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카테고리 : 론문
단편소설
가시나무새
허련순
일년이나 련락을 끊고 잠적을 한 리유치고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시시했다. 돈을 벌지 못해서 한동안 숨어버렸다는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나중에 판단할 일이고 일단은 그녀로부터 엄청난 해방감을 느낄수 있었다. 가족으로부터 떠나고싶었다고, 다시는 만나지 않고싶었다고 말하면 어쩔번했는가. 그 말이 나오지 않은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였다.
그녀를 만난것은 수유리의 작은 오피스텔에서였다. 금새 바람소리가 묻어나올듯 그녀의 얼굴은 파리했다. 서울에 온지 2년이 넘었는데도 중국에 있을 때와 형편이 별로 나아보이지 않았다.
《저의 련락처는 어떻게 아셨어요? 누구한테도 얘기한적이 없는데…》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어버리고싶었을것이다. 그렇게 숨어서 누구한테도 련락처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허공에 맴도는듯한 그녀의 눈빛에는 무언가 숨기고싶어 바장이는 부산함과 불편함이 떠있었다.
《다 아는수가 있지.》
그냥 잠적은 안될걸, 아마 내 대답에는 그런 뉘앙스가 풍겼음직하다. 온 서울시내를 써캐 훑듯 뒤져서라도 꼭 그녀를 찾아내고말거라는 각오로 한국에 갔던 나다.
《영도동에 있는 직업소개소에서 알아냈소.》
《거긴 어떻게 알고 가셨는지…》
딱부러지게 말꼬리를 맺지 못하고 질질 흘리는것은 예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금은 어눌하고 살짝 바람든 무우처럼 비여보이는 그런 점때문에 오히려 그녀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에 일하던 모텔 사장님한테 전화를 하니깐 금동 엄마가 영도동직업소개소에 잘 다닌다고 알려주었소.》
그녀는 아무 대답도 없이 이윽히 어둠이 드리운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저으기 걱정스러우면서도 근심어린 표정이다. 무엇을 걱정하고있었을가? 그동안 어디서 무었을 하고있었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가족과 련락을 끊고있었는지, 어떻게 대답해줄가 하는것을 고민하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리유도 없이 일년간이나 아이들한테 생활비도 보내지 않고 잠적을 했던 자신을 변명할 리유를 만들어야 할게 아닌가.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지나가는건 아마 그녀 자신도 불편했을것이다.
왜 그랬느냐고, 그녀를 만나기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따끔하게 혼을 내주고 억지로 끌고 가든지 아니면 강제출국이라도 시켜야 한다고 격하게 생각하고있었던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그래야만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녀가 한국에 올 때 꾼 리자돈을 갚느라 겨드랑이에 쉰내가 풀풀 나게 약재를 캐러 산을 오르내리는 동생을 대신하여 속이라도 후련할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나고나서는 그런 말들이 입속에서만 맴돌뿐이였다. 그런 질문을 주고받을만큼 그녀는 나한테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 비스듬히 비켜 서있는듯한 표정에는 열정이나 따뜻함이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자신을 야단치고 혼내줄 권리는 누구한테도 없다고 미리 경고를 하고 선수를 치고있는듯했다. 닭 쫓던 개 담장 쳐다보는 기분이 이럴가. 나는 그녀 스스로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그게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는것이고 그녀 자신이 가족을 위하여 할수 있는 마지막 량심이라고도 생각되였다.
그녀가 무겁고 칙칙한 숨을 길게 몰아쉬더니 입을 열었다.
《저 불빛 보이죠?》
《어디?》
그녀는 애초부터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듯 계속 자기 말을 이었다.
《저 불빛을 보고있노라면 온 도시가 각혈을 하고있는듯이 느껴져요.》
나는 그녀가 보고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단란주점의 네온등이 명멸하며 피 같은 진한 빛을 토해내고있었고 모텔건물에는 둥근 화로불 같은 모텔표시가 빨갛게 타고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각혈을 하는것 같다고 말하고있었지만 나는 욕망에 불타는 요부의 음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저도 저런데서 일을 했어요. 얼마나 힘들던지, 그때 전 자주 각혈을 하였어요. 객방청소를 하다가도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고 피를 토하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세요?》
옆방에서 지르는 남녀들의 까무러칠듯한 교성을 들으며 까부러지는 자신의 생명의 소진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가. 알것 같았지만 헛되이 대답할수도 없었다.
《나, 이제 혼자서 죽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게 아마 혼자서 죽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있을 때일거예요. 그런데 그보다도 더 괴로운것은 그 순간마다 식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는거였어요. 손을 내밀어도 손에 닿을수 없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혼자 있다는것을 더 처절히 느꼈고 그래서 더 무섭고 두려웠어요. 차라리 아무도 그리워할 사람이 없다면 마음이 그리 아프진 않았을거예요. 그래서 나는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름을 하나하나 지우기로 하였어요. 다 지우고 이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처럼 홀가분하게 살기로 하였어요. 그러니깐 조금 견딜만했어요. 그러지 않고는 단 하루도 견딜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련락을 끊은거요?》
《그런 셈이죠.》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있소?》
그녀는 잠간 나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쉬고있어요.》
《살고있는데는?》
《특별히 정해진데가 없어요.》
《그게 무슨…》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예민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사뭇 날카로왔다.
《어차피 집 떠난 사람이 어디 정해진데가 있겠어요. 어디서 살든 그게 뭘 그리 중요해요.》
어디서 살든 중요하지 않다니, 그동안 잠적을 했던 자신에 대한 변명 같이 들렸다. 그리고 어디서 살았느냐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있는 가족들에 대한 반발인것 같기도 하고. 그것은 가족들이 의심하는것이 사실이란 얘기도 된다.
이제 막 살겠다는건가? 내가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도리여 아무렇지도 않은 눈으로 나를 마주보고있었다. 그 대수롭지 않은 눈빛은 오히려 오만함이나 거만함보다 더 완고하고 단단하고 물샐틈없어보였다. 그녀는 이미 내 가족이란 그늘에서 멀리 비켜서있는 사람 같았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동생이 부덕한 탓으로 마누라를 위장결혼으로 엉뚱한 남자한테 떠밀어놓고있는 마당에 시누이로서 내가 그녀에게 할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아직 동생의 부탁도 전해주지 못했는데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함구무언으로 앉아있을뿐이였다. 나로부터 비난의 말 한마디 나올 여지가 더이상 없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것을 한꺼번에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돌려놓았다. 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인내심을 잃고 그녀의 비위를 거슬러놓아 영영 잠적을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이거야말로 동생한테 죄짓는 일이 될것이다.
서울로 떠나오기 전날 밤에 동생이 찾아왔을 때 그의 몸에서는 술냄새가 진동했다.
《누나… 누나는 금동 에미가 나를 배신하고 도망갔다고 생각하오?》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있었지만 사실대로 말할수 없었다. 그녀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은 동생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말이 될것이다.
《그럴리가 있겠니? 잠시 일이 잘 풀리지 않는거겠지.》
《그렇지? 누나. 금동 에미는 그럴 사람은 아니지? 그렇지?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는거지? 그 사람은 절대 우리를 버리고 도망갈 사람이 아니야. 내 같은건 별 볼일 없는 놈이지만 제 배속으로 낳은 금동이, 은동이가 있는데 그것들을 버리고 어떻게 도망가?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꼭 돌아올거요. 그렇지 누나? 그렇다고 얘기 좀 해주.》
그렇지를 련발하면서 동생은 나한테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고싶어 안달아했다. 바보. 정말 못난 놈이야.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떠나지 않았으면 일년이 넘게 돈 한푼도 보내지 않고 잠적을 했겠는가. 누가 들어도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이라고 말할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동생만은 그녀를 믿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금동 에미가 살아있다면 왜 련락을 하지 않는걸가? 혹시 죽은건 아닐가? 죽었는데 우리가 찾지 않고있는건 아닐가, 누나?》
그는 끝까지 그녀가 마음이 변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어딘가에 잘 있을거다.》
《살아있는데 왜 련락이 끊겼어?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글쎄 안죽었어. 내가 확신해. 그러니깐 그만 징징거려.》
《누나, 금동 에미가 없음 난 어쩌라구.》
동생은 밤새도록 금동 에미를 찾아오라고 주정을 부렸다.
그날 저녁의 일을 전해주면서 나는 눈물이 나올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 진한 감동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고마운 마음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눈시울을 붉히며 얘기하는데도 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내 말은 그녀에게 전혀 스며들지 않고 헛된 메아리로 나한테로 되돌아왔을뿐이였다. 혼자 떠들고 기분내고 헛되이 응답을 기다리는 격이 되여 싱겁고 머쓱하고 창피하였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발신인번호를 확인하는가싶더니 급기야 꺼버리는것이였다. 다시 핸드폰이 길게 울렸다. 받을가말가 망설이는듯하더니 전화를 열고 상대가 미처 뭐라고 하기도전에 딱딱한 어조로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것이였다. .
《오늘 급한 일이 있으니 기다리지 마세요.》
《누군데?》
《잘 아는 사람이예요.》
《잘 아는 사람 누구?》
그녀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예요.》
《그 사람이라니?》
《위장결혼을 한 남자.》
갑자기 욕지기가 올리미는듯 불끈 화가 치밀었다.
《지금도 그 사람과 함께 있소?》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자꾸 기습적으로 검문 나오니 어쩌겠어요… 그래도 남들이 생각하는것처럼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그녀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신중한 머뭇거림이 웬지 꺼림직했다.
그날 밤, 그녀는 남자한테로 가지 않았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한집에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모양이였다. 그녀는 남자에 대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하였다.
《남자는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이예요. 얼마나 변변치 못했으면 마누라가 아이 둘 낳고 도망을 갔겠어요. 아이들은 다 컸나봐요. 큰애는 군대에 가고 작은애는 지금 엄마하고 같이 살고… 하긴 이런게 저한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죠. 약속한대로 수속비만 넘겨주면 끝나는게 아니겠어요.》
《그렇지.》
내가 하고싶던 말을 그녀가 알아서 하고있어 다행이다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어요. 그 사람은 처음의 약속을 깨고 서류상에 우리는 하자가 없는 부부라며 같이 살아야 된다는거예요. 약속이 그게 아니지 않냐고 하니 약속보다 더 중요한건 현실이래요. 현실은 무시할수 없는거라구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때는 그 인간을 피해다니면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귀신같이 찾아내더라구요. 들키는 날이면 아주 개망신을 당하군 했어요. 남편을 배신하고 바람난 녀자처럼 몰아세우는데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있어야죠. 그렇게 한바탕씩 소동을 벌이고나면 난 짤리지 않으면 부끄러워서도 일을 그만두고 나와버리군 했어요. 일년사이 그 인간하구 숨박곡질을 하느라고 일곱번씩이나 일자리를 옮겨다녔어요. 그러니 돈이나 제대로 벌었겠어요. 자기 말을 안들으면 시도 때도 없이 신고한다 그러구…》
《신고는 무슨 신고. 괜히 겁줄려고 그러는거지.》
《아니예요. 그 사람은 얼마든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예요.》
《신고하면 남자도 법에 걸릴텐데 감히 신고를 하겠소? 그렇게 겁을 먹고 쩔쩔 매니깐 그런 인간한테 약점 잡혀있는거지. 래일 그 사람과 만나서 따질거니깐 이참에 그곳에서 아주 나와버리오. 어떻소? 그렇게 할수 있겠소?》
《그랬으면 좋겠지만 당장 연장수속도 해야 하고… 그리고 일년만 참으면 국적도 올릴수 있는데…》
그녀는 주저하고있었다. 연장수속이나 국적취득을 위하여 주저하는건 알겠지만 그것을 빌미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싶어하는건 아닌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새벽, 아직 날도 채 밝지 않았는데 그녀는 소리내지 않고 살금살금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
《어디 갈려고?》
《잠들고있어서… 그냥 갈려구 했는데…》
그녀는 망설이듯 말했다.
《거기 앉소.》
《제 생각엔…》
《거기 앉으라는데.》
《전 빨리 가봐야 해요.》
《나하고 같이 가기요.》
《어디를요?》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집에서 나오도록 하오. 지금 나오지 않으면 영 나올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오.》
강압적이고 암담한 전률을 느끼는듯 그녀의 얼굴이 까뭇하게 흐려졌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을 하지 못하였다. 거절할 리유가 없었을거다. 내가 옷을 입는 동안 그녀는 자주 시간을 확인하며 불편한 자기의 심기를 드러내보일뿐이였다.
그녀와 나는 수유리 지하철에서 4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다시 1호선을 갈아타고 구로역에서 내렸다. 그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따라가는것이 부담스러워 떼여놓지 못해 안달아하는 눈치였다. 역 광장을 가로질러 큰길쪽으로 접어들 때쯤에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너무 심하게 몰아세우지 마세요.》
《누구?》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 말이예요.》
그녀는 부자연스러운듯 나를 외면했다.
《그 사람이라니?》
《그 사람 너무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그동안 그 사람 신세를 많이 입었거든요.》
말을 마친 그녀는 얼굴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하늘에는 옅은 회색 구름이 카텐처럼 빛을 가리우고있었다. 밤새 그 남자를 욕하는듯했지만 결국 그 남자를 두둔하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그 남자를 느낄수 있었다. 내 동생을 통하여 그녀를 느꼈듯이 그녀를 통하여 다시 그 남자를 보게 된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모습뒤에는 내 동생이 아닌 다른 남자의 존재가 잠닉해있었다. 그가 아무리 그녀를 견딜수 없이 힘들게 했다지만 그들은 힘든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키우고있었다.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고있던 그녀가 서두르듯 걸음을 재우쳤다. 일부러 나를 따돌리려는듯 내앞에서 씽씽 혼자서 걸었다. 체크무늬의 치마밑으로 들어난 커피색 스타킹이 헐렁하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헐겁게 따로따로 움직였다. 혼자 가는것이 미안한듯 잠깐씩 내쪽을 뒤돌아보긴 하였지만 애초에 같이 걷고싶은 생각은 없는듯하였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 자신이 굴욕적이였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동생을 위하여서는 오늘은 기어이 그녀를 쫓아가야 했다.
남자가 사는 집은 구로시장 어느쯤에 있는 모양이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짐승의 내장처럼 꼬불꼬불하고 긴 골목을 한참이나 따라 들어갔다. 시장 골목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지저분하였다. 시야에서 그녀를 놓치지 않을려고 바지런을 떨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기도 하였다.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도 나는 그녀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옷가게, 신발가게를 지나 황금당 건물앞에서 그녀가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나를 기다렸다.
《다 왔어요. 요앞에 보이는 노란건물 지하거든요.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들어가서 짐을 챙겨가지고 바로 나올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들어가는게 좋지 않을가?》
《혼자서 들어가는것이 나을것 같아요.》
《성질 무섭다면서 혹시 손찌검이라도 하면 어떻게 할려구.》
《제가 알아서 할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앞으로 쏟아질듯 위태로운 걸음새로 허겁지겁 노란 건물쪽으로 가고있었다. 내가 따라가기라도 할가봐 두려운듯했다.
자주색 페인트칠을 한 철문안으로 그녀가 사라진 뒤 조급함과 느림속에서 나는 기대감에 몰두하고있었다. 이제 그녀가 짐을 챙겨가지고 나오기만 하면 그녀와 남자의 관계는 청산될것이고 그러면 내가 할 일은 끝나게 될것이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그런데 짐만 들고 나오면 된다던 그녀가 반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건물입구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옷가게에도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지만 꼭 닫혀있는 자주색 철문은 열릴줄을 몰랐다. 무슨 문제가 생긴건 아닐가? 더 기다릴것인지, 아니면 들어갈것인지 계속하여 망설이다가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어기고 철문을 밀었다.
거기는 현관처럼 쓰는 복도였다. 반지하라 어둡고 축축한데다 퀴퀴한 냄새까지 감돌아 그야말로 대낮에도 쥐들이 욱실거릴것 같은 시끌한 기운이 감돌았다. 복도 한쪽에 피부병환자의 부스럼자리처럼 군데군데 색칠이 벗겨진 낡은 세탁기가 놓여있고 해빛이 들어오는 뙤창문우에 힘없이 드리워있는 짧은 빨래줄엔 남자의 속옷과 녀자의 속옷이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이럴수가.
얼굴이 뜨겁고 입안이 바짝 말라들었다. 발가벗기우는 기분이 들어서 재빨리 빨래줄에서 시선을 피했다. 출입국의 기습적인 검문을 피하여 거짓으로 벽이나 옷장에 옷을 걸어두는 정도가 아닌것 같았다. 그동안 소문과 의문이 무성했지만 그것은 그냥 소문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국적취득을 위한 한낱 은페작전일것이라고 믿었다. 그녀에 대한 미련때문이 아니였다.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을 잊어야 하는 아픔도 아니였고 그녀가 빠져나간 그 텅 빈 속에 혼자 남게 될 동생의 처지가 불쌍해서도 아니였다. 다만 그녀의 시간 한켠에 애매하게 묶여서 긴긴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고있을 동생을 마주할 내 자신이 두려워서였다. 그녀를 믿고싶었던 나의 의식은 나를 움직여가고있는 그녀의 감정뒤로 거꾸로 던져진 헛된 열망에 불과하였다.
《무엇땜시 어제밤에는 집에 안들어왔어? 너희들 중국년들은 그락카고 싸다녀도 남자들이 가만 냅싸둔다냐?》
집안에서는 남자의 거칠고 상스러운 욕이 흘러나왔다.
《중국년, 중국년 하지 말아요.》
《그런 말 듣기 싫으면 행세를 잘 하고 다니락코 안했나? 지금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게 생겼는가? 그리구 짐은 왜 챙기는겨? 어디 새서방이라두 생겼단가?》
《저도 나가서 돈 좀 벌어야겠어요.》
크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에 비해 그녀의 목소리는 힘없고 주눅이 들어있었다.
《누가 돈 벌지 말락캤노? 씹팔년이 지랄염병하고 자빠졌네.》
와당창, 걸상이나 밥상 같은 육중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렸다. 순간 주위가 조용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찰나라고 말할수밖에 없는 그 짧은 순간의 고요는 말그대로 죽음의 공포스러움이였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은 예감에 기겁을 하고 와락 문을 열어젖혔던 나는 아연해졌다.
방은 어두웠다. 주방쪽에 나있는 A4용지 두장만큼한 뙤창문으로 빛이 약간 흘러들어올뿐이였다. 출입문쪽만 빼고 사면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득 들여놓아서 낡은 가구점이나 잡화점을 방불케 했다. 옷장이 있는데 또 이동옷걸이를 들여놓았고 옷장과 이불장우에는 바퀴달린 트렁크가 자그만치 다섯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모두 거리의 페기물에서 늘 볼수 있는 물건들이였다. 인형자판기에서 동전으로 뽑아온듯한 싸구려 인형들이 장식품으로 창턱이며 화장대며 지어 텔레비죤우에까지 올려져있었고 싱크대우에는 남비며 쟁반들이 무더기로 쌓여있고 사은품으로 받아왔을 플라스틱 반찬그릇들이 천정높이로 쌓여있었다. 출입문에는 짜장면이나 군만두가 그려진 중국집 안내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져있고 문옆에는 금방 배달해 먹은듯싶은 빈 짜장면그릇이 신문지에 가리워져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두억시니 같은 남자가 장승처럼 서있었다. 유달리 커보이는 머리에 채양이 달린 검정모자를 쓰고있었는데 모자밑으로 보이는 하관이 유달리 길고 안으로 구부러져 보였다. 구석 한쪽에서 벌레먹은 콩잎처럼 몸을 말고 앉아 자기 짐을 챙기고있던 그녀가 손에 들고있던 물건을 떨어뜨리며 창백하게 굳어졌다. 남자는 미리 알고있은듯 나의 출현에 대하여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나를 들으라는듯 남자는 줄기차게 욕을 퍼부어대고있었다.
《다 죽어가는거를 살려줬더니 도망을 갈라코? 니 년이 누구덕에 살았는디? 잰내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런 얌치없는 년을 보았나.》
《이 년 저 년 하지 마세요. 자식이 있고 남편 있는 남의 녀자를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되죠. 듣자듣자 하니 더 이상 들을수가 없네요.》
가슴속에 일어나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여서인지 내 입안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는듯했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정면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좁은 량미간에 격함과 신경질이 뭉쳐있었고 반소매 자락에 드리운 그의 주먹은 유달리 컸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도 보통사람의 두배는 되는듯했다. 마주 바라보면 당장 주먹이 날아올것 같은 위태로움을 간신히 누르고 나는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가 비스듬히 눈을 뜨고 이죽거렸다.
《아줌씨는 뉘신디? 뭣 댐시 남의 부부일에 참견하신단가?》
《부부라니요? 위장결혼 아니였던가요?》
《저 사람하고 물어보이소. 우리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부부라 그 소린겨.》
《부부인데 소개비를 받아챙기는 법도 있나보죠?》
《아줌니가 뭘 모르는 같은디 싸게 경찰서 한번 댕겨와사 쓰겠구만예.》
《그래요. 당장 경찰서로 갑시다. 기껏해야 강제출국이겠죠. 보내면 가면 되잖겠어요? 거기에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데 못갈것도 없죠. 하지만 그쪽은 곤난할텐데요? 혹시 혼인사기죄로 깜방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니깐.》
《혼인사기죄락코?》
남자가 안으로 감겨올라간 턱을 추켜들고 이윽히 자기 턱만 만지작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정말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긴 팔을 내저으며 아무 일도 없는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뭔 얘긴지 알았은께 거기 그렇게 서있지 마시고 여기 올라와서 얘기합시더. 좋은게 좋은게 아니겠습니꺼.》
이게 뭐야? 너무 쉽잖아. 믿겹지가 않아 난 그냥 문가에 서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꼬리를 내릴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위장결혼이란 명분으로 돈을 받아 챙긴 사실이 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남자도 알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될수록이면 그 남자와 떨어져있고싶어서 싱크대아래쪽에 바짝 붙어앉았다. 담배꽁초에 짓눌려서 뜸자리처럼 까맣게 우그러진 장판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대고있던 남자가 옷가지를 정리하고있는 그녀쪽을 돌아보았다.
《담배가 떨어졌는디 슈퍼에 퍼뜩 댕겨와사 쓰겄구만.》
한결 풀이 꺾인 목소리였다.
《슈퍼 아줌니가 당신이 지난번에 밀린 외상값을 달라고 할텐데요.》
녀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씹팔, 고건 냉중에 준닥카믄 되잖여.》
남자가 그녀한테 팍 인상을 썼다.
《당신은…》
그녀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뒤말을 사렸다. 어처구니없기는 그녀 못지않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이라니,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그러는걸 보니 실수로 그러는건 아닌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시누이인 나의 앞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있는상싶었다. 그때까지 가까스로 유예되고있던 인내가 서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느끼지 못한듯 덤덤한 표정으로 남자가 주는 오천원짜리 지페를 받아쥐고 입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출입문께로 걸어갔다.
《차라리 당신이 가면 좋을텐데…》
《무엇땜시?》
《전, 상점집 아줌니가 무서워요.》
《와? 상점집 아줌니가 잡아먹어뿌리기래도 한다냐?》
《외상값땜시 그러죠…》
그녀는 어느새 말투마저 남자를 닮아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사소한 몸짓과 습관속에 고스란히 자신의 체취를 남겨가고있었다. 그녀를 닮은 내 동생이나 그 남자를 닮아가고있는 그 녀인이나 서로 닮아있는 두께만큼 서로를 괴롭힐것이고 서로 닮지 않은 거리만큼 고통스러워할것이다. 이제 당신이란 말을 특별히 문제삼는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였다. 벽에 나란히 걸려있는 남자의 와이샤쯔들과 그녀의 브라우스, 그리고 그녀가 옷을 챙기다가 열어놓고 나간 수납공간속에 섞여있는 그녀의 팬티와 남자의 팬티, 이런것들은 굳이 녀자가 남자를 당신이라고 호칭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외면하고싶어하는 그런 사실들을 립증하기엔 너무나 큰 단서들이였다. 물론 그녀한테 따지기라도 하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것이다. 출입국사무소에서 검사를 내려오면 함께 살고있는것처럼 보여줘야 했기에 어떤 수단으로든지 위장결혼이 아니고 정식결혼임을 증명해야 했다고, 그러니 오해를 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마음속의 이름 하나하나를 지우고 이 세상에 혼자 남은듯이 살겠다던 그녀는 어느새 빠져나간 이름의 빈자리에 그 남자를 가득 채우고있었다.
모든것이 물속 같이 빤히 들여다보이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다만 나는 여기에서 본 모든것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례외적인 미지의 시간으로 잊고싶었다. 하지만 외면하고싶은 마음 뒤편에는 또 하나의 마음이 무섭게 대립하고있었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였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그녀한테 화를 내야 하는데 그래지지 않았다. 화를 낸다고 무엇이 달라질가. 오히려 내가 두려워하던 일을 재촉하고말것이다. 애써 숨길 필요가 없이 그녀는 홀가분하게 우리를 떠나게 될것이다. 조그만큼이라도 미안했던 마음도 사라지게 될것이다. 내가 화를 내지 못하는 리유는 그래서라고 우기고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두려워하고있었다. 자신이 마주서게 되는 현실이 두려워 도피하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놀라지도 않고 늘 그렇게 살아오기라도 했던것처럼 시큰둥하거나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게 여러 사람을 위하고 주위를 편하게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묵인으로 슬그머니 그녀의 불륜에 동참해 동생의 아픔이나 고통을 거들어주고있었다. 그것이 동생과 그녀사이에서 겪는 나의 아픔이였다. 그런데 그녀가 그 남자를 당신이라고 부를 때마다 거짓말 없이 그녀의 하신이 떠올라 나는 당황했다. 우연하게 보게 된 그녀의 하신을 떠올리면서 동생이 불쌍하여 울었던 그날처럼 나는 눈물이 났다.
여름이였던것 같다. 그 녀자가 약을 먹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내가 간 곳은 병원 급환자실이였다. 코에 튜브를 꽂은채 그녀는 미동도 없이 누워있고 그 한쪽켠에 얼굴이 까맣게 죽은 동생이 사시나무 떨듯 떨고있었다.
《싸웠니?》
동생이 고개만 끄덕였다.
《적당히 하지, 왜 바보같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드니?》
《위장결혼을 한다구 내 몰래 남자를 만나구 다니길래 뭐라 그랬더니 약을 먹은거요. 솔직히 지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위장결혼을 한다는데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겠소.》
《너도 동의했다면서 뭘 새삼스럽게 일을 크게 만드냐?》
《그러게 말이요. 나도 동의해서 시작한 일인데 정작 두사람이 같이 다니는걸 보니 눈이 휘딱 번져지는걸 어떻게 하겠소.》
그때, 의사가 나에게 환자가 자리를 지른것 같으니깐 옷을 갈아입히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젖은 아래도리를 벗겨내고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면서 경악을 했다. 세상에 어떻게 어른의 아래도리가 이렇게 가날플수 있는지, 너무 작고 여위여서 채 발육하지 않은 여덜살짜리 엉뎅이만큼도 안되였다. 그녀한테는 안된 애기지만 그때 나는 동생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바로 지금, 그때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그때와 똑같은 생각을 한것은 너무도 의외였다.
슈퍼에서 돌아온 그녀가 주전자에 수도물을 받은 다음 전열기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았다. 그러고나서 익숙한 솜씨로 주방 찬장에서 커피잔 세개를 꺼내더니 수도물에 헹구어서 차판에 가지런히 올려놓고있었다. 물이 끓는 사이 그녀는 흐트러진 남자의 옷을 차곡차곡 정리하고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물끄럼히 그녀를 지켜보고있던 남자가 투박하게 말했다.
《냅둬. 어차피 그러고 살긴데 뭘. 인자는 시간도 많이 가버렸은게. 자기 짐이나 꿍져가꼬 퍼뜩 가라구.》
남자는 담배갑만 챙겨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두사람은 서로 나누어 가질 물건도 후날을 약속할 따뜻한 말도 있지 않는듯했다. 녀자는 트렁크를 끌고 문을 나서다가 잠간 뒤돌아보았다. 무언가 개운치 않는 표정으로 이윽히 굳어져있다가 비로소 생각난듯 바지주머니에서 키를 꺼내여 조심스럽게 문턱밑에 놓고있었다. 애틋하게 눈빛이 젖어있었다. 녀자가 함께 있어주어서 남자한테는 천당이였을 이 작은 공간은 그 녀자가 빠져나감으로서 더 이상 천당이 될수 없을것이였다. 아마 거리에 버려진 더 많은 중고품들과 사은품들이 비여진 공간에 채워질것이고 더 이상 채워질 공간이 없으면 다시 거리에 버려질것이다.
녀자는 바줄에 걸린 자신의 팬티를 그대로 둔채 집을 나섰다. 알려줄려다가 그만두었다. 자존심을 건드려 부끄러움을 일깨우고싶지 않았다. 그녀는 떠나도 그녀의 팬티는 부적처럼 남아서 남자의 기억을 붙잡아줄것이다.
골목길을 내려오다 보니 남자가 마을 입구에 있는 슈퍼에서 큰길쪽을 내다보고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길가운데서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보며 한참 망설인채 서있었다. 그러다 결심을 내린듯 가방을 흔들며 큰 도로가 있는 오른쪽으로 탈탈 걸었다.
한달후, 나는 서울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처음에 만났을 때보다 무척 표정이 밝아보였다. 목소리에도 생기가 도는듯했다. 어느 가정집에서 일하는데 마음이 편하고 안정적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녀가 안심을 하도록 서울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맙다며 나에게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금동이 아버지한테 전해주세요.》
《이게 뭔데?》
《편지예요?》
《갑자기 웬 편지요?》
《꼭 써야 될것 같아서요.》
좋은 징조겠지? 나는 편지내용을 가늠하듯 봉투를 해빛에다 대고 들여다보았다. 봉투는 테이프로 사면을 단단하게 봉해놓아서 짜르려면 가위를 쓰지 않고서는 안될듯싶었다.
《비밀이요? 철저히 봉쇄했네.》
그녀는 점심시간에 잠간 나온거라며 빨리 들어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막 떠나려는것을 내가 불러세웠다.
《뭘 좀 물어볼게 있는데?》
《뭘요?》
《그 남자는… 잘 있소?》
그 남자를 만나냐고 묻고싶었는데 감시하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만 말을 돌려버렸다.
《얼마전에 비자 연장수속때문에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다왔어요.》
그녀는 내가 묻고있는 진실을 모르는듯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녀가 떠나간후에도 나는 한식경이나 한곳에 못박혀있었다. 기분이 미진하고 껄끄러웠다. 남자와 녀자가 한번 얽히면 그 고리를 끊기가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국적해결까지 가려면 아마 수십번도 더 만나야 할것이고 그러다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지 누가 알랴. 나무의 좀처럼, 혹은 사람의 몸에 나있는 종양처럼 오래오래 잠식을 하는 그 병균을 단번에 짤라낼수는 없을것이다.
절교신일가? 아니면 그동안의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내용일가. 비행기안에서 몇번이나 편지봉투를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도 결국 뜯을수 없었다. 웬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연길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남편이 놀라지 말라며 전해주는 소식에 소스라쳤다. 동생이 집을 나간지 한달째 되는데 종무소식이라는것이였다. 그러니깐 내가 한국으로 간 바로 이튿날 생긴 일이다. 다음날 고향에 가서 들은 소식은 더욱 황당했다. 동생과 가장 친하게 지냈던 재덕이가 동생의 생사를 잘 알거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정작 재덕이는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금동이와 은동이는 외가에 가있고 동생네 집은 비여있었다. 낡긴 했지만 동생이 직접 짠 옷장과 이불장 그리고 찬장과 책상이 먼지를 쓴채 빈집을 지키고있었다. 이미 낡을대로 낡아서 옮겨놓기만 하면 각이 뿔뿔이 달아나버릴것 같은 가구들이지만 동생에 대한 기억을 살려주어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동생은 목수였다. 재간이 좋은데다가 부지런하여 온 동네의 가구는 물론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관을 짜는 일까지 혼자서 했다. 그런데 차츰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해외로 빠지고 마을에 몇호가 남지 않자 그 역시 할 일이 없게 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수일을 그만두게 된것은 화전집 할아버지의 관을 짜주다가 기계톱에 오른손을 잃은 다음부터였다.
잃어버린 손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게 되면서부터 동생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돈벌러 간다고 떠난 뒤에는 한손으로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아이들의 뒤시중을 들어주었고 짬이 나면 산을 오르내리며 약재를 캤다. 갑자기 아이들을 외가에 맡기고 집을 비운것은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이였던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하고 집을 떠나야 했는지 그 리유를 남긴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었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구… 그 말이 자꾸 귀가에서 맴돌았다. 그 녀자를 찾아달라고 동생이 소란을 피웠던 날 나는 동생한테 야단을 쳤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부족할 판에 허구헌날 술이나 처먹고 주접을 떨고 다니니 어느 녀잔들 좋아하겠냐, 내부텀도 싫어. 대개 이런 내용이였다. 다른 땐 묵묵히 들어만 주던 동생이 그날은 가슴이 찢어지게 절규를 하는것이였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구…》
해빛에 까맣게 탄 동생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 그가 웃으면서 불쑥 나올듯싶기도 하였다. 나는 그의 출타가 리해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내가 귀국하기를 기다렸을 동생이다. 그녀를 꼭 찾아달라고 하더니 왜 소식을 기다리지도 않고 떠났을가. 아이들까지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버리도록 절실하게 암담했던 동생이 불쌍해서 참을수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매여달렸다. 그날 저녁에 동생이 나에게 자기의 녀자를 찾아달라고 조르듯이 나는 내 남편에게 동생을 찾아내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남편이 힘든 말을 꺼내려는듯 먼저 다짐을 받아냈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게 좋겠어.》
《그게 무슨 말이예요? 당신은 뭘 알고있는거죠?》
《그게 말이야. 처남이 강에 뛰여드는걸 본 사람이 있대.》
《아직 누구도 시체를 못봤다면서?》
《동네 사람들은 요앞에 설창에 새로 생긴 묘가 금동 아버지의거라고 하는데, 확실하게 알려면 묘를 파보아야 한대.》
《그게 무슨 소리예요? 파보면 알다니? 누가 묻었는데? 묻은 사람이 알거잖아요?》
《강에서 시체를 건져서 묻은 사람은 재덕인데 자기가 묻은 사람은 금동 아버지가 아니고 강건너에서 온 사람의 시체라고 했어. 재덕이가 일년째 정부로부터 허락을 받고 강에서 떠내려오는 시체를 묻는 일을 하고있었나 보더라구.》
《아니니깐 아니라 하겠죠. 재덕이는 동생의 절친한 친군데 설마 친구를 못알아보겠어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재덕이가 뭘 숨기고있는건 확실해.》
《그럴리가요?》
《다들 그렇게 보고있다구.》
《글쎄, 그럴만한 리유가 뭔데요?》
《그걸 알면 이렇게 답답하겠어?》
남편은 래일 시내에 가서 인부를 몇사람 불러다가 묘를 헤쳐서 확인하는수밖에 없다고 했다.
죽은 사람의 묘를 함부로 파헤쳐 귀신을 놀래면 3대가 내리 화를 면치 못한다는 속설도 있다. 나는 대뜸 부질없는 일이라고 반대해나섰다. 시체를 묻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들 괜히 죽은 사람 묘를 파헤쳐서 일을 크게 만들려고 하는지, 남편은 내가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회피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말이지 난 동생의 죽음을 믿고싶지 않았다.
《확실한건 아니야. 다만 가능성인데 말이야. 재덕이는 시체 한구를 매장하고 정부로부터 매장비를 이백원을 받는 모양인데 혹시…》
《당신의 말은 재덕이가 돈 이백원 타먹을려고 금동 애비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거예요?》
《그럴수도 있다는거지… 마을에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 문제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재덕이는 못들은척 피한단거야. 이것보다 더 큰 단서가 또 있어.》
《그게 뭔데?》
《그날 시체를 묻고 돌아와서 재덕이는 혼자서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많이 울더래. 종래로 그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거여.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결국 재덕이를 한번 더 만나보고 다시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튿날 설창에 도착한것은 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아침시간이였다. 령혼을 나꿔채던 여름의 빛은 삭아지고 물빠진 잎사귀들이 찬이슬에 쓸쓸히 젖어들고있었다. 재덕이네 집에 들렸다가 그가 설창에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곧추 그곳으로 갔다. 콩밭머리에서 풀을 베고있던 재덕이가 허리를 펴고 우리쪽을 보더니 터덜터덜 마주 걸어왔다.
《다시 올줄 알았소.》
우르르 쏟아지는 비물처럼 그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들어있었다. 그는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고 했다. 기다리고있었다는것은 그가 동생의 일을 알고있다는것이 아닌가. 무서운 예감이 썰물처럼 가슴을 무너뜨렸고 깊은 뻘밭에 거꾸로 처박히는듯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나는 저도 몰래 슬그머니 남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동생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게 해달라고… 늘 동생을 기다릴수 있게 해달라고…
재덕이가 낫으로 풀섭의 이슬을 툭툭 치고나서 우리한테 앉으라고 하였다. 나와 남편이 풀잎에 나란히 앉자 재덕이는 우리와 조금 거리를 두고 낮자루를 깔고 앉았다. 강을 사이두고 바라보이는 건너산 기슭에는 실안개가 가볍게 흘러가고있었다. 재덕이는 뭔가에 사로 잡힌듯 혼자말처럼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금동 애비가 나를 찾아온것은 누님이 한국에 간 이튿날 저녁이였소. 몸을 가누지 못하게 술을 많이 마셨습데. 신발을 신은채로 부엌에 걸터앉더니 다짜고짜 나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그 나이에 왜 장가두 못가냐, 혹시 너 꼬쟁이 아니냐?> 하면서 시비를 거는거요. 내가 발끈하면서 <너 취했냐? > 하고 언성을 높였더니, 히히 웃으면서 <너 장가를 가지 않기를 천번 만번 잘했다. 니 일생에서 제일 잘한게 장가를 가지 않은거야.> 하는거요. 그러고나선 노래를 부릅데. 가사내용이 누구하고 작별을 고하는듯한 노래였소… 슬픈 가시나무새처럼 나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평생 단 한번의 노래라면 그대 위해 부르리. 나의 가슴이 멍이 들어도 괜찮아, 다시 태여나도 나 그댈 위해 태우리. 슬픈 나의 사랑아, 안녕… 무슨 노래가 그리 애절하고 슬프냐 그랬더니, 가시나무새라고 하더만…》
아, 가시나무새, 나는 가슴밑에서 일어나는 전률을 느꼈다. 그것은 동생이 평소에 가장 즐겨 부른 노래였다. 가시나무새는 죽기전에 일생에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른다는 새다. 그 새는 알에서 깨여나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가시나무를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려 붉은 피를 흘리며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어간다.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것은 가장 처절한 고통속에서 피여난다는것을 말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그대를 지우고 지워도
버리고 버려도
다시 가슴에 남아
그리움만 재가 되여 쌓여가
……
나의 가슴이 멍이 들어도 괜찮아
다시 태여나도 나 그댈 위해 태우리
슬픈 나의 사랑아
너무 보고싶은데 붙잡고싶은데
바람처럼 나를 울리고 떠난 사람아
이 못난 내 사랑 이젠 너를 보내주리
보고싶은 사람아 안녕 안녕
《그날, 금동 애비는 밤새껏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갔소. 가기전에 나한테 이런 말을 하였소. <언젠가 내가 죽으면 재덕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네가 날 묻어달라. 내가 죽었단 말 아무한테도 하면 안돼. 이건 비밀이야. 내 죽음으로 하여 우리 부모형제 아프게 하고싶지 않다… 우리 엄마, 내 누나, 그리고 내 새끼들 마음속에 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고싶어.>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가 죽을 준비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소. 우린 가끔씩 그런 롱담을 잘했으니깐. 내가 금동이애비를 묻어주고 금동이 애비는 나한테 관을 짜주고… 그날도 난 금동이 애비한테 내가 널 묻어주겠으니 넌 나한테 관을 짜주어야 한다고 했소. 그런데 평소에는 제일 좋은 널로 짜준다고 큰소리를 쳤던 그가 그날에는 그럴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합데. 그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왜 못해주겠냐고 물었소. 금동 애비가 손이 없는 오른팔을 흔들어보이면서 야, 임마 한손으로 어떻게 관을 짜냐 하면서 허허 웃는거요… 그렇게 하고 떠난 사람이 이튿날 익사체로 내앞에 나타났소. 마을 사람들의 말이 다 맞소. 설창에 새롭게 생긴 묘가 바로 금동 애비 묘요. 금동 애비와 한 약속을 지켜주고싶었소. 사람湧?아무리 이백원에 친구이름 팔아먹는 놈이라고 욕해도 다 참을수 있었소. 하지만 누님한테는 끝까지 속일수 없었소…》
마디마디 부서지고 분리되는 내 의식은 수의처럼 안개가 감싸고있는듯 뿌옇다. 동생은 그녀를 잊지 못해 자신을 버렸다. 자신을 버림으로서 그녀를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하였을것이다. 바보, 조금만 더 기다리지,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것이 되돌아올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동생은 두려웠을것이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가봐 두려웠을거고 그녀를 두고두고 미워해야 하는 자신이 두려웠으리라.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것은 원래의것이 아니라는것조차 두려웠으리라.
동생은 이제 지루한 견딤과 애달픔마저 잊고 바람에 물빠진 락엽과 나란히 누워있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것이다. 나는 빽에서 그녀의 편지를 꺼냈다. 그녀의 편지를 동생의 봉분앞에서 태워보내고싶었다.
《뜯어보지 않고 태울려구?》
남편이 아직 개봉을 하지 않은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보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아서요.》
《처남한테 읽어주오,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데…》
나는 잠간 망설였다. 동생한테 마지막이 될 그녀의 편지가 궁금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뭐라고 썼을지? 인연이 다했으니 헤여지자 했을가, 아니면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그것은 동생한테 이제 아무 의미도 없게 되였다. 헤여지자고 했든 다시 시작하고 했든 그것은 산 사람이 짊어지고 갈 멍에일뿐이다.
슬픈 가시나무새처럼 평생 단 한번의 노래를, 그녀를 위해 부르고싶었던 동생한테 그 마지막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며 가게 하고싶었다. 나는 뜯지 않은 그녀의 편지봉투에 불을 달았다.
《금동이 엄마 편지야… 그 사람도 네가 많이 그리울거야…》
빨갛게 타는 불꽃이 망자의 령혼앞에서 생혈을 토하는듯했다. 타다 남은 재가 바람에 허위허위 날아간다. 한마리의 가시나무새가 이 세상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나무를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는것 같았다.
연변문학 2007년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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