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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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린 치유의 풍경
2019년 07월 18일 09시 59분  조회:24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가슴 시린 치유의 풍경
허련순
 
 
 
언제나 변하지 않는 생각이지만 나의 삶은 너무도 따분하고 단조롭다. 그야말로 액자의 뒤면처럼 소설 속에 숨어있었다.  소설이 전부인 양 자신을 괴롭혀왔다.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이 현세에 작가로 태여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생활은 '자택감금'과 같은 고된 '옥고'를 치르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갈수록 심산이라고 낯설고 모호하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손에 제대로 잡히는 것이 딱히 없다. 이거다 싶으면 어느새 손아귀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실체는 없고 상상만 있을 뿐이다. 어릴 적 술래잡기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더 집착하고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암튼 나는 어두운 거리에 서있는 영원한 술래임은 분명하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니 달리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소설은 다양한 삶의 흔적을 장님처럼 손으로 더듬어내는 작업이다. 그 뿌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은 결국 소설을 쓰는 리유를 찾아가는 길이며 자신의 실존을 증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글쓰기의 힘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망과 현실을 견뎌내는 힘에 있다. 나는 문학창작이란 자신의 가장 불안한 상태를 견디여내는 일이였다고 굳게 믿고 있다. 견딘다는 것은 그냥 참는 것은 아니다. 묵인하는 것도 아니고 용인하는 것도 아니며 불행이나 어려움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묵묵히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단편소설 <그가 가는 곳>은 억압된 인간의 심적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이였고 결국 존재의 시원을 쫓아가는 려정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을 향한 메시지이며 존재의 외로움에 대항하는 인간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랑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온전해진다. 마음을 줄 무엇, 기대고저 하는 곳이야말로 인간에게는 <돌아갈 곳>이다. 돌아갈 곳이 없을 때 삶은 지옥이다. 주인공은 이 지옥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그리하여 남자는 방황한다. 
 
"왜 이러지?" 라는 모호한 의문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인간의 불확실한 삶의 요소들을 응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호함의 전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가 가는 곳을 녀자가 끊임없이 뒤쫓아가는데 그 끝에는 마치 어마어마한 불륜이 숨겨져있는듯하다. 하지만 소설의 끝에는 불륜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한 남자의 고민과 귀환적 절차가 펼쳐진다. 이런 것을 소설에서는 반전이라 하던가? 
 
상처 입은 한 령혼이 또 다른 령혼에 상처 입히고 그 령혼이 또다시 상처를 되돌려주는 형식으로 끝이 없을듯 보이던 갈등구조가 남자가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면조우하면서 놓쳐버리고 말았던 가족애, 혹은 인간애로 다가서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펼쳐준다. 형에 대한 증오와 혐오, 이것이 작품 속에서의 남자의 딜레마였다. 증오는 인간을 구속하는 가장 심각한 적페라 함이 좋을듯 싶다. 그것은 증오의 대상 뿐만 아니라 증오의 주체를 구속하고 한 사회의 근본까지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악의 축이다. 어릴 적 이붓형은 고의적으로 남자를 강에 빠뜨린다. 이 일로 남자는 목숨을 잃을 번하고 형은 집을 나간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자를 멀리하고 그 자신은 형을 집을 나가게 한 장본인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떠나버린 형을 미워한다. 
 
이붓형이 차사고로 식물인이 되여 돌아오자 형에게 복수하고 싶어 그의 곁을 지키겠다고 자처하지만 남자는 복수 대신 죽음을 앞두고 있는 형 앞에서 망설이고 의심하고 회의한다. 형에 대한 혐오로 그와 만나고 돌아오면 자기 몸에 세번씩 비누칠을 해가며 형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며 지어 그런 날은 자기 녀자와 잠자리마저 꺼린다. 형과의  화해가 영원히 불가능하게  보였던 남자가 형이 운명을 하자 심장이 멎은 뒤에도 죽은 자의 귀는 3분간 열려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형의 귀에 대고 '미웠다'는 말 대신 '돌아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쉰다. 형을 용서하고 자신을 형에게서 해방시킨 셈이다.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행위에서 타인이 아니라 자아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을 되찾아가는 과정, 혹은 자아와의 옳바른 관계를 재정립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가 마주한 내면의 어떤 것이란 무엇일가? 그것은 '인간성'이라 부를 수도 있고 '량심'이라 부를 수도 있고 '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그의 내면에 감추어지고 숨어있던 인간성의 쪼각들이 나비처럼 부활하면서 그의 진정한 자아를 완성시킨 셈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나는 인간 존재의 모호한 출발점, 생의 근원을 모색함과 동시에 가슴 시린 치유의 풍경을 보여주기로 하였다. 결국 소설은 인생이라는 트랙 안에서 미움과 증오가 아닌 공존으로만이 가능해지는 순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속에서만 가능해지는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해주는 것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였는지는 모르지만.

출처:<장백산>2017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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