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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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서정순)
2008년 12월 13일 15시 36분  조회:932  추천:34  작성자: 서정순
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


서정순



아침 문밖을 나서니 백설천지다. 코끝을 감도는 싱싱한 기운, 어깨에 소복소복 쌓이는 하얀 눈꽃, 얼마나 바랐던가! 사무친 그리움만큼이나 흰눈을 바랬었다. 간혹 흩날리다가마는 눈송이를 바라보면 언젠가 흰눈도 무지개처럼 동년속의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을가 조바심을 내군 했다.
󰡒
"넌 아직 어려! 크면 잘 만들수 있어.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고사리같은 조그만 손이 빨갛게 되도록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고모들이 만든 근사한 눈사람같지를 않자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 동년, 어린 나를 다독여주군 했던 아버지의 생전의 목소리가 정답게 귀전을 맴돈다.

내리는 눈이 천사같다며 눈내리는것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난 어릴 때부터 눈내리는 날을 참 좋아했다. 흰눈만 내리면 문밖에 나가 뛰여놀군 했다. 동동 매달리는 핫저고리안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들어도 내 몸 어디라없이 떨어지는 눈송이가 좋기만 했다. 차거운 촉감도 잠간, 살살 녹아내리는 흰눈의 그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한번은 어스름한 저녁무렵 흰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들린듯 모자를 찾아쓰고 나가려는 나를 어머니가 제지시켰다. 저녁밥을 지어야겠는데 남동생을 보란다. 강보에 쌓인 남동생은 기를 쓰고 울어대는데 내 마음은 그 울음보다 더 간절하게 내리는 눈을 향했다. 남동생을 어르다가는 베개에 눕혀놓고 유리창문으로 뛰여가 코가 납작해지도록 바싹 얼굴을 갖다대고 내리는 흰눈을 바라보았다. 흰눈이 내리는 저 하늘엔 무엇이 있을가? 어쩌면 저렇게 뽀송뽀송한 눈송이들을 내려보낼수 있을가?

눈이 쌓이듯 높아가기만 했던 그 동년의 궁금증은 오랜 시일이 흐르고 옆에 있던 분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게 되자 그리움이 되여 날 찾아왔다. 간밤에 하얗게 땅을 덮어버린 눈들을 보면 마치 하늘가신 아버지가 내려온듯싶어 눈가가 젖어든다. 󰡒"얘야, 욕심을 부리지 말아!" 눈속 어디선가 아버지의 생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싶다.

떠나는 그날부터 아버지는 내 그리움의 상대가 되였다. 해가 질수록 마음속에 짙어지는 이 그리움. 비석도 없고 무덤도 없고 인간세상에 남겨놓은 한줌의 마지막 흔적마저 저 혼하강물따라 흘러가버렸는데 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자꾸 커지기만 할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면 아버지가 그곳에서 날 보며 웃는것 같고 이렇게 하아얀 눈이 대지를 덮은 날들은 아버지의 그 넓은 품이 날 감싸안는것 같다. 아, 사람은 가도 령혼은 천지간에 남아있는것일가?

무한한 우주와 비해볼 때 인간의 생명은 반짝이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반짝이는 한순간이 아름다운 별찌였으면, 누구나 보고 환성을 올리고 감탄을 하는 황홀한 별찌였으면! 그래서 인간은 몸부림을 치는지 모른다. 인간들속의 별찌가 되려고. 허나 인간은 별찌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황홀한 흔적을 남기려 하기보다는 가지려고 바둥거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자신이 다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도 한다.

날아예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한점의 티끌보다도 더 미소해보이는 얇은 몸매에 무거운 허영과 자존, 과욕과 심술을 짊어지고 헤여나오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떠나고나면 그 형체마저 산산이 부서지고마는것을  왜 그렇게 붙잡고 놓지 않는것일가? 결국 남는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리움뿐인걸. 그 그리움이 눈이 되여, 령혼이 되여 내려오는것일가?

무한한 우주공간에 흘러흐르는 그리움의 강물을 하늘은 흰눈송이로 내려보내는가보다. 흰눈이 내리면 아버지가 무척 그립다. 천지간 순백의 눈꽃이 흩날릴 때 사람의 마음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때문이리라. 순수한 그 흰빛에 세상은 고요해지고 만물은 청정해진다. 청정한 그속에서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얘야, 욕심을 부리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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