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순
영화에 깃든 이야기
영화를 보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하나의 사치로 되여있다. 영화값도 만만치 않은데다 어쩌다 딸애의 성화에 못이겨 남편과 함께 영화관에 가보면 내 나이또래는 별로 보이지 않고 젊은 사람 일색이니 내 돈 내고 보는 영화지만 괜스레 눈치살이를 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영화라고 하면 밥 먹다가도 뛰여가던 내가 영화관과 거의 담을 쌓고 사는 것을 보면 내 삶에 있어 영화는 하나의 사치이지 싶다.
어렸을 때 현성에서 조선영화를 상영하면 마을에서는 영화표를 집단적으로 구입하여 마을 전체가 영화관람을 하러 가군 하였다. 그런 날은 온 마을이 경사가 나는 날이였다. 갓 시집온 새색시들은 하얗게 분을 바르고 꽃단장을 하고 나오면 어린아이들은 누구누구 집 색시가 제일 예쁘다며 서로 목에 피대를 세워가며 우겨댔다. 마을의 전용교통수단인 마차가 모두 동원되고 남녀로소 할 것 없이 그날만은 제일 좋은 옷들을 갈아입고 신바람이 나서 영화관으로 향하였다. 춤추듯 상공을 향해 휘날리는 마차부의 채찍소리는 영화 보러 가는 마음들을 더욱 감칠맛 나게 하였다.
바로 그런 날중의 하루였다. 소학교 2학년이였을가. 저녁 6시 영화관람이였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벌써 날은 까맣게 어두워있었고 촌닭 관청에 온듯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도 없었다. 한어말은 서툴고 마을에서 온 마차는 보이지 않고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우리 마을이 어느쪽으로 가냐고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머리만 흔들 뿐이다. 에라, 모르겠다. 저쪽이 맞는 것 같아. 나는 스스로 판단하고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뛰여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였는데도 마을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도 점점 드물었다. 급기야 겁이 나서 엄마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 있는 엄마가 대답을 해줄 리 만무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길 가는 사람한테 뛰여가 울면서 우리 마을 옆에 있는 한족마을 이름을 부르며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길을 잘못 들었다며 다시 오던 길로 가라며 알려주는 것이였다. 그때처럼 절박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시 마차가 떠났으면 10리나 되는 길을 이 한밤중에 어떻게 찾아가지? 영화관 쪽으로 죽어라고 뛰여가보니 여러대 왔던 마차들은 거의 떠나고 마지막 마차 한대가 떠나려고 하는 중이였다. “조금만 기다려요―” 나는 목청을 다해 소리쳤다. 어디 갔다 이제 오냐며, 다 간 줄 알고 떠날 번했다고 하면서 “쪄, 쪄”하는 마차부아저씨와 마을분들의 모습을 보고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 번하였다. 평소엔 아이들이 마차부아저씨 모르게 마차 뒤켠에 살며시 앉기만 해도 귀신처럼 알아맞추며 사정없이 채찍을 날리던 아저씨가 그날만은 얼마나 눈물나게 고마운지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하면 그날밤의 그 정경부터 떠오르군 한다.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우리 멤버들끼리 함께 영화를 보자는 요청을 받았다. 전에도 그분의 배려로 한둬번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분이 자꾸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뜻이냐며 물어와 우린 한참씩 웃군 하였다. 영화를 보면 세대차이가 딱 나군 한다. 같은 내용을 보고도 같지 않은 년대를 산 사람들의 감수는 다르기 때문이다. 뭘하는지 서로 바삐 보내다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영화감상까지 하자는 사람이 있으니 이 아니 좋을소냐. 허나 그날의 영화관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멤버들중 바쁜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원래 보려던 영화는 장예모 감독에 공리가 주연을 맡은 《귀래(归来)》라는 영화였다. ‘문화대혁명’ 후유증을 주제로 하여 찍은 영화라는데 현시대 청년들이 보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와 흘러간 세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참 좋은 영화라고 한다. 그 년대를 산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영화나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만큼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화가 되여간다는 의미일 게다. 요즘은 눈물이 많지 않은 세월이다. 스마트한 현대사회에서 나날이 적어지고 있는 것이 눈물이 아닐가 생각한다. 눈물만큼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절실히 나타내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은 먹기 위해 태여나지 않았다. 단순한 물질만으로는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늘쌍 옆구리가 시리고 마음 한켠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나 혼자만의 감수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건강을 챙기고저 바드민톤이요, 탁구요, 걷기운동이요, 등산이요 하며 육체적인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정작 영화 한편에 할애할 시간은 낼 수가 없다. 많은 경우 영화에 관심이 없다는 표증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빠듯해졌는가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례이기도 하다. 영화는 종합예술로서 한편의 좋은 영화는 예술적인 화폭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기도 하며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의 내용들을 예술적으로 가공해주어 무디여진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며 감명을 주기도 한다.
어렸을 적 영화를 돌린다 하면 밥 먹다가도 뛰여가던 그때 그 시절, 삶은 옥수수를 들고 뛰여가노라면 저물어가는 황혼에 잠자리들은 낮게 날아예고 마을 광장에는 철이네, 순이네, 이웃들이 모여앉아 어서 오라 손짓하던 그 정경, 그 자체가 한폭의 영화가 되여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치로 되여버린 영화지만 자꾸 영화타령을 하며 마음의 갈증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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