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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명동에 다녀왔습니다
비암산을 내리면서 친구는 어디에 가고싶은가 물었다. 명동에 가보고싶다니 승용차는 륙도하 언덕 콩크리트 길을 나는듯이 달린다. 차창밖에 산야가 검푸르고 륙도하는 보이지 않는다. 강우량이 옛적보다 많이 줄어들었을가 아니면 식피회손때문에 강물이 줄어들었을가? 아주 어릴적 룡정에 오면 어느 다리 아래로 종이공장 누우런 거품이 섞인 강이 보이던데 기억에는 그 강을 륙도하로 알고 있는데, 몇칠전에도 로모께서는 어릴적 명동촌에 살적에 큰 물이 나져 집 7채가 물에 밀려나가던 기억을 이야기하시던데 하고 생각을 굴리는 사이에 길가에 옛적이는 명동촌으로 불리웠다는 신화촌이라는 표식이 보인다. 내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느 산마루에 묻혀있는 동네이고 돌아가신 부친의 청소년시절이 잠적하고 있으며 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고향이여서 로모 그리고 외삼촌 이모들의 동년을 희미하게 받아본다.
욕심으로는 주차시키고 조금 둘러보고싶기는 하였지만 체면때문에 차는 어느새 선바위 앞에 이른다. 선바위를 중국말로 어떻게 표현할가 상론하니 达砬子라고 한다. 하지만 달라재라는 말과 선바위란 어원적으로 너무나도 거리가 있고 또 이 지역에 만주족어가 풍기는 지명이 없으므로 이 골연은 내 조상들이 도강해서의 정착하기전에든 무인지대가 아니였을가는 생각을 해본다.
명동에 이르러 남산 산발이 아주 굳었고 그 기세가 연연하게 솟구치여있음을 바라보면서 어딘가 즐거워진다. 저 남산이 책에서 나오는 오랑캐령일가? 어이 저 남산 산기세가 대단하구만 , 풍수는 모르지만 그 즐거움을 나누고싶어 친구들에게 한마디하고 김약연선생의 기념비를 잠간 우러르고 전시실에서 사진들을 쳐다본다. 작은 책매대에는 윤동주시인의 <서시> 원판이 사진으로 복사되여있어 들여다보면서 윤동주시인이 살던 시대의 조상들 심성을 다시 들여다보는 흉내를 해본다. 참으로 마음이 깨끗했어 그리고 바라봄이 순직했어, 박애가 듬뿍한 종교가 성행하였던 시기여서 신앙심이 작간도 하였고 또 고유의 민족적인 심리바탕도 순결하였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해보면서 복원된 윤동주생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진에서 조금 보아오던 팔간집인던 마루에는 20여명의 한국인들이 도시락식사가 한창이다. 헌데 안경을 끼신 분이 함께 식사하자고 하시면서 대구 어느 대학 교수이고 목사라고 하신다. 그래서 잠간 강의도 받고 민족독립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로 이루어진 단체인데 청산리는 이미 가보시구 래일은 봉오동으로 가신다 한다. 부럽기만 하여 흠모의 이야도 하고 또 김좌진장군과 홍범도장군의 반일무장과 김약연선생의 간도국민회 연관성에 대해 문의도 해보는중에 운 좋게도 나젊은 한분이
윤동주시인의 <하늘 바람 그리고 별>을 선사하신다. 윤동주시인의 시집은 몇권 소장하고 있지만 거의 전집식으로 되여있는 초책자는 처음이라 참으로 즐거웠다. 좋은 려행을 축복하고 나중에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이 골연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중국조선족의 발상지요 그리고 이주 초창기의 경제중심일수도 있소 아는것은 없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자꾸만 지껄이고만 싶었다. 그러다가 15만탈치사건 다리 부근에서 촌락으로 들어가 주덕해생가를 보여준다 한다. 맹랑하게 정문에 자물쇠가 잠겨있기는 하였지만 주덕해생가앞에서 남산을 오래오래 쳐다보면서 이 골연은 참으로 대장연의 정기가 응집된 곳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책을 뒤져보면 이 지역은 선조들의 개명된 문화사상터였는데 행동지였는데 하고 친구들에게 다시 지껄인다.
룡정에 도착하니 그날 술은 참으로 맛있다.
저녁에 연길로 들어오니 로모는 고향에 아주 가보고싶으신지 홀로 명신촌과 명동으로 다녀왔다고 크게 나무람하시다가 선바위가 아직 건재하든가 물으신다. 예 , 선바위는 아직도 깍아지르게 푸름푸름하게 있습더구마 고 나느 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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