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넷에서 사랑이라는 낱말의 어원을 검색하면 어느 국어사전의 思郞과 思娘이라는 한자에서 풀이되는 해석과 《사르다》 등 우리 말 고유어에서 풀이되는 해석을 읽을수 있다. 그리고 또 영어로 풀이하는 사람들의 이색적인 장난끼도 읽을수 있다. 사랑이라는 낱말의 어원에 대한 해석이 어느 풀이법이 정설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에 대한 어학적인 해석을 떠나 사랑이라는 낱말과 사랑에 대한 나 스스로의 《풀이법》을 진행하고싶어진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우선 자연을 상대하는 문화심리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생존방식을 내포한 자연관의 표현이 아닐가고 생각된다. 우리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인간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주며 어느 정도의 농경수확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자연에 묻혀 살아왔다. 때문에 자연의 다변화적인 아름다움과 주기적인 신성함을 만끽하여왔고 그 중에 자연의 실리적인 은총을 받으면서 긴긴 세월속에 자기도 모르게 자연을 사랑하고 경모하고 우러러는 자연관을 키워왔다. 과거 우리는 만물이 령성을 지녔다 주장하는 샤머니즘을 신앙하였고 자연세계에 대한 탐구가 많은 진전을 보이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마음깊이 어디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경모하고 우러러는 자각심을 의연히 간직하고있다. 사랑이라는 낱말에 슴배인 우리의 상기 자연관을 더듬어보면서 현재 많이 사용되는 생태평형이라든가 생태주의라는 말과 비교를 해본다. 우리 말 사랑에 내재되고 표현되는 자연관은 소박하고 정서적인 면을 다소 지니여 생태평형이라든가 생태주의라든가 등 과학용어와는 큰 차이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말 어경이라는 특수 조건하에서는 사랑이라는 낱말에 은밀된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의 대립성보다도 인간과 자연의 화합성을 고집하는 신성한 자연신앙이 엿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우리의 천인합일(天人合一)식 자연관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다음으로는 인륜의 문화심리이고 생존방식이다. 협소한 의미에서는 사랑이란 선조와 가족, 친지와 이웃 등 인간관계를 비롯한 혈연적인, 민족적인, 실용적인 원초이미지가 내비치기도 하지만 작은 울타리를 뛰여넘어 사랑이라는 낱말을 사회적인, 인류적인 차원에 두고 보면 인간리상의 흔적을 크게 내보인다. 사랑이라는 낱말은 기나긴 세월의 흐름속에서 북온대라는 농경권의 경제생성과 문화생성중에 익어온 언어이며 인간상존과 인간상경방식에 대한 귀납적인 결론이며 그 결론에 대한 우리 말 표현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접하면 간혹 로천명시인의 시 《사슴》에서 읽을수 있는 사슴의 눈길과 관련시켜보기도 한다. 우수가 조금 흐를듯 말듯 하지만 순진함과 진지함이 빛나는 사슴의 그윽한 눈길은 우리의 낱말 사랑이 지닌 인류추구에 대한 시적인 구체표현이 아닐가? 나는 사랑이란 한자에서의 애욕과 련정이 내보이는 경지를 엄청 뛰여넘은 언어로 생각되고 유가의 인자와 동등하게 빛나는 인륜사상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판단하고싶다. 물론 력사의 흐름속에서는 극악열상도 보였고 현실에서도 회피할수가 없는 민족갈등과 사회계층갈등으로 인하여 우리에게도 《무고무연한 사랑은 없다》는 인륜관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우리 말 어경중에서 모든 거치장스러운, 세부적인, 구체적인 전제조건을 내버리면 사랑은 위대한 인류리상이 아닐수가 없다. 우리 말 사랑은 하느님이 인간을 굽어보는 위대한 련민과 부처님이 인간을 고행에서 구해내려는 신성한 책임과도 근사한, 인간으로서 인간을 상대하는 인륜정신의 일로임을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말 사랑은 우리의 좋은 인성에로의 적극적인 행진욕구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또 다음으로는 우리식의 미학적인 존재가 아닐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 말 어경중에서는 현재까지 우리가 느끼고 만들고 추구하는 미물은 사랑이라는 낱말 하나로 귀결이 가능하지 않을가? 사랑이라는 낱말을 접하여 조금이라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만 하면 사랑은 서서히 아름다운 그림전시회로 음악회로 안겨진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고려청자의 탱탱한 목소리가 울리고 노을이 붉게 타는 진달래동산의 기운이 감돈다. 나는 우리 말 사랑에 깃든 이런 아름다운 사연은 바로 우리 말 어경을 조건으로 사랑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의 복합작용아래서 사랑의 과정과 결과가 이루는 하나의 미학적인 경지라고 생각된다. 사랑이라는 말속에는 옥처럼 다듬어진 미가 생성되여있으며 우리의 미학적인 추구가 여실히 보여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우리 정신세계의 시성이고 미성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종극에는 지에 대한 학문이다. 지에 대한 학문 즉 철학을 인간이 우주만물의 생성과 인간의 생성에 대해 진행하는 의문이며 인간이 인간본신의 인식능력과 행동능력에 대해 진행하는 의문이며 또 인간이 인간생명의 종극가치에 대해 진행한 의문이라 한다면 사랑이라는 낱말에는 상기의 모든 내용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담겨져 있다. 물론 문화사상사적으로 보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 언어로 진행한 형이상학적인 사변적인 의문과 풀이가 비교적 적은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랑이라는 낱말과 애착되고 빈번한 사용에는 우리의 천문적인 사변욕구와 명상이 안받침되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실리성을 따지는 문화권에 속하는 종족이며 또 우리 말이 구축한 정신세계는 어떤 종족들과 비교해볼진대 허약성 세습성 등 약점을 지니고있다. 하지만 우리 말 어경이라는 특수전제조건으로부터 출발하면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은 로자의 도라든가 캉트의 절대정신이라든가와도 거의 비슷한 어떤 원본적인 철학명상이 잠자고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우리의 지성이고 탐구성이다.
우리 말 사랑을 다른 언어에로의 번역을 시도하면 어떻게 될가? 다른 언어는 잘 모르니 중국어의 애와 련에 맞추어본다. 구체적인 어경을 떠나 자연관적인, 인성적인, 미학적인, 지적인 면에서 보면 애와 련은 우리 말 사랑을 담기에는 작은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면 우리 말 사랑에 완벽하게 대결되는 중국어는 무엇일가?
부동한 언어와 문자가 구축하는 정신세계는 차이성을 지닌다고 한다. 우리 말과 훈민정음이 우리의 심성에 키워준 이색적이고도 근본적인 근원은 잘 모르지만 나는 용케도 사랑이라는 낱말 하나를 두고 우리의 정신세계의 한 구석을 살펴보았다.
사랑이여, 오늘도 베란다에 앉아 사랑을 또박또박 불러본다. 그러면서 우리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장래가 사랑이라는 위대한 말속에서 빛나지 않을 리유가 없음을 확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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