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순
삶과 죽음의 거멀못을 지르고싶어
잃어버린 구두 한짝이 과연 인생의 액막이가 될수 있을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험한 인생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푸래기라도 잡고싶은 심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것이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잃어버린 구두 한짝을 들고나와 설왕설래하고있는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시시하고 어이없는 사소함으로 거창한 인간의 삶의 속살을 톱질하고 싶었다.
차사고로 딸을 잃은 녀자가 화장터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는데 그 과정에 신발 한짝을 잃어버린다. 그 녀자의 언니는 잃어버린 신발을 액막이라고 잘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안해를 화장하고 나오던 남자가 그 신발을 줏는다. 소설은 구두 한짝을 잃어버린 녀자와 구두 한짝을 주은 남자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자식을 먼저 저세상에 보낸 엄마의 남은 인생은 자식의 무덤일수밖에 없다. 이미 자식의 무덤속에 갇혀 죽은 령혼인데도 아직 숨은 쉬고있어 집세를 마련해야 하고 숨을 쉬고있는 대가의 모든것을 마련해야 한다. 삶과 죽음의 모순이다.
녀자는 막부득이하게 구두 한짝으로 만났던 남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 행위 역시 가벼운 선택이지만 그에게는 살고죽는 문제였다. 남자가 녀자를 만난것도 구두 한짝때문이고 녀자가 남자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것도 결국 구두 한짝의 인연때문이다. 이러한 가벼운 인연과 가벼운 선택으로 녀자는 중대한 문제를 떠안게 된다. 녀자는 남자의 집에 찾아갔다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 첫 목격자가 되며 그의 자식들 앞에서 오해를 받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다…
처음에는 로인문제를 쓰고싶었다. 그런데 자칫 고리타분하고 식상한 소설이 될것 같아 고민하다가 알듯말듯한 미미한 인연이 저지른 남자와 녀자의 삶과 죽음을 말하는데에 이르렀다. 되도록이면 미미하면서도 엮일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싶었다. 그럴수록 나중에 일어나는 일들이 설명이 되지 않을테니깐. 그래야만 사소한 일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소중하게 여길수 있을테니깐.
우리가 숨쉬고 살고있음도 어쩌면 구두 한짝을 잃어버리는 일만큼 시시하고 어이없이 사라질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싶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람들의 작은 관심을 끌어내고싶었다. 그리하여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의심과 경계심으로 벽을 쌓고 사는 현대인들의 차가운 리기심을 자극하고싶었다.
나의 소설은 언제나 결핍이란 두려움속에서 시작되는것 같다. 부재에서 존재적의미를 찾고저 하는 노력은 존재하는것에 대한 나의 련민이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것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간절함이기도 하고 살아있는것이 죽음에까지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였던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존재하지 않는것에서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것이 이 소설의 지지대라고 볼수 있겠다. 잃어버린 구두 한짝이 허접한 액막이가 아닌 우리의 인생을 아우르는 거멀못의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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