숙해 진 나, 비난이나 동정이 부모에 대한 갈증을 가슴에서 몰아 낸 나다.그래서 어머니란 의미를 알수 없었고 모르는척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모성애는 나는 안해의 자식사랑에서 감수할수 있었다.

어느 책에서 읽은 명언이다.

<<아버지의 책임은 자식들로 하여금 어머니를 존중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아버지의 책임을 늦게나마 알게 된 나는 그 후부터 언젠가는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모성애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잡도리를 하였다.
바로 이런 준비로 망설이던 나날에 셋째누님이 <<어머니의 제사날이면 해마다 눈이 온다>>를 듣고서 마음을 다잡고 서투나마 이렇게 필을 들었다.

 어머니의 모성애를 좀처럼 모르는 나는 내 딸 염희가 어머니 60회갑생일에 올린 <<어머니에게 드리는 송시>>로 이 글을 마감 한다.

둘도 없는 나의 어머님과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신은 인간에게 어머니의 가슴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자애의 손이요 어머니의 눈은 사랑의 눈이며 어머니의 마음은 자비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요?

정답게 자녀를 바라보고는 어머니의 맑은 눈동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눈물겨운 광경이 무엇인가요?

일편단심으로 자녀를 위하여 헌신하는 어머니의 거룩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몸에서 태여났습니다.

어머니의 육체는 우리형제 존재의 고향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초로 만난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초로 얻은 스승님은 어머니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초로 입을 맞춘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우리가 이세상에서 가장 겁나고 가장 기쁘고 감격했을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무릎은 우리의 학교요, 어머니의 가슴은 우리의 교실이며 어머니의 얼굴은 우리의 스승이고 어머니의 입은 우리의 교과서였습니다.

 율곡의 뛰여난 인격의 배후에는 신사임당이 있었고 맹자의 름름한 정신 뒤에는 맹모의 가르침이 있었고 에디손의 뒤에는 어머니의 격려가 있었답니다.

위인을 만드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녀성은 약하나 모성은 강합니다. 녀자는 어머니가 될 때 자녀의 생명에 대한 강한 책임을 느끼고 자식을 위한 한량 없는 사랑이 생기고 자녀를 위한 씩씩한 용기가 솟구치며 아들 딸을 위한 뜨거운 헌신이 발동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머니에게 무엇을 배울가요?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희생하는 것을 배우고 용서하는 것을 배우고 인내하는 것을 배우고 수고하는 것을 배우고 기도하는 것을 배우고 감사하는 것을 배운답니다.

 인간이 가지는 낱말 중에서 가장 위대한 말은 어머니라는 말이랍니다. 이 말 속에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아름다운 것, 착한 것, 참된 것, 고귀한 것 모두랍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사람이 되였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비춰주는 태양이요 우리를 지켜주는 마음속 기둥이며 우리를 감싸주는 안식처랍니다.

이 딸은 목청껏 불러봅니다 존경하는 어머니란 사랑노래를,

사랑합니다 어머니, 존경합니다 우리의 모든 어머니들을.

존경하는 어머니, 부디 건강 장수하세요!

어머니의 사랑하는 딸 오염희 올림,

 2011년 음력 5월 9 일
… … …
감은절인 오늘 이 밤에 필자는 천국의 기별인 어머니가 하사하는 눈꽃의 참뜻이 뭔가를 나름대로 풀이하며 이 밤을 지새운다.
한편으로 이 시각에 재더미에 버려졌던 나의 "예비엄마"를 재생시킨 큰 이모님께 생전에 효도를 못한 이 철부지를 후회와 반성의 불도가니속에 처넣는 마음이랄가.


 2013년 11월 25일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전체 [ 1 ]

Total : 51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36 《공무원이 멋이 없다》에 대해 2014-04-14 3 5210
135 “문화혁명”도 기념비를 세우자 2014-03-26 31 7545
134 투우절과 연변황소 그리고 도문투우 2014-03-25 1 5568
133 "기녀추도식" 단상 2014-03-18 16 7107
132 어머님 생각...자애의 손 사랑의 눈 자비의 마음 2014-02-28 6 6722
131 《북방의 흑마》 만족을 말한다 2014-02-20 2 5941
130 생일을 《모난일(母难日)》로 쇠면… 2014-02-20 4 5690
129 "한국 정부의 협량"에 한마디를 2014-02-19 5 9343
128 설기간 세간에서 오간 두마디 말 두고 2014-02-17 6 5518
127 《백년대계》설에 대한 단상 2013-12-24 4 8864
126 백성은 언제나 옳다 2013-12-11 1 8197
125 친절이란 뭐길래? 2013-11-26 7 6869
124 연길강변에 제발 '고층바자'를 세우지 말라 2013-11-15 7 9801
123 “언녕 이래야 되는데…” 2013-11-07 5 7591
122 "서기(시장)가 바뀌면 가로수도 바뀐다" 2013-10-25 10 7336
121 "젊은 국장눔들이 택이 높기로 말이 아닙니다…" 2013-10-23 10 6668
120 한심한 뻐스표값, “나는 모른다”는 한심한 차장 2013-10-11 5 6479
119 한권의 책이 심어준 꿈 2013-09-30 2 7040
118 "세계변소의 날"을 맞으며 2013-09-16 4 6758
117 누가 국가의 "3농부축자금" 향수하지? 2013-09-06 5 7110
‹처음  이전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JJju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