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옷장안에는 내가 시집올때 나와같이 시집온 푸른색 트렁크가 듬직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세기도 넘게 세월은 지나서도 이 트렁크는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나 역시 이 트렁크가 유달리 정감있고 이 트렁크에 눈물겨운 사연이 깃들어 있기에 해마다 옷과 가정기물들을 청리 했어도 이 트렁크만은 절대 버리지 안(못)하고있다.
비록 오랜 세월속에서 몸체가 낡고 퇴색했지만 우아하게 생긴 트렁크는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귀중한 유품으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있는 함이다.
우리아버지는 일자무식이였지만 부지런하고 착실한 실농군으로 생산대 농사일엔 언제나 선줄군이였고 손재간도 뛰여나 생산대의 각가지 농구들과 크고 작은 건축물들엔 아버지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농사철이 지나 겨울이 되면 산에가 나무를 하서 팔아 자식들의 공부뒤바라지를 한테서 큰 오빠는 우리 마을의 첫 대학생으로, 나도 연변사범학교 고사반을 졸업하고 어였한 인민교사로 사회에 진출하였다. 아버지는 산에 너무하려 갈때면 옷속 갚숙히 술병하나를 넣고 가서는 추위와 배고품을 달래며 나무를 했고 십리도 넘는 도문장마당에 나무팔러 가서도 온종일 밖에서서 나무가 팔리기만 기다리다가 나무가 팔리면 뼈속까지 얼어든 몸을 풀고저 쑈풀(소상점)에 들어가 소금알이나 미역을 안주로 60도술을 마시고는 혼곤히 취하여 빈수레에 누워 잠든채 집마당까지 오시군 하였다. 아무튼 령리한 소들이 절로 집을 찾아 오니깐.
이렇게 아버지는 쉴새 없이 일만 하시더니 끝내 지치고 병들어 1968년겨울에는 식도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두분 오빠가 아버지를 모시고 장춘병원에 가서 방사선 항암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 입원을 시켜 주지않아 한 마을에서 지내던 삼촌벌집에 주숙하면서 치료받았다. 그래도 아버지가 자립할수 있었기에 혼자걸음으로 병원에 다니며 치료 받았는데 추운겨울 남의집 방에서 항암차료를 받으며 아품을 달랬으니 고통과 외로움이 오죽했으련만 무식한 아버지는 암이란 병명도 모른채 큰병원에서 치료하면 호전될줄로만 알고 참고 견디며 한달동안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게 되였다. 오랫동안 항암치료에 지쳐서 몸은 휘청거렸고 얼굴은 여위여 백지장 처럼 창백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혼식을 앞둔 큰 딸이 시집갈때 트렁크가 없다는 생각으로 병든 몸으로 장춘에서 이곳저곳 돌아 다니며 (그때는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 사기 힘들었다) 끝내 멋진 트렁크를 사서 끈으로 묶어서 등에지고 기차에 올라 곡수역전 까지 와서 차에서 내리고는 다시 트렁크를 등에 지고 반시간도 넘게 걸리는 얼름강판길을 걸어서 집까지 오셨다,
나는 아버지가 커다란 트렁크를 등에 지고 휘청거리며 맥없이 집에 들어 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며 생각할수록 목이메여 할말을 잃고 가슴만 아려났다. 이렇게 아버지가 사온 트렁크에 나는 새색시가 되여 입을옷과 례단감을 넣어 가지고 시집을가서 단칸집 방에서 새살림까지 꾸렸는데 트렁크위에 첫날 이불과 알락달락 자부동까지 포개여 올려놓고 코바늘 뜨개로 뜬 새하얀 이불보까지 폭 씌워 놓았더니 제법 산뜻하고 멋스러웠다. 그때 새살림 구경하려 온 친척과 친구분들이 저마다 트렁크를 만져보며 어디서 이리도 멋진 트렁크를 샀는가고 물을 때면 나는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병마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이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끝내 59세의 젊은 년세에 안탑깝게 세상을 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시집 온지도 어여간 반세기도 넘었지만 트렁크안에는 여전히 나의 첫날 한복과 남편의 첫날 사지양복이 들어 있고 그후 자식들이 시집장가 갈준비로 마련한 모본단 이불등, 사지, 니즈, 베리도옷감 등등 부동한 년대의 류행에 따라 제일 좋고 제일 귀중했던 옷감들은 모두 이트렁크에 보관되였다. 하기에 아버지의 유일한 유물인 이 트렁크는 그냥 옷견지만 넣어 두었던 함이 아니라 발전변화하는 우리사회의 모습과 나날히 향상된 우리생활의 변천사가 차곡차곡 담겨진 력사의 견증물이고 아버지의 가슴아픈 사연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함이다.
나는 이트렁크를 볼때마다 아버지에대한 그리움과 애절한 심정을 느껴지며 그때마다 나의 몸과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추모하며 이 트렁크를 보물처럼 아끼로 사랑하며 정중히 모셔 오래오래 보관 하겠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꿈속에서 만남을 약속합시다.
큰딸 최정금 올림
2019년 7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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