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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허동식《잡담》
잡담19 생활의 미로
곁에 있는 아무개가 앞으로는 시골에 내려가 토종돼지나 키우면서 한가롭게 살겠다는 의사표달을 했다. 그것도 좋지 하는 한마디로 수긍적인 답을 해놓고 나는 나의 일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대학교시절 연변 어느 시인의 시집을 읽고서 <<농경문화의 말로>>라는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오랜 농경과 소농경제에 젖으면 목가적인 향토애도 추하게 변모된다는 斷論적인 글이였는데 꽤나 옳은 말이였다고 줄곧 자아시인을 하여왔다.
거의 20년사이에 생활환경은 많이 변화였다. 물론 천지개벽식은 아니지만 중국식산업화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이화를, 물질세계의 종속감을 때로는 느끼기도 하는것이 나의 생활상 일부분이다. 그래서 농경문화를 <증오>하던 나도 앞으로 경제적인 허락이 되면 일년사시절 발이 가는대로 려행을 하고싶다 또는 여름에는 오대산에 살고 겨울에는 해남도 삼아시에 살련다는 욕망을 내비치기도 하고 시골에 가서 채마전이나 가꾸면서 한적한 독서생활을 하고싶다는 욕구표달을 하기도 한다.
구식농경에 대한 철저한 비판자로 자처하면서도 배운것이 없어 그런지 현대사회의 불화를 대하며는 또다시 향토의 귀화를 꾀하는 나는 도대체 무엇일가?
말이 쉽지만 현재 내가 시골 내려가면 살아갈수가 있을가? 경제와 체력은 뒤전에 치더라도 배수설비가 없는 화장실과 온돌에(내 심중의 시골은 북방시골) 불을 지피면서 콜록콜록 기침도 해야 하고 또 술을 먹고싶으면 말이 오갈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야하고 인터넷도 있어야 하고 간혹 시내로 다니려면 자가용도 있어야 할텐데! 이렇게 생각을 쓰담듬어보면 내가 바라는 시골꿈도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판단한다.
중국은 도시인들도 많이는 시골태생이다. 내 나이 또래에서 할아버지가 시골출신이 아닌 사람은 거의 보지를 못했다. 그래서인지 도시인들도 머리속에는 시골의 때가 많이 남아있고 농경의 전통적인 인륜에 미련을 지닌 사람이 많다. 헌데 근년의 산업화가 가속화화되면서 고독감이라든가 소외감이라든가 또는 실패감과 실망감을 느끼면서 전통적인 향토생활에 돌아가 안락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조금은 많아졌다는 무단적인 느낌이 든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런 상을 생활의 미로라 이름해본다. 생활의 미로는 성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당할수 있는 일이기는 하겠지만, 집단적이고 추세적이고 보편적인 일이라면 사회적인 근원이 있을것이다. 그 근원에 대한 연구와 대책은 사회학자들과 정치인들에게 돌려주고 나는 다만 내 자신을 어떻게 하면 당금 생활의 미로에서 빼돌릴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국류학을 생각해보았다. 미국에 가서 무슨 둥딴지같은 공부를 생각했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고 비자도 힘들고 돈도 없으니 꿈에 불과하다.
큰 부자가 될 생각을 해보았다. 실업적인 재능은 없으니 본전을 마련해서 주식을 하면 될가 했더니 요즘은 주식시장에 찬 바람이 쌩 하고 분다.
어느 사원에 가서 스님들의 시중이나 들어볼가? 헌데 좋은 사원에는 큰 돈을 시주해야 하고 <뒤문>도 잇어야 한다니. 그런 능력은 없고.
솔직한 말이지만 생활의 미로를 깨칠 방책이 주어져있지않다.
솔직한 생각이지만 중국식산업화속에서 농경의 그림자를 되돌어보는것도 바람직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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