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했던 그 차림으로 집에는 알리지도 않고 몰래 도망이나 치듯 나는 곧추 뻐스정류소로 걸어갔다. 왜 갑자기 고향에는 가고싶어졌는지. 아무도 없는 비여있는 고향집에 가서는 뭘 할건지. 아마도 무언가 근원적인것에 대한 그리움때문이 아니면 누데기처럼 자신의 삶에 걸쳐있는 불투명하고 숨막히는 불안에서 해탈하고싶은 항변이였을거지만 나는 그 어느쪽이라고 분명히 갈라 말할수 있게 마음이 정리가 되여있지 않았다. 이 시각 다만 서로의 약점을 최대한으로 비하시키는 가정불화만 아니였어도 이 길은 영원히 걷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있었을뿐이였다. 뻐스에 오르자 뿌연 먼지와 휘발유냄새에 입안에 꼴딱 멀미가 스멀거렸다. 나는 괴롭게 눈살을 찌푸리며 차창곁에 가 자리를 잡았다. 좌석은 절반이나 비여있었다. 사람을 다 채우고 떠나려는듯 차장은 목을 빼여들고 결사적으로 손님을 부르고있었다. 나는 멀미를 말릴겸 차창을 열어젖히고 얼굴을 창가에 가져갔다. 연기같은 흙먼지가 바람에 떠밀리며 금방 내가 걸어왔던 거리를 시위하듯 굴러다니고있었다. 어제밤에도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바람소리는 짐승의 괴성처럼 색갈이 짙었다. “무슨 소리냐, 이게?” 조금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문창지 찢듯 어머니의 방에서 다급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방문이 벌컥 열리며 앙상하게 마른 어머니의 할쑥한 얼굴이 내다보고있었다. 무엇엔가 쫓기듯 허둥거리는 눈빛에서 자기 생명보다 소중한것을 찾고있는 절실함이 끈끈히 고착되여있었다. “바람소리꾸마 엄마.” 글을 쓰면서 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문댕기는 소리다. 바깥에 누가 온갭다.” 어서 문열어주라는 호소가 목소리에서 타고있었다. 하긴 하루종일 문소리에만 신경을 쓰는 어머니께서 잘못 들을리 없을것이였지만 그건 분명히 바람에 흔들린 문소리였다. “날래 문 열라는데 왜 그러구있나? 멀쩡하게.” 당금 일어날듯 어머니는 두손으로 문턱을 잡고 엉거주춤 둔부를 일으켰다. “바람소리라는데 왜 자꾸 이램둥, 어마이는?” 주방에서 문희가 꼬집듯 내받아 소리쳤다. “내가 잘못 들었겠냐?” 활등처럼 휘여든 허리를 뒤로 홱 젖히며 어머니가 일어섰다. 노염이 파르르 성에처럼 내돋힌 얼굴이다. 앞치마를 두른 문희가 주방에서 씽 달아나오고 있었다. “여보오!” 나는 다급히 처를 불러세웠다. 어머니도 까다로왔지만 문희 역시 고집이 세기로 소가 아줌마라 부를 지경이였다. 고부사이에 언어가 증발해버린듯 서로가 철통처럼 입을 닫고있다가도 일단 맞붙기만 하면 침묵전의 고함처럼 말썽이 길고 지루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나는 충실히 싸안아야 했다. 단, 형 하나때문에 나는 그런 각색을 놀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것이다. 문희는 어머니앞에서 출입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봅소. 바깥에 뭐가 있다구 그램둥?”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딘 머리가위마냥 물어뜯는데가 있었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복도의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통바람이 유희를 하듯 철문을 흔들어놓고는 달아나고있었다. “꼭 사람이 댕기는것 같던데…”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슬펐다. “누굴 기다리는지 알겠지만 어마이두 잊을 땐 잊으셔야지. 그냥 이렇게 성가시게 굴면 한집에서 어떻게 삼둥 예?” 문희는 그예 어머니의 급소를 찔렀다. 그냥 형을 기다리고 그러면 한집에서 못산다는 선언과 같은 말로써 말이다. 어머니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나는 처한테 눈을 지릅떠보이고는 어머니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엄마, 어째 이램둥?” 옷꾸레미를 부둥부둥 꿍지는 어머니 손에서 보따리를 빼앗아서 궤속에 쑤셔넣었다. “여기서 헐일도 없는데 룡두골로 내려갈란다.” “거기 가선 뭘하겠슴둥. 다 빈집인데.” “글피문 네 형이 집나간지 벌써 한해째다. 마, 아, 혹시 룡두골에는 와 있재는지…” “엄마아!” 어머니는 궤에서 다시 보따리를 꺼내고있었다. “날 상관하지 말어라.” 목소리는 찢어진 북처럼 울었지만 눈빛은 전에없이 쌀쌀하고 담담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리해를 단념한 나머지 더는 자기만의 세계에 다른 사람의 접근과 참여를 거절하는 그런 단단한 모습이였다. 가슴이 꿈틀하는 순간 이름할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숨통을 조이는듯한 불안이 다가섰다. 두려웠다. 형이 집을 나간후 나는 룡두골 초가에 그냥 남아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어머니를 억지로 연길로 모셔왔다. 자식된 도리를 한것으로 하여 나는 마음의 평형을 잡게 되였지만 어머니는 되려 송곳방석에 앉은듯 불안해하셨다. 조그마한 바깥 동정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문을 열어보고야 시름을 놓았다. 형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였지만 그것이 며느리와의 갈등을 일으키는 초점이 되기도 했다. 며느리가 안 좋아하는 눈치를 챈 다음부턴 나 혼자 있을 때만 바지띠 조이듯 졸랐다. 형이 혹시 돌아오지 않았나 룡두골에 갔다오라고.. 하지만 번번이 건성으로 예예, 외쟁이 헛대답하듯 하고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수염을 빡 씻고있었다. 사실 기어이 형을 찾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과는 반대로 나는 형이 불쑥 나타날가봐 두려웠다. 룡두골에 가기 싫은것도 바로 거기서 진짜로 형을 만날가봐서였다. 그러고보면 일찍부터 형의 가출을 은근히 바라고있었던것인지도 모른다. (부실한 형을 기어이 찾아서는 어쩌자는거유 엄만? 누굴 고생시키자구 예?) 나는 혀끝까지 말려나온 말을 도로 삼켰다. 붙는 불에 키질이지 그런 말로는 절대 어머니의 마음을 눅잦힐수 없었다. 좌우간 어머니를 주저앉혀야 했다. 쓰고있는 원고를 끝내고는 곧바로 룡두골에 갔다 올것이라고 다짐을 하고서야 나는 겨우 어머니의 옷꾸레미를 풀수 있었다. 사실 룡두골에 언제 갈지는 미결이였다. 쓰고있는 원고가 시작에서 잘 내려가지 않아 완성될지말지한 상태에 있었기때문이다. 최근 들어와서 나는 자신이 더없이 황페하고 지쳐있음을 발견하였다. 까닭없이 우울하고 불안하여 하는 일이 도무지 되는게 하나도 없었다. 글이고 뭐고 다 때려부시고 다른 일을 시작해볼가고 궁리하다가도 나이 사십을 먹고 그게라고 될가 싶어, 비전이 없는 글인줄 알면서 맨날 오리발 긁듯 긁적이고있는 형편이였다. 어떻게 해서든 잡지사와 맺은 소설련재계약은 완성해야 했다. 환경이라도 바꾸어볼라고 이튿날 나는 원고뭉치를 꿍져가지고 사무실로 나갔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벌써 동료작가들이 트럼프치기로 시간을 할인하고있었다. 시작한지 한참은 되는 모양, 어둑스레한 방안에 담배연기가 뽀얗고 저마다 표정들이 진지하게 굳어져있었다. “어, 정호.. 자네두 와서 끼이라구.” 출입문 맞은켠에 앉은 친구가 오른손을 반쭉 추켜들며 반색을 했다. 그는 시인이였다. “놀라구, 난 좀 뭘 써야 하네.” “뭐, 지금도 그짓 하구있나? 인생을 랑비하지 말라구. 바보처럼.” 누구하고 분풀이라도 하듯 괜히 팔에 힘을 넣어 트럼프장을 던지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나를 쳐다보았다. 비전이 없는 글을 쓸거면 아예 시간을 랑비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공허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그의 눈길에서 문학의 지위하락이나 침체상태를 경험하고있는 문인들의 신음과 위기를 보았기때문이였다. 가슴이 그지없이 답답하여 잠간 서서 구경하다 말고 나는 그곳을 나와버렸다. 어디를 갈가 망설이다 나는 결국 아빠트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항변이나 하듯 피여나는 장 항아리의 곰팡이처럼 완강한 대립상태의 집안 분위기를 피해서 나왔던것인데 도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이 형편없이 초라해 보였다. 문뜩 보이지 않는 고삐에 잡힌 강아지마냥 집에서 사무실로, 사무실에서 다시 집에로 그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생활, 이 도로표식같은 금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좀처럼 그 금을 벗어날줄 모르는 기계적사고방식을 길들였던 함정이였음을 나는 깨달았다. 가자, 어디든지 가자! 모든것을 버리고 새롭게 본질적인것과 마주하고싶은 균열이 강하게 일어나는 순간에 이상하게도 룡두골이 풍경처럼 떠올랐다. “손님, 자리표 좀 봅시다.” 창문가에서 고개를 든 나는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화장이 진하여 조금은 야하게 보이는 젊은 녀자가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가 아마 그녀의것이였는 모양이다. 나는 소리없이 자리를 내여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앉던 젊은 여자가 나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딱 보던분같은데요?”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초하루 장날에도 보았던 기억이 없는 전혀 낯선 얼굴이였다. 한데도 여자는 쏘는듯한 눈빛을 정면으로 박아오면서 피할려고 하지 않았다. (철면피한 년 같으니라구.) 여자가 남자를 꼬시는 상투적인 수법일거라고 단정을 하고 나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 그냥 묻고싶은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아예 짜증이 나서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멀미때문인지 기분이 구겨지고 하품이 자꾸 쏟아져나왔다. 될수 있는 한 정신을 풀어놓고 다른 시간과 엉뚱한 장소를 헤매면서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형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가. 과연 이 세상에 살아있기나 한지? 형이 집을 나가게 된 사연을 생각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알찌근한 통증을 느꼈다. 그날은 어머니의 생신이였다. 늘 그랬듯이 형제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나는 어머니를 연길로 모셔가는 일을 화제에 올렸다. “엄마, 이번엔 저희들을 따라 가깁소.” 대책도 없는 말을 나는 버릇처럼 반복했다. 말로라도 모셔간단 소릴 해야 아마 어머니나 형제들한테 덜 미안하다고 생각했던것 가탇. “저걸 어떻게 하구 내가 너희들 따라간다구 그러냐?” 어머니 역시 언제나와 같이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 했다.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도 후년에도 어머닐 모셔가는 화제는 아퀴가 지어지질 않을것이다. 백치형이 있는 한은 그랬다. 하지만 몇년 몇십년을 이렇게 지내야 하는건지. 이대로 있다간 백치형 먼저 어머니가 돌아가실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백치형까지 곁들여 도회지로 데려갈 처지도 못되였다. 침실이 두칸짜리 아파트여서 잠자리가 불편한것도 문제였지만 문희는 백치시형을 보지도 않고 생각만해도 배속에 들어갔던 밥알들이 곤두일어선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애가 보면 닮는다고 중학교를 졸업하도록 한번도 룡두골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손자가 할머니 보러 다니는게 아니라 거꾸로 할머니가 손자보러 다니지 않으면 안되였다. 룡두골에 빈집이 늘어갈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마을에는 가는 귀 멀어서 귀먹쟁이라 불리우는 인석이네와 자식이 없는 덕수령감 그리고 주정뱅이 재춘이네만 남아있을뿐이다. “엄마, 약이래두 먹이믄 안되우?” 시가지에 들어가 막일을 하는 동생 정식이의 말에 시집간 막내 여동생도 맞장구를 쳤다. “정말 오빠, 아무 방법이래두 있어야지. 엄마가 불쌍해 죽겠소.” 나는 놀라운 눈길로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어머니를 생각해서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 생각을 가질수 있을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동생들이 리해가 되였다. 나 역시 약을 먹여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뿐이지 형이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전혀 없은것은 아니였다. “아무리 그런들 어찌 약을 멕이냐.” 어머니가 끔찍스럽고 한심스러운듯 혀를 끌끌 찼다. “그래두 너들 형제들 중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한건 걔다. 너희들 그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때 문소리와 함께 백치형이 먼지를 이끌고 들어섰다. 그는 웃입술까지 내려온 코물을 흐르륵 들이마시면서 히죽히죽 웃고있었다. “씨…다…다 먹어치웠다.” 두손에 무둑히 딱지가 쥐여있는걸 보니 동네 조무래기들하고 딱지치기를 하고 오는 모양이였다. 나이를 먹었다고 코밑과 턱밑에 검실검실하게 수염이 돋아나는데도 의식은 코흘리개 아이들만큼도 안되였다. “머저리같은게 빨리 나가 죽소. 엄마를 그만 좀 속 썩이구.” 정식이가 웃몸을 솟구치며 꽥 소리지르자 형은 웃음을 거두고 떠듬거렸다. “어, 엄마…정,정호네 집에 가우…내, 혼자…살게.”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냥 정신없는줄로만 알아댔는데 그도 우리가 어머니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줄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형이 있는데 엄마가 어떻게 연길루 가우 양?” 정식이가 눈을 지릅뜨자 형은 비실비실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후로 형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들은 그가 집을 나갈 때만은 제 정신이 들었던게라고 말했다. 과연 형은 자기가 없어져야만 어머니가 연길로 갈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가. 아니. 이것은 정상인들이 자신을 위한 해석에 불과할것이다. 그는 근본 그런것을 생각할수도 없었을것이며 오직 동생들이 두려워 집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가 형을 핍박하여 죽음에도 몰아낸 가해자들일수밖에 없다. 모든것이 어머니를 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슬픔만을 더해준것을 보면 젊은이들의 괴로움은 나뉘여짐으로써 그만큼 가벼워지지만 늙은이는 자기의 슬픔을 나누어줄수 없는 모양이였다. 뻐스가 룡두진에 도착했다. 그곳에 종착였이였기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붐비는속에 끼이기 싫어서 조용히 제자리에 서있는데 곁에 앉았던 여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손님은 룡두진에서 사신적 없어요?” “아니!” 나는 짤막하게 머리를 저어 두번 다시 그런 화제에 흥미가 없음을 암시하였다. 탐닉한 구석이 없지 않는 그런 끈질긴 유희 뒤끝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십중팔구는 좋은 여자가 아닐거였다. 갑자기 그녀가 신대륙이나 발견하듯 환성을 질렀다. “아, 참, 이제야 생각나요. 선생님은 작가시죠?” 이 돌연적인 변화에 나는 어정쩡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아는지…?” “텔레비에서 소개하지 않았나요?” 나는 쑥스럽게 피씩 웃고 말았다. 턱거리없이 그녀를 나쁜 여자로 몰아부쳤던 순간이 미안했다. 어쩜 그냥 이 모양일가. 서로의 각축으로 차겁게 닫겼던 세월을 살았던 세대여서일가. “그래서 어디서 딱 보던분 같죠.” 그녀는 얼굴을 밝게 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뒤모습을 지켜보다말고 나는 룡두골에 가닿아야 했던것이다. 야산의 음지에는 아직도 흰눈과 얼음이 버짐처럼 하얗게 남아있었다. 수림속에 들어서면섯 바람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마른나무들이 몸을 뒤척일때마다 도깨비가 눈깔을 까집는듯한 무서운 소리가 산을 흔들었다. 마치 온갖 짐승들이 한꺼번에 울어제끼는듯 수림이 우는 소리는 가지각색이였다. 산고개를 넘자 룡바위가 보이였다. 옛날에 룡이 가끔씩 내리군 하여 룡바위라 불리웠다는 전설의 바위가 한때 현대적인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하여 사람들을 놀래웠던적이 있다. 몇해전에 룡칠이라는 농민의 두 아들이 룡바위아래에서 조밭 기음을 매고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지더니 한순간 구림이 걷히고 룡바위우에 칠색무지개가 가로 놓이고 그밑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금룡이 앉아있더라는것이였다. 놀라움에 넋을 놓고있던 두 형제가 호미를 밭에 버려둔채 마을에 내려와 그 자초지종을 얘기하여 숱한 사람들이 룡바위밑에 가보았을 땐 이미 무지개도 금룡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환각현상의 반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태양의 기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로 남아있는 룡바위의 현대전설이다. 나는 룡바위를 뒤에 두고 황토빛 자트락길을 따라 산아래로 내려갔다. 산비탈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었다. 마을어구에 들어서던 나는 뭔가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에 가슴부터 내려앉았다. 문짝이 떨어져나간 찌그러진 초가들이 광야에 던져진 해골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져있었다. 눈에 익은 골목과 농가의 풍경은 낡은 액자속의 오래된 사진처럼 뿌연 바람속에서 퇴색하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을 감고도 찾아들어가군 했던 나의 옛집이 어느 집이던지 알수 없어 마을주변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비여있는 집들의 모습은 너무나 똑같았다. 흰덧칠이 벗겨져나간 흙벽, 바람에 나붓기는 초가이영, 떨어져나간 문짝, 약속이나 한듯 한쪽으로 쓸어지는 모양은 마치 한 도본으로 찍어낸 복제품 같았다. 서로 많이도 다르게 살았던것 같은데 이렇게 똑같게 살았다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것은 생명을 갖고 살아있을 때만이 값있고 값없고가 존재하는것이지 생명이 소실된 그뒤에는 시체라는 한 개념으로만 남는 모양이다. 나는 눈에 익은 늙은 개살구나무를 찾아냈다. 그것은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이사오면서 심은것인데 이 마을에서 제일 크고 제일 오랜 나무였다. 개살구였지만 기막히게 맛있어 우는 애한테 “정호네 살구를 준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 나는 어려서 체질이 작고 약골인데다 형이 바보인 까닭에 애들속에서 늘 따돌리웠다. 하지만 여름철만은 례외였다. 런닝샤쯔에 살구를 담아가지고 나가면 애들은 나를 군사놀이에서 대장을 시키기도 했고 편을 가를 때는 서로 자기네 편에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다. 그래야 살구 한알이라도 더 얻어먹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혹시 애들하고 싸우기라도 하면 나는 말없이 살구나무우에 걸터앉아있군 했다. 얼마 안있으면 애들이 우르르 쓸어와서 살구만 주면 화해할수 있다는 눈치를 꺼리낌없이 내보인다. 나는 그애들에게 살구를 따주고는 나무에서 내려온다. 그시절 살구나무는 나의 자존심이였고 보호신이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여름철 한때뿐이였다. 살구나무의 열매를 다 따먹고 잎마저 다 떨어지고나면 나를 찾아오는 애들도 없어진다. 나절로 용기를 내여 섭쓸리려 하면 그들은 언제 너의 살구를 얻어먹었더냐싶게 나를 따돌리였다. 그때는 살구가 달리는 여름철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썩 후에 개살구나무는 늙어서 살구도 얼마 열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늘때문에 터전에 채소를 못심어먹는다고 몇번이나 베여버리려고 했지만 내가 너무 아쉬워하는바람에 끝내 베여버리지 못했다. 나의 생애보다 긴, 썩 먼저 할아버지, 아버지의 세대까지를 지켜보았던 개살구나무가 올봄에도 꽃이 필런지. 꾸부정하게 휘여들고 말라서 숨이라고는 없는듯한 고목나무를 나는 보듬어안았다. 마치 고향집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로문한 할아버지를 위로하듯 터슬터슬한 나무걸이를 자꾸 쓰다듬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이 없던 여름, 긴긴 오후의 허기와 쓸쓸함을 달래주던 살구나무, 배고픔으로 잠 못 이루고 뒤척거렸던 긴긴 겨울밤, 대들보에 매여단 하얗게 곰팡이가 낀 메주덩이를 내리워 쪼개여 먹으면서도 맛있었던 그때, 고달픈 부모님들의 매질과 욕설을 부적처럼 달고있었지만 균열을 모르고 평화로왔던 집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곳에 머물렀던 모든 세월을 털어내며 평화를 깨며 재처럼 조용히 고삭아가고 있었다. 모든것이 낯설었다. 익숙한것의 사라짐. 그 낯설음때문에 금시 눈물이라도 쏟아낼듯 싶었다. 집식구들의 옷깃 스치는 소리만 들어도 문밖으로 뛰여나와 다리에 칭칭 감기던 검둥이, 동생을 형이라고 부르며 반갑다고 헤헤거리며 검둥이와 어울어져 풍풍 뛰던 백치형, 바로 이 마당에서 있었던 그날의 목가적인 풍경은 다시는 있을수 없는 엣이야기가 되였다. 마음에도 령혼에도 온통 빈구멍이 뚫린것처럼 황량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추운듯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정지간 문쪽으로 다가갔다. 열려진 출입문으로 얼굴을 들여놓고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집안에서 마른 검불을 헤집는 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사람이 돌아눕는듯한 둔중한 움직임이였다. 형이 돌아왔을가. 벌써 아래다리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이렇게 호젓한 곳에서 홀로 형을 만나는것이 죽도록 싫었다. 도망이라도 가고싶었다. 과연 형을 집으로 데려갈수 있을가. 어머니는 기뻐하실것이고 안해는 기절초풍할것이다.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난 뒤에 어머니가 형을 데리고 룡두골에서 살겠다고 보따리를 싸지 않으면 안해가 리혼을 한다고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설것이다. 에익, 될대로 되라지. 나는 출입문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어두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저녁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던것이다. 나는 한참 그러고 서있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형, 나 정호요.” 순간 부엌에서 마른 검불 헤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것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한마리의 검은 짐슴이였다. 흰이발을 드러내놓고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눈에는 린불같은 파란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금방 아래 종아리를 물고 늘어질것 같은 기세였다. 허겁지겁 뛰여나오다 나는 문턱에 걸채여 힌둥 나가 뒹굴었다. 짐승이 쫓아와 바지가랭이를 물어당겼다. 다음 순간에는 살점을 물어뜯을것이다. 정신이 아찔했다. 넋이 밖으로 빠져나라버린듯 나는 저항할 힘마저 버리고 늘어져있었다. 그런데 검은 짐승은 물었던 바지가랭이를 놓고 코를 벌름거리며 쿵쿵거리더니 꼬리를 내리뜨리였다. 그리고나서 잠간 멍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비칠거리며 빈집으로 도로 들어가는것이였다. “워리!” 나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환성이 터져나갔다. 형이 가출할 때 함께 없어졌던 검둥개였다. 오래 헤여졌던 가족을 만났을 때와 같은 뜨거운것이 뭉클하고 가슴에 번졌다. “워리. 워리.” 나는 반가움에 겨워 개를 쫓아가며 불렀다. 검둥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자리에 눕더니 턱을 땅에 붙이고 눈을 감는것이였다. 비루먹은 개처럼 여위여있었다. 턱을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내미는데 검둥이가 두귀를 쭈빗 세우며 눈을 부릅떴다. 그 서슬에 나는 손을 엉거주춤 사리면서 저주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영원히 알수 없는, 풀어낼수 없는 한과 슬픔 그리고 원망까지도 튀여나올듯싶은 눈빛이였다. 그 눈빛속에서 다른 한쌍의 눈이 환각처럼 살아났다… 그날은 나의 결혼식이였다. 오후 두시쯤 색시를 실은 승용차가 룡바위골에 들어서고있을 때 수림속에서 갑자기 검정옷을 입은 한 장정이 튀여나오며 길을 막았다. 백치형이였다. 차가 급정거를 하자 형은 색시가 앉은쪽의 유리문에 얼굴을 납죽하게 붙이고 히죽히죽 웃고있었다. 말대가리같은 길다란 얼굴에 흰창이 많이 드러난 큰 눈, 오른쪽 귀밑으로 이그러진 큰 입속에서 류달리 길다란 호박색 이발이 드러나있었다. 유령같았다. 문희는 기겁한 소리를 지르며 나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히,히…정호각시다…정호각시다.” 경멸과 모멸감에 일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운전수에게 상관하지 말고 차를 몰라고 시켰다. 차가 떠나자 형은 쥐여짜듯 온 얼굴을 찡그리며 어헝어헝 울면서 차의 뒤꽁무늬를 따라 뛰였다. “저게 누구예요?” 의문으로 가득찬 문희의 시선이 나의 얼굴에 꽂혀왔다. “형이요!” 볼부은 목소리가 튀여나갔다. “형?” 짧게 되묻는 그녀의 어조에는 분노가 서린듯했다. “부실한 형이 있다는 사실을 왜 속였죠?” 그녀의 눈빛엔 뾰족하게 날이 서있었다. “속이려 했던건 아니요.” 목에서 넥타이를 끌러내여 신경질적으로 호주머니에 쑤셔넣으면서 나는 반발을 했다. “알려주지 않았으니 속인거죠.” “문희가 묻지 않았으니깐 대답을 하지 않았을뿐이요.” “우리의 결혼은 비극이예요.” “우리 둘 결혼에 형이 무슨 상관이요?” “인간의 유전자속에 들어있는 복제성은 너무도 끔찍한거예요. 생각만 해도 두려워요.”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아, 나는 왜 미처 생각을 못했을가. 수치로부터 일순 현훈증같은 환멸과 분노를 느꼈다. 생물학에서 유전자의 이동방식이나 물질적기초, 그리고 외계와의 관계따위를 배웠기때문에 생물의 형질이 어떻게 자손에게 나타나는가 하는것ㅇ르 모르는것은 아니였다. 다만 형의 정신질환은 선천적인것이 아니고 후천적인것이기때문에 유전인자와 문관한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뿐이다. 그녀의 첫날 화장은 눈물에 지워지고있었다. “당신이 절 속인건 계획적이고 의도적이였죠?” “그건 진짜 모욕이야!” “당신이 미워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 미우면 그만두라구.” “엎지른 물이예요. 우리의 아이는 벌써 두달인걸요.” 나는 공포와 두려움에 그녀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나 자신의 무책임이 한없이 후회되였다. 뽀얀 흙먼지속에서 두주먹을 불끈 쥐고 노루뜀을 하며 쫓아오는 형의 모습이 승용차의 렌즈에 풍경처럼 들어와 있었다. 형을 죽이고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되였다. 차가 마을에 도착한후 나는 길목을 지키다가 뒤미처 따라온 형을 끌고 뒤산에 올랐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장작 패듯 형을 패기 시작했다. 주먹과 발길질이 떨어질 때마다 형은 자음과 모음을 분별할수 없는 끼억끼억 하는 소리를 낼뿐 반항은 하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숨이 턱에 닿아 올라왔다. “정신없는것을 왜 치는거니? 응, 병신이라구 치는 인간은 그래 병신보다 낫다구 생각하는거냐?” 어머니한테 떠밀리운 나는 한쪽켠에 죽은듯이 쓰러져있는 형을 쏘아보았다. “네가 장가 가는걸 지가 장가 가는것보다 더 좋아했다. 장가가 뭔지 알기나 하는지…” 옷섶으로 코물을 훔치면서 어머니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일하기 싫어서 빈둥거리구 돌아다니다가도 ‘너 그러믄 정호가 장가 못간다’구 하면 제 정신없이 뛰여가서 일하군 했다. 오늘아침에두 그게 몇시냐, 네가 색시 데리러 떠나자부터 새옷을 입구 룡바위 있는데 가서 기다렸다. 정호각시 마중간다구…아마 다섯시간을 기다렸을거다. 이렇게 물매를 맞을줄은 모르구…” 형은 뿌연 유리알처럼 무표정하고 건조하게 스쳐가는 눈길을 먼산에 주고있었다. 모든것을 거부하는 완고함과 단절을 의미하는듯한 차거운 눈빛이 까닭모를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다주었다. 그 눈빛은 검둥이의 눈빛과 너무 흡사하였다. 나는 모의라도 있는 사람처럼 검둥이를 뿌리치고 일어났다. 검둥이가 왔으니 형도 어디엔가 있을듯싶어서였다. 고방이며 사랑간이며 뒤뜨락이며 지어 빈 돼지우리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검둥이는 혼자 돌아온것이다. 함께 나갔다가 홀로 돌아왔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나는 검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형은 대체 어디 있는거냐? 넌 그새 어디로 갔다오구? 끼이잉. 검둥이는 갑자기 앓음소리를 내며 사지를 몹시 뒤틀었다. 입에서는 거품이 질질 흘러나오고있었다. 검둥이는 병들고 있는것이다. 애처롭게 바라보는 뿌연 눈길이 인간에 대한 고독과 절망, 환멸과 분노를 시사하는듯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검둥이는 죽어가고있었다. 나는 죽어가는 검둥이를 지켜보면서 생명이란 원래 너무너무 시시하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사사건건 꼭 바보형을 건드려서는 경멸을 하군 하던 문희, 나와 그녀는 마치 과학적으로 서로를 죽음에로 이끌어가듯이 상대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하루하루를 줄이고있었다. 그러고보면 산다는것은 어차피 별게 아니였다. 어찌보면 옛집을 찾아와서 운명을 하는 검둥이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에 비해 퍽 아름다운 풍경일지 모른다. 격렬한 떨림을 밀어낸채 조용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검둥개를 남겨두고 나는 빈집을 나왔다. 시골의 풍경우로 음울한 빛갈의 저녁 어스름이 낡은 모포처럼 펼쳐져있고 새떼가 지나간 공간에 정적이 흔적처럼 남아있었다. 소리는 모습보다 질긴 모양으로 어둠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풍경의 끝은 시야밖으로 까마득히 사라지고있었지만 사라지는것의 소리만은 고요로 남는다. 그것이 되려 날개를 펴는 숲과 락조속에서 이물감없이 더 잘 어울리는것일지 모르지만 마을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나의 가슴에는 비여있는 집만큼의 큰 어둠이 시뿌연 빛갈로 조용히 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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