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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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수필] 영화에 깃든 이야기-서정순 댓글:  조회:265  추천:0  2019-07-11
 서정순  영화에 깃든 이야기   영화를 보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하나의 사치로 되여있다. 영화값도 만만치 않은데다 어쩌다 딸애의 성화에 못이겨 남편과 함께 영화관에 가보면 내 나이또래는 별로 보이지 않고 젊은 사람 일색이니 내 돈 내고 보는 영화지만 괜스레 눈치살이를 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영화라고 하면 밥 먹다가도 뛰여가던 내가 영화관과 거의 담을 쌓고 사는 것을 보면 내 삶에 있어 영화는 하나의 사치이지 싶다.    어렸을 때 현성에서 조선영화를 상영하면 마을에서는 영화표를 집단적으로 구입하여 마을 전체가 영화관람을 하러 가군 하였다. 그런 날은 온 마을이 경사가 나는 날이였다. 갓 시집온 새색시들은 하얗게 분을 바르고 꽃단장을 하고 나오면 어린아이들은 누구누구 집 색시가 제일 예쁘다며 서로 목에 피대를 세워가며 우겨댔다. 마을의 전용교통수단인 마차가 모두 동원되고 남녀로소 할 것 없이 그날만은 제일 좋은 옷들을 갈아입고 신바람이 나서 영화관으로 향하였다. 춤추듯 상공을 향해 휘날리는 마차부의 채찍소리는 영화 보러 가는 마음들을 더욱 감칠맛 나게 하였다.    바로 그런 날중의 하루였다. 소학교 2학년이였을가. 저녁 6시 영화관람이였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벌써 날은 까맣게 어두워있었고 촌닭 관청에 온듯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도 없었다. 한어말은 서툴고 마을에서 온 마차는 보이지 않고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우리 마을이 어느쪽으로 가냐고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머리만 흔들 뿐이다. 에라, 모르겠다. 저쪽이 맞는 것 같아. 나는 스스로 판단하고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뛰여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였는데도 마을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도 점점 드물었다. 급기야 겁이 나서 엄마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 있는 엄마가 대답을 해줄 리 만무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길 가는 사람한테 뛰여가 울면서 우리 마을 옆에 있는 한족마을 이름을 부르며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길을 잘못 들었다며 다시 오던 길로 가라며 알려주는 것이였다. 그때처럼 절박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시 마차가 떠났으면 10리나 되는 길을 이 한밤중에 어떻게 찾아가지? 영화관 쪽으로 죽어라고 뛰여가보니 여러대 왔던 마차들은 거의 떠나고 마지막 마차 한대가 떠나려고 하는 중이였다. “조금만 기다려요―” 나는 목청을 다해 소리쳤다. 어디 갔다 이제 오냐며, 다 간 줄 알고 떠날 번했다고 하면서 “쪄, 쪄”하는 마차부아저씨와 마을분들의 모습을 보고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 번하였다. 평소엔 아이들이 마차부아저씨 모르게 마차 뒤켠에 살며시 앉기만 해도 귀신처럼 알아맞추며 사정없이 채찍을 날리던 아저씨가 그날만은 얼마나 눈물나게 고마운지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하면 그날밤의 그 정경부터 떠오르군 한다.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우리 멤버들끼리 함께 영화를 보자는 요청을 받았다. 전에도 그분의 배려로 한둬번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분이 자꾸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뜻이냐며 물어와 우린 한참씩 웃군 하였다. 영화를 보면 세대차이가 딱 나군 한다. 같은 내용을 보고도 같지 않은 년대를 산 사람들의 감수는 다르기 때문이다. 뭘하는지 서로 바삐 보내다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영화감상까지 하자는 사람이 있으니 이 아니 좋을소냐. 허나 그날의 영화관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멤버들중 바쁜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원래 보려던 영화는 장예모 감독에 공리가 주연을 맡은 《귀래(归来)》라는 영화였다. ‘문화대혁명’ 후유증을 주제로 하여 찍은 영화라는데 현시대 청년들이 보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와 흘러간 세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참 좋은 영화라고 한다. 그 년대를 산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영화나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만큼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화가 되여간다는 의미일 게다. 요즘은 눈물이 많지 않은 세월이다. 스마트한 현대사회에서 나날이 적어지고 있는 것이 눈물이 아닐가 생각한다. 눈물만큼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절실히 나타내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은 먹기 위해 태여나지 않았다. 단순한 물질만으로는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늘쌍 옆구리가 시리고 마음 한켠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나 혼자만의 감수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건강을 챙기고저 바드민톤이요, 탁구요, 걷기운동이요, 등산이요 하며 육체적인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정작 영화 한편에 할애할 시간은 낼 수가 없다. 많은 경우 영화에 관심이 없다는 표증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빠듯해졌는가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례이기도 하다. 영화는 종합예술로서 한편의 좋은 영화는 예술적인 화폭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기도 하며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의 내용들을 예술적으로 가공해주어 무디여진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며 감명을 주기도 한다.    어렸을 적 영화를 돌린다 하면 밥 먹다가도 뛰여가던 그때 그 시절, 삶은 옥수수를 들고 뛰여가노라면 저물어가는 황혼에 잠자리들은 낮게 날아예고 마을 광장에는 철이네, 순이네, 이웃들이 모여앉아 어서 오라 손짓하던 그 정경, 그 자체가 한폭의 영화가 되여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치로 되여버린 영화지만 자꾸 영화타령을 하며 마음의 갈증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6    터 이야기 셋 댓글:  조회:949  추천:2  2013-05-08
 터 이야기 셋 서정순 어느 고요한 여름밤 느닷없이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내 마음은 평온을 잃었다. 눈은 TV를 보고있었지만 그 내용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였는지? 왜 그녀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당장이라도 그 누군가에게 해답을 듣고싶어 핸드폰을 꺼내들었으나 결국 나는 누구한테도 전화를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녀에 관한 해답을 하지 못하리라는것을 내 마음은 너무나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하긴 심리상담사가 아닌 이상 누가 감히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하겠는가. 한치 앞을 모르는게 사람일인데. 그날 저녁 나는 어스름이 내린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소리가 그녀의 인생을 돌려놓을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내 귀에는 친구의 말소리가 계속 맴돌이쳤다. “그애 어쩌면 좋아… 밤마다 남편 뒤만 밟는다는구나… 죽어도 리혼은 안한대…” “죽어도”, 그녀는 죽을만큼 영악한 녀자는 아니였다. 오죽했으면 맹물처럼 순하디 순한 애가 저리 질기게 나올가. 나는 아무리 해도 전화에서 했던 친구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몇년전 내가 동창회에서 만났던 그녀는 친구의 말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있었다. 항상 파리한 낯빛에 가늘디 가는 팔과 바람만 불면 날려갈것 같은 가냘팠던 그녀의 어릴적 모습은 어디로 가고 20여년의 세월앞에 나타난 그녀는 보기좋게 살이 붙어있었다. 머리가 벗겨지고 늘어진 주름살엔 찌들린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동창들과는 달리 그녀는 얼굴빛이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긴 머리에 청바지까지 입고있어 얼핏 보면 30대의 젊은 아줌마같은 모습이였다. 그날 들은 얘기로는 그녀는 슬하에 아이가 둘이며 남편회사는 잘 나가고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정말 부러움없는 행복한 가정이였다. 그녀는 “너도 알잖아. 나 어릴적부터 엄마가 없었잖아. 그때 젊은 녀자만 보면 따라가며 엄마라고 부르고싶었어. 내 자식들한테는 엄마없는 설음을 주고싶지 않아.” 하면서 지금 자기는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 시중을 들고있다고 했다. 나는 언제봐도 썰렁했던 어릴적 그녀의 집을 떠올리며 참말 다행이구나, 젊어 고생은 금주고도 못산다더니 세상은 그래도 공평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뒤에 들려오는 소문은 더욱 험하고 듣기가 거북했다. 그리고 진짜인것 같았다. “얘, 어쩌니? 그애 요즘 좀 정신이 돈것 같아? 남편은 드러내놓고… 그 남편과 시댁식구들 뒤바라지 하느라 병까지 걸리더니…” 전화선을 타고 흘러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깊은 한숨을 쉬였다. 모질지도 못하고 똑 부러지지도 못하고 비단결마냥 한없이 부드럽고 어질기만 하던 그녀가 남편을 찾아 유령처럼 캄캄한 밤을 헤집고 다닐걸 생각하니 내 마음은 한없이 착잡해났다. 나는 몇번이나 전화기를 들었다 놓고말았다. 내가 그녀한테 해줄수 있는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처사를 두고 주위에서는 말들도 많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마음까지 돌아선 사람이 매달린다고 돌아올가, 차라리 위자료나 듬뿍 받아내는것이 상책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남편이 정신을 차리게 법에 고소해서 콩밥이라도 먹게 하는것이 속시원한 처사라고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데 돈만 갖다주면 한눈 감고 모른척 넘어갈수도 있어야지, 그 나이에 몸에 병도 있는 사람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 봐서라도 남편을 용서하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말들은 많고 그녀가 살아갈수 있는 방법도 참 많은것 같았다. 허나 사람들은 알고있는지 모른다. 그녀라고 이 모든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았을가. 아무리 당사자보다 옆사람이 잘 볼수 있다고 하지만 허다한 경우 당하는 당사자는 그 누구보다도 치렬하고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반성을 해보았을것이다. 내가 만약 그런 처지였다면 하고 아무리 가상을 해보아도 직접 당하는 자의 아픔을 반도 리해하지 못할것이다. 법정스님이 그랬던가. 나는 당신을 리해합니다 하는것은 바로 나는 당신을 오해합니다라는 뜻이라는것을. 모든 오해와 편견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부부가 되여 한생을 살아간다는것은 련애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이네는 결혼은 어떤 라침판도 일찌기 항로를 발견한적이 없는 거친 바다라고 했다. 그 결혼이라는 거친 바다에 사랑의 쪽배 하나 띄워놓고 행복의 대안을 향해 달려가기란 얼마나 조련찮은 일인가. 풍랑도 있고 암초도 있고 소용돌이도 있을것이다. 련애하던 시절 헤여져야 하는 밤이 돌아오면 애타는 마음으로 뜨거운 가슴을 확인하던 애틋한 추억은 어느새 지루한 일상속에 창틀의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가고 늘어나는것은 권태와 불만과 투정뿐이다. 그속에서 묵은 정을 느끼며 두손 잡고 걸어가면 되겠지만 영원할것 같으면서도 유리처럼 쉽게 깨지는것이 사랑이라 단언할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즘 들어 성격이나 취향이 맞지 않는다는 리유로 부부간이 리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있다. 개성과 자존에 대한 요구가 높을수록 리혼률은 높아만 가고있는듯하다. 리혼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옛날같지 않고 많이 부드러워졌다.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 결혼하고 또 잘 살기 위해 리혼을 선택한다. 모든것이 빨라지는 이 풍토속에서 결혼과 리혼도 달라질수는 없다. 번개불처럼 급속히 결혼을 했다 뭔가 못마땅한지 인차 리혼을 택하는 사람들도 우리는 심심찮게 볼수 있다. 이런 세태속에서 그녀의 행실은 구질구질하다 못해 찌질해보이기까지 하다. 아무런 해결방책도 없이 밖으로 나도는 남편 뒤만 쫓아다니다니. 어찌 보면 남편에 대한 못난 안해의 집착과 구속 같기도 하다. 누구나 알다싶이 사랑은 구속이나 집착만으로는 잡아둘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녀의 행위를 쉽게 비판할수 없는것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터전에 대한 본능과 아집이 아닐가. 사소한 리유만으로 쉽게 가정이라는 터전을 깨뜨리는 현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미련하리만치 고집스럽다. 자기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기 상실의 아픔과 자존이라는 뚝이 와르르 무너지는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고 주위의 따거운 시선들에 자기를 로출시키면서까지 미칠지경으로 가정이라는 터전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있다. 허나 그녀는 알고있는지 모른다. 결혼이라는 터전에서 중요한것은 부부 쌍방의 인격적인 만남이라는것을. 어느 일방의 맹목적인 희생과 인내로는 멀고도 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것을.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는 자신의 부리로 직접 둥지를 만드는 까막딱따구리와 같은 정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로 둥지를 틀지 않고 남의 둥지를 탐내는 소쩍새와 같은 얌치없는 사람도 있으며 소쩍새보다 한술 더 떠서 남의 둥지에 자기 알을 놔놓고는 남의 알은 밀어떨어뜨리는 뻐꾸기같이 온갖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이 산에 올라 저 산을 바라보는 갈대같은 인간의 천성도 있고 량손에 떡을 쥔 격으로 무엇 하나 놓치기 싫어하는 인간의 욕심도 있으며 떨어지는 락엽소리에도 쉽게 허전함을 느끼는 인간의 감성도 있다. 하기에 사랑이라는 동아줄로 이어진 부부라는 터전에도 변수는 항상 도사리고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아슬아슬한 이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나가느냐 하는것이다. 해답의 열쇠는 본인들에게 달려있다. 이제 그녀가, 아니 그들 부부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허다한 경우 옆에서 떠드는 시야비야하는 떠들썩한 말들이 안타까운 결말을 재촉하는 수도 있으니까.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자. 시간이 흐르면 모든것은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여있으니까.
15    맨드라미- 서정순 댓글:  조회:909  추천:0  2012-11-19
맨드라미(鷄冠花) (외1수) (심양) 서정순 올망졸망 장독대사이로 빠알간 벼슬만 내여놓은 수탉 한마리 사위오면 닭 잡아준다는 집주인 말에 제 먼저 놀라 장독사이에 숨죽이고 간이 달랑 빠끔히 내다보네 수련(睡蓮) 천년이나 사무친 그리움 인연의 끈 놓지 않으렵니다 숨구멍 숨구멍마다 슴배인 온몸의 정열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다가 당신이 오시는 맑은 날 해맑게 당신앞에 피여나렵니다 당신이라는 아롱진 해살 그속에서 웃음짓는 영원한 수련 이고싶습니다.
14    추 천 사 (1월 10일~ 1월 17일) 댓글:  조회:679  추천:17  2011-01-12
추 천 사     료녕성 문단에서 활약을 펼치고있는 서정순의 수필집 《흰눈이 내리면 그리움이 내린다》 출간되였다.   수필집은《도라지》잡지사에 주최하고 남호문화기금회, 한국 사단법인 \"황사를 막는 사람들\", 료녕민족출판사에서 후원한 《조선족청년작가작품집》(총서)의 일환으로 출간,  \"지금까지의 창작성과와 창작수준, 문단에 대한 공헌 등 여러방면을 고려하여 수필가 서정순선생을 선정했다\"고 편집부는 밝혔다.   서정순 수필은 \"무엇보다도 서정성과 서사성의 원만한 조화이며 흐트러짐 없는 반듯함\"이라고 평론가들은 평했다.   금주의 문인으로 추천한다   문학닷컴 편집부
13    아카시아꽃은 향기를 남기고(서정순) 댓글:  조회:894  추천:32  2010-03-21
아카시아꽃은 향기를 남기고서정순6월인데도 올 여름은 지지리 무덥다. 지글지글 내리쬐는 한낮의 무더위에 출근을 하느라면 서늘한 나무그늘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가로수들이 있으나 교정에는 키낮은 나무들이 많아 비끼는 그늘도 답답하기만 하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겨져 고풍스럽고 은은한 운치를 풍기는 시원한 유보도는 없을가? 한가롭게 오손도손 모여앉아 소풍과 한담을 즐기게 하던 고향집나무와 같은 서늘한 그늘은 없을가? 있다가 없어진것, 소유했다 없어진것에 대한 애수가 애잔하게 밀려오며 올봄 아카시아나무로 숲을 이뤘던 정원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곳은 시어머님이 입원해있던 병원이였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병원은 하늘을 찌를듯 우로 높이 뻗어오른, 나이를 가늠할수 없는 키 높은 아카시아나무숲속에 묻혀있었다. 때는 마침 5월이라 아카시아꽃향기가 코를 자극하며 올라가는 내 발목을 잡았었다. 긴 그늘을 드리우고 미풍에 흔들리는 아카시아숲속은 어머니의 품속마냥 편안하기만 했다. 어디선가 붕붕대는 소리들이 귀청을 건드린다. 올려다보니 하얗게 핀 아카시아꽃들에 벌떼들이 달라붙어 한창 꿀을 채집하느라 야단이였다. 정적이 흐르는 고즈넉한 숲속, 맑은 공기속에 풍겨오는 아카시아향, 리차드 크래드만의 피아노연주곡만 있다면 짜장 소풍이라도 온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곳. 이곳이 병원이 아니고 명승지라면, 아니 병원이라도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산책만 할수 있다면 하는 절박함에 어느새 눈물이 두볼을 적셨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숲속 어딘가에서 뻐꾸기의 슬픈 소리가 느닷없이 들려왔다. 어머님과 고부사이로 쌓아온 정이 십여년이다. 칡넝쿨처럼 갈라질래야 갈라질수 없게 얼기설기 엉켰던 어머님과 나, 그동안 스치며 엉키며 달라붙으며 한가족이 되였었다. 정은 유정한데 혹한처럼 매서운 병마는 무정하기만 했다. 두달전만 해도 가벼운 몸으로 팽이처럼 돌아치던 어머님이셨는데 지금 병상에 누워 의식이 흐려진 상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천둥 같이 달려갔던 이 큰며느리에게 《대학입시까지는 너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바쁜데 뭘 하러 오냐?》며 엄청난 병진단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드라마를 보며 간간이 웃으시던 어머님이셨는데 병이 무섭긴 무서웠다. 일년 남짓이 막내아들 병시중을 들며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생명을 보아왔기에 어머님은 자신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듯했다.  《오늘 병원 갔다와서 너 아버지 울고있더라. 이미 뇌로 펴져있는 상태라서 치료가 힘든 모양이다. 사람의 명이 그것뿐인걸 어찌하겠니? 너희들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가겠구나. 내가 있으면 령감시중은 들어줄텐데. 네가 고생하겠구나…》  유언처럼 들리는 그 말에 코언저리가 찡해나며 두손이 자꾸 눈가로 올라갔다.  《어머님.》 하고 어머님 품에 안겨 통곡이라도 하고싶었다. 평생 자기를 모르고 오로지 남을 위해 살아온 어머님께 이게 무슨 벼락이냐고 바락바락 악도 쓰고싶어졌다. 악을 쓰고픈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회한이 몸부림치고있었다. 급할 때는 찾고 지나가면 바빠 못온다는 핑게 아닌 핑게가 대못처럼 가슴을 찌르고있었다. 딸이 없는 어머님은 딸 가진 부모들을 무척 부러워했고 며느리들을 딸처럼 대하려고 무척 신경을 쓰셨다. 그만큼 딸 같이 싹싹하지 않는 이 며느리가 섭섭도 하셨으련만 찾아와주는것만으로도 고마운지 어머님 집앞에 다달으면 창가엔 늘쌍 아카시아꽃 같은 하아얀 웃음이 내리고있었다.  작년 시아버님께서 수술을 받으셨다고 해서 바람 같이 달려갔을 때 난 쿵― 하고 무너지는 내 가슴의 소리에 스스로도 놀랐었다. 언제 구부러졌는지 폴싹 굽어진 어머님의 등은 바람만 불어오면 삭정이처럼 당장이라도 부서질것 같았다. 언제 저렇게 늙으셨을가? 아픈 아들 병시중에 가슴이 내려앉아 등이 굽었을가? 가망이 별로 없을거라며 주위에서 쉬쉬댔지만 어머님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라도 잡고픈 심정으로 신문, 잡지들의 약광고들을 이잡듯이 훑었고 교사직에 있으며 깔끔했던 사람답지 않게 우리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비법》도 신주모시듯 모셨다. 약을 달인다, 죽을 쑨다, 보양식을 만든다, 병때문에 물 넘기기도 어려워 스스로 포기하는 아들에게 힘을 내라고 눈물을 쏟던 어머님이였다.  《약이 넘어가지 않아 저도 울고 나도 운다.》 하루하루 지쳐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마음이 오죽했을가?  《차라리 사고라도 당해 없어졌어도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진 않겠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오죽했을가? 그런 와중에 아버님까지 수술을 받게 되였다. 《아직 의식이 회복되지 않았어. 괜찮아. 수술이 잘되였다고 의사들이 그랬어. 마음놓고 돌아가. 바쁠텐데… 안와도 되는데…》 어머님은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내비친 내 마음을 의식했는지 웃으며 위안을 주려고 하지만 웃는 그 모습이 외려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딸이라면 힘들다고 어리광이라도 부려볼가? 힘들 땐 힘들다고 하소연하는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쪽 같은 무서운 자존심을 갖고있는 어머님은 자식들앞에서마저 힘든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셨다. 이웃들은 어머님 자식이 아파있는줄을 오래동안 몰랐었다. 바람만 불면 날려갈것 같은 가냘픈 몸으로 힘든 모든것을 혼자서 품었다. 그것이 응어리가 됐을가? 어머님은 자식을 보내고 일년만에 병상에 누우셨다. 그리고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입원하지 한달만에 간다는 말도 없이 아카시아꽃처럼 지고말았다. 병진단을 받으시고 《올 여름은 유난히 덥단데 덥기전에 갔으면 좋겠다. 가족들 고생시키며 더 끌고싶지 않은데…》하며 걱정하시더니 그 마음이 간절하여 하늘이 부르셨던가?  사람은 가고나면 순수를 남기고 향기를 남기는것 같다. 고부사이로 고까왔고 리해할수 없었고 서러웠던 기억들이 왜 없겠냐만은 그 모든것들은 무한한 우주속에 흩어져버리고 날 배려해줬고 사랑해줬던 어머님이 자꾸자꾸 그리워만진다. 그리고 슬퍼진다.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 있었댔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고부사이로만 남아있는 내 마음이 못마땅해 더 설음이 커지는지도 모른다. 날 지켜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것이 너무나 슬프다. 어머님은 나에게, 아니 가족들에게 포근하고 시원한 나무그늘이 되여주었다. 어머님이 아카시아숲속으로 덮혀있던 병원에 입원한것이 하늘의 뜻은 아니였던가 생각된다. 어머님은 너무나 아카시아나무를 닮아있었다. 한여름날 자글자글 달구는 땡볕을 몸으로 막으며 사람들에게 무성한 숲을 안겨주고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온 천하에 눈꽃 같은 하아얀 향기를 풍긴다. 찬서리에 마음까지 시려지는 계절, 세월의 인고속에 몸마저 바싹 마르면 마지막 남은 형체로 세상사람들의 방안을 덮여주는 아카시아나무, 한줌의 재가 되여 흔적도 없이 바람속에 사라지지만 향긋한 아카시아향기만은 오래오래 여향을 남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명대로 떠나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있다. 허나 떠남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깃털마냥 한줌의 재가 되여 영영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날아가버리는 사람이 있고 형체는 가되 령혼은 남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은한 향기를 풍겨주는 사람이 있다. 어머님은 사람들에게 구경 어떤 의미로 남을가? 《좋은 로친이였는데…》 애석해하며 눈굽을 적시는 이웃들의 모습을 어머님은 머나먼 곳에서 지켜보고있을가? 꽃철이 지난 아카시아나무에는 줄당콩 같은 열매가 대롱대롱 맺혀 더운 바람에 하느작거린다. 어머님이 없는 올 여름은 무덥기만 하다. 아직 삼복철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숨이 컥컥 막혀온다. 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딸애가 더위를 먹은듯 늘쩍지근하다. 《엄마 나 답답해. 어지러워.》 딸애대신 내가 앓지 못하는것이 한스럽다. 저 애를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나? 랭장고에서 바삐바삐 수박을 꺼내 수박즙을 내는 내게 어머니가 다가와 환하게 웃으신다. 아카시아꽃 같은 하아얀 웃음을! 아, 시원하고 서늘한 나무그늘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마음이다.  연변문학 2006년 12월호
12    조선어문교사라는 직업 댓글:  조회:864  추천:29  2009-06-17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면 뭘 하고있느냐는 질문을 받기가 일쑤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사노릇을 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물어보는것이 뭘 가르치느냐는것이다. 내가 조선어문을 가르친다고 하면 좀 점잖은 친구들은 그래 하고 말끝을 흐리는게 탐탁한 눈치는 아니다. 성격이 덜렁거리는 친구들은 대놓고 “조선어 뭘 배울게 있다구? 말 다 하고 글 다 읽을줄 아는데 또 뭘 배워주는데?”하고 직방배기로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배울게 많지”하며 난 웃으며 대꾸하군 한다.   조선족학교라지만 실제로 조선족학교에서의 조선어문의 위치는 높지 못하다. 대학입시에서 조선족학교 어문은 조선어 절반 한어 절반해서 점수를 취급한다. 수학이나 외국어가 150점인데 반해서 조선어문은 그 점수의 반값인 75점밖에 안되니  실리를 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그리고 학교에서 당연히 대접받지 못할것은 뻔한 리치다.   수학선생님이나 외국어선생님이 과외를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벌 때 우리 조선어문 선생님들은 생활의 “여유”를 부리며 쪼들림을 받는다. 한번은 돈때문에 남편과 얘기하다가 저녁으로 뭘 더 해야 할가부다고 했더니 남편은 웃으며  “넌 그 많은 전업중에 하필이면 선택의 범위가 좁은 조선어문을 선택했느냐”며 돈벌 생각은 아예 집어치우라고 넌지시 귀띔을 하는것이였다. 중국에 살고있는 많은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살면 중국어를 잘 배워야지 조선어를 잘 배워서는 뭘 하겠느냐는 생각을 갖고있다. 그런 생각들은 세대가 바뀌고 민족습관의 동화가 생기면서 차츰 더 기승을 부리는 추세다.   젊었을적 한번씩 동창모임에 갔다오면 전업과 직업에 대한 선택에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다. 학교때 나보다 공부가 엄청 떨어져서 두번 세번 재수를 했던 친구들이 법률이나 외국어나 금융전업을 선택한 보람으로 느긋한 경제적 여유를 부리고 다니는것을 보면서 그때 민족대학의 조선어전업을 선택했던 내 자신을 후회했던 적도 있었다. 하해하여 다른 직종을 찾을가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허나 난 끝내 내 직업ㅡ조선어문선생이라는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돈보다 더 중요한것들이 우리들 삶에 너무나 많다는것을 느꼈기때문이다.   중국 조선족학교에서의 조선어문은 단순히 어문의 범주만은 아니다. 조선어문은 바로 민족의 령혼이며 뿌리인 셈이다. 조선어를 모르면 얼마 안가 한족문화에 동화되게 된다. 중국의 만족이 자기 문자와 언어를 잃어버리고 300년만에 한족에게 완전히 동화된 력사사실은 나에게 조선어문교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하였다. 조선어문이 있기에 조선족학교라는 특색이 있게 되고 조선족학교가 있기에 중국에 살고있는 우리 민족의 맥락도 이어가게 되여있다. 민족의 문화, 민족의 풍습, 민족의 전통은 바로 우리 조선어문교원들이 전파해가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다. 비단 우리 민족 학생들에게 조선어문을 가르칠뿐만아니라 타민족의 학생들에게도 우리 민족의 언어를 가르친다면 민족의 동화를 막을수 있을뿐만아니라 민족의 문화를 더 넓게 전파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조선어문 수업시간을 리용하여 내가 알고있는 고국의 력사이야기도 가담가담 끼여 얘기했고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로 엉켜있는 민족의 풍습에 대해서도 아는데까지 알려주려고 노력했으며 청명절, 단오절, 추석을 비롯한 전통명절과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에 대해서도 여건만 되면 가르쳐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학생들을 조직하여 각종 조선어문웅변콩클, 글짓기콩클에 적극 참가시켰다. 내가 배워준 학생들이 각종 경기에서 우승을 거두었을 때 난 한없는 영광을 느꼈다. 그것은 돈으로서는 도저히 살수 없는 크나큰 기쁨들이였다. 내게서 조선어를 배운 한족학생들이 작문이라고 우리 글로 문장을 써왔을 때 난 가르치는 자의 긍지와 보람을 느꼈었다.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자면 교원 자신도 조선어문자질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짬짬이 조선어로 글을 써 간행물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간행물에 발표하는 글들이 많아지고 학생들이 선생님이 쓴 글이 신문에 발표되였다면서 나의 글을 반에서 읽어줄 때 난 조선어문교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것이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였다.   삶의 행복이란 그 무슨 거창한 사업을 했을 때만 다가오는것이 아니다. 아주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낄수가 있는것이다.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살랴! 천만의 금덩이가 쌓여있대도 삶의 보람과 긍지와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금덩이들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기가 하고있는 사업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 사람은 가장 복받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수 있으리라!  공자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며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조선어문교원이라는 선택에 대해 한때 후회도 했고 고민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어느결에  조선어문이라는 사업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되여가고있다. 지금에 와서 전업을 잘못 선택했다며 날 웃던 남편도 이제는 은근히 날 대견해하는 눈치다. 조선어문을 가르친다고 리해를 못하던 친구들도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치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물어온다. 학교에서도 각종 행사의 표어들을 우리 조선어문 선생님들에게 의탁한다. 조선어문은 정말로 단순한 어문의 범주만이 아니다. 조선어는 중국땅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 풍습을 고수해가는 하나의 진지이며 보루이다.   과외를 못하고 느긋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중국이라는 현실과 실용을 따지는 현실의 장벽앞에서도 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것이며 흔들리지 않을것이다. 정성이 닿으면 조선어문에서도 나만의 세계가 열릴것이라고 굳게 믿기때문이다. 난 지금도 앞으로도 조선어문교사라는 이 이름에 걸맞게 열심히 당당히 살아갈것이다.인터넷료녕신문
11    [수필]김장철 정서 댓글:  조회:864  추천:21  2009-02-06
  마음속에 추억을 간직하고 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가? 아침이슬과도 같이 반짝이는 추억들은 새별과도 같이 수시로 떠올라 무심하고 단조롭던 생활에 빛을 주고 새힘을 얹어주군 한다. 어쩌다 푸근해지는 봄날씨같은 겨울날, 그런 날을 맞으면 내 마음속의 그리운 김장철은 바다마냥 시원하게 펼쳐지군 한다.    추억속의 김장철은 생각만 해도 감미롭다. 김장철만 되면 괜스레 마음이 바빠지군 했었다. 결혼전 혼자서 김장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였기에 생각만 해도 아득하고 막막했다. 직장에 나가도 한다는 소리는 김장철얘기였다. 김장철이 힘겨웠던건 나같은 햇내기뿐만이 아니였다. 어머니와 같은 나이지긋한 분들도 마치 김장을 담그는 일이 딸시집보내는 일만큼이나 성스럽고 아름찬 일로 여기는것 같았다. 고추가루나 배추를 사는것을 보면 사위물색이나 하듯 대단했다. 시장에 고추가루가 흔했지만 잡것이 들어있다고 시골에 부탁하기가 일쑤였다.   김장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직장에서 차와 사람을 파견하여 시골에 내려가 직접 배추를 사다가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배추나 파를 사러 시장에 간다고하면 그것은 아주 당연하고 떳떳한 리유이기도 했다. 만나서 한다는 인사들도 고추가루 샀냐, 오늘 본 배추가 알도 차고 값도 싸다느니 하는것들이였다.   그것은 한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족들은 쏸차이를 담그느라고 우리 조선족 못지 않게 김장철준비에 신경을 쓰군 했다. 정성껏 준비한 김장을 담그는날은 명절을 쇠는 기분이였다. 그날만은 아파트뜰안에 어른, 아이할것없이 떠들썩하다. 아이들은 올리뛰고 내리뛰며 그저 좋아 야단들이다. 한족어른들은 밖에다 벽돌장과 나무막대기로 림시부뚜막을 쌓아 그우에 물을 가득 부은 한족벌떡가마를 얹고 불을 지핀다. 배추를 더운물에 넣었다가 건져내여 소금물에 절여 쏸차이를 만든다. 김장하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며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안겨와 사람사는 맛을 물씬 풍기게 한다. 조선족의 월동음식이 김치라면 한족은 바로 쏸차이다.   지금 시장에서 파는 쏸차이는 그 맛이 옛날 집에서 하던 쏸차이맛에 못미치고있다. 갓 결혼하여 내가 살았던 곳은 조선족이 거의없는 한족아파트동네였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인데다 자기네와는 민족이 다르고 직장이 달랐던 우리가 어딘가 신비로운데가 있었는가 보다. 그 점은 김장철 때 잘 드러나군 했었다. 아파트 1층이여서 베란다가 없었기에 우리는 집앞에 있는 자그마한 뜰에다 움을 파고 김치를 저장하군 했었다. 이웃한족들은 어딜 나가다가도 다가와서 김장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군 했었다. 양념에는 뭘 넣느냐, 배추는 어떻게 절이느냐, 조건김치는 참 맛있는데 자기들은 할줄 모른다면서 입맛을 슬슬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시어머님은 별로 잘 되지 않는 평안도억양의 한족말로 손짓몸짓 곁들이며 알려주느라 극성이였다. 한데도 이듬해 김장할 때면 한족이둣들은 똑같은 물음을 또 물어온다. 알려준대로 김치를 했는데 조선김치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은근슬쩍 시어머니가 김치만드는 노하우를 감춘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도 비쳐지군 한다. 꼭같은 양념도 손맛이 다름에 따라 김치맛이 다르다는것을 한족들은 좀 리해하기 힘들어했다. 김치를 담는 날 시어머님은 딴살림을 하면서도 어김없이 찾아오군 하였다. 비좁은 주방에서 시어머니와 난 납버치(아주 큰 양재기)를 마주하고 앉아 김장을 하였다. 《양념을 듬뿍 넣어야돼. 그래야 맛이 우러나. 잘 절궈지지 않는 배추속엔 소금을 살짝 뿌려줘야 돼. 배추속에 뿌리는 소금은 굵은 소금보다는 절구에 빻은것을 뿌려야 돼.》 김장에 서툰 며느리를 탓하지 않고 시어머님은 차근차근 깨우쳐주신다. 하지만 제사상보다 제밥에 관심이 있다던가! 노오란 배추속을 보면 군침부터 돈다. 어릴적 배추속에 양념을 발라 입에 넣어주던 친정엄마를 떠올리며 《어마니 이 이거 맛있어보여요.》하면 시어머니는 철없는 며느리가 어이없으신지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래. 김장하면서 먹는 배추속은 별미지.》 시어머님 눈치를 살짝 보며 남편입에 얼른 넣어주면 남편의 눈빛은 금시 따스해진다. 못본체하는 시어머니얼굴에도 느슨한 미소가 어린다. 말하기 즐기고 인정많은 시어머님과 함께하는 김장은 즐겁기만 했다.   시어머님은 아들어릴적의 얘기, 가족얘기, 친척들얘기, 직장얘기들로 김장이 끝날 때까지 구수한 얘기는 계속되군 했다. 양념을 넣은 김치를 독안에 차곡차곡 넣는것은 시어머님의 몫이였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혹시 실수라도 할가봐서인지 시어머님은 며느리에게 그 《권리》를 절대 넘겨주지 않으셨다. 김치를 움에 넣은후에는 온겨울 김치가 얼지 않게 움덮개를 장만해야 했다.   시골에서는 벼짚이영을 엮어 덮거나 벼짚단을 그냥 덮으면 그만이였지만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골치거리였다. 그래서 남편과 난 저녁만 먹으면 시장거리를 돌면서 포장용으로 썼던 가마니를 주으려다녔다. 밤날씨는 매서울 정도로 추웠지만 남편과 함께 하는 가마니줏기는 재미만 있었다. 누가 많이 줏냐고 내기를 하며 시장을 돌아칠 때면 하늘에 떠오른 달도, 별도, 스쳐부는 찬바람도 모두 내것이 된것 같았고 그 모든것들에는 사랑의 이슬이 맺혀있는것 같았다.   김장을 끝내고나면 온몸은 수시로 아파났지만 마음만은 큰 일을 해낸듯 뿌듯하기만 하였다. 신혼부부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만 시어머님은 김장배추는 꼭 200근은 담가야 한다고 우기셨다. 어이없어하고 당신의 뜻을 못알아봐주는 아들며느리에게 《너네만 먹겐. 이웃들이랑 신세졌던 사람들이랑 좀 갖다줘야지.》라고 하시며. 혼자만 살아선 살아선 안된다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시어머님은 우리 부부를 앞세우고 설날인사를 참으로 잘 다니셨다.   남들처럼 값진 물건을 들지도 않고 김치만 갖고가는 인사를 난 좀 부끄럽게 여기였다. 김치선물을 난 좀 하찮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였다. 갖고갔던 김치를 내놓으면 한족이웃이나 친구들은 대번에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야단들이였다. 설날에 보내주는 김치는 그 한족이웃이나 한족친구들에게는 아마 최고의 선물인듯 싶었다. 어쩌면 김장김치는 한족이웃, 한족친구들과의 정을 이어놓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놀았는지도 모른다. 김장김치가 우리 집의 외교김치가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에 혼자 웃어도 본다.   하동의 넓은 아파트로 이사올 때 이젠 움도 없고 놔둘데도 없다고 우린 자그마한 독하나만 들고왔다. 김장이라야 열댓포기 배추정도였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김장철만 되면 우리 집에 오시군 했다. 《이건 김장하다가 마는것 같다.》고 섭섭해하고 허전해하시며. 그 자그마한 김치독이나마 심양으로 이사올 때는 가져오지 않아서 김장철만 되면 난 김장몸살을 앓군 한다. 직장에 나가서 김장하는 얘기만 들어도 나의 김장병정서는 좀 푸근히 가라앉을지도 모르나 젊은 세대들이 많은 직장에서는 김장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김장을 담그지 않아 일신이 편안해진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서탑시장이나 슈퍼에 가면 맛갈좋은 김치를 얼마든지 사먹을수 있다.   하지만 사먹는 김치에는 풋풋한 인정과 정서가 없다. 힘든 로동속에서 느꼈던 희열과 보람도 없다. 담백하고 시원하고 입맛좋던 그 움안의 김치가 그립고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했던 김장철이 그립고 이웃들과 나눠먹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내가 그리워하는것은 옛날의 생활자체인것이 아니라 그 생활속에 스며들었던 정서이며 그속에서 느꼈던 따스한 인정이다.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볼 때 힘은 들었으나 그 힘든 일속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삶의 보람을 느꼈을 대 추억도 더 깊어지는듯 하다.   사근사근 일을 가르치시던 시어머님의 구수한 말소리가 들려오는듯 한다. 소리없는 평화속에 오고가는 인정이 묻어날것만 같은 김장철 정서, 그 추억속에서 난 또 새로운 나의 추억을 만들어갈것이다.
10    [수필]겨울이 아름다운것은…(서정순) 댓글:  조회:935  추천:20  2008-12-13
겨울이 아름다운것은…서정순겨울추위도 해볕은 어쩌지 못하는가 보다. 정오 따스한 해볕이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와 피곤에 절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질 때면 이 계절이 정말 겨울일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옷깃속에 목과 마음을 잔뜩 움츠려야 하는 바깥과는 달리 해볕이 자글거리는 방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겨울이 더는 춥고 외롭고 삭막하지 않다. 다정한 잎사귀들의 속삭임이 없어도 라목은 홀로 서있는 멋이 있으며 밟으면 풀풀 먼지가 풍길 것 같은 바짝 마른 잔디도 건조한 향기가 있다. 거무틱틱하고 딱딱한 세멘트 건물들도 더는 시려보이지 않는다. 겨울은 따스한 해볕이 있어 아름답다. 인생 역시 따스한 정이 있어 살맛나지 않을가?가진게 없는 민초들의 생활은 막막할 때가 많다. 길고 긴 겨울만큼이나 추울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럴 때 겨울해볕과 같은 따스한 온정을 얼마나 그리랴!SBS 금요드라마  《소금인형》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운명이 너무나 불쌍해서였다. 살아보자고 모지름을 쓰는 주인공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울만한 사람은 가진게 없고 가진게 있는 자들은 뒤통수를 치려고 한다. 주인공의 절박한 운명이 어떻게 흐를지 손에 땀을 쥐게 된다.《소금인형》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어찌 드라마에만 한하겠는가? 살다보면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여 나앉게 되는 경우도 있고 단란하던 가정이 가장의 병마로 인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이곳에 태권도교사로 와있는 외국적교사의 사정이 바로 그러하다. 이국타향에 와서 혼자서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는 판에 설상가상으로 암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 하루벌이로 살아가는 판에 무슨 돈이 있어 병을 고친단 말인가? 다행히도 이곳 사람들의 따스한 성금으로 입원치료를 받고 차도를 보였었다. 허나 병마는 무정하였다. 결국은 최후 두달이라는 통첩을 눈앞에 두고있다. 영영 가더라도 고국땅에 묻히고싶은데 귀국할 돈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 사정을 알고 이곳의 사람들이 또 나섰다. 될수만 있다면 아직 어린 그 교사의 자식들이 공부도 할수 있게끔 하자면서 성금을 모았다. 그 가족을 가긍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얇은 주머니들을 헐기 시작했다. 헌데 썩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우리가 한번 도와줬으면 됐지,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데 왜 자꾸 해야 하냐며 불만들이 있었다. 일년에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영문모를 기부를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리해도 하겠다만 죽음을 눈앞에 둔 같은 민족의 불쌍한 사람을 두고 언제 우리가 이렇게 야박해졌는지 안타깝다. 박봉을 받는 우리에게도 그 기부금은 아까운 돈일수 있으나 죽음을 앞두고 땡전 한푼 없이 귀국해야 하는 절박한 그 교사의 상황에서는 그 돈들이 더는 단순한 돈만은 아닐것이다. 그것은 희망이고 생명이고 마지막 가는 사람의 아름다운 기억이다. 절망에 빠져 자살을 택하려던 사람이 자기를 관심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마음을 돌려세웠다는 케이스는 너무 진부하여 어딘가 꾸민듯한 감을 주지만 현실은 정말 그러하다. 춥고 소외될수록 따스한 정을 더욱 사무치게 그리는 법이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따뜻한 미소, 푸근한 표정 하나하나가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찬란한 빛이 될수도 있다. 언젠가 바람벽 같은 사람을 만나 아파했던 적이 있었다. 인정으로 따스하게 넘어갈수 있는 일이였는데 가진 자의 힘을 과시하려는것인지 모질게 나왔다. 권력의 힘이란 무서운것이였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모르는 척 내 옆을 지나칠 때 난 천애지각에 혼자 버려진듯한 느낌에 마음은 분노와 저주로 이글거렸다. 다행히도  괜찮아! 다 지나가버릴거야! 힘내라! 그 사람도 언젠가 후회할거야! 하는 인정있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엔 난류가 굽이치고 내 잘못도 돌이키면서 마음을 바로잡을수 있었다.사람의 삶이 한평생 평탄하리라는 보장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자기의 한생이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산과 같은 인생은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기어코 올리막만 보고 내리막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가질가 하여 가진 자들에게만 달라붙어 아부를 하지만 자기도 곤궁에 빠질 때면 따스한 인정을 그리워하고 바라게 된다. 허나 마음은 마음으로 갚게 되여있는 법. 따스함을 받았던 사람들이 줄줄도 알게 되여있다. 아무리 살아가기가 팍팍할지라도 내 주위에 소외되고 힘든 사람은 없는지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따스함이 아름다운것임을 알게 해주는 한낮의 겨울, 해볕은 눈부시게 비쳐들고있다.
9    [수필]해후(서정순) 댓글:  조회:988  추천:28  2008-12-13
해후서정순산행가는 차에서 선배가 청을 들어왔다. 오늘 저녁 첫사랑 상대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는데 자리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것이다. 그 첫사랑 상대자가 내가 잘 아는 친구인데다 나처럼 들러리로 초대받은 친구가 또 있다고 하니 멋적은 가로등노릇은 하지 않을것 같아 흔연히 응하였다. 좌석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말을 붙이는 선배를 보니 환해진 얼굴때문인지 나이보다 겉늙어보이던 주름들이 다리미 세례를 받은듯 쫙 펴져있는 느낌이다. 데이트신청을 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는 선배의 첫사랑은 첫사랑이라기보다는 련애 한번 해보지 못한 짝사랑이라고 하는 편이 적합할듯하다. 괜스레 들떠서 목소리에 열을 올리고있는 선배를 보며 난 한국가수 최성수가 부른 《해후》라는 노래가사를 떠올렸다. 󰡒\"창넓은 차집에서 다정스런 눈빛으로 예전에 그랬듯이 마주보며 사랑하고파.\"󰡓 사랑을 나눴던 사이가 아닌줄을 알고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기어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로맨틱한 해후장면을 그려보고있었다. 놀란듯 수집은듯 서서히 다가가는 두사람, 점점 젖어드는 두사람의 눈동자, 배경처럼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고요한 창가. 아, 첫사랑, 첫해후, 생각만 해도 감미로울것 같았다. 왜 그렇지 않으랴! 무릇 처음이라는것은 모두 가슴을 설레게 하지 않는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새순, 하늘하늘 흩날리는 첫눈에 우린 마음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군 한다. 그러니 피가 들끓던 파아란 나이의 꿀맛같은 달콤한 첫사랑의 감수는 오죽하랴!내 상상은 분위기 좋은 일식집에 예약까지 해놓았다는 선배의 말을 들으며 더욱 확고해졌다. 그애는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가? 들러리로 앉은 우린 어떻게 처사해야 하지? 산행가는 차안에서 저도몰래 저녁을 기다리며 설레고있는 내 마음을 읽으며 혼자서 실실 웃었다. 왜 내가 설레이지? 당사자도 아니면서.그러면서 문득 전에 들었던 첫사랑 해후에 관한 얘기들을 떠올렸다. 두번을 들었는데 당사자들은 다 만나지 않기만 못했다고 얘기를 했다. 젊었을적의 모습을 떠올리며 만나보았는데 아뿔싸! 세월의 흔적이 사정없이 새겨질줄은 몰랐다는것이다. 도무지 이십여년전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고, 젊었을적의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하긴 피천득도 《인연》이라는 글에서 아사꼬와의 세번째 만남은 만나지 않기만 못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오늘 저녁 그들의 만남은 대체 어떤 상황일가? …길게 이어진 호기심을 깨고 약속장소인 매가마트앞에 도착했을 때 선배는 선뜻 차문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온다는 말에 인차 약속을 잡고 우리 녀자들 둘까지 들러리로 초대한 선배의 마음씀씀이를 보면 한달음에 뛰여가 그녀를 맞이할법도 한데 왜 머뭇거리고만 있을가? 우리들 앞에서 진정된 모습을 보이려고 아닌 보살을 하려는것일가? 아니면 20여년의 세월을 깨고 첫사랑 그녀앞에 나서기가 두려운것일가? 어둠이 내린 불빛속에 나타난 그녀는 하아얀 등산복을 입고있었다. 우리 들러리들은 작정을 하고 그녀를 운전석에 앉은 선배의 옆좌석에 밀어넣었다. 차안에 앉은 그녀가 선배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 󰡒어머, 이렇게 …󰡓하고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가는 소리를 우린 들을수 있었다.  선배의 얼굴에서 세월을 느껴서일가? 인상속의 선배가 아니여서 실망을 했다는것인가? 근사한 일식집에 자리를 잡고앉아 난 이제나저제나 내가 생각하는 감미로운 장면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밤늦게까지 이어진 그들의 첫사랑 해후는 랑만도 감미로움도 없었다. 그렇다고 선배나 그녀가 만남을 후회하는 모습들도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무랍없는 얘기들을 나눈듯 한없이 편안한 표정들이다. 애초에 들러리노릇을 어떻게 할가 하던 나의 근심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날밤이 지난후 되돌아 생각을 해봐도 그 만남은 그저 즐거운 만남에 불과했다. 대학시절 데이트를 신청했던 선배와 그 데이트를 거절했던 그녀가 이십여년만에 만난 그날밤 서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난 알수가 없다. 허나 분명한것은 현실은 결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는것이다. 삶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름에 따라 해후에 대한 생각도 다르겠지만 첫사랑 해후 역시 우리 삶의 한부분으로 물이 흐르듯 만남이 이루어졌다면 굳이 피해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들의 삶자체가 바로 만남의 연속이기때문이다. 만남이 있어 허허롭게 비여있던 마음이 채워지기도 하고 가득 찼던 마음이 비워지기도 하니깐.
8    [수필]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서정순) 댓글:  조회:931  추천:34  2008-12-13
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서정순아침 문밖을 나서니 백설천지다. 코끝을 감도는 싱싱한 기운, 어깨에 소복소복 쌓이는 하얀 눈꽃, 얼마나 바랐던가! 사무친 그리움만큼이나 흰눈을 바랬었다. 간혹 흩날리다가마는 눈송이를 바라보면 언젠가 흰눈도 무지개처럼 동년속의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을가 조바심을 내군 했다. 󰡒\"넌 아직 어려! 크면 잘 만들수 있어.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고사리같은 조그만 손이 빨갛게 되도록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고모들이 만든 근사한 눈사람같지를 않자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 동년, 어린 나를 다독여주군 했던 아버지의 생전의 목소리가 정답게 귀전을 맴돈다. 내리는 눈이 천사같다며 눈내리는것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난 어릴 때부터 눈내리는 날을 참 좋아했다. 흰눈만 내리면 문밖에 나가 뛰여놀군 했다. 동동 매달리는 핫저고리안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들어도 내 몸 어디라없이 떨어지는 눈송이가 좋기만 했다. 차거운 촉감도 잠간, 살살 녹아내리는 흰눈의 그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한번은 어스름한 저녁무렵 흰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들린듯 모자를 찾아쓰고 나가려는 나를 어머니가 제지시켰다. 저녁밥을 지어야겠는데 남동생을 보란다. 강보에 쌓인 남동생은 기를 쓰고 울어대는데 내 마음은 그 울음보다 더 간절하게 내리는 눈을 향했다. 남동생을 어르다가는 베개에 눕혀놓고 유리창문으로 뛰여가 코가 납작해지도록 바싹 얼굴을 갖다대고 내리는 흰눈을 바라보았다. 흰눈이 내리는 저 하늘엔 무엇이 있을가? 어쩌면 저렇게 뽀송뽀송한 눈송이들을 내려보낼수 있을가? 눈이 쌓이듯 높아가기만 했던 그 동년의 궁금증은 오랜 시일이 흐르고 옆에 있던 분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게 되자 그리움이 되여 날 찾아왔다. 간밤에 하얗게 땅을 덮어버린 눈들을 보면 마치 하늘가신 아버지가 내려온듯싶어 눈가가 젖어든다. 󰡒\"얘야, 욕심을 부리지 말아!\" 눈속 어디선가 아버지의 생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싶다.떠나는 그날부터 아버지는 내 그리움의 상대가 되였다. 해가 질수록 마음속에 짙어지는 이 그리움. 비석도 없고 무덤도 없고 인간세상에 남겨놓은 한줌의 마지막 흔적마저 저 혼하강물따라 흘러가버렸는데 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자꾸 커지기만 할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면 아버지가 그곳에서 날 보며 웃는것 같고 이렇게 하아얀 눈이 대지를 덮은 날들은 아버지의 그 넓은 품이 날 감싸안는것 같다. 아, 사람은 가도 령혼은 천지간에 남아있는것일가? 무한한 우주와 비해볼 때 인간의 생명은 반짝이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반짝이는 한순간이 아름다운 별찌였으면, 누구나 보고 환성을 올리고 감탄을 하는 황홀한 별찌였으면! 그래서 인간은 몸부림을 치는지 모른다. 인간들속의 별찌가 되려고. 허나 인간은 별찌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황홀한 흔적을 남기려 하기보다는 가지려고 바둥거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자신이 다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도 한다. 날아예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한점의 티끌보다도 더 미소해보이는 얇은 몸매에 무거운 허영과 자존, 과욕과 심술을 짊어지고 헤여나오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떠나고나면 그 형체마저 산산이 부서지고마는것을  왜 그렇게 붙잡고 놓지 않는것일가? 결국 남는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리움뿐인걸. 그 그리움이 눈이 되여, 령혼이 되여 내려오는것일가? 무한한 우주공간에 흘러흐르는 그리움의 강물을 하늘은 흰눈송이로 내려보내는가보다. 흰눈이 내리면 아버지가 무척 그립다. 천지간 순백의 눈꽃이 흩날릴 때 사람의 마음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때문이리라. 순수한 그 흰빛에 세상은 고요해지고 만물은 청정해진다. 청정한 그속에서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얘야, 욕심을 부리지 말아!\"󰡓
7    [시]아침시장(서정순) 댓글:  조회:775  추천:23  2008-11-10
아침시장서정순아직 참새들은 깨여나지 않았다. 새벽 네시카텐을 열고 창밖을 보니 유월 여름이 고요하다태양은 동산마루에 흔적없고 날은 희붐히 밝아온다잠속에서 빠져나온 마음이 바쁘다돼지갈비를 푹 고아 남편오는 저녁밥상에 올려야지구수한 된장국에 양파, 감자줄당콩이 맛있던데 그 말도 귀전에 떠오르고빨리 서둘러 아침시장을 가야겠다싱싱한 잉어만큼이나 기대되는 주말행복은 아침시장을 향해 달린다2008.6.27호박 한근에 인민페 30전시글벅적한 시장속 참빗질하는 내 눈이 반짝인다아침이슬 묻어나는 호박 한무지 길고 미끈한 놈 하나 골라 저울에 단다“싼모우첸”“선뭐?”풋풋한 아낙네 값부름에 놀란 마음제철맞아 자랐는데 값은 겨울철 반에 반값도 못가는 호박“댕그렁” 손때묻어 반들한 돈상자엔 떨어지는 동전소리 요란하다이 무더기 호박 다 팔면저 상자에 동전이 찰가?높이를 모르고 치솟는 물가호박밭에 땀흘리던 아낙네 수심어릴 법도 한데해볕쓴 아낙네 까아만 얼굴엔펑퍼짐한 호박꽃 남실거린다2008.6.28아침시장 2인파타고 길게 늘어진 골목쉰내나는 소리들로 복작거린다오이 네개 골라 저울에 단다“이콰이, 꺼우마?”고까짓것 사느냐고 흘겨보는 눈빛 조는듯 우수가 묻어있다백원짜리 인민페에내밀던 손 멈칫하고 풀먹인듯 얼굴은 꽛꽛하다고기매대로 향하는 발길 뒤에지꿎게 따라오는 말 “다시 와? 보관할게!”고기 사들고 돌아서니 싱싱한 오이 앞에서 손짓한다살가?순간 실망할 그 눈빛 떠오른다동전 일원을 내미는 내게우수에 잠겼던 눈이 반짝거린다풀먹인 얼굴 풀어지기 시작한다인파타고 길게 늘어진 골목쉰내나는 소리들로 복작거린다료동문학
6    [시]참새(서정순) 댓글:  조회:790  추천:21  2008-11-10
참새서정순처마밑도 에어컨구멍도 매캐한 배풍기 구멍도어두워도 좋다 차가워도 좋다 매운 연기에 눈물 찔끔 나와도 좋다까치는 너무나 까다로워 굳이 둥지가 있어야 할가날다 힘들면 땅이건 나무건 가리지 않는다지나가는 행인의 머리에도 세워놓은 차들의 얼굴에도 고약한 지도 그려놓는다심심할 새없이 마실을 다닌다먼지 뒤집어쓴 고물상 야채상악취풍기는 고물더미 뒤로 한채밥 짓기에 한창이다연기쫓느라 콜록이는 아낙네밥달라 징징대는 아이담벽에 누런 지도 그리는 나그네올망졸망한 판자집 시끄럽기만 하다깨여나 종일 조잘거리는 참새살아있다는 증거다2008.7.13료동문학
5    [시]나 이젠 정말 버리고싶어! (서정순) 댓글:  조회:838  추천:52  2008-07-04
나 이젠 정말 버리고싶어! 서정순그래 지나치면 모든것 뜬 구름인걸 잊자 잊자 열자 열자 골백번 다짐하건만 왜 이리 힘들가? 사람을 용서한다는것이 자다가도 그 일만 떠올리면 울컥 치밀어오는 울화 밤새 뒤척이며 숯이 되는 가슴 독버섯이 따로 없었다 미움이라는것 가슴에 안으면 결국 마음만 만신창 되는것을! 나 이젠 정말 버리고싶어! <<연변문학>> 2008년 5월호
4    [시]열쇠(서정순) 댓글:  조회:805  추천:42  2008-07-04
열쇠(심양)서 정 순 안과 밖 사이 너한테 달렸다 네가 심술 부리면 아무리 얇아도 닫힌 문 열릴줄 모르고 네가 선심 쓰면 육중한 철문 잘도 열린다 어둠 깨고 들어선 방안 등불빛이 새롭다 <<연변문학>> 2008년 5월호
3    서정순 프로필 댓글:  조회:1073  추천:47  2008-05-14
서정순 -------------심양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현재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고급교원 심양시조선족문학회 리사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동문학\" 수필편집 수필 <<서글픈 축복>>, <<가을비 그리고 사랑>>, <<소중한 엄마, 핑크빛 친정>> 외 수편 전화: 024-8601-0820, 휴대폰: 133-2242-6067 주소: 沈阳市皇姑区向山路6号(沈阳市朝鲜族第一中学) 우편번호: 110035이메일: zhenshunxu1@hanmail.net 
2    [수필] 인사동, 그리움을 심어놓고 댓글:  조회:936  추천:44  2008-05-14
인사동, 그리움을 심어놓고-인사동편서정순내 몸속 어딘가에 슴배여 꿈속에도 그리워했던 인사동, 이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이기고 또 찾아왔다. 처음 고국이라고 찾아와 40분 정도 돌았던 인사동.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순한국적인 정서에 반해버렸던 인사동, 그리움 한자락을 끄집어내면 영상마냥 조용히 떠오르는 남자가 있는 인사동, 이곳에 내가 또 왔다. 경복궁의 매표시간이 5시까지길래 걸음을 다그쳐야 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사동을 거저 지나치기가 아쉬워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렸다. 이곳이였을가, 저곳이였을가, 내 마음은 이년전 커피잔을 샀던 그 가게를 찾고있었다. 동그란 단지모양에 하얀 꽃송이를 피워올리는 밤색의 커피잔. “이 커피잔이 선생님 정서에 어울릴 것 같아요”하며 사주었던 그 사람. 인사동은 내가 이년전 그리움을 심어놓고 간 곳이다. 한 고장을 좋아하게 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고장 특유의 특산물이 좋아서일수도 있고 분위기와 정서가 좋아서일수도 있다. 허나 무엇보다도 어떤 사람을 만났었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인사동 역시 나에게는 그때 함께 했던 그 사람이 좋아서였는지 모른다. 인사동처럼 전통의 정서와 문학의 향기가 조용히 흐를 것 같은 분이다. 썩 가까이 다가선 사람은 아니지만 인사동만 떠올리면 점잖은 미소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감미로워진다.인사동은 참으로 추억을 낳는 곳이기도 하다. 두번째로 온 인사동, 내옆에는 태백문협의 정연수시인, 서울의 이기애시인, 대만에서 온 장국치시인, 그리고 한 고장에서 온 문학회동인들이 있어 흥겨로움이 더해졌다.경복궁을 돌고 재다시 찾아왔을 때 인사동에는 감실감실한 어둠이 내려오고있었다. 가게들마다 새여나오는 불빛들이 돌로 만든 거리의 바닥을 아늑하게 해주고있었다. 거리의 량측에는 돌로 된 화분통들이 드문드문 있는데 거기에는 어렸을적 논밭에서 봤음직한 이름모를 잉크빛의 꽃들이 피여있었다. 그리고 길옆 네모반듯한 돌에는 력대 유명한 시인들의 시구를 새겨넣었다. 문전박대해질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김병연(김삿갓)길옆 돌에 새겨놓은 시가 하도 신기해 한수 베낀 것이 바로 이 김삿갓의 “문전박대”라는 시이다. 시내용과는 달리 인사동은 우리 일행을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이기애시인님과 정연수교수님의 안내하에 인사동 쌈지거리에 들어섰다.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되여있는 쌈지거리는 이년전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건물이였으나 지금은 인사동을 대표할수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층계는 없고 서서히 웃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1층을 첫걸음길, 2층을 두오름길, 3층을 세오름길, 4층을 네오름길, 지하를 아랫길이라고 우리 말로 쓰고있다. 각종 골동품, 도자기, 액자, 수공예품, 보석류, 장신구, 등 볼거리들이 눈을 현란하게 했다. 인사동의 전통과 정서, 그리고 그리움을 담아가고저 복주머니와 보석주머니를 샀다. 약정된 식당- 지리산으로 찾아가는 길은 좁은 골목거리였다. 넓은것만 좋아하는 중국사람들 사이에 끼여 살아오다보니 인사동 골목길이 어딘가 답답해보였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 어떤 정서에 감염되는 것 같았다. 어거리풍년, 보리고개 찻집, 사색의 여름향기, 인사동 그 찻집, 흥부가 기가 막혀, 지리산, 초록비, 풍경소리, 들깨마을 맷돌순두부, 순 토속적인 한국말로 된 식당표말들이 어딘가 이색적이면서 가슴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뻣뻣하고 경직된 우리 말을 보아만 왔기 때문일까?감동은 또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이 유명한 시 “귀천”을 쓴 천상병시인을 기리는 “귀천”이라는 카페가 이 골목길에 있었다. 골목 어디에선가 천사병시인의 환한 웃음이 실려나올 것만 같았다. 한생을 청빈하게 살면서도 저 세상에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겠다는 천상병시인의 마음가짐, 인사동은 그야말로 문화와 전통, 예술의 정서가 녹아있는 곳이였다. 어느 가게나 뜰은 좁았지만 푸른 자연의 싱그러움에 둘러싸 있는듯 했다. 뜰앞마다 고추며 화초며 나무들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갔던 지리산이라는 식당도 몇평 안되는 뜰이였지만 뜰안에는 큰 감나무가 자라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감나무아래에는 고추들이 심어져있고 그옆에는 호박넝쿨이 드리워져 있었다. 뜰좁은 도심에서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자연에 살고있는 인사동사람들의 지혜를 보는 듯 하였다. 그날 밤 지리산식당에서 막걸이 동동주를 높이 들며 서울의 밤이 둥글어갈 때 인사동에서의 새로운 추억과 그리움도 깊어져가고 있었다.인사동, 몸도 오고 마음도 달려온 곳, 그리움의 씨앗은 또다시 뿌려지고 있었다.2007.8.15
1    국화꽃유감 (서정순) 댓글:  조회:924  추천:47  2007-12-19
국화꽃유감서정순국화꽃이 활짝 피여난것을 보면 하루밤사이 땅속에서 불쑥 피여오른듯한 느낌을 준다. 장미나 동백의 잎이 윤기가 흐르고 요염한데 비해 국화꽃의 잎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가뜩이나 연한 풀색우에 소박을 맞은 녀인인듯 뿌우연 가루까지 입혀있어 여름내내 화단 한곳에 자리잡고있지만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의 눈을 끌지는 못한다.  언제 심어졌고 어느새 자라났는지 인상에 가뭇없다. 사람들이 국화꽃에 눈길을 돌리는 때는 바로 국화꽃이 무더기로 피여날 때이다. 올해도 시린 청빛하늘과 더불어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화단에는 청일색의 자주빛 국화꽃들이 가을해볕을 마주하고 옹기종기 포즈를 취하고있다. 눈길을 주지 않았던 때가 언제인가싶게 국화꽃은 오가는 이들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아파트정원에 석양빛이 물들 때면 사람들은 무더기로 피여난 국화꽃앞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꽃앞에서는 마음도 즐거워지는듯 풍요롭고 느긋한 미소들이 사람들의 얼굴에 어려있다. 헌데 며칠전 저녁밥을 먹고 문을 나서니 화단앞이 수선수선하다. 국화꽃을 심었던 아줌마가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붉히고있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밤사이 누가 국화꽃을 51송이나 꺾어갔단다. 급히 화단으로 다가가보니 썩둑썩둑 가위질에 가여린 국화대들이 듬성듬성한 모습으로 열적게 서있다.  누구의 소행일가? 여러가지 추측들이 오갔으나 입만 아팠을뿐 딱히 누구라고 단정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고운 국화꽃에 매료되여 몰래 꺾어간것임은 분명했다. 고우면 곱다고 감상하고 지켜봐주면 될것인데 왜 하필 꼭 꺾어가야만 했을가? 고운것을 보면 소유하려는 욕심 많은 인간의 행위런가?  꺾이운 국화꽃을 보니 아무런 연고없이 누군가의 입에 짓밟혀 오르내렸던 일이 생각난다. 그것은 정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내가 엄두도 못냈던 말이여서 누군가 말하는 그 뜻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천진하게 실례를 들어 하는 말로 여겼었다. 헌데 그게 아니였다. 헛된 소문은 이미 누군가의 입을 거쳐 돌고 또 돈것 같았다. 나와 나 주위의 사람들만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시한폭탄이 터진듯 귀가 멍멍해났다. 집에 돌아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았다. 누가 그런 말을 퍼뜨렸을가? 왜서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냈을가? 의심은 눈덩이처럼 자꾸 불어났고 마음에는 미움만 우쭉 자라 석고처럼 엉겨가고있었다. 만나면 해살처럼 웃어주던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속에 엉큼함이 도사리고있다는것이 좀처럼 리해되지 않았다.  그것을 삭이느라고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하루의 일상이 끝난 저녁이면 밤하늘에 소리없이 떠오른 별들을 바라보며 왜서일가고 내 마음에 수없이 의문을 던졌다. 사람들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갔으면 누군가의 거친 입에 밟히지도 않았을것이다. 재간도 없으면서 중뿔나게 나서긴 왜 나섰냐며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깊은 속셈과 화려한 위장으로 한껏 자기를 감춘 사람들앞에 나선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꽤나 오랜 시일이 흘렀지만 그 일만 생각하면 무엇을 해보려는 마음은 자꾸 위축된다.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흠이 드러나고 일하지 않은 사람이 일한 사람을 탓하는 세월이라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향하려는 내 마음을 잡아당겨 멍든 울타리속에 집어넣군 했었다. 헌데 국화꽃앞에서 편협했던 내 생각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있었다.  며칠후 이른아침 산책길에 화단에 들렸던 난 국화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국화꽃은 꺾이운 상처를 보상이라도 하려는듯 풀각시 같은 애어린 꽃송이들이 우후죽순마냥 무더기로 피여나 새벽바람에 한들거리고있었다. 모르고 보면 꺾어진 자리가 잘 알리지 않았다. 말할수 없는 국화꽃이니까 상처를 입고도 흔연히 피여나는게 아니였다. 욕심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꺾이는것은 피할수 없는 운명이였다.  내 마음을 울린것은 한번 꺾이였어도 역시 찬란하게 피여날수 있는 국화꽃의 그 용기과 소탈한 자세였다. 국화꽃은 한번 꺾어졌다고 하여 쓰러지는것이 아니라 무서리가 내려 만물이 쇠락할 때까지 진물을 뽑으며 끝까지 자기의 생에 충실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따라 춤을 추고 비가 내리면 비물을 먹으며 우쩍 자라고 해가 뜨면 해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것, 그것은 국화꽃뿐만아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삶의 자세였다. 그런 자연과 비하면 난 얼마나 연약한 존재였던가?  살아가느라면 울퉁불퉁한 돌과 바위에 수없이 부딪쳐 푸르딩딩한 멍도 들고 그 멍때문에 아파 울기도 한다. 그렇다고 벽을 쌓고 움츠러들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뱉어낸 말은 다시 입안에 쏟아넣을수가 없고 입이 남에게 달려있는 이상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지배할 아무런 힘도, 리유도 없다. 그럴진대 그런 사람들의 입방아에 맞았다고 나서지 못할 리유가 무엇일가? 멍든 마음을 한시바삐 털어버려야 했다. 툭툭 털고보면 기실 상처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기 혼자만 아파 멍이 들었을뿐이다. 결국 아픔은 자기 자신한테서 온것이다.  부질없이 아팠던 시간들이 아까왔다. 꺾이우고도 의연히 찬연하게 피여나는 저 국화꽃처럼 아팠던 흔적들을 저 흘러가는 구름속에 띄워버리고 무르익는 가을바람속에 오연히 서있는 국화꽃이 되리라! 누가 꺾는다고 풀이 죽지도 않고 피여나는 그 순간들을 위해 삶을 키워오는 국화꽃, 마침내 활짝 피였을 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사람들이 다가와도 즐겁게 담소할수 있는 배경이 되여주는 국화꽃, 그런 국화꽃이 되고싶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것, 그것만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 삶의 보람이고 행복이니깐. 2006년 9월 25일 <<연변문학>>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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