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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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가슴 시린 치유의 풍경 댓글:  조회:241  추천:0  2019-07-18
가슴 시린 치유의 풍경 허련순       언제나 변하지 않는 생각이지만 나의 삶은 너무도 따분하고 단조롭다. 그야말로 액자의 뒤면처럼 소설 속에 숨어있었다.  소설이 전부인 양 자신을 괴롭혀왔다.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이 현세에 작가로 태여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생활은 '자택감금'과 같은 고된 '옥고'를 치르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갈수록 심산이라고 낯설고 모호하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손에 제대로 잡히는 것이 딱히 없다. 이거다 싶으면 어느새 손아귀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실체는 없고 상상만 있을 뿐이다. 어릴 적 술래잡기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더 집착하고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암튼 나는 어두운 거리에 서있는 영원한 술래임은 분명하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니 달리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소설은 다양한 삶의 흔적을 장님처럼 손으로 더듬어내는 작업이다. 그 뿌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은 결국 소설을 쓰는 리유를 찾아가는 길이며 자신의 실존을 증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글쓰기의 힘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망과 현실을 견뎌내는 힘에 있다. 나는 문학창작이란 자신의 가장 불안한 상태를 견디여내는 일이였다고 굳게 믿고 있다. 견딘다는 것은 그냥 참는 것은 아니다. 묵인하는 것도 아니고 용인하는 것도 아니며 불행이나 어려움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묵묵히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단편소설 은 억압된 인간의 심적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이였고 결국 존재의 시원을 쫓아가는 려정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을 향한 메시지이며 존재의 외로움에 대항하는 인간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랑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온전해진다. 마음을 줄 무엇, 기대고저 하는 곳이야말로 인간에게는 이다. 돌아갈 곳이 없을 때 삶은 지옥이다. 주인공은 이 지옥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그리하여 남자는 방황한다.    "왜 이러지?" 라는 모호한 의문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인간의 불확실한 삶의 요소들을 응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호함의 전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가 가는 곳을 녀자가 끊임없이 뒤쫓아가는데 그 끝에는 마치 어마어마한 불륜이 숨겨져있는듯하다. 하지만 소설의 끝에는 불륜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한 남자의 고민과 귀환적 절차가 펼쳐진다. 이런 것을 소설에서는 반전이라 하던가?    상처 입은 한 령혼이 또 다른 령혼에 상처 입히고 그 령혼이 또다시 상처를 되돌려주는 형식으로 끝이 없을듯 보이던 갈등구조가 남자가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면조우하면서 놓쳐버리고 말았던 가족애, 혹은 인간애로 다가서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펼쳐준다. 형에 대한 증오와 혐오, 이것이 작품 속에서의 남자의 딜레마였다. 증오는 인간을 구속하는 가장 심각한 적페라 함이 좋을듯 싶다. 그것은 증오의 대상 뿐만 아니라 증오의 주체를 구속하고 한 사회의 근본까지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악의 축이다. 어릴 적 이붓형은 고의적으로 남자를 강에 빠뜨린다. 이 일로 남자는 목숨을 잃을 번하고 형은 집을 나간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자를 멀리하고 그 자신은 형을 집을 나가게 한 장본인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떠나버린 형을 미워한다.    이붓형이 차사고로 식물인이 되여 돌아오자 형에게 복수하고 싶어 그의 곁을 지키겠다고 자처하지만 남자는 복수 대신 죽음을 앞두고 있는 형 앞에서 망설이고 의심하고 회의한다. 형에 대한 혐오로 그와 만나고 돌아오면 자기 몸에 세번씩 비누칠을 해가며 형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며 지어 그런 날은 자기 녀자와 잠자리마저 꺼린다. 형과의  화해가 영원히 불가능하게  보였던 남자가 형이 운명을 하자 심장이 멎은 뒤에도 죽은 자의 귀는 3분간 열려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형의 귀에 대고 '미웠다'는 말 대신 '돌아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쉰다. 형을 용서하고 자신을 형에게서 해방시킨 셈이다.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행위에서 타인이 아니라 자아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을 되찾아가는 과정, 혹은 자아와의 옳바른 관계를 재정립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가 마주한 내면의 어떤 것이란 무엇일가? 그것은 '인간성'이라 부를 수도 있고 '량심'이라 부를 수도 있고 '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그의 내면에 감추어지고 숨어있던 인간성의 쪼각들이 나비처럼 부활하면서 그의 진정한 자아를 완성시킨 셈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나는 인간 존재의 모호한 출발점, 생의 근원을 모색함과 동시에 가슴 시린 치유의 풍경을 보여주기로 하였다. 결국 소설은 인생이라는 트랙 안에서 미움과 증오가 아닌 공존으로만이 가능해지는 순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속에서만 가능해지는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해주는 것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였는지는 모르지만. 출처:2017 제5호
13    [단편]그가 가는 곳 댓글:  조회:525  추천:0  2019-07-18
그가 가는 곳 허련순   1. 녀자는 딱히 갈 곳이 있어서 집을 나온 것은 아니였다. 다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절박함에 떠밀렸을 뿐이다. 뚜렷한 목적이나 확실한 의지 같은 것은 결코 없었다. 술을 마셨을 때 갑자기 욱- 하고 가파르게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나 갱년기에 찾아오는 걷잡을 수 없이 후끈 달아오르는 열기 비슷한 그런 순간적인 기분이였다고나 할가.    남자가 귀가한 시간은 새벽 녘이였다. 핸드폰까지 꺼놓고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 시간에 집에 오는 것인지. 남자는 가타부타 설명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자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리유는 오직 하나였다. 결혼 전에 남자가 꽤나 어설픈 것을 가훈이랍시고 꺼낸 적이 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묻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스스로 말한다.” 녀자가 픽 웃었다. 하지만 남자는 정색한 표정으로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집안을 여태까지 지탱시켜준 힘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얼마나 비밀이 많은 집안이면 저런 가훈이 다 나왔을가 싶었지만 곰곰히 음미해보면 믿음과 인내를 강조하는 묘한 뉘앙스가 있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녀자는 흔쾌히 남자가 건의한 가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을 묻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스스로 말한다”는 가훈이 신혼초부터 턱하니 벽에 걸리게 됐다. 남자가 들어온 기척을 알아차리고도 녀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자는 척했다. 눈을 떠버리면 참지 못하고 왜 이리 늦었느냐고 기어이 물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 것을 물었다간 남자와 크게 싸움이 번질 수도 있다. 질질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샤와실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아 아마도 샤와를 하려는 모양이였다. 쏴- 하고 샤와기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소리가 안방까지 질펀하게 들려왔다. 생각보다 물이 많이 차거웠던지 남자가 얼음구덩이에 빠진듯 소스라치며 헉헉 흐느꼈다. 조금 후 빠른 손놀림으로 온몸에 비누칠하는 소리가 매끄럽게 철버덕거렸다. 평소에는 한번의 비누칠로 끝났는데 웬 일인지 세번 네번을 덧칠하며 오래오래 씻었다. 꼼꼼하게 씻어내야 할 리유라도 생긴 것일가? 남자는 가죽이라도 벗겨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심상치 않았고 예감이 좋지 않았다. 조심스럽던 발밑에서 부지중 뿌지직 균렬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실금 몇가닥이 그녀의 가슴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상처자리를 낸다. 녀자는 이를 악물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였다고 벌써부터 외박이야? 나쁜 놈 같으니라구! 멎을듯 멎지 않고 끊임없이 질척거리던 물소리가 드디여 멎고 살갗을 쥐여짜듯 빠드득 빠드득 살을 털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샤와가 끝난 모양이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어디서 자야 하나 고민하는 모양이였다. 남자는 마치 길을 잃은 사람 같았다. 마침내 물기가 있는 발이 저겨딛는 소리가 안방 쪽으로 둠칫둠칫 다가왔다. 문 앞에서 잠간 주저하는가 싶더니 도둑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안방문을 열고 동정을 살폈다. 녀자가 미동도 없자 그제야 게걸음으로 침대 옆에 다가오더니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봤다. 채 가시지 않은 몸의 열기와 함께 체리 샴푸와 오렌지 바디클린저 향이 은은히 풍겨왔다. 그것은 익숙함이였다. 두 사람은 짧지만 냄새를 공유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냄새를 지닌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녀자는 괜스레 코끝이 찡해났다. 당연히 남자가 곁에 와 누울 줄 알았다. 만약 그랬다면 기꺼이 옆자리를 내여주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온몸으로 남자를 받아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뒤걸음으로 조심조심 이불장 있는 데로 물러서더니 담요 한장을 내려 옆구리에 끼고는 들어올 때처럼 조츰조츰 문께로 향했다. 발끝에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바닥에 짝짝 들러붙는 소리가 류달리 끈적끈적하고 찰졌다. 녀자가 어둠 속에서 신경질적으로 발끈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어딜 가요?” 막 문턱을 넘어서려던 남자가 흠칫하며 우두망찰 굳어져버렸다. 남자는 두서없이 소삽하게 얼버무렸다. “어? 안 잤어?… 자는 줄 알았어…” “금방 깼어요…” 잠에서 깼다고 말하면 남자가 도로 자기 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녀자는 몸을 움직여서 침대 한쪽을 남자에게 비워주었다. 그런데 남자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였다. “오늘은 거실 쏘파에서 자고 싶어…” “왜 좋은 침대를 제쳐두고 쏘파에서 자요?” “그냥… 더워서…” “겨울인데도 더워요?” “오, 샤워를 했더니…” “…하지만…” 녀자는 멋쩍은듯 말을 멈추었다가 수줍게 이어갔다. “…우린 아직 신혼이잖아요.” “알…어.” “그런데 왜 벌써부터 각방을 쓰려고 해요?” “…가끔씩 남자들은 그럴 때가 있어.” “그럴 때는 어떤 땐데요?” 녀자가 바투 묻자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왜 따져?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야?” “의심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묻고 있는 거예요.” “도대체 뭘 알고 싶은데?” “당신이 숨기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요!” “묻지 않기로 했잖아! 잊었어?” 남자가 짜증스러워하며 쏘파에 담요를 소리나게 던졌다. 말도 안되는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가훈이 어김없이 지켜지기를 바라다니! 녀자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러려고 그런 가훈을 만든 거예요?” “그런 가훈이라니! 우리 집안 가훈을 우습게 보는 거야 뭐야?” “비밀 같은 것을 감추려고 만든 거라면 취소예요.” “마음대로 해!” 남자가 벌러덩 쏘파에 들어눕더니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더 이상 말 섞지 않겠다는 선언이였다. 똥 묻은 개가 짖는다더니 남자는 적반하장이였다. 녀자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상황에서 계속 따져보았자 뻔하다. 더 크게 싸우거나 남자가 더 멀리 도망가버리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다. 녀자는 자신이 참고 넘어감으로써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다고 혼란이 멈출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녀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자가 샤와실에서 거듭 비누칠을 해가면서 빡빡 씻어내려고 했던 것은 구경 무엇이였을가. 혹시 다른 녀자의 흔적이였을가. 아니면 안해인 그녀의 흔적이였을가. 의심의 끝을 물고 알 수 없는 분노가 관자놀이를 휘젓고 지나갔다. 하지만 녀자는 참으려고 안깐힘을 썼다. 결혼 전날 엄마가 간곡하게 당부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속 터지는 일이 많다. 남자들이란 해주는 만큼 속을 썩이지. 잘못하고도 되려 제쪽에서 큰소리를 치거든. 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겠지. 진실을 가려내려고 한평생 네 아버지와 싸웠지만 아직도 부부의 진실이 뭔지 모르겠어… 매번 싸우고 나면 후회했어… 싸우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러는 게 훨씬 현명한데 그게 잘 안되더라. 너는 현명하니 잘할 거야.” 지혜롭게 참으면서 살라는 소리를 딸한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참자. 일단 싸움은 피하고 보자. 하지만 한두번이지 그 이상은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녀자의 바람과는 달리 남자는 토요일마다 새벽에 들어왔고 꼼꼼하게 샤워를 마친 후 쏘파에서 자면서 녀자의 침대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았다. 벌써 일곱번째다. 마치 사십구제를 지내는 사람 같았다. 사십구제는 불교에서 장례를 치르고 일곱째 되는 날을 택하여 49일 동안 7일을 절에 가서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집안에 상을 당한 사람도 없는데 누구를 위해 제를 지내겠는가.  도대체 남자는 새벽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오는 것일가? 녀자의 의심은 커져만 갔다. 남자는 유난히 친구를 좋아했다. 단 하루라도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금단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 한밤중이라도 친구들을 불러냈고 심지어는 부부가 간만에 외식하는 자리에도 친구들을 불러내여 동석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남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였다. 밤중에 불리워 나오거나 남의 부부 사이에 끼워 식사를 하는 것이 좋기만 하겠는가. 그들은 눈쌀을 찌프리거나 끊임없이 하품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썩 달갑지 않음을 나타내군 했다. 남자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늦은 시간까지 지루하게 친구들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혹여 중간에 누가 먼저 자리를 뜨면 기어이 쫓아가서 데려오군 하였다.  녀자는 남편의 절친인 송을 찾아갔다. 도대체 남자랑 매주 토요일 새벽까지 무엇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남자에게 송은 그림자 같은 사람이였으니 둘이 무조건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송은 토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거나 수영장에 간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남자의 토요일 외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녀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이 친구를 부르는 자리에 송이 빠질 때는 없었다. 그가 있는 자리에 다른 친구들이 없을 때는 있어도 다른 친구들이 있고 그가 없는 자리는 분명 한번도 없었다. 송이 동석을 안했다면 이건 분명 남자가 혼자 있었다는 소리다. 홀로 그 새벽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 것일가?   2. 정작 집을 나오고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녀자는 사거리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집을 나온 것일가? 갈 곳이 없음을 깨달은 순간 녀자는 깊은 한기를 느꼈다. 감기가 올 것처럼 목이 잠기고 기침이 터져나왔다. 문뜩 남자가 있을 만한 곳을 알 것 같았다. 감기가 올 때마다 안마원을 찾는다던 남자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녀자는 발길을 다그쳤다. 비로소 목적지를 찾은 것이다. 그녀가 향한 곳은 네온싸인이 명멸하는 도시 중심가였다. 한밤중인데도 거리에는 사람들과 차들이 북적거렸다. 밤의 유혹에 빠지면 하루 밤을 밖에서 보내기는 너무 짧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자는 ‘참안마원’이라고 쓴 건물 앞에 마주섰다. 왠지 그 곳에 남자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남자와 친구들이 ‘참안마원’에 대해 롱을 주고받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이름이 익숙할 리가 없다. 안마원 입구에서 고객을 안내하던 젊은 남자가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애되고 풋풋한 데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젊은이였다. “어서 오세요!” 남자가 구십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자 녀자는 황망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나는 그래서 온 게 아닌데…” “기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한번 받아보세요. 인생이 확- 달라보이실 겁니다.” 젊은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해맑게 웃었다. 눈빛이 맑고 선했다. 녀자는 그런 눈빛에 약한 편이다. 녀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여 안으로 들어갔다. 혹여 여기 어느 곳엔가 숨어있을 남편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다. 붉은색의 카페트를 깐 복도가 녀인의 라체처럼 길게 드러누워있었다. 그 량쪽으로 유리문을 한 룸들이 정렬되여있었다. 젊은 남자를 따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녀자는 목을 빼들고 유리문 너머를 유심히 살폈다. 어둑스레한 조명등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안마복을 입고 엎드려 안마를 받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이 사람이 저 사람 같아 보이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아 보였다.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 한 남편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갑자기 안쪽에서 녀자아이의 바스러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져나왔다. 그 소리가 가슴을 절단하듯 절실하고 처절하여 공포스러웠다. 어른들만 오는 이 곳에서 어린 아이의 비명은 난데없었다. 삽시간에 복도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남자 직원이 몸부림을 치는 여섯살 쯤 되여보이는 녀자아이를 안고 카운터 쪽으로 급히 뛰여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린 아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가? 구경을 나온 사람들 중 일부는 카운터로 쫓아가고 일부는 아이가 나왔던 방 쪽으로 몰려갔다. 머리가 산발이 된 녀자가 그 곳에서 뛰여나오면서 아이를 불렀다. “소서야!” 안마사 유니품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이 곳 안마사인 모양이였다. 정신없이 카운터로 뛰여가고 있는 그녀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여러 사람들이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척 보면 모르겠어요?” 한 중년녀인이 입을 비쭉거렸다. 그 녀자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줄레줄레 녀자를 둘러쌌다. “대체 무슨 일이요? 누가 저 아이한테 못된 짓을 한 거 아니요?” 성질 급한 사람들이 중구난방 떠들어댔다. 녀자가 손을 홱 내저었다. “안마를 받던 남자가 제 엄마한테 그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놀란 거지요.”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것을 몰라요? 저 녀자는 돈만 주면 룸 안에서도 그 짓을 해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중년녀자가 가슴을 치며 장담했다. 안마원에 자주 오는 손님이라면 당연히 안마사들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장악하게 된다. 그녀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아이까지 데리고 와서 그런 짓을… 에미 될 자격도 없는 녀자네요.” “아이가 있는 앞에서 달려든 그 놈이 죽일 놈일세.” 아이러니하게도 녀자들은 이런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온 녀자를 욕했고 남자들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이 엄마에게 그런 짓을 한 남자를 욕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불확실한 사실을 두고 중구난방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변해버린 세상을 탄식하면서 하나 둘씩 룸으로 돌아가버렸다. 복도는 순식간에 홍수에 할퀸 벌처럼 한산해졌다. 그 가운데 그녀만 홍수에 밀려난 키조개처럼 남았다. 녀자는 아이 앞에서 애 엄마를 범했다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남편을 찾고 있는 일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선 채로 몇번이고 후둑후둑 몸을 떨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서있었지만 남자는 룸에서 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녀자는 조심조심 룸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남자가 문을 등지고 제일 안쪽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리문을 살며시 밀고 녀자가 침착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녀자는 발소리를 죽여가면서 천천히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새벽에 돌아온 남자가 그녀의 침대 곁으로 다가오던 그 때처럼 말이다. 가까이 가보니 남자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엎드려있었다. 순간 녀자는 가슴이 쿵닥쿵닥 뛰였다. 엎드려있는 뒤통수가 남편과 너무 닮았다. 남편은 엎드려 자기를 좋아한다. 그녀도 어렸을 때는 엎드려 자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엎드려 자면 엄마가 일찍 죽는다던 말을 들은 후 그 버릇을 뚝 뗐다. 남편한테 그 말을 해주었지만 남자는 피, 거짓말이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항상 엎드려 잤다. 그 자세가 편하단다. 그 때 남자가 부스럭거리면서 그녀 쪽으로 돌아누웠다. 붉은 조명 아래서 남자의 얼굴은 피빛으로 번들거려 괴기스러웠다. 녀자는 미처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제풀에 놀라 아악! 소리를 지르며 성능 좋은 스프링처럼 단숨에 밖으로 튕겨나오고 말았다. 남자가 뒤쫓아나올 것만 같아 정신 없이 긴 복도를 달려 안마원 밖으로 뛰여나오는데 처음에 안내했던 청년이 문밖까지 쫓아나오면서 왜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녀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곳을 한참이나 벗어나서야 겨우 멈춰서서 천천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을 펀히 뜨고서도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가 남편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못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일가? 아니면 확인할 용기가 없었던 것일가? 아니면 애초에 확인할 마음이 없었던 것일가. 녀자는 그저 두려운 마음 뿐이였다. 그 남자가 남편일가봐 두려웠고 남편이 아닐가봐 두려웠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녀자는 남편이 귀가하지 않은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습관처럼 신발장을 열고 남편의 구두부터 확인했다. 역시 남편은 여직 돌아오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안마원에서 울던 녀자아이의 비명이 환청처럼 끊임없이 귀가에서 맴돌았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 길게 엎드려있던 남자의 모습이 가슴을 윽박지르면서 달려왔다. 녀자는 몸을 뒤집어 엎드렸다.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불안할 때면 항상 엎드려서 잤던 것 같다. 남자도 그래서 엎드려 자는 것일가? 불안하여 그 불안을 잠재우고 싶은 그는 도대체 누구일가? 녀자가 알고 싶은 그는 도대체 누구일가? 녀자아이 앞에서 그 아이 엄마를 범한 남자일가? 아니면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신의 남자일가? 안마원에서 엎드려 자던 남자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녀자는 자신의 남자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3. 이튿날 녀자는 모교를 찾아갔다. 처음 남자를 만났던 곳에서 다시 남자를 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녀와 남자는 모 대학의 선후배 사이였다. 우연히 캠퍼스에서 맞닥뜨린 후 남자가 사귀자고 저돌적으로 밀고 다가왔다. 하지만 별로 마음이 당기우지 않았던 녀자는 졸업하자 마자 류학을 가버렸다. 남자는 집요하게 외국까지 쫓아가서 구애를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보다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되여 짧은 만남 끝에 녀자는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지만 인생이 실패를 하려면 뭔들 못하겠는가.    녀자는 모교에서 부교수로 부임한 남편의 동기를 만나 기막힌 사연을 얻어들었다. 재학 시절 남편은 사랑하는 녀자가 있었고 당시 그 녀자와 살림까지 차렸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애까지 지운 적이 있단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결혼까지 골인한 자신에 녀자는 망연자실하였다. 선배가 한마디 더 얹었다. “우리는 그 때 다들 안타까워했어. 네가 왜 그런 바람둥이랑 결혼하는지…” 녀자는 티끌 같은 목소리로 되뇌였다. “그 때 저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지…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우리가 알았을 때는 니들이 이미 결혼한 뒤였거든.” 녀자는 충격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되돌릴 수 없는 이 현실을 어이할가. 억울함과 분노를 넘어 부끄러움과 막막함이 모든 세포를 잠식했다. 함부로 어설프게 헤집거나 건드리는 게 두려워 지그시 응시만 했던 남자의 비릿한 삶의 실체에 직면하여 더 이상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없었다. 다친 본능을 주체할 수 없어 녀자는 파들거리며 한때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꿈틀거렸던 캠퍼스를 벗어났다. 삶을 약화시키는 무시무시한 혼란과 자책으로 이미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마침 곧 출발하려고 시동을 거는 뻐스가 있어 녀자는 무작정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이처럼 완벽하게 속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남자를 망가뜨리기 위해서라면 이제 기꺼이 망가지리라. 남자에게서 받은 배신과 상처를 그대로 되갚아주기 전에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현재보다 더 아프고 처절하도록 오징어다리를 씹듯 잘근잘근 풀이 나게 씹어줄 것이다. 녀자는 남자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틀림없이 한때 살림까지 차렸다는 녀자한테로 갔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녀자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남자가 돌아올 시간이 두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녀자는 남자의 컴퓨터를 켜고 그의 메일함을 열었다. 그녀에게 오픈한 계정에는 이상한 편지가 없었다. 남편이 숨겨둔 계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시간 가량 애를 써서야 비로소 남자의 비밀번호를 찾아냈다. 메일함에는 선이라는 이름으로 온 메일이 읽지 않은 상태로 여러통 들어있었다. 녀자는 메일을 휴지통에 옮기고 읽기 시작했다. 이러면 상대방은 이쪽에서 편지를 읽은 흔적을 알아채지 못한다. 편지내용을 보니 남자는 결혼한 후에도 그 녀자와 련락을 주고받은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아직 자신의 과거의 찌꺼기들을 제대로 닦아내지 못한 모양이였다. 녀자는 불에 구워내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들의 관계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였기 때문이였다. 선이라는 녀자는 남자의 안해 자리를 차지한 그녀에게 미움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기는 하나 그녀에게 상당히 공격적이였다. “그 녀자 어때? 재밌어? 살림은 할 줄 알아? 어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그런 글을 보고 있자니 수치심과 모욕감에 모닥불을 뒤집어쓴 듯했다. 자신이 마치도 누구든 헐뜯을 수 있게 거리바닥에 버려진 헌신짝이 된 듯했다. 기필코 그와 그의 옛 동거녀를 아작을 낼 것이다. 하지만 녀자는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이들을 응징하는 데는 더 고명한 방법과 지혜가 있어야 했다. 절대 서뿔리 행동할 수 없었다. 절치부심한 끝에 녀자는 남자의 계정으로 선이란 녀자에게 이번 주 토요일 오후 7시에 시대광장에 위치한 ‘참안마원’에서 만나자는 이메일을 보냈다.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 나올 것이다. 이 방법이야말로 불륜현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녀자는 잔인하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컴퓨터를 닫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듯이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토요일, 녀자는 약속시간보다 한시간 앞당겨 만남의 장소로 갔다. 마침 ‘참안마원’ 맞은켠에 스타박스가 있었다. 녀자는 안마원 정문이 잘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7시가 될 무렵 한 녀인이 안마원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서성거리면서 자주 시간을 확인했다. 늘씬하게 쭉 빠진 데다가 짙은 화장 때문인지 아주 요염해보였다. 선이란 녀자인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핸드폰으로 녀자를 사진에 담으려고 하는 찰나에 그녀가 어딘가를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약속한 사람이 오는 모양이였다. 한 남자가 뛰여오더니 가볍게 그녀를 포옹하였다. 녀자는 놀라서 하마트면 커피잔을 넘어뜨릴 번했다. 녀자의 허리를 안고 안마원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는 남편이 아니였다. 근거를 잡으려고 이곳에 죽치고 있는 사람 같지 않게 녀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 뒤로 여러명의 사람들이 ‘참안마원’으로 들어갔다. 혼자 오는 남자들은 많아도 혼자 오는 녀자는 거의 없었다. 녀자들은 대개 남자와 같이 오지 않으면 녀자들끼리 무리를 지어 왔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남편과 선이란 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메일을 확인했으면 꼭 왔을 텐데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일가? 이상했다. 남편의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선이란 녀자가 아직 이메일을 읽지 않았다. 왜 읽지 않은 것일가? 선이를 만난 것이 아니라면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가? 분명 원래 다니던 곳으로 갔을 것이다…그런데 그 곳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 새벽이 되여 남자가 돌아왔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오랜 시간을 공 들여 꼼꼼하게 샤와를 하고는 담요를 들고 거실 쏘파로 갔다. 녀자는 따져묻지 않았다. 이런 일은 빼도박도 못하는 확증을 손에 넣기 전에는 절대 이발을 드러내면 안된다.  녀자는 남자가 곁을 비울 때마다 수시로 핸드폰으로 남자의 이메일을 체크했다. 그런데 선이란 녀자로부터 한통의 메일도 오지 않았다. 남자가 그녀한테 메일을 보낸 흔적도 없었다. 그들이 혹시 녀자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눈치를 챈 것일가? 전에는 가담가담 이메일을 통하더니 최근 들어 아예 딱 끊은 것을 보면 십중팔구 눈치를 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그녀를 따돌리고 은밀하게 제3의 장소에서 만나고 있을 것이다. 복수하고 싶지만 복수할 방법이 없었다. 억누르고 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부서져내리고 그 부서진 쪼각들이 헐거워진 틀이처럼 수시로 덜거덕거렸다. 녀자는 절망했다. 남자를 버리는 것으로 그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례의가 아니였다. 녀자는 자신한테 공평한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애시당초 존재할 수 없었다. 이미 원상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 어떤 결과이든 그녀한테는 일방적인 상처일 뿐이였다. 상처를 받은 만큼 도로 갚아줄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였다. 왜 그는 되고 나는 안되는가? 녀자는 한없이 억울했다. 세상의 어디에도 공평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였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리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무수한 새떼가 뇌수를 파먹듯 텅 빈 머리 속에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였다.   4. 녀자는 다시 집을 나섰다. 남자가 간 곳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아픔을 그에게 갚아줄 방도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가 찾아간 곳은 송의 사무실이였다. 계획하고 온 것은 아니였다. 그냥 갈 곳이 없어서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토요일이라 당연히 사무실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송한테 전화를 하였다. 웬 일로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던 송이 이날 따라 마치 녀자와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무실에 나와있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가? 그녀의 전화를 받고 송이 급히 건물 로비까지 내려왔다. “커피숍으로 갈가요?” 송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녀자한테 깍듯하게 례의를 갖추었다.  녀자는 망설였다. 남편의 친구와 같이 커피숍으로 가는 것이 왠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송이 바로 말을 바꾸었다. “괜찮으시다면 저의 사무실로 올라가시던지요…” 그는 눈치가 빨랐다. 그녀가 무엇을 꺼리는지 금시 알아차린 것이다. 녀자는 커피숍보다 사무실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이란 말 그대로 사무를 보는 곳이 아닌가. 누가 봐도 꺼리낄 것이 없다. 녀자는 남자를 따라 17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넓다란 테이블 우에는 설계도면들이 펼쳐져있었다. 설계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였던 모양이다. “미안해요. 일하는데 방해를 한 것 같네요.” “아니, 아닙니다.” 송이 서둘러 설계도면을 둘둘 말아 한켠에 밀어놓고 그녀한테 의자를 내여주었다. 그가 급히 커피를 내오는 사이에 녀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지척에서 보이는 전망 좋은 사무실이였다. 톤 다운된 원색으로 모던하고 심플하게 꾸며진 사무실 한켠에 꽤나 값져보이는 패브릭 수입 쏘파가 놓여있었다. 녀자는 조용히 쏘파로 옮겨앉았다. 남편의 절친 사무실에서 남편에게 복수를 할 방법을 찾으려는 자신이 무모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송을 찾은 것이다. 단 한번도 둘이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가끔 눈빛만 부딪쳤던 것 뿐이다. 송의 눈빛은 언제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녀의 편을 들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송이 커피잔을 들고 그녀한테로 다가왔다. 커피잔을 받으려고 급히 일어나던 녀자가 한쪽으로 몸을 기우뚱했다. 송이 급히 피하느라 했지만 녀자의 손에 커피를 쏟고 말았다. 녀자의 손등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풀어올랐다. 송이 급히 녀자를 이끌고 싱크대로 가서 녀자의 손등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는 급히 밖으로 뛰여나갔다. 십분도 채 안되여 송이 화상연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약국에 갔다온 모양이다. 녀자의 손등에 연고를 바르고 송이 열심히 입김을 불었다. 그의 입김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시원하면서도 간지러웠다. 순간 녀자는 송을 유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을 유혹하는 것은 남편에게 가장 잔인한 복수가 될 것이다. 안해와 절친의 배신이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복수와 일탈은 없다. 녀자는 짜릿함에 온몸을 떨었다. 송이 소스라쳤다. “많이 아파요?” “네, 너무 아파요.” “죄송합니다. 병원에 가야 되는 게 아닌가요?” “손이 아픈 게 아니라 …” 송이 아스란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기가 아픕니다.” 녀자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제야 송이 크게 숨을 내그었다. “남편 때문에 상심이 큰 줄 압니다.” “절 도와주세요.” 녀자가 송의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제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가요?” 녀자가 두 팔을 활짝 벌려 송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가 아연실색했다. “왜 이러십니까?” “제가 복수하도록 도와주세요! 제발 절 뿌리치지 말아주세요…” 송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어진 채 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오래도록 은근히 바랐던 일인지도 모른다. 남자는 온몸의 모든 세포가 활짝 열린 채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어 안달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비약을 준비하는 나비처럼 그의 몸이 서서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비가 높이 날기 위해서는 적당히 몸을 덥혀야 하듯이 송 역시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일가? 송이 갑자기 서두르며 녀자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무아지경의 경지에서 두 사람은 잠시 주위를 잊은 듯했다. 이것이 복수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서로 이날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두 사람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랑합니다!” 남자가 문뜩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뜻밖이였다. 녀자는 이런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순간적으로 부딪친 감정이 사랑일 수 있단 말인가? 남자들이란 다 이렇게 쉬운 존재인가? 하지만 크게 나쁘지도 않았다. 일단은 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송의 말이 진심인지 그냥 하는 소리인지는 상관 없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남편과의 감정보다 더 신뢰가 가고 더 의지가 되며 더 달콤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사랑이란 가질 수 없는 것, 다가오지 않는 것, 품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닐가? 녀자는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였다. 적어도 그 순간에 자신도 송과 같은 생각을 했으니깐… 폭풍우가 지나가자 두 사람은 서로 낯선 사람인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송이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방황이 끝나면… 분명히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놈 말입니다.” 송이 남자를 위해 변명을 하는 것을 보니 금방 있었던 일이 미안했던 모양이였다. 아니,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겁해보였다. 녀자는 송과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앞으로 더 자유롭게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송은 오히려 멀어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작은 구름조각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은 표정을 짓고 심술궂게 대답했다.  “그가 돌아와도 소용없어요.” “왜요?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 아니였어요?” “제가 먼저 그를 버릴려구요!” 송이 탄식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친구도 많이 외롭고 불쌍한 놈입니다…” 남자가 방황하는 것은 어릴 적에 받은 상처가 깊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송이 설명했다. 남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번씩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으로 만난 사이다. 결혼 당시 어머니한테는 전남편의 소생인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재혼했다. 준이는 두 사람이 결혼 후 낳은 유일한 자식이다.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배 다르고 성이 다른 네 아이들이 싸우거나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시어미 역정에 개 옆구리를 찬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쩍하면 막내인 준이한테 분풀이를 했다. 상대방이 데리고 들어온 자식을 욕하고 때리면 구설수에 오르고 마을에서 손가락질 당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친자식인 준이한테는 함부로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였던 모양이다. 넉넉한 형편도 아닌 데다가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한지붕 아래서 살다 보니 집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항상 다섯 폭탄을 탑재하고 있는 형국이여서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랐다. 막내를 미워서 때렸겠는가. 그를 때리고 야단침으로써 집안의 시끄러움을 제거하려 했거나 고달픈 삶에 대한 자신들의 분풀이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형제들 역시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준이한테 풀기가 일쑤였다. 이런 이률배반적인 갈등 속에서 준이는 자신에게만 가해지는 폭력과 불평등을 겪으며 점차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컸고 형제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늘 혼자이고 외로웠다. 그래서 친구를 많이 사귀였고 친구가 없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했는지도 모른다. “준이는 아직도 자신을 찾지 못해서 저리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죠.” 송의 말을 들으면서 잠간이지만 녀자는 마중물처럼 눈물이 고였다. “그런 소리 여직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녀자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남자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신이 남자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오래도록 기다리며 방황한 것처럼 어쩌면 남자 역시 그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에 남자의 방황을 부추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녀자는 간다는 말도 없이 송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누구에게나 시시각각 거부하는 순간과 받아들여지는 순간은 찾아온다. 자신의 껍데기를 평생 이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늘 짊어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녀자는 남자가 그 자신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5. 녀자는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려 남자가 좋아하는 금잔화 한묶음을 샀다. 남편은 금잔화에 대한 전설 때문에 이 꽃을 좋아했다. 태양의 신을 사랑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늘 태양이 있는 하늘을 좋아했고 태양이 없는 밤을 슬퍼했다. 태양의 신도 소년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자 구름의 신이 둘의 사랑을 질투하여 태양의 신을 여드레 동안이나 구름 속에 가두어두었다. 소년은 태양의 신이 없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만다. 태양의 신은 죽은 소년을 애도하고 둘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소년을 금잔화로 환생시켰다. 금잔화가 언제나 태양을 향해 아름답게 피는 것은 태양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증거다. 귀가한 남자가 이윽히 금잔화 옆에 서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잔화가 그렇게나 좋아요?” “금잔화에 감동한 게 아니야.” 남자가 쑥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왜 그 앞에 넋 나간듯 서있어요?” “금잔화를 사온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있었어…” 남자가 고개를 깊이 떨어뜨리며 혼자소리처럼 작게 말했다. “미안해!” “뭐가요?” “그냥…다…” 녀자는 남자가 토요일마다 새벽에 돌아오는 비밀을 털어놓기를 바랐다. 그런데 남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었다.  “확신이 없었어… 그래서 많이 방황했던 것 같아.” “확신이 없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알아.” “뭘 알아요?” “당신이 내 뒤를 쫓고 있다는 걸.” “그럼 메일 열어본 것도 알았겠네요.” “물론이지. 오늘 송을 만난 것까지 다 알어.” “어떻게…” 녀자가 깜짝 소스라쳤다. 혹시 그와 스킨십을 나눈 것까지 보고 있은 것은 아닌지… 가슴이 쿵닥거렸다. “놀랄 것 없어. 송이 전화가 왔더군. 당신을 만났다고…” “송이 뭐라고 했는데요?” “당신을 외롭게 하지 말라구… 경고한다구… 개자식 제가 뭔데 나한테 협박을 해?” 입으로는 욕을 했지만 표정에는 악의가 없었다. 송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였다. 녀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자가 얼굴을 들더니 녀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래일 시간을 좀 비워줘.” “래일은 토요일인데요. 괜찮아요?” “알아.” 대답을 하는 남자의 표정이 덤덤했다. “그런데 왜요?” “함께 갈 데가 있어.” “어딘데요?” “가보면 알아.” 그런데 왜 하필이면 토요일인가? 너무도 뜻밖이다. 혹시 그동안 자신이 다녔던 그 비밀 아지트로 데리고 가려는 것은 아닐가? 천만에. 그토록 쉽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니다. 그 곳이 선이와의 사랑의 보금자리거나 아니면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르게 한 소녀의 어머니를 범했던 장소라면 그 어느 쪽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은가? 어쩌면 의미를 두지 않은 단순한 외출이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일지도 모른다. 밤새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갓 태여난 아기의 배내저고리 같이 하얀 눈들이 대지를 살포시 감싸안고 있었다. 깨끗하고도 고요한 경이로움이 오로라처럼 반짝이며 가슴을 적시고 흘러갔다. “아, 너무  아름다워요!” 녀자가 감탄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남자가 되돌아왔다. “눈이 오니까 참 보기 좋지?” “그러게요.” “뻐스를 타고 가는 게 어때?” 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눈이 오는 날에는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리용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녀자는 말없이 남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발밑에서 빠지직 빠지직 새 눈 밟는 소리가 신기로웠다. 두 사람은 도심을 벗어나 온통 은백색으로 뒤덮인 수림을 지나 작은 시골마을 역에서 내렸다. 십분 가량 걸어가자 우거진 소나무숲 속에서 빨간색 벽돌에 파란 기와를 얹은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앞에서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잠간 녀자를 건너다보았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주저하는 것 같았다. 잠간이였지만 녀자는 남자가 자신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녀자가 앞질러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체념한듯 남자가 희미하게 대답했다. “의료원이야! ” 남자가 앞에서 걷고 녀자가 뒤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 긴 코리도를 지난 후 맨 마지막 방 앞에서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창문으로 하얀 해살이 들어와 눈이 부셨다. 해살 아래에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코와 입에 산소호스가 꽂혀있었다. 남자가 침대 옆에 다가서서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전에 녀자의 침대 옆에서 그녀를 내려보듯이 말이다. “이 분은 누구세요?” 녀자가 귀속말로 물었다. “형이야!” “형? 무슨 형?” 녀자는 깜짝 놀랐다. 남자에게 이복 형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형에 대하여 한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아들이야!” “그게 무슨…?” “아버지가 데리고 온 아들!”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할 때 데리고 온 아들이란 소리다. 여직 그런 이야기를 숨겨왔던 사람답지 않게 남자는 형이란 존재에 대하여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 분이 왜 여기 이러고 있어요?” “차사고로 식물인이 되였어. 지은 죄가 많으니 벌을 받은 거지 뭐.” 남자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녀자가 날카롭게 흘겼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면전에서 할 수 있느냐고 질책하는 듯했다. “동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 인간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의 눈빛은 흐릿했다. 남자가 녀자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푸른 잎을 드러낸 소나무 가지들에 이름 모를 하얀 새들이 앉아있는듯 듬성듬성 아기손 만큼한 눈송이들이 남아있었다. 정원을 거닐면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릴 때 형 때문에 물에 빠져서 죽을 번했던 적이 있었어…” 남자가 녀자한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였다. “강가에 목욕하러 갔다가 헤염을 칠 줄 모르는 나를 형이 강제로 물에 밀어넣은 적이 있어. 나중에 물에서 건져주기는 했지만 나는 이미 혼수상태였어. 그 일로 형은 아버지한테 죽도록 얻어맞았지… 그 길로 형은 집을 나갔어. 그 때 그의 나이가 열입곱이였거든. 형이 집을 나가고 나서 아버지는 나를 멀리했어. 집을 나간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랬을 테지. 나는 오래동안 아버지를 원망했어.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들은 형 뿐이라고 말이야.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싸웠어. 아버지는 형이 집을 나간 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는 애초에 형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라고 했어…” 말을 하다 말고 남자가 감정이 북받치는듯 눈을 슴뻑였다. 형의 가출에서 단 한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그다. 형이 잘못되면 자신의 탓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린 시절부터 늘 불안했고 두려웠다. 그에게 자신이란 있을 수 없었다. 깨여있는 시간 뿐만 아니라 잠든 시간에도 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울 때마다 형과 그의 잘잘못못을 놓고 론쟁을 벌였다. 그들의 싸움은 거의 매일 일어났다. 싸우지 않은 날이 어쩌다 한두번 있기는 했지만 그런 날의 괴괴함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은 낯설고 익숙치 않음에 그는 집에 붙어있지 못하고 강역이나 들판으로 들개처럼 돌아다녔다. 항상 형처럼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었지만 담이 작았던 건지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절실함 때문이였던지 그는 결국 집을 떠나지 못했다. 형이 돌아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될 것이고 집안의 평화도 찾아오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결혼을 한 후에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결혼하는 날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우시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남자는 자신의 결혼 자체가 아버지한테는 상처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러다가 얼마전, 아버지가 그의 회사를 찾아와 형이 돌아왔다고 하였다.  소용돌이처럼 마음을 휘젓고 지나가는 감정은 희열이나 기쁨과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였다. 원망과 미움이 희열과 혼재하여 어떤 것이 진실한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했던 것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송두리채 빼앗아가버린 형의 책임을 따지고 자신을 돌려받고 싶다는 생각 뿐이였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그동안의 세월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가서 형을 만난 곳은 뜻밖에도 병원이였다. 차사고를 당하여 머리를 다친 형은 이미 뇌사상태였다. 남자는 형의 앞날을 미리 알고 있은 사람처럼 담담했다. “왜, 놀라지 않니?” 아버지가 크게 놀랐다. “형 때문에 아버지는 저를 멀리했어요. 제가 형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마지막 길이야… 간신히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어. 의사들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어.” “잘됐네요!” 남자가 잔인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억이 막힌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형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다쳤으면 저러랴 싶어 긴 한숨만 내쉬였다.  “여긴 저한테 맡기고 아버진 집에 들어가세요.” 그의 말에 아버지가 놀란 눈을 부릅떴다. “네가 형과 같이 있는다고?” “왜요? 제가 혹시 형을 해치기라도 할가봐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진데 더 이상 해칠 일도 없잖아요.” 비칠거리며 병실을 나서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형보다 아버지가 먼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그 뒤로 남자는 매주 토요일이면 형 곁에서 밤을 지샜다. 그러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산소호흡기를 떼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수시로 참으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그런 마음은 도대체 형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인지 아니면 어서 죽기를 기다리는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랬어요?” 녀자가 그에게 물었다. “뭘?” “형 곁에 있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왜 그랬어요?” “…처음에는 형과 채 하지 못한 말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거든. 왜 그 때 나한테 그리 잔인했었냐구? 왜 내 목숨을 가지고 장난쳤냐구? 물었어. 그런데 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더라…” 녀자가 남자의 손을 잡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거웠다. “당신이 왜 형을 놓지 않는지 전 알 것 같아요.” “왜라고 생각해?” 남자가 우울하게 물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았던 형이 부러워서일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형은 밖에서 살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깐.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의 아들로 산 적이 없었어. 형이 돌아오면 아버지의 마음이 나한테로 돌아올 것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어… 그래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거든. 지금은 비록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곳에 오면 왠지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저기 누워있는 형이 오래동안 방황을 하고 돌아온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런 말을 왜 나한테 하지 않았어요?” 녀자가 남자를 나무랐다. “말을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적어도 오해는 하지 않았을 거잖아요?” 남자가 고개를 깊게 꺾고 발끝을 내려다봤다. “용기가 없었어. 잡초처럼 살아온 내 과거에 자신이 없었거든. 어쩌면 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몰라.” 녀자는 가슴 끝이 시리고 아렸다. 아픔에서 그를 조금이라도 끌어내고 싶었다. 녀자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며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이 너무 예뻐요!” 민들레 홀씨 같은 하얀 눈이 푸슬푸슬 날리고 있었다.  그 때 간호사가 재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환자가 운명을 하려나봐요.” 두 사람은 다급히 병실로 돌아갔다. 형이 아주 짧은 간격으로 발작하듯 숨을 톺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흐느낌처럼 긴 숨을 몰아내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왜 이러죠?” “운명했어요. 사람의 몸에서 생명이 가장 마지막에 꺼지는 곳이 귀예요. 숨이 떨어지고 나서도 3분간은 귀가 열려있으니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세요.” 남자가 급히 형의 침대에 다가갔다. 그는 상반신을 깊숙이 숙여 형의 귀가에 대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형! 우리 곁으로 돌아와줘서 고마워!… 잘 가!” 출처:2017 제5호
12    [수필]산 자의 고별식 댓글:  조회:334  추천:0  2019-07-18
산 자의 고별식 허련순   제나름, 망자 고별식은 사후에만 치르는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하여 행하는 장례식이 바로 고별식이 아닌가? 그러니 사후에 고별식을 치르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산 사람을 놓고 장례식을 치를 수는 없지 않는가? 바보거나 혹 남다른 뇌구조를 가졌다면 모를가, 세상에 일관된 상식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이를 화제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은 아닌지 살짝 고민스럽지만 이 또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일전에 미국에 사는 한 지인으로부터 그가 포트로더데일 싸우스웨스트 렌치스에 있는 ‘선교치유센터’에서 백여명의 친지들을 모시고  ‘미리 하는 고별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고령이기는 하나 아직 퍼렇게 살아계신 분이 고별식이라니, 한동안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고… 별식이라니요? … 혹시 장례식 말씀하십니까? …” 다시 물어보기에도 민망하고 딱한 일이였다. 그래서 저도 몰래 말을 더듬었다. 살아있는 분을 놓고 장례식을 운운하다니. 송구하고 황송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 엄청난 사건을 전해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묵묵히 있는 것도 무례일듯 싶어 가까스로 뱉어낸 말이다. 하지만 그 쪽 반응은 오히려 담담했다. “네. 장례식 맞습니다. 제가 80돐 생일을 맞으면서 생일파티 겸 마지막 고별식을 미리 치렀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왠지 가슴에 총을 맞은듯 먹먹해났다. 경이로움과 처연함, 그리고 짠한 슬픔과 이름할 수 없는 쓸쓸함까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찬사를 드려야 할지 아니면 위로를 드려야 할지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것일가? 무슨 말이든 이어나가야 하는데 나는 그저 방아개비 더듬이 더듬듯  “어떻게… 어떻게…”라는 말만 곱씹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 말조차 비정해보여서 쉽게 입밖에 낼 수 없었다. 얼 빠진 듯한 내 모습이 딱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그 분이 위로를 건넸다.  “허작가님, 놀랄 것 전혀 없습니다. 제가 처음도 아닙니다. ‘미리 치른 장례식’의 전례를 보면 3년 전에 카나다 동포 의사 이재락박사가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생전에 미리 장례식을 치렀고 또 미국인으로는 1938년 테네시 시골의 펠릭스 브리질씨가 당시 73세였는데 건강한 몸으로 ‘미리 하는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7년 후에 사망했지요. 북미에서는 이미 두차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세번째인 셈이죠.” 하지만 나는 오래동안 가슴이 떨렸다. 이런 상황을 뭐라 하면 좋은 것일가? 죽음에 대한 초탈이라 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가? 아니면 삶에 대한 초탈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가? 혼란스러웠다.   ‘미리 하는 장례식’을 올린 이 지인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김영랑시인의 아들인 김현철선생이다. 그는 한국 MBC 서울본사 기자, 한겨레 동아 중앙 마이애미 지국장을 력임하고 1974년에 미국에 이주하여 미국 동포신문을 창간한 발행인 겸 편집인이다. ‘’ 나는 2014년 겨울 한국의 저명한 평론가 임헌영선생의 소개로 김현철선생을 알게 되였다. 당시 김현철선생께서는 《김영랑시집》을 중국어로 번역출간하려고 추진하던 중이였는데 중국에 일면식도 없는 상황이라 내가 나서서 그 일을 돕게 되였다. ‘북도에는 김소월, 남도에는 김영랑’이라고 할 만큼 김영랑시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그의 시는 자연을 통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인간 내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가 대부분이다. 김영랑선생의 시에 대한 리해를 돕기 위하여 김현철선생께서 서울에 있는 누이에게 부탁하여 《김영랑시선집》과 본인이 저술한 《아버지에 대한 회억》 등 3권의 책을 부쳐왔다. 덕분에 나는 김영랑시인의 시를 체계적으로 읽는 호사를 누리게 되였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요, 즐거움이였다. 나는 김영랑시인의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과 응축의 묘미에 깊이 매료되였다. 그것은 은혜였다. 김영랑선생의 시에 대한 공감으로 나는 김현철선생과 이메일로 많은 시간을 문학에 대하여 아낌없이 담론할 수 있었다. 같은 문학인이라 그런지 통하는 데가 많아 토론은 항상 즐겁고 유익했다. 최근 나는 집필하고 있는 장편소설 《춤추는 꼭두》에 대하여 고언을 청해 듣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 미국에서 언론인의 삶을 살았던 분이라 사유가 자유롭고 신선하여 그의 고견을 듣는 것은 작가인 나에게 더없는 행운이였다. 특히 작가의 문제의식이나 사회의식에 대한 김현철선생의 관점은 이번 소설의 구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럴 즈음에 김현철선생으로부터 ‘미리 하는 고별식’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나로서는 너무 충격적이였고 생소하고 낯설었다. 한편 궁금하기도 하였다. 산 사람의 장례식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가? 진짜처럼 빈소를 설치하고 장송곡을 울리는 걸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김현철선생께서 설명을 보태셨다. “장송곡은 당연히 울렸죠. 망자와의 고별식인데 장송곡이 없어서야 되겠어요?” 그는 마치 가벼운 일상을 말하듯 엷게 웃기까지 했다. 아, 나는 비명처럼 짧게 탄식을 뱉었다. 아무리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라 해도 그렇지, 산 사람 앞에서 장송곡을 울리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라 생각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장송곡 자체가 잔인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죽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그리 느껴졌을 수도 있다.  80돐 생일 축하 파티가 끝나고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의 주제곡인 이 은은히 장내에 흐르면서 고별파티가 시작되자 이날의 주인공인 김현철선생께서 고별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순서가 되였다. “팔순이 되니 전보다 죽음이 가까워져서인지 자주 죽음에 관해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죽음이라는 단어는 ‘모든 게 다 끝났다, 이제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령혼이 몸을 떠나서 본래 왔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도 있으니 ‘죽었다’ 보다는 ‘돌아갔다’로 표현함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역겨운 시신을 조문객들에게 보여주어 불쾌감을 주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더우기 사후 장례식에 누가 다녀갔는지, 또 누군가가 읊은 조사가 어떤 내용인지, 정작 당사자인 망자 본인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후 장례식은 아무 의미도 없기에 죽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소박한 식사를 하고 담소도 나누면서 정감 넘치는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더구나 장례식 때 조의금을 챙기고 조화를 받고 번거로운 장례의식 절차를 거치는 것 또한 적성에 맞지 않으며 지금은 아주 건강하지만 90세까지 산다는 자신이 없어서 팔순잔치 때 마지막 파티를 겸하기로 했다고 이날 파티를 열게 된 리유를 밝혔다. 인사말을 마치고 김현철선생은 천상병시인의 을 읊었고 이어 가곡 를 부인과 함께 열창했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가 부르셔야 할 노래를 대신 부른다”면서 프랑크 씨나트라의 그 유명한 를 불렀다. 장송곡에 이어 까지 울려퍼지자 고별식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였다. 어떤 이들은 손수건으로 슬쩍슬쩍 눈물을 훔치면서 속으로 울음을 토해냈고 어떤 이들은 아예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여 흑흑 흐느꼈다.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이 시사하는 의미는 비통 뿐만이 아니였다. 삶에 대한 애틋함을 더 애틋하게 하고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더 각인시켜주었다.   자,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졌네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게 되였어 친구, 분명히 말해두고픈 게 있네 내가 확신했던 내 삶의 방식을 얘기하려고 하네 난 내 인생을 충실히 살아왔고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어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내 방식대로 삶을 살았다는 거지   사랑했고, 웃었고, 울었지 고생도 했고, 쉬염쉬염한 적도 있었지 이제 눈물이 말라가면서 난 그 모든 게 재미있어보이는 거야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거쳐왔다는 것이 그리고, 이렇게 말해도 될가 난 당당하게 내 방식대로 해왔어…   는 마치 평생 비리와 타협하지 않고 ‘언론인의 정조’를 오롯이 지켜온 김현철 전 언론인의 지난날을 말해주는 듯 구구절절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후벼팠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가 있을가. 죽음을 삶으로 살아냈으며 죽음을 아름다운 삶으로 완성시킨 김현철선생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죽음이란 결국 삶을 죽는 것이다. 그러니 삶이 없는 사람은 죽을 것도 없게 된다. 죽음이 없어 좋은 것일가? 천만에! 세상에 죽을 것이 없는 자 만큼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다. 죽음을 미리 추모하고 삶을 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죽을 수 있는 삶이 있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이들은 죽음을 알고 죽음을 초탈한 사람들이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결국 삶을 잘 살았다는 증거다. 솔직히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신조차도 죽음 앞에선 통곡을 한다. 항아리 그림인 〈멤논의 죽음을 슬퍼하는 에오스〉는 죽음 앞에 애통해하는 신의 눈물을 보여준 증거다. 이 그림은 새벽의 녀신인 에오스(Eos)가 인간과 사랑하여 낳은 아들인 멤논이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자 슬픔에 겨워 통곡하는 장면을 그렸다. 신화에 의하면 새벽에 내리는 이슬은 에오스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새벽마다 흘리는 눈물이라고 전해진다.  인간은 물론이고 신조차도 슬퍼하는 죽음을 처연하게 대면하고저 한 ‘미리 하는 고별식’을 대면하여 재삼 죽음을 두려움 없이 즐겁게 맞이하고저 했던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듯 싶다. 아테네정부의 잘못된 기소로 독약을 받고 죽음을 맞게 된 소크라테스는 곧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마리를 빚졌다”는 유명한 유머를 남겼다. 아스클레오피스는 그리스의 의술의 신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앓던 병이 치료되면 감사의 표시로 의술의 신 아스클레오피스한테 닭 한마리를 바치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독약을 마시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는 왜 죽는 순간에 아스클레오피스한테 닭을 빚졌다고 했을가? 혹시 자신의 죽음을, 비록 억울한 죽음이긴 하지만 병과 고통에서부터 치유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일가? 이승의 삶이 육체의 구속이였다면 저승에로의 죽음은 어쩌면 령혼의 자유이며 해방일 수도 있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수많은 명언을 남기며 누구보다도 죽음과 가까이한 소크라테스라면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질은 혼魂에 있다고 보았다. 신체는 물론이거니와 혼과 신체가 섞인 것조차 인간을 설명할 수 없으며 오직 순수하고 독립적인 혼만이 인간을 규정한다고 보았다. 어찌됐든 죽음을 앞두고 남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한마디는 난해한 오묘함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회자화되고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소크라테스다운 풍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죽음을 태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본연에 대한 리해, 특히 령혼과 육체의 관계를 리해하는 깊이와 밀접하게 련관되여있지 않을가 싶다. 만약 죽음이 전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정녕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리유는 전혀 없다. 우리는 우리가 태여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잖는가. ‘살아서 미리 하는 고별식’을 치른 김현철선생도 죽음은 육체의 사멸일 뿐 령혼은 왔던 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인식했기에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축복 속에서 맛볼 수 있었던 게 아닐가. 처음엔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어쩌면 ‘살아서 하는 고별식’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큰 례의이고 축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죽음을 끌어안고 하고 싶은 말을 채 하지 못한 사무침에 땅을 치는 일은 없을 테니 얼마나 좋은가. 미리 할 말을 다했으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이에 서로 빚은 없을 듯 싶다. 빚이 없이 가볍게 갈 수만 있다면 떠나는 이나 남아있는 이나 이보다 더 좋은 리별이 더 있을가. 이것은 사람이 살아서 인간의 권리로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마지막 례의이고 또한 자기 죽음에 대한 신고식이 된다는 의미로 더없이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출처:2017 제5호
11    [대담]문학을 살아내는 작가 댓글:  조회:477  추천:0  2019-07-18
문학을 살아내는 작가 허련순&김홍란     초대작가: 허련순(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전임 부주석) 진행자: 김홍란(《도라지》잡지사 전임 주필)   일시: 2017년 7월 5일 장소: 연길시 백산호텔 커피숍   김홍란(이하 김):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가진 허련순선생님과의 만남이 ‘작가를 만나다’는 대담코너 자리여서 반가운 마음이 훨씬 큽니다.   작가로서 성공한 허련순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분이예요. 오늘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선생님께서 그동안 살아온 문학인생과 이룩하신 창작성과, 우리 문단을 빛내신 업적을 조명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허련순(이하 허): 정말 오랜만입니다.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문학대담으로 만나게 되여 더 기쁘고 즐겁습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이 될 듯 싶네요.     김: 일전에 선생님께서는 소주에 가서 한동안 체류하며 창작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고장을 찾아가 눌러있으면서 창작을 하시거나 지어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카페를 찾아가 온종일 앉아있으면서 글을 쓰시는 건 선생님이 오래전부터 그려온 풍경이였지요. 그런 행보는 스스로의 창작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찾아다니며 최상의 창작상태를 받쳐주려는 의도된 노력일 수 있겠지만 흔히 주변 환경이 바뀌면 글이 잘 안 나온다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낯선 환경에서 오히려 신선한 감각을 찾고 충전을 하고 젊은 느낌을 이어가려는 선생님의 남다른 실천이 아닐가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주옥 같은 소설을 수두룩 펼쳐낸 선생님의 앞으로가 더욱 많이 기대되는 리유이기도 하죠.    허: 저도 원래는 자기 서재에서만 창작하는 것을 고집했던 사람입니다. 그게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했거든요. 그런데 1996년부터 달라졌어요. 그 해 겨울에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30만자에 달하는 장편에세이 〈노래방에서 우는 사람〉을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낯선 곳에서의 글쓰기가 력동적이고 박진감이 넘치고 작가의 절심함도 더 치렬했던 경험을 하게 되였지요. 3개월 동안 집중해서 작품을 다 쓰고 나니 시력도 떨어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서 ‘이제 창작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처절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진저리쳐지고 소스라쳐요. 그만큼 부담도 크고 긴장된 상태였지요. 제시간에 완성하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한다는 불안감, 매일마다 조선족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써야 한다는 부담감, 제한된 체류시간 등 어느 것 하나 편한 것이 없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작품을 쓰면서 그 때처럼 치렬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가끔씩 그 때처럼 박절하고 절실한 순간을 꿈꿀 때가 있답니다. 그게 작가에게 최상의 창작상태가 아니였을가 싶어요.     이번에 집필장소를 소주로 한 것도 아마 그런 상황을 원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장편소설 는 다 완성한 상태에서 련재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쓰면서 련재를 시작했기 때문에 제시간에 이어대지 못할가봐 심리적 압력이 컸어요. 그러다 보니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환경으로 떠나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쪽으로 가게 된 더 중요한 리유는 작품 속에서 ‘꼭두’가 태여난 고향이 강서성 위수치여서입니다. 그 곳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후지고 가난한 곳이라고 들었어요. 자료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그 곳의 하늘과 땅, 바람, 풀, 물, 집, 사람 그리고 냄새까지 다 체험하고 싶었답니다. 가보니 하늘은 맑고 땅은 붉고 그리고 농촌은 마을사람들이 다 도시로 삯일을 떠나버려 텅텅 비여있더군요. 얼마 남지 않은 마을 늙은이들이 문앞에 쪽걸상을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어요. 집은 아직도 흙집이나 판자집이 그대로 있었고 집에 들어가 보니 천정으로는 하늘이 보이고 방바닥은 흙바닥이더군요. 분명히 바람과 함께 사라져가는 것들이 눈에 보였어요. 막연했지만 그 사라짐 속에서 저는 위수치의 욕망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소설의 배경이 된 리유입니다.     소주에서 꼭 반년을 살았어요. 작품을 마치고 나니 한 세월이 흘렀더군요… 앞으론 자주 소주를 리용할 예정입니다. 봄과 겨울이 구분이 없어 세월이 흘러도 오히려 그 차이를 동북보다 덜 느끼겠더라구요. 그래서 덜 우울할 수 있었습니다. 새롭고 낯선 장소에서 글을 쓰는 것은 긴장된 스릴이 있어요. 낯선 곳에서의 낯선 느낌은 새로움이죠. 제가 산 동네는 소주 남쪽에 위치한 천연호수인 윤산호尹山湖가 있는 곳입니다. 새로 개발된 곳이라서 그런지 소주 본토인은 반도 안되고 전부 외지에서 온 ‘이민자’들이더군요. 중국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을 매일 엘레베터에서 이웃으로 만나게 되죠.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정원에서 산책하면서도 만나게 되구요. 만남은 소통의 시작이 아니겠어요? 자연히 그들의 문화에 대하여 귀 기울이게 되더군요. 그런 기분을 뭐라 할가요? ‘내가 이제야 제대로 중국에서 사는구나.’ 그런 기분이였어요. 그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부부를 ‘로와이老外’ 즉 외국인이라 불렀지만 말입니다.(웃음)     김: 충전이 될 수 있는 신선한 선택인 것 같네요. 허련순선생님은 지난 90년대부터 우리 소설문학을 견인해온 가장 대표적인 작가중의 한분이십니다. 몇년 전에 펼쳐낸 인물평전 《사랑주의》는 중국어, 한국어, 영어, 일어 등 4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높은 인기를 얻었죠. 그럼에도 선생님은 ‘외도’는 그 한번으로 족하다며 인기 뒤에 따라오는 평전과 인물전기 청탁을 거절하시면서 작가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소설쓰기에만 전념하겠다고 하셨어요. 30여년 간 소설을 써오신 선생님에게 소설쓰기란 어떤 것일가요?    허: 저는 소설가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소설로 문학을 말하려고 노력하죠. 제가 소설 외에 다른 글을 쓰는 것을 피하고저 하는 것은 다른 것에 기웃거리는 동안 소설적인 감각이 떨어지는 것을 경계해서입니다. 솔직히 소설 외의 다른 문학에 손을 대면 왠지 저의 옷이 아니라 남의 옷을 걸친 듯 어색하고 마음이 편치 않아요. 소설 아닌 다른 것으로 상을 받았을 때는 더하죠. 조금 부끄럽거나 미안한 생각까지 들어요. 남의 령역의 풀을 뜯어먹은 것 같아서요. (웃음)   저에게 소설은 저의 존재에 대한 증언입니다. 소설을 씀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언하는 거죠. 그러니 소설은 저의 전부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을 쓰지 못하면 저의 존재도 사라지겠죠. 소설이 없는 저의 존재는 가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인간이라는 제 삶에서는 한발 물러서있었던 것 같아요. 액자의 뒤면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생계 그 이상의 소명의 자리에서 소설을 쓰면서 오늘까지 버텨왔어요. 소설쓰기는 결국 자신의 가장 불안한 상태를 견디여내는 일이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소설을 쓴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소설을 살아낸다는 의미인 거죠.     김: 1973년, 19세에 처녀작인 시를 《홍소병》잡지에 발표, 1980년에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한 뒤 연길시소년궁 창작실, 연길시아동도서관, 연길시문화관 창작실, 연길시창작평론실을 전전, 12년 사이에 시, 가사, 수필, 소품, 극본을 쓰며 문단을 조심스레 노크하던 선생님은 1986년 단편소설 를 《청년생활》잡지에 발표하며 본격적인 소설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후 지금까지 오롯이 작가의 외길만을 고집하고 걸어오면서 발자취를 무척이나 깊이 찍어오셨어요.    일찍 어린 열두살 나이에 일기를 쓰고 싶었던 선생님은 아버지께서 일기책을 안 사주시자 혼자 개구리를 잡아 팔아서 일기책을 샀던 일화가 있죠. 그 때부터 자신이 본 것과 생각한 것을 진솔하게 일기책에 적어놓았구요. 문학에의 꿈은 어쩌면 그 때 이미 꾸기 시작했고 일기책 장만하던 당찬 행동은 문학을 향한 집념의 싹이 아니였나 싶어요.    허: 그 때는 솔직히 작가가 되겠다는 그런 야무진 꿈 같은 건 없었죠. 없은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도 못할 때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작가를 꿈꾸도록 일깨운 사람이 없었으니까. 다만 제가 어릴 때부터 집념이 강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모내기를 도우려고 시내에서 온 중학교 언니들이 저의 집 한쪽 칸에 류숙하게 되였는데 일하러 나갈 때면 노트를 이불 우에 놓고 나가는 언니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쁜 노트가 신기해서 손에 들었는데 차츰 그의 일기에 빠진 거죠. 그래서 그들이 일하러 나간 틈을 타서 훔쳐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아버지한테 일기책을 살 돈을 요구했지만 계집아이가 무슨 일기냐며 일언지하로 거절하시더군요. 저는 그 날부터 한주일 동안 개구리를 잡아서 큰 항아리에 가두었습니다. 반자루 정도 되자 그걸 이고 십리 길을 걸어서 연길 동쪽 한족동네에 팔러 갔죠. 천으로 된 자루라 개구리들이 오줌을 싸서 란리도 아니였어요. 머리카락이 다 젖었고 옷도 아주 엉망진창이 되였죠. 다행히 한 한족 할머니가 집에서 키우는 닭한테 먹이로 주겠다며 1원 40전을 주고 몽땅 샀습니다. 60전으로 밤색 노트를 사고 24전인가 주고 비닐 지갑을 사서 남은 돈을 지갑에 넣고 집으로 왔는데 호주머니에 넣었던 지갑은 어디서 잃어졌는지 없더군요. 그래도 노트를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였죠.(웃음)    그 때부터 저는 매일 일기를 썼어요. 완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로서 세상을 보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적었죠. 그렇게 일기를 쓰면서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노트 한권을 거의 채워갈 무렵에 그걸 읽어보신 담임선생께서 잘 썼다는 생각이 드셨나 봐요. 선생님들의 아침 조회시간에 몇편을 골라서 읽어주셨다고 하더군요. 그 후부터 저는 학교에서 글 잘 쓰는 아이로 소문이 났죠. 복도로 지나다닐 때마다 다른 반 선생님들까지도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군 했는데 그 순간이 정말 짜릿하고 행복했어요. 아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유치하죠? (웃음)    김: 아니요, 그런 좋은 시작이 있은 게 부러운 걸요. 언젠가 선생님의 문학자서전에서 읽은 기억인데 집에서 다섯째딸로 태여난 선생님은 아들을 원하시는 아버지에게는 환대받지 못한 존재였다죠. 태여나는 날 아버지는 가출하셨고 몇달이 지나도록 이름 지어주기를 거부하셨으며 결국 놀러 왔던 6촌오빠에 의해 지어진 이름. 그래서 선생님은 자기 이름에 정이 가지 않았다고 하셨고 “결국 내 문학의 근원은 아버지였음을 알게 되였다.”고 했어요.    허: 그래요. 어린 시절 저는 이름에 관련하여 지울 수 없는 아픈 태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평생의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아버지가 아닌 남이 지어준 이름으로 글을 쓰면서 저는 자주 이름을 바꾸고 싶은 충동을 느끼군 했죠. 여직 한번도 그 생각을 멈춰본 적이 없어요. 왠지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처럼 자기 이름에 정이 가지 않았어요. 가끔씩 누가 제 이름을 부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을 정도로 낯설거나 어색해요.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너무 깊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싶을 때가 아주 많았어요. 하지만 매번 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결국은 필명이 아니라 본명을 써버리게 되더라구요. 싫어하면서도 왜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건지, 그런 제 마음을 저도 알 수 없어요. 이름에 담긴 슬픈 이야기를 잊지 못해서일가요? 아마도 태생의 조건이 결핍이였다면 그 결핍마저도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맞아요. 결국 저의 문학의 근원은 아버지였음을 최근에 와서 알게 되였어요. 아버지에 대하여 저는 눈빛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 눈빛의 깊이를 파고들고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이 바로 제 문학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있지 않는 듯한 먼 눈빛, 아버지는 늘 그런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았어요. 밀어내는 듯한 눈빛이였고 저는 늘 그 시선을 참을 수 없어했어요. 그 시선에서 어린 나이에 벌써 인간의 소외와 차별과 슬픔을 경험했고 그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행해지는 가장 큰 부정과 비애임을 알아버린 것 같아요.     제가 네살 되던 해 여름, 아버지는 셋째삼촌의 아들(사촌오빠)을 양자로 삼았어요. 온 동네가 보란 듯이 아버지는 저보다 여섯살이나 더 큰 사촌오빠를 업고 마실을 다녔습니다. 아들을 등에 업어보는 것이 아버지의 소망이고 꿈이였던 모양이예요. 아버지의 등뒤에서 행복하게 출렁이던 사촌오빠의 긴 다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그 기억이 진짜 네살짜리의 기억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후에 말씀해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부모로부터 받는 소외감은 이 세상 그 어떤 상처보다 큰 트라우마가 되는 것 같아요. 그 상처가 저의 문학의 근원이고 본질이라고 하는 리유는 아버지가 최초로 저에게 ‘녀자로 태여난 슬픔’을 경험하게 했고 최초로 ‘녀자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김: 네. 그래서 어느 한 평론가는 “어린 시절의 소외와 고독은 허련순선생님을 작가로 잉태시킨 자궁”이였다고 했지요.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차별대우와 소외의식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녀성정체성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사색을 하게 했으며 출생의 결핍은 녀성성의 결핍으로 선생님의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지요. “나의 문학은 자기 이름 찾기”였다는 선생님은 결국 녀성의 정체성 찾기로부터 소설쓰기를 시작했어요. 그 대표소설로 (1997), (2004), (2004) 등이 있지요. 선생님은 이런 중단편소설의 창작을 통하여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녀성의 삶과 처지, 운명, 지위의 변화 등에 대해 다룸으로써 녀성의 정체성 확립에 이바지” 하셨어요.    허: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작가는 대체로 유년기적 체험의 범주에서 작품활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소외되였던 유년기의 독특한 체험이 저의 문학적 자산이 되였고 그건 슬픈 일이지만 작가인 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어쩌면 오늘을 위하여 그 때 그런 슬픈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운아인 거지요. 아, 그 말이 생각나네요. 한국의 문학평론가인 황송문선생은 저의 소설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슬픈 이야기를 쓰는데 아름답다.” 저는 이 평을 좋아합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문학을 하는 리유는 슬픔을 쓰기 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데 있기 때문이니까요.     김: 단편소설 은 “격정이 충만된 필치로 한 거룩한 어머니의 형상을 부각하면서 추호의 리기심도 없이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모성애를 구가”한 작품이며 소설에서 우주의 자궁은 녀성성을 상징하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단편소설 〈녀자는 여섯살에 다 크는가?〉는 선생님의 소설묘미를 충분히 보여주는 수작으로서 35세의 가정주부인 ‘나’와 여섯살의 ‘나’, ‘강 건너에서 온 녀자’와 ‘나’의 어머니가 겪는 불안과 두려움, 자신의 자궁을 잃어버린 억울함과 분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삶의 어두움을  “이름도 시간도 뛰여넘는 어떤 성스러움”으로 밝히려고 한 작품입니다. 소설은 “녀성성 탐구라는 측면에서 〈우주의 자궁〉의 자매편으로 읽혀지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죠. 그리고 단편소설 는 조선족사회에서 자아의식이 각성되여가는 녀성형상과 무너져 내리는 남성중심주의 현실을 잘 그려낸 소설로서 페미니즘적인 주제성향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예술적 표현의 여러 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소설은 고중조선어문교과서에 수록되기까지 했어요.    김관웅교수님은 “허련순이 추구하는 녀성문학은 단순한 성차별주의, 부권주의, 남성우월주의의 일반화된 설명을 넘어서서 성의 불균형과 불등성不等性이 어떻게 조성되며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념두에 두고 있다.”고 하셨어요. 페미니즘적 주제경향을 갖고 있는 우리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대표성을 띠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런 소설들이 작가 허련순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궁금하네요.    허: 제가 녀성성에 특별히 천착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추구했던 녀성성은 김관웅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한 성차별주의나 부권주의나 남성우월주의에서 철저히 벗어나고저 함이였죠. 녀성이 어떻게 녀성으로서 온전히 자신의 본질적 자아와 존재적 자아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답하고저 했던 것이 저의 소설입니다. 세속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녀성은 녀성이 아니라고 보기도 하죠. 녀성 스스로도 아이를 낳지 못하면 녀성으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라 자책하기도 하구요. 제가 추구하는 녀성성은 생육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에서 보여준 어머니 형상은 아이를 낳지 못한 녀성이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헌신적으로 키우는 것을 통하여 생리적인 엄마 이상의 녀성의 형상을 만들어내려 했고 〈녀자는 여섯살에 다 크는가?〉는 자궁을 잃은 한 녀성이 여섯살의 어린 아이의 의식으로 돌아간 어머니의 엄마로 되는 것으로서 녀성성의 상실감을 극복하고 영원한 의미의 녀성성을 새로 찾는 데에 가치를 둔 소설이예요. 문학성의 의미는 인간 자체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것에서 가능한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 지금까지의 소설창작에서 선생님이 중단편소설을 통해 주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녀성문제를 다루었다면 장편소설을 통해서는 디아스포라의 시각으로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깊은 사고를 담아내면서 민족문제에 작가적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조선족 엘리트들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사색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선생님은 소설을 통해 디아스포라로서의 조선족 정체성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어요.     1989년, 조선족작가로서는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한 선생님은 그로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해마다 한두차례 한국을 방문하였으며 이를 통해 조선족이 겪고 있는 중국 공민으로서의 국민 정체성과 조선민족으로서의 민족정체성 사이에서의 갈등 즉 이중정체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깊이 고민하게 되였고 그것을 주제로 소설의 굵은 축을 이루면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게 됩니다.    허: 작가의 개성이란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창작방법론이며 작가 특유의 발견이고 기법이죠. 90년대 초에 들어오면서 제가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한국을 알게 되면서예요. 정체성이란 인격동일성을 말합니다. 통일된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체성 찾기가 필요하지 않겠죠. 정체성이 파괴되였거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만 필요한 것이며 또한 필수적인 것이예요. 통일된 신분이나 인격에 대한 갈망은 거의 본능적인 욕구이기 때문이죠.     중국의 조선족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중국의 합법적인 공민으로 살아오는 속에 중국인의 락인을 찍어온 동시에, 무시로 할아버지 세대의 종족적인 기억을 일깨워주는 한국과 조선이라는 나라를 의식하게 되였죠. 저는 경계 지대에서 일찍 인과률이 어긋난 모순된 세계를 발견했던 것 같고 그것이 제가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에 집착하게 된 요인인 것 같아요. 그동안 억제되였던 혈연적인 기억이 활발해지면서 한국땅을 자주 오갔지만 오히려 그 곳에서 자신이 이방인인 것을 알아차렸어요. 이방인의 존재상실의 원죄를 걸머지고 태여난 존재라는 걸 치렬하게 경험한 거죠. 그것은 마치 녀자로 태여나서 가족에게 소외되였던 그런 설음과 비슷한 느낌이더군요. 결국 저의 태생의 조건은 녀자임과 동시에 이주민의 후예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게 된 거죠. 그 때로부터 저는 ‘녀자인 나는 누구인가’로 부터 ‘인간인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 질문으로 씌여진 것이 바로 첫 장편소설 《바람꽃》이예요.     김: 선생님의 장편소설중 《바람꽃》(1996),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2004), 《중국색시》(2014)를 일방에서는 3부 자매작이라고도 하는데요, 1996년에 시작하여 거의 10년 간격으로 출간되였죠. 그중 《바람꽃》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겪는 조선족의 아픔을 그리였으며 조선족 나아가 인간이 부딪친 다양한 정체성을 소설화하고 있습니다. 《바람꽃》이 조선족사회와 한국에서 동시에 반응이 좋았던 것은 이민의 력사를 안고 사는 조선족의 애환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닐가요?    허: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장편소설 《바람꽃》이 1996년 7월에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3,100권이 출간되여 몇달 사이에 완판된 후 그 해 12월에 한국 범우사에서 재판이 되였어요. 그 때 국내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면 저의 이름을 ‘바람꽃’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지어 작품 속의 주인공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기분이 그야말로 짜릿하더군요. 작품 속의 주인공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업되였어요. 소설에서 인물창조는 생명입니다. 인물이 전반 소설을 완성시키니깐요…    암튼 《바람꽃》은  흑룡강신문 신춘문예상에 이어 1999년도에 전국 제6회 소수민족문학 준마상을 받았지요. 한국에서는 KBS,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계레》,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 한국의 주요 신문에 전격 소개되기도 했어요. 그 때가 저의 첫번째 전성기였지 않았나 싶어요.     김관웅교수님은 “허련순작가는 디아스포라문학의 새로운 탐구로 중국조선족문단의 새로운 주제를 개척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고 미국 시카코대학 사회학 박사이며 한국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윤인진교수님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란 책에서 《바람꽃》을 코리안디아스포라를 설명하는 근거로 하였으며 선문대학교 국제 유엔학과 최우길교수님도 론문집 《중국조선족 연구》에서 《바람꽃》을 조선족문제를 연구하는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미 《바람꽃》에 대한 20여편이 넘는 론문들이 나왔어요.     김: 《바람꽃》의 인기는 지금도 진행형인 듯 싶네요.    그 후 선생님은 ‘코리안드림’을 안고 밀항선에 오른 밀항자들이 벌이는 생명을 넘나드는 사투를 그린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를 펼쳐내죠.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불행의식에 사로잡힌 조선민족, 여기저기 ‘집’을 찾지 못해 애처로운 날개짓만 하는 가여운 나비 같은 소수자의 슬픔을, 그들의 이야기들을 선생님은 밀항배에 담아냅니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바람꽃》의 주제적 성향의 계승과 승화로서 방황하는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루어낸 ‘력작’,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위기와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잘 그려낸 ‘교과서’라는 평을 받고 있어요. 두 소설에서 그린 ‘바람꽃’과 ‘밀항배’는 결핍으로 흔들리는 조선족사회의 ‘상징’에 다름 아니지요.    허: 그래요. 두 작품 모두 조선족의 삶과 그들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인 건 맞아요. 하지만 《바람꽃》이 막연한  뿌리 찾기였다면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해체되는 조선족사회의 현주소’라고 보면 됩니다.     2000년 초에 저는 기존의 문학의 가치나 질서에 큰 혼란을 겪으면서 그 해탈의 방법으로 한국 류학의 길을 선택했어요. 한국 광운대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과정을 수료하면서 세계적인 문학의 흐름 속에서의 내 문학의 길을 새롭게 모색해 나가기 시작했죠. 조선족문단은 리념에 함몰되였던 80년대의 문학의 해탈과 더불어 무거운 이데올로기 문제나 굵직한 사건중심의 작품에서 벗어나 90년대부터는 일상의 문제를 감각적인 문체를 통해 표현하는 쪽으로 돌아섰어요. 일상적인 소재와 감각적인 문체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것은 좋았는데 너무 사소한 일상에 치우침과 지나친 특별한 자아표현의 쏠림 현상에 회의가 들더군요. 한마디로 작품의 힘과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았죠. 그래서 한 개인의 특별한 자아의식보다 우리가 살아온 공동체 사회의 현실을 확인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바로 이 시기에 씌여졌어요. 소설은 《장백산》잡지에 련재한 다음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 한국에서 2차 출간, 중국작가협회 번역지원으로 작가출판사에서 중국어로 출간, 무려 5차례 출간했고 김학철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김: 영광입니다. 그만큼 매력 있는 소설임을 말해줍니다.   디아스포라의 삶에 깊은 관심과 주의를 돌리면서 조선족들의 피해의식을 많이 다루어왔던 선생님은 장편소설 《중국색시》를 통해서는 갈등구조를 넘어 소통을 통한 인간의 리해와 가치를 말하고 정체성 문제도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정체성 찾기 문학에서의 새로운 화두를 던져줍니다. 디아스포라의 치유와 소통의 꿈을 담은 《중국색시》는 소설주제의 새로운 승화를 이루면서 조선족 디아스포라문학에서의 또 하나의 새로운 리정표가 되였어요.    “이왕의 조선족의 실존적 의미를 조국이나 민족의 개념에 두었다면 지금은 그것을 탈피하여 개인의 의식을 통해 확립하고저 고심해야 할 것 같다… 좀더 범인류적인 사고로 시작해 인간 내면에 실재하는 욕망의 문제, 진솔한 삶의 문제로 조선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 인간의 정서에 대면시키고저 한다.”고 선생님은 말합니다.     허: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싶었던 거죠. 《중국색시》는 소통과 치유를 말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넘어서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소설입니다. ‘부모를 잡아먹을 아이’로 태여났다는 어두운 태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단이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한쪽 다리를 잃은 한국 남자 도균이의 외줄타기와 같은 아슬아슬한 ‘사랑’이야기를 통하여 정체성이 불투명한 단이라는 새로운 인물형상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의구심 해결에 끊임없이 천착하려 했으며 인간이란 결국 서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암시하여 무기력하기 그지 없는 개인의 자아는 결국 타인과의 소통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고저 했습니다. 고립되지 않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야만 자신을 넘어서는 진정한 자아찾기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게 하고 싶었고 《중국색시》를 통하여 저는 조선족만의 고립적인 디아스포라문학이 아니라 소통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디아스포라문학의 새 길을 열고 싶었어요.     《중국색시》는 2013년에 중국작가협회로부터 중점작품 창작지원을 받았으며 《연변문학》잡지에 련재된 후 선후로 연변인민출판사와 한국 새미출판사에서 출간되고 2016년도에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한송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세종도서’로 선정되였습니다.     김: 2004년 9월, 선생님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싸인회를 개최, 1시간에 400권을 파는 기록을 올리고 교보문고와 연풍문고의 베스트코너에 책이 진렬되는 호황을 누리였어요. 한국사이트 다움과 네이브에 들어가서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하면 선생님의 사진, 략력과 함께 한국에서 출간한 작품과 한국에서의 문학활동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오르는 자리에 버젓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선생님을 보며 자랑스러웠어요. 일찍 첫 한국방문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문학을 돌아보게 되고 한국을 통해 세계문학의 새로운 흐름에 눈을 뜨게 되며 진정한 문학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였죠. 그 후 쭉 이어온 한국 행은 ‘부단한 껍데기 벗기’이자 가장 적당한 창작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였고 서울 광운대학교 대학원에서의 늦깎이 문학공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키 크기’였으며 기를 쓰고 자신의 문학을 한국에 옮겨놓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 문학의 조선족지역 문학에서의 탈출을 꾀함이였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허: 네, 그렇습니다. “한 나무 밑에 사흘을 서있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한곳에 오래 머물러있으면 썩게 되여있어요. 작가로서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변하지 않는 것, 침체되는 것입니다. 문학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파괴하는 것으로만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장편소설 한편을 완성하면 한국으로 가군 했어요. 한 작품에 쏟아낸 에너지를 다시 채우기 위한 노력이죠.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 목적이 있는데 다름아닌 자신의 문학공간을 확장하려는 의도적인 행위였습니다. 2004년에 한국에서 싸인회를 했던 것도 바로 자신의 문학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일환이였어요. 90년대 초부터 저는 한국에 저의 작품을 알리는 일을 해왔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오히려 중국 문학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더 강렬합니다. 중국작가협회의 창작지원과 번역지원 그리고 출판지원까지 이루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한국에서 받는 대우보다 중국에서 받는 대우가 훨씬 좋아졌죠. 요즘 저의 과제는 한족 독자들에게 재밌게 읽혀지고 그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겁니다. 또 한차례 자신의 소설을 갱신해야 하는 리유가 생긴 거죠.    김: 항상 작가적 혜안으로 시대를 앞서가시는 선생님의 젊은 사유와 노력이 돋보입니다. 선생님 개인의 문학공간 확장은 결국 우리 문학의 공간확장이기도 하죠. 지금껏 조선족문학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써오신 허선생님께서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중국문단에 들어서서 조선족문학을 전 중국에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시리라 믿습니다.   한편, 문학이 언어의 예술인 만큼 작가는 언어의 대가가 되는 게 바람직한 일 아니겠어요. 선생님께서 한국을 다니는 또 하나의 리유가 “작가에게 고향이란 말 만큼 소중한 문학언어를 공부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선생님은 조선어와 한국어의 비교라는 제목으로 서로 다르게 쓰이는 말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부지런한 노력이 있어서일가요, 현실세계는 물론 인간의 내면세계까지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는 선생님의 소설언어는 그래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설 수 있었나 봐요.    허: 제가 1990년에 한국 《동아일보》에서 첫번째 소설집 《사내 많은 녀자》를 냈을 때 출판사에서 거의 백여곳에 주석을 달아 출간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언어를 알아보지 못하는 단어가 한책에서 백여개나 있다는 말이죠. 그 때 충격을 받았어요. 문화적 차이로 서로 다르게 쓰는 것도 있었지만 우리가 잘못 쓰는 어휘들도 상당히 많았어요. 독자를 사로잡는 데에 잘못 쓰는 언어는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어느 독자가 사전을 찾아가면서 소설을 읽겠어요.    한국 출판사들에서 조선족작가들의 책을 출간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언어문제라는 것을 안 뒤부터 저는 우리가 다르게 쓰는 언어와 잘못 쓰는 언어를 수집하게 되였는데 책 한권의 분량이 된 거죠. 덕분에 지금은 한국에서 책을 내도 주석을 달지 않습니다. (웃음)   김: 90년대 초반에 선생님은 다니고 있던 직장에 서슴없이 사직서를 내셨어요. 개혁개방의 물결 타고 ‘하해’의 바람이 몰아치던 시기, 사직의 리유가 ‘어이없게’도 ‘하해’가 아닌 글쓰기 때문이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죠. 보잘 것 없는 원고료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세계문학의 흐름에 합류하는 길을 걸어야겠다는 야망을 키우던 선생님은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첫걸음으로 그런 대담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일찍 문학에 모든 걸 다 걸었고 오로지 작가의 외길만을 걸으며 문학에 몽땅 투신해왔어요. 그런 작가정신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죠. “나의 삶은 바로 문학”이라는 선생님에게서 문학은 어떤 의미일가요?    허: 문학에 저의 전부를 건 것은 1989년부터입니다. 첫 한국방문을 통하여 자신의 문학 한계를 발견하고 자성을 했죠. 아, 나는 아직 작가도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치렬하게 했어요. 작가가 자신을 아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니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게 되더군요. 90년대 초에 제가 조선족사회에 갇히지 말고 조선족 사회를 넘어서는 작가가 되자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일부 사람들이 “가장 조선족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로 저를 반박하기도 했어요. 그 자체는 참 훌륭한 명제죠. 하지만 자칫 자기 함정에 빠질 수도 있어요. 즉 내 안에서 내 것만 옳다는 아집에 빠질 수 있죠. 남의 것을 알고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은 지혜지만 남의 것을 외면하고 자기 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집이지요. 우리가 조선족문학을 넘어서지 않으면 스스로 자기 우물에 갇히게 되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도태될 수 밖에 없어요. 저는 자신을 넘어서고 지역문학을 넘어서기 위한 첫걸음으로 직장에 사표를 냈던 거예요. 작가가 되기 위하여 밥줄이 되는 직장에 사표를 내는 것은 당시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창작에 도움이 안되는 모든 껍데기들을 벗어던지는 일이 저한테는 절실했어요. 당시 36살이였는데 늦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급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참 담대한 결단이였던 것 같아요. 그런 선택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달리게 하였으며 40년이 넘는 작가 생애에 선생님은 정말로 풍성한 성과를 이룩하셨지요. 장편소설 《바람꽃》(4판),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4판), 《뻐꾸기는 울어도》(4판), 《잃어버린 밤》, 《중국색시》(2판), 《춤추는 꼭두》(련재중), 소설집 《우주의 자궁》(2판), 《바람을 몰고 온 녀자》, 《유혹》, 《사내 많은 녀자》, 《그 남자의 동굴》, 인물평전 《사랑주의》(조, 한어 20여쇄) 출간. 단편소설 , 가 각기 초중, 고중 조선어문교과서에 선정. 10집 드라마 , 20집 드라마 , 장막극 , 등 수편 창작. , , 등 중단편소설이 중국어로 번역되여 《민족문학》과 《소설선간》에 실렸습니다. 그 중 《민족문학》에 발표된 소설로 《민족문학》 년도상을 련속 세번이나 받았어요. 그리고 제6회 전국소수민족문학 준마상, 길림성정부 소수민족문학상, 제1회 단군문학상 등 30여차례의 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력임. 중국작가협회 회원, 국가 1급 작가, 제11회 연변조선족자치주 정협위원… 이런 주렁진 문학성과와 화려한 경력 우에 “나는 소설을 쓸 때만이 비로소 숨을 쉬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원고지만 채우면서 열심히 살아오신 선생님 모습이 우렷이 떠오릅니다. 뚜렷한 인생목표를 갖고 작품을 벼낟가리 쌓듯 차곡차곡 쌓아올렸지만 그 길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한편 또 한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선생님은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민을 거듭했을 겁니다. 현재 선생님 앞에 놓인 문학에 대한 고민 들어볼 수 있을가요?    허: 고민이 참 많습니다. 모르고 글을 쓸 때는 편안했는데 지금은 알아서 불편한 것 같아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어떻게 새로와질 수 있을가, 어떻게 지난 것을 돌파할 것인가? 그것을 가장 치렬하게 고민해요. 문학의 생명은 돌파와 새로움에 있으니깐요.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 뿐만 아니라 인물, 형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새로워지려고 고민합니다. 아, 고민거리가 또 있어요.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얻어내고 싶은 게 또 다른 고민이기도 해요. 작품이 너무 대중성에만 기대면 품격이 떨어지고 작품성에만 기대면 독자를 잃게 되죠.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좋은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연길 신화서점에서 장편소설 《뻐꾸기는 울어도》 싸인회를 연 적 있는데 국내에서는 처음 가진 싸인회였지만 많은 독자들이 찾아주셨어요. 오전 두시간 반 만에 거의 800권을 팔았거든요. 싸인회라는 게 독자들과 직접 교감할 수 있는 자리여서 그들이 뭘 원하는지를 알게 되죠. 작가들이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드는 문화적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선코를 뗐으니 앞으로 많이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금년 1월부터는 또 장편소설 를 《연변문학》에 련재하고 있는데 어떤 소설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앞으로의 창작에서는 또 어떤 타산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허: 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며 이 시대 가장 힘 없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가난과 부서진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아프고 힘들어도 항상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바라볼줄 아는 슬프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꼭두’라는 이름은 상여 우에 세워놓은 인형인데 망자를 위로하여 무덤까지 동행하는 존재예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의로운 일을 한다는 의미의 상징이죠. 그 의미를 살리려고 주인공의 이름을 ‘꼭두’라고 지었어요.     한마디로 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고아들의 이야기예요. 버려졌지만 끊임없이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저 하는 아이들의 행위를 통하여 인간의 일상적인 신중함 속에 숨겨진 부조리와 삶에 감춰진 진실을 끈질기게 파고들면서 인간의 본능적인 근원에로의 회귀의식을 쓰고저 했어요.     앞으로의 타산에 대하여 물으셨는데 쓰기 전에 많이 말씀드릴 수는 없고 짧게 말씀드릴게요.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다루는 장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 네. 조선족문단에서 지금껏 취급하지 않은 제재여서 신선할것 같아요.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 기대합니다.   모처럼 만나 참으로 소중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문학에 굵은 력점 찍으며 멋지게, 빛나게 살아오신 선생님의 인생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게으름을 쫓아내고 좀더 열심히 살도록 채찍질 할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이여서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허: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애쓰셨어요! 아프지 말고 부디 건강하기를 기원할게요!   출처:2017 제4호
10    [창작후기] 삶과 죽음의 거멀못을 지르고싶어 댓글:  조회:230  추천:0  2019-07-15
허련순 삶과 죽음의 거멀못을 지르고싶어     잃어버린 구두 한짝이 과연 인생의 액막이가 될수 있을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험한 인생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푸래기라도 잡고싶은 심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것이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잃어버린 구두 한짝을 들고나와 설왕설래하고있는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시시하고 어이없는 사소함으로 거창한 인간의 삶의 속살을 톱질하고 싶었다. 차사고로 딸을 잃은 녀자가 화장터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는데 그 과정에 신발 한짝을 잃어버린다. 그 녀자의 언니는 잃어버린 신발을 액막이라고 잘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안해를 화장하고 나오던 남자가 그 신발을 줏는다. 소설은 구두 한짝을 잃어버린 녀자와 구두 한짝을 주은 남자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자식을 먼저 저세상에 보낸 엄마의 남은 인생은 자식의 무덤일수밖에 없다. 이미 자식의 무덤속에 갇혀 죽은 령혼인데도 아직 숨은 쉬고있어 집세를 마련해야 하고 숨을 쉬고있는 대가의 모든것을 마련해야 한다. 삶과 죽음의 모순이다. 녀자는 막부득이하게 구두 한짝으로 만났던 남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 행위 역시 가벼운 선택이지만 그에게는 살고죽는 문제였다. 남자가 녀자를 만난것도 구두 한짝때문이고 녀자가 남자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것도 결국 구두 한짝의 인연때문이다. 이러한 가벼운 인연과 가벼운 선택으로 녀자는 중대한 문제를 떠안게 된다. 녀자는 남자의 집에 찾아갔다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 첫 목격자가 되며 그의 자식들 앞에서 오해를 받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다… 처음에는 로인문제를 쓰고싶었다. 그런데 자칫 고리타분하고 식상한 소설이 될것 같아 고민하다가 알듯말듯한 미미한 인연이 저지른 남자와 녀자의 삶과 죽음을 말하는데에 이르렀다. 되도록이면 미미하면서도 엮일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싶었다. 그럴수록 나중에 일어나는 일들이 설명이 되지 않을테니깐. 그래야만 사소한 일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소중하게 여길수 있을테니깐. 우리가 숨쉬고 살고있음도 어쩌면 구두 한짝을 잃어버리는 일만큼 시시하고 어이없이 사라질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싶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람들의 작은 관심을 끌어내고싶었다. 그리하여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의심과 경계심으로 벽을 쌓고 사는 현대인들의 차가운 리기심을 자극하고싶었다. 나의 소설은 언제나 결핍이란 두려움속에서 시작되는것 같다. 부재에서 존재적의미를 찾고저 하는 노력은 존재하는것에 대한 나의 련민이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것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간절함이기도 하고 살아있는것이 죽음에까지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였던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존재하지 않는것에서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것이 이 소설의 지지대라고 볼수 있겠다. 잃어버린 구두 한짝이 허접한 액막이가 아닌 우리의 인생을 아우르는 거멀못의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9    [단편소설] 액막이 - 허련순 댓글:  조회:499  추천:0  2019-07-15
허련순   액막이       1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에 한 녀인이 가까스로 서있었다. 수시로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마치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가지 못해 안깐힘을 쓰는듯 보였다. 날아가거나 폭삭 주저앉거나 두가지중 하나일것 처럼 위태로워보인다. 그렇게 버티고있은 시간이 벌써 두시간째이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눈물인지 비물인지 분간할수 없다. 초점이 풀어진 그의 시선은 몇메터 앞의 아스팔트바닥에 향해있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파여있던 홈채기에  덧난 상처자국처럼 콜타르가 칠해져있다. 그우로 파죽지세로 쏟아지는 비물이 수시로 비누거품 같은 하얀 거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흩어지고 또다시 흩어지려고 다시 거품이 인다. 그것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속삭임 같았다. 당장 밖으로 불거져나올것 같은 녀인의 눈빛이 집요했다. 그것은 어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인간의 자동적인 반응이였을터다. “나영아, 엄마가 왔다!” 쉴새없이 되뇌이는 말은 입속에서 새여나가지 않은채 비속에서 처절하게 울었다. 석달전에 바로 이곳에서 고중생이였던 그녀의 딸이 차사고를 당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많이 내렸다. 그 이후로 녀자는 비가 오는 날이면 에누리없이 이곳에 찾아온다. 비속에서 혼자 떨고있을 딸의 령혼이 가여워서 따뜻한 집에 혼자 머무를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숨을 쉴수 있었다. 딸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해야 했는데 그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이곳에 이러고 서있는 일밖에 없었다. 딸과의 갑작스러운 사별은 끔찍한 상처가 되여 그녀를 온전히 살수도 없고 온전히 죽을수도 없는 무거운 형틀에 가둬버렸다. 그것은 가혹한 형벌이였다. 차라리 죽는것이 사는것보다 훨씬 편했을지도 모른다. 사고를 겪기전의 과거는 모두 무효가 되고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무엇인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죽음과 같은 절대 고독과 같은 고요와 멍함 속에서 그녀는 하루하루를 시체처럼 보내고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로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가면 모두 해결된다고… 하지만 그 말조차 상처가 되여 모진 아픔으로 돌아왔다. 누가 그리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어냈단 말인가? 자식을 잃었는데 시간이 약이라니, 어찌 시간이 지난다고 자식을 잊을수 있겠는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이상 시간이 갈수록 가슴은 썩어서 문드러질뿐이다. 자식을 잃어보지 못한 사람은 자식을 잃은 엄마를 함부로 위로해서는 안된다. 고통이요 슬픔이요 불행이요 하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 그들은 슬픔이 뭔지, 아픔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는 슬프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도 불행하다는 말도 입밖에 내지 못한다. 자식과 함께 이미 죽었는데 죽은 자가 어찌 감히 아프단 말을 할수 있겠는가. 비가 점차 뜸해졌다. 녀자는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다리를 더듬거리며 푸른 등이 켜져있는 인행도를 걸었다. 덜거덕거리는 무릎관절이 자기것인데도 제것이 아닌듯 제멋대로 움직인다. 인행도를 벗어나 극장앞을 꿰질러 우정국앞을 지나면서 녀자는 홀연 누군가 자기의 뒤를 따라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은 없다. 다만 헌책을 파는 란전앞에서 머리가 희슥희슥한 남자가  책을 뒤적거리다가 그녀를 보고 웃었다. 왜 웃지? 어디서 본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것도 같다. 엉겁결에 녀자도 상체를 앞으로 굽혀 목례를 하였다. 혹시 아는 사람일수도 있어 인사는 하고보자는 심사였다. 남자는 나이는 꽤 있는듯 하나 깨끗하게 나이 들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마도 하얀 얼굴피부와 하얀 손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처음 보는 사람이였다. 녀자는 그냥 가던 길을 가려고 발길을 틀었다. 그런데 남자가 그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저기요!” 그가 말을 걸어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터라 녀자는 눈심지를 크게 키운채 우두망찰 서있었다. 남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절 모르시겠어요?” 태도가 깍듯하고 친절했다. 녀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를 아세요?” “잘은 모르지만 한번 본적 있죠.” “무슨?” 녀자가 뒤로 물러서듯 주춤하면서 경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을 어디서 보았던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뇌의 회로가 끊긴듯 생각할수록 기억속이 하얗게 바래질뿐이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보았는지 저는 잘 생각나지 않는데요…” “아, 그래요? 그럴수도 있겠네요. 혹시 석달전에 화장터에 가신적 있죠?” “예…” 녀자가 뜨아한 눈빛으로 남자를 훑는다. “거기서 신발 한짝 잃어버렸죠?” 그 말에 녀자는 소스라쳤다. “예. 그때 제가 정신을 잃어버리는바람에… 그런데 그건 왜요?” “그 신발을 제가 주었습니다.” 남자의 표정에 반가움 같은것이 움찔 일어섰다. 비로소 임자를 찾았다는 희열이였을것이다. 하지만 녀자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아… 그랬군요.” 녀자가 몸을 작게 움츠렸다. 신발을 찾았다는것이 기쁨이라기보다 순식간에 괴기스러운 기운이 전신을 휩싸면서 섬찍하고 소름이 돋아 오스스했다. 그날 딸의 시신을 화장하고나서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한쪽발이 맨발이였다. “내 신!” 의식에서 깨여나자마자 그녀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자 친정언니가 대뜸 그랬었다. “지금 그까짓 신발이 없어진게 대수냐?” “그건 나영이가 사준건데…” “액막이를 했다 생각해라. 차라리 잘됐다.” “액막이요?…” 순간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였다. 액막이란 사후에 나쁜 기운을 방지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주술적행위를 말한다. 웬지 께름직하고 섬찍하다. “그 신발이 액땜을 했으니 너에게 다시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이다. 그건 이 언니가 보장한다.” 언니가 무슨 예언가이기라도 되는듯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했다. 위로라고 한 말이지만 그 말은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되였다. 나영이가 사준 선물이 사된 기운의 액막이라니 그 말이 오히려 나쁜 기운이 될가봐 두려웠다. 그리고 다시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것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가장 절실한것을 잃었고 살아야 하는 리유마저 없어졌는데 더 이상 나쁜 일이 뭐며 액땜을 해야 할 리유가 무엇이겠는가. 언니가 한 말을 기억에서 지우고싶었다. 그래서였던지 한동안 그녀는 잃어버린 신발에 대해 까맣게 잊고있었다. 신발을 주었다는 남자의 말에 녀자는 황당하고 당혹스러울뿐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화장터에서 주은 신발을 버리지 않고 석달가량이나 보관하고있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화장터에서는 그것이 신발이 아니라 돈다발이라도 선뜻 줏고싶지 않았을텐데 어찌 그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주었을가? 액막이라고 했던 언니의 말이 다시 떠오르면서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설령 그것이 액막이였다면 왜 다시 되돌아오려고 한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불길한 사건이라도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영이가 사고 난 날에도 아침에 숟가락을 세번이나 떨어뜨렸다. 사고가 난후에야 그것이 일종의 징조나 예감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은탓인지 몸이 오싹해나면서 자꾸 땅속으로 파고들것 같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어서 그 남자로부터 벗어나고싶었다. 녀자는 눈살을 찌프리면서 두팔을 들어보였다. “보시다싶이 제가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녀의 옷에서는 아직도 비물이 떨어지고있었다. 만류하기는 어려웠다. “그럼, 래일 이 시간에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 신발을 돌려주기 위해서라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버리세요.”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신발이 다시 액운을 가져올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기다리겠습니다.” 남자가 일방적인 약속을 하고있었다. 신발외에도 다른 할말이 있는듯 보였다.  녀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발끝만 보면서 걸었다. 다리에 기운이 없는지 수시로 휘청거렸다. 그것이 안스러운지 남자가 녀자의 뒤를 따라 몇걸음 걸었다. 발자국소리를 의식한듯 녀자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도 걸음을 멈추고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당신이 뭔데 그런 눈으로 나를 봐? 웬지 녀자는 몸속에서 분노가 요동을 치는것을 느꼈다. 요즘은 가끔 그랬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리유 없이 화가 나고 울음을 터뜨리고싶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딸을 잃은 트라우마가 측두엽을 훼손시켜 분노회로를 각성시켰기때문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은 주제에 추근거리는 꼴이라니! 욕이라도 퍼붓고싶었다. 하지만 삶의 모든것이 덧없고 귀찮았다. 숨을 쉬고있는것조차 싫은데 누구와 시비 걸고 말을 섞는다는 자체가 군더더기 같다.   녀자는 애써 울음을 안으로 삼키면서 돌아섰다.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석달 내내 울었는데도 계속 울수 있는 눈물이 남아있다는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눈물마저 없다면 나영이한테 얼마나 미안할가? 온몸의 살과 뼈와 장기들을 모두 녹여 눈물로 만들어 다 털어내고나서 거미처럼 빈껍데기만 남을 때 그때면 딸을 만나러 가게 되겠지. 요즘은 꿈속에서 자주 나영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살아있을 때와 똑같다. 너무 같아서 가끔씩 아이가 살아서 돌아온걸로 착각하고 대답을 하면서 벌떡 일어나군 한다. 하지만 모든것은 허상일뿐이였다.     2     사고는 예감처럼 온다고 하지만 일상처럼 평범하게 온다. 그래서 그것을 미리 알기는 어렵다. 숟가락이나 저가락을 떨어뜨렸다거나 그래서 사고가 오는것은 아니다. 사고는 우연하게 일어나는것이고 미리 정해진것은 없다. 그날 나영이는 오전 공부를 마치고 밥 먹으러 집으로 오면서 그녀한테 전화를 하였다. 비가 와서 춥고 배가 고프니깐 뜨끈뜨끈한 된장찌개가 먹고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두부를 넣는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리고 나영이는 5분도 못되여 차사고를 당했다. 5분전까지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가 먹고싶었다. 그리고 춥고 배가 고팠다… 나영이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함께 농촌에서 살다가 고중시험에서 높은 성적으로 연변고중에 합격되여 도시에 들어와 살게 되였다. 농촌태생이여서 그런지 시래기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나  호박이나 두부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각별히 좋아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당연히 그 두가지를 꼽는다. 왜 그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없었겠는가. 그 또래들이 다 좋아하는 떢복이, 라면볶이, 어묵꼬치, 우동을 나영이도 좋아한다. 하지만 엄마가 파출부로 일한 돈으로 겨우 공부하는것만 해도 벅차다는것을 알기에 길거리에서 절대 군것질을 하지 않았다. 돈을 아낄려고 학교에서 주는 급식도 사먹지 않고 점심에도 집에 와서 먹었다. 그날도 점심 먹으러 오던 길이였다. 나영이의 전화를 받고 그녀는 슈퍼에 가서 두부 한모와 호박 한개를 샀다. 그리고 오는길에 어물가게앞에서 동태 한마리를 살가말가 한참이나 망설였다. 그 시간에 나영이는 사고를 당하고 사경을 헤매고있었다. 다른 예감은 느끼지 못했다. 있었다면 류달리 그 시간에 동태를 사고싶었을뿐이다. 평소에는 생활비를 아끼느라고 어물전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는데 그날은 유난히 그랬다. 그녀는 동태를 깨끗하게 씻어서 토막을 내여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정성들여 거품을 거둬내고 호박과 두부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풋고추 한개를 썰어넣었다. 아이가 집에 들어설 시간에 찌개가 완성되여 가스불을 껐다. 그런데 올 시간이 지나도 나영이가 오지 않았다. 아빠트 층계를 오르는 소리만 나도 귀를 기울이고 나영이겠지 했지만 발자국은 모두 웃층으로 올라갈뿐이다. 예정시간보다 벌써 한시간이나 넘었다. 그동안에 십분에 한번씩 가스불을 켰다껐다하면서 동태찌개를 덥혔다. 그러다가 나영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련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도시생활 2년만에 처음 끓인 동태찌개다. 그런데 나영이는 먹지 못했다. 그래서 동태찌개는 그녀에게 더욱 아픈 이름이 되였다. 한달이 넘도록 그녀는 동태가 들어간 찌개를 버리지 못했다. 매일마다 가스불을 올려 덥히고 또 덥혔다. 물이 잦아들면 또 새 물을 부어 다시 끓였다. 이제 그녀에게 된장찌개는 끓이기만 하고 먹을수 없는 음식이 되였다. 동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생활은 농촌생활과는 판판 달랐다. 배추이파리 하나 감자 반쪽이라도 모두 돈을 주어야 구할수 있었다. 지어 물도 돈을 주고 사야 하니 물조차 마음대로 먹을수 없었다. 파출부 일을 하여 번 돈으로는 아빠트값과 학자금을 내고나면 생활비가 늘 빠듯했다. 할수없이 맛있는 반찬은 생각지도 못하고 끼니마다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자주 끓였다. 그래도 나영이는 불만없이 잘 먹었다. 친구들이 왜 학교급식이 맛있는데 집으로 다니느냐 하면 난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아니면 밥을 못 먹거든 하고 말하군 하였다. 그 아이의 당당함에 다른 애들은 나영이가 가난해서 집으로 밥 먹으러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석달째 파출부 일을 그만두었다. 누구를 위하여 돈을 벌어야 하는가?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짬만 있으면 잠만 잤다. 자는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그저 방치되여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잠만 자다보니 흰머리 남자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요즘은 기억력도 깜빡깜빡한다. 멍한 고요속에서 슬픔만 있을뿐 다른 어떤 의식도 들어서지 않았다.  먹고싶지도 않았지만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도 않다. 그러다 비소리만 들리면 정신이 번쩍 들어 딸의 사고현장으로 달려가군 했다. 비가 오는 날이 그나마 그에게는 가장 살아있는 날이였다… 남자가 기다린다고 약속했던 그날부터 사흘후, 또 비가 내렸다. 그녀는 우산도 비옷도 쓰지 않은채 딸을 만나러 갔다. 맨몸으로 비를 맞아야 추위에 떠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비가 짧게 끝나서 한시간도 채 안되여 그녀는 집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우정국 앞마당에 있는 낡은 책 란전앞을 지나다 그녀는 하얀 머리 남자를 보았다. 그는 어물전에서 성한 고등어를 고르듯 헌책을 이리저리 번지고있었다. 하얀 손이 병약해보인다. 그는 들었던 책 몇페지를 펼치다가 이내 내려놓고 또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몇페지 번지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책을 고르기 위한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러고있는 사람 같았다. 그를 보는 순간 남자가 했던 약속이 탄력 있는 고무공처럼 튕겨올랐다. 일부러 그런것은 아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것이 마음에 켕기였다. 그냥 모르는척 지나가기가 머쓱하여 잠간 주춤거리는데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기다리고있었던 모양이였다. “아, 드디여 오셨군요.” “지난번에는 미안해요. 제가 약속을 까먹어서…” “까먹었군요. 일부러 그런것이 아니여서 다행입니다. 오늘은 무조건 나올것 같아서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어떻게 나올줄 알고…” “비가 오니깐요. 비가 오는 날이면 나오잖아요.” “아, 아셨군요.” “예. 많이는 몰라도 적지 않게 알고있습니다.” “무슨 할 말씀이 있으신지…” 녀자는 뒤말을 흐렸다. 남자는 우선 조용한데 가서 말하자면서 우정국 길건너 맞은편 2층에 있는 카페로 그녀를 안내하였다. 남자가 따뜻한 커피 두잔을 주문하고 녀자의 맞은켠에 앉았다. 그는 가방을 열더니 하얀 종이에 싼 신발 한짝을 꺼내서 신중하게 그녀의 앞으로 밀었다. “이 신발을 돌려드릴려고 여러번 이곳에 나왔는데 오늘에야 돌려드리게 되였네요.” 굽이 낮은 하얀 구두였다. 구두에는  하트모양의 은색 장신구가 달려있었다. 그것이 마치 딸인듯 녀자는 두손으로 신발을 끌어안더니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영아…” 나영이가 죽기 며칠전에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준 구두다. 신발에 달린 장신구가 네모진것도 있고 타원형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나영은 하트모양이 있는 구두를 골랐다. 그리고 두손을 머리우로 모아 하트모양을 만들면서 엄마 사랑해! 영원히! 하며 활짝 웃었다. 그날에는 미처 몰랐다. 매일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밥먹듯 했으니 그저 그런 날의 련속이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영원히란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맺힌다. 그렇게 빨리 가려고 그런 말을 한것은 아니였는지 목이 멘다. 그녀는 신발을 품에 보듬었다가 다시 쓰다듬고 쓰다듬다가는 다시 보듬었다. 딸의 체취를 느끼려고 모지름을 쓰는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는 신발을 만지면서 눈물은 났지만 속은 오히려 안정되였다. 허전하고 막연하여 떠돌았던 자신의 정신이 비로소 조용히 어딘가에 깃드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주우셨어요?” “아, 그날은 저도 슬픈 날이였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죠. 그곳에는 슬픈 사람만 가는 곳이니깐요.” “안해의 화장(火葬)을 끝내고 나오는데 앞에서 한 녀인이 마주 걸어오더군요. 곧 쓰러질듯 걸음이 위태로워보였어요. 저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었어요. 비틀거리면서 걸어오는 그녀가 어느쪽으로 올지 몰라서였죠. 그런데 녀자가 바로 저의 앞에까지 와서 폭 꼬꾸라지는거예요. 저는 엉겁결에 그 녀자를 부축했습니다. 녀자가 나의 품에 쓰러졌고 저는 두손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녀자는 왼편으로 고개를 꺾고 저에게 안겨있었는데 저는 그녀의 오른쪽 입가에 있는 작은 기미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남자는 목이 마르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를 마셨다. 입안의 커피가 목젖을 지나가는 소리가 아주 짧게 들렸고 잔을 탁자에 내려놓는 그의 손은 류달리  하얗다. 마치 오랜 병을 앓고있는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있는듯 손길이 담담했다. “저의 안해도 오른쪽 입술 웃쪽에 기미가 있었어요. 위치도 똑같아요. 안해를 보내고 정신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안해를 닮은 녀자를 보고 저는 일시 환각에 빠졌어요. 안해가 살아서 돌아온것은 아닌지… 그런 환각말입니다. 저의 팔에 기대여있는 그 무게마저 안해와 비슷했습니다. 부피가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안해를 안고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더군요. 그때 가족분들이 와서 나의 품에서 그 녀자를 받아서는 둘쳐업고 가버렸습니다. 그때 그 녀자가 이 신발을 떨어뜨렸구요. 제가 신발이 떨어졌다고 소리치는데도 누구도 듣지 못하고 그냥 가버리더군요.” “그냥 내버려둘수도 있잖아요? 왜 주었죠?” 남자가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도 처음에는 줏지 않았어요. 그대로 둔채 몇걸음 가다가 돌아서 보니 신발이 조문객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밟히고 채우는거예요. 그들도 자기 발길에 채우는 웬 신발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며 소스라치는데 아마 죽은 사람의 신발인줄 아는것 같았어요. 그것을 보면서 그냥 오지 못하겠더라구요.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그들에게 분노 같은게 치밀더라구요. 웬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안해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주었던것 같아요.” “참 따뜻한분이군요.” “그렇지도 않아요. 저의 안해와 비슷해서 그럴수 있었던것 같아요. 지금 보니 기미외에는 닮은데가 전혀 없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아이를 떠나보내고 길에서 가방을 메고다니는 녀자애들만 봐도 다 우리 나영이가 아닌가싶어서 숨이 멎는듯한 전률을 느끼군 했습니다.” “그리움이라는것은 아마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게 아닌가싶습니다. 그렇게  닮은 사람을 만나가면서 서서히 슬픔도 잊어가겠죠. 그렇게 살다가 우리도 언젠가는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멍에처럼 남기면서 죽겠죠. 그게 삶이고 인생이니깐요.” 남자는 슬퍼보였다. 하얀 손등의 푸른 혈관이 겁에 질린듯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는것을 녀자는 보았다. 죽음을 말하면서 그는 태연한척했지만 분명 두려워하는것처럼 보였다. 두려우면서도 그녀를 위로하기 위하여 애써 참는것 같았다. “아무리 애달파도 우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슬픔까지 떠안게 되였지만 그것도 살아있는 자의 짐이고 운명입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하여서라도 살아야죠. 죽었는데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기억해주는 이도 없으면 얼마나 가엾겠어요? 그러니 나영이는 죽었어도 어머니가 있어서 행복한 아이죠.” 남자의 말에 녀자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나영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한마디가 왜 그리 따뜻하고 가깝게 느껴지는지… 녀자는 비로소 살아야 하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그 말이 맞아! 나까지 없으면 우리 나영이의 죽음을 누가 슬퍼하겠는가? 내가 있어야 딸의 제사밥이라도 지어주지. 또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자식의 죽음을 슬퍼해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은 슬픈 일이지만 자식을 잃은 이 세상 어머니들에게는 그조차도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자식의 죽음에 해줄수 있는게 있다는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녀는 큰숨을 몰아쉬였다. 그동안 깊은 동굴속처럼 웅크렸던 가슴이 조금씩 열리고 그 삐죽이 열린 틈사이로 오렌지빛 같은 노랑빛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배에서 꼬르륵 꽈리 우비는 소리가 났다. 녀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시무룩이 웃었다.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도 배고프니깐 식사하러 갑시다.” 남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그래도 신세가 많은데 밥까지 얻어먹을수 없다며 녀자가 거절했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는 기어이 그녀를 식당으로 이끌었다. 녀자는 이 사람한테 자신이 점점 끌려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뻐할 일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어정쩡한 기분이였다. “랠 오전 9시에 헌책 란전앞에 다시 나와요. 제가 함께 갈데가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헤여지면서 남자가 또 다른 약속을 하였다. “그게 어딘데요?” “가보면 압니다.” 도대체 어디로 데리고 간다는것일가?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절하면 그 사람이 서운해할것 같았다. 무조건 따라가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드는것은 왜서인지, 그녀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믿다니…    3   이튿날 녀자는 약속한 시간에 헌책란전앞으로 나갔다. 남자가 먼저 나와있었다. 남자의 하얀 머리가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그는 파란 체크무늬가 있는 와이샤쯔에 계란색 바지를 입고있었다. 여전히 나이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칠십대초반은 되지 않았을가싶었다. 그녀는 까만 원피스를 입고있었다. 딸을 보낸 뒤로 밝은 색의 옷을 통 입은 일이 없었다. 남자가 자신이 너무 밝게 입은것이 어색한듯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제 나이가 얼마나 되여보입니까?” “년세가 있는것 같긴 한데 그만큼  들어보이지는 않습니다.” 남자가 소리를 내여 크게 웃었다. “나이는 있어보이는데 그만큼 들어보이지 않는다. 참 말씀을 재미있게 합니다. 그럼, 그쪽의 나이를 제가 맞추어보겠습니다. 사십대이지요?” 녀자가 눈을 크게 뜨며 두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오십이 넘었습니다.” “그러세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참 동안이시군요.” 녀자는 웬지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죽고싶었고 그래서 살고싶지 않았는데 겨우 젊어보인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기가 막혀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눈앞에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좋은 기운을 가지고있는 사람인것은 틀림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있으면 화선지에 고운 물감이 번지듯 함께 젖어드는 느낌이 든다. 좋은 사람인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지, 그렇게 하는 리유가 도대체 무엇때문인지, 단지 죽은 자기 마누라와 기미가 같은 녀자라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고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는다. 남자를 따라간 곳은 “체험실”이라고 쓴 건물이였다. 2층으로 통하는 좁은 통로에 사람들이 빼곡이 줄을 서있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뭐하는덴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요?” “그러게요. 별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이리 많이 모였을가요?” 남자가 줄을 선 사람들의 옆으로 간신히 비집고 층계를 오르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찾아볼 사람이 있어서 그러니 자리 좀 비켜주십시오.” 사람들이 벽쪽으로 붙어서면서 그들에게 자리를 내여주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해빛에 타버린 지렁이 같은 주름살이 곰실곰실하고 검버섯이 참나무에서 돋아나는 목이버섯처럼 피여있었다. 그나마 허리라도 굽지 않은 사람이 한두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허리가 구십도 각도로 굽어있었다. 거기다 중풍후유증으로 팔이 불편하거나 다리가 불편하여 나무지팽이에 겨우 의지하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기도 불편할 분들이 이 좁은 층계에서 줄을 서야 하는 리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2층에 올라가니 큰 강당이 있었는데 그안에는 밖에서 줄을 서고있는 로인들과 비슷한 년배의 늙은이들이 꽉 차있어 발을 옮겨디딜 자리조차 없었다. 온 도시의 로인들은 모두 여기에 모인듯 했다. 벽 사면에는 온통 약광고 포스터로 도배되여있었다. 죄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에도 좋고 중풍이나 뇌출혈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한다고 씌여있었다. 그 나이대의 로인들에게는 진단 없이도 누구나 먹어도 좋을 약이였다. 그 약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계란 5개씩 공짜로 주고있었는데 로인들은 그 공짜 계란을 타가기 위하여 이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있었다. 결국 약을 팔기 위하여 계란 5개씩 공짜로 주는것이다. 방송국이나 언론에 비싼 광고비를 내기보다 광고비가 직접 소비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가게 하는 새로운 광고전략이라고 업주가 말했다. 사람이 많아 그들 둘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채 문어구에 잠간 서있다가 도로 층계를 내려왔다. “살만큼 사신 분들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러시는걸가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것 같아 추해보이네요.” 녀자가 개탄을 했다. “그렇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자주 보니깐 차츰 달리 보이더라구요.” “어떻게요?” “삶이란 끝까지 노력하는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녀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리해하고싶지는 않았다. 새파란 나이에도 죽음을 당하는데 저 나이에 저러고싶을가? 그저 렴치없고 주책을 부리는것처럼 보일뿐이다. 적어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분들은 아닐것이다. 자식을 앞세우고도 오래 살려고 악을 쓰는 부모는 없을테니깐. 그러고보니 그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였다. 부러웠다.   그녀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남자가 이 상황을 리해시키려는듯 길게 설명을 하였다.   “체험실이라는게 말입니다. 모두 로인네들이 다니는 곳이지요. 주로 약을 팔거나 의료기계들을 파는데 그것을 팔기 위하여 로인네들에게 일정한 공짜 써비스를 제공하죠. 오늘은 계란이지만 어떤 날은 휴지를 주고 어떤 날에는 가루비누를 주고 어떤 날에는 죽염(竹盐)을 주고 어떤 날에는 치약을 주기도 한답니다. 공짜를 좋아하는 로인들의 심리를 리용한것이죠. 어떤 로인네들은 저 공짜를 받기 위해서 먹지도 않는 약을 사 재이기도 한답니다. 한심하죠?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공짜 한개라도 챙기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줄을 서고있는 저분들은 적어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분들이죠. 살아있다는것은 언제나 경의롭지요. 죽으면 끝이니깐요. 그래서 저분들이 존경스러워요.” 남자의 말은 언제나 끝에 가서 꼭  살아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마도 최근에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삶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있는듯 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말에 녀자도 깊이 공감되였다. 계란 다섯알이나 휴지 한통이라도 공짜로 얻겠다고 매일 저렇게 해볕에 줄을 설수 있다는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나영이를 보더라도 죽으니깐 끝이다.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남자가 말하는 존경심일것이다. 두 사람은 아무말도 없이 걸었다.  금방 들어갔던 건물에서 백메터도 되지 않는 곳에 또 다른 체험실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약을 팔지 않고 각종 의료기구들을 갖추어놓고 고객들에게 써비스를 제공하고있었다. 그곳의 고객들도 그쪽과 다를바가 없이 전부 로인들이였다. 하얀 위생복을 입은 젊은 녀자가 로인들의 혈압을 체크하거나 손가락의 피를 뽑아 당장에서 혈당을 체크해주고있었고 애된 남자가 로인들에게 “이얼싼쓰(一、二、三、四)”를 부르면서 손벽을 치고 목을 돌리고 어깨를 치는 로인체조를 가르치고있었는데 대부분 로인들이 팔이 우로 쑥쑥 올라가지 못해 엉거주춤하고 어눌한 동작이나마 진지하게 따라하고있었다. 이렇게 한동안 공짜로 써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효과를 보게 해놓고 다음 절차는 의료기구들을 파는것이였다. 업체 사장의 말로는 처음에는 이 장사가 잘됐는데 요즘에는 로인들도 약아빠져서 공짜로 써비스만 받고는 의료기구는 잘 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들을 고기밥만 떼여먹고 가는 “늙은 고기”들이라고 지칭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먼저 들렸던 체험실에서 십여명의 할머니들이 한손에 약봉지를 들고 한손에 계란을 들고 줄을 쳐서 나오더니 마치 강으로 향하는 오리들처럼 허리를 구부정하고 두팔을 뒤로 내저으면서 헤염을 치듯 차도를 건너가고있었다. 오가던 차들이 급정거를 하면서 빵빵 경적을 울렸지만 이들 “늙은 오리”들의 행렬은 당황하지 않고 도도하게 차사이를 요리조리 빠져서는 건너편의 다른 건물안으로 들어가고있었다.   “저분들은 어디로 저리 급히 가시는거죠?” “또 다른 체험실로 가는거지요. 하루에 세곳 아니면 네곳은 보통이랍니다.” “그렇게 많이요?” “많긴요. 하루에 일고여덟곳에 가는 사람도 있답니다. 이들은 아예 체험실에 상주하는거지요.” 세상에 이런 일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녀는 웃어버렸다. 한심했다. “그렇게 웃으니 보기 참 좋군요. 오늘 어땠어요? 좋은 구경했죠?” “기가 막히면서도 리해가 가요. 하루라도 더 살고싶은 마음이야 로인이라고 다르겠어요. 저분들에 비하면 저는 너무 아무 생각도 없이 산것 같아요.” 남자가 박장대소를 하자 녀자가 얼굴을 붉혔다.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아닙니다. 너무 잘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제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에 도달했으니 말입니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이런 곳에 데리고 와서 스스로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것을 깨닫게 하고싶었던것이다. 녀자는 자기안의 우울함이 조금씩 옅어지는것 같았다. 남자는 헤여질 때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말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여기로 전화해요.” 녀자는 전화번호를 받아서 빽에다 넣었다.    4   집에 돌아와 아직 옷도 벗지 않았는데 아빠트 주인이 찾아왔다. 주인은 그녀가 세 들어있는 바로 아래층에서 살았다. 아마도 그녀가 돌아온 기척을 알고 따라 올라온 모양이다. “나영이 엄마, 집세가 밀린지 석달째인것은 알죠?” “아, 죄송해요. 제가 아이를 보내고 정신이 없어서 못 갚았는데 래일부터라도 당장 일자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오늘 볼라니깐 애인도 있는것 같던데 애인보고 집세 먼저 달라고 하지.” “애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 볼라니깐 체험실에서 나영이 엄마가 어떤 남자와 같이 온것을 봤소. 돈도 꽤 있어보이더만.” “아, 그분은 애인이 아니고 그냥 아는 분입니다.” “그냥 아는 분이랑 손도 잡겠소? 퍼그나 가까운 사이 같던데?” “절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이제 안지 하루밖에 안되는데…” “안지 하루밖에 안되는데 손을 잡고 다니요? 암튼 빨리 집세를 갚아줬으면 좋겠소. 사실 다른 집은 일년치를 한꺼번에 받는데 나는 나영이네 형편이 하도 딱해서 월세를 받는거 알잖소?” “알죠. 제가 신세 많이 지는걸 알고있어요.” “알면 월세는 제때에 내야지 이게 뭐요. 좋은 제 돈을 받으면서도 맨날 달라달라 사정해서 받으니 내가 성가시고 구차해서 못살겠소. 방법대서 이틀안에 밀린 돈 다 내고 다음달부터는 집을 비워주었으면 좋겠소.” 말을 마친 집주인이 그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끌신을 탈싹거리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돈을 어디 가서 빌린단 말인가? 언니가 생각났지만 그에게 돈이 없는것을 잘 안다. 언니의 돈 사정은 뻔하다. 한해농사를 지어 한해를 산다. 언니한테는 돈보다 된장이나 옥수수쌀 같은것을 달라고 하면 바로 가져다먹으라고 할것이다. 느닷없이 머리 흰 남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안될 소리다. 아직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빌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럴 때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것 같고 그래서 그런 내가 하찮게 느껴지고 어디 하나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진다. 맨날 죽고싶다고 하다가도 이럴 땐 왜 죽고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빽속에서 남자의 전화번호를 꺼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전화를 할 사람도 없다. 렴치불구하고 눈을 딱 감고 낯가죽이 두껍다는 소리를 듣거나 사기군이 아닐가는 의심을 받더라도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볼 심산이였다. 그래서 핸드폰 번호를 찍었다. 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그녀는 핸드폰을 접어 빽에 집어넣고는 집주인을 찾아 사정해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문벨을 울리자 곧 문이 열리며 주인녀자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녀가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본 사람처럼 와들짝  놀라는것이였다. 기분이 언짢았다.   “산 사람을 보고 왜 그렇게 놀래요?” “아… 금방 봤는데 또 이렇게 보니 갑작스러워서… 그런데 무슨 일이요.” 주인녀자가 말을 둘러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틀동안에 돈을 준비하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제발 한달만 시간을 주면 제가 밀린 빚을 다 드리고 그 다음달 무조건 집을 비우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어려웠지만 집세를 내지 않은적은 없지 않습니까? 한번만 사정을 봐주세요!” 주인녀자가 손을 휙 내젓더니 툭 털듯 말했다. “그래, 알았소. 그쪽 사정이 어려운걸 다 알면서 안된다고 하면 내가 나쁜 년이지.” 이렇게 쉽게 허락을 해줄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감사한 나머지 녀자는 한참 문밖에 서있었다. 그때 집안에서 주인녀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것은 아닌데 들어버렸다.    “그 녀자를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어요.” “왜?” 굵은 남자의 목소리로 보아 아마 주인녀자의 남편인듯 했다. “얼굴에 액운이 짝 깔린거예요.” “딸을 잃은지 얼마 안됐으니 당연히 그렇게 보였겠지. 액운은 무슨.” “정말이예요. 상가집에서 풍기는 그 서늘하고 섬찍한 기운이 확 끼쳤다니깐요. 그런데 더 기막힌것은 어떤 늙은이와 련애를 하는것 같았어요. 딸이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늙은 남자와 손을 잡고 다니고싶었을가요?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는다고 사람은 겉으로 보고는 아무도 몰라요…” 녀자는 더 이상 그곳에 서있을수 없었다. 더 심한 말을 들을게 뻔했다.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와 비슷한  말은 전에도 들었다. 이쁘기는 한데 표정이 너무 쓸쓸해서 액이 끼여있는것 같다고 했다. 결국 그 말이 그 말이 아니겠는가. 녀자는 집주인이 자식을 잡아먹은 녀자란 말을 하지 않은것으로도 감사했다. 그 말을 들을가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는데… 나영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모질고 사나운 운을 타고난 자기때문에 딸이 그렇게 된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면 아마 더 힘들었을것이다. 더 이상 앉아서 신세타령만 할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엄살이였다. 한달사이에 집세를 갚지 못하면 다음달부터는 집을 비워야 한다. 농촌에 갈수도 없다. 이미 집이고 땅이고 다 처분하여 나영이의 학비에 보탰다. 이 집을 나가면 당장 갈데가 없다. 그녀는 파출부 일을 시작하려고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등록을 해도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할수 없었다. 녀자는 빽에서 머리 흰 남자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꺼냈다.  그 사람한테 전화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할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경우가 말이 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녀자는 자신이 그 남자한테 의지하고싶다는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그에게 의지하여서 도대체 어쩌겠다는것인가. 그녀는 그 생각을 부정하고싶어서 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일만 시작하면 그를 다시 찾을 일은 절대 없을것이다…   결국 그녀는 헤여진지 한시간도 못되여 그 남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남자가 일자리가 있으니 당장 헌책 란전앞으로 오라고 했다. 아, 이제 살았다! 녀자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웬지 그는 모든것의 해결사인듯싶었다. 녀자가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남자도 마침 도착했다. 남자가 앞에서 걷고 녀자가 뒤에서 바짝 따라붙었다. 녀자가 무심코 물었다. “액운이라는것이 무엇입니까?” 금방 집주인한테서 들은 말이 마음에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액운이요? 그게 별게 아닙니다. 밥먹고 이 닦고 세수하고 물 마시고 해빛 보고 잠자고 하는 이 하찮은 일상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게 되여버리는것입니다. 왜 갑자기 그것을 묻습니까?” 남자가 뒤돌아보면서 물었다. “아니, 그냥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서요.” 녀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헌책 가게에서 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오백메터쯤 걸어가니 명성아빠트 대문이 나왔는데 남자는 그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고급아빠트여서 돈이 있는 사람들만 산다는 곳이다. 가정부나 파출부도 보통 고급아빠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고용한다.   그들은 엘레베터를 타고 11층에서 내렸다. 남자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고 녀자가 따라들어갔다. 집은 깨끗하고 정갈했지만 웬지 병원에서나 맡을수 있는 크레졸 냄새와 한약냄새가 골고루 났다. 남자는 그녀에게 오늘부터 이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해주면 되는데 식구가 한 사람이라 별로 일이 힘들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보수는 다른 집이랑 같이 주겠지만 석달치를 앞당겨주겠으니 밀린 집세를 먼저 갚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방을 쓰세요. 그렇게 하면 별도로 아빠트 세낼 필요는 없겠죠.” “혹시 집주인은 어떤 분이세요?” “저의 집입니다.” 녀자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저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일부러 이러는거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런게 아니라 저도 마침 일하는 분을 구하려고 하던 참이였습니다.” 남자의 마음은 진심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웬지 그와 묘하게 자꾸 엉키는것이 께름직했다. 집주인이 하던 말도 켕긴다. 체험실에 한번 같이 갔던 일로 애인으로 보는데 한집에 단둘이 함께 있으면 누가 집주인과 일하는 사이라고 보겠는가. 남자는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생각이 바뀌면 아무때든 들어와도 된다면서 집열쇠는 문앞에 있는 나무상자안에 있는 신발속에 넣어두겠다고 했다. 그는 절대 강요하지 않았고 매번 선택의 권리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의 의사에 따랐던것은 모두 그 자신의 선택이였다. 그가 무슨 체면술을 부리는것도 아닌데 그를 만나면 그의 말을 듣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가 하자는대로 하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제시하는 조건은 그녀에게 너무 좋은 조건이다. 어디 가서든 이런 조건으로 주인을 만나지 못할것이라는것을 잘 안다. 하지만 하면 안될것 같은 이 찜찜한 기분은 왜서일가? 그것은 불안함까지는 아니고 곧 화장실에 가야 할 때와 같은 초조함이나 불편함 같은 기분이다. 그녀는 집에 가서 생각하고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집을 나왔다.   5   남자와 단둘이서 한집에서 산다는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였다. 녀자는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다른 소개소 몇곳을 더 찾아보았다. 그런데 며칠 더 기다리라는 같은 대답만 되돌아왔다. 더 이상 기다리다간 일도 못하고 한달이 흘러갈판이다. 이제는 더 미룰것도 없이 흰머리 남자의 말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남이야 무엇이라 씹든 무슨 상관인가? 내 코가 석잔데… 그녀는 가방을 챙기고 남자한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남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 전화를 받지 못할 다른 상황이 있을수도 있겠다싶어 십여분 더 기다렸다가 다시 했다.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십여번 했는데도 먹통이다. 그녀는 무작정 가방을 들고 바삐 집을 나왔다. 곧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있었다. 비오기전의 안개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다행히 그녀가 남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녀자가 엘레베터에서 내려 다시 전화를 돌렸다. 여전히 받지 않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으니 집안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혹시 전화를 집에 놓고 어디를 간것일가? 그녀는 문벨을 울렸다. 그래도 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가?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는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어둠을 감싼 축축한 안개의 미립자들이 가슴을 질척거리며 달라붙는다. 불길한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였다. 그녀는 금방 태엽을 준 인형처럼 빠르게 복도 한쪽 구석에 있는 나무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안에 있는 낡은 구두안을 더듬었더니 열쇠가 손에 닿았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는 손이 자꾸 떨렸다. 열쇠가 두번 허망 돌아가는듯싶더니 세번만에 딱 걸리며 문이 열렸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하수도 구멍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물고기내장 썩은 냄새 같기도 하였다. 녀자가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휭하니 가슴을 휘젓고 빠져나가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거실복판에 남자가 큰 대자로 엎드려있었다. 정체 모를 이상한 냄새는 바로 남자의 몸에서 나오고있었다. 그녀가 남자의 어깨를 흔들며 선생님! 선생님! 하고 련속 불렀다. 하지만 남자는 미동도 없다. 이미 숨이 멎은것 같았다. 너무 무섭고 당황하여 그녀는 도망치듯 그곳을 뛰쳐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것인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살인죄를 덮어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섭게 덮쳤다. 잘못한것이 없으니 두려울것은 없지만 그런 시선이 무섭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냥 이대로 도망가고싶었다. 그래서 엘레베터의 단추를 눌렀는데 누르자마자 문이 열렸다. 타고 가면 모든것은 끝난다. 그런데 그녀는 결국 타지 못했다. 자기한테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준 남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고싶었다. 그 도리라는것이 바로 도망가지 않고 현장을 지키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녀자는 “120”에 련락을 하고 구조대원들이 올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5분도 안되여 구조대원들이 도착했고 그중 한 사람이 현장검사에 대한 소견을 말했다. “이미 사망되셨고 시체가 부패된 상황으로 보아 적어도 삼일은 되는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분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아… 저는 가정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왜 이제야 신고를 하신겁니까?” “사실 오늘 처음으로 일하러 왔는데 들어와보니 이분이 여기에 이러고있었습니다.” “그럼, 문은 어떻게 여신겁니까?” “열쇠는 바깥에 숨겨놓은데가 있어서 열고 들어왔습니다.” “오늘 처음 왔다면서 열쇠가 거기 있다는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며칠전에 일을 맡을 때 알려주셔서 알고있었습니다.” “사망한 분 가족분들에게 련락을 하세요.” “저는 가족분들을 모릅니다.” “대체 아는게 뭡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버럭 짜증을 냈다. 녀자는 기분이 상했다. 사실대로 말했는데 그들이 믿지 않는것 같았다. 그때 와르르 소리를 내며 비가 쏟아졌다. 녀자는 나영이 사고현장으로 가고싶어 그 사람들에게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런데 첫 목격자이니 집사람들이 올 때까지 있는게 좋겠다고 하였다. 녀자는 태엽이 떨어진 시계바늘처럼 선자리에서 바르르 떨었다. 몹시 불안정해보였다. 그때 구조대원중 다른 한 사람이 책상우에서 가족의 전화번호가 적힌 노트를 찾았다며 전화를 하더니 딸이 바로 올것이라고 말했다. 그들도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시체를 옮길수 없었다. 가까운 어딘가에 있었던지 십분도 안되여 젊은 녀자와 남자가 도착했다. 딸과 사위라고 하였다. 녀자가 문어구에서 가방을 들면서 가족이 왔으니 이제 가겠다고 집을 나왔다. 그러자 금방 도착한 딸이 물었다. “누구세요?” “이 집에서 일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녀자 말에 딸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버지한테서 일하는 사람을 쓰겠단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오늘 처음 왔어요.” “오늘 언제요?” “금방, 아버님이 쓰러진후에요.” “왜요? 왜 하필 쓰러진 다음 와요? 그게 말이 돼요? 오늘 처음이라면서요? 그럼 집에는 어떻게 들어오구요. 우리 아버지는 언제부터 안거예요?” 딸은 련주포를 쏘듯 한꺼번에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녀자는 갈피를 잡지 못한채 멍청하니 쳐다보고있을뿐이다. 어떻게 말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것이며 그런 그들을 녀자는 설득할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스스로도 자신이 왜 여기 와있는지 설명하기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 진실이라는 자체가 충분치 않고 의문투성이여서 설명하려고 해도 온전히 설명할수 있는 근거가 없어보였다. 그저 구차한 설명을 지루하게 해야 하는데 그 설명을 다 듣고도 그들은 믿지 않을것이며 오히려 의심만 증폭시킬것이다. 그녀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가 아흐레만에 사라진 남자의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녀자는 그에 대하여 아는것이 너무 없었다. 심적으로는 알지만 물증으로 안다고 내세울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모르는가 하면 모르지도 않고 아는가 하면 제대로 알지도 못한 그 남자의 죽음을 어정쩡하게 목격하게 되였고 그 리유로 지금 곤난한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그제야 녀자는 그가 자기 죽음의 첫 목격자를 찾느라고 그리 열심히 쫓아다니지 않았나싶었다. 믿고싶지 않겠지만 결국 그런 꼴이 나고말았다. “저는 고인의 딸이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현장에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는것이 너무 의심스러워요.  철저히 조사해주세요.” 구조대원들중 가장 나이가 들어보이는 사람이 심장약병을 들어보이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자세한 조사를 하면 다 나오겠지만 평소에 심장약을 드신걸로 보아 심장병 발작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싶습니다.” “아버지가 심장병이 있긴 했지만 갑자기 돌아가실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저 녀자가 의심스러워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제가 살인이라도 했단 말이예요? 제가 왜요? 왜 제가 살인을 한단 말이예요?” “그거야 본인이 더 잘 알거 아니예요. 언제부터 우리 아버지를 알고 지냈어요?” “열흘도 안됐어요.” “그럼 열흘전에 아버지께서 아빠트를 파셨다는 사실도 알겠군요.” “몰라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정말 모르는지 증명해보여요!” “어떻게 증명하라는거예요.” “그 손에 들고있는 가방을 열어보시지요.” 녀자가 가방을 뒤로 감추면서 거세게 항의하였다. “왜 남의 가방을 열어보려는겁니까?” “그속에 혹시 아버지의 돈을 감추지는 않았는지 해서 말입니다. 떳떳하면 당당하게 열어보이시지 왜 감춥니까?” 그 말에 녀자는 비칠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것일가? 안그래도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인데 왜들 이리 괴롭히는것인가? 남자의 딸은 기어이 녀자의 가방을 열고 그대로 휘딱 뒤집었다. 배를 가른 짐승의 배에서 내장이 흘러나오듯 녀자의 가방속에서 잡동사니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화장품과 속옷들 그리고 여름옷 몇벌이 전부다. 값이 나갈만한 물건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속에서 유독 하얀 구두 한짝이 유표하게 눈에 띠웠다. 왜 구두 한짝이 가방속에서 나왔는지 그들이 알리 없다. 남자의 딸이 기어이 하얀 구두를 들고 빈정거렸다. “웬 구두 한짝? 신은 한짝만 신고 다니는가?” 녀자가 달려들어 그의 손에서 구두를 빼앗아낸다. “줘요! 그것은 우리 딸이 저한테 사준 선물이요.” “선물인데 왜 한짝뿐인가?” “한짝은… 한짝은…” 녀자가 못할 짓이라도 저지른듯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홱 젖히며 큰소리로 말했다. 잘못한것도 없는데 주눅 들 필요가 없었다. “한짝은 우리 딸의 령혼을 달래기 위하여 태웠소. 그 한짝은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에 화장터에서 내가 잃어버렸는데 당신의 아버지가 주어다가 나한테 주었거든. 그래서 그 신발을 볼 때마다 주어다준 당신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려고 보관하였는데 당신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 구두 한짝도 보관할 필요가 없게 되였네요. 이제 이 구두를 어떻게 할까요? 자식이라는게 아버지가 홀로 돌아가서 시체가 부패될 때까지 모르고있다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해준 목격자에게 고맙게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도적놈 취급을 하는 당신의 죄를 받게 해달라고 제물로 태울까요?!” 그 말에 녀자는 들고있던 신발을 홱던지고는 두손을 탁탁 털었다.   “그 신발을 가지고 어서 이 집에서 나가요! 당장!” 녀자는 가방에서 쏟아져나온 물건들을 챙기지 않은채 구두 한짝만 가방에 넣고 휭하니 그 집을 나왔다. “이 물건들을 가지고 가요!” 집안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지만 녀자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녀자는  엘레베터도 리용하지 않고 비상층계를 따라 내려왔다. 밖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있었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울먹이며 지나간다. 서럽다. 어떻게 하다 일이 이 지경으로 꼬인것일가? 불쌍한 사람! 죽을 때 혼자 죽는것이 두려웠을거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원했을거고… 만약 내가 시간을 끌지 않고 처음부터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있어주었더라면 그래도 그가 죽었을가? 호흡곤난이 올 때 약을 챙겨주었더라면 고비를 넘겼을것이다. 결국 그는 곁에 사람이 없어서 혼자 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죽음의 첫 목격자가 되였다. 그 무거운 기억을 어찌할가? 비속에서 녀자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나영이의 사고현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조용히 비가 끊고있었다. 안개비 같은 이슬만이 촉촉히 그녀의 머리와 옷에 내려앉는다. 녀자는 가방에서 구두 한짝을 꺼냈다. 그리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나영아, 이 구두는 니가 사준것인데 지난번 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잊어버렸었어. 그랬는데 어떤 마음씨 착한 아저씨가 이 구두를 주어서 석달이나 집에 보관하고있다가 나한테 돌려주었어. 그런데 그 아저씨가 오늘 갑자기 돌아가셨거든. 생각해보니 이 신발은 나와 같이 있은 시간보다 그 아저씨와 같이 있은 시간이 더 길더라. 그 아저씨가 가는길에 외롭지 않도록 이 신발을 보내드리려고 한다. 엄마가 그래도 되지? 만일, 만일에 말이다. 저세상에서 그 아저씨를 만나거든 엄마가 마지막을 지켜드렸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고맙다고 전해줘! 그분은 엄마가 가장 슬프고 외로울 때 살아야 하는 리유를 알게 한 분이야. 그런데 살았을 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거든. 나영아, 비가 오는 날 다시 올게… 녀자는 다리에 질척거리는 어둠을 걷어차며 처벅처벅 인행도를 건넜다. 극장앞을 지나 우정국앞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이미 헌책 란전은 거둬들이고 리어카에 책들이 비닐로 동여진채 꽁꽁 묶여있었다. 그앞에서 서성거리던 사람이 떠나고나니 그녀는 마치 긴 꿈을 꾸고난것 같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던것은 꿈이고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진것이 원래의 모습인양 아무렇지 않게 시간은 어둠과 함께 자취도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여기 꽁꽁 묶어놓은 낡은 책갈피가 기억하고있을것이다. 그곳에서 두런두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움이라는것은 아마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게 아닌가싶습니다. 그렇게  닮은 사람을 만나가면서 서서히 슬픔도 잊어가겠죠. 그렇게 살다가 우리도 언젠가는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멍에처럼 남기면서 죽겠죠. 그게 삶이고 인생이니깐요…  
   허련순 아름다운 령혼으로 마주할 수 있는 빛   하필이면 그날은 ‘9·3’이였다. 일부러 그날을 택했던 것은 아니다. 명절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에게 다만 그날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나의 방문이 김영금 선생님한테는 썩 반갑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아플 땐 어떤 방문도 귀찮은 법이니깐.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맞아주셨다.    지난해부터 다섯번씩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다는 김선생은 후덕했던 옛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불면 날아갈듯 여위고 수척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단아하고 품위가 있었다. 집안 정리도 정갈했고 옷차림새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소박하고 단정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는 늘 그랬다.    몸이 불편하여 오래 앉아있지를 못하신다는 말씀에 나는 마음이 초조했다. 어차피 긴 대화는 무리였다. 쫓기는 사람처럼 나는 서둘렀고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산만하고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종 모르는 척하셨다. 요즘은 수면제가 아니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셨지만 사유가 분명하고 기억력도 짱짱하셔 당신이 취재하셨던 과학가들의 이름이나 나이 같은 것 그리고 과학상식에 대하여 거침없이 외웠다.    늘 그랬듯이 소가 여물을 새김질하듯 덤덤하면서도 느릿느릿한 그의 말투에는 세상을 달관한 듯한 무심함이 묻어있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남편의 이야기를 할 때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세 자식의 이야기를 할 때도 남의 이야기를 하듯 덤덤했다. 마치 슬픔이나 사랑이나 열정 모두를 덤덤함 속에 녹여내는 듯싶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울림의 파장이나 감동이 더 짙게 우러나는지 모르겠다. 그에게서는 모든 삶을 살아낸 절제된 품위의 고귀함과 온화함, 그리고 정직함이 다분히 느껴졌다. 이미 인간으로 사는 일의 고통과 환희에 대해 심오한 리해에 도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1987년에 출간한 첫 소설집 《바다가에서 만난 녀인》을 비롯하여 올해에 출간한 수필집 《흘러간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다》에 이르기까지 모두어 24권의 작품집을 냈다고 말씀했다.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랬다. 언제 이리 많은 책을 쓰신 것일가? 글을 많이 쓰신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24권이나 출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동안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자기만의 일에만 몰두해온 게 분명하다.    그의 서재 속에 정연하게 렬을 짓고 있는 24권의 책을 손가락으로 헤다가 책갈피 속에서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 그의 80년의 인생이 느껴져 아련했다.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그야말로 한 삶을 오롯이 글 쓰는데만 받쳐온 셈이다. 그를 수없이 보아왔지만 수없이 지나쳤던 시간들이 너무 아쉽고 후회되였다.    선생님은 평생 각별히 누군가에 더 깃들거나 다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더 미워하거나 랭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글을 쓰는 일을 소명으로 삶았을 뿐이다. 그가 진정 원한 것은 오롯이 글 쓰는 삶이였다. 생각하고 읽고 쓸 수 있는 단순한 삶 말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무심한 편이다. 타인의 말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신경 쓸수록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자꾸만 감겨들게 된다고 하셨다. 남들이 하는 뒤담에 대해서도 “성공한 사람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 이라고 심드렁하게 일축했다. 자신에게 속해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손쉽게 휘둘리지 않는 확고함에서 그의 강인함과 평온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뱀이 욱실거리고 가끔씩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깊은 산골인 훈춘시 오도구촌에서 태여난 그는 류달리 작고 여윈데다 머리까지 노래서 어린 시절 ‘노랑머리’로 불리웠다. 그녀는 낮잠을 쉬고 있는 할아버지의 상투에서 동곳을 빼내다가 돼지우리 앞에서 땅을 뚜지면서 놀았던 개구쟁이 소녀였고 상투가 흐트러진 할아버지가 비자루를 거꾸로 들고 야단을 치자 돌을 뿌리듯 동곳을 홱 팽개치고 꽁무니를 뺐던 철부지 소녀였다. ‘어릴 적부터 길쌈을 삼고 베실을 비비고 도꾸마로 솜실을 뽑거나 식구들의 양말을 떴던’ 부지런하고 근면한 소녀였고 ‘피낟밥과 강냉이떡, 베치마 미투리 따위를 먹고 입었던’ 가난한 소녀였다. 중학교에 붙었던 첫날 아는 친구가 없어 남들의 눈을 피해 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피해있었던 숫기 없고 부끄러움 많은 소녀였으며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늘 뒤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던 겸손한 어른이였다.    그랬던 소녀와 중년은 세월 속에서 사라지고 정작 우리 앞에는 운신이 어려운 80의 늙은이가 만신창이 된 육신을 거느리고 돌아왔다. 조석으로 마주 바라보며 함께 살았던 남편을 작년에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는 죽음에 대하여 더 가깝게 다가옴을 느낀다 했다. 있을 때 남편한테 잘해주라고 나한테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있을 땐 몰랐는데 그 빈자리가 너무 쓸쓸하다”는 말에는 먼저 보낸 남편에 대한 회한이 가득해보였다. 누군들 그 길을 가지 않겠는가. 다만 먼저 가고 후에 가는 것뿐인데 후에 가는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슬픔마저 짊어지고 가야 하니 더 슬픈 법이다.    한평생 직업녀성인 채 남편의 안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그 어느 한가지도 내려놓지 못하고 그 모두를 운명처럼 혼자 짊어지고 그것들의 무게와 속울음을 각혈을 하듯 치렬하게 글로 토해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아 다시 책속에 부지런히 주어담아왔던 분이다. 그는 30여년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만큼의 기사와 문학작품을 써왔다.  기자생활을 접고 퇴직한 뒤에는 여느 작가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조선족 과학자들을 찾아나서는 일을 시작했다. 출장비와 출판비, 숙박비는 모두 자비를 털었다. 전국 10여개의 성을 돌아다니면서 쏟아부은 돈에 대해서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단다. 오히려 충분히 행복하고 보람이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집안생활이 유족했던 것은 아니다. 자식 셋을 석사, 박사생으로 공부시키면서 생활은 늘 빠듯했다. 경비를 아끼려고 그는 열시간 스무시간씩 지어 서른시간씩 렬차를 타고 뻐스를 갈아타기를 반복했으며 한번의 취재를 마치고도 미타하면 두번 세번을 찾아가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전화를 하고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그 어려운 첨단기술과 과학명사 그리고 수자들을 정확히 밝혀냈다.    1993년 그는 전국 소수민족 소년아동 신문잡지회의에 참석했다가 대형 차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들이 탄 소형뻐스가 벽돌을 실은 대형트럭과 충돌하여 당장에서 5명이 즉사하고 합석한 모든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뻐스 안에서 밖으로 6메터나 튕겨나간 그는 오른쪽 얼굴 연골과 코뼈가 부러지고 팔다리뼈도 부러져 온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팔다리도 움직이지 못한 채 두달간이나 낯선 신강의 병원에서 죽은 사람처럼 지냈다. 그러다 점차 얼굴의 상처도 나아지고 팔다리도 움직일 수 있어 보행기를 밀고 화장실도 갈 수 있게 되였을 때 연길로 돌아왔는데 채 낫지 않는 몸으로 또다시 과학자들에 대한 취재를 위해 북경으로 떠났고 딸의 부축을 받으며 과학자들을 찾아다녔다.   10년 동안 그는 70여명의 조선족 과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사적을 책으로 써내 조선족과학자들의 새 력사를 기록해놓았다. 그의 살신성인 정신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이루어질 수도 없는 력사다. 하나의 새 력사를 만드는데는 누군가의 희생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는 자신을 그 희생자로 자처한 것이다.    김선생의 어느 수필에서 본 “그 시대 우리들은 모두 영웅이였다”는 말에 사무치게 공감한다. 어느 홍수피해지역에 취재를 갔다가 그는 갑작스러운 급성맹장으로 병원으로 호송된 적이 있다. 맹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였고 그는 수술실로 직행했다. 곧 수술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는 수술전에 기사를 써내야 이튿날 신문지면을 채울 수 있다며 수술실에서 병원 호사 용지에 원고를 썼다. 그러다 보니 수술이 반시간이나 지체되였다.    그는 시종 자신의 뿌리로부터 타자와 교감하기 위한 속깊은 글을 써왔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수필집 《훈춘―내 고향, 내 이야기》만 보더라도 지극히 부분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그 안에 전체적이고 공적이며 거시적인 구조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어 압도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20세기 조선족 민족사나 정신사적 차원을 이루어낸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작가는 시종 존재의 진정한 근원과 실질적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던 것 같다. 고향을 찾아가 그가 던진 한마디 “그때의 내 동무들은 모두 어디서 살가?”란 질문은 치명적이다. 한방에 독자들의 가슴을 멍멍하게 만들기에 족했다. 이는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질문에 다름없다. 이 질문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거듭 다채롭게 되물어진다. 존재의 뿌리로 내려가려는 작가의 의도된 서사적 전략이 아닐가 싶다.    “그들은 누구인가?”가 아닌 “그들은 어디로 갔을가?”란 질문은 인간존재의 궁극적인 귀속에 대한 질문인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가?”에 맞물린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숙연해지게 한다. 글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화려하지도 않으며 손쉬운 세속의 양식에 기대지도 않는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삼촌, 아버지, 어머니, 고모, 이모, 동생, 조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의 삶을 돌이키게 하는 우리들의 아픈 이름들이고 버릴 수도 자를 수도 없는 우리들의 뿌리이며 속살이며 가지들이다. 그래서 그의 글이 우리에게 더 사무치고 아프고 그립고 애틋한 것이리라.    한때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세상의 어딘가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들에게, 어딘가에 고독하게 유페되여 있거나 닳아지고 소멸되고 상실되여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단순한 아쉬움이나 그리움 때문이였을가? 단지 그뿐만이라 말하기에는 무거움이 너무 록록치 않다. 아마도 인간 존재로서 영원히 질문하고 답해야 하는 인간 일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그의 따뜻함이 타인의 가슴에 스며들어 공감을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미학에 성공했다고 본다. 그의 글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절제되여있다. 스스로 작품 속에 갇히거나 밀착하지 않고 한발 빼고 바라보는 덤덤한 시각과 까다롭지 않고 편안하게 읽히는 언어와 서사체가 오히려 심연을 울리는 충만함과 떨림을 주는 저력을 확보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그의 과제가 무엇일가?    나에게 커피를 타준다며 돌아선 그의 뒤모습을 보면서 나는 궁금했다. 마지막 수필집을 내고서 큰 딸이 “이제, 이게 마지막이다.”고 그의 절필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글 쓰는 사유가 멈춰지질 않아 불편한 몸을 움직여 생각나는 대로 짬짬이 필기장에 메모한다면서 그는 나에게 세개의 노트를 한데 묶은 하늘색 뚜껑의 필기장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난 뒤의 감정을 적은 것이였다.    〈유언〉, 〈그가 떠난 뒤의 고독〉 등 자극적인 표제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유서〉라는 제목의 무게가 너무 커서 감히 책장을 열어보지 못했다. 선생님께는 당신이 한평생 글에서 써온 고향의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했다. 그래서 감히 보여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다만 세권의 노트에 깨알같이 빼곡이 적혀있는 저 감성만으로도 책 몇권은 더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식들로부터 글 쓰는 작업을 제지당한 상태라는데 그의 마음을 꼬드기고 싶지 않았다.    아, 하마트면 잊을 번했다. 선생님에게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또 있었다. 바로 그의 자식농사이다. 큰아들은 고급경제사로서 림업관리국 장백산 삼림집단공사 부총재이고 큰딸은 천진시 사회과학원 일본 연구소 연구원이고 법학박사였다. 작은딸은 북경대학 지구물리석사를 나오고 장학금으로 독일에서 자연과학 박사를 취득한 뒤 함부르크 대학해양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어쩌면 이리도 탐스럽고 풍요롭게 자식농사를 잘 지었는지, 그 뿌듯함만으로도 선생님은 로년이 그다지 외롭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그와 함께 있은 시간은 무중력의 무한대 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한 혜성처럼 자유롭고 평온했다. 우리 문단에 김선생님과 같은 분이 계시는 것은 후배작가들인 우리들에게도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의 저택을 나왔다.   
7    [단편]그녀 몸속의 고양이 열마리(2~4) 댓글:  조회:1094  추천:42  2009-02-17
  2     새벽이다.     오래된 마루바닥이 달그닥거리는 소리에 녀인은 깨여났다. 창호지가 허옇게  밝아오고있었다. 뭔가? 도적…고양인가 하려다가 녀인은 달싹거리던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에게 고양이란 단어는 부끄러움의 대명사였고 치욕의 멍예였다. 마루에서 달그닥 거리던 소리가  살그머니 정주칸 쪽으로 옮겨오고 있었다. 온순이였다. 유리창으로 흘러들어오는  새벽빛으로 보였다. 이년이 또 어디가서 밤을 새고 온 걸가…요즘들어 부쩍 밤 츨입이 잦았다. 새벽 이슬에 젖은 그녀의 몸에는  누런 황토가 게 발라져있고 웃옷 소매 혼솔기가 터져서 멀건 살이 들어나 보였다. 온몸에서는 지릿하고 알싸한 냄새가 진동했다. 녀인은 가만히 지켜보기로 하였다.온순이는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먼저 바지를 벗어 던지고 다음은 브라우스를 벗었다. 그리고 브라자와 팬티까지 벗어버리고 나서 알몸이 되자 손거울로 배꼽을 비추어보면서 히죽이 웃고있었다.  배꼽이 유난히 돌기되여 있었다 온순이는 어릴때부터 배꼽을 가지고 잘 놀았다. 지금도 그 버릇이 고쳐지지 않아서 잠잘땐 거기에 손을 얹어야 잠이 잘 온다고 했다. 그냥 버릇일테지만 녀인은 유난히 배꼽에 집착하는 이 아이를 볼때면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꼽은 엄마한테서 생명을 이어받은 흔적이다.  분명히 사람의 유전자로 태여났을 온순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기억하고 싶었을가. 아마 그래서 배꼽에 특별히 집착하는것일게다. 녀인은 그렇게 믿고싶었다. 사람은 몸속의 유전자로 생명을 이어간다. 온순이를 낳고나서 녀인은 자기 몸속의 유전자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유전자가 틀림 없다면 어떻게 고양이를 닮은 아이를 낳을수가 있겠는가. 과학적인 검증을 하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녀인이 우려하는것이 있었다.  어릴때 먹었던 고양이 열마리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자신의  유전자를 가로지르고  그녀 이후의 생명을 연장해준게 아닐가, 전혀 황당무계한 상상이라고만 할수없다.     민간에는  임신할때 오리고기나 돼지 발쪽을 먹지 말라는 속설이 있다. 오리고기를 먹으면 오리발을 닮은 아기가 태여나고 돼지 족발을 먹으면 돼지족발을 닮은 아기가 태여난다는것이다. 이런것들이 어느만큼의 과학적인 근거와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임신부들이 임신때 오리고기나 돼지 발쪽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임신때 고양이 고기를 먹어도 아기가 고양이를 닮을 수있지 않는가.  닮지 않는 다는 보장은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녀인의 생각이였다.      배꼽위에 손을 얹고 온순이는 자고있었다. 허연 엉덩이 아래로 잘 빠진 다리가 란교를 하듯 비비 꼬여있었다. 무척이나 외설스런 포즈였다.녀인은 가슴이 화끈거렸다. 잘 숙성한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있는 온순이의  엉덩이에서 녀인은 눈을 떼지 못했다. 밤마다 어디론가 헤집고 다니다가 돌아오는 까닭이 바로 이 잘 발육된 몸의 욕망때문이란 말인가. 이 아이가 여자였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였다. 나이가 서른 살이면 시집가서 애기 엄마가 되고도  남을 나이이지만  녀인은 온순이를 아직 어린애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시키는 일은 다 하지만 셈은 세개 밖에 세지 못하는  아이였으므로 죽을때까지 보따리처럼 차고 있어야 할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녀인은 땅이 패이게 긴 한숨을 내 쉬였다.     온순이가 벗어놓은 옷을  세수대야에 주어 담다 말고 녀인은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이게 뭐야? 바지 호주머니를 털어내려고  손을 넣었다가 손에 닫는 꼼지락거리는 느낌에 기겁을 하고 손을 털어버린다. 바지 호주머니에서 나온것은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쥐 새끼들이였다. “온순아. 이게 뭐야?”목이 타들어가듯 바짝 마른 목소리다.온순이가 이불 깃을 젖히고 퉁명스럽게 말했다.“쥐도 몰라... ”“쥐가 왜 니 호주머니에 있냐 그 말이다. 이 년아.”“내가 잡았으니까.”“이년아, 네가 고양이냐?…”    그말을 하고나서 녀인은 혀를 찔린 표정으로 아차 했다. 그 순간에 자기 몸안에 있던  고양이 열마리가  동시에 출렁거리며 뛰쳐 나오는것 같았다. 그 말만은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늘 마음속에서 혀끝에서 맴돌던 말인데 그래도 자기 입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다짐을 하면서 살았던 녀인이다.      고양이 열마리와 함께 사라진 젊음에 대한 녀인의 그리움, 그것을 메울수 있는 다른 삶이 없었기 때문에 온순이의 출생은 녀인의 과거를 환기시키는 아픔의 련속일뿐이였다.    열여섯살때부터 녀인은 앓기 시작했다. 지겹도록 치열하게 아팠다. 몸에 열이 심할때는 덜덜 이를 맞쫗으면서 헛소리를 해대다가는 혼수상테에서 몇시간씩 의식을 놓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감기인줄로만 알고 감기약만 먹었는데 병이 났기는커녕 신다리 안쪽부분이 벌겋게 부어오르더니 차츰 그곳에서 고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안좋아서 큰 병원으로 갈수 없었던 아버지는 까만 고약을 사다가 나긋나긋할때까지 화로불에 녹여서는 그녀의 상처에 붙여주군 하였다. 상처에서 고약을 떼여낼때는 고름이 스돛물처럼 쏟아내려 방바닥을 적시군 하였다.  병은 좀 처럼 나을 념을 않고 점점 심해지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새벽 같이 길을 떠나시더니 저녁녘에 의원을 모시고왔다. 말이 의원이지 의사자격증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옛날에 골결핵으로 앓은적이 있는데 어느 병원에서도 치료를 못하는것을 자기 스스로 처방을 해서 병이 나은 뒤로 의원행세를 하는 사람이였다. 의사는 이병에는 고양이 고기가 좋다고 말해주었다.    떠날때  노란 종이에 싼 약 봉지 한보따리를 주면서 이것을 먹으면 병은 나을수있지만 대신 생육은 못한다고했다. 생육을 할수없어도 살아야 했기에 녀인은 매일 약을 먹었고 아버지가 끊여주는 고양이 고기도 먹었다.  그녀는 악을   쓰고 먹었다.  허연 두꺼비, 말린 두꺼비,  지렁이, 노래끼 닥치는대로 먹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부도덕도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한마리의 고양이를 죽일때마다 어머니는 맨발바람으로 아버지를 쫓아 나가면서 낮은 소리로 부탁하군 하였다.“고양이는 영악한 놈이라 죽이려다가 놓치믄 아무때건 찾아와서 꼭 보복을 한다는디 어떻게 하든 뺏기지 말고  잘 죽입소예. 알아들었습제에?”오랜 세월동안 어머니의 그 말은  영원히 착용해야 하는 부적처럼 녀인을 묻어다니면서 괴롭혔다. 녀인은 가끔씩 이미 씹어서 소화가 된  고양이 살점들이  짝집기를 하여서는 몸속에서 뛰여나와 자신의 목을 물어뜯는 환청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어린시절 녀인은 고양이를 주머니에 넣고 망치로 수도없이 내리쳤는데도 고양이가 죽지 않고 도망갔는데 도망갔던 고양이가 다시 찾아와서 주인의 목을 물어 뜯었다는 애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했던 할머니는 녀인의 아래집 수찬의 할머니였다. 수찬 할머니는 자기말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던지 아니면 좌중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였는지 고양이한테 목을 뜯긴 사람이 바로  자기네 친척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수찬 할머니는 고양이 한테 목을 뜯긴 다음의 결과에 대해서는 애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녀인은  고양이한테 목을 뜯기우면  사는지 죽는지가 궁금했다.“어떻긴. 죽었겠지뭐. 고양이한테 목을 뜯겼는디 살수 있남.”“할머니의 친척이라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요.?”“그러게 먼 친척이라잖여, 나두 직접 본게 아니구 냄의 입을 통해서 얻어 들은 소린디.”    녀인은 오래동안 아버지가 어떻게 고양이를 죽이는지를 알지 못하다가 우연하게 수찬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가만히 하는 말을 엿들고 알게 되였다.“고양일 때려 잡다간 노치면 큰일나는겨. 주머니에 넣어서 땅속에 묻으면 제일루 안전하다니깐 왜 말을 안듣는겨. 고집두 부릴걸 부려야제  무슨 변을 당할려구 ”     녀인은 그때부터 밤마다 고양이의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였다. 아버지의 망치에 맞은  고양이가 머리에 선지피를 철철 흘리면서  찾아와서  목을 물어뜯는   환각에서  헤여나올수가 없었다. 거의 밤마다 한번씩 헛소리를 질러 집식구들을 깨워 놓는 사단을 일으켰다.       그해 겨울이였다. 아버지는 한족 마을에 가서 회색 얼룩 고양이 한마리를 사왔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고양이가 크고 살이 쪄서 다른 고양이의 한배가 더 되는 값을 치르고 사왔다고 한다, 녀인은 물론 그동안 차에 치워 죽은 고양이도 먹었고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와 그 고양이가 낳은 새끼까지도 먹었지만 그 얼룩 고양이에 대한 기억은 유별했다.  아버지는 회색 얼룩 고양이를 사가지고 와서  평소보다 배는 더  되는 많은 말을 하였다.     “내 평생에 이렇게 큰 고양인 처음본다니깐. 고양이가 아니라 완전히 호랑이 새끼여. 이게 열번째니껴 이걸루 병이 뚝 떨어졌음 좋겠어야. 아모리 생각해도 기분이 묘해. 글쎄 이렇게 큰 놈 걸릴줄 누가 알았겠어. 운이 좋을라니깐 그런겨. 어떤날에는 하루종일 발이 부르트고 다리가 문들어지게 돌아 다녀도 고양이 꼬락지도 보지 못하는데 오늘은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놈을 만나뿌렸는기요. 요놈이 동네 석마칸 있는디서 어슬렁어슬렁 하는게 아니겠어라. 하도 욕심나서 냉큼 붙잡구 싶었지만서두 어떻게 냄의 물건을 주인하구 묻지두 않고 냉큼 잡는댜냐. 그래서 석마칸에 들어가서 주인 양반하구 물었어라.  그러자 그 주인 양반이 하는 말이 안 그래도 요놈이 늙으니깐 심술만 늘었는디 미운 짓만 골라가면서 하는지라 빨리 치워버릴려고 했다카는게 아니겠어, 우리 자가 이걸 먹구 이번에는 틀림없이 후딱 털고 일어날걸거니게 두고봄세 내말 틀리나. 허허.”    아버지는 수찬 할머니 말대로 고양이를  주머니에 넣고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그리고 발로 꽁꽁 밟았다. 이틀후 녀인의 앞마당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죽었을가 살았을가를 점치고있었다. 그 속에는 수찬 할머니도 끼여있었다. 그녀는 이틀씩이나 땅속에 묻어 두었는데 어찌 살아남을수 있냐고 쐐기를 박기도 하였다.“틀림 없다니깐, 안 죽었으믄 내 손 바닥에 장을 지지세.”    구경군들이 거들어주어서 고양이는 땅속에서 쉽게 파낼수 있었다. 오줌을 지린듯 주머니가 질벅하게 젖어있었다. 살았을때는 주머니가 꽉 차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후줄근하게 주머니가 비여보였다. 죽었네 죽었어. 역시 죽음에는 장수가 없네. 호랑이마냥 사납더니 죽으니 찍소리도 못하는구만….사람들은 발길질로 주머니를 툭툭 건드리며 중구난방 떠들었다.  “발길질 맙세. 죽은 개는 차지 않는다는디  황차 개도 아니구 고양이잖여.”    고양이가 가엾어서가 아니라 귀한 딸이 먹을 약이여서  부정 탈가봐 걱정이 되였던것이다. 그는 매듭진 노끈을 풀고 조심수럽게 주머니를  들어 거꾸로  쏟았다. 에미소의 사타구니에서 송아지가 떨어져 내리듯 주머니에서 고양이가 툭하고  언 땅에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니, 죽은듯이 나붓이 너부러져있던 고양이가 사뿐히 몸을 일으키더니 다른 사람이 아닌 수찬의 할머니의 다리사이를 꿰지르고 뒤울안으로 통하는 울타리를 뛰여 넘어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다들 손을 놓고 있는데 녀인의 아버지는 긴 장대기를 찾아 들고 바삐 고양이를 쫓아갔다. 그는  뒤울안에 쌓아둔  짚가리 사이를 마구 쑤셔댔다.    곁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저마다 장대기들을 찾아들고 짚가리 사이를 쑤셔댔다. 그렇게 한나절이나 쑤셨지만 고양이는 나오지 않았다.  짚단을 한단씩 옮기면서 샅샅이 뒤졌지만 고양이는 없었다.     죽이려다 놓친 고양이는 보복을 한다는데 이 재앙을 어떻게 하누….수찬 할머니는 쉴새없이 푸념을 하였다. 고양이가 정말로 재앙을 줄것인지, 그것은 누구도 알수없는 일이지만 고양이의  공포에서 벗어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 잠결에 녀인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환청인줄을 알았다. 그런데 녀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다 같이 들었단다. 얼마나 앙칼지게  우는지 무슨 저주를 퍼붓는것 같았다. 어머니가  도망갔던  고양이가 돌아온것이라고 말하였다. “저것이  정말로 보복할려고 온것 갑슈. 들어봐유, 저게 어디 우는겐가유, 저주지, 저주. ”    아버지의 안색이 졸지에 까맣게 질렸다. 고양이의 저주는 십리밖에서도 피할수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고양이 방정이란 말까지 떠돌겠는가. 도적을 잡기 위해 고양이를 잡아다 가마에다 찌면 고양이가 죽을때 도적도 따라서 죽는다고 하는 것인데 누가 그런 짓을 해 보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인간이 고양이에 대한 공포증은 거기서부터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고양이는 밤새 문을 허비며 앙탈을 부리다가 새벽녁에야 조용했다. 하지만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 가버린건지, 아님 문뒤에 숨어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있는건지, 알수없는 일이였기때문이다. 날이 밝자 그녀의 아버지가 손에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고양이가 밤새 물어뜯던 출입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이런, 출입문과 한발 떨어진곳에  회색고양이가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었다. 저놈이, 저놈이… .녀인의 아버지가 경기를 일으키듯 뒤로  넘어갔다.  “저놈이, 저놈이…여보 저놈이 살아있는게 아니라 죽었구만예. 얼어서 죽었구만예.”어머니의 비명에 가까운 환성이 숨가삐 터져나왔다.“그게 정말인겨, 어디 봄세.”    까맣게 죽었던 아버지의 얼굴이 상기되였다.    고양이는 정말 죽었다. 꽁꽁 얼어서 몸에서 달그락달그락 얼음 소리가 난다. 그런데 이상했다. 죽었는데도 부릅뜬 눈에  살아있는듯 파란빛을 뿜고있었다. 독기를 뿜는것같기도 하고 비웃고 경멸을 하는듯 하기도 했다.“잘됐구먼예. 요것이 절루 죽었으니껴 이제 복수는 몬하겠제예?”“죽으믄 다지. 복수는 뭔 얼어죽을  놈의 복수.”아버지는 넘어지면서 어딜 다쳤는지 안간힘을 써서야 겨우 일어났다. 그는  뜨거운 물을 대야에 붓고 언 고양이를 집어 넣었다.“처음부터 곰상스러웠음, 장밤 밖에서 얼지는 않았을거잖여. 이 미련한 놈.”    고양이가 녹자 그는  칼로 가죽을 벗겨내고 고기와 뼈를 토막 내고 물에 담구어 피를 빼고나서 솥에 넣었다. 솥에서 하얀 김이 피여 오르자 집안에는 온통 고양이 비린내로 가득했다.    열번째란 그 수자에 아버지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있었다.  “이것이 열번째여. 이번에는 틀림없이 나을거여. 이건 신이 내린 신약이거든. 안그라면 도망갔던 것이 다시 지발로 찾아와서 내 문앞에서 얼어죽었겄어?. “    하지만 녀인은 아버지가 주는 고기국그릇을 밀어버렸다. 죽으면서 부릅떴을 고양이 눈을 잊을 수 없었다.  “나 부릅뜬 고양이 눈이 생각나서 못 먹을것 같아요.”“죽은 놈이 눈을 떠 봤자지뭐. 사람배속에 들어가면 똥밖에 되지 못할 놈이 보복을 할겨 뭘할겨. 무서워 하지 말고 어여 먹어. 그놈이 보복을 한다캐도 벌은 내가 받을테니껴 걱정  붙들어매구 어여 먹어.”    막무가내로 아버지가 손을 붙잡고 입에 떠 넣어 주는 바람에 녀인은 사흘동안 회색 고양이 한마리를 고기는 물론  국물까지 다 먹어버렸다. 그런데 그 뒤, 마을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수찬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날 고양이한테 밀치여 얼음위에 넘어진 뒤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명을 달리하였다. 사람들은 수찬할머니가 고양이의 저주를 받아 화를 당한것이라고 수군거렸고  고양이를 열마리나 죽인 녀인의 아버지나 고양이 열마리를 먹은 녀인도 화를 면하기는 어려울것이라고 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고양이 저주를 면치 못한건지 수찬 할머니가 죽은 이듬해 그녀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날 아침 얼어죽은 고양이를 보고 놀라신 그 뒤로 하루에 둬번씩 경기를 일으키며 고생하시다가 결국 그병으로 돌아갔다.    녀인은 그뒤 다시는 고양이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에서 편안할수가 없었다. 얼어죽으면서 부릅떳던 고양이의 눈이 자기 몸속에서 죽어있는 고양이 아홉마리를 불러내여 몸밖으로 끌고나오는가 하면 열마리 고양이들이 자기 몸 안에서 서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뜯겨져 나간 자기들의 살점과 몸뚱아리를 찾아서 아우성을 치는것 같은 환각에 빠지군하였다. 그럴때마다 신열이 나면서 온몸이 비틀리는듯 아팠다.                                  3     온순이는  밤에는 나갔다가 새벽에 날이 밝으면 돌아오기를 거듭한다. 그리고는 한대낮에 길게 깊은 잠을 잔다.     그날, 녀인은 온순이의 뒤를 밟았다. 달빛이 내리비치는 소롯한 오솔길은 하얀 뱀처럼 풀숲에 누워있고 그 주위에는 풀벌레소리만 가득하다. 녀인은 긴치마가 자꾸만 신발에 밟혀서 한손으로 치마를 휘감으며 넘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면서 쫓아갔다. 고개를 하나 넘어서자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온순이가 풀숲으로 정신없이 내 달리고 있었다. 풀숲에서 요란스럽던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끊기고 나무의 새들이 프르륵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달려갔던 곳을 온순이는 다시 뛰여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서 또 뛰여 갔다. 그녀는 다시 고개 하나를 달음박질로 뛰여 넘었다. 겨우 따라서 넘어가 본 그 곳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달빛에 들어난 묘비는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 송장이 썩는 냄새일것 같은 어떤 냄새가 커튼이 끌리듯 걸음마다 쫓아다녔다.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망자들이 묻힌곳이라 독이 있었다. 아래 다리가 굳어져서 옮겨 디딜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얼 할려고 이곳까지 왔을가. 녀인은 오늘은 그 정체를 꼭 밝히리라 마음먹었다.  온순이는 아주 익숙하게 묘와 묘지 사이를 폴짝폴짝 뛰여 다녔다. 마치 늘 이곳에서 뛰여 놀았던듯이 그녀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만약 밤이 아니고 공동묘지가 아니였다면 그냥 풀습에서 메뚜기나 잠자리를 쫓아다니는 순진하고 활달한 시골 소녀로 아름답게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낮이 아니고 밤에 풀숲에서 뛰여 다니는 온순이 모습은 틀림없이 들판에서 쥐를 쫓아 다니는 고양이에 다르지 않았다. 온순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숲속에서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어디로 간걸가? 거무층층한 어둠속의 수림은 어디를 봐도 도깨비가 나올듯이 기괴하여 혼이 나갈것 같았다. 녀인은 더럭 겁이 났다. 여기까지 쫓아 온것이 후회스러웠다. 왔던 곳을 다시 돌아서 나가려는데 키를 넘는 풀숲이 칵 막힌다. 오도 가도 못하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할것 같다고 생각될 때 온순이가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는 딴 사람인듯 얌전하게  풀숲 사이를 빠져나와 곧추 소로길을 걸어 녀인의 앞으로 다가오고있었다.  녀인의 앞에까지 와서  잠간  걸음을 멈추고 다소곳이  녀인을 바라보았다. 눈이 파랗게 빛났다. “엄마가 다 봤어.”“다 봤어?”“그래. 그러니깐 거짓말 할 생각을 하지 말고 말해. 여기서 뭘 했는지.”“다 봤다면서?”    빈정대는듯한 말투까지다. 맞는 말이였다. 다 보았다면서 묻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시험하는 사람일것이였다.  이럴땐 녀인은 할말을 잃는다. 이 아이는 정말 고양이일가? 아니면 사람일가?  마치 오래된 시간 동안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형되여 온것같은 사람 같기도 하고 사람이 고양이로 변형되여 온것같은 고양이  같기도 한 이 아이는 도대체 무얼가. 고양이와 사람의 흔적을 은밀하게 함께 지녀야 할 운명을 가지고 태여났다면 이는 고양이 불행일가, 사람의 불행일가.    쥐 한마리가  오솔길을 가로지르고 풀숲으로 사라지자 온순이가 정신없이  쫓아간다. 그럴때는 말려도 소용이 없다. 그냥 스스로 나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는데 온순이가 풀숲에서 나왔다. 손에 뭔가 꼭 움켜지고 있었다.“손에게 뭐냐?”    그녀는 손바닥을 짝 펴 보이며 웃었다. 노래기 한마리가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온순이가 손가락으로 노래기를 건드리자 동그랗게 허리를 감으면서 고약한 노린내를 풍겼다. 노래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온순이를 바라보면서 녀인은  생각했다. 이 애의 몸안에 갇힌 영혼은 어떤 것일가. 사람들이 자기에게  보여주었던 불평등과 무관심과 적대감과 혐오를 얼마만큼이나 이해할수 있을가….                            4     그러던 어느날 온순이는 녀인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평소같지 않게 너무도 복잡하고 뜨거운 눈맞춤에 녀인은 속이 뜨끔했다.“뭔데?”“나, 애기 낳구 싶어.” 녀인의 얼굴이 죽은 나무 속같이 까맣게 질렸다. “네가 금방 뭐라고 그랬어?” “애기 낳겠다구…”“너 애기를 어떻게 낳는지 알어?”“알어.”“어떻게 낳는데?”“여기.”    온순이는 엉거주츰 일어서면서 급기야 옷섶을 헤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배꼽을 똑똑 뚜드렸다. 배꼽에서 아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녀인의 커다랗게 벌어진 눈길이 그만 온순이의 배에 얼어붙었다.  금새 튕겨 나올듯 돌기된 배꼽 주위로 활시위처럼 팽팽해진  배살이 동그랗게 솟아 있었다. “너…?.”    녀인은 할말을 잃었다. 수많은 총알이 동시에 관통되였을때처럼  머리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것 같았고 구멍마다 바람이 새듯 위잉 소리가 났다. 온순이가 임신을 했다. 언제 어디서 이런일이 있었을가? 그렇다면 온순이에게 남자가 있다는 소린데 그게 누굴가?너무 화가 나서 녀인은 온순이의 잔등을 마구 때렸다. “말해. 그게 느구야? ““왜 때려?”“누구야? 널 이렇게 만든게 도대체 어떤 놈이냐?”“몰라”     녀인은 손을 놓고 풀숲에 주저 앉았다. 이 아이한테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가. 사랑은 아닐테고 고작 누가 장난질을 쳤을것이다. 그 장난질에 태여날 아이에 대해 녀인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남자라는 족속들에 대해 오늘 만큼 미워진적이 없다.     녀인에게 남자는 회색 고양이에 대한 기억만큼 역겨운  존재였으며 살아오는 동안 팰생의 힘을 다해서  버릴려고 끝없이 발버둥을 쳤지만 버려지지 않은 기억이다.    삼십년 전, 녀인은 지금의 온순이 나이였다. 서른이 되도록 지병으로 구둘장 신세만 지다보니 누구도 데려가려는 남자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녀인은 생각하고있었다. 누가 아픈 사람 데려다 고생하려고 하겠는가. 자기는 영락없이  처녀귀신이 되고 말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창 바쁜 농망기라 어머니는  밭일을 나가고  녀인이 혼자 방에 누워있었다. 모시천 같은 햇살이 방바닥에서  노닥거리거고  있었다. 그때 열려진 방문앞에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뒷짐을 쥐고 빙긋이 웃고있었다.“누군데요?” “날 몰라요. 나는 그 쪽을 아는데.”.“어떻게 알아요?”“어디 맞춰봐요.”    남자는 신비하게 웃었다. 누굴가? 녀인이 알아보지 못하자 남자가 말했다. 뒷집 박씨네 친척인데 아이적에 앞 개울에서 같이 미역을 감은 일도 있다고 하였다. 생각이 났다. 많이 변하기는 했어도 녀인은 그를 알아볼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사단이 되였다. 녀인을 사랑한다며  통 사정하는 남자의 청을 못이겨 말을 들어주고 말았다. 그렇게 떠난 남자는 다시  오지 않았고 녀인의 배속에는 아이가 들어서게 되였다. 녀인이 온순이를 낳을때까지 마을에서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인지를 몰랐다 지어 녀인의 어머니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녀인만의 비밀이였다.     그녀는 온순이를 키우면서 그 남자를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아무리 바람둥이라도 녀자와 관계를 가질때만은 진실한 감정이라는것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한평생의 굴레와 멍에를 씌워주고 간 남자이지만 여자로 다시 태여나게 한 사람이기도 했다. 온순이를 낳고 엄마로 되고나서 녀인은 지병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일어날수가 있었다. 녀인이 남자를 잊고 싶어했던것은 미움때문이 아니라 그리움때문이였다….                                 5“걸어.” 녀인은 문설주를 잡고 악을 쓰는 온순이를 억지로 집에서 끌어냈다. 오늘은 만사 젖혀 놓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아이부터 지워야 했다. 빨리 서두루지 않으면 손을 쓸 기회마저 놓치게 될것이다. 온순이는 두다리를 조금  벌리고 어기적대며 걸었다. 벌써 눈에 띠게 배가 불러왔다.“어딜 가는데?”“병원.”“내 애기 지울려고?”“아니야. 온순이 애기 잘 있나 한번 검사해볼려구.”“거짓말. 난 다 알아. 애기 지우믄 애기 죽는대. 난 애기 낳구 싶어. 엄만  왜 내 애기 그렇게 미워?”    녀인은 깜짝 놀랬다. 여태 온순이가 이렇게 긴 대사를 구사해 낸 적도 없고 이렇게 확실하게 자기 의사를 표달한 적도 없었다. 아이를 가지고 나서부터 온순이는 달라졌다. 밤에 외출하는 차수도 줄어 들었고 자기 의사도 또릿또릿하게 잘 표현했다. 우선 눈빛이 달라졌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무심하고 산만하던 눈빛이 부드럽고 차분히 젖어있었다. 이 모든것을 녀인이 느끼지 못한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락태수술은 포기할수 없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아이를 키울수없다는것이  리유였다. 그뿐이였을가. 사실 녀인은 자기의 과거가 또 한번 그 아이로부터 환기시켜지는것이 두려웠고 자기의 불행이 다시 온순이로 이어지는것이 싫었다.  자기의 믿을수 없는 유전자로 불행을  이어가는 일은 온순이 하나로 끝내고 싶었다.      진 병원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반시간도 안되는 거리인데 온순이가 워낙 완강히 거부를 해서 한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할수 있었다. 진찰을 마치고 겨우 구슬려서 수술대에 눕혔는데 온순이가 갑자기 후닥닥 일어나더니 사뿐이 수술대를 뛰여 내리고 수술의사를 밀치고 그때 문으로 들어서던 보조 의사를 넘어뜨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너무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누구도 막아볼 사이도 없었다. 얼마나 날렵하고 민첩했던지 마치 날아가는것 같았다. 사람으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였다. 녀인은 아, 하고 짧게 탄식을 하였다. 이틀동안이나 구덩이 속에 같혀 있었음에도 살아서 도망가던 회색고양이의 환영을 본것 같았다.     그래, 온순이는 고양이였어. 내 몸속의 열마리의 고양이가 내 몸 안에서 고양이 온순이를 만들었던거야. 이건 고양이의 저주이고 보복이였어….병원문을 나서는 녀인은 더없이 지쳐보였다.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우는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한가닥 바람같은 소리가 녀인의 귀를 따갑게 하였다.“고양이 아이가 산지기 아이를 가졌대….”    녀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충격받을 일은 없을듯 했다. 누구의 아이를 가졌던, 그것이 사람이든 고양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녀인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뜨겁고 찝찝한것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입귀로 흘러든다.온순아, 어서 돌아와.- 어서 돌아와.집에는 온순이가 있지 않았다.    그렇게 떠난 온순이는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일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에서 아이를 낳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녀인은  밖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만 나면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그리고 깨끗한 그릇에 먹이도 듬뿍 담아서 마루에 내여 놓는다. 온순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같기도 하고 자기 몸속의 고양이들을 마저 그녀 곁으로 보내기 싶어 하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고양이 열마리를 유니폼처럼 이끌고 평생 살았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어디론가 떠날수 있을것 같기도 했다.  
6    [단편]그녀 몸속의 고양이 열마리(1) 댓글:  조회:1147  추천:53  2009-02-17
1     또 비가 내린다.     습한 우기에 녀인은 눅은 김처럼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낮잠을 청하고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것 같아 여간 불쾌한것이 아니였다. 찜찜해서 종시 잠들수가 없었다.  늘 그랬다. 주위에서 맴돌면서 자신을 훔쳐보는 어떤 눈빛이 있었다.  노란빛 같기도 하고 푸른빛 같기도 하였으며 그 중간 빛이였던것 같기도 하였다. 형체모를 그 빛은 항시 어딘가에 떠돌고있다가 녀인이 잠들면 살기로 가득찬 날카로운 발톱이 되여 녀인의 목을 핧키군 하였다. 무얼가? 그것은 꽉잡은 손아귀에서 흘러나가는 파삭거리는 모래처럼 확실하게 잡혔다싶다가도 금새 빠져나가는 간지럼이고 아득함이고 두려움이였다.    녀인은 온순이를 노려보고있다. 이 아이가 정말 고양이일가? 양수속의 태아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고 있는 온순이는 끊임없이 가르릉거린다.  사람들이 온순이를 고양이 아이라고 부른다는것을 녀인은 알고있다. 사람의 얼굴이 다 똑 같지 않고 잘 생긴 얼굴도 있고 못생긴 얼굴도 있는건 사실이다. 그리고 원숭이상을 닮았다고 잰내비란 별명을 가졌거나 말상을 닮았다고 말상이라고 불리우고  강아지를 닮아서 강아지로 불리는 사람도있다. 그리고 뱀을 닮아다고 뱀새끼라고 불리우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저 별명일뿐이다.  그런데 온순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고양이를 닮았다가 아니라 사람으로 잘못 태여난 고양이가 아니냐는 의문을 받고있다. 차라리 고양이는 얼마나 귀여운가. 하지만 고양이 같은 사람이나 사람같은 고양이는 얼마나 징그러울가. 녀인도 가끔 등줄기에 소름이 짝 끼칠때가 있다. 온순이는 생긴건만 고양이 같은것이 아니라 하는 짓거리마다 고양이를 너무 닮았다. 그렇지만 녀인은 그것을 인정할수가 없었다. 사람이 어찌  고양이를 낳을수있겠는가, 이건 있을수도 있어도 안되는 일이였다.     녀인은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하나둘 세다가 다시 온순이의 목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세본다. 필사적으로 잘려고 할수록 잠은 멀어진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들이 잠자는것에 목숨을 거는것은 자지 못하면 미치기때문이다. 녀인이 겨우 까무룩이 잠속에 빠져들어가는데 느닷없이 뾰죽하고 날카로운 것이 목을 긋고지나간다. 목줄기가 짤려나가는것같은 아찔함과 처절함에  진저리를 치며 녀인은 눈을 떴다. 바로 코앞에서 온순이가 몸을 잔뜩 낮추고 오른쪽 식지로 녀인의 깊게 패인 목선에  금을 긋고 있었다.    “또 너냐?”    녀인의 목소리가 쇠를 긁는 소리처럼 차고 날카로웠다. 온순이는 허공에 그린 손짓처럼 하얀 표정으로 물러나있다.“고양인줄 알았잖여.”    녀인은 놀랜 표정을 느그러뜨리며 자신의 목을 어르쓸었다. 고양이 발톱에 목이 갈리는 날카롭고 선뜩한 소름이 손끝에 묻어날듯 생생하다. 틀림없이 고양이였다. 덩지가 커다란 회색의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목을 할키고있었다. 어쩔수없이 보아버린 회색의 얼룩무늬와 파란 눈, 그리고 일렁이던 털의 윤기, 그것을 환각이라고 하는것은  오히려 억울함이고 고통이였다. 녀인은 믿어지지가 않아서 손거울을 들어 자기 목을 이리 저리 비춰보았다. 목 어딘가에 분명히 고양이 발톱에 핧키운 자국이 남아 있을것 같아서였다. 바람에 뽑혀버린 무우 꼬랑지처럼 애처롭고 가는 목줄기에 파란 혈관이 자신을 봉합하고 있는 피부를  리탈하려는듯 보기에 민망할정도로 돌출되여 있을뿐  발톱에 긁히운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온순이가 손톱으로 긋고 있었음을 확인하고 나서도 녀인은 자기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회색 고양이에 대한 질감을 지울수가 없었다.“정말 너냐?”    멀리감치 물러앉아 고개밑으로 훔쳐 보고있던 온순이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체 왜 그러냐?”     온순이는  요즘 들어  자주 녀인의 목에 금을 긋는다. 그것도   잠이 들었을때만 말이다. 그럴때마다 녀인은 고양이한테 목을 할키는 환청에 시달리다 놀라서 깨군한다.     “뭐얼?”    온순이는 그녀가 물은지 한참 지나서야 흐트러진 시선을 한데 모으면서 어눌하게 묻는다.  “어째서 에미 모가지에 금을 긋냐구?”  “….그냥, 심심해서…… ”    온순이는 시들하게 대답한다. “뭐뭐? 심심해서? 에미 모가가지가 네 장난감이냐? 심심할때 가지고 놀게? 니땜에 내가 제 명에 못산다 못살아… “    녀인은 어이없어 주먹으로 동가슴을 탕탕 치면서 탄식을 쓸어냈다. 하지만 녀인이 무슨 말을 하든 전혀 상관이 없는듯 온순이는 창문 너머로 목을 길게 빼여들고 밑도 끝도 없는 뿌연 하늘을 쳐다보며 구시렁거렸다.“이런 날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가?”     오후가 되여 비줄기는 더 굵어지고있었다.     녀인은 다시 잠을 청할려고 들어누웠다.   온순이도 녀인의 등뒤에  눕는다. 두사람은 이윽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이런 식이였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서로의 존재가 견딜수없는 것을 느낄때까지 등을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실 마주 하고 둘이서 할수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녀인이 랭정하고 차가운 사람이였던 탓도 있지만 온순이와는 긴 대화를 이어 갈수없었다. 늘 한마디씩 짧은 대화만이 가능했다. 온순이는 길게 말하면 잘 알아듣지 못했고 길게 말을 구사할줄도 몰랐다. 다만 온순이가 사고를 칠때면 녀인이 야단을 치는데 그것이 두사람의 대화방식이였다.    온순이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는지 심하게 걸근거린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나? 잠을 잘 자는 것이 부럽다. 녀인은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  돌아보았다. 그런데  자는 줄 알았던 온순이가 눈을 빤히 뜨고 째려보고있었다.    확 잡아채는듯한 파란 눈빛이 강렬했다.  녀인은 다급히 눈을 감아버렸다.  정면으로 온순이의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다. 매번 거북하고 두렵다. 온순이의 눈은 고양이 눈과 너무 흡사하였다. 녀인은 온순이와 자신이 공유하는 과거의 시간이 그속에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지난 삶과 악몽이  수시로 떠오르군다. 그 눈 때문에 녀인은 과거의 덫에 걸려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견뎌서는 안될 상황을 견디는 벌을 받고있었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어둠이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녀인이 부엌에서 저녁준비로 파를 다듬고있는데 온순이가 젖은 빵처럼 커다란 덩치를 방바닥에 납작하게 붙인채  텔레비화면에 눈길을 고정하고 있다.     동물세계프로에서 고양이의 이중 생활이 방송되고 있었다. “….고양이는 먹이를 물어 뜯는 야성과 함께 인간의 정을 잊지 못하는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두 측면때문에 밤이면 사나운 짐승이 되여 들로 쏘아다니며 먹이감도 사냥하고 령역 확장을 위하여 종족끼리 싸우기도 하고 번식을 위하여 짝짓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으면 젊잖은 집고양이로 변하여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는다. 그들이 야생으로 부터 다시 인간들한테로 돌아 오는것은 인간들의 정을 잊지 못해서이다. 그외에도 이유가 또 있다. 먹이를 사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먹이를 준다는것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개와는 달라서 주인에게 매이는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온순이는 신이나서 깔깔거렸다. 그녀는 고양이만 보면 무조건 좋아했다.“고양이 혼이 씌웠으나 아님, 고양이 껍질이라도 씌웠으나 암튼 그저 일이 아니라니까.”    녀인이 혀를 찼다. 온순이를 들으라고  하는 말이였을테지만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녀인의 말은 늘 그녀의 주변에서만 맴돌뿐이였다.     그때 텔레비 화면에서는 검정 고양이와 하얀 고양이가 어떤 양옥집 담장밑에서 짝짓기를 하고있었다. 낄낄거리던  온순이가 정색을 하고 고양이의 짝짓기를 지켜보고있었다. “뭘 이런걸 다  보냐?”    녀인이 역정을 내며  전원을 탁 꺼버리고 다시 주방으로 나간다. 화면은 꺼지고 고양이들도 사라졌다. 온순이가 갑자가 누군가에게 쫓기우기나 하듯 초조하고 불안하게 방안 여기저기를 바장이다가 더 이상은 참을 수없었는지 힝하니 밖으로  뛰쳐나간다. 지릿하고 끕끕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의 몸에서는 고양이 냄새가 진동한다. 녀인의 말을 빈다면 비오는 날이면 이 세상의 온갖 냄새가 온순의 몸에서 맴돈다고 했다.  녀인은 말리지 않았다. 차라리 영 집을 나가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녀인은 그 아이를 버릴수도 있었다. 버리고도  아무런 량심적 빚이나 자책감도 없이 훌가분히 어디론가 떠날수있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기손으로는 버릴수없었고 그래서 누가 버려주던지 아니면 스스로 없어주었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순이는 어디론가 돌아다니다가는 어김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두사람은 그렇게도 서로 섞이고 싶은 사람들이였지만  누구의 잘못도 없는데 잇몸과 이가 들뜨듯이 무엇도 씹기 괴로운 사이였고   서로를 서서히 질식시켜가고 망가지게 하고 있는 악의  존재로만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서로 멀리 서있는걸가. 그렇지도 않았다. 녀인에게 온순이는 메마른 가슴에 퍼져있는 통증이고 너무 아파서 잊고 싶고 버리고 싶은 자식이 였다.    온순이는 좀 특별한 아이였다. 다섯달 될때까지 걸으려고 하지 않고 마냥 기여다니기만 하였다. 이상하여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아이얼굴을  보던 의사와 간호사가 소스라치게 놀래는 것이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였지만 두사람이 서로 마주치던 미묘한 눈빛은 녀인으로 하여금 치욕이란 단어를 못이나 씨앗처럼 가슴에 박고  영원한 아픔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녀인은 진찰실을 나오다가 간호사와 의사가 주고 받는 말을 듣고 말았다.“난…고양인줄 알았어요.”“미안하지만 나도 그랬어.”    녀인은 하마트면 주저앉을번하였다. 부끄럽고 챙피하여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었다. 하지만 녀인은 그뒤 그런 말을 자주 들어야했다.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는   고양이 같다가 아니라 아예 고양이라고 불리운다는것도 뒤늦게 알게 되였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 잘못태여난 고양이 말이다. 혹은 고양이로 잘못 태여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어떤 사람은 시정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니라는것이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런것같았다. 파란 눈빛과, 낮에는 작아지고 밤이면 더 빛나고  커지는 눈동자며  틀림없이 고양이를 닮았다.
5    허련순 프로필 댓글:  조회:1653  추천:122  2009-02-17
출생: 1955년 연길시.학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중국작가협회 회원연변여성문인협회 회장1975년부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바람꽃>,<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뻐꾸기는 울어도>,<갈꽃>. 소설집: 소설집: “사내많은 여자” 한국에서 출판.소설집: “유혹” 한국에서 출판소설집: “우주의 자궁” 중국에서 출판.소설집: “바람을 몰고온 여자” 한국에서 출판. 중편소설: <투명한 어둠>,<텅빈사막>,<홀로서는 풀> 장막극과 드라마: 6막장막극<과부골목>드라마<여자란 무엇입니까?>,<떠나는 사람들> 등. 그외 단편소설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등 다수 발표.
4    [단편]그 남자의 동굴 댓글:  조회:1254  추천:44  2009-02-17
어디까지였던가요? 남자는 이야기를 시작할때마다  같은 질문을 하고있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 할가요? 비, 비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아, 그래요. 느릿느릿한 말투에 같은 말의 반복, 그런것때문에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긴호흡의 인내가 필요하였다. 그날 비가 정말 억수로  쏟아졌지요. 왜 그리도 많이 내리던지, 내 생애에 처음으로 내린 큰 비였습니다… 그날의 비가 나를 통채로 삼켜버린셈이죠…그래요. 그때 이미 나는 그곳에서 죽은거죠...갑자기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우욱-우욱, 금방이라도 토사물을 쏟아 내려는듯 몸을 비틀고 있었다. 왜요, 어디 아프신가요? 나의 다급한 물음에는 무관한듯, 그는 눈을 지긋이 감은채 목구멍 깊숙히 신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것같아  나는 불안하게 주위를 살폈다. 청계천주위는 한가로웠다. 맑은 호수가 여유있게 흐르고 하얀 아카시아 꽃이 피여있었다. 멀지 않은곳에서 나이가 들어보이는 한 남자가 아카시아 나무사이사이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기계로  가지런히 깍아주고 있었다. 붕-하는 기계음이 울릴때마다 풀잎들이  튀여오르면서 떫은 풀냄새를 공중에 멍처럼 짙푸게 그려놓고 있었다. 풀냄새가  멍처럼 보였던 것은  아마, 그남자의 오른쪽 팔목에 문신처럼 나 있는 푸른 기미때문이였던것같다. 어릴적에 나의 왼쪽 다리에도 푸른 기미가 지도처럼 나있었다. 모욕을 시킬때마다 엄마는 그 자리에 비누칠을 두번씩을 하면서 . 이것은 엄마 마음의 멍이라는데 네가 하필이면 엄마 아픔을 가지고 나온단 말이여? 하고 푸념을 하군하였다. 그뒤부터 나는 내몸의 푸른멍을 볼때마다 자식의  몸에 새길만큼 아팠던 엄마 마음의 상처는 무엇이였을가? 하는 생각을 지울수없었다. 미안해요. 어디까지였던가요? 남자는 진통이 멎은듯  흐트러진 옷섶을 바로 잡고 있었다. 손을 움직일때마다 하얀 와이샤쯔속의 푸른 기미가 들어났다. 그것이 그 남자의 엄마가 그 남자에게 남겨준 상처인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그남자의 불행은 그 기미때문이였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운명은 육신을 닮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손금도 보고 관상도 보는것이고. 어디까지였던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 비이야기 라고 말할수있었지만 이제 그만 하기로 하였다.   더이상 비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벌써 나흘째다. 남자는 비에 대한 이야기만  시작하면 꼭 발작적인 통증을 호소하며 애기를  중단하군 하였다. 그렇게 힘든 얘기를 꼭 할 필요가 있을가. 보아하니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남자는 꼭 할얘기가 있는듯 매일 나를 이 강역으로 이끌었다. 말하고 싶은것이 아니라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같기도 하고 아니면 할얘기도 없으면서 시간만 끌자는 심사인것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남자가 나를 붙잡고 시간을 벌자고 늘어질만한 리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있는것 같지 않았다. 아마, 남은게 시간밖에 없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가 고심하는  남자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립장은 달랐다. 한달 비자로 한국에 체류해 있는 처지라 그 남자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취재를 마치고 싶었다. 이쯤, 나는 이 남자에 대한 취재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형록음기를 빽에 넣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벌써부터 이 남자를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할 구실을 찾고있던것인지도 모른다. 왜요? 가실려구요? 남자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아무래도 무린것같아요. 제 얘기 안들어주실려구요?... 들어야 자서전을 쓰실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사실 며칠째 만났지만 나한테 해준 얘기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괜히 시간만 랑비하는것같단 생각이 들어요. 남자가 고개를 힘없이 가슴앞으로 깊게 떨어뜨리며 뭔가에 사로잡힌듯 혼자말처럼 나직히 말했다. 가지 마세요. 저와 함께 있어주면 안되겠어요? 덫에 걸린 새의 소리처럼  애처롭고 아프게 울렸다. 휠처어의 팔걸이에 올려진 손가락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있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그 옆에 서있었다. 이 남자는 도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걸가? 날 붙잡고 도대체 뭘하자고 하는건가? 아니 아니지. 내가 도대체 이남자한테서 뭘 바라고 이러고 있는걸가? 이 남자한테 달라붙어 떠나지 못하고 있는건 바로 내가 아닌가.  그날,  나는 종로구에 있는 어느 직업소개소의 알선으로  마장동 초원 까페에서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그 남자를 만났다. 해빛이라곤 단 한번도 쪼인적이 없어보이는  창백하고  파리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테가 굵은 검정 안경을 끼고 있었다.   소개소에서는 한 중년의 남자가 자서선을 써줄  사람을 찾는데 원고료를  2천만원을 지불할수있다는 얘기만 하였고 구체적인 계약같은건 만나서 당사자들끼리 하라고 하였다. 꼭 여자여야 된다는 부가 조건이 께림직했던건 사실이지만 나로서는  절대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중국에서 내가 받는 월급으로 계산하면 8년에 벌여야 하는 돈인데 내가 마다 할리가 없었다.    남자의 옆에는 남자보다 훨씬  덩지가 큰  여자가 앉아있었다. 어깨가 넓고 등짝이 넓기로 들판같았다. 나의 온 신경은 그 여자한테 가있었다. 출판 계약을 여러번 해보았지만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까다로웠다. 선입견인지는 모르지만 내경험으로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쉽고 편안하였다. 그래서인지, 계약할떄 여자가 끼이면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부인일가?   남자하고 나이는 엇비슷한데 분위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염색을 많이 한듯 뿌엿고 뻣뻣한 머리카락을  앞이마에 산검불처럼 드리워 놓았는데도  넓은  이마를 채 가리지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여자로 잘못태여난 남자같았다. 남자같은 여자는 카페안 여기저기를 흘깃거리고있었다. 정신이 산만해보여서 그런지 남자의 자서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말없이 검은 안경넘어로 나를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감시카메라에 찍히고있었다는것을 알아챘을때와 같은 불쾌감이 내 마음을 흐트러 놓았다.  어색한 기분을  감추려고 나는  앞에 찻잔을 들어 천천히 마시면서 남자의 시선을 피하였다. 찻잔을 도로 탁자에 놓고 손수건으로 입가의 물기를 닦고 자세를 편안하게 고치면서 이젠 시선을 걷어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힐끗 쳐다보는데  남자는 여전히  내 얼굴만 쳐다보고있었다. 하르르 얼굴이 뜨거워졌다. 물론 자서전을 잘 쓸수있는 사람인지 가늠을 하는것이겠지만 대 놓고 빤히 쳐다보는데는 어딘가 모욕감이 들기도 했다.   어둑스레한 까페에서까지 벗지 않는 저 검은 색 안경 넘어의 남자의 눈은 무엇을 감추고 싶은걸가. 거만함이나 교활함이 아니면 엉큼함같은건 아닌지… 봉순씨. 남자가 갑자기 여자를  불렀다.  그 덩지가 큰 여자는 봉순인 모양이였다. 여자가   무표정하게 남자를 쳐다보고있었다. 봉순씬 갔다가 나중에 내가 전화를 다시 할테니 그때  와요.   여자는 차라리 잘됐다는듯 홀가분하게 자리를 뜨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밀어 놓고 도망가는 사람처럼 걸음이 날아갈듯했다.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굴가? 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여자가 떠나고 나서 남자가 처음 한 말이다.   녜?  나는  믿을수가 없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리가요.  아무리 검은 안경을 썼다 하지만 그 속에서 움직이는 남자의 눈은 상대의 눈빛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나는 믿었다. 보지못하는 사람이 어찌  상대의 표정에 그리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할수 있겠는가.  사실입니다. 눈 뜬 소경이랍니다. 남자는 침울하게 웃고있었다. 빈틈없이 차가운 미소였다. 그것은 인생의 파멸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흔히 갖는 자학적인 냉소인듯 치밀하게 단단하였다.   아ᅳ 그래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듯한 느낌과 동시에 알수없는 안도나 쾌감이 가슴을 가르고 지나갔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에서  힘을 빼면서 나는 편안하게 물앉듯 내려앉았다. 앞을 보지 못한다니 차라리 잘되였다 싶기도했다. 그의 앞에서 내가 자유스러울거란 계산에서였다. 그런 심사를 알아차리기나 한듯 남자가 예민하게  내쪽에 고개를 돌렸다.  웬지 째려보고 있는것같이 날카로웠다. 그의 안경넘어의 눈은 보이지 않는곳에 설치되여 있는 감시카메라처럼 조심스럽고 거슬렸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보지 못하는 눈이 보는 눈을 마음놓고 쳐다보는데  보는 눈이 보지 못하는 눈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다니, 이게 어디 될말인가.   손,   계약서에 싸인을 하는 하얀 남자의 손은 창백했다. 손등에 튀여나온 파란 혈관이 마치 그의 소유에서  분리되고싶은 듯 아슬하게 돌출되여있었다. 그는 싸인볼펜을 나에게 넘겨주면서 살짝 나의 손을 스쳤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 아픔에 절은  비릿내가 확 풍겨왔다. 앞이가 빠졌을때 그 헌전하고 비릿한 핏냄새와 비슷한 냄새라고나 할가. 남자는 계약서를 쓴것만으로도 힘든지 별로  말이 없었다. 다만, 약속을 꼭 지켜달라는 부탁만을 거듭했다. 그건 나도 부탁하고 싶었던 사항이여서 시름이 놓였다. 은근히 그가 2천만원 원고료를 준다는 약속을 지킬지 걱정하던 차였다. 떠나기전, 남자는 양복 포케트에 손을 넣더니 수표가 들어있는 하얀 봉투를 내 앞에 쓱 밀어놓았다.   삼백만원입니다. 계약금으로 받으시고 자서전을 다 쓰시면 약속대로 나머지를 마저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정확하고 또박또박했다. 이외였다.   이튿날, 남자는 나에게 어려운 제의를 하였다. 자서전이 완성되는  동안, 자기와 함께 있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가까이에 있으면 자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거고 시간을 충분히 리용할수있고 교통비나 주숙비를 절약하는 차원에서도 유용할것이라는것이  남자가 내세우는 리유였다. 일언지하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계약을 취소한다고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다. 2천만원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자서전을 써주고 기껏 만원을 받았는데 2천만원은 인민페 16만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니, 자존심 따위로 일을 그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와 이런 방식으로 얽히는건 싫었다. 나는 그의 비유를 거슬리지 않으면서 거절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돈주고 거처를 얻어야 할거면 이왕이면 우리집에 빈방이 있는데 편리하지 않겠어요? 전 이미 거처를 정했습니다. 한국에 올때마다 그 한곳에서만 잡니다.   아ᅳ 그래요. 남자는 말할때 아, 하는 감탄사를 자주 썼다. 근데 지금 사는데는 어딘데요? 그게 왜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엄청 관심이 있는 모양이였다. 제기동, 고려대학 근처입니다. 아ᅳ 그랬군요. 고려대  근처면 집세가 꽤 비쌀텐데요. 보증금 없이 32만원 월셉니다. 살긴 괜찮으십니까.  작기는해도 주방도 있고 화장실도 딸리고  살만합니다. 아, 그래요? 안타까운듯 두손을 맞잡고 비비는 그의 손안에서 불에 대한 나무의 욕망처럼 마른 삭정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바스락거렸다.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것처럼 나의 기거문제로 자서전 계약이 무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취재를 위하여 매일아침,  첫날 만났던 마장동 까페에 나갔고  남자는 봉순이라는 여자가  휠처어에 태여가지고 오군하였다. 여자는 남자를 데려오고 데려가는 일만 하고 이야기에 끼이는 일은 없었다. 까페에서 차 한잔씩 마시고 얘기를 시작할가하면 남자는 기어이  강역을 거닐자고 한다. 한곳에 오래 앉아있는것이 불편한 모양이였다. 나는 걷고 남자는 휠처어를 타고 우리는 청계천 유보도를 걸었다. 그러다가 바퀴가 어디에 걸리면 내가 휠처어를 밀기도 하였다. 그도 검은 안경을 끼고 나도 검은 안경을 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군했다. 어떤 이들은 지나간 다음에도 뒤돌아보군하였다. 그럴때마다 나는 휠차에서 조금씩 떨어져 걸었다. 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무슨 생각을 할가요? 다정한 부부라고 생각할거예요.   기분이 좋은건 아니였지만 상관없었다. 남자가 자신에 대하여 되도록이면 많은 말을 해주면 그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것을 꺼리는 듯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날에는 별로 말 몇마디 얻어듣지 못하고 그냥 걷기만 하다가 돌아오기도 하였다. 차츰, 그가 왜 거금을 내고 자서전을 쓸려고 할가?  의문이 가기 시작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서전을 쓸만한 애기를 들려주는 일도 없으면서 도대체 왜 자서전을 쓰겠다고 사람을 불러들였는지. 실제로 자서전을 쓸 만큼 거창한 할말이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째 얻어 들은것은 총각때 사고를 당하고 두눈이 실명되고 하신도 마비되여 휠처어를 타지 않으면 걸을수 없다는것외에 아무것도 없다. 가족은 있는지, 그 남자같은 여자는 누군지, 그리고 자서전을 왜 쓸려고 하는지 그런것을 남자는 말해주지 않않다.  혹시 자서전을 핑계대고 여자를 만나고 싶은건 아닌지, 여자작가만 고집했다는  직업소개소원장의 말로 미루어 보면 전혀 그런 의미가 없다고 볼수도 없었다. 시간만 질질 끄는 남자의 의중은 아무래도 순수하지만은 않은듯 싶었다. 뭘가? 도대체 그것이 뭔지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나의 관심사는 원고료에 있을뿐이였다. 원고료를 위하여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서전을 완성하여야 했다. 며칠후, . 어떻게 하면 남자와의 취재를 순리롭게 이끌어 낼가 고심하다가 나는 열가지 질문을 만들어가지고 남자를 만났다. 하나 하나 궁금한것들을 질문하면 남자는 어쩔수없이 대답할것이고 나는 의외의 소득을 얻게 될것이다. 마장동 청계천 하류을 한창 거닐다가 내가 준비해온 첫번째 질문을 물을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매번 그런식이였다. 요앞에 무궁화꽃이 피여있죠? 어디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무궁화꽃이 보이지 않았다. 조오 -앞에 있잖아요. 남자가 손짓하는  쪽을 자세히 보니, 빽빽히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그 속에  여린 분홍빛 무궁화꽃이 다소곳이 피여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보지 못하신다면서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무궁화꽃이 피여있는줄을요?  냄새를 맡는거지요. 여기 정자가 있을텐데 거기서 쉬다갑시다.  바로 무궁화꽃이 피여있는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둥군 버섯모양의 정자나무 밑에 벤치가 만들어져있었다. 내가 먼저 앉자 남자는 천천히 휠처어를  벤치곁으로 바짝 대여 놓았다. 그때 중년의 여자들이 하르르 웃으며 지나간다. 다들 가벼운 추리닝을 입은걸 보아서 운동하려 나온 모양이였다. 남자가 갑자기 자기 손을 나의 손위에 얹었다. 홀씨를 다털어낸 민들레 같이 부피가 느껴지지 않았다. 헐거웠다. 슬그머니 손을 빼내려고 하자 도리여 꽉 잡는것이였다. 그의 손에는 거절하면 안될것같은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할말이 있어요. 남자가 속삭이듯 말했다. 지나가던 여자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우리쪽을 뒤돌아보았다. 이렇게 손을 잡지 않으면 말을 못할것 같아서요. 그는 자기 말이 타인에게 스며들지 않고 헛된 메아리로 자신한테로 되돌아 가는것이 두려운듯  더욱 으스러지게  손을 잡았다. 사실 제가 뭘 자서전이라도 쓸 인물이나 됩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자서전을 안 쓴단 애기는 아니죠?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요 며칠 잘 생각해 봤는데,  자서전을 안 쓸랍니다. 야구공이 갑자기 날아와 가슴을 치고 가는 기분이들었다. 석연치 않은 게임이다 싶긴 했지만 이리도 어처구니 없이 깨여지리라는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발끈 했다. 그럼 계약서는 뭡니까? 저의 노력은 뭐가 되구요. 계약서의 약속은 지킬겁니다. 무순 소린지…. 나는 바보처럼 손을 잡힌채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몸속에 등불이라도 켜진것처럼 남자의 얼굴은  빛이나고 있었다. 저 빛,   남자 얼굴의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가? 얼굴에 빛을 담고서 남자는 모순된 말을 하고있었다. 계약서의 약속은 지킨다면서 자서전은 쓰지 않는거로하겠다고 한다. 그럼 자서전은 쓰지 않지만 원고료를 주겠다는 말인가.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한두푼도 아닌 2천만원을 그냥 준다는 얘기는 아닐것이다. 그럼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 되였다.   자서전은 원래부터 나한테 아무 의미도 없는거였어요.  나는 그가 괴변을 부린다고 생각되였다. 그럴거면 왜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서 한주도 넘게 끌고 다녔단 말인가. 이제 와서 그말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미안해요. 미안한데 암튼 전 자서전을 쓰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었어요.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갑자기 그의 그 검은안경을 벗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리고 얇지만 질긴 창호지 같은 그의 하얀 피부도 거칠게  찔러보고 싶었다. 그는 여전히 할 얘기가 많이 남은듯  진지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나는 그러는 남자가 어처구니 없었다. 이 손을 놓으시죠. 이 손을 놓으면 내가 말을 못할것같아서요.  물이 가득한  세수대야의 물을 쏟히지 않을려고 꽉 잡고 있듯이  남자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놓기만 하면 곧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그 위태로움을 간신히 내 손에 의지하는듯 했다. 다 얘기 할게요. 이제 다 얘기 할수있을것같아요…   이때, 가까운곳에서 희미한 비내음이 코끝을 축축하게 했다. 비가 올 모양입니다. 남자가 먼저 비 냄새를 알아차리고 서둘렀다. 그는 비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큰 비로 하여 사고를 냈던 반사적인 반응인모양이였다.  남자가 전화를 한지 십분도 안되여 남자같은 여자가 까만 승용차를 몰고왔다. 여자는  남자를 안아 차 뒤자석에 내리워놓고 휠처어는 접어서 차 뒤꽁무니에 실었다.  나는  여자의 옆 자석에 앉았다.  차가  마장동 지하철 역 부근까지 왔을때 비방울이 드드득 차체를 거세게 떄리기 시작했다.  누기진 비릿한 냄새가 차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남자를 처음에 보았을때 느꼈던 그 냄새와 비슷했다.  그러고보면 남자의 냄새는 비냄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아빠트 앞에서  차를 세우고 재빨리  차 뒷쪽에서 휠처를 내리웠다. 그리고 남자를 애기처럼 건뜩 들어서 휠처어에 태웠다. 가벼운 보따리를  옮기듯  여자는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한 솜씨가 아니였다. 왜 남자가 덩지가 큰 여자를 곁에 두고있는지 알것같았다.  내일은 좀 일찍 와줘요.   여자가 떠나자 남자는 나에게 차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잠간 망설이다가 그의 뒤를 따랐다.  갑자기 자서전을 그만 둔다고 한 남자의 본의를 따져야  했기때문이다.    남자는 휠체어를 엘리베이터 가까이에 대고 9층단추를 누르면서 말했다. 전 혼자 삽니다. 그 여자는요? 봉순씨요? 예. 제가 외출할때마다 와서 도와주는 도우미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일층에서 9층까지 올라가는 승강기의 기계음을 들으며 나는 초조했다. 내가 보게 될 남자의 집은 어떨가? 남자가 사는 모습이 궁금해서가 아니였다. 처음에 남자를  만났을때  보지 말아야 될것을 보아버린것 같은 그런 불편하고 난감하던 상황에 다시 놓일가봐 겁났다.  남자가 사는 집은 이외였다.. 바닥에는 종이 장 한장도 널려있지않고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었다.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야지 함부로 놓으면 다음에 찾을수가 없다고 남자가 말했다.   거실의 큰 유리문으로 끄느름한 뒤뜰이 내려다보였다.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져 내리고 나무들이 쉼없이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남자는 실내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는 휠처어를 타고  이방 저방 부산하게 왔다갔다 하였다. 처음에는 무언가 찾고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괜히  두세번씩 갔던데 또가고 왔던데 또 오고 하는품이 그저 일 같지 않았다.  어디 아프세요? 정서불안인건 같아요. 늘 그랬어요? 비만 오면. 뭘 도와드릴가요?   남자가 잠간 망설이는듯 싶더니 정자나무아래서처럼 나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은 금방 물에서 건진듯  젖어 있었다. 미안해요… 이렇게 해야만 살것같아서요…. 정말 죄송해요.  그는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많이 왔어요. 비로 가득찬 웅덩이에 하루밤동안 혼자 누워 있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누구도 오지 않더군요…그 뒤로 전 늘 혼자였어요. 남자는 비오는날의 사고를 잊지 못했고 비만 오면 어김없이 발작을 일으키군하였다. 그는 혼자가 되는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남자는 매여 달리듯 두손으로 나의 손을 움켜 잡고 놓치 않았다. 깊은 굴속에 떨어지지 않을려고 잡은 동아줄인양 남자의 손아귀는  점점 더 안으로 옥죄여 들었다. 차츰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증세도 가라앉았다. 왜 계약을 어길려고하느냐고 따질만한 상황은  아닌듯 싶었다. 차라리 이쯤해서 끝난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계약금으로 받은 3백만원만 되돌리면 아쉽지만 모든 일은 없었던일처럼 깨긋이 끝날것이다. 남자는  휠처어에 등을 깊게 오무리고  힘없이 까부러져 있었다. 잠이 든 모양이였다. 나는 거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끝으로  도장찍듯 살금살금 출입문쪽으로 가는데 휠처어가 움직이는 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왜요? 가실려구요? 남자의 목소리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처연하게 들려왔다.  너무 늦었어요. 지금 나가지 않으면 지하철을 놓치게 될것같아서…웬지 나는 죄를 짓고 도망가다 들킨 사람처럼 꺽꺽거렸다.  스스로 듣기에도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다.  죄의식이라니? 이건 당치도 않은 일이였다. 분명히 그한테 내가 빚진건 없었다.  그런데도 분명 나는 그한테서 떠나는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있었다.  이미 지하철은 끈켰어요. 남자는  휠처에서 몸을 던지듯 철썩하고 땅바닥에 굴러내렸다.  제발, 가지말아주세요…혼자 있으면 죽을것 같아서요…그는 금방 톱으로 짤라낸  한토막의 나무처럼 내 앞에 엎드려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비에 젖은 토밥냄새가 풍기는듯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막연히 서있었다. 남자의 말에 놀란것은 아니였다. 앞에 놓인 현실이  안타까울뿐이였다. 이 남자와 함께 빨아 헹굴 어떤 끈적한 현실이 있는것도 아닌데 그를  외면하고 싶은 내  마음 저편에 벌써 또 하나의 다른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음에 놀라울뿐이였다. 이러다  남자의 시간에 애매하게 섞여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굴레에  함께 갇힐가봐 두려웠다.   남자는 꼬리 짤린 도마뱀처럼 줄줄 기여서 나의 앞을 지나 출입문께로 가더니 나의 구두를  신발장안에 가지런히 놓고  문을 닫았다. 하얀,   밤이였다. 남자의 빈방에서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멀뚝멀뚝 천장만 쳐다보고있었다. 어느 충집에서 비치는 불빛이 집안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 아빠트는 내가 사고를 당한 대가로 받은 집이예요. 그러니깐 내 두다리와, 두 눈과 바꾼거지요. 남자의 그말만 아니였어도 편히  잠들수있었을지 모른다.  방안의 천장이며 창턱이며 옷장위이며  지어 누워있는 침대에까지 남자의 눈과 다리들이  돌아다니는것같아  종시 잠을 잘수가 없었다. 잡생각을 쫓으려고 백을 거꾸로 세고 무궁화꽃이 피였습니다를 백번도 넘게 외워보아도 소용없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얗게 날을 새며 다섯시 반에 출발하는 새벽 첫 지하철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만 되면 소리없이 이곳을 빠져나갈것이다 생각하고있는데  맞은쪽 남자의 방에서 기척이 들렸다.  방문이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게  열렸다. 이어 옷섶이 살살 이끌리듯 조심스러운  휠처어 소리가 내 방 문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잔뜩 긴장되여 숨을 죽이고 문쪽만 쳐다보고 있었다. 찰칵, 도어가 비틀리는 쇠부치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이제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올것이다. 올것이 온것이다. 반토막의 나무 토막이 눈앞에 서있다. 엎드리지 않고 서있는 나무토막이 나의 침대가로 움찔움찔 움직여 오고있었다. 도대체 어쩔려고?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남자가 도어를 비튼채 망설이고 있는것이 분명했다. 이윽히 아슬한 시간이 힘들게 지난후,  다시 찰칵하는 쇠소리의 마찰음이 날카롭게 들렸다. 그것은  비틀어졌던 도어가 다시 제자리에 놓이는 소리였다. 그리고 발끝으로 저며 디디듯 조심스러운 휠처의 움직임이  출입문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어 신발장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이시간에 어디로 갈려고 그럴가? 출입문소리가 들리지 않는것으로 보아 밖으로 나가는건 같지 않았다.  주방쪽에서 그릇  부딫히는 소리가 자그만하게 들려왔다. 물소리가 나고 이어 가스불 켜는 소리도 들리고 얼마 안되여 물이 끓는 소리가 부지직 거리더니, 구수한 멸치국물냄새가 문틈으로 기여 들어 위를 자극했다. 자다말고 신발장은 왜 열어보았을가?  짙은 멸치국 냄새를 맡으며  나는 살풋이 잠이 들었다. 멸치   국물은 시원하고 구수했다. 밤새 자지못해 가라앉았던 육신이 보시시 털고 일어나는듯  산뜻하고 갑삭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가 아침먹으라고 깨울때는 벌써 새벽지하철 시간은 이미 지난 뒤였다. 어떻게 끓였는데 이렇게 시원한가요? 비린내도 전혀 안나는군요? 밤새 어색했던 기분을 떨어버리려면 무슨 말이든 만들어야 했다. 나는 둘만의 공간에서의 침묵은 견딜수없었다. 멸치 국물은 손이 적게 가면 맛이 금새 달라지죠…. 적당히 끓이다가 비린내 땜에 멜치를 건져내야 해요…. 그 시간을 잘 맞추는것이 관건이죠.  남자는 따뜻하게 웃고있었다.  적당히라면 대개 얼마동안을 애기하시는거죠? 아, 저는 시간을 두고 애기한게 아닙니다… 국물이 울어나면서 풍기는 향을 맡아보고 맞추는거죠. 그는 보지 못하지만 냄새로 모든것을 보고있었다. 음식은 그렇다치고 상대의 마음속은 어떻게 꿰뚫어 보는지. 냄새를 맡는것도 아니고 눈치를 보는것도 아니고. 나는 그게 궁금했다.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알아내죠? 아, 그건 가만히 앉아서 마주 보면 다 보입니다. 다 보인다구요? 예. 눈을 감고 있어도 보이는게 있지요.. 나는 눈을 감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안보이는데요. 하하하. 눈으로 볼려고 하지말고 마음으로 읽어야죠. 오래간만에 그가 소리내여 웃었다. 가슴을 적시는듯 그의 목소리는 물기가 있었다. 오늘 점심엔 제가 당귀와 감초를  듬뿍 넣고 백숙을 끓여 줄게요. 제가  너무 피곤하게 한것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그건…. 거절하지 마세요. 남자가 단호하게 나의 말을 짤랐다. 나는 조금씩 그한테 끌려들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지난밤의  궁금증이 되살아나서 물었다. 어제 밤엔 자다 말고 왜 신발장문을 열어보았어요? 오, 그거요?  알고있었군요. 그는 쑥스럽게  웃으면서 휠체어를 움직여 싱크대로 갔다. 대답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였다. 그는 헛손질 하나 없이  정확히 수도 꼭지를 열고 흐르는 물에 빈 그릇을 씻었다. 그의 움직은  외워든것처럼 가지런하고 거침없었다. 제가 설거질을 할게요. 나는 그의 손에서 채 씻기지 않은 그릇을 가로채면서 다그쳤다. 말할수없는 리유라도 있나요? 아니요, 애기 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왜 대답하지 못하는가요? 사실, 자다가 문뜩 허작가님이 집으로 가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작가님 방문을 열고 확인을 하려다가 오해하실가봐 신발장의 신이 있나 확인 해 본겁니다. 아연함속에서 헤아리기 힘든 긴 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밤새 느꼈던 혐오감과 두려움이 부끄러워 참을수 없었다. 남자가 식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나서 나에게 말했다. 작가님은 이 안경을 벗기고 싶었죠?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보았죠. 전 몸으로 볼수있답니다. 몸으로 느낀다는 애긴것같았다. 벗기지 않아도 스스로 벗었습니다. 자, 보세요. 이것이 저의 원 모습입니다. 나는 잠깐 할말을 잊고 안경을 벗은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반듯하고 굵은 눈섭이 약간 꺼져들어간 듯한 그의 눈을 더욱 깊어보이게 하였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망울은  보이지 않았다. 아, 저도몰래 잇사이로 탄식이 흘러나갔다. 검은 안경속 뒤는 철저히 비여있었다. 빛도, 빛이 타다 남은 잿더미도 아무것도 없이 헐렁하게 비여있었다. 가을의 빈 들녘을 보는듯한 쓸쓸함이 해일처럼 마음을 쓸어뜨렸다. 어쩔수없이 보아버린 검은 안경속의 그 공허함과 허전함, 그것은 남자의 모습이 아닌 또 다른 하나의  타인처럼 낯설었다. 차라리  안경을  쓰는것이,  적어도 나한테는  남자의 원모습인듯 익숙했다. 안경을 쓰세요. 아니, 오늘은 안쓰고 싶습니다. 안경을 쓰지 않고 작가님과 애기 하고싶습니다.  남자가 눈망울이 없는 눈을 숨뻑거렸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볼수 없었다. 마주 본다면 결례라도 되는듯이 말이다. 자서전을 쓰지 않으신다면서 무슨 할얘기가 있겠어요. 자서전과는 상관없이 작가님한테 꼭 드릴 말이 있어요. 나는 그의 말에 아무 의욕도 느끼지 못했다.  자서전과 상관없으면 어떤 얘기도 나한테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하고싶다는 애기를 듣지 않을수도 없었다.   비, 그날, 비만 오지 않았더라도 내가 지하철 공사장의 웅덩이속에 빠져들어갈리가 없었겠죠… 발밑이 유달히 미끄럽더군요. 조심해야지, 하는 순간에 내 발은 벌써 허공을 딛고 있었던 겁니다. 깊은 굴속으로 추락을 하면서 나는 쏴- 하는 차거운 바람 소리를 들었어요. 아니, 파도소리였던것 같기도해요. 누구는 그게 죽음의 소리였을거라고 하더군요.  깊고깊은 굴속으로 한정없이 빠져드는듯한 아득함, 그리고 육신이 부서지는듯한 자지러움과 아찔함, 그 굴속은  며칠 굶은 짐승의 내장만큼이나 길고 어둡고 습하고 후줄근했어요….두려웠어요.  빛이란 사라질때, 그리도 야박하게 흔적도 없이 말끔히 자신의 존재를 거둬 가더군요. 절대적인 어둠, 이게 죽음이라는거구나….나는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지요…     타인,   또 하나의 타인이 나와 함께 굴속에 있었어요.  굴속에 떨어지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빛이라곤 없는 캄캄한 굴속에 누워 있더군요. 쏴쏴 거세게 쏟아지는  빗소리만 들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군요. 여기가 어딘가 싶어 손으로 주위를 더듬는데 바로 나의 코앞에  물큰 하고 손에 닿는것이 있어서 자세히 만져보니  사람의 다리더군요. 나말고도 또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이  굴속에 있구나 싶어서  얼마나 반갑고 위로가 되던지, 두려움이 조금 가시더군요. 네놈도 나만큼 재수없고 한심한 놈이구나 싶어서 그놈을 건드렸죠.  이보세요 정신차려요. 우리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이곳을 나가야 돼요. 안그러면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요…이보세요. 내말 안들려요?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그 사람은 꼼짝 하지 않더군요. 죽었나? 나는 그가 숨이 있나없나 확인을 할려고 머리 쪽을 더듭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상반신이 없더라구요. 금새 머리카락이 쭈빗일어서더라구요 상반신이 짤린 그사람의 하신이 나의 코앞에 있은거예요. 저는 그 사람의 하반신을 밀어내고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단 생각으로 입을 사려물고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어요. 그런데 내몸은 천근만근 되는듯 도무지 일으킬수 없었습니다. 윗몸은 조금씩 움직일수있는데 아래다리가 꼼짝도 안하군요.. 그래서 내  다리가 어떻게 되였나  위로부터 더듬으며 찾기 시작했는데 나의 다리가 바로  내가 붙잡고 흔들던 그 다리더군요.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다리가 바로 내 코앞에 접어져 있었어요.  허리가 부러지면서 상신과 하신이 접혀진거였어요. 하신은 이미 마비되여 감각이 없어진거죠. 그래서  타인인줄 착각 한거구요.  이미 몸 따로 다리 따로 두동강이된  나를 보고  나는 다시 까무러쳤지요. 얼마나 지났는지…깨여보니 굴밖에  작은 정구가 반짝반짝 하는게 희미하게 보이더군요. 내눈에는 그게 너무 울어서 벌겋게 피진 엄마의 눈처럼 보이더군요. 엄마, 엄마-나좀  살려주세요…그렇게 소리치며 나는 울었어요. 울다가 까물어치고 다시 깨여나고 그러기를 수십번이나 반복했지요. 차라리 정신을 놓고 있는것이 훨씬 편했던같아요. 깨여나면 뼈가 부러진 통증도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때문에 더 참을 수가 없더군요. 줄기차게 내리는 빗물이 굴속에 고여서 감각을 잃은 두다리는 이미 물속에 잠겨있었고 벽쪽에 기대여 있는 윗몸도 빗물속에 잠기는건 시간문제였죠. 굴밖에서는 사람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물총을 튕기면서 거칠게 지나가는 찻소리만 외롭게 들려오더군요. 찻소리가 들릴때마다 혼신을 다하여 소리 지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차는 그냥 지나가더군요. 물론 들을수가 없었겠지요. 그때만큼 찻소리가 그렇게 야속하고 저주로울수가  없더군요...투닥투닥, 비는 그칠줄 모르고 빗물은 점점 고여서 턱밑을 넘어서 입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했어요. 이제 얼마 안있으면  곧 익사체가 될 것인데 나는 빗물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내 나이가 생각나더군요. 열아흡을 갓 넘은  스므살, 가물거리는 의식속에서 나는  하르르  복사꽃이 피여나는  고향의 언덕에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뒤,   나의  삶은 공사장의  웅덩이속에 빛물처럼 고여 있었어요. 빗방울처럼  늘 혼자서 그 웅덩이 속에 갇혀서  빗소리만 나면 그 떄의 동굴속의 환각에서 허우적거렸죠. 육신이  끊임없이 굴속으로 빠져들어가 깊은 어둠속에 갇히는가하면  입속으로 코와 눈, 귀속으로 흙물이 흘러들어가는 숨막히는 환각에 빠지기도 하고  허리가 부러져서 두동강이 난 다리와 몸뚱이가 따로 걸어다니는 공포스런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그뒤의 나의 삶을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고 재현을 시키더군요.  아마 그 고통이 두려워서, 그 처절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자서전을 생각했던같아요. 혹시 이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면 그 기억에서 벗어 날수 있을것 같았거든요. 나에게 자서전이란건 그런 의미였어요. 타인과의 대화방식 말입니다. 그런데   왜 생각을 바꾸었어요? 아, 그건…남자는 잠깐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냐 잠깐  망설이는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건  타인과의 대화가  아니라 오래 동안 가두어 두었던  내안의 나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싶어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부끄러운 애기지만…작가님의 손을 통하여 내 안의 온기를 느꼈고 내가슴속의 두군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짜릿한 인간의 즐거움도 느끼게 된거죠. 잃어버렸던 내안의 내 모습을 찾게 된셈이죠. 이제부턴  아픈 기억의 동굴에서 벗어날수  있을것같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하늘냄새가 났다. 사람의 얼굴이 하늘처럼 맑아보일때 그의 얼굴에서 하늘냄새가 나는 법이다.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묘한 상실감을 느꼈다. 남자는 자기의 과거를 나한테 들려줌으로서 자신의 동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의 동굴속에 다시 갇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어처구니 없게도 피식 웃어벼렸다. 바보같이 왜 그런 순간에 웃어버렸는지 나도 알수없었다. 남자도 따라 웃었다. 그러면서 나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언제 또 오실거예요?   나는 당황했다. 또 온다고 약속한일도 없고 올일도 없는데 남자는  내가 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자신이   또 와야 하는 리유를 알지못했기에 나는 그가 왜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지는 더욱 알수없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이 희미한 웃음이 남자의 한생을 잘 견디게 할수도 있고 남자가 다시 자기의 동굴에 갇히게도 할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내가 집을 나올때 남자는 뒤에서 오래동안 지켜보고있었다. 나의 발자취를 듣고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떠나가는 나의 발자취를 들으면서 내가 다시 올것인지, 안 올것인지를 점치고 있었을것이다. 어느 쪽이든 남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하기를 나는 바랬다. 또  비가 오려는지 멀리 동쪽하늘에 물기를 주체하지 못해 배가 부른  구름파편들이 낮게 떠 있었다. 지금부터 남자는 비에 대한 어두운 빛을 거두어 내는 어려운  작업을 시작할테지만 나는 비가 올때마다 그남자를 떠올리게 될것이고 그 남자가  갇혀살았던 동굴속에  한동안 갇혀 있게 될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남자의  동굴에서  벗어나게 될것이이리라.                                                             2007. 5 .1. 연길에서
3    [단편]고요한 풍경 댓글:  조회:1123  추천:43  2009-02-17
  아침에 출근했던 그 차림으로  집에는 알리지도 않고 몰래 도망이나 치듯 나는 곧추 뻐스정류소로 걸어갔다.    왜 갑자기 고향에는 가고싶어졌는지. 아무도 없는 비여있는 고향집에 가서는 뭘 할건지. 아마도 무언가 근원적인것에 대한 그리움때문이 아니면 누데기처럼 자신의 삶에 걸쳐있는 불투명하고 숨막히는 불안에서 해탈하고싶은 항변이였을거지만 나는 그 어느쪽이라고 분명히 갈라 말할수 있게 마음이 정리가 되여있지 않았다. 이 시각 다만 서로의 약점을 최대한으로 비하시키는 가정불화만 아니였어도 이 길은 영원히 걷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있었을뿐이였다.    뻐스에 오르자 뿌연 먼지와 휘발유냄새에 입안에 꼴딱 멀미가 스멀거렸다. 나는 괴롭게 눈살을 찌푸리며 차창곁에 가 자리를 잡았다. 좌석은 절반이나 비여있었다. 사람을 다 채우고 떠나려는듯 차장은 목을 빼여들고 결사적으로 손님을 부르고있었다. 나는 멀미를 말릴겸 차창을 열어젖히고 얼굴을 창가에 가져갔다. 연기같은 흙먼지가 바람에 떠밀리며 금방 내가 걸어왔던 거리를 시위하듯 굴러다니고있었다.    어제밤에도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바람소리는 짐승의 괴성처럼 색갈이 짙었다. “무슨 소리냐, 이게?”    조금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문창지 찢듯 어머니의 방에서 다급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방문이 벌컥 열리며 앙상하게 마른 어머니의 할쑥한 얼굴이 내다보고있었다. 무엇엔가 쫓기듯 허둥거리는 눈빛에서 자기 생명보다 소중한것을 찾고있는 절실함이 끈끈히 고착되여있었다.“바람소리꾸마 엄마.”글을 쓰면서 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문댕기는 소리다. 바깥에 누가 온갭다.”어서 문열어주라는 호소가 목소리에서 타고있었다. 하긴 하루종일 문소리에만 신경을 쓰는 어머니께서 잘못 들을리 없을것이였지만 그건 분명히 바람에 흔들린 문소리였다. “날래 문 열라는데 왜 그러구있나? 멀쩡하게.”당금 일어날듯 어머니는 두손으로 문턱을 잡고 엉거주춤 둔부를 일으켰다.“바람소리라는데 왜 자꾸 이램둥, 어마이는?”주방에서 문희가 꼬집듯 내받아 소리쳤다.“내가 잘못 들었겠냐?”    활등처럼 휘여든 허리를 뒤로  홱 젖히며 어머니가 일어섰다. 노염이 파르르 성에처럼 내돋힌 얼굴이다. 앞치마를 두른 문희가 주방에서 씽 달아나오고 있었다.“여보오!”    나는 다급히 처를 불러세웠다. 어머니도 까다로왔지만 문희 역시 고집이 세기로 소가 아줌마라 부를 지경이였다. 고부사이에 언어가 증발해버린듯 서로가 철통처럼 입을 닫고있다가도 일단 맞붙기만 하면 침묵전의 고함처럼 말썽이 길고 지루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나는 충실히 싸안아야 했다. 단, 형 하나때문에 나는 그런 각색을 놀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것이다.문희는 어머니앞에서 출입문을 활짝 열어제꼈다.“봅소. 바깥에 뭐가 있다구 그램둥?”그녀의 목소리에는 무딘 머리가위마냥 물어뜯는데가 있었다.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복도의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통바람이 유희를 하듯 철문을 흔들어놓고는 달아나고있었다.“꼭 사람이 댕기는것 같던데…”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슬펐다.“누굴 기다리는지 알겠지만 어마이두 잊을 땐 잊으셔야지. 그냥 이렇게 성가시게 굴면 한집에서 어떻게 삼둥 예?”    문희는 그예 어머니의 급소를 찔렀다. 그냥 형을 기다리고 그러면 한집에서 못산다는 선언과 같은 말로써 말이다. 어머니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나는 처한테 눈을 지릅떠보이고는 어머니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엄마, 어째 이램둥?”옷꾸레미를 부둥부둥 꿍지는 어머니 손에서 보따리를 빼앗아서 궤속에 쑤셔넣었다. “여기서 헐일도 없는데 룡두골로 내려갈란다.”“거기 가선 뭘하겠슴둥. 다 빈집인데.”“글피문 네 형이 집나간지 벌써 한해째다. 마, 아, 혹시 룡두골에는 와 있재는지…”“엄마아!”어머니는 궤에서 다시 보따리를 꺼내고있었다.“날 상관하지 말어라.”    목소리는 찢어진 북처럼 울었지만 눈빛은 전에없이 쌀쌀하고 담담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리해를 단념한 나머지 더는 자기만의 세계에 다른 사람의 접근과 참여를 거절하는 그런 단단한 모습이였다. 가슴이 꿈틀하는 순간 이름할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숨통을 조이는듯한 불안이 다가섰다. 두려웠다.    형이 집을 나간후 나는 룡두골 초가에 그냥 남아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어머니를 억지로 연길로 모셔왔다. 자식된 도리를 한것으로 하여 나는 마음의 평형을 잡게 되였지만 어머니는 되려 송곳방석에 앉은듯 불안해하셨다. 조그마한 바깥 동정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문을 열어보고야 시름을 놓았다. 형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였지만 그것이 며느리와의 갈등을 일으키는 초점이 되기도 했다. 며느리가 안 좋아하는 눈치를 챈 다음부턴 나 혼자 있을 때만 바지띠 조이듯 졸랐다. 형이 혹시 돌아오지 않았나 룡두골에 갔다오라고.. 하지만 번번이 건성으로 예예, 외쟁이 헛대답하듯 하고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수염을 빡 씻고있었다. 사실 기어이 형을 찾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과는 반대로 나는 형이 불쑥 나타날가봐 두려웠다. 룡두골에 가기 싫은것도 바로  거기서 진짜로 형을 만날가봐서였다. 그러고보면 일찍부터 형의 가출을 은근히 바라고있었던것인지도 모른다.(부실한  형을 기어이 찾아서는 어쩌자는거유 엄만? 누굴 고생시키자구 예?)     나는 혀끝까지 말려나온 말을 도로 삼켰다. 붙는 불에 키질이지 그런 말로는 절대 어머니의 마음을 눅잦힐수 없었다. 좌우간 어머니를 주저앉혀야 했다. 쓰고있는 원고를 끝내고는 곧바로 룡두골에 갔다 올것이라고 다짐을 하고서야 나는 겨우 어머니의 옷꾸레미를 풀수 있었다. 사실 룡두골에 언제 갈지는 미결이였다. 쓰고있는 원고가 시작에서 잘 내려가지 않아 완성될지말지한 상태에 있었기때문이다.    최근 들어와서 나는 자신이 더없이 황페하고 지쳐있음을 발견하였다. 까닭없이 우울하고 불안하여 하는 일이 도무지 되는게 하나도 없었다. 글이고 뭐고 다 때려부시고 다른 일을 시작해볼가고 궁리하다가도 나이 사십을 먹고 그게라고 될가 싶어, 비전이 없는 글인줄 알면서 맨날 오리발 긁듯 긁적이고있는 형편이였다.    어떻게 해서든 잡지사와 맺은 소설련재계약은 완성해야 했다. 환경이라도 바꾸어볼라고 이튿날 나는 원고뭉치를 꿍져가지고 사무실로 나갔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벌써 동료작가들이 트럼프치기로 시간을 할인하고있었다. 시작한지 한참은 되는 모양, 어둑스레한 방안에 담배연기가 뽀얗고 저마다 표정들이 진지하게 굳어져있었다.“어, 정호.. 자네두 와서 끼이라구.”출입문 맞은켠에 앉은 친구가 오른손을 반쭉 추켜들며 반색을 했다. 그는 시인이였다.“놀라구, 난 좀 뭘 써야 하네.”“뭐, 지금도 그짓 하구있나? 인생을 랑비하지 말라구. 바보처럼.”누구하고 분풀이라도 하듯 괜히 팔에 힘을 넣어 트럼프장을 던지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나를 쳐다보았다.    비전이 없는 글을 쓸거면 아예 시간을 랑비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공허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그의 눈길에서 문학의 지위하락이나 침체상태를 경험하고있는 문인들의 신음과 위기를 보았기때문이였다. 가슴이 그지없이 답답하여 잠간 서서 구경하다 말고 나는 그곳을 나와버렸다. 어디를 갈가 망설이다 나는 결국 아빠트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항변이나 하듯 피여나는 장 항아리의 곰팡이처럼 완강한 대립상태의 집안 분위기를 피해서 나왔던것인데 도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이 형편없이 초라해 보였다. 문뜩 보이지 않는 고삐에 잡힌 강아지마냥 집에서 사무실로, 사무실에서 다시 집에로 그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생활, 이 도로표식같은 금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좀처럼 그 금을 벗어날줄 모르는 기계적사고방식을 길들였던 함정이였음을 나는 깨달았다. 가자, 어디든지 가자! 모든것을 버리고 새롭게 본질적인것과 마주하고싶은 균열이 강하게 일어나는 순간에 이상하게도 룡두골이 풍경처럼 떠올랐다.“손님, 자리표 좀 봅시다.”    창문가에서 고개를 든 나는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화장이 진하여 조금은 야하게 보이는 젊은 녀자가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가 아마 그녀의것이였는 모양이다. 나는 소리없이 자리를 내여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앉던 젊은 여자가 나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어디서 딱 보던분같은데요?”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초하루 장날에도 보았던 기억이 없는 전혀 낯선 얼굴이였다. 한데도 여자는 쏘는듯한 눈빛을 정면으로 박아오면서 피할려고 하지 않았다. (철면피한 년 같으니라구.)    여자가 남자를 꼬시는 상투적인 수법일거라고 단정을 하고 나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 그냥 묻고싶은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아예 짜증이 나서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멀미때문인지 기분이 구겨지고 하품이 자꾸 쏟아져나왔다. 될수 있는 한 정신을 풀어놓고 다른 시간과 엉뚱한 장소를 헤매면서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형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가. 과연 이 세상에 살아있기나 한지? 형이 집을 나가게 된 사연을 생각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알찌근한 통증을 느꼈다. 그날은 어머니의 생신이였다. 늘 그랬듯이 형제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나는 어머니를 연길로 모셔가는 일을 화제에 올렸다.“엄마, 이번엔 저희들을 따라 가깁소.”대책도 없는 말을 나는 버릇처럼 반복했다. 말로라도 모셔간단 소릴 해야 아마 어머니나 형제들한테 덜 미안하다고 생각했던것 가탇.“저걸 어떻게 하구 내가 너희들 따라간다구 그러냐?”    어머니 역시 언제나와 같이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 했다.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도 후년에도 어머닐 모셔가는 화제는 아퀴가 지어지질 않을것이다. 백치형이 있는 한은 그랬다. 하지만 몇년 몇십년을 이렇게 지내야 하는건지. 이대로 있다간 백치형 먼저 어머니가 돌아가실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백치형까지 곁들여 도회지로 데려갈 처지도 못되였다. 침실이 두칸짜리 아파트여서 잠자리가 불편한것도 문제였지만 문희는 백치시형을 보지도 않고 생각만해도 배속에 들어갔던 밥알들이 곤두일어선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애가 보면 닮는다고 중학교를 졸업하도록 한번도 룡두골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손자가 할머니 보러 다니는게 아니라 거꾸로 할머니가 손자보러 다니지 않으면 안되였다.    룡두골에 빈집이 늘어갈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마을에는 가는 귀 멀어서  귀먹쟁이라 불리우는 인석이네와 자식이 없는 덕수령감 그리고 주정뱅이 재춘이네만 남아있을뿐이다.“엄마, 약이래두 먹이믄 안되우?”시가지에 들어가 막일을 하는 동생 정식이의 말에 시집간 막내 여동생도 맞장구를 쳤다.“정말 오빠, 아무 방법이래두 있어야지. 엄마가 불쌍해 죽겠소.”    나는 놀라운 눈길로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어머니를 생각해서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 생각을 가질수 있을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동생들이 리해가 되였다. 나 역시 약을 먹여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뿐이지 형이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전혀 없은것은 아니였다.“아무리 그런들 어찌 약을 멕이냐.”어머니가 끔찍스럽고 한심스러운듯 혀를 끌끌 찼다.“그래두 너들 형제들 중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한건 걔다. 너희들 그걸 잊어서는 안된다.”이때 문소리와 함께 백치형이 먼지를 이끌고 들어섰다. 그는 웃입술까지 내려온 코물을 흐르륵 들이마시면서 히죽히죽 웃고있었다.“씨…다…다 먹어치웠다.”    두손에 무둑히 딱지가 쥐여있는걸 보니 동네 조무래기들하고 딱지치기를 하고 오는 모양이였다. 나이를 먹었다고 코밑과 턱밑에 검실검실하게 수염이 돋아나는데도 의식은 코흘리개 아이들만큼도 안되였다.“머저리같은게 빨리 나가 죽소. 엄마를 그만 좀 속 썩이구.”정식이가 웃몸을 솟구치며 꽥 소리지르자 형은 웃음을 거두고 떠듬거렸다.“어, 엄마…정,정호네 집에 가우…내, 혼자…살게.”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냥 정신없는줄로만 알아댔는데 그도 우리가 어머니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줄을 알고있었던것이다.“형이 있는데 엄마가 어떻게 연길루 가우 양?”    정식이가 눈을 지릅뜨자 형은 비실비실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후로 형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들은 그가 집을 나갈 때만은 제 정신이 들었던게라고 말했다.    과연 형은 자기가 없어져야만 어머니가 연길로 갈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가. 아니. 이것은 정상인들이 자신을 위한 해석에 불과할것이다. 그는 근본 그런것을 생각할수도 없었을것이며 오직 동생들이 두려워 집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가 형을 핍박하여 죽음에도 몰아낸 가해자들일수밖에 없다.    모든것이 어머니를 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슬픔만을 더해준것을 보면 젊은이들의 괴로움은 나뉘여짐으로써 그만큼 가벼워지지만 늙은이는 자기의 슬픔을 나누어줄수 없는 모양이였다.    뻐스가 룡두진에 도착했다. 그곳에 종착였이였기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붐비는속에 끼이기 싫어서 조용히 제자리에 서있는데 곁에 앉았던 여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손님은 룡두진에서 사신적 없어요?”“아니!”    나는 짤막하게 머리를 저어 두번 다시 그런 화제에 흥미가 없음을 암시하였다. 탐닉한 구석이 없지 않는 그런 끈질긴 유희 뒤끝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십중팔구는 좋은 여자가 아닐거였다. 갑자기 그녀가 신대륙이나 발견하듯 환성을 질렀다.“아, 참, 이제야 생각나요. 선생님은 작가시죠?”이 돌연적인 변화에 나는 어정쩡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아는지…?”“텔레비에서 소개하지 않았나요?”    나는 쑥스럽게 피씩 웃고 말았다. 턱거리없이 그녀를 나쁜 여자로 몰아부쳤던 순간이 미안했다. 어쩜 그냥 이 모양일가. 서로의 각축으로 차겁게 닫겼던 세월을 살았던 세대여서일가.“그래서 어디서 딱 보던분 같죠.”    그녀는 얼굴을 밝게 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뒤모습을 지켜보다말고 나는 룡두골에 가닿아야 했던것이다.     야산의 음지에는 아직도 흰눈과 얼음이 버짐처럼 하얗게 남아있었다. 수림속에 들어서면섯 바람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마른나무들이 몸을 뒤척일때마다 도깨비가 눈깔을 까집는듯한 무서운 소리가 산을 흔들었다. 마치 온갖 짐승들이 한꺼번에 울어제끼는듯 수림이 우는 소리는 가지각색이였다. 산고개를 넘자 룡바위가 보이였다.     옛날에 룡이 가끔씩 내리군 하여 룡바위라 불리웠다는 전설의 바위가 한때 현대적인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하여 사람들을 놀래웠던적이 있다.    몇해전에 룡칠이라는 농민의 두 아들이 룡바위아래에서 조밭 기음을 매고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지더니 한순간 구림이 걷히고 룡바위우에 칠색무지개가 가로 놓이고 그밑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금룡이 앉아있더라는것이였다. 놀라움에 넋을 놓고있던 두 형제가 호미를 밭에 버려둔채 마을에 내려와 그 자초지종을 얘기하여 숱한 사람들이 룡바위밑에 가보았을 땐 이미 무지개도 금룡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환각현상의 반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태양의 기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로 남아있는 룡바위의 현대전설이다.    나는 룡바위를 뒤에 두고 황토빛 자트락길을 따라 산아래로 내려갔다. 산비탈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었다. 마을어구에 들어서던 나는 뭔가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에 가슴부터 내려앉았다.    문짝이 떨어져나간 찌그러진 초가들이 광야에 던져진 해골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져있었다. 눈에 익은 골목과 농가의 풍경은 낡은 액자속의 오래된 사진처럼 뿌연 바람속에서 퇴색하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을 감고도 찾아들어가군 했던 나의 옛집이 어느 집이던지 알수 없어 마을주변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비여있는 집들의 모습은 너무나 똑같았다. 흰덧칠이 벗겨져나간  흙벽, 바람에 나붓기는 초가이영, 떨어져나간 문짝, 약속이나 한듯 한쪽으로 쓸어지는 모양은 마치 한 도본으로 찍어낸  복제품 같았다. 서로 많이도 다르게 살았던것 같은데 이렇게 똑같게 살았다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것은 생명을 갖고 살아있을 때만이 값있고 값없고가 존재하는것이지 생명이 소실된 그뒤에는 시체라는 한 개념으로만 남는 모양이다.    나는 눈에 익은 늙은 개살구나무를 찾아냈다. 그것은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이사오면서 심은것인데 이 마을에서 제일 크고 제일 오랜 나무였다. 개살구였지만 기막히게 맛있어 우는 애한테 “정호네 살구를 준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    나는 어려서 체질이 작고 약골인데다 형이 바보인 까닭에 애들속에서 늘 따돌리웠다. 하지만 여름철만은 례외였다. 런닝샤쯔에 살구를 담아가지고 나가면 애들은 나를 군사놀이에서 대장을 시키기도 했고 편을 가를 때는 서로 자기네 편에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다. 그래야 살구 한알이라도 더 얻어먹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혹시 애들하고 싸우기라도 하면 나는 말없이 살구나무우에 걸터앉아있군 했다. 얼마 안있으면 애들이 우르르 쓸어와서 살구만 주면 화해할수 있다는 눈치를 꺼리낌없이 내보인다.     나는 그애들에게 살구를 따주고는 나무에서 내려온다. 그시절 살구나무는 나의 자존심이였고 보호신이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여름철 한때뿐이였다. 살구나무의 열매를 다 따먹고 잎마저 다 떨어지고나면 나를 찾아오는 애들도 없어진다. 나절로 용기를 내여 섭쓸리려 하면 그들은 언제 너의 살구를 얻어먹었더냐싶게 나를 따돌리였다. 그때는 살구가 달리는 여름철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썩 후에 개살구나무는 늙어서 살구도 얼마 열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늘때문에 터전에 채소를 못심어먹는다고 몇번이나 베여버리려고 했지만 내가 너무 아쉬워하는바람에 끝내 베여버리지 못했다.    나의 생애보다 긴, 썩 먼저 할아버지, 아버지의 세대까지를 지켜보았던 개살구나무가 올봄에도 꽃이 필런지. 꾸부정하게 휘여들고 말라서 숨이라고는 없는듯한 고목나무를 나는 보듬어안았다. 마치 고향집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로문한 할아버지를 위로하듯 터슬터슬한 나무걸이를 자꾸 쓰다듬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이 없던 여름, 긴긴 오후의 허기와 쓸쓸함을 달래주던 살구나무, 배고픔으로 잠 못 이루고 뒤척거렸던 긴긴 겨울밤, 대들보에 매여단 하얗게 곰팡이가 낀 메주덩이를 내리워 쪼개여 먹으면서도 맛있었던 그때, 고달픈  부모님들의 매질과 욕설을 부적처럼 달고있었지만 균열을 모르고 평화로왔던 집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곳에 머물렀던 모든 세월을 털어내며 평화를 깨며 재처럼 조용히 고삭아가고 있었다.모든것이 낯설었다. 익숙한것의 사라짐. 그 낯설음때문에 금시 눈물이라도 쏟아낼듯 싶었다.    집식구들의 옷깃 스치는 소리만 들어도 문밖으로 뛰여나와 다리에 칭칭 감기던 검둥이, 동생을 형이라고 부르며 반갑다고 헤헤거리며 검둥이와 어울어져 풍풍 뛰던 백치형, 바로 이 마당에서 있었던 그날의 목가적인 풍경은 다시는 있을수 없는 엣이야기가 되였다.    마음에도 령혼에도 온통 빈구멍이 뚫린것처럼 황량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추운듯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정지간 문쪽으로 다가갔다. 열려진 출입문으로 얼굴을 들여놓고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집안에서 마른 검불을 헤집는 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사람이 돌아눕는듯한 둔중한 움직임이였다. 형이 돌아왔을가. 벌써 아래다리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이렇게 호젓한 곳에서 홀로 형을 만나는것이 죽도록 싫었다. 도망이라도 가고싶었다. 과연 형을 집으로 데려갈수 있을가. 어머니는 기뻐하실것이고 안해는 기절초풍할것이다.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난 뒤에 어머니가 형을 데리고 룡두골에서 살겠다고 보따리를 싸지 않으면 안해가 리혼을 한다고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설것이다.     에익, 될대로 되라지. 나는 출입문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어두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저녁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던것이다. 나는 한참 그러고 서있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보았다.“형, 나 정호요.”    순간 부엌에서 마른 검불 헤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것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한마리의 검은 짐슴이였다. 흰이발을 드러내놓고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눈에는 린불같은 파란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금방 아래 종아리를 물고 늘어질것 같은 기세였다.    허겁지겁 뛰여나오다 나는 문턱에 걸채여 힌둥 나가 뒹굴었다. 짐승이 쫓아와 바지가랭이를 물어당겼다. 다음 순간에는 살점을 물어뜯을것이다. 정신이 아찔했다. 넋이 밖으로 빠져나라버린듯 나는 저항할 힘마저 버리고 늘어져있었다. 그런데 검은 짐승은 물었던 바지가랭이를 놓고 코를 벌름거리며 쿵쿵거리더니 꼬리를 내리뜨리였다. 그리고나서 잠간 멍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비칠거리며 빈집으로 도로 들어가는것이였다.“워리!”    나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환성이 터져나갔다.    형이 가출할 때 함께 없어졌던 검둥개였다.    오래 헤여졌던 가족을 만났을 때와 같은 뜨거운것이 뭉클하고 가슴에 번졌다.“워리. 워리.”    나는 반가움에 겨워 개를 쫓아가며 불렀다. 검둥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자리에 눕더니 턱을 땅에 붙이고 눈을 감는것이였다. 비루먹은 개처럼 여위여있었다. 턱을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내미는데 검둥이가 두귀를 쭈빗 세우며 눈을 부릅떴다. 그 서슬에 나는 손을 엉거주춤 사리면서 저주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영원히 알수 없는, 풀어낼수 없는 한과 슬픔 그리고 원망까지도 튀여나올듯싶은 눈빛이였다.    그 눈빛속에서 다른 한쌍의 눈이 환각처럼 살아났다…    그날은 나의 결혼식이였다. 오후 두시쯤 색시를 실은 승용차가 룡바위골에 들어서고있을 때 수림속에서 갑자기 검정옷을 입은 한 장정이 튀여나오며 길을 막았다. 백치형이였다. 차가 급정거를 하자 형은 색시가 앉은쪽의 유리문에 얼굴을 납죽하게 붙이고 히죽히죽 웃고있었다.말대가리같은 길다란 얼굴에 흰창이 많이 드러난 큰 눈, 오른쪽 귀밑으로 이그러진 큰 입속에서 류달리 길다란 호박색 이발이 드러나있었다.유령같았다. 문희는 기겁한 소리를 지르며 나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히,히…정호각시다…정호각시다.”    경멸과 모멸감에 일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운전수에게 상관하지 말고 차를 몰라고 시켰다. 차가 떠나자 형은 쥐여짜듯 온 얼굴을 찡그리며 어헝어헝 울면서 차의 뒤꽁무늬를 따라 뛰였다.“저게 누구예요?”    의문으로 가득찬 문희의 시선이 나의 얼굴에 꽂혀왔다. “형이요!”볼부은 목소리가 튀여나갔다.“형?”짧게 되묻는 그녀의 어조에는 분노가 서린듯했다.“부실한 형이 있다는 사실을 왜  속였죠?”그녀의 눈빛엔 뾰족하게 날이 서있었다.“속이려 했던건 아니요.”    목에서 넥타이를 끌러내여 신경질적으로 호주머니에 쑤셔넣으면서 나는 반발을 했다.“알려주지 않았으니 속인거죠.”“문희가 묻지 않았으니깐 대답을 하지 않았을뿐이요.”“우리의 결혼은 비극이예요.”“우리 둘 결혼에 형이 무슨 상관이요?”“인간의 유전자속에 들어있는 복제성은 너무도 끔찍한거예요. 생각만 해도 두려워요.”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아, 나는 왜 미처 생각을 못했을가. 수치로부터 일순 현훈증같은 환멸과 분노를 느꼈다. 생물학에서 유전자의 이동방식이나 물질적기초, 그리고 외계와의 관계따위를 배웠기때문에 생물의 형질이 어떻게 자손에게 나타나는가 하는것ㅇ르 모르는것은 아니였다. 다만 형의 정신질환은 선천적인것이 아니고 후천적인것이기때문에 유전인자와 문관한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뿐이다. 그녀의 첫날 화장은 눈물에 지워지고있었다.“당신이 절 속인건 계획적이고 의도적이였죠?”“그건 진짜 모욕이야!”“당신이 미워요.”“지금도 늦지 않았어. 미우면 그만두라구.”“엎지른 물이예요. 우리의 아이는 벌써 두달인걸요.”    나는 공포와 두려움에 그녀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나 자신의 무책임이 한없이 후회되였다.    뽀얀 흙먼지속에서 두주먹을 불끈 쥐고 노루뜀을 하며 쫓아오는 형의 모습이 승용차의 렌즈에 풍경처럼 들어와 있었다. 형을 죽이고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되였다.    차가 마을에 도착한후 나는 길목을 지키다가 뒤미처 따라온 형을 끌고 뒤산에 올랐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장작 패듯 형을 패기 시작했다.  주먹과 발길질이 떨어질 때마다 형은 자음과 모음을 분별할수 없는 끼억끼억 하는 소리를 낼뿐 반항은 하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숨이 턱에 닿아 올라왔다.“정신없는것을 왜 치는거니? 응, 병신이라구 치는 인간은 그래 병신보다 낫다구 생각하는거냐?”    어머니한테 떠밀리운 나는 한쪽켠에 죽은듯이 쓰러져있는 형을 쏘아보았다.“네가 장가 가는걸 지가 장가 가는것보다 더 좋아했다. 장가가 뭔지 알기나 하는지…”    옷섶으로 코물을 훔치면서 어머니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일하기 싫어서 빈둥거리구 돌아다니다가도 ‘너 그러믄 정호가 장가 못간다’구 하면 제 정신없이 뛰여가서 일하군 했다. 오늘아침에두 그게 몇시냐, 네가 색시 데리러 떠나자부터 새옷을 입구 룡바위 있는데 가서 기다렸다. 정호각시 마중간다구…아마 다섯시간을 기다렸을거다. 이렇게 물매를 맞을줄은 모르구…”    형은 뿌연 유리알처럼 무표정하고 건조하게 스쳐가는 눈길을 먼산에 주고있었다. 모든것을 거부하는 완고함과 단절을 의미하는듯한 차거운 눈빛이 까닭모를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다주었다. 그 눈빛은 검둥이의 눈빛과 너무 흡사하였다.    나는 모의라도 있는 사람처럼 검둥이를 뿌리치고 일어났다. 검둥이가 왔으니 형도 어디엔가 있을듯싶어서였다. 고방이며 사랑간이며 뒤뜨락이며 지어 빈 돼지우리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검둥이는 혼자 돌아온것이다.    함께 나갔다가 홀로 돌아왔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나는 검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형은 대체 어디 있는거냐? 넌 그새 어디로 갔다오구?    끼이잉. 검둥이는 갑자기 앓음소리를 내며 사지를 몹시 뒤틀었다. 입에서는 거품이 질질 흘러나오고있었다. 검둥이는 병들고 있는것이다. 애처롭게 바라보는 뿌연 눈길이 인간에 대한 고독과 절망, 환멸과 분노를 시사하는듯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검둥이는 죽어가고있었다. 나는 죽어가는 검둥이를 지켜보면서 생명이란 원래 너무너무 시시하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사사건건 꼭 바보형을 건드려서는 경멸을 하군 하던 문희, 나와 그녀는 마치 과학적으로 서로를 죽음에로 이끌어가듯이 상대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하루하루를 줄이고있었다. 그러고보면 산다는것은 어차피 별게 아니였다. 어찌보면 옛집을 찾아와서 운명을 하는 검둥이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에 비해 퍽 아름다운 풍경일지 모른다.     격렬한 떨림을 밀어낸채 조용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검둥개를 남겨두고 나는 빈집을 나왔다.    시골의 풍경우로 음울한 빛갈의 저녁 어스름이 낡은 모포처럼 펼쳐져있고 새떼가 지나간 공간에 정적이 흔적처럼 남아있었다. 소리는 모습보다 질긴 모양으로 어둠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풍경의 끝은 시야밖으로 까마득히 사라지고있었지만 사라지는것의 소리만은 고요로 남는다. 그것이 되려 날개를 펴는 숲과 락조속에서 이물감없이 더 잘 어울리는것일지 모르지만 마을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나의 가슴에는 비여있는 집만큼의 큰 어둠이 시뿌연 빛갈로 조용히 내리고있었다.
2    [단편소설]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 댓글:  조회:3020  추천:32  2009-02-02
[단편소설]하수구에 돌을 던져라허련순1     그때  어렴풋이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세번을 울리고 조금 쉬였다가 다시 세번씩 꾸준하게 울리고있었다. 누구지? 무심히 몸을 일으키다가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로 누워버렸다. 어제밤에 밤늦도록 장사를 하고 새벽녘에 돌아와 겨우 눈을 붙인지 얼마 안되였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낮장사를 할려면 만사 젖혀놓고 잠을 자두어야 했다.  열어주지 않으면  물러가겠지… 제가 바쁘면 다른 시간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라구… 나는 다시 잠을 청하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하지만 주저하듯 주춤주춤 움추린 소리가 끊어지는듯하다가는 다시 이어지면서 지루하게 울렸다. 마치 쇠붙이로 유리를 긁는 소리처럼 신경을 자극하여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쉽게 포기할것 같지 않았다. 열어주지 않으면 그냥 돌아갈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열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차피 다시 잠들기는 틀렸다. 나는 침대아래에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들과 헝클어진 잠자리, 그리고 자다 깬 푸수수한 나의  모습에 망설여졌다. 여직 단 한번도 가족 아닌 다른 사람한테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적은 없다. 물을 팔아먹고 사는 녀자는 절반은 얼굴을 팔고 산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다.      망설이고있는 사이, 문뜩 노크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쳐 부르거나 아니면 주먹으로 문을 세게 때리거나 발로 차지도 않고 비소리가 멎듯 슬그머니 끊겨버린것이다. 상대가 미처 알아차릴 새도 없이 말이다.        한참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혹시나 하고 귀를 기울려도 다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때 오히려 이른새벽에 남의 집을 찾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 방문객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나는 쫓기듯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마치 오래동안 기다리고있었던 사람이 가버렸을 때처럼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는 문을 따고 아직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둑스레한 복도를 내다보았다. 거기에는 아무도 있질 않았다. 좀 더 빨리 열었을걸. 하고 후회하며 문을 도로 닫으려던 참에 층계아래 맨끝자락에서 인기척이 났다. 거기에 까만색 바바리를 입은 녀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올케였다. 그녀는 원래도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오늘따라 몸집이 더 왜소해보였다. 아마 까만색 바바리때문일거라고 나는 단정했다.      ―우머, 난 또 누구라구. 이렇게 일찍한 시간에 올케가 웬 일이야? 련락도 없이. 하마트면 문을 열지 않을번했잖아. 새벽에 장사를 하고 늦게 와서 어찌나 피곤한지 밖에 누가 온줄을 알면서도 그냥 자려구 하다가 느낌이 좀 이상하더라니깐. 그래서 문을 열었지 뭐야.      그녀를 밖에 오래 세워둔것이 미안하였던지 내 마음 같지 않게 말이 수다스러웠다.  내가 듣기에도 지나치게 수선을 떠는것 같아 민망하고 어색했다.       그녀는 그러는 나의 말과는 상관없는 사람인듯 묵묵히 다른 곳에 시선을 주고있었다.  집안에 사람이 있으면서 열어주지 않은줄을 이미 알고있은 사람처럼 담담했다.      ―뭘 해? 얼른 들어오지 않고?     그제야 그녀는 뚜벅뚜벅 문께로 다가섰다. 바닥 전체에 밑창을 잔뜩 높인 구식구두가 불편한듯 걸음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저 구두를 아직도 신었나? 몇해전에 내가 그녀한테 줄 때에 벌써 한물갔던 구두였는데 지금도 버리지 않고있다니. 알뜰한건지 아니면 시체를 모르는건지. 나는 속으로 칭찬도 비평도 아닌 경탄을 했다.      거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두발은 맨발이였다. 여위고 작은 두발이 맨발인것이 부끄러운듯 빨갛게 상기된채 발가락이 안으로 잔뜩 꼬불어져있었다. 무슨 조짐처럼 다가서는 그 벗은 발을 보면서 나는 올케가 집에서 오는것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때문만은 아니였다. 어딘가에서 아무렇게나 밤을 지내고 온것 같은 비일상적인 흔적이, 아니 타인의 체취 같은것이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배여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례사롭지 않은 그녀의 방문으로 나는 숨을 죽인채 조심스럽게 방바닥에 방석을 깔아주면서 앉기를 기다렸다. 허탈한 모습으로 잠자코 서있던 그녀가 방석을 한쪽에 밀어놓으며 앉았다. 그리고 방석으로 벗은 발을 가렸다.      집에서 오는것 같지 않구만. 그런 말을 하려다가 나는 그만 두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냐고 묻고싶었지만 그것도 묻지 않았다. 잘못된 의문이 되려 상대를 괴롭히게 되므로 그냥 내버려두는것이 좋을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한 리유같은것은 없었다. 웬지 세상에서 슬쩍 비켜서있는듯한 그녀가 늘 조심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나를 피한건지 아니면 내가 그녀를 피해온건지 모르게 우리는 서로 어렵게 지내오는 사이였다. 그랬으므로 우리들 사이에는 어려운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외에 끈끈한 정 같은건 별로 형성되여있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텅비여있었다. 주위를 보는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듯 그녀의 시선은 늘 이렇게 비여있었다.      ―저, 집에서 나왔어요.     놀라우리만침 목소리가 차분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나왔다는 말, 가출이라는건지 아니면 리혼을 뜻하는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나왔다는 말인지, 아무튼 그 세가지중 어느 한가지도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서 쇼를 하는것처럼 여겨졌다. 자라지 않는 식물처럼 언제나 한곳에만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던 녀자였다. 시집와서 밖에 나가 돈을 버는 일을 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다. 마치 아이를 낳고 집안 살림을 하기 위해 태여난 사람처럼 시집와서 아들 둘을 낳고 묵묵히 집안에만 박혀있었다. 할 일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종일 낮잠을 자면 잤지 옆집 출입도 하지 않는다. 가정에 큰일을 결책할 때 끼이는 일도 없었고 자기 주장을 세워 빡빡 우기는 일도 없었다. 가끔씩 불만스러운 일이 있으면 한번쯤 빤히 쳐다보다가 하루나 이틀씩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닫고있는것이 고작이다. 그래서였던지 누구든 그녀에게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얻는 사람이 없었고 다만 결정을 통보만하면 되였다. 그만큼 그녀는 우리 가정에서 쉽고 편안한 존재였던것 같다. 가끔 명절이나 어머니생신때에 만나긴 해도 그녀는 조용조용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식사가 끝나면 설겆이를 하고 설겆이를 끝난 다음에도 가족끼리 하는 마작이나 트럼프패에도 끼이지 않는다. 명절이면 놀음에서 소외되는 아이들과 시어머니와 함께 화투장을 번지면서 10전내기를 하는것이 고작이였다. 체질적으로 놀음을 좋아하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소외되는 아이들과 어머님을 배려하기 위한 노력인지 굳이 테스트해본적은 없지만 그녀가 놀음에서 설치는 일은 여직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마을에서 자기 또래들이 즐기는 놀음에도 잘 나가지 않아 친구도 없다. 어찌 보면 어머니의 말대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였는지 모른다.      ―집에서 나오다니? 왜?      ―싸웠어요.     나는 어처구니없어 픽 웃어버렸다.      ―싸웠다구 집 나와? 배짱두 좋구만.     너무 황당하여 웃었는데 그 웃음이 그녀의 비위를 거슬렸던 모양이다.      ―왜요. 난 집 나오면 안돼요?     그녀가 발끈했다. 그리고 두눈을 똥그랗게 뜨고 노려보고있었다. 눈빛이 심드렁했다. 두려움이나 불안도 분노도 아닌 심드렁이라니. 그것은 거만이였고 상대에 대한 철저한 거부 내지 무시였다. 순간에 나는 서늘한 단절의 기운과 함께 차거운 생소함을 물씬 느꼈다. 그리고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반응에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나는 얼버무렸다.      ―안된다는건 아니지만 부부싸움이라는건 집에서 해야 되는게 아니야? 싸우구 집 나오면 다시 들어갈 땐 괜히 쑥스럽구. 부부지간의 사이만 더 멀어지더라구.  그래서 나는 아무리 크게 싸워도 집은 안나갔어. 그러니깐 이튿날이면 모순이 풀어지더라구.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을 리해시키려는듯 나는 이렇게 입을 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격한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는듯 두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오래동안 말이 없었다. 나의 말을 듣고있는것 같기도 하고 아예 듣지 않고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녀는 깊이 갈등하고있었다. 무얼가? 그새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가. 요즘엔 내 장사가 바쁘다보니깐 동생네 소식은 전혀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때문일가?     어머니는 당신 며느리를 마음에 안들어하는 눈치다. 전화할 때 올케는 뭐 하는가 물으면 뭐 할게 있냐? 매일 노는게 업이지 한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외국 가서 돈을 벌고있는 다른 집 며느리들의 칭찬을 늘여놓는다.      ―그 알지, 그 귀머거리네 며느리 말이다. 외국갔다가 7년만에 왔는데 그 집식구들 며느리덕에 호강을 누린다니깐. 호강두 그런 호강이 어딨겠어. 그 로친은 손가락에 금반지 은반지 줄줄이 차구 다니는데 빈손가락이 없어.      그 말이 귀에 익어서 그 알지? 귀머거리네 며느리, 하는 말만 나오면 나는 지레 엄마, 일절만 하세요. 하고 일침을 놓기도 하였다. 자꾸 그러지 마세요. 노는 사람마음 더 답답할거예요. 편만 들지 말구 어디 알아봐. 헐 일 없는지… 나와 어머니는 이런 대화를 수도 없이  하였다. 내가 그녀를 두둔하는것은 어머니와의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일뿐이지 그녀의 편이여서가 아니다. 실은 나도 그녀의 대책 없는 생활태도에는 고운 시선일수 없었다.       어머니의 부탁도 있고 하여 한달가량 내가 그녀를 데리고 일해본적이 있었다. 솔직히 물장사는 웃음장사다. 그런데 그녀는 웃는것에 린색했다. 웃으라 그러면 처음 보는 사람을 보구 어떻게 웃느냐구 발끈한다.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어도 오히려 제쪽에서 천성이 그렇지 못한것을 어쩌냐고 화를 내여 말하는 사람의 립장만 곤난해지게 했다. 매일매일 답답함만 더해가고있을 때 그녀 스스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되면서도 한달도 못참고 나앉는 그녀가 한심스러워 한소리했다.       ―이런 일도 못하면 어떤 일을 할건데?     ―전 매일 낯선 사람이랑 만나는게 싫어요.     그때처럼 그녀가 가증스러웠던적은 없었다. 털면 먼지밖에 나올것이 없는 주제에  고상한척은. 나는 욕이 터지는것을 겨우 참으면서 말을 꼬았다.     ―물장사를 우습게 보는것 같은데 그러는게 아니야. 두손 두발 치켜들고 앉아 놀면서 남의 손이나 바라며 사는것보다는 훨씬 좋은 직업이야.      그녀가 한마디 할줄 알았는데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그녀가 간 뒤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싫어하는 그녀에게는 사람 만나는 일이 죽기보다 싫을수 있다. 하긴 물장사를 아무나 하는건가. 오히려 그녀의 순수성과 솔직함에 감사했고 그런 녀자와 사는 동생이 안심되기도 했다…     그녀가 무릎사이에 묻고있던 얼굴을 들고 나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벌겋게 상기되여있었다.       ―제가 무슨 일로 집을 나왔는지  알고싶지 않아요?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글쎄 무슨 일인지… 알구싶었지만 내가 묻는다고 말할것 같지도 않고… 그냥 올케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있었소.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그 거리만큼 우리사이는 멀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그녀는 그간에 자기에 대한 나의 감정의 거리를 보아버린것이다.       그녀의 눈빛이 잠간 흔들리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를 올 때는 다 말하려구 했는데 생각을 바꾸었어요. 저의 말은 누구도 믿지 않을거니깐요… 듣고싶으셨다면 직접 동생한테가 들으세요. 아님 어머님한테가 들으시든지. 저두 이젠 모르겠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르겠다는 말 무얼 뜻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무슨 결별처럼 들렸던것은 그녀의 단호하고 완강한 어감때문이였던것 같다. 순간 그녀가 가족이 아니라 전혀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들어온 식구는 아무리 오래 함께 살아도 어느 한 순간에 남이 되여버리는 아마 그런 존재인 모양이다. 그것이 어처구니가 없어 허, 하고 입을 벌린채 나는 한참이나 허무하게 서있었다. 이렇게 변할수가 있다니. 나는 그녀의 그같은 변화를 인정하기 싫었다. 그녀의 그같은 변화는 우리식구들한테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됐기때문이다. 그녀는 아예 처음부터 우리 가까이에 와있지 않았고 마음의 빗장을 꽁꽁지른채 멀리서 우리를 비켜서있었던것이라고 나는 우기고싶었다.      그때 그녀는 간다는 말도 없이 문께로 걸어갔다. 밖으로 뛰쳐나가고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고있은 사람처럼 걸음이 가벼웠다.      ―아직 하던 말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가문 어쩌자는거요? 날 무시하는거요?     그녀의 뒤에서 하는 나의 말은 무기력했다.     ―무시하긴요. 여태 무시당하고 산 사람은 저잖아요. 이 집 식구들이 언제 한번 저를 사람으로 대우한적이 있어요?     그녀는  내쪽으로 천천히 돌아서며 싸늘하게 웃었다. 이런 교활함이라니, 짐짓 몸서리쳐졌다. 혼돈, 실망, 원망의 상태를 차례로 겪으며 결국 나는 그녀에 대한 분노를 삭일수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올케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해온 사람이라고 자부하고있었다. 해마다 올케네 집으로 들어가는 나의 돈은 공식적인 기준이 없다.  엄마의 생활비외에도 조카들의 학잡비를  대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생활비 역시 마찬가지다. 드릴 때만  어머니 손으로 받을뿐이지 고스란히 조카들의 교육비나 집안 생활비로 써지고 어머니의 몫은 없다. 그게 안쓰러워서 엄마의 용돈은 따로 동생들 몰래 어머니의 호주머니에 가만히 넣어준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 돈도 결국 아들이나 손자들의 호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이랬으면 시누이로서 할만큼 한건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참 기가 막혀서. 내가 어이없어하는 리유를 아는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형님이 도와준건 알아요. 하지만 그건 나땜이 아니구 어머니땜이 아니예요? 사실 전  그렇게 돕는건 단 한번도 바라지 않았어요. 어머니께서는 당신 따님이 드리는 돈의 높이만큼 저를 무시해왔으니깐요.     나는 일종 멀미같은 어지름증을 느꼈다. 종래로 그녀가 그렇게 긴 말을 한적도 없었고 또 그렇게 어려운 표현을 정확하게 구사해낸적도 없었다. 진짜로 다른 사람과 마주선 기분이 들었다. 억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내가 그녀를 도와준것은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서라는 말은 사실이다. 어머니가 동생네 집에서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있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어머니께서 그것을 한 밑천으로 며느리한테 눈치를 주었다면 그녀의 말을 반박할만한 다른 리유는 없는것 아닌가.      처음으로 그녀한테 두려움을 느꼈다. 주위의 모든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 그것은 그녀의 주위에 대한 깊은 반발이였음을 모르고 언제든지 흔들지만 않으면 마냥 한곳에만 머물러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손에 쥐이는대로 그녀한테 던지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런데 그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문을 나섰다. 탕 하는 문소리를 단절음처럼 들으며 나는 맥없이 주저앉고말았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튀여나온 아이한테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내가 동생네 집에 전화를 넣은것은 그녀가 나가서 반시간 쯤 지난후였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일로 새벽에 와서 남의 속을 뒤짚어놓고 간건지 동생한테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뚜― 뚜― 하는 전화소리만 거칠게 들릴뿐 받는 사람이 없었다. 슬슬 걱정이 다가온다. 이 시간에 다들 어디로 간것일가? 어머니는 웬만하여 집을 비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였다. 거실에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니 오전 아홉시, 벌써 가게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 다되여가고있었다. 일하는 아가씨가 있을 때는 전화 한통화만하고 나는 나대로 돌아다녔지만 장사가 안되여 아가씨를 내보낸 다음부터는 꼼짝 못하고 가게에 묶인 몸이 되였다. 장사라는건 하루가 아니라 몇시간이래도 문을 닫아버리면 손님을 잃게 된다.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가게로 나갈 차비를 서둘렀다.    2     가게문앞에는 하얀색과 회색빛의 얼룩 고양이가 기다리고있었다. 웅크리고있던 놈이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듯 등을 말아 올리며 길게 일어서고있었다. 얼마전에 집을 나갔던 놈이 꼭 밥은 주인한테 와서 얻어먹는다. 배부르면 어디론가 돌아다니다가는 배고프면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오군 한다. 그런데 죽어도 집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할수없이 문밖에 먹이를 놓아주는데 그것을 먹고는 또 떠난다. 어떤 때는 며칠씩 보이지 않다가도 잊을가 하면 또 나타난다. 내 집은 아마 고양이에게 떠나기 위하여 돌아오는 곳이 아니면 돌아다니는 어딘가에서 떠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는 곳이였는지 모른다.      억지로 잡아볼려고 손을 내밀면 미처 손대기전에 도망가버린다. 그런 날에는 아무리 좋은 먹이로 꼬셔도 보는척도 안하고 가버린다. 늘 사람의 손안에서 재롱을 부리며 살았던 고양이였는데 한번 집을 나간 뒤로는 랭정하게 사람의 손을 거부하였다.      나는 가게문을 일부러 활짝 열어놓았다. 그러고나서 알은체도 않고 가스레인지에 뜨거운 물을 올려놓았다. 고양이를 가게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문턱밑에서 고개만 갸웃거리며 그녀의 손놀림만 지켜보고있었다. 먹이를 기다리고있는것이 분명하다. 나는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숟가락으로 천천히 저었다. 그러고나서 고양이와 눈을 맞추면서 조금씩 홀짝홀짝 마셨다. 고양이의 식욕을 유발하고 갈증을 자극하기 위함이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만 완고하게 버티고있었다. 나는 빵 한쪼각을 일부러 땅에 부스러기를 흘리면서 먹었다. 고양이는 두귀를 쫑긋 세우면서 땅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노려본다. 그리고는 재롱스럽게 한쪽 앞발을 들었다놓으면서 먹이를  유혹해본다. 그저 그럴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집에 끌어들이는 일은 희망이 없었다. 매번 시도하는 일이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뭐가 고양이한테 저처럼 집을 경원하게 만들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한번 집을 나간 고양이는 다시 집에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할수없이 나는 밥과 물을 문밖에 놓아주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나서 유리창너머로 슬그머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먹이를 먹으면서도 고양이는 시름이 안놓이는듯 귀를 날카롭게 세우고 예민하게 문쪽을 할끔거리고있었다. 나는 잠간 잊고있던 그녀를 떠올렸다. 어딘가를 떠나고싶어하는 그녀의 벗은 발이 머리속에서 바람처럼 맴돌았다.       그때 껑충하게 키가 큰 한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 서슬에 고양이가 담을 뛰여넘는다.       ―어서 오세요. 그새 통 보이지 않더니 어디 외출이라도 하셨던거예요?     허허, 하면서 남자는 내가 열어주는 문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외출은 아니고 좀 바빠서…     한때는 나를 애인한다고 치근거리기도 했던 남자다. 나는 그것을 그 남자의 진실이라고 믿은적은 단 한번도 없다. 장사하다보면 어디 그런 남자가 한둘이라고. 녀자만 보면 애인하자 그러고 올 때마다 파트너를 바꾸는 남자가 요즘은 끼도 아니라 하지 않는가. 후에 일하는 아가씨, 미스리가 오자 그 남자는 걔를 자기 애인이라고 가끔씩 옆에 앉이고 커피를 사주기도 했다. 그럴 땐 본의 아니게 작은 질투같은것을 느끼군 했던것을 보면 그 남자를 별로 싫어하지는 않았던것 같다. 어디서 무얼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얼굴 잘 생기고 돈을 잘 쓰는 남자라는것 정도쯤은 알고있었다. 그의 마누라가 외국에서 돈을 벌고있고 그가  혼자 생활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미스리를 통하여 썩 후에  알게 된 일이다.      ―혼자 오셨어요?     ―그럴리야 있겠소?     ―설마했어요. 자꾸 그러시다가 집에서 아심 어쩔라구요.     ―그쪽두 가만있을라구요. 5년이나 됐는데.     ―그래두 괜찮은거예요?     ―돈만 보내준다면.     그 말을 하면서 남자는 의미있게 웃었다. 돈만 보내준다면 자기 녀자의 외도도 용서할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잠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어쩌면 그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돈만 준다면 이 세상에 안되는것이 무얼가. 이곳에서만도 그렇다. 20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수없이 안되는 말을 하고 수없이 안되는 짓들을 하고 간다. 나는 돈만 받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안될 짓을 하고 가는 그 사람들의 돈을 받으면서 늘 감사하군 했다.      그때 문쪽에서 한 녀자가 발작소리도 없이 바람처럼 살풋이 남자의 곁에 와앉았다.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을것 같은 인상의 녀인이였다.     ―많이 기다렸죠?     ―아니.     ―지루하셨죠?     ―미인 기다리는데 지루하긴. 즐거웠지.     그러면서 남자는 익숙한 솜씨로 녀자의 흰색 외투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준다. 많이 듣던 소리고 많이 보던 손짓이다. 이런 곳에서는 그것이 류행어처럼 듣는 말인데 많은 녀자들은 저런 말과 손짓에 약하다. 녀자는 벌써 꽈배기처럼 몸을 꼬며 남자의 품을 파고들고있었다.      카운터의 전화벨이 울렸던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그녀는 커피를 타다말고 전화기를 들었다. 송수화기에선 이윽히 격한 숨소리가 잡음처럼 들려올뿐이다. 바빠 죽겠는데 웬 장난질이야. 툴툴거리며 전화를 놓으려는데 누나, 하고 갈린 남자의 목소리가 손목을 잡았다. 동생이였다.     ―너 웬 일이야? 안그래도 전화를 할려구 했는데.       ―집사람이 없어졌소.     ―아침에 우리 집에 왔댔어.      ―누나네 집에 들렸다가 집에 왔었소. 집에 왔다가 가방이랑 옷이랑 다 벗어놓고 화장실을 간다고 나갔는데 지금… 없소.     ―설마 나쁜 일이야 있을라구. 주위를 잘 찾아봐.     ―동네를 발칵 뒤집었는데도 없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동생의 목소리가 울고있었다.     ―도대체 니들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누나 그건 만나서 얘기하구, 지금 빨리 오면 안돼?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리고 절실했다.     또다시 그녀의 벗은 발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침에 있었던 그녀의 행동이 조금 반상적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게 무슨 징조는 아니였을가. 갑자기 나의 마음은 불안하게 움직였다.      나는 손님에게 량해를  얻어내고나서 가게문을 닫았다.  3        그뒤, 세시간후 작은올케가 맨처음 발견된 곳은 비워두었던 낡은 초가집에서였다.  어렸을적에 내가 아버지랑 함께 살았던 집이다. 여름이면 봉선화 피는 울타리밑에 쪼크리고앉아서 빨갛게 손톱눈을 물들이며 동년을 키웠던 곳이다. 그곳에서 달빛과 이슬에 젖는 밤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풀벌레우는 소리와 개구리우는 소리를 들으며 내 감성을 키웠다. 아직도 추억과 동년이 머물고있는 정든 초가집이다. 다만 새집으로 이사가면서 오래 비워두었던 탓에 문짝이 다 뜯겨나갔고 앞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있어 그동안 흘러간 세월의 깊이를 아프게 느끼게 했다.      내가 그곳에서 잠간 집안을 들여다본것은 순전히 우연이였다. 그녀를 찾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들린것이지 그녀가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다. 구들장을 들어내느라고 바닥을 마구 헤집어놓아 구들고래가 까만 속을 밖으로 드러내고있는 집안은 마치 고기내장이 시시각각 썩고있는것 같았다. 그 한가운데에 그녀가 누워있었다.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하얀 그녀의 발이 여전히 맨발인채로 항거를 하듯 우로 향해 놓여있었다. 그곁에 그녀가 이곳에 올 때 신었을 하얀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버려져있었다. 발은 아침에 보았을 때보다 더 작아진듯싶었다. 그 작은 발이 너무 애처로워 나는 울면서 그녀의 발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였다. 아침에 내 집에 찾아왔을 때 그 발을 그렇게 끌어안아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그 순간처럼 내가 미웠던적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달려와서 그녀를 차에 실었다. 병원으로 가는 차안에서 동생은 지독한것, 지독한것, 하는 말만 되뇌일뿐이였다. 나는 아직도 더 자라야 될것만 같은 올케의 작은 발을 품에 꼭 끌어안은채 연신 중얼거렸다.      ―살아야 해. 죽으면 안돼…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외로웁게 했을가. 아침에  했던 그녀의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무시하긴요. 여태 무시당한건 제쪽이죠. 그집 식구들이 절 사람취급이나 했어요?     그것이 그녀의 유언처럼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는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논농사로 살아가다가 비행장을 건설하는데 땅을 떼운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도시호구로 옮겨졌다. 땅대신 돈을 얼마씩 받긴 했지만 대신 직업을 잃게 되였다.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밭뙈기가 없고 그렇다고 도시에 들어가 직업을 얻는다는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였다. 하루사이에 이 마을 남자들은 백수가 되여버렸다.  땅판 돈을 쥐 소금녹이듯 녹이면서 겨울이면 마작이나 화투을 치고 여름이면 베짱이처럼 나무그늘밑에서 신세타령이나 하는것이 고작 이 마을 남자들이 할수 있는 일이였다. 그중에도 딸이나 안해가 외국에 가 돈을 버는 집 남자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지만 그렇지 못한 남자들은 작은 놀음에도 자주 끼우지 못해 그야말로 사람축에도 못들어간다고 했다. 동생도 사람축에 못들어가는 부류의 한사람이였다.      작년인가.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간적이 있다. 사실은 어머니가 아프신것이 아니고 동생 내외가 싸운 일로 어머니가 그 뒤풀이를 하라고 부르신것이였다. 여름이 다 끝나가는데 동생은 웃통을 벗고 반바지만 걸치고있었다. 부은듯 살이 찐 얼굴에 삶에 대한 권태로움이 메주에 핀 곰팡이균처럼 확 피여있었다. 채색인지 흑백인지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가 찍찍거리고 그 한쪽에 어머니가 쉬여버린 밥덩어리처럼 댕그랗게 앉아있을뿐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망했소.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그 말부터 했다.     ―왜?     우리 집의 저 왕재수가 땅 판돈을 다 날려버렸소. 우린 이제  하늬바람이나 마시고 살게 됐소.     알고보니 올케가 외국가는 수속을 하다가 돈만 날린것이였다. 그때 어머니가 길게 탄식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차라리 가만히 있기보담 못했잖여. 얌전하게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 돈이래두 살아있었을텐데 괜하게스리 설쳤어.      그때 중간 미닫이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그녀가 나왔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능력이 없고 융통성이 없다고 몰아붙인건 누구신데 지금 와서 이런 얘기하세요.     ―그렇다고 내가 돈을 날리라고 했나?     ―제가 일부러 돈을 날렸나요?     ―다 자네가 복이 없어 그런거지. 남들은 사고없이 잘되기만하더만, 왜 자네는 하는 일마다 그렇게 씨원찮은겨.     그녀는 이쯤해서 입을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것을 알고있었다. 틀림없이 자기의 친정사까지 끄집어내여 비위를 긁을것이기때문이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입으로 친정집 말을 듣는것이 죽는것보다 싫었다.               친정집 오빠가 어릴 때 다락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후 실성한 상태로 살다가 집을 나간후 종무소식이고 그 자식땜에 속을 썩이며 사시던 어머니도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확실히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다 통하는것은 아니다. 분명히 삶에는 운명이라는 말로밖에는 다르게 해석할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것을 어머니는 팔자가 사납다는 말로 표현을 하군 하셨다. 결혼전에 동생이 그 녀자를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어머니는 그런 사실은 모르고 다만 그녀의 작고 여윈 몸매를 꺼렸다. 하여 애들이 아파도 에미가 시원치 못해 애들이 모두 비실비실하다고 나무렸는데 나중에 그녀의 친정사를 알게 된 뒤로는 집안에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의례 그녀와 련계짓기가 일쑤였다.  4     병원에서 위세척을 하고 다시 응급실로 옮겨진 그녀는 튜브를 코에 꽂은채 조용히 누워있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위험할번했다고 했다. 그것은 이미 위험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나와 동생은 서로 바라보면서 깊은 숨을 몰아쉬였다.      응급실밖에서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왜니?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라이타를 켜는 그의 손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심하게 떨고있었다. 벌써 세번째로 시도하는데도 켜면 꺼진다.      ―줘봐.     내가 한번에 라이타를 켰다. 동생은 입에 담배를 문채 불을 붙이고나서 긴 호흡을 하듯  길게 빨아들이였다. 그리고나서 토하듯 연기를 뱉으면서 허전하게 말했다.      ―별거 아닌데 그렇게 됐어…     삼일전이였다. 오후 네시쯤되자 그녀가 공항으로 간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될 사람이 오는것이다. 위장결혼이라고 하지만 법적인 보호를 받는 남편이니깐 진짜부부인 셈이다. 위장이라는 말은 그녀와 동생, 그리고 결혼하게 될 낯선 남자, 세사람지간의 약속뿐일뿐, 어디에 가서도 법적인 근거는 남아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눈을 펀히 뜨고 자기 녀자를 다른 남자한테 내여준것이다.  여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처절함과 배신감, 그리고 질투와 분노까지 겹쳐서 동생은 미칠것만 같았다.       ―가만.     그녀가 문을 나서려는데 동생이 불러세웠다.     ―남의 남자를 만나는데 멋은 왜 이렇게 부렸어?     ―뭔 멋을 부렸다구 그래요? .     하면서 그녀가 살짝 문옆에 걸려있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입술 좀 지워. 쥐 잡아먹은것 같어.     그는 커다란 손으로 안해의 입술을 쑥― 문질러갔다.      ―왜 안하던 짓하구 그래요.     ―너야말로 왜 안하던 짓을 하구 그래. 그깐 거지 같은 놈한테 잘 보일 필요가 뭐가 있어? 그놈들 다 거지야 거지. 돈이 없어 위장결혼으로 돈이나 받아 처먹고 사는 거지중의 상거지라구. 들을라니깐 집도 없는 놈들이라더라. 난 그래도 집이 있잖어. 그러니깐 그깐 놈들앞에서 쩔쩔 맬 필요가 하나두 없어.     동생은 먼 곳에서 오는 낯선 남자를 비하시키려고 악을 썼다. 그렇게라도 그녀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싶었을것이다.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핸드빽에서 립스틱을 꺼내서 지워진 입술에 다시 칠했다. 남자는 안해의 손에서 립스틱을 뺏더니 쓰레기통에 확 던져버렸다.     ―거지같은 놈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니깐.     그러는 남편을 이윽히 바라보고만 있던 그녀가 실소를 하듯 픽 하고 허구프게 웃었다.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예요. 돈때문에 호적 팔아먹는 놈이나 돈때문에 마누라를 남한테 팔아먹는… 남―자―나 다를게 뭐겠어요. 그 사람이 알면  아마 마누라 파는 놈이 호적 파는 놈을 웃는다구 당신을 욕할걸요.     순간 동생은 비칠했다. 안해를 다른 남자한테로 보내면서 그 남자를 폄하했던것은 같은 남자에 대한 질투보다 안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였을지 모른다. 한때 안해의 파트너로 적극적으로 수속에 협조해주기를 바랬던 동생이였다. 그 남자를 죽이고싶도록 미웠던것은 오로지 그 남자의 가까이로 다가가는 자기 녀자에 대한 위태로움과 두려움때문에서였다.      그녀의 말은 동생의 불안을 증폭시켰을뿐이다. 당신은 할 말이 없다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꽃혔다. 동생은 위장결혼을 해서라도 가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그녀의 말을 믿고 그녀와의 가짜리혼에 수락했다. 했는데 리혼은 도장이 찍힌 날부터 3개월 지나야 재결혼이 가능하다는 말에 안해의 위장결혼수속을 다그치기 위하여 살아있는 자신의 사망자신고를 냈다. 동생의 호적에는 그의 이름우에 사망이란 도장이 찍혀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어다니는 유령일뿐이다. 이제 올케가 정말로 그 낯선 남자를 따라가서 부부로 살더라도 죽은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일뿐이다.      ―안돼.      그는 죽어라고 소리쳤다.      ―이 결혼은 무효야.     하지만 그녀는 악을 쓰는 동생을 뒤에 남겨두고 그예 공항으로 빠져갔다.      아마 그럴수밖에 없었을것이다. 이미 수속비 절반은 내여준 상태여서 지금 그만둔다는것은 경제적손실외에도 다시 령으로 돌아오고마는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비참해진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이제 와서 그만두는것은 결코 동생의 바램이 아니였다. 올케 못지 않게 이번 수속의 성공을 위하여 고심했던 동생은 자신의 운명과 전 가정의 운명이 그녀의 성공에 달려있다고 믿고있었다. 그런데 그 자신이 지금 그것을 부정하고있다. 지금에 와서야  동생은 자신이 애써 추진해온 일이 저 자신도 미처 몰랐던 자기 함정이 도사리고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그 모순된 심리야말로 동생을 끝없는 정신적인 공황에 빠뜨렸다.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집안에 앉아 편안히 기다릴 자신이 없은 동생은 그녀를 쫓아 공항을 따라나섰다. 미행을 한 셈이다.      마침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공항입구로 손님들이 쏟아져나오고있었다. 그속에 그녀도 있었다.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는 그런줄도 모르고 남자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있었다. 남자가 그녀를 보면서 무슨 얘긴가 하자 그녀는 허리를 꼬며 깔깔 웃었다. 마치 오래동안 함께 살았던 부부처럼 다정해보였다. 녀자란 저런것인가.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남자가 아니라 녀자일지라도 처음 보는 사람하고는 말도 안하는 그녀였다. 숫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싫어했다. 웬지 여러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외롭고 견디기 힘들고 혼자 있으면 편안하다고 했던 녀자였다. 녀자는 남자에 따라 다를수 있음을 동생은 처음 알고 당혹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 나에 대한 감정이 진실한것일가 아니면 그 남자에 대한 감정이 진실한것일가. 깊은 잠에서 깨여난듯한 그녀의 활짝 열린 얼굴이 그녀의 진실이라면 이제까지는 철저히 자신을 은페하고 살았다는 말이 된다. 그녀가 철저히 가면을 쓰고 살았을거라는 생각을 하자 새로운 분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빈껍데기만 끌어안고 살았다는 상실감은 동생더러 리지를 잃도록 부추켰다…     그날 밤 늦은 귀가를 한 그녀를 동생은 집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그녀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이불과 옷견지들도 비오는 진탕길에 내동댕이치고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꿈을 꾸고있는것 같어.      동생의 푸석푸석한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굳은 살처럼 박혀있었다.      ―어쩔수 없는 현실이라면 감수해야 되는게 아닐가?     ―마음이 너무 아퍼. 이렇게 아플줄 정말 몰랐어.     ―홍역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참어라.      ―누나가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난 정말 용서할수 없을것 같애.      ―그럼 어쩌겠다는거니? 설마 헤여지려고 하는건 아니겠지?     ―그럴지도 모르겠어.      동생은 이미 마음을 정한것  같았다. 5     그뒤 얼마 안있어 나는 헤여졌다는 소식대신에 그녀가 낯선 남자를 따라 출국을 하였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었다. 그리고 인편으로 그녀가 그 남자와 한방을 쓰고 산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그것은 국적을 얻기 위한 필요한 절차라고 했다. 하도 위장결혼이 많아서 관계부문에서 불의습격으로 조사를 내려오기때문에 국적을 얻어내기까지는 한집에서 낯선 남자와  진짜부부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동생한테 말해줄수 없었다.     가랑비가 내리던 어느날 오후, 동생이 갑자기 가게를 찾아왔다. 혼자가 아니고 뒤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셋이 더 있었다. 하나는 남자고 두사람은 녀자였다. 동생까지 합치면 남자 둘 녀자 둘인 셈이다. 동생은 넥타이까지 매고 정장을 하긴 했지만 잘 잠궈지지 않은 바지 벨트와 조금 열려진 지퍼땜에 금방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처럼 흐트러져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손에 들었던 커피잔을 엎질렀다. 언제나 동생을 만나면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앞서는것은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아마 동생에 대한 불안감때문이였을것이다. 그것이 동생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안된다. 다행히 동생은 내 놀람을 눈치채지 못한듯했다. 여기저기 고개를 기웃거리며 실내를 살피고나서 나를 보며 심드렁하게 웃었다. 차집이란것두 별거 아니구만 하고 말하는것 같았다.      ―갑자기 웬 일이야?     ―누나네 매상고 올려줄려구.     동생은 두팔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면서 나의 얼굴 가까이에 입을 대고 말했다. 풍겨오는 술냄새에  뜨겁고 끈적한 기운이 날아왔다.      ―대낮부터 웬 술이니?     ―동창들끼리 오래간만에 만나서 한잔 했소.      ―돈은 어디서 났니?     ―아무리 돈이 없다구 술마실 돈두 없겠소? 누나 이제 우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우. 나두 이제 큰 소리치면서 살게 됐소.      그러고보니 동생은 예전보다 달라보였다. 축 처졌던 어깨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있는듯했다.      ―어디 복건이래두 당첨됐니?     갑자기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하하 크게 웃고나서 동생은 무슨 큰 비밀이나 있듯이  나직히 말했다.      ―누나, 나 끝내 성공했소. 축하해주우.     짐짐하게 풀어진 동생의 눈꼬리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개신개신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그의 얼굴을 나는 미타하게 바라보기만했다. 성공이라니, 성공이라고 이름 붙일만큼 하는 일도 없는 동생이 눈물을 지어가며 성공을 례찬하는것이 그저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심란하였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동생은 카운터너머로 손을 뻗어 나의 손을 잡아다가 자기의 양복 안쪽호주머니를 만져보게 하였다. 뭔가 두툼한것이 손에 묵직하게 와닿는다. 돈인것 같았다.      ―이게 뭐야?     ―돈두 몰라?     ―무슨 돈인데? 이렇게 많어?     ―집사람이 부쳐왔소. 그래서 한턱 쏘는거야. 우리 동창생들은 다 나보다 형편이 못해. 아까 봤지. 사는게 어려워뵈지 않았어? 그중 내가 제일이야. 난 이제 성공했거든. 성공한건 동창들중에 나밖에 없어…     하마트면 나는 푸, 하고 경멸의 미소를 지을번하였다. 이런 성공이라니, 호적에 이름도 없는 죽은 자의 성공이라니, 입안이 허전해지면서 바짝 말라들었다. 그녀의 낯선 남자에 대한 친절을 용서 못해 절규하고 절망하고 헤여지려 했던 동생이였다. 어떻게 변한것일가. 어떤 식으로든 나는 리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의 이름으로도 증오의 이름으로도 설명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자처해서 기생충이 될려고 작정을 하는것외에는 다른 설명이란 불가능했다. 아마 동생은 그러기를 원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할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가 그 남자와 한방을 쓰고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알면서도 감히 성공했다고 말하지는 않을것이다. 아니 안다고 하더라도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무것도 달라질것이 없다. 동생이 할수 있는 일은 오직 자기 체념일뿐이였을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동생을 나는 리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분노가 치민다. 그리고 이토록 대책없이  무기력해진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불쌍하고 속상하여 울것 같았다. 동생이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왜? 누나 울어?     ―아니야.      ―울고있잖어?      ―미안해서 그래.     그런 말을 할려고 했던건 아닌데,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말았다. 그런데 예기치도 못했던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쏟아지고말았다. 여태까지 나를 괴롭혔던 불편함이나 정체 모를 분노, 지어 동생에 대한 경멸까지 모두 그에 대한 나의 미안함이였던것 같다.       ―누나가 뭐가 미안해, 미안한건 나지. 이제부턴 내가 누날 호강시켜줄게. 알았지?     나는 소리를 놓아 통곡을 할것 같아 동생한테 잠간 카운터를 보아달라 하고 위생실로 갔다. 위생실문을 안으로 잠그고 수도꼭지를 크게 틀어놓았다. 그리고 소리를 작게 쪼개며 울음을 토해냈다. 세면대를 넘치는 물이 도랑물소리를 내며 하수구로 빠져나가고있었다. 며칠전에 친구들이랑 함께 갔던 하수구식당 이름을 떠올린것은 바로 그때였다. 식당 이름이 하도 괴의하여 찾아들어갔었는데 그 음식점의 메뉴는 딱 한가지였다. 여러가지 료리를 한번에 쏟아넣고 여러가지 맛을 동시에 먹을수 있는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뭐든 한꺼번에 쏟아부을수 있다는 하수구의 특징을 살린 메뉴라고 사장이 설명을 하면서 여러가지 료리를 놓고 어느것을 집을가 고민하는 노력도 없이 편안하게 여러가지 칼로리를 섭취할수 있다는 편안함 또한 하수구식당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어쩌면 신통히도 우리의 삶을 닮은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동생은 카운터를 비워둔채 친구들속에 어울려 떠들고있었다. 성공자의 소임을 다할려는듯 동생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있었다. 이제부터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하여 살아지는 인생, 아니 살아지는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인생인것을 동생은 느끼지 못한채 성공한 자신의 인생으로 하여 오기를 부리고있었다. 동생이 성공이라고 이름지은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것인지 모두가 그녀한테 달려있다. 지금 낯선 남자이지만 법적으로 자기 남편인 사람과 한방을 쓰고 사는 그녀의 장래는 어디로 튈지 그녀 자신도 아마 모르고있을것이다. 나는 그녀의 작은 발을 떠올렸다. 마치 열살에 성장을 멈춘듯한 그 작은 발, 그것은 아마 바로 지금부터 커질려고 작았던것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나는 그녀의 그 작은 발에 대한 징크스의 정체를 알것 같았다.       밖에서 고양이가 서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고양이 밥그릇을 건드리는 자취가  들리고 이어 고양이가 담장을 뛰여넘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는 다시 돌아올것이다. 하지만 집을 나간 고양이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고양이 자신도 알수 없는 일이다.      멀리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생도 그 소리를 듣고있을것이라고 나는 믿고싶었다. 
1    [단편] 가시나무새 (허련순) 댓글:  조회:1715  추천:110  2007-09-29
단편소설가시나무새허련순일년이나 련락을 끊고 잠적을 한 리유치고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시시했다. 돈을 벌지 못해서 한동안 숨어버렸다는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나중에 판단할 일이고 일단은 그녀로부터 엄청난 해방감을 느낄수 있었다. 가족으로부터 떠나고싶었다고, 다시는 만나지 않고싶었다고 말하면 어쩔번했는가. 그 말이 나오지 않은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였다.   그녀를 만난것은 수유리의 작은 오피스텔에서였다. 금새 바람소리가 묻어나올듯 그녀의 얼굴은 파리했다. 서울에 온지 2년이 넘었는데도 중국에 있을 때와 형편이 별로 나아보이지 않았다.   《저의 련락처는 어떻게 아셨어요? 누구한테도 얘기한적이 없는데…》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어버리고싶었을것이다. 그렇게 숨어서 누구한테도 련락처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허공에 맴도는듯한 그녀의 눈빛에는 무언가 숨기고싶어 바장이는  부산함과 불편함이 떠있었다.  《다 아는수가 있지.》 그냥 잠적은 안될걸, 아마 내 대답에는 그런 뉘앙스가 풍겼음직하다. 온 서울시내를 써캐 훑듯 뒤져서라도 꼭 그녀를 찾아내고말거라는 각오로 한국에 갔던 나다. 《영도동에 있는 직업소개소에서 알아냈소.》 《거긴 어떻게 알고 가셨는지…》 딱부러지게 말꼬리를 맺지 못하고 질질 흘리는것은 예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금은 어눌하고 살짝 바람든 무우처럼 비여보이는 그런 점때문에 오히려 그녀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에 일하던 모텔 사장님한테 전화를 하니깐 금동 엄마가 영도동직업소개소에 잘 다닌다고 알려주었소.》 그녀는 아무 대답도 없이 이윽히 어둠이 드리운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저으기 걱정스러우면서도 근심어린 표정이다. 무엇을 걱정하고있었을가? 그동안 어디서 무었을 하고있었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가족과 련락을 끊고있었는지, 어떻게 대답해줄가 하는것을 고민하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리유도 없이 일년간이나 아이들한테 생활비도 보내지 않고 잠적을 했던 자신을 변명할 리유를 만들어야 할게 아닌가.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지나가는건 아마 그녀 자신도 불편했을것이다. 왜 그랬느냐고, 그녀를 만나기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따끔하게 혼을 내주고 억지로 끌고 가든지 아니면 강제출국이라도 시켜야 한다고 격하게 생각하고있었던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그래야만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녀가 한국에 올 때 꾼 리자돈을 갚느라 겨드랑이에 쉰내가 풀풀 나게 약재를 캐러 산을 오르내리는 동생을 대신하여 속이라도 후련할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나고나서는 그런 말들이 입속에서만 맴돌뿐이였다. 그런 질문을 주고받을만큼 그녀는 나한테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 비스듬히 비켜 서있는듯한 표정에는 열정이나 따뜻함이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자신을 야단치고 혼내줄 권리는 누구한테도 없다고 미리 경고를 하고 선수를 치고있는듯했다. 닭 쫓던 개 담장 쳐다보는 기분이 이럴가. 나는 그녀 스스로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그게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는것이고 그녀 자신이 가족을 위하여 할수 있는 마지막 량심이라고도 생각되였다. 그녀가 무겁고 칙칙한 숨을 길게 몰아쉬더니 입을 열었다.  《저 불빛 보이죠?》 《어디?》 그녀는 애초부터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듯 계속 자기 말을 이었다. 《저 불빛을 보고있노라면 온 도시가 각혈을 하고있는듯이 느껴져요.》 나는 그녀가 보고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단란주점의 네온등이 명멸하며 피 같은 진한 빛을 토해내고있었고 모텔건물에는 둥근 화로불 같은 모텔표시가 빨갛게 타고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각혈을 하는것 같다고 말하고있었지만 나는 욕망에 불타는 요부의 음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저도 저런데서 일을 했어요. 얼마나 힘들던지, 그때 전 자주 각혈을 하였어요. 객방청소를 하다가도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고 피를 토하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세요?》 옆방에서 지르는 남녀들의 까무러칠듯한 교성을 들으며 까부러지는 자신의 생명의 소진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가. 알것 같았지만 헛되이 대답할수도 없었다.    《나, 이제 혼자서 죽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게 아마 혼자서  죽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있을 때일거예요. 그런데 그보다도 더 괴로운것은 그 순간마다 식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는거였어요. 손을 내밀어도 손에 닿을수 없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혼자 있다는것을 더 처절히 느꼈고 그래서 더 무섭고 두려웠어요. 차라리 아무도 그리워할 사람이 없다면 마음이 그리 아프진 않았을거예요. 그래서 나는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름을 하나하나 지우기로 하였어요. 다 지우고 이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처럼 홀가분하게 살기로 하였어요. 그러니깐 조금 견딜만했어요. 그러지 않고는 단  하루도 견딜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련락을 끊은거요?》 《그런 셈이죠.》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있소?》 그녀는 잠간 나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쉬고있어요.》 《살고있는데는?》  《특별히 정해진데가 없어요.》 《그게 무슨…》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예민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사뭇 날카로왔다. 《어차피 집 떠난 사람이 어디 정해진데가 있겠어요. 어디서 살든 그게 뭘 그리 중요해요.》 어디서 살든 중요하지 않다니, 그동안 잠적을 했던 자신에 대한 변명 같이 들렸다. 그리고 어디서 살았느냐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있는 가족들에 대한 반발인것 같기도 하고. 그것은 가족들이 의심하는것이 사실이란 얘기도 된다.   이제 막 살겠다는건가? 내가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도리여 아무렇지도 않은 눈으로 나를 마주보고있었다. 그 대수롭지 않은 눈빛은 오히려 오만함이나 거만함보다 더 완고하고 단단하고 물샐틈없어보였다. 그녀는 이미 내 가족이란 그늘에서 멀리 비켜서있는 사람 같았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동생이 부덕한 탓으로 마누라를 위장결혼으로 엉뚱한 남자한테 떠밀어놓고있는 마당에 시누이로서 내가 그녀에게 할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아직 동생의 부탁도 전해주지 못했는데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함구무언으로 앉아있을뿐이였다. 나로부터 비난의 말 한마디 나올 여지가 더이상 없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것을 한꺼번에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돌려놓았다. 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인내심을 잃고 그녀의 비위를 거슬러놓아 영영 잠적을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이거야말로 동생한테 죄짓는 일이 될것이다.   서울로 떠나오기 전날 밤에 동생이 찾아왔을 때 그의 몸에서는 술냄새가 진동했다. 《누나… 누나는 금동 에미가 나를 배신하고 도망갔다고 생각하오?》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있었지만 사실대로 말할수 없었다. 그녀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은 동생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말이 될것이다. 《그럴리가 있겠니? 잠시 일이 잘 풀리지 않는거겠지.》 《그렇지? 누나. 금동 에미는 그럴 사람은 아니지? 그렇지?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는거지? 그 사람은 절대 우리를 버리고 도망갈 사람이 아니야. 내 같은건 별 볼일 없는 놈이지만 제 배속으로 낳은 금동이, 은동이가 있는데 그것들을 버리고 어떻게 도망가?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꼭 돌아올거요. 그렇지 누나? 그렇다고 얘기 좀 해주.》 그렇지를 련발하면서 동생은 나한테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고싶어 안달아했다. 바보. 정말 못난 놈이야.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떠나지 않았으면 일년이 넘게 돈 한푼도 보내지 않고 잠적을 했겠는가. 누가 들어도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이라고 말할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동생만은 그녀를 믿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금동 에미가 살아있다면 왜 련락을 하지 않는걸가? 혹시 죽은건 아닐가? 죽었는데 우리가 찾지 않고있는건 아닐가, 누나?》 그는 끝까지 그녀가 마음이 변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어딘가에 잘 있을거다.》 《살아있는데 왜 련락이 끊겼어?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글쎄 안죽었어. 내가 확신해. 그러니깐 그만 징징거려.》 《누나, 금동 에미가 없음 난 어쩌라구.》 동생은  밤새도록 금동 에미를 찾아오라고 주정을 부렸다. 그날 저녁의 일을 전해주면서 나는 눈물이 나올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 진한 감동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고마운 마음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눈시울을 붉히며 얘기하는데도 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내 말은 그녀에게 전혀 스며들지 않고 헛된 메아리로  나한테로 되돌아왔을뿐이였다. 혼자 떠들고 기분내고 헛되이 응답을 기다리는 격이 되여 싱겁고 머쓱하고 창피하였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발신인번호를 확인하는가싶더니 급기야 꺼버리는것이였다. 다시 핸드폰이 길게 울렸다. 받을가말가 망설이는듯하더니 전화를 열고 상대가 미처 뭐라고 하기도전에 딱딱한 어조로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것이였다.  . 《오늘 급한 일이 있으니 기다리지 마세요.》 《누군데?》 《잘 아는 사람이예요.》 《잘 아는 사람 누구?》 그녀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예요.》 《그 사람이라니?》 《위장결혼을 한 남자.》 갑자기 욕지기가 올리미는듯 불끈 화가 치밀었다. 《지금도 그 사람과 함께 있소?》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자꾸 기습적으로 검문 나오니 어쩌겠어요… 그래도 남들이 생각하는것처럼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그녀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신중한 머뭇거림이 웬지 꺼림직했다.  그날 밤, 그녀는 남자한테로 가지 않았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한집에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모양이였다. 그녀는 남자에 대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하였다.  《남자는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이예요. 얼마나 변변치 못했으면 마누라가 아이 둘 낳고 도망을 갔겠어요. 아이들은 다 컸나봐요. 큰애는 군대에 가고 작은애는 지금 엄마하고 같이 살고… 하긴 이런게 저한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죠. 약속한대로 수속비만 넘겨주면 끝나는게 아니겠어요.》 《그렇지.》 내가 하고싶던 말을 그녀가 알아서 하고있어 다행이다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어요. 그 사람은 처음의 약속을 깨고 서류상에 우리는 하자가 없는 부부라며 같이 살아야 된다는거예요. 약속이 그게 아니지 않냐고 하니 약속보다 더 중요한건 현실이래요. 현실은 무시할수 없는거라구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때는 그 인간을 피해다니면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귀신같이 찾아내더라구요. 들키는 날이면 아주 개망신을 당하군 했어요. 남편을 배신하고 바람난 녀자처럼 몰아세우는데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있어야죠. 그렇게 한바탕씩 소동을 벌이고나면 난 짤리지 않으면 부끄러워서도 일을 그만두고 나와버리군 했어요. 일년사이 그 인간하구 숨박곡질을 하느라고 일곱번씩이나 일자리를 옮겨다녔어요. 그러니 돈이나 제대로 벌었겠어요. 자기 말을 안들으면 시도 때도 없이 신고한다 그러구…》 《신고는 무슨 신고. 괜히 겁줄려고 그러는거지.》 《아니예요. 그 사람은 얼마든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예요.》 《신고하면 남자도 법에 걸릴텐데 감히 신고를 하겠소? 그렇게 겁을 먹고 쩔쩔 매니깐 그런 인간한테 약점 잡혀있는거지. 래일 그 사람과 만나서 따질거니깐 이참에 그곳에서 아주 나와버리오. 어떻소?  그렇게 할수 있겠소?》 《그랬으면 좋겠지만 당장 연장수속도 해야 하고… 그리고 일년만 참으면 국적도 올릴수 있는데…》 그녀는 주저하고있었다. 연장수속이나 국적취득을 위하여 주저하는건 알겠지만 그것을 빌미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싶어하는건 아닌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새벽, 아직 날도 채 밝지 않았는데 그녀는 소리내지 않고 살금살금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    《어디 갈려고?》 《잠들고있어서… 그냥 갈려구 했는데…》 그녀는 망설이듯 말했다. 《거기 앉소.》 《제 생각엔…》 《거기 앉으라는데.》 《전 빨리 가봐야 해요.》 《나하고 같이 가기요.》 《어디를요?》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집에서 나오도록 하오. 지금 나오지 않으면 영 나올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오.》 강압적이고 암담한 전률을 느끼는듯 그녀의 얼굴이 까뭇하게 흐려졌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을 하지 못하였다. 거절할 리유가 없었을거다. 내가 옷을 입는 동안 그녀는 자주 시간을 확인하며 불편한 자기의 심기를 드러내보일뿐이였다. 그녀와 나는 수유리 지하철에서 4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다시 1호선을 갈아타고 구로역에서 내렸다. 그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따라가는것이 부담스러워 떼여놓지 못해 안달아하는 눈치였다. 역 광장을 가로질러 큰길쪽으로 접어들 때쯤에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너무 심하게 몰아세우지 마세요.》 《누구?》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 말이예요.》 그녀는 부자연스러운듯 나를 외면했다. 《그 사람이라니?》 《그 사람 너무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그동안 그 사람  신세를 많이 입었거든요.》  말을 마친 그녀는 얼굴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하늘에는 옅은 회색 구름이 카텐처럼 빛을 가리우고있었다. 밤새 그 남자를 욕하는듯했지만 결국 그 남자를 두둔하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그 남자를 느낄수 있었다. 내 동생을 통하여 그녀를 느꼈듯이 그녀를 통하여 다시 그 남자를 보게 된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모습뒤에는 내 동생이 아닌 다른 남자의 존재가 잠닉해있었다. 그가 아무리 그녀를 견딜수 없이 힘들게 했다지만 그들은 힘든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키우고있었다.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고있던 그녀가 서두르듯 걸음을 재우쳤다. 일부러 나를 따돌리려는듯 내앞에서 씽씽 혼자서 걸었다. 체크무늬의 치마밑으로 들어난 커피색 스타킹이 헐렁하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헐겁게 따로따로 움직였다. 혼자 가는것이 미안한듯 잠깐씩 내쪽을 뒤돌아보긴 하였지만 애초에 같이 걷고싶은 생각은 없는듯하였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 자신이 굴욕적이였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동생을 위하여서는 오늘은 기어이 그녀를 쫓아가야 했다.   남자가 사는 집은 구로시장 어느쯤에 있는 모양이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짐승의 내장처럼 꼬불꼬불하고 긴 골목을 한참이나 따라 들어갔다. 시장 골목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지저분하였다. 시야에서 그녀를 놓치지 않을려고 바지런을 떨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기도 하였다.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도 나는 그녀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옷가게, 신발가게를 지나 황금당 건물앞에서 그녀가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나를 기다렸다. 《다 왔어요. 요앞에 보이는 노란건물 지하거든요.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들어가서 짐을 챙겨가지고  바로 나올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들어가는게 좋지 않을가?》 《혼자서 들어가는것이 나을것 같아요.》 《성질 무섭다면서 혹시 손찌검이라도 하면 어떻게 할려구.》 《제가 알아서 할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앞으로 쏟아질듯 위태로운 걸음새로 허겁지겁 노란 건물쪽으로 가고있었다. 내가 따라가기라도 할가봐 두려운듯했다.  자주색 페인트칠을 한 철문안으로 그녀가 사라진 뒤 조급함과 느림속에서 나는 기대감에 몰두하고있었다. 이제 그녀가 짐을 챙겨가지고 나오기만 하면 그녀와 남자의 관계는 청산될것이고 그러면 내가 할 일은 끝나게 될것이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그런데 짐만 들고 나오면 된다던 그녀가 반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건물입구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옷가게에도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지만 꼭 닫혀있는 자주색 철문은 열릴줄을 몰랐다. 무슨 문제가 생긴건 아닐가? 더 기다릴것인지, 아니면 들어갈것인지 계속하여 망설이다가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어기고 철문을 밀었다. 거기는 현관처럼 쓰는 복도였다. 반지하라 어둡고 축축한데다 퀴퀴한 냄새까지 감돌아 그야말로 대낮에도 쥐들이 욱실거릴것 같은 시끌한 기운이 감돌았다. 복도 한쪽에 피부병환자의 부스럼자리처럼 군데군데 색칠이 벗겨진 낡은 세탁기가 놓여있고 해빛이 들어오는 뙤창문우에 힘없이 드리워있는 짧은 빨래줄엔 남자의 속옷과 녀자의 속옷이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이럴수가.  얼굴이 뜨겁고 입안이 바짝 말라들었다. 발가벗기우는 기분이 들어서 재빨리 빨래줄에서 시선을 피했다. 출입국의 기습적인 검문을 피하여 거짓으로 벽이나 옷장에 옷을 걸어두는 정도가 아닌것 같았다. 그동안 소문과 의문이 무성했지만 그것은 그냥 소문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국적취득을 위한 한낱 은페작전일것이라고 믿었다. 그녀에 대한 미련때문이 아니였다.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을 잊어야 하는 아픔도 아니였고 그녀가 빠져나간 그 텅 빈 속에 혼자 남게 될 동생의 처지가 불쌍해서도 아니였다. 다만 그녀의 시간 한켠에 애매하게 묶여서 긴긴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고있을 동생을 마주할 내 자신이 두려워서였다. 그녀를 믿고싶었던 나의 의식은 나를 움직여가고있는 그녀의 감정뒤로 거꾸로 던져진 헛된 열망에 불과하였다. 《무엇땜시 어제밤에는 집에 안들어왔어? 너희들 중국년들은 그락카고 싸다녀도 남자들이 가만 냅싸둔다냐?》 집안에서는 남자의 거칠고 상스러운 욕이 흘러나왔다. 《중국년, 중국년 하지 말아요.》 《그런 말 듣기 싫으면 행세를 잘 하고 다니락코 안했나? 지금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게 생겼는가? 그리구  짐은 왜 챙기는겨? 어디 새서방이라두 생겼단가?》 《저도 나가서 돈 좀 벌어야겠어요.》 크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에 비해 그녀의 목소리는 힘없고 주눅이 들어있었다. 《누가 돈 벌지 말락캤노? 씹팔년이 지랄염병하고 자빠졌네.》  와당창, 걸상이나 밥상 같은 육중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렸다. 순간 주위가 조용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찰나라고 말할수밖에 없는 그 짧은 순간의 고요는 말그대로 죽음의 공포스러움이였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은 예감에 기겁을 하고 와락 문을 열어젖혔던 나는 아연해졌다.  방은 어두웠다. 주방쪽에 나있는 A4용지 두장만큼한 뙤창문으로 빛이 약간 흘러들어올뿐이였다. 출입문쪽만 빼고 사면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득 들여놓아서 낡은 가구점이나 잡화점을 방불케 했다. 옷장이 있는데 또 이동옷걸이를 들여놓았고 옷장과 이불장우에는 바퀴달린 트렁크가 자그만치 다섯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모두 거리의 페기물에서 늘 볼수 있는 물건들이였다. 인형자판기에서 동전으로 뽑아온듯한 싸구려 인형들이 장식품으로 창턱이며 화장대며 지어 텔레비죤우에까지 올려져있었고 싱크대우에는 남비며 쟁반들이 무더기로 쌓여있고 사은품으로 받아왔을 플라스틱 반찬그릇들이 천정높이로 쌓여있었다. 출입문에는 짜장면이나 군만두가 그려진 중국집 안내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져있고 문옆에는 금방 배달해 먹은듯싶은 빈 짜장면그릇이 신문지에 가리워져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두억시니 같은 남자가 장승처럼 서있었다. 유달리 커보이는 머리에 채양이 달린 검정모자를 쓰고있었는데 모자밑으로 보이는 하관이 유달리 길고 안으로 구부러져 보였다. 구석 한쪽에서 벌레먹은 콩잎처럼 몸을 말고 앉아 자기 짐을 챙기고있던 그녀가 손에 들고있던 물건을 떨어뜨리며 창백하게 굳어졌다. 남자는 미리 알고있은듯 나의 출현에 대하여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나를 들으라는듯 남자는 줄기차게 욕을 퍼부어대고있었다.  《다 죽어가는거를 살려줬더니 도망을 갈라코? 니 년이 누구덕에 살았는디? 잰내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런 얌치없는 년을 보았나.》 《이 년 저 년 하지 마세요. 자식이 있고 남편 있는 남의 녀자를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되죠. 듣자듣자 하니 더 이상 들을수가 없네요.》 가슴속에 일어나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여서인지 내 입안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는듯했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정면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좁은 량미간에 격함과 신경질이  뭉쳐있었고  반소매 자락에 드리운 그의 주먹은 유달리 컸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도 보통사람의 두배는 되는듯했다. 마주 바라보면 당장 주먹이 날아올것 같은 위태로움을 간신히 누르고 나는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가 비스듬히 눈을 뜨고 이죽거렸다.  《아줌씨는 뉘신디? 뭣 댐시 남의 부부일에 참견하신단가?》 《부부라니요? 위장결혼 아니였던가요?》 《저 사람하고 물어보이소. 우리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부부라 그 소린겨.》 《부부인데 소개비를 받아챙기는 법도 있나보죠?》 《아줌니가 뭘 모르는 같은디 싸게 경찰서 한번 댕겨와사 쓰겠구만예.》 《그래요. 당장 경찰서로 갑시다. 기껏해야 강제출국이겠죠. 보내면 가면 되잖겠어요? 거기에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데 못갈것도 없죠. 하지만 그쪽은 곤난할텐데요? 혹시 혼인사기죄로 깜방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니깐.》 《혼인사기죄락코?》 남자가 안으로 감겨올라간 턱을 추켜들고 이윽히 자기 턱만 만지작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정말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긴 팔을 내저으며 아무 일도 없는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뭔 얘긴지 알았은께 거기 그렇게 서있지 마시고 여기 올라와서 얘기합시더. 좋은게 좋은게 아니겠습니꺼.》 이게 뭐야? 너무 쉽잖아. 믿겹지가 않아 난 그냥 문가에 서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꼬리를 내릴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위장결혼이란 명분으로 돈을 받아 챙긴 사실이 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남자도 알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될수록이면 그 남자와 떨어져있고싶어서 싱크대아래쪽에 바짝 붙어앉았다. 담배꽁초에 짓눌려서 뜸자리처럼 까맣게 우그러진 장판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대고있던 남자가 옷가지를 정리하고있는 그녀쪽을 돌아보았다. 《담배가 떨어졌는디 슈퍼에 퍼뜩 댕겨와사 쓰겄구만.》 한결 풀이 꺾인 목소리였다. 《슈퍼 아줌니가 당신이 지난번에 밀린 외상값을 달라고 할텐데요.》 녀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씹팔, 고건 냉중에 준닥카믄 되잖여.》 남자가 그녀한테 팍 인상을 썼다. 《당신은…》 그녀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뒤말을 사렸다. 어처구니없기는 그녀 못지않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이라니,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그러는걸 보니 실수로 그러는건 아닌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시누이인 나의 앞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있는상싶었다. 그때까지 가까스로 유예되고있던 인내가 서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느끼지 못한듯 덤덤한 표정으로 남자가 주는 오천원짜리 지페를 받아쥐고 입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출입문께로 걸어갔다.  《차라리 당신이 가면 좋을텐데…》 《무엇땜시?》 《전, 상점집 아줌니가 무서워요.》 《와? 상점집 아줌니가 잡아먹어뿌리기래도 한다냐?》 《외상값땜시 그러죠…》 그녀는 어느새 말투마저 남자를 닮아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사소한 몸짓과 습관속에 고스란히 자신의 체취를 남겨가고있었다. 그녀를 닮은 내 동생이나 그 남자를 닮아가고있는 그 녀인이나 서로 닮아있는 두께만큼 서로를 괴롭힐것이고 서로 닮지 않은 거리만큼 고통스러워할것이다. 이제 당신이란 말을 특별히 문제삼는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였다. 벽에 나란히 걸려있는 남자의 와이샤쯔들과 그녀의 브라우스, 그리고 그녀가 옷을 챙기다가 열어놓고 나간 수납공간속에 섞여있는 그녀의 팬티와 남자의 팬티, 이런것들은 굳이 녀자가 남자를 당신이라고 호칭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외면하고싶어하는 그런 사실들을 립증하기엔 너무나 큰 단서들이였다. 물론 그녀한테 따지기라도 하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것이다. 출입국사무소에서 검사를 내려오면 함께 살고있는것처럼 보여줘야 했기에 어떤 수단으로든지 위장결혼이 아니고 정식결혼임을 증명해야 했다고, 그러니 오해를 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마음속의 이름 하나하나를 지우고 이 세상에 혼자 남은듯이 살겠다던 그녀는 어느새 빠져나간 이름의 빈자리에 그 남자를 가득 채우고있었다.   모든것이 물속 같이 빤히 들여다보이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다만 나는 여기에서 본 모든것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례외적인 미지의 시간으로 잊고싶었다. 하지만 외면하고싶은 마음 뒤편에는 또 하나의 마음이 무섭게 대립하고있었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였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그녀한테 화를 내야 하는데 그래지지 않았다. 화를 낸다고 무엇이 달라질가. 오히려 내가 두려워하던 일을 재촉하고말것이다. 애써 숨길 필요가 없이 그녀는 홀가분하게 우리를 떠나게 될것이다. 조그만큼이라도 미안했던 마음도 사라지게 될것이다. 내가 화를 내지 못하는 리유는 그래서라고 우기고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두려워하고있었다. 자신이 마주서게 되는 현실이 두려워 도피하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놀라지도 않고 늘 그렇게 살아오기라도 했던것처럼 시큰둥하거나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게 여러 사람을 위하고 주위를 편하게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묵인으로 슬그머니 그녀의 불륜에 동참해 동생의 아픔이나 고통을 거들어주고있었다. 그것이 동생과 그녀사이에서 겪는 나의 아픔이였다. 그런데 그녀가 그 남자를 당신이라고 부를 때마다 거짓말 없이 그녀의 하신이 떠올라 나는 당황했다. 우연하게 보게 된 그녀의 하신을 떠올리면서 동생이 불쌍하여 울었던 그날처럼 나는 눈물이 났다. 여름이였던것 같다. 그 녀자가 약을 먹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내가 간 곳은 병원 급환자실이였다. 코에 튜브를 꽂은채 그녀는 미동도 없이 누워있고 그 한쪽켠에 얼굴이 까맣게 죽은 동생이 사시나무 떨듯 떨고있었다. 《싸웠니?》 동생이 고개만 끄덕였다. 《적당히 하지, 왜 바보같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드니?》 《위장결혼을 한다구 내 몰래 남자를 만나구 다니길래 뭐라 그랬더니 약을 먹은거요. 솔직히 지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위장결혼을 한다는데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겠소.》 《너도 동의했다면서 뭘 새삼스럽게 일을 크게 만드냐?》 《그러게 말이요. 나도 동의해서 시작한 일인데 정작 두사람이 같이 다니는걸 보니 눈이 휘딱 번져지는걸 어떻게 하겠소.》 그때, 의사가 나에게 환자가 자리를 지른것 같으니깐 옷을 갈아입히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젖은 아래도리를 벗겨내고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면서 경악을 했다. 세상에 어떻게 어른의 아래도리가 이렇게 가날플수 있는지, 너무 작고 여위여서 채 발육하지 않은 여덜살짜리 엉뎅이만큼도 안되였다. 그녀한테는 안된 애기지만 그때 나는 동생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바로 지금, 그때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그때와 똑같은 생각을 한것은 너무도 의외였다.  슈퍼에서 돌아온 그녀가 주전자에 수도물을 받은 다음 전열기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았다. 그러고나서 익숙한 솜씨로 주방 찬장에서 커피잔 세개를 꺼내더니 수도물에 헹구어서 차판에 가지런히 올려놓고있었다. 물이 끓는 사이 그녀는 흐트러진 남자의 옷을 차곡차곡 정리하고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물끄럼히 그녀를 지켜보고있던 남자가 투박하게 말했다. 《냅둬. 어차피 그러고 살긴데 뭘. 인자는 시간도 많이 가버렸은게. 자기 짐이나 꿍져가꼬 퍼뜩 가라구.》 남자는 담배갑만 챙겨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두사람은 서로 나누어 가질 물건도 후날을 약속할 따뜻한 말도 있지 않는듯했다. 녀자는 트렁크를 끌고 문을 나서다가 잠간 뒤돌아보았다. 무언가 개운치 않는 표정으로 이윽히 굳어져있다가 비로소 생각난듯 바지주머니에서 키를 꺼내여 조심스럽게 문턱밑에 놓고있었다. 애틋하게 눈빛이 젖어있었다. 녀자가 함께 있어주어서 남자한테는 천당이였을 이 작은 공간은 그 녀자가 빠져나감으로서 더 이상 천당이 될수 없을것이였다. 아마 거리에 버려진 더 많은 중고품들과 사은품들이 비여진 공간에 채워질것이고 더 이상 채워질 공간이 없으면 다시 거리에 버려질것이다.  녀자는 바줄에 걸린 자신의 팬티를 그대로 둔채 집을 나섰다. 알려줄려다가 그만두었다. 자존심을 건드려 부끄러움을 일깨우고싶지 않았다. 그녀는 떠나도 그녀의 팬티는 부적처럼 남아서 남자의 기억을 붙잡아줄것이다. 골목길을 내려오다 보니 남자가 마을 입구에 있는 슈퍼에서 큰길쪽을 내다보고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길가운데서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보며 한참 망설인채 서있었다. 그러다 결심을 내린듯 가방을 흔들며 큰 도로가 있는 오른쪽으로 탈탈 걸었다.  한달후, 나는 서울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처음에 만났을 때보다 무척 표정이 밝아보였다. 목소리에도 생기가 도는듯했다. 어느 가정집에서 일하는데 마음이 편하고 안정적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녀가 안심을 하도록 서울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맙다며 나에게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금동이 아버지한테 전해주세요.》 《이게 뭔데?》 《편지예요?》 《갑자기 웬 편지요?》 《꼭 써야 될것 같아서요.》 좋은 징조겠지? 나는 편지내용을 가늠하듯 봉투를 해빛에다 대고 들여다보았다. 봉투는 테이프로 사면을 단단하게 봉해놓아서 짜르려면 가위를 쓰지 않고서는 안될듯싶었다. 《비밀이요? 철저히 봉쇄했네.》 그녀는 점심시간에 잠간 나온거라며 빨리 들어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막 떠나려는것을 내가 불러세웠다. 《뭘 좀 물어볼게 있는데?》 《뭘요?》 《그 남자는… 잘 있소?》 그 남자를 만나냐고 묻고싶었는데 감시하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만 말을 돌려버렸다. 《얼마전에 비자 연장수속때문에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다왔어요.》 그녀는 내가 묻고있는 진실을 모르는듯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녀가 떠나간후에도 나는 한식경이나 한곳에 못박혀있었다. 기분이 미진하고 껄끄러웠다. 남자와 녀자가 한번  얽히면 그 고리를 끊기가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국적해결까지 가려면 아마 수십번도 더 만나야 할것이고 그러다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지 누가 알랴. 나무의 좀처럼, 혹은 사람의 몸에 나있는 종양처럼 오래오래 잠식을 하는 그 병균을 단번에 짤라낼수는 없을것이다. 절교신일가? 아니면 그동안의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내용일가. 비행기안에서 몇번이나 편지봉투를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도 결국 뜯을수 없었다. 웬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연길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남편이 놀라지 말라며 전해주는 소식에 소스라쳤다. 동생이 집을 나간지 한달째 되는데 종무소식이라는것이였다. 그러니깐 내가 한국으로 간 바로 이튿날 생긴 일이다. 다음날 고향에 가서 들은 소식은 더욱 황당했다. 동생과 가장 친하게 지냈던 재덕이가 동생의 생사를 잘 알거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정작 재덕이는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금동이와 은동이는 외가에 가있고 동생네 집은 비여있었다. 낡긴 했지만 동생이 직접 짠 옷장과 이불장 그리고 찬장과 책상이 먼지를 쓴채 빈집을 지키고있었다. 이미 낡을대로 낡아서 옮겨놓기만 하면 각이 뿔뿔이 달아나버릴것 같은 가구들이지만 동생에 대한 기억을 살려주어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동생은 목수였다. 재간이 좋은데다가 부지런하여 온 동네의 가구는 물론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관을 짜는 일까지 혼자서 했다. 그런데 차츰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해외로 빠지고 마을에 몇호가 남지 않자 그 역시 할 일이 없게 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수일을 그만두게 된것은 화전집 할아버지의 관을 짜주다가 기계톱에 오른손을 잃은 다음부터였다. 잃어버린 손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게 되면서부터 동생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돈벌러 간다고 떠난 뒤에는 한손으로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아이들의 뒤시중을 들어주었고 짬이 나면 산을 오르내리며 약재를 캤다. 갑자기 아이들을 외가에 맡기고 집을 비운것은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이였던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하고 집을 떠나야 했는지 그 리유를 남긴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었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구… 그 말이 자꾸 귀가에서 맴돌았다. 그 녀자를 찾아달라고 동생이 소란을 피웠던 날 나는 동생한테 야단을 쳤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부족할 판에 허구헌날 술이나 처먹고 주접을 떨고 다니니 어느 녀잔들 좋아하겠냐, 내부텀도 싫어. 대개 이런 내용이였다. 다른 땐 묵묵히 들어만 주던 동생이 그날은 가슴이 찢어지게 절규를 하는것이였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구…》 해빛에 까맣게 탄 동생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 그가 웃으면서 불쑥 나올듯싶기도 하였다. 나는 그의 출타가 리해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내가 귀국하기를 기다렸을 동생이다. 그녀를 꼭 찾아달라고 하더니 왜 소식을 기다리지도 않고 떠났을가. 아이들까지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버리도록 절실하게 암담했던 동생이 불쌍해서 참을수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매여달렸다. 그날 저녁에 동생이 나에게 자기의 녀자를 찾아달라고 조르듯이 나는 내 남편에게 동생을 찾아내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남편이 힘든 말을 꺼내려는듯  먼저 다짐을 받아냈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게 좋겠어.》 《그게 무슨 말이예요? 당신은 뭘 알고있는거죠?》 《그게 말이야. 처남이 강에 뛰여드는걸 본 사람이 있대.》 《아직 누구도 시체를 못봤다면서?》 《동네 사람들은 요앞에 설창에 새로 생긴 묘가 금동 아버지의거라고 하는데, 확실하게 알려면 묘를 파보아야 한대.》 《그게 무슨 소리예요? 파보면 알다니? 누가 묻었는데? 묻은 사람이 알거잖아요?》 《강에서 시체를 건져서 묻은 사람은 재덕인데 자기가 묻은 사람은 금동 아버지가 아니고 강건너에서 온 사람의 시체라고 했어. 재덕이가 일년째 정부로부터 허락을 받고 강에서 떠내려오는 시체를 묻는 일을 하고있었나 보더라구.》 《아니니깐 아니라 하겠죠. 재덕이는 동생의 절친한 친군데 설마 친구를 못알아보겠어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재덕이가 뭘 숨기고있는건 확실해.》 《그럴리가요?》 《다들 그렇게 보고있다구.》 《글쎄, 그럴만한 리유가 뭔데요?》 《그걸 알면 이렇게 답답하겠어?》 남편은 래일 시내에 가서 인부를 몇사람 불러다가 묘를 헤쳐서 확인하는수밖에 없다고 했다.  죽은 사람의 묘를 함부로 파헤쳐 귀신을 놀래면 3대가 내리 화를 면치 못한다는 속설도 있다. 나는 대뜸 부질없는 일이라고 반대해나섰다. 시체를 묻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들 괜히 죽은 사람 묘를 파헤쳐서 일을 크게 만들려고 하는지, 남편은 내가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회피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말이지 난 동생의 죽음을 믿고싶지 않았다.   《확실한건 아니야. 다만 가능성인데 말이야. 재덕이는 시체 한구를 매장하고 정부로부터 매장비를 이백원을 받는 모양인데 혹시…》 《당신의 말은 재덕이가 돈 이백원 타먹을려고 금동 애비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거예요?》 《그럴수도 있다는거지… 마을에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 문제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재덕이는 못들은척 피한단거야. 이것보다 더 큰 단서가 또 있어.》 《그게 뭔데?》 《그날 시체를 묻고 돌아와서 재덕이는 혼자서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많이 울더래.  종래로 그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거여.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결국 재덕이를 한번 더 만나보고 다시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튿날 설창에 도착한것은 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아침시간이였다. 령혼을 나꿔채던 여름의 빛은 삭아지고 물빠진 잎사귀들이 찬이슬에 쓸쓸히 젖어들고있었다. 재덕이네 집에 들렸다가 그가 설창에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곧추 그곳으로 갔다. 콩밭머리에서 풀을 베고있던 재덕이가 허리를 펴고 우리쪽을 보더니 터덜터덜 마주 걸어왔다.  《다시 올줄 알았소.》 우르르 쏟아지는 비물처럼 그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들어있었다. 그는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고 했다. 기다리고있었다는것은 그가 동생의 일을 알고있다는것이 아닌가. 무서운 예감이 썰물처럼 가슴을 무너뜨렸고 깊은 뻘밭에 거꾸로 처박히는듯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나는 저도 몰래 슬그머니 남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동생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게 해달라고… 늘 동생을 기다릴수 있게 해달라고… 재덕이가 낫으로 풀섭의 이슬을 툭툭 치고나서 우리한테 앉으라고 하였다. 나와 남편이 풀잎에 나란히 앉자 재덕이는 우리와 조금 거리를 두고 낮자루를 깔고 앉았다. 강을 사이두고 바라보이는 건너산 기슭에는 실안개가 가볍게 흘러가고있었다. 재덕이는 뭔가에 사로 잡힌듯 혼자말처럼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금동 애비가 나를 찾아온것은 누님이 한국에 간 이튿날 저녁이였소. 몸을 가누지 못하게  술을 많이 마셨습데. 신발을 신은채로 부엌에 걸터앉더니 다짜고짜 나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그 나이에 왜 장가두 못가냐, 혹시 너 꼬쟁이 아니냐?> 하면서 시비를 거는거요. 내가 발끈하면서  <너 취했냐? > 하고 언성을 높였더니, 히히 웃으면서 <너  장가를 가지 않기를 천번 만번 잘했다. 니 일생에서 제일 잘한게 장가를 가지 않은거야.> 하는거요. 그러고나선  노래를 부릅데. 가사내용이 누구하고 작별을 고하는듯한 노래였소… 슬픈 가시나무새처럼 나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평생 단 한번의 노래라면 그대 위해 부르리. 나의 가슴이 멍이 들어도 괜찮아, 다시 태여나도 나 그댈 위해 태우리. 슬픈 나의 사랑아, 안녕… 무슨 노래가 그리 애절하고 슬프냐 그랬더니, 가시나무새라고 하더만…》 아, 가시나무새, 나는 가슴밑에서 일어나는 전률을 느꼈다. 그것은 동생이 평소에 가장 즐겨 부른 노래였다. 가시나무새는 죽기전에 일생에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른다는 새다. 그 새는 알에서 깨여나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가시나무를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려 붉은 피를 흘리며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어간다.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것은 가장 처절한 고통속에서 피여난다는것을 말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그대를 지우고 지워도 버리고 버려도 다시 가슴에 남아  그리움만 재가 되여 쌓여가 …… 나의 가슴이 멍이 들어도 괜찮아 다시 태여나도 나 그댈 위해 태우리 슬픈 나의 사랑아  너무 보고싶은데 붙잡고싶은데  바람처럼 나를 울리고 떠난 사람아 이 못난 내 사랑 이젠 너를 보내주리 보고싶은 사람아 안녕 안녕  《그날, 금동 애비는 밤새껏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갔소. 가기전에 나한테 이런 말을 하였소. <언젠가 내가 죽으면 재덕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네가 날 묻어달라. 내가 죽었단 말 아무한테도 하면 안돼. 이건 비밀이야. 내 죽음으로 하여 우리 부모형제 아프게 하고싶지 않다… 우리 엄마, 내 누나, 그리고 내 새끼들 마음속에 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고싶어.>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가 죽을 준비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소. 우린 가끔씩 그런 롱담을 잘했으니깐. 내가 금동이애비를 묻어주고 금동이 애비는 나한테 관을 짜주고… 그날도 난 금동이 애비한테 내가 널 묻어주겠으니 넌 나한테 관을 짜주어야 한다고 했소. 그런데 평소에는 제일 좋은 널로 짜준다고 큰소리를 쳤던 그가 그날에는 그럴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합데. 그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왜 못해주겠냐고  물었소.  금동 애비가 손이 없는 오른팔을 흔들어보이면서 야, 임마 한손으로 어떻게 관을 짜냐 하면서 허허 웃는거요… 그렇게 하고 떠난 사람이 이튿날 익사체로 내앞에 나타났소. 마을 사람들의 말이 다 맞소. 설창에 새롭게 생긴 묘가 바로 금동 애비 묘요. 금동 애비와 한 약속을 지켜주고싶었소. 사람湧?아무리 이백원에 친구이름 팔아먹는 놈이라고 욕해도 다 참을수 있었소. 하지만 누님한테는 끝까지 속일수 없었소…》 마디마디 부서지고 분리되는 내 의식은 수의처럼 안개가 감싸고있는듯 뿌옇다. 동생은 그녀를 잊지 못해 자신을 버렸다. 자신을 버림으로서 그녀를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하였을것이다. 바보, 조금만 더 기다리지,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것이 되돌아올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동생은 두려웠을것이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가봐 두려웠을거고 그녀를 두고두고 미워해야 하는 자신이 두려웠으리라.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것은 원래의것이 아니라는것조차 두려웠으리라. 동생은 이제 지루한 견딤과 애달픔마저 잊고 바람에 물빠진 락엽과 나란히 누워있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것이다. 나는 빽에서 그녀의 편지를 꺼냈다. 그녀의 편지를 동생의 봉분앞에서 태워보내고싶었다.  《뜯어보지 않고 태울려구?》 남편이 아직 개봉을 하지 않은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보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아서요.》 《처남한테 읽어주오,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데…》 나는 잠간 망설였다. 동생한테 마지막이 될 그녀의 편지가 궁금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뭐라고 썼을지? 인연이 다했으니 헤여지자 했을가, 아니면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그것은 동생한테 이제 아무 의미도 없게 되였다. 헤여지자고 했든 다시 시작하고 했든 그것은 산 사람이 짊어지고 갈 멍에일뿐이다.  슬픈 가시나무새처럼 평생 단 한번의 노래를, 그녀를 위해 부르고싶었던 동생한테 그 마지막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며 가게 하고싶었다. 나는 뜯지 않은 그녀의 편지봉투에 불을 달았다.  《금동이 엄마 편지야… 그 사람도 네가 많이 그리울거야…》 빨갛게 타는 불꽃이 망자의 령혼앞에서 생혈을 토하는듯했다. 타다 남은 재가 바람에 허위허위 날아간다. 한마리의 가시나무새가 이 세상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나무를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는것 같았다. 연변문학 2007년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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