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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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이야기 셋
2013년 05월 08일 11시 27분  조회:949  추천:2  작성자: 서정순
 터 이야기 셋

서정순


어느 고요한 여름밤 느닷없이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내 마음은 평온을 잃었다. 눈은 TV를 보고있었지만 그 내용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였는지? 왜 그녀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당장이라도 그 누군가에게 해답을 듣고싶어 핸드폰을 꺼내들었으나 결국 나는 누구한테도 전화를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녀에 관한 해답을 하지 못하리라는것을 내 마음은 너무나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하긴 심리상담사가 아닌 이상 누가 감히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하겠는가. 한치 앞을 모르는게 사람일인데.

그날 저녁 나는 어스름이 내린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소리가 그녀의 인생을 돌려놓을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내 귀에는 친구의 말소리가 계속 맴돌이쳤다. “그애 어쩌면 좋아… 밤마다 남편 뒤만 밟는다는구나… 죽어도 리혼은 안한대…”

“죽어도”, 그녀는 죽을만큼 영악한 녀자는 아니였다. 오죽했으면 맹물처럼 순하디 순한 애가 저리 질기게 나올가. 나는 아무리 해도 전화에서 했던 친구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몇년전 내가 동창회에서 만났던 그녀는 친구의 말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있었다. 항상 파리한 낯빛에 가늘디 가는 팔과 바람만 불면 날려갈것 같은 가냘팠던 그녀의 어릴적 모습은 어디로 가고 20여년의 세월앞에 나타난 그녀는 보기좋게 살이 붙어있었다. 머리가 벗겨지고 늘어진 주름살엔 찌들린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동창들과는 달리 그녀는 얼굴빛이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긴 머리에 청바지까지 입고있어 얼핏 보면 30대의 젊은 아줌마같은 모습이였다.

그날 들은 얘기로는 그녀는 슬하에 아이가 둘이며 남편회사는 잘 나가고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정말 부러움없는 행복한 가정이였다. 그녀는 “너도 알잖아. 나 어릴적부터 엄마가 없었잖아. 그때 젊은 녀자만 보면 따라가며 엄마라고 부르고싶었어. 내 자식들한테는 엄마없는 설음을 주고싶지 않아.” 하면서 지금 자기는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 시중을 들고있다고 했다. 나는 언제봐도 썰렁했던 어릴적 그녀의 집을 떠올리며 참말 다행이구나, 젊어 고생은 금주고도 못산다더니 세상은 그래도 공평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뒤에 들려오는 소문은 더욱 험하고 듣기가 거북했다. 그리고 진짜인것 같았다. “얘, 어쩌니? 그애 요즘 좀 정신이 돈것 같아? 남편은 드러내놓고… 그 남편과 시댁식구들 뒤바라지 하느라 병까지 걸리더니…” 전화선을 타고 흘러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깊은 한숨을 쉬였다. 모질지도 못하고 똑 부러지지도 못하고 비단결마냥 한없이 부드럽고 어질기만 하던 그녀가 남편을 찾아 유령처럼 캄캄한 밤을 헤집고 다닐걸 생각하니 내 마음은 한없이 착잡해났다. 나는 몇번이나 전화기를 들었다 놓고말았다. 내가 그녀한테 해줄수 있는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처사를 두고 주위에서는 말들도 많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마음까지 돌아선 사람이 매달린다고 돌아올가, 차라리 위자료나 듬뿍 받아내는것이 상책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남편이 정신을 차리게 법에 고소해서 콩밥이라도 먹게 하는것이 속시원한 처사라고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데 돈만 갖다주면 한눈 감고 모른척 넘어갈수도 있어야지, 그 나이에 몸에 병도 있는 사람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 봐서라도 남편을 용서하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말들은 많고 그녀가 살아갈수 있는 방법도 참 많은것 같았다. 허나 사람들은 알고있는지 모른다. 그녀라고 이 모든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았을가. 아무리 당사자보다 옆사람이 잘 볼수 있다고 하지만 허다한 경우 당하는 당사자는 그 누구보다도 치렬하고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반성을 해보았을것이다. 내가 만약 그런 처지였다면 하고 아무리 가상을 해보아도 직접 당하는 자의 아픔을 반도 리해하지 못할것이다. 법정스님이 그랬던가. 나는 당신을 리해합니다 하는것은 바로 나는 당신을 오해합니다라는 뜻이라는것을. 모든 오해와 편견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부부가 되여 한생을 살아간다는것은 련애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이네는 결혼은 어떤 라침판도 일찌기 항로를 발견한적이 없는 거친 바다라고 했다. 그 결혼이라는 거친 바다에 사랑의 쪽배 하나 띄워놓고 행복의 대안을 향해 달려가기란 얼마나 조련찮은 일인가. 풍랑도 있고 암초도 있고 소용돌이도 있을것이다. 련애하던 시절 헤여져야 하는 밤이 돌아오면 애타는 마음으로 뜨거운 가슴을 확인하던 애틋한 추억은 어느새 지루한 일상속에 창틀의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가고 늘어나는것은 권태와 불만과 투정뿐이다. 그속에서 묵은 정을 느끼며 두손 잡고 걸어가면 되겠지만 영원할것 같으면서도 유리처럼 쉽게 깨지는것이 사랑이라 단언할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즘 들어 성격이나 취향이 맞지 않는다는 리유로 부부간이 리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있다. 개성과 자존에 대한 요구가 높을수록 리혼률은 높아만 가고있는듯하다. 리혼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옛날같지 않고 많이 부드러워졌다.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 결혼하고 또 잘 살기 위해 리혼을 선택한다. 모든것이 빨라지는 이 풍토속에서 결혼과 리혼도 달라질수는 없다. 번개불처럼 급속히 결혼을 했다 뭔가 못마땅한지 인차 리혼을 택하는 사람들도 우리는 심심찮게 볼수 있다.

이런 세태속에서 그녀의 행실은 구질구질하다 못해 찌질해보이기까지 하다. 아무런 해결방책도 없이 밖으로 나도는 남편 뒤만 쫓아다니다니. 어찌 보면 남편에 대한 못난 안해의 집착과 구속 같기도 하다. 누구나 알다싶이 사랑은 구속이나 집착만으로는 잡아둘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녀의 행위를 쉽게 비판할수 없는것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터전에 대한 본능과 아집이 아닐가. 사소한 리유만으로 쉽게 가정이라는 터전을 깨뜨리는 현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미련하리만치 고집스럽다. 자기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기 상실의 아픔과 자존이라는 뚝이 와르르 무너지는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고 주위의 따거운 시선들에 자기를 로출시키면서까지 미칠지경으로 가정이라는 터전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있다. 허나 그녀는 알고있는지 모른다. 결혼이라는 터전에서 중요한것은 부부 쌍방의 인격적인 만남이라는것을. 어느 일방의 맹목적인 희생과 인내로는 멀고도 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것을.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는 자신의 부리로 직접 둥지를 만드는 까막딱따구리와 같은 정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로 둥지를 틀지 않고 남의 둥지를 탐내는 소쩍새와 같은 얌치없는 사람도 있으며 소쩍새보다 한술 더 떠서 남의 둥지에 자기 알을 놔놓고는 남의 알은 밀어떨어뜨리는 뻐꾸기같이 온갖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이 산에 올라 저 산을 바라보는 갈대같은 인간의 천성도 있고 량손에 떡을 쥔 격으로 무엇 하나 놓치기 싫어하는 인간의 욕심도 있으며 떨어지는 락엽소리에도 쉽게 허전함을 느끼는 인간의 감성도 있다. 하기에 사랑이라는 동아줄로 이어진 부부라는 터전에도 변수는 항상 도사리고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아슬아슬한 이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나가느냐 하는것이다. 해답의 열쇠는 본인들에게 달려있다. 이제 그녀가, 아니 그들 부부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허다한 경우 옆에서 떠드는 시야비야하는 떠들썩한 말들이 안타까운 결말을 재촉하는 수도 있으니까.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자. 시간이 흐르면 모든것은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여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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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설야
날자:2013-05-09 12:56:49
요즘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 심심잖게 볼 수 있는 심각한 이야기 잘 감상했습니다. 이야기속 그런 여인들을 적잖게 보았지요. 남집안뿐 아니라 내집안에도 그런 여인이 둘이나 있었댔거든요. 20여년전, 그때 갓 시집간 저의 작은 이모가 그런일을 겪어 외가친척,온집안이 골통을 앓았고 재작년에는 결혼 십여년이 된 저의 처제가 이런일에 부닥쳐 온 처가편이 난리난거죠.
다 답답한 여인들이죠. 남자가 싫다는데 왜 기를 쓰고 매달리며 구질구질하게 노는지? 참 이해가 안가는거죠. 남자나 여자나 자신의 인격을 지킬줄 알아야지. 니 아니면 내가 못살줄 아냐 하면서 그 남자보다 더 훌륭한 상대를 얻어서 그 남자 보란듯이,그 남자로 하여금 후에는 평생 후회토록 배심걸고 꿋꿋히 살아갈줄 아는 그런 여인이야말로 진짜 외유내강한 멋진 훌륭한 여인인거죠.
반대로 우리 남자들속에도 그런 답답한 인간들이 많은거죠. 같이 살던 여자가 싫다는데도 비굴하게 제발제발 사정하는 머저리들이 있는가하면 여자가 갈라지자고 하면 머저리 똥밸이나 쓰고 주먹질하거나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하고 그러다 여자가 떠나 혼자가 되면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다 알콜중독으로 영 머저리가 되어버리는 답답한 치들을 우리사는 주변에 많은거죠.
인간들이 사는 사회가 워낙 복잡다단 천차만별이니 답답한 인간은 그냥 답답하게 살고 명석한 인간은 맺고끊고 시원하게 살고 ....도리는 빤한데 해답은 아리숭하고 해결책은 무아지경이고 .......
선생님의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좋은글 계속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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