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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허동식《잡담》
대만 국회의 지랄발광상 래력을 알려면은 대만이 대륙과 구별되는 사회운영을 한다는 점에 조금이라도 눈길을 돌려봄은 나쁜 점이 없는듯도 하다.
20세기 80년대 장경국에 의하여 진행된 대만의 민주화를 알려면 우선 손문선생에 의하여 창건된 중국국민당 과거를 돌이켜보기로 한다.
1905년, 일본에서 손문 등 인물들에 의하여 창립된 동맹회는 <驱除鞑虏,恢复中华,创立民国,平均地权”이라는 종지를 만들고 폭력수단으로 만청을 뒤엎고 민국을 건립하려는 민족적인 민주적인(삼권분리) 조직이였다. 동맹회는 중국에서 많은 무장봉기를 진행하였지만 종극목적을 이루지는 못하고 1911년 무창봉기(무창봉기가 동맹회가 지도한 봉기가 아니라는 관점도 있다) 뒤에는 내분렬되였다가 1912년에 송교인의 노력하에 여러 조직들과 합병되여 중국국민당으로 전변된다.
동맹회로부터 국민당으로의 전변은 단순한 조직명칭의 바꿈이 아니라 손문의 폭력혁명수단 대신 정당평화정치에로의 주장전변을 말해준다. 그래서 북양군벌인 원세개의 북양정부와 손문의 남경정부는 협상책으로 형식적으로나마 중국통일을 이루었고 국민당은 국회의 第一당으로 되고 원세개는 대통령으로 되였다. 헌데 원세개는 송교인을 암살하고 국민당을 해산하는 배은망덕과 황제로 되는 복벽추태극을 벌리였으며 국민당은 국회정치를 주장하는 정당으로부터 또다시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혁명당으로 복귀한다. 1913년, 제2차북벌전쟁뒤에 손문은 혁명이 승리하면 다당제를 기초로 하는 국회정치가 아니라 ,혁명당이 직접 권력을 잡으려는 일당정치체재 구상을 내놓았고 러시아10월혁명뒤에 국민당은 러시아를 배워 以党建国 以党治国를 절대적인 리념으로 하였다.
손문이 서거하고 국민당은 삼민주주의 명목하에 민국건립뒤에도 정개석은 국내정치를 온정시키고 다음에 외적을 물리친다는 구실하에 정치 군사면에서 이당 특히는 공산당에 대한 탄압을 그치지아니하였다. 가렬처저한 항전시기에마저도 중국공산당의 신4군을 점멸하고 팔로군과도 티격태격 하면서 시종일관적으로 청나라말기인물인 증국번 리홍장한테 배운 무력일위책을 실행하다가 종국에는 내전에서 패하고 대륙에서 쫓겨난다.
대만에서의 국민당은 장개석과 장경국에 의하여 아주 오래동안 일당체재를 전개하고 토지개혁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잇따른 경제성장하에 서서히 민주화의 진전을 보인다.
대만 민주화진전에서 있어서 1970년 장경국이 미국방문 시에 재미대만민주운동파들의 총저격을 받은 사건과 유엔에서 탈퇴된 국제정세하에서 江南기자 암살사건이 촉매제로 되였다.
드디어 1987년 대만은 38년동안의 계엄령을 해제하고 党禁과 报禁을 해제하면서 다당제의 합법화와 언론자유의 합법화를 실행하였고 그 뒤에는 국민당이 야당으로 탈락하는 획기사건도 있게 되였다.
요즘에는 대만<대통령>마저 구류되어 판결을 한다고 떠들고 있으니 대만민주화의 진전을 간접적으로 크게 느끼게 된다.다시는 대만국회의 육박전을 비웃을 생각이 없다. 그 육박전이 아무리 치사하고 더럽다 하더라도 <림표반당집단>을 소멸하고 <4인방>을 분쇄한 군사정변보다는 사회본가가 적고 광명정대하다고 생각한다. <림표반당집단>이든지 <4인방>이든지 모두가 고층분쟁으로서 만백성하고는 전혀의 관련이 없었지만 모든 죄를 그들한데 덮씌우고 10억인구 거의가 휘말려들어갔다는 일은 력사대비극이며 앞으로는 발생하지 말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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