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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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필]김장철 정서 댓글:  조회:864  추천:21  2009-02-06
  마음속에 추억을 간직하고 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가? 아침이슬과도 같이 반짝이는 추억들은 새별과도 같이 수시로 떠올라 무심하고 단조롭던 생활에 빛을 주고 새힘을 얹어주군 한다. 어쩌다 푸근해지는 봄날씨같은 겨울날, 그런 날을 맞으면 내 마음속의 그리운 김장철은 바다마냥 시원하게 펼쳐지군 한다.    추억속의 김장철은 생각만 해도 감미롭다. 김장철만 되면 괜스레 마음이 바빠지군 했었다. 결혼전 혼자서 김장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였기에 생각만 해도 아득하고 막막했다. 직장에 나가도 한다는 소리는 김장철얘기였다. 김장철이 힘겨웠던건 나같은 햇내기뿐만이 아니였다. 어머니와 같은 나이지긋한 분들도 마치 김장을 담그는 일이 딸시집보내는 일만큼이나 성스럽고 아름찬 일로 여기는것 같았다. 고추가루나 배추를 사는것을 보면 사위물색이나 하듯 대단했다. 시장에 고추가루가 흔했지만 잡것이 들어있다고 시골에 부탁하기가 일쑤였다.   김장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직장에서 차와 사람을 파견하여 시골에 내려가 직접 배추를 사다가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배추나 파를 사러 시장에 간다고하면 그것은 아주 당연하고 떳떳한 리유이기도 했다. 만나서 한다는 인사들도 고추가루 샀냐, 오늘 본 배추가 알도 차고 값도 싸다느니 하는것들이였다.   그것은 한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족들은 쏸차이를 담그느라고 우리 조선족 못지 않게 김장철준비에 신경을 쓰군 했다. 정성껏 준비한 김장을 담그는날은 명절을 쇠는 기분이였다. 그날만은 아파트뜰안에 어른, 아이할것없이 떠들썩하다. 아이들은 올리뛰고 내리뛰며 그저 좋아 야단들이다. 한족어른들은 밖에다 벽돌장과 나무막대기로 림시부뚜막을 쌓아 그우에 물을 가득 부은 한족벌떡가마를 얹고 불을 지핀다. 배추를 더운물에 넣었다가 건져내여 소금물에 절여 쏸차이를 만든다. 김장하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며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안겨와 사람사는 맛을 물씬 풍기게 한다. 조선족의 월동음식이 김치라면 한족은 바로 쏸차이다.   지금 시장에서 파는 쏸차이는 그 맛이 옛날 집에서 하던 쏸차이맛에 못미치고있다. 갓 결혼하여 내가 살았던 곳은 조선족이 거의없는 한족아파트동네였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인데다 자기네와는 민족이 다르고 직장이 달랐던 우리가 어딘가 신비로운데가 있었는가 보다. 그 점은 김장철 때 잘 드러나군 했었다. 아파트 1층이여서 베란다가 없었기에 우리는 집앞에 있는 자그마한 뜰에다 움을 파고 김치를 저장하군 했었다. 이웃한족들은 어딜 나가다가도 다가와서 김장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군 했었다. 양념에는 뭘 넣느냐, 배추는 어떻게 절이느냐, 조건김치는 참 맛있는데 자기들은 할줄 모른다면서 입맛을 슬슬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시어머님은 별로 잘 되지 않는 평안도억양의 한족말로 손짓몸짓 곁들이며 알려주느라 극성이였다. 한데도 이듬해 김장할 때면 한족이둣들은 똑같은 물음을 또 물어온다. 알려준대로 김치를 했는데 조선김치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은근슬쩍 시어머니가 김치만드는 노하우를 감춘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도 비쳐지군 한다. 꼭같은 양념도 손맛이 다름에 따라 김치맛이 다르다는것을 한족들은 좀 리해하기 힘들어했다. 김치를 담는 날 시어머님은 딴살림을 하면서도 어김없이 찾아오군 하였다. 비좁은 주방에서 시어머니와 난 납버치(아주 큰 양재기)를 마주하고 앉아 김장을 하였다. 《양념을 듬뿍 넣어야돼. 그래야 맛이 우러나. 잘 절궈지지 않는 배추속엔 소금을 살짝 뿌려줘야 돼. 배추속에 뿌리는 소금은 굵은 소금보다는 절구에 빻은것을 뿌려야 돼.》 김장에 서툰 며느리를 탓하지 않고 시어머님은 차근차근 깨우쳐주신다. 하지만 제사상보다 제밥에 관심이 있다던가! 노오란 배추속을 보면 군침부터 돈다. 어릴적 배추속에 양념을 발라 입에 넣어주던 친정엄마를 떠올리며 《어마니 이 이거 맛있어보여요.》하면 시어머니는 철없는 며느리가 어이없으신지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래. 김장하면서 먹는 배추속은 별미지.》 시어머님 눈치를 살짝 보며 남편입에 얼른 넣어주면 남편의 눈빛은 금시 따스해진다. 못본체하는 시어머니얼굴에도 느슨한 미소가 어린다. 말하기 즐기고 인정많은 시어머님과 함께하는 김장은 즐겁기만 했다.   시어머님은 아들어릴적의 얘기, 가족얘기, 친척들얘기, 직장얘기들로 김장이 끝날 때까지 구수한 얘기는 계속되군 했다. 양념을 넣은 김치를 독안에 차곡차곡 넣는것은 시어머님의 몫이였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혹시 실수라도 할가봐서인지 시어머님은 며느리에게 그 《권리》를 절대 넘겨주지 않으셨다. 김치를 움에 넣은후에는 온겨울 김치가 얼지 않게 움덮개를 장만해야 했다.   시골에서는 벼짚이영을 엮어 덮거나 벼짚단을 그냥 덮으면 그만이였지만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골치거리였다. 그래서 남편과 난 저녁만 먹으면 시장거리를 돌면서 포장용으로 썼던 가마니를 주으려다녔다. 밤날씨는 매서울 정도로 추웠지만 남편과 함께 하는 가마니줏기는 재미만 있었다. 누가 많이 줏냐고 내기를 하며 시장을 돌아칠 때면 하늘에 떠오른 달도, 별도, 스쳐부는 찬바람도 모두 내것이 된것 같았고 그 모든것들에는 사랑의 이슬이 맺혀있는것 같았다.   김장을 끝내고나면 온몸은 수시로 아파났지만 마음만은 큰 일을 해낸듯 뿌듯하기만 하였다. 신혼부부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만 시어머님은 김장배추는 꼭 200근은 담가야 한다고 우기셨다. 어이없어하고 당신의 뜻을 못알아봐주는 아들며느리에게 《너네만 먹겐. 이웃들이랑 신세졌던 사람들이랑 좀 갖다줘야지.》라고 하시며. 혼자만 살아선 살아선 안된다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시어머님은 우리 부부를 앞세우고 설날인사를 참으로 잘 다니셨다.   남들처럼 값진 물건을 들지도 않고 김치만 갖고가는 인사를 난 좀 부끄럽게 여기였다. 김치선물을 난 좀 하찮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였다. 갖고갔던 김치를 내놓으면 한족이웃이나 친구들은 대번에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야단들이였다. 설날에 보내주는 김치는 그 한족이웃이나 한족친구들에게는 아마 최고의 선물인듯 싶었다. 어쩌면 김장김치는 한족이웃, 한족친구들과의 정을 이어놓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놀았는지도 모른다. 김장김치가 우리 집의 외교김치가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에 혼자 웃어도 본다.   하동의 넓은 아파트로 이사올 때 이젠 움도 없고 놔둘데도 없다고 우린 자그마한 독하나만 들고왔다. 김장이라야 열댓포기 배추정도였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김장철만 되면 우리 집에 오시군 했다. 《이건 김장하다가 마는것 같다.》고 섭섭해하고 허전해하시며. 그 자그마한 김치독이나마 심양으로 이사올 때는 가져오지 않아서 김장철만 되면 난 김장몸살을 앓군 한다. 직장에 나가서 김장하는 얘기만 들어도 나의 김장병정서는 좀 푸근히 가라앉을지도 모르나 젊은 세대들이 많은 직장에서는 김장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김장을 담그지 않아 일신이 편안해진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서탑시장이나 슈퍼에 가면 맛갈좋은 김치를 얼마든지 사먹을수 있다.   하지만 사먹는 김치에는 풋풋한 인정과 정서가 없다. 힘든 로동속에서 느꼈던 희열과 보람도 없다. 담백하고 시원하고 입맛좋던 그 움안의 김치가 그립고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했던 김장철이 그립고 이웃들과 나눠먹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내가 그리워하는것은 옛날의 생활자체인것이 아니라 그 생활속에 스며들었던 정서이며 그속에서 느꼈던 따스한 인정이다.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볼 때 힘은 들었으나 그 힘든 일속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삶의 보람을 느꼈을 대 추억도 더 깊어지는듯 하다.   사근사근 일을 가르치시던 시어머님의 구수한 말소리가 들려오는듯 한다. 소리없는 평화속에 오고가는 인정이 묻어날것만 같은 김장철 정서, 그 추억속에서 난 또 새로운 나의 추억을 만들어갈것이다.
9    [수필]겨울이 아름다운것은…(서정순) 댓글:  조회:935  추천:20  2008-12-13
겨울이 아름다운것은…서정순겨울추위도 해볕은 어쩌지 못하는가 보다. 정오 따스한 해볕이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와 피곤에 절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질 때면 이 계절이 정말 겨울일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옷깃속에 목과 마음을 잔뜩 움츠려야 하는 바깥과는 달리 해볕이 자글거리는 방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겨울이 더는 춥고 외롭고 삭막하지 않다. 다정한 잎사귀들의 속삭임이 없어도 라목은 홀로 서있는 멋이 있으며 밟으면 풀풀 먼지가 풍길 것 같은 바짝 마른 잔디도 건조한 향기가 있다. 거무틱틱하고 딱딱한 세멘트 건물들도 더는 시려보이지 않는다. 겨울은 따스한 해볕이 있어 아름답다. 인생 역시 따스한 정이 있어 살맛나지 않을가?가진게 없는 민초들의 생활은 막막할 때가 많다. 길고 긴 겨울만큼이나 추울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럴 때 겨울해볕과 같은 따스한 온정을 얼마나 그리랴!SBS 금요드라마  《소금인형》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운명이 너무나 불쌍해서였다. 살아보자고 모지름을 쓰는 주인공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울만한 사람은 가진게 없고 가진게 있는 자들은 뒤통수를 치려고 한다. 주인공의 절박한 운명이 어떻게 흐를지 손에 땀을 쥐게 된다.《소금인형》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어찌 드라마에만 한하겠는가? 살다보면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여 나앉게 되는 경우도 있고 단란하던 가정이 가장의 병마로 인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이곳에 태권도교사로 와있는 외국적교사의 사정이 바로 그러하다. 이국타향에 와서 혼자서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는 판에 설상가상으로 암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 하루벌이로 살아가는 판에 무슨 돈이 있어 병을 고친단 말인가? 다행히도 이곳 사람들의 따스한 성금으로 입원치료를 받고 차도를 보였었다. 허나 병마는 무정하였다. 결국은 최후 두달이라는 통첩을 눈앞에 두고있다. 영영 가더라도 고국땅에 묻히고싶은데 귀국할 돈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 사정을 알고 이곳의 사람들이 또 나섰다. 될수만 있다면 아직 어린 그 교사의 자식들이 공부도 할수 있게끔 하자면서 성금을 모았다. 그 가족을 가긍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얇은 주머니들을 헐기 시작했다. 헌데 썩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우리가 한번 도와줬으면 됐지,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데 왜 자꾸 해야 하냐며 불만들이 있었다. 일년에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영문모를 기부를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리해도 하겠다만 죽음을 눈앞에 둔 같은 민족의 불쌍한 사람을 두고 언제 우리가 이렇게 야박해졌는지 안타깝다. 박봉을 받는 우리에게도 그 기부금은 아까운 돈일수 있으나 죽음을 앞두고 땡전 한푼 없이 귀국해야 하는 절박한 그 교사의 상황에서는 그 돈들이 더는 단순한 돈만은 아닐것이다. 그것은 희망이고 생명이고 마지막 가는 사람의 아름다운 기억이다. 절망에 빠져 자살을 택하려던 사람이 자기를 관심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마음을 돌려세웠다는 케이스는 너무 진부하여 어딘가 꾸민듯한 감을 주지만 현실은 정말 그러하다. 춥고 소외될수록 따스한 정을 더욱 사무치게 그리는 법이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따뜻한 미소, 푸근한 표정 하나하나가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찬란한 빛이 될수도 있다. 언젠가 바람벽 같은 사람을 만나 아파했던 적이 있었다. 인정으로 따스하게 넘어갈수 있는 일이였는데 가진 자의 힘을 과시하려는것인지 모질게 나왔다. 권력의 힘이란 무서운것이였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모르는 척 내 옆을 지나칠 때 난 천애지각에 혼자 버려진듯한 느낌에 마음은 분노와 저주로 이글거렸다. 다행히도  괜찮아! 다 지나가버릴거야! 힘내라! 그 사람도 언젠가 후회할거야! 하는 인정있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엔 난류가 굽이치고 내 잘못도 돌이키면서 마음을 바로잡을수 있었다.사람의 삶이 한평생 평탄하리라는 보장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자기의 한생이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산과 같은 인생은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기어코 올리막만 보고 내리막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가질가 하여 가진 자들에게만 달라붙어 아부를 하지만 자기도 곤궁에 빠질 때면 따스한 인정을 그리워하고 바라게 된다. 허나 마음은 마음으로 갚게 되여있는 법. 따스함을 받았던 사람들이 줄줄도 알게 되여있다. 아무리 살아가기가 팍팍할지라도 내 주위에 소외되고 힘든 사람은 없는지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따스함이 아름다운것임을 알게 해주는 한낮의 겨울, 해볕은 눈부시게 비쳐들고있다.
8    [수필]해후(서정순) 댓글:  조회:988  추천:28  2008-12-13
해후서정순산행가는 차에서 선배가 청을 들어왔다. 오늘 저녁 첫사랑 상대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는데 자리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것이다. 그 첫사랑 상대자가 내가 잘 아는 친구인데다 나처럼 들러리로 초대받은 친구가 또 있다고 하니 멋적은 가로등노릇은 하지 않을것 같아 흔연히 응하였다. 좌석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말을 붙이는 선배를 보니 환해진 얼굴때문인지 나이보다 겉늙어보이던 주름들이 다리미 세례를 받은듯 쫙 펴져있는 느낌이다. 데이트신청을 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는 선배의 첫사랑은 첫사랑이라기보다는 련애 한번 해보지 못한 짝사랑이라고 하는 편이 적합할듯하다. 괜스레 들떠서 목소리에 열을 올리고있는 선배를 보며 난 한국가수 최성수가 부른 《해후》라는 노래가사를 떠올렸다. 󰡒\"창넓은 차집에서 다정스런 눈빛으로 예전에 그랬듯이 마주보며 사랑하고파.\"󰡓 사랑을 나눴던 사이가 아닌줄을 알고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기어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로맨틱한 해후장면을 그려보고있었다. 놀란듯 수집은듯 서서히 다가가는 두사람, 점점 젖어드는 두사람의 눈동자, 배경처럼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고요한 창가. 아, 첫사랑, 첫해후, 생각만 해도 감미로울것 같았다. 왜 그렇지 않으랴! 무릇 처음이라는것은 모두 가슴을 설레게 하지 않는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새순, 하늘하늘 흩날리는 첫눈에 우린 마음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군 한다. 그러니 피가 들끓던 파아란 나이의 꿀맛같은 달콤한 첫사랑의 감수는 오죽하랴!내 상상은 분위기 좋은 일식집에 예약까지 해놓았다는 선배의 말을 들으며 더욱 확고해졌다. 그애는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가? 들러리로 앉은 우린 어떻게 처사해야 하지? 산행가는 차안에서 저도몰래 저녁을 기다리며 설레고있는 내 마음을 읽으며 혼자서 실실 웃었다. 왜 내가 설레이지? 당사자도 아니면서.그러면서 문득 전에 들었던 첫사랑 해후에 관한 얘기들을 떠올렸다. 두번을 들었는데 당사자들은 다 만나지 않기만 못했다고 얘기를 했다. 젊었을적의 모습을 떠올리며 만나보았는데 아뿔싸! 세월의 흔적이 사정없이 새겨질줄은 몰랐다는것이다. 도무지 이십여년전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고, 젊었을적의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하긴 피천득도 《인연》이라는 글에서 아사꼬와의 세번째 만남은 만나지 않기만 못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오늘 저녁 그들의 만남은 대체 어떤 상황일가? …길게 이어진 호기심을 깨고 약속장소인 매가마트앞에 도착했을 때 선배는 선뜻 차문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온다는 말에 인차 약속을 잡고 우리 녀자들 둘까지 들러리로 초대한 선배의 마음씀씀이를 보면 한달음에 뛰여가 그녀를 맞이할법도 한데 왜 머뭇거리고만 있을가? 우리들 앞에서 진정된 모습을 보이려고 아닌 보살을 하려는것일가? 아니면 20여년의 세월을 깨고 첫사랑 그녀앞에 나서기가 두려운것일가? 어둠이 내린 불빛속에 나타난 그녀는 하아얀 등산복을 입고있었다. 우리 들러리들은 작정을 하고 그녀를 운전석에 앉은 선배의 옆좌석에 밀어넣었다. 차안에 앉은 그녀가 선배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 󰡒어머, 이렇게 …󰡓하고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가는 소리를 우린 들을수 있었다.  선배의 얼굴에서 세월을 느껴서일가? 인상속의 선배가 아니여서 실망을 했다는것인가? 근사한 일식집에 자리를 잡고앉아 난 이제나저제나 내가 생각하는 감미로운 장면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밤늦게까지 이어진 그들의 첫사랑 해후는 랑만도 감미로움도 없었다. 그렇다고 선배나 그녀가 만남을 후회하는 모습들도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무랍없는 얘기들을 나눈듯 한없이 편안한 표정들이다. 애초에 들러리노릇을 어떻게 할가 하던 나의 근심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날밤이 지난후 되돌아 생각을 해봐도 그 만남은 그저 즐거운 만남에 불과했다. 대학시절 데이트를 신청했던 선배와 그 데이트를 거절했던 그녀가 이십여년만에 만난 그날밤 서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난 알수가 없다. 허나 분명한것은 현실은 결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는것이다. 삶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름에 따라 해후에 대한 생각도 다르겠지만 첫사랑 해후 역시 우리 삶의 한부분으로 물이 흐르듯 만남이 이루어졌다면 굳이 피해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들의 삶자체가 바로 만남의 연속이기때문이다. 만남이 있어 허허롭게 비여있던 마음이 채워지기도 하고 가득 찼던 마음이 비워지기도 하니깐.
7    [수필]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서정순) 댓글:  조회:931  추천:34  2008-12-13
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서정순아침 문밖을 나서니 백설천지다. 코끝을 감도는 싱싱한 기운, 어깨에 소복소복 쌓이는 하얀 눈꽃, 얼마나 바랐던가! 사무친 그리움만큼이나 흰눈을 바랬었다. 간혹 흩날리다가마는 눈송이를 바라보면 언젠가 흰눈도 무지개처럼 동년속의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을가 조바심을 내군 했다. 󰡒\"넌 아직 어려! 크면 잘 만들수 있어.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고사리같은 조그만 손이 빨갛게 되도록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고모들이 만든 근사한 눈사람같지를 않자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 동년, 어린 나를 다독여주군 했던 아버지의 생전의 목소리가 정답게 귀전을 맴돈다. 내리는 눈이 천사같다며 눈내리는것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난 어릴 때부터 눈내리는 날을 참 좋아했다. 흰눈만 내리면 문밖에 나가 뛰여놀군 했다. 동동 매달리는 핫저고리안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들어도 내 몸 어디라없이 떨어지는 눈송이가 좋기만 했다. 차거운 촉감도 잠간, 살살 녹아내리는 흰눈의 그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한번은 어스름한 저녁무렵 흰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들린듯 모자를 찾아쓰고 나가려는 나를 어머니가 제지시켰다. 저녁밥을 지어야겠는데 남동생을 보란다. 강보에 쌓인 남동생은 기를 쓰고 울어대는데 내 마음은 그 울음보다 더 간절하게 내리는 눈을 향했다. 남동생을 어르다가는 베개에 눕혀놓고 유리창문으로 뛰여가 코가 납작해지도록 바싹 얼굴을 갖다대고 내리는 흰눈을 바라보았다. 흰눈이 내리는 저 하늘엔 무엇이 있을가? 어쩌면 저렇게 뽀송뽀송한 눈송이들을 내려보낼수 있을가? 눈이 쌓이듯 높아가기만 했던 그 동년의 궁금증은 오랜 시일이 흐르고 옆에 있던 분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게 되자 그리움이 되여 날 찾아왔다. 간밤에 하얗게 땅을 덮어버린 눈들을 보면 마치 하늘가신 아버지가 내려온듯싶어 눈가가 젖어든다. 󰡒\"얘야, 욕심을 부리지 말아!\" 눈속 어디선가 아버지의 생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싶다.떠나는 그날부터 아버지는 내 그리움의 상대가 되였다. 해가 질수록 마음속에 짙어지는 이 그리움. 비석도 없고 무덤도 없고 인간세상에 남겨놓은 한줌의 마지막 흔적마저 저 혼하강물따라 흘러가버렸는데 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자꾸 커지기만 할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면 아버지가 그곳에서 날 보며 웃는것 같고 이렇게 하아얀 눈이 대지를 덮은 날들은 아버지의 그 넓은 품이 날 감싸안는것 같다. 아, 사람은 가도 령혼은 천지간에 남아있는것일가? 무한한 우주와 비해볼 때 인간의 생명은 반짝이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반짝이는 한순간이 아름다운 별찌였으면, 누구나 보고 환성을 올리고 감탄을 하는 황홀한 별찌였으면! 그래서 인간은 몸부림을 치는지 모른다. 인간들속의 별찌가 되려고. 허나 인간은 별찌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황홀한 흔적을 남기려 하기보다는 가지려고 바둥거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자신이 다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도 한다. 날아예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한점의 티끌보다도 더 미소해보이는 얇은 몸매에 무거운 허영과 자존, 과욕과 심술을 짊어지고 헤여나오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떠나고나면 그 형체마저 산산이 부서지고마는것을  왜 그렇게 붙잡고 놓지 않는것일가? 결국 남는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리움뿐인걸. 그 그리움이 눈이 되여, 령혼이 되여 내려오는것일가? 무한한 우주공간에 흘러흐르는 그리움의 강물을 하늘은 흰눈송이로 내려보내는가보다. 흰눈이 내리면 아버지가 무척 그립다. 천지간 순백의 눈꽃이 흩날릴 때 사람의 마음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때문이리라. 순수한 그 흰빛에 세상은 고요해지고 만물은 청정해진다. 청정한 그속에서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얘야, 욕심을 부리지 말아!\"󰡓
6    [시]아침시장(서정순) 댓글:  조회:775  추천:23  2008-11-10
아침시장서정순아직 참새들은 깨여나지 않았다. 새벽 네시카텐을 열고 창밖을 보니 유월 여름이 고요하다태양은 동산마루에 흔적없고 날은 희붐히 밝아온다잠속에서 빠져나온 마음이 바쁘다돼지갈비를 푹 고아 남편오는 저녁밥상에 올려야지구수한 된장국에 양파, 감자줄당콩이 맛있던데 그 말도 귀전에 떠오르고빨리 서둘러 아침시장을 가야겠다싱싱한 잉어만큼이나 기대되는 주말행복은 아침시장을 향해 달린다2008.6.27호박 한근에 인민페 30전시글벅적한 시장속 참빗질하는 내 눈이 반짝인다아침이슬 묻어나는 호박 한무지 길고 미끈한 놈 하나 골라 저울에 단다“싼모우첸”“선뭐?”풋풋한 아낙네 값부름에 놀란 마음제철맞아 자랐는데 값은 겨울철 반에 반값도 못가는 호박“댕그렁” 손때묻어 반들한 돈상자엔 떨어지는 동전소리 요란하다이 무더기 호박 다 팔면저 상자에 동전이 찰가?높이를 모르고 치솟는 물가호박밭에 땀흘리던 아낙네 수심어릴 법도 한데해볕쓴 아낙네 까아만 얼굴엔펑퍼짐한 호박꽃 남실거린다2008.6.28아침시장 2인파타고 길게 늘어진 골목쉰내나는 소리들로 복작거린다오이 네개 골라 저울에 단다“이콰이, 꺼우마?”고까짓것 사느냐고 흘겨보는 눈빛 조는듯 우수가 묻어있다백원짜리 인민페에내밀던 손 멈칫하고 풀먹인듯 얼굴은 꽛꽛하다고기매대로 향하는 발길 뒤에지꿎게 따라오는 말 “다시 와? 보관할게!”고기 사들고 돌아서니 싱싱한 오이 앞에서 손짓한다살가?순간 실망할 그 눈빛 떠오른다동전 일원을 내미는 내게우수에 잠겼던 눈이 반짝거린다풀먹인 얼굴 풀어지기 시작한다인파타고 길게 늘어진 골목쉰내나는 소리들로 복작거린다료동문학
5    [시]참새(서정순) 댓글:  조회:790  추천:21  2008-11-10
참새서정순처마밑도 에어컨구멍도 매캐한 배풍기 구멍도어두워도 좋다 차가워도 좋다 매운 연기에 눈물 찔끔 나와도 좋다까치는 너무나 까다로워 굳이 둥지가 있어야 할가날다 힘들면 땅이건 나무건 가리지 않는다지나가는 행인의 머리에도 세워놓은 차들의 얼굴에도 고약한 지도 그려놓는다심심할 새없이 마실을 다닌다먼지 뒤집어쓴 고물상 야채상악취풍기는 고물더미 뒤로 한채밥 짓기에 한창이다연기쫓느라 콜록이는 아낙네밥달라 징징대는 아이담벽에 누런 지도 그리는 나그네올망졸망한 판자집 시끄럽기만 하다깨여나 종일 조잘거리는 참새살아있다는 증거다2008.7.13료동문학
4    [시]나 이젠 정말 버리고싶어! (서정순) 댓글:  조회:838  추천:52  2008-07-04
나 이젠 정말 버리고싶어! 서정순그래 지나치면 모든것 뜬 구름인걸 잊자 잊자 열자 열자 골백번 다짐하건만 왜 이리 힘들가? 사람을 용서한다는것이 자다가도 그 일만 떠올리면 울컥 치밀어오는 울화 밤새 뒤척이며 숯이 되는 가슴 독버섯이 따로 없었다 미움이라는것 가슴에 안으면 결국 마음만 만신창 되는것을! 나 이젠 정말 버리고싶어! <<연변문학>> 2008년 5월호
3    [시]열쇠(서정순) 댓글:  조회:805  추천:42  2008-07-04
열쇠(심양)서 정 순 안과 밖 사이 너한테 달렸다 네가 심술 부리면 아무리 얇아도 닫힌 문 열릴줄 모르고 네가 선심 쓰면 육중한 철문 잘도 열린다 어둠 깨고 들어선 방안 등불빛이 새롭다 <<연변문학>> 2008년 5월호
2    [수필] 인사동, 그리움을 심어놓고 댓글:  조회:936  추천:44  2008-05-14
인사동, 그리움을 심어놓고-인사동편서정순내 몸속 어딘가에 슴배여 꿈속에도 그리워했던 인사동, 이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이기고 또 찾아왔다. 처음 고국이라고 찾아와 40분 정도 돌았던 인사동.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순한국적인 정서에 반해버렸던 인사동, 그리움 한자락을 끄집어내면 영상마냥 조용히 떠오르는 남자가 있는 인사동, 이곳에 내가 또 왔다. 경복궁의 매표시간이 5시까지길래 걸음을 다그쳐야 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사동을 거저 지나치기가 아쉬워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렸다. 이곳이였을가, 저곳이였을가, 내 마음은 이년전 커피잔을 샀던 그 가게를 찾고있었다. 동그란 단지모양에 하얀 꽃송이를 피워올리는 밤색의 커피잔. “이 커피잔이 선생님 정서에 어울릴 것 같아요”하며 사주었던 그 사람. 인사동은 내가 이년전 그리움을 심어놓고 간 곳이다. 한 고장을 좋아하게 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고장 특유의 특산물이 좋아서일수도 있고 분위기와 정서가 좋아서일수도 있다. 허나 무엇보다도 어떤 사람을 만났었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인사동 역시 나에게는 그때 함께 했던 그 사람이 좋아서였는지 모른다. 인사동처럼 전통의 정서와 문학의 향기가 조용히 흐를 것 같은 분이다. 썩 가까이 다가선 사람은 아니지만 인사동만 떠올리면 점잖은 미소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감미로워진다.인사동은 참으로 추억을 낳는 곳이기도 하다. 두번째로 온 인사동, 내옆에는 태백문협의 정연수시인, 서울의 이기애시인, 대만에서 온 장국치시인, 그리고 한 고장에서 온 문학회동인들이 있어 흥겨로움이 더해졌다.경복궁을 돌고 재다시 찾아왔을 때 인사동에는 감실감실한 어둠이 내려오고있었다. 가게들마다 새여나오는 불빛들이 돌로 만든 거리의 바닥을 아늑하게 해주고있었다. 거리의 량측에는 돌로 된 화분통들이 드문드문 있는데 거기에는 어렸을적 논밭에서 봤음직한 이름모를 잉크빛의 꽃들이 피여있었다. 그리고 길옆 네모반듯한 돌에는 력대 유명한 시인들의 시구를 새겨넣었다. 문전박대해질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김병연(김삿갓)길옆 돌에 새겨놓은 시가 하도 신기해 한수 베낀 것이 바로 이 김삿갓의 “문전박대”라는 시이다. 시내용과는 달리 인사동은 우리 일행을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이기애시인님과 정연수교수님의 안내하에 인사동 쌈지거리에 들어섰다.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되여있는 쌈지거리는 이년전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건물이였으나 지금은 인사동을 대표할수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층계는 없고 서서히 웃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1층을 첫걸음길, 2층을 두오름길, 3층을 세오름길, 4층을 네오름길, 지하를 아랫길이라고 우리 말로 쓰고있다. 각종 골동품, 도자기, 액자, 수공예품, 보석류, 장신구, 등 볼거리들이 눈을 현란하게 했다. 인사동의 전통과 정서, 그리고 그리움을 담아가고저 복주머니와 보석주머니를 샀다. 약정된 식당- 지리산으로 찾아가는 길은 좁은 골목거리였다. 넓은것만 좋아하는 중국사람들 사이에 끼여 살아오다보니 인사동 골목길이 어딘가 답답해보였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 어떤 정서에 감염되는 것 같았다. 어거리풍년, 보리고개 찻집, 사색의 여름향기, 인사동 그 찻집, 흥부가 기가 막혀, 지리산, 초록비, 풍경소리, 들깨마을 맷돌순두부, 순 토속적인 한국말로 된 식당표말들이 어딘가 이색적이면서 가슴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뻣뻣하고 경직된 우리 말을 보아만 왔기 때문일까?감동은 또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이 유명한 시 “귀천”을 쓴 천상병시인을 기리는 “귀천”이라는 카페가 이 골목길에 있었다. 골목 어디에선가 천사병시인의 환한 웃음이 실려나올 것만 같았다. 한생을 청빈하게 살면서도 저 세상에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겠다는 천상병시인의 마음가짐, 인사동은 그야말로 문화와 전통, 예술의 정서가 녹아있는 곳이였다. 어느 가게나 뜰은 좁았지만 푸른 자연의 싱그러움에 둘러싸 있는듯 했다. 뜰앞마다 고추며 화초며 나무들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갔던 지리산이라는 식당도 몇평 안되는 뜰이였지만 뜰안에는 큰 감나무가 자라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감나무아래에는 고추들이 심어져있고 그옆에는 호박넝쿨이 드리워져 있었다. 뜰좁은 도심에서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자연에 살고있는 인사동사람들의 지혜를 보는 듯 하였다. 그날 밤 지리산식당에서 막걸이 동동주를 높이 들며 서울의 밤이 둥글어갈 때 인사동에서의 새로운 추억과 그리움도 깊어져가고 있었다.인사동, 몸도 오고 마음도 달려온 곳, 그리움의 씨앗은 또다시 뿌려지고 있었다.2007.8.15
1    국화꽃유감 (서정순) 댓글:  조회:924  추천:47  2007-12-19
국화꽃유감서정순국화꽃이 활짝 피여난것을 보면 하루밤사이 땅속에서 불쑥 피여오른듯한 느낌을 준다. 장미나 동백의 잎이 윤기가 흐르고 요염한데 비해 국화꽃의 잎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가뜩이나 연한 풀색우에 소박을 맞은 녀인인듯 뿌우연 가루까지 입혀있어 여름내내 화단 한곳에 자리잡고있지만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의 눈을 끌지는 못한다.  언제 심어졌고 어느새 자라났는지 인상에 가뭇없다. 사람들이 국화꽃에 눈길을 돌리는 때는 바로 국화꽃이 무더기로 피여날 때이다. 올해도 시린 청빛하늘과 더불어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화단에는 청일색의 자주빛 국화꽃들이 가을해볕을 마주하고 옹기종기 포즈를 취하고있다. 눈길을 주지 않았던 때가 언제인가싶게 국화꽃은 오가는 이들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아파트정원에 석양빛이 물들 때면 사람들은 무더기로 피여난 국화꽃앞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꽃앞에서는 마음도 즐거워지는듯 풍요롭고 느긋한 미소들이 사람들의 얼굴에 어려있다. 헌데 며칠전 저녁밥을 먹고 문을 나서니 화단앞이 수선수선하다. 국화꽃을 심었던 아줌마가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붉히고있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밤사이 누가 국화꽃을 51송이나 꺾어갔단다. 급히 화단으로 다가가보니 썩둑썩둑 가위질에 가여린 국화대들이 듬성듬성한 모습으로 열적게 서있다.  누구의 소행일가? 여러가지 추측들이 오갔으나 입만 아팠을뿐 딱히 누구라고 단정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고운 국화꽃에 매료되여 몰래 꺾어간것임은 분명했다. 고우면 곱다고 감상하고 지켜봐주면 될것인데 왜 하필 꼭 꺾어가야만 했을가? 고운것을 보면 소유하려는 욕심 많은 인간의 행위런가?  꺾이운 국화꽃을 보니 아무런 연고없이 누군가의 입에 짓밟혀 오르내렸던 일이 생각난다. 그것은 정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내가 엄두도 못냈던 말이여서 누군가 말하는 그 뜻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천진하게 실례를 들어 하는 말로 여겼었다. 헌데 그게 아니였다. 헛된 소문은 이미 누군가의 입을 거쳐 돌고 또 돈것 같았다. 나와 나 주위의 사람들만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시한폭탄이 터진듯 귀가 멍멍해났다. 집에 돌아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았다. 누가 그런 말을 퍼뜨렸을가? 왜서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냈을가? 의심은 눈덩이처럼 자꾸 불어났고 마음에는 미움만 우쭉 자라 석고처럼 엉겨가고있었다. 만나면 해살처럼 웃어주던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속에 엉큼함이 도사리고있다는것이 좀처럼 리해되지 않았다.  그것을 삭이느라고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하루의 일상이 끝난 저녁이면 밤하늘에 소리없이 떠오른 별들을 바라보며 왜서일가고 내 마음에 수없이 의문을 던졌다. 사람들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갔으면 누군가의 거친 입에 밟히지도 않았을것이다. 재간도 없으면서 중뿔나게 나서긴 왜 나섰냐며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깊은 속셈과 화려한 위장으로 한껏 자기를 감춘 사람들앞에 나선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꽤나 오랜 시일이 흘렀지만 그 일만 생각하면 무엇을 해보려는 마음은 자꾸 위축된다.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흠이 드러나고 일하지 않은 사람이 일한 사람을 탓하는 세월이라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향하려는 내 마음을 잡아당겨 멍든 울타리속에 집어넣군 했었다. 헌데 국화꽃앞에서 편협했던 내 생각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있었다.  며칠후 이른아침 산책길에 화단에 들렸던 난 국화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국화꽃은 꺾이운 상처를 보상이라도 하려는듯 풀각시 같은 애어린 꽃송이들이 우후죽순마냥 무더기로 피여나 새벽바람에 한들거리고있었다. 모르고 보면 꺾어진 자리가 잘 알리지 않았다. 말할수 없는 국화꽃이니까 상처를 입고도 흔연히 피여나는게 아니였다. 욕심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꺾이는것은 피할수 없는 운명이였다.  내 마음을 울린것은 한번 꺾이였어도 역시 찬란하게 피여날수 있는 국화꽃의 그 용기과 소탈한 자세였다. 국화꽃은 한번 꺾어졌다고 하여 쓰러지는것이 아니라 무서리가 내려 만물이 쇠락할 때까지 진물을 뽑으며 끝까지 자기의 생에 충실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따라 춤을 추고 비가 내리면 비물을 먹으며 우쩍 자라고 해가 뜨면 해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것, 그것은 국화꽃뿐만아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삶의 자세였다. 그런 자연과 비하면 난 얼마나 연약한 존재였던가?  살아가느라면 울퉁불퉁한 돌과 바위에 수없이 부딪쳐 푸르딩딩한 멍도 들고 그 멍때문에 아파 울기도 한다. 그렇다고 벽을 쌓고 움츠러들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뱉어낸 말은 다시 입안에 쏟아넣을수가 없고 입이 남에게 달려있는 이상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지배할 아무런 힘도, 리유도 없다. 그럴진대 그런 사람들의 입방아에 맞았다고 나서지 못할 리유가 무엇일가? 멍든 마음을 한시바삐 털어버려야 했다. 툭툭 털고보면 기실 상처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기 혼자만 아파 멍이 들었을뿐이다. 결국 아픔은 자기 자신한테서 온것이다.  부질없이 아팠던 시간들이 아까왔다. 꺾이우고도 의연히 찬연하게 피여나는 저 국화꽃처럼 아팠던 흔적들을 저 흘러가는 구름속에 띄워버리고 무르익는 가을바람속에 오연히 서있는 국화꽃이 되리라! 누가 꺾는다고 풀이 죽지도 않고 피여나는 그 순간들을 위해 삶을 키워오는 국화꽃, 마침내 활짝 피였을 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사람들이 다가와도 즐겁게 담소할수 있는 배경이 되여주는 국화꽃, 그런 국화꽃이 되고싶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것, 그것만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 삶의 보람이고 행복이니깐. 2006년 9월 25일 <<연변문학>>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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